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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30. 2023

갱년기의 아줌마는 무서워

독일 여름 날씨와 아이스커피  


화창하다 못해 기온이 쭉쭉 올라가던 공휴일 낮이었다.

남편과 데이트를 빙자한 은행 볼일을 보기 위해 시내로 향했다.

전에도 살짝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리는 아날로그 시스템이라 온라인뱅킹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온라인 용지 또는 은행까지 직접 가서 기계로 찍어서 계좌이체를 한다.


집에 앉아서 클릭 한 번이면 다 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답답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다.

의심도 많고 어리바리해서 그렇다.

그런데 개인병원도 자영업이다 보니 매번 이것저것 지출 결제 해야 할 것들이 줄을 선다.


다행히도 독일은 아직도 온라인 용지를 보내오는 업체들이 많다.

그러니 우리 같은 느림보 들도 따라가며 살만 한 것 같다.



독일 여름 날씨는..


여름이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다 못해 춥기까지 한데 낮기온은 천정부지 뛰어오르는 물가만큼 빠르게 올라간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일명 양파 같이 옷을 입는다.


맨 위에 바람막이 점퍼 또는 카디건 그리고 긴팔 그 속에 짧은 팔 내지는 민소매..

아침에 나올 때는 선뜻하다 햇빛이 퍼지며 점점 더워지니 하나씩 벗어서 어깨에 걸거나 매고 다니는 거다.

언젠가도 이야기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길이가 길다 보니 카디건 걸고  있으면 멋져 보이지만 사실  부리느라 걸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그런 패션을 유지하는 거다.


여름 이면 나는 가끔 동화 이솝우화의 해와 바람 이 생각난다.

왜 해와 바람이 내기를 했던 그 이야기 있지 않은가

바람은 세차게 불수록 사람은 더 옷을 여미게 되고 해가 쨍쨍 내리쬐니 옷을 저절로

벗게 되더라는 그 이야기 말이다.



그만큼 독일 한낮의 햇빛은 강렬하다 못해 따갑다. 일기예보 상에 나와 있는 뜨뜻미지근할 것 같은 온도를

얕보고 자외선 차단제 바르지 않고 다녔다가는 거울 보고 깜놀 할 날이 온다.

언제 생겼는지 모르는 주근깨와 잡티가 "하이~ 반가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갱년기라 자체적으로 수시로 덥다 말았다 하는데 여름이 되니 더 덥다

꼼꼼하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나와도 햇빛에 서면 어느새 아이스크림 녹듯 흐물흐물 녹아 내려 흔적도 없어진다.

그렇다고 들고 다니며 발라댈 만큼 부지런하지도 않으니 어느새 얼굴 위는 까만 잡티로 발 디딛을 틈이 없어졌다.  


그런데 더운 날 발 디딜 틈 없는 건 내 얼굴뿐만이 아니다. 날씨 좋은 주말 또는 휴일 낮이면 카페에 야외 자리들은 사람들로 빼곡하다.

겨우내 부족했던 햇빛 충전이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은 햇빛 내리쬐는 자리들을 좋아라 한다


우리도 모처럼 야외에 앉아 아이스커피 라도 마실까? 했는데 도무지 빈자리가 보이 지를 않았다.

앉으면 5분 내에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얼굴에 새로운 잡티까지 선사할 자리만 빼고 말이다.

하는 수 없이 아이스커피 테이크아웃 해다가 우리 집 정원에 앉아 마시기로 했다.


처음 독일에서 얼음이 담긴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이스크림을 푹 담가서 주는 아이스커피를 받았을 때

식겁했다.

그때까지 아이스커피 하면 한국에서 사각의 얼음 동동 띄운 아이스커피만 떠올랐었다

그런데 커피잔에 아이스크림이 떡하니 담겨 있고 위에 생크림까지 얹어져 있으니  시절 유행하던 비엔나커피로 주문을 잘못 받은  알았다.


알고 보니 이 동네 아이스커피는 원래 그런 거였다.

독일어로 아이스크림을 Eis 아이스 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아이스를 커피에 담근 것이 Eiskaffee 아이스커피였던 거다.

