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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19. 2023

독일의 봄을 알리는 엄마의 꽃밭

봄이 왔네 봄이 와


이번 주말은 원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몇 주 동안 주말마다 한국요리 강습 때 사용할 식재료 때문에 아시아 상품점과 대형 마트를 다녔다.

그렇게 연거푸 똑같은 일정으로 보내다 보니 주말이 주말 같지가 않았다고나 할까?

다음 주는 요리강습이 없는 주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뭘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되니 만고 땡 집안에서 뒹굴뒹굴하며 지내려고 했다.


그런데 햇빛이 나오지 뭔가 이거 은근 사람 설레게 한다.

워낙 날씨 거시기 한 독일에서 오래 살다 보니 적응할 데로 적응이 되어 겨우내 회색빛 하늘을 이고 살아도 시도 때도 없이 비 오고 아침 인지 밤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도 괜찮다

그러나 요 햇살 퍼지는 날은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다.

특히나 이렇게 기온도 21도로 올라가 봄을 느끼기 딱 좋은 날은 말이다.


날이 급 추워지는 늦가을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정원에 나가는 일은 주로 벽난로용 나무를 가지러 가는 일이 전부였다.

쏟아지는 햇살 벗 삼아 따뜻한 커피 한잔 들고 남편과 정원에 나가 섰다.

커피 마시며 가을 내내 치우고도 아직 남아 있던 낙엽들을 하나둘 주워 모았다.

흩어져 있던 낙엽들이 꽃밭 구석에 여기저기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만난 꽃들의 봄 인사.

세상에나 만상에나 엄마의 꽃밭에 어여쁜 꽃 들이 피어나 있었다.


우리 집 정원에는 특별한 꽃밭이 있다.

우리 동네 독일 이웃 들이 엄마의 꽃밭이라 이름 지어준 꽃밭이다.

8년 전 친정엄니는 놀러 온 독일 딸네집 마당에 빨갛고 하얗고 노란 아기자기한 꽃밭을 일구 셨다.

장미와 해당화도 심고 꽃씨도 뿌리고....

꽃밭의 생김새도 이 동네에서는 보기 드문 스타일 인 데다가…

아침이면 이웃집 할매 할배 들이 자기네와 비슷한 연배의 검은 머리 한국 할머니가 정원을 가꾸는 모습이 아주 특별하게 다가왔던가 보다.


거기다가 울 엄마 타고난 메이드인 코리아 붙임성으로 만나는 이웃들마다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좋아요!”, “식사는 하셨어요?” 등의 정스런 인사를 스스럼없이 나누니 모르는 사람도 다들 손 흔들며 친근하게 인사하고 우리 집 앞을 지나다니고는 했다.

아직도 종종 “엄마는 언제 또 독일 오시나?”하고 묻고 “엄마의 꽃밭에 안부 전해줘!” 하는 이웃들이 있으니 말 다했지 뭔가.


엄마가 오셨던 그때 어느 날 인가 정원에서 울타리 너머 지나가던 이웃집 할머니들과 이러쿵저러쿵 어쩌고 저쩌고 대화를 하고 계신 엄마가 보였다.

웃으며 나가 보니 엄마는 손짓 발짓 해가며 한국말로 꽃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하고 계셨고 그 내용을 용케 알아듣고 박수를 치며 ‘’’’어머나, 아이고 그랬어요, 어쩜.,’등의 추임새를 넣고 계신 이웃집 할매들은 독일어로 대답하고 있었다.

통역 없이 번역기 없이 국적도 문화도 다른 두언어가 노인들의 연륜 벤 표정과 몸짓으로 바로 의사소통이 되는 진귀한 풍경이었다.  


울타리 옆 심어 두었던 튤립의 입사귀가 고개 내민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원 한가운데 있는 엄마의 꽃밭에 꽃이 피어난 것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내 돌보는 사람 없어도 때 되니 "봄이 왔네 봄이 와!" 하고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어여쁜 꽃을 피워 냈다.

마치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향한 한결같은 엄마의 마음처럼 어김없이 봄을 알리니 뭉클하게 반갑고 찡하게 고마웠다.


친정엄마는 꽃과 식물을 좋아하신다. 엄마는 쌔들 쌔들한 식물 들을 요래 조래 만져 주고 물 주고 하면 다시 파릇파릇해지는 그린 핑거를 가졌다.

나는 그런 엄마의 딸이건만 물 안 줘도 잘 자란다는 선인장도 고이 보내 는 블랙 핑거다.

그래도 작년에 콜라비랑 토마토 채소 농사와 딸기 농사가 잘 돼서 맛나게 먹었고 이번에도 먹을 것 위주로 모종을 심어야지 하고 있었지만 엄마의 꽃밭에 변함없이 피어난 꽃을 만나니 마음이 살랑거린다.

일간 꽃상가로 출동을 해야겠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기회가 찬스다 싶었던지 이렇게 꼬드기기 시작했다.

"꽃이 예쁘게 피었는데 마른 낙엽들이 드문 드문 보이니 안 이쁘다 우리 금방 나머지 낙엽도 치워 버릴까?라고..


막상 팔 걷어붙이고 다 치우려면 한참 걸린 다는 것을 뻔히 아는 내가 살짝 망설이자 남편은 요렇게 속삭였다.

"예쁜 꽃 사진 찍어서 너의 독자님들에게 독일에서 봄소식 전하면 좋잖아"

그 말을 듣자마자 낙엽 걷어 치울 봉투 들고 나오는 나를 보며 남편은 거봐 넘어갔지 하는 표정으로 빙구처럼 웃고 있었다.

이런 알면서 또 넘어갔다.... 오늘도 나를 너무 잘 아는 약아빠진 남편 덕분에 허리 휘게 낙엽 치울 예정이다.


울 독자님들 마음에도 봄이 가득하시기를 독일에서 봄향기 가득한 소식 전합니다요~!

나리 왈 :“사진 고마 해라~마이 찍었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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