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Jan 24. 2023

50유로의 유혹

이 글은 앞글 설날에 수영복 입고 실려 갈 뻔했다는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먼저 그 글을 읽으시는 것을 강추합니다

온천 수영장에서 장렬히? 나자빠진 날 사실 내생에 처음 있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런데.. 막상 모든 것을 글에 담자니 너무 길어질 테고 그렇다고 다음 편 계속.. 을 명함 뿌리듯 던지고 시리즈로 엮기에는 다음 글을 빨리 올려야 하는 무언의 압박이 있는 지라 고민했다.

그러다 담 편에 계속..이라는 공고 없이 나중에 써서 올리기로 혼자 잠정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며칠 지나 내가 글을 쓸 수 있을 때 연이어 쓰면 기다리는 사람도 없을 테니 부담도 없고 그새 이야기를 까먹고 말 것이 아니니 되지 않았나?

물론 결정 적으로는 매번 글이 너무 길 다며 성질 급한 사람은 읽다 숨 넘어가겠다는 애독자 0번(남편)의 고견?을 적극 참고한 셈이지만 말이다.

(좌우지당간 이 일은 그날 있었던 일이다 라는 한 문장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리도 주저리주저리 사설이 길었습니다

바로 시작합니다~~!)


그날..

어떻게든 머리가 부딪치는 것만은 면해 보려고 공중에서 무한 버둥거린 탓에 뇌진탕은 면했으나

출렁이는 복근? 뿐만 아니라 온몸의 근육이 요동을 쳤다.

이대로 집에 간다면 며칠 근육통을 앓아야 할 것이 뻔했다.

물에 들어가 뭉친 곳들을 살살 풀어 주고 가야겠다 싶어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수영장 안에는 아까 보다 많아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몸을 움직여 대고 있었다.



따뜻한 물온도에 잔뜩 긴장해서 굳어진 근육들이 여기저기 아우성을 질러 대고 있었다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물속에서 끌고 다니며 좀비처럼 스르르 걷고 있다 보니 왠지 흘깃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그렇겠지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어! 급 쪽팔림이 몰려왔다.

남편과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 잠수 하기 하고 자연스레 물속에 들어가 버릴까? 하다 말았다.

트릭이라는 것 없이 맨날 정직하게 순서대로 내는 남편에게 가위바위보 해서 져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ㅋㅋ


왜 아니겠는가, 사실 나였어도 다른 사람의 그런 몰골?을 라이브로 보았다면 '개신기해!'라며 흘깃거렸을 것이다.

작고 펑퍼짐한 아줌마가 그것도 비키니씩이나 입고 뒤뚱거리며 다니다가 갑자기 공중 부양 하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철푸덕이 바닥과 한 몸이 되었다.

놀래서 쳐다보니 벌떡 일어나 수영장 안으로 들어와서는 멀쩡한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으니 겁나 웃겼겠지..,

나는 속으로 ‘그려, 신기하냐 나도 신기하다’ 라며 때 지난 남의 대사를 개사했다.

그리고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 언니 아직 안 죽었다 순발력이 아주 죽여~!' 라며 미친 척 몸을 움직였다.


남편은 그래도 다행 이라며 머리는 땅에 안 닿는 거 자기가 확실히 봤다고 떠들어 댔다.

'이런 눈치를 국 끓여 먹은 인간 같으니라고...'

영화나 드라마 보면 계단 같은 곳에서 여주가 넘어질 듯 말 듯 할 때 남주 또는 서브 남주가 빛의 속도로 달려 와서는 떡하니 뒤에서 받아 주던가 붙잡아 주던데 튼실한 팔다리 놔두고 '어 어!' 라며 입으로만 붙잡아 준 남정네는 지가 눈치가 없다는 것도 모른다.

Kurhessen Therme 온천 수영장 홈페이지 에서 가져온 사진 입니다.그날 저 동그란 월플 들어갔다 나오다가 그앞에서 자빠졌답니다

화려했던? 온천 수영장 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남편과 각자 씻고 (사우나는 여성 전용을 빼고는 모두 남녀 혼합인데 비해 수영장은 샤워장과 화장실 각각 남녀로 나뉘어 있다) 옷 갈아입고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

보통은 2시간 꽉꽉 채워 간당 간당 하게 나가는데 그날은 몸과 마음의 상태가 버티기 어려워 조금 일찌감치 끝냈다고나 할까

시간적 여유도 있었고 워낙 아침 일찍 간 데다가 남들 들어올 때쯤 나가는 상황이라 샤워 실도 텅텅 비어 있었다.

보통 주말 그시간에 아기들 동반한 엄마들이 많아 큰 가방들을 올려놓고 있어 가방 놓을 곳도 마땅치 않을 때가 많은데 말이다.

신나게 씻으며 훑어 보니 다행히 어디 긁히거나 멍든 자국은 없어 보였다.


탈의실도 골라 잡아 캐비닛 바로 앞으로 들어갔다.

씻고 나니 길고 긴 생머리가 젖은체 치렁 거렸다. 수건으로 둘둘 말아 얼른 나가서 말려야지 하고는 잊은 것 없나 찬찬히 잘 챙겨 보았다.

멘붕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혹시라도 뭐라도 흘리고 갈까 싶어서였다.

다른 때 보다 여유 있게 마무리하고 나갔더니 남편은 이미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탈의실과 캐비닛을 지나면 바로 앞쪽에 거울 들과 헤어 드라이기 들이 여기 저기 비치 되어 있다.