이제는 오래 살고 보니 달달하고 걸쭉한 이 동네 아이스커피를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여름 하면 언제나 요 아이스크림 퐁당 담긴 아이스커피가 당긴다.


우리는 그렇게 아이스커피 사러 자동차를 주차해 두었던 주차장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내가 주문을 하고 있는 동안 남편이 주차요금을 내고 있으면 빠르게 움직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이크아웃 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만만치 않게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냥 갈까? 하다 줄을 섰는데 뭐라도 가져가야지 싶어 기다리고 있으려니 줄이 조금씩 앞 당겨졌다.

머리는 햇빛 받아 따끈따끈해지고 목은 마르고 다리는 아파 왔다.

그러나 기다린  아까워 포기할  없다. 아이스커피~


조금씩 움직이던 줄이  앞의 앞쪽에  있던 사람에게서 멈춰 섰다.

아이스크림으로 파티를 하려는지 어찌나 이것저것 담아 달라고 해 쌌는지 그럴 거면 아예 통째로 사가세요라고 말하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덕분에 시간이 한참이나 지체되고 있었다.

나는 주차장 입구  에서 나를 보며 주차요금  타이밍을 보고 있을 남편을 고개를 보고는 아직 멀었다는 사인을 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이 청바지줄무늬의 블라우스를 입은 어떤 아주머니가 마치 아이스크림 메뉴를 확인하려는 듯 앞에서 알짱 더니 당당히 끼어들어 새치기를 해서는  앞으로 서는  아닌가?


아니 이 아줌마 보게나!

분명 내 앞에는 롱원피스를 입은 여인네였단 말이요.!

나는 분명 고개만 빼서 다른 방향으로 향했지 발은 땅에 붙이고 있었으며 몸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앞사람과 내 사이를 가로질러 스며들어 와서는 마치 제가 아까부터 그곳에 있었던 양 시치미를 떼고 서 있지 뭔가?

어이가 없어서리…

예전에 나라면 입열기도 귀찮은데 그렇게 살다 가게 내버려 두자 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양심불량 아줌마 가소롭게도 잠자는 갱년기 아줌마의 코털을 건들 이 다니.....


"이보세요 저도 지금 기다리고 있거든요 새치기하시면 안 되죠!"

그랬더니 그 아줌마 얼굴이 벌게지면서 완전 당황 했다. 내가 그냥 봐주고 넘어가게 생겼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표정으로 볼 빨간 새치기녀는 내게 말했다.

"어머 몰랐어요 미안해요!"


나는 그녀의 궁색한 변명에 "세상에나, 제가 바로 앞에 서 있었는데 제등치가 어디 안보일 덩치 이던가요?"라고 했다.

순간 뒤에서 킥킥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너무 빡친 나머지 자폭을  버렸다. 띠불


어찌 되었든 나의 서슬 시퍼런 따짐에 반박에 여지가 없던 새치기녀는 맨뒤로 소리 없이 사라져 갔다.

아이스크림이 퐁당 담긴 독일식 아이스커피를 들고 주차요금을 내고 있던 남편에게로 쪼르르  조금 전에  황당한 새치기 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하려는데...


남편이 말했다." 그래도  아줌마 간도 크다 했다  있음 죽을 텐데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1초도  돼서 네가 앙칼지게 쏘아붙이더라 와우 갱년기 아줌마는 무서워!"


그 모습을 다 목격했노라며 고개를 흔들어 대고 너스레를 떠는 남편의 모습에 나는 입만 웃으며 눈은 세모꼴을 유지한 체 "그래 갱년기 아줌마는 무서워 조심해 건드리면 크일나"라고 경고해 주었다.

하루에도 호르몬 변화로 기분의 파도로 서핑을 하고 있는 갱년기 아줌마 앞에서 새치기는 금물이다.


요즘 세련된? 커피전문점에서는 아이스크림이 담긴 이 동네 아이스커피 대신 얼음을 띄어 달라고 하면 얼음 넣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아이스커피가 나오기도 한다.
사진 왼쪽이 얼음 띄운 아이스커피 오른쪽이 커피에 아이스크림과 생크림까지 얹은 이 동네식 아이스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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