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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05. 2023

진짜 행운을 가져다줄까?

믿거나 말거나 미신 같은 독일 속담 하나


내게도 긁지 않은 복권이 생겼다.


휴가 첫날이었다. 그동안 일하느라 미뤄 두었던 관공서 볼일들을 몰아서 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부터 줄줄이 잡혀 있는 예약 시간에 맞춰 시내로 가기 위해 남편과 서둘러 현관문을 나섰다.

문에 열쇠를 꽂아 돌리는 짧은 순간에도 나는 머릿속으로 점검하기 바빴다.

요즘 하도 잘 깜빡깜빡해서 말이다.


벽난로는 불 잘 지피고 문 닫아 두었고(나무에 불을 잘 붙이기 위해 초반에 유리문을 살짝 열어 두기 때문이다)

아침으로 그전날 먹고 남은 수프 데워 먹고 주방 가스대는 불 껐고 (종종 불 켜두고 깜빡하고 솥 태우는 1인)

다림질할 일이 없어 다림이 불은 켜지 않았고..

멍뭉이 나리 물과 사료까지 다 담아 두었다...


그렇게 검색 창에 검색어 집어넣듯 머릿속으로 체크를 하고 현관문 잠긴 것까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는 뒤돌아서 두리번거렸다.

남편이 어디 있나 찾기 위해서다. 함께 나와 서도 언제나 현관문 잠그는 것은 내 몫이다.

성질 급한 남편은 내가 머뭇 거리는 그 순간마저 못 기다리기 때문이다.

같이 갱년기인데 남자들의 뇌구조는 달라서 인지... 아님 저 인간이 성질이 급해서인지...

좌우지당간 함께 나와서 같이 움직인 적이 없다.


내가 문 앞에 서서 잠깐? 점검하는 동안 에도.,,

양심 불량들이 길바닥에 질질 흘리고 간 종이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던 ,정원을 들여다보며 어디를 더 치워야 하나? 생각에 잠기던 그도 아니면 일지감치 차에 올라 유튜브를 틀어 놓고 있던…한다

그렇게 남편은 함께 현관문을 나서며 열쇠는 내게 건네고 어디론가 가 있기 때문이다.


목을 길게 빼고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성질 급하신 분은 벌써 자동차 안에 앉아 계신지 한참이다.

나도 약속 시간보다 일찍 가는 편인데 남편은 약속 시간 보다 남아 터지는 시간에 도착해야 여유로워 좋다고 하는 스톼일이다.


나는 인도로 한 바퀴 돌아 주차장에 갈까? 아니면 풀밭을 가로질러 바로 주차된 자동차 쪽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풀밭 쪽을 택했다.

가끔 신선한 개의 배설물을 신발 바닥에 부착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풀밭을 가로질러가면 아무래도 빠르다.


멀리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운전석에 앉아 핸들에 손가락을 얹어 튕기며 “이놈의 마누라는 왜 안 오나 ~!” 하고 생활랩을 쏟아 내고 있을 남편이 눈에 선 했기 때문이다.

초록의 풀과 풀 사이에 물커덩 한 것이 없음을 확인한 나는 지뢰밭을 지나가듯 까치발로 한발 한발 조심히 종종 거리며 내디뎠다.

좋았어~! 빠르게 주차장에 안착,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발 더 내디뎌 자동차 문을 열려고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때였다

뭔가 묘한 느낌이 든 것이....


Vogelschiss bringt Glück

그 느낌은 뭔가 뭉클한 것이 살포시 얹히는 것 같았다.

마치 햄버거를 먹다 캣첩 묻은 오이나 토마토가 낙하해서 하얀색 블라우스에 떨어진 느낌.. 또는 더운 날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 내려서 팔뚝에 뭍은 느낌? 아니면 이 닦으려고 칫솔에 치약 묻혀 입으로 돌진하는데 하얀 치약 덩어리가 입속이 아닌 턱에 얹어졌다가 그게 다시 뚝 떨어져 욕실용 슬리퍼를 지나 굳이 발가락 사이에 안착한 느낌?

어쨌든 가벼운 무언가 살짝 얹어진 그러나 영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살펴보니 입고 있던 보라색 패딩 왼쪽 소매에 짙은 보라색과 흰색이 섞인 덩어리가 얹어져 있었다.