수영장마다 다르지만 어느 곳은 드라이기를 동전 넣고 하도록 되어 있는 곳도 있고 또 어느 곳은 찬바람만 슝슝 나오는 드라이기가 몇 군데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이곳은 마치 화장실에서 손 말리는 건조기에서 내는 소리가 나는 커다란 드라이기 통이 곳곳에 달려 있다.

사람마다 키가 다르니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손잡이가 달려 있고 벽에 붙박이로 붙어 있는 통에서 나오는 바람결에 머리를 말리는 것이라 머리카락 구석구석 말리려면 드라이 기를 집에서 가져오던가 아니면 머리를 사물놀이에서 상모 돌리듯 돌려 대야 한다.  


거울 앞자리가 비어 있고 주변에 사람이 없어 긴 머리를 미친 듯이 돌려 대고 쾌지나 칭칭 나네 를 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내 앞으로 바짝 들어와서 섰다. 눈에 들어온 신발을 보니 아저씨 같았고 가방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머리를 말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옆 좌우 할 것 없이 모두 비어 있는데 다른 곳을 두고 왜? 굳이 여기서? 거울 앞에 설치되어 있다 뿐이지 거울을 등지고 있는데 뭐 하게? 꼭 여기여야 할 이유가 있나? 싶어 기다리거나 말거나 여유 있게 머리를 말렸다

그러데.. 시간이 지나도 그 신발이 사라지지 않았다

 즉슨  앞에  있던 아저씨가 꿎꿎하게 서있다는 이야기다 왜지? 싶어 고개를 들어 정면을 쳐다봤다.


미역 줄거리 같이 까맣고 길게 풀어헤친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대며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던 여자가 갑자기 쳐다보니 놀랬는지 아저씨는 훔칫 한발 뒤로 물러 섰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뭐니? 하는 뜻을 담아 빤히 쳐다봤다.

왜냐하면 그 남자가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서 있기만 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데 오깃발 세우는 1인)


내가 쳐다보자 그제야 주춤주춤 하던 남자는 내게 "저기요 발좀 올려 보세요!"라고 했다.

"네?" 라며 나도 모르게 두꺼운 겨울 부츠가 신겨 있는 오른쪽 발을 들어 올렸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50유로짜리 종이돈이 내 발밑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오 마이 가뜨 이게 웬일인가 말이다.내 인생에는 공짜라는 것이 잘 없다 하다못해 애들 데리고 간 축제에서 한 뽑기에서도 상품을 타본 적이 없고 빙고나 게임을 할 때도 이겨 본 적이 없다.

설날부터 자빠진 것이 불쌍해서 상을 내렸단 말인가?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시내에서도 5유로는커녕 50센트도 발견한 적 없거늘..

50유로 종이 돈이 내 발밑에 누워 가져가세요 하고 놓여 있었다니 말이다.

한화로 하면 약 6만 8천 원 정도 한다. 한국에서도 육만 원 칠만 원이 적은 돈이 아니겠지만 이 동네에서 50유로는 꽤 큰돈이다.

나는 웃으며 그 아저씨에게 "고마워요"라고 했다. 그런데 이분이 갈 생각을 안 하고 내 앞에서 알짱 거리며

"이거 당신 게 맞아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 했을 것이다. 입구에서 들어오던   좋은 아저씨가 멀리서도 눈에  들어온 돌바닥에 떨어진 갈색에 빛나는 50유로를 포착하고 여유롭게 들어와 주우려 했다.

마치 밀림의 사자가 먹잇감을 노리고 살금살금 다가오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웬 귀신 같이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췬 듯이 머리를 흔들어 대던 여자가 발로 딱 밟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오호통재로다 이걸 워쩐다? 고민하며 그 앞에서 죽 때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서있어도 여자가 발은 까딱도 하지 않고 머리만 미친뇬처럼 흔들어 대니 별수 없이 발좀 올려 보라고 말한 거다.

그런데 그 빙구 같은 여편네가 그 귀한 50유로를 바로 주워 들었다.

그러니 그냥 갈 수 없었던 거다 모든 아구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아저씨를 잠시 기다려 보라고 하고 혹시라도 내가 정신이 없어서 흘렸나 확인을 하고는

"제것 아니네요 그런데 당신 것도 아니잖아요 이건 제가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잘 전달할게요! 누군가 잃어버린 사람이 찾으러 올 수도 있잖아요!"라고 했다.


그 순간 황당함과 황망함이 섞인 표정의 아저씨는 아쉽지만 별수 없음을 가득 얹은 썩소를 남기고 수영장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매표소 직원에게 어디서 발견했는지를 나긋나긋하게 알려 주고 그 50유로 를 사뿐이 넘겨주었다.

내손에 잠시 있다가 떠난 귀한 그 아이는 그렇게 온천 수영장 직원이 잃어버린 물품 신고 하는 곳에 기재하고 보관되었다.

사실 그 순간 '아저씨 것 아니잖아요!' 로 끝내고 말았어요 했는데 왜 굳이 직원에게 가져다주겠다고 이야기했을까 조금 후회도 되고 그 유혹스런 지폐의 촉감에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눔의 주둥이가 너무 정직한 것을 어쩌겠는가?

내 살다 살다 길바닥에 떨어진 돈을 그것도 이렇게 큰돈을 주워 보기는 처음이다. 비록 몇 분 동안 만 내 손에 머물다 갔지만 말이다.


그날 바닥에서 주운 추억속의 50유로 지폐입니다 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설날에 수영복 입고 실려 갈 뻔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