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쓰는 프롤로그
어릴 때부터 예쁘게 생긴 노트 이 귀퉁이 저 귀퉁이에 글자를 끄적거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 위에 사각사각 굴러 가는 연필 소리가 좋았고
머릿속을 맴도는 것들과 마음속을 훑고 지나가는 무엇인 가를 글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옮기는 것 또한 즐거웠다.
그러다 독일 와서 살면서부터는 사는 게 바쁘다 는 핑계로
주로 짧고 간단한 일기 형식의 다이어리도 그때그때
날짜 별로 채우지 못하며 살던 어느 날인가
블로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컴퓨터 도 잘 다루지 못하면서 무턱대고 다음에서 김여사의 구텐 아페티트라는
블로그 방을 용케도 만들어
수시로
썼던 글을 날리고, 다시 쓰고... 사진도 제대로 못 올려 쩔쩔매면서도
한국에 계신 친정엄마가, 사촌 언니를 비롯한 친척과 친구.. 지인 들이 함께
들여다볼 수 있도록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어요 라고 이런저런 일상의 잡다구리 한 일들을 사진과 함께
일기처럼 적어 올리기 시작했다.
장 시간 걸려서 말이다.
그렇게
없는 시간 쪼개고 쪼개어 거의 매일 글을 썼고 만난 적은 없지만 별것 아닌
남의 집 일상 적인 이야기들에
고개를 끄덕여 주시던 맘 좋은 분들도 알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어떻게 지내고 있고 요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떨어져 사는 가족 들 에게 자세히 알릴 수 있다는 것은
서로 에게
비록 몸은 멀리 있지만 언제나 함께 인 것 같은 끈끈한 유대감을
업그레이드 시켜 주었다.
그렇게 하나,두울 어느새 500여 개째가 넘는 글을 쓰고 있던
어느 날
종종 살아 있음만 인증하러 들리던 페북에서 페친 들 중에 한 분 이 남겨 놓으신
사진이 위로 자연스레 접히면서 마치 앨범을 뒤적이듯
소리 없이 책장을 넘기듯
너무나 예쁜 플랫폼에 담겨 있는 글을 읽게 되었다.
(나는 처음엔 온전히 그분의 솜씨인 줄 알고 감탄해 마지않았었다.)
그것이 바로 브런치였다.
내게 블로그는
처음 경험 해 본 미지의 인터넷 세상 이였다면
브런치는
자주 다니지 않던 좁은 동네 골목길을 돌고 돌아
우연히 발견하고 심 봤다를 외치게 한
어느 봄날의
아름다운 자태를 화려하게 뽐내던
흐트러진 분홍의 겹벚꽃 나무였다.
그렇게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를 만났다.
별 다른 이유도 계획도 없이 그저
그 어여쁜 자태에 혹해...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넋을 빼고
그렇게....
그렇게.... 한눈에 반해
운 좋게 발을 들여놓은 브런치 에는 아름다운 자태만큼이나
화려하게 전문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프로페셔널 한 글쟁이? 들로 넘쳐나 있었다.
이 글을 읽어 보아도 저글을 읽어 보아도 어느 것 하나
작가라 부르기에 망설여지는 글이 없었다.
그 속에서
오로지 플랫폼에 반해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나는
맞춤법 검사에 의지해 글을 쓰고도 종종 틀려 대는 내 글은
사실,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받기에도 글이라 명명해 주기도 민망할 뿐이었다.
뭔가 제대로 동떨어진 느낌....
마치 엄마의 높은 구두를 꿰어 신고 아빠의 노트북 앞에 앉아
아무 철자나 보이는 대로 눌러 대며 놀고 있는 아이 같은 순진무구? 한 시작...
시작이 그러하다 보니
남들은 브런치에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앞으로 어떤 내용의 글들을 담아낼 것인지
무슨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내고 싶은지 에 대한 소개 또는 각오 등을
프롤로그를 통해 알리고 시작했다면
나는 두서없이 무작정 내 일상의 잡다구리 한 것부터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무슨 이야기를 이곳에 쓰겠다고 소개부터 했다고 한들
어차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 들에 관한 것뿐이었을 터이니
뭐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그다지 없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고민한다.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읽으며, " 시방 이 아줌니가 뭔 소리를 하는겨?"
라는 생각은 들지 않도록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정도는 저절로 이해하실 수 있도록
정리된 글을 써보자고 말이다.
결론은
앞으로도 내 브런치 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고급진 정보가 담겨 있지 못할 것이고
당연히 전문가 적인 스멜이 솔솔 풍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즐겁다.
고로 글의 퀄리티 와는 무관하게(배 째라?) 계속 쓰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지금 보다는 좀 더 나은 글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스스로 에게 이야기한다.
이 세상 어딘 가에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의 별것 아닌 소소한 이야기를 다듬지 않고 써 내려간
이런 투박한 글 속에서도
때로 위로받고 때로는 고개를 주억 거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으로
내가 오늘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되기 충분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