이런 쉬뜨 새똥이다...

나는 왼팔을 마치 깁스 라도 한 것처럼 뻣뻣하게 들고 오른손으로 자동차 문을 열고 외쳤다.

"여보야 나 새똥 맞았어!" 남편은 나보다 더 황당한 표정으로 '진짜 가지가지한다!'를 마빡에 그리며

"얼른 옷 갈아입고 와!" 했다.

그렇다, 아무리 공기 좋은 동네 나무 위에 사는 새가 싼 친환경 블루 베리를 닮은 색의 똥이라 해도 똥은 똥이 아닌가 그대로 입고 나갈 수는 없다.

솔직히 입고 있던 패딩과 색도 비스끄리 해서 물휴지로 쓰윽 닦고 갈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싶어 바로 집으로 뛰어갔다.


방금 나간 엄마가 다시 집으로 오자 노트북으로 알바를 하고 있던 딸내미가 놀라서 쳐다보았다.

나는 비장한 목소리로 "엄마 새 똥 맞았다!"라고 했다.

동작 빠르고 눈치 빠른 딸내미는 물휴지와 소독제등 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엄마 괜찮아! 새 똥 맞으면 행운이 온다잖아!"

그렇다 독일 에는 새똥 맞으면 행운이 온다는 미신 같은 속담이 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방금 전까지...

바쁜데 이 놈의 새 새뀌가.. 에이띠...귀찮게 ... 이길 지나다니는 사람이 월매나 많은데 하필 왜 나만....

등을 무한 반복 하며...괘씸한 놈의 새 또 그럼 깃털을 몽땅...해 가며 속으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누구래도 아침부터 외출하려는데 새 똥을 맞았는데 "앗싸 새똥이다! 좋은데~! 상쾌한 아침이야~! 아 해피해!" 이러진 않을 것 아닌가

그런데…

딸내미가 꺼낸 행운 이야기에 슬그머니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진짜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하는 은근한 기대도 생기면서 그래 이깟게 뭐라고..

그놈의 새 새끼 양심은 있어 가지고 머리나 얼굴에 갈기고 간 것도 아니고 그래봐야 입고 있던 옷소매에 뿌리고 간 건데 뭐... 하면서...

왠지 반짝 반짝한 느낌이 드는 행운 이라는 단어는 순간의 찝찝함을 지워 주기에 충분했다.


새똥을 맞고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 자주 만나지는 커다랗고 새까만 까마귀나 뚱뚱한 비둘기가 푸지게 싼 똥이 아니라…

작고 작은 새의 쥐똥만 한 새똥 이여 그런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의 주간 잡지 중에 하나인 Focus 에   “진짜 새똥을 맞으면 행운이 올까?"라는 칼럼에 따르면 이 미신 같은 속담은 예전부터 위로를 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믿거나 말거나 는 개인에게 달렸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새 똥을 맞았다 해서 어느 날 우리 집 정원에 꽃 심을려고 땅을 팠더니 갑자기 기름이 쏟아 진다거나 굴러 다니던 돌맹이를 주워 보니 세기 적인 유물이였다던가 하는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지금 이렇게 킥킥 거리며 글을 쓸 수 있는 순간도 누군가 에겐 그리도 바라던 행운이 아니겠는가?


To 독자님

어째 에브리데이 똥 얘기 하느라 정신없는 김작가입니다.

독일은 이번주 매일 햇빛이 나지만 아직은 싸늘한 날씨입니다.

그래서 아직 겨울 옷을 옷장에 넣지 못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언제 어디서 날아온 꽃씨 인지 알 수 없는 들꽃들이 들판을 뒤덮고

여기저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봄 인사를 합니다.

심지도 뿌리지도 않았는데 정원 울타리 앞 돌틈새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있는

보라색 들꽃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름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작은 꽃이지만 그저 한번 쳐다본 것에 예쁜

위로를 받듯....

이 아침에 별것 아닌 일상의 이야기가 울 독자님들에게도 작은 위로로 가 닿기를..

요 들꽃처럼 말이지요.

아름다운 봄 날 되시어요


독일에서 김작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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