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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05. 2023

그래서 나도야 간다

독일의 정원 쓰레기 처리장


독일의 큰 명절 중에 하나인 부활절 연휴가 이번주 금요일부터 시작된다.

아이들 학교도 부활절 방학에 들어갔고 독일 사람들은 연휴에 연이어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다른 도시에 사는 가족들을 방문하기도 한다.

독일에서 부활절은 우리의 추석처럼 일가친척이 모이는 명절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 병원도 직원들이 명절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번주 한주 병원문을 닫고 휴가다.

이 동네에서 찾아갈 친척이 없는 우리는 부활절 연휴 때 가끔 어디론가 여행을 가기도 했었는데 이번엔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다른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내미는 벌써 집에 도착했고 직장인 인 큰아들은 낼모레 집으로 온다.

아이 셋 중에 둘이 각기 다른 곳에 살고 있어 온 가족이 모이기만 해도 명절 분위기가 되고 그동안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느라 여행지만큼 새롭고 즐겁다.



휴가 첫날은 평소 미뤄 두고 있었던 집에 관련된 사무 처리 할 것들이 있어 일하느라 휴가 같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 날부터는 나만을 위한 시간도 보내리라 다짐하고 뭘 할까? 고민했다.  

아침 일찍 남편은 수영장 보내고 방학을 만끽 중인 막내는 늦잠 자고 있었고 노트북으로 홈오피스 알바 중인 딸내미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정원으로 난 문을 활짝 열고 벽난로 용 땔감도 드려 오고 멍뭉이 나리와 정원에 나가 앉았다.

아직 바람에 싣려 오는 공기는 차갑지만 햇빛이 환하게 비춰 주고 있어 청량한 느낌이 들었다.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의 부산한 지저귐을 배경 삼아 작년 봄 화단에 심어둔 꽃들이 마치 올봄도 약속을 지키려는 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바람 따라 자잘하게 흔들리는 노란 수선화가 이젠 정말 봄이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

간질간질 해졌다.

평소 라면 한참 병원에서 일해야 할 시간에 믹스 커피 한잔 들고 정원에 앉아 따땃한 햇빛 받는 그 몇 분의 시간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정원 탁자 위에 커피잔을 올려 두고….

들고나가 무릎 위에 올려 두었던 노트북을 켰다.

유튜브로 봄에 듣기 좋은 노래를 검색했다. 악뮤, 경서, 10센티, 아이유 들의 노래가 차례로 흘러나왔다.

뭔가를 쓰고 싶다는 글쓰기 욕구가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올라왔다.


흥얼거리며 브런치에 로그인하려는데 뱃속에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같은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믹스 커피의 프림은 락토프리 우유가 아녀서 가끔 있는 일이다. (유당 불내성 외 불내성만 3가지 가지고 있는 1인)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뱃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급박해진 상황에 거실에서 위층 화장실까지 가려면 긴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그전에 뭔 일이 날 것만 같았다.

걷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마빡에 땀방울이 맺혔다

하는 수 없이 거실 끝에 있는 화장실로 경보하듯 실룩이며 들어갔다.

아 이 후련함이라니….

이 홀가분 함이 며칠 만이 던가.. 워낙 극한 직업이다 보니.. 변비는 동네 친구처럼 친숙하다.

병원일을 하다 보면 화장실 가려는데 전화 오고 갑자기 응급 터지고 해서 타이밍을 놓지 기도 하고 상황이 되지 않아 참기도 한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휴가에 믹스 커피 마시고 입도 즐거워졌고 덕분에 속도 말끔해졌다.

오 해피 데이 ~~!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만 변기가 막혀 버렸다 그것도 꽉....

뚫어 뻥을 들고 이리저리 애를 써 봐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이를 어쩐다...

안 그래도 그동안 수압이 약한 아래층 화장실은 웬만하면 사용을 하지 않았더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른 아침 수영장을 다녀온 남편이 개운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가급적 부드럽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코맹맹이 소리를 가득 담아 "여보야 나 사고 친 것 같아 자기가 도와주면 안 될까?"라고 했다.

남편은 "뭔지 모르겠지만 도와주고 나면 너도 내가 하자는 거 하나 하는 거다"

라고 물물교환 어택을 썼다.


다른 때 라면 "됐다 고마 관둬라 내가 하고 만다!"라고 튕겼을 나는 재고 따지고 할 새가 없었다.

남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뻥뻥 뚫어 놓는 우리 집 공식 다 뚫어 맨 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비굴 모드로 "당연하지 뭐든"이라고 했고 이때는 찬스다 하는 표정의 남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뭐든!이라고 했다! “

그리고는 "도와줄게 뭔데?"라고 물었다.


그 몇 분 후 나는 지난가을부터 모아 두었던 낙엽 봉투를 묵묵히 자동차에 싣고 있었다.

남편은 날씨 좋은 날 정원 한구석에 쌓아 두었던 낙엽 봉투들을 가져다 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휴가 때 마누라에게 쓰레기 처리장 가자고 하면 눈을 세모꼴로 뜨고는 어디 놀러 가자고는 못할 망정 그걸 하자고? 라며 퉁박을 받을게 뻔해 말도 못 꺼내고 있었는데 이게 웬 떡인가?

지가 사고를 치고 수습해 주는 대가로 기꺼이 뭐든 같이 한다지 않은가

오 해피 데이~~!


겨우내 비닐봉지 속에 들어 가 있던 낙엽 들은 그동안 비도 맞고 눈도 맞아 부분적으로 젖어 있다.

덕분에 낙엽 냄새에 퀴퀴한 냄새가 더해져 코가 뻥 뚫어지는 냄새가 난다.

그런 낙엽들을 집집마다 가져다 버리는 정원 쓰레기 처리장 에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향이 난다.


옛날옛적 우리 어린 시절 에는 종종 주택가 골목에 커다란 트럭 같은 차가 오는 날이 있었다.

굵은 플라스틱 호수 같은 것이 달린 큰 차는 일명 똥차라 불렸고 그날은 집집마다 마당 한편에 있던

화장실 치우는 날이었다

아저씨들의 호탕한 “똥 퍼요~~!”소리가 아닐지라도 동네가 떠나가게 풍기던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아이들도 저절로 알게 되고는 했다.

이 오래 묵은 낙엽 냄새들은 그때의 특유의 냄새가 생각나게 한다.


우리 집 정원에는 아름드리 보리수나무가 한그루 있다

보리수의 수많은 나뭇잎은 여름이면 뙤약볓을 가려 주는 훌륭한 자연산 파라솔이 되어 준다.

그러나 가을 지나 겨울까지 수없이 떨어져 내린 낙엽 들은 봉투에 담아 모으는 것도 허리가 휘는 일이요

봉투에 담아둔 것을 버리러 가는 것도 일이다.

특히나 정원에서 자른 나뭇가지, 낙엽, 그리고 잔디들을 버리러 가는 정원 쓰레기 처리장 에는

옛날 옛적 동네를 휘감던 냄새를 방불케 하는 냄새가 배어 있다.

그곳에서 오래된 낙엽을 한 곳에 모아 비료를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이들도 낙엽 봉투를 자동차에 실어 주는 것까지는 즐거이 함께 해 주지만

쓰레기 처리장까지 같이 가자고 하면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며 노 땡큐를 외친다.

나는 그날 변기통을 막아 버린 죄?로 자동차 가득 낙엽을 싣고 두 번이나 쓰레기 처리장을 오가야 했다.

오래된 노래 나도야 간다를 흥얼거리며 말이다.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낙엽 버리러 나도야 간다.  

이래 저래 향기로운 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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