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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23. 2023

설날에 수영복 입고 실려 갈 뻔했다


한국은 까치 까치설날

음력이 없는 독일은 설 명절은 없다. 만약 이 동네 에도 설날이 있다면 까치는 만나기 어려워도 새까맣고 커다란 까마귀는 수시로 만나니 깍 깍 설날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올 설은 다른 해에 비해 조금 일찍은 감은 있으나 일요일 이라서 한국에 전화드리는 것이 시간상 잘 맞았다.

설 명절이 평일이었던 다른 해 에는 일 하느라 퇴근해서 전화를 드리면 한국은 이미 오밤중이어서 그 전날 새벽까지 잠을 미루고 기다렸다 한국시간 아침에 맞춰 전화를 드리고는 했었다.

그래봐야 명절이라고 꼴랑 전화 드리는 거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보니 늘 미안한 마음만 한가득 안고 말이다.


이번엔 여기 시간으로 일요일 이른 아침 한국에서는 낮시간에 설 인사겸 전화를 드렸다.

한국의 가족 들과 통화를 하고 나면 언제나 그립고 명절 때 함께이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고는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필 자리 잡고 살고 있는 곳이 고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한국의 가족 들과의 통화에서 모두 건강하자며 올해는 꼭 만나자는 약속을 다짐 처럼 했다.

우리는 딴딴하게 굳은 몸도 마음도 풀기 위해 온천 수영장으로 향했다.

사실, 이런 날 괜히 집에 있으면 허전한 마음에 기분이 멜랑꼴리 얄딱구리 해 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남편은 사우나를 좋아해


이른 아침 한국에 전화를 드린 덕분에 모두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것 같은 독일 일요일 아침의 뻥뻥 뚫린 도로를 지나 온천 수영장에 도착했다.

지난번 보다 주차장에도 자리가 더 넉넉했다. 역시 일요일 이른 아침이 온천 수영장 가기 딱인 시간이지 싶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비어 있는 탈의실도 쉽게 찾았고 옷을 넣어 둘 캐비닛도 비어 있는 곳이 많아 탈의실에서 나와 가방과 옷 들고 여기저기 다니지 않아도 바로 앞에 골라 잡아 옷을 넣고 걸었다.


캐비닛 문에 213번 번호가 보이는 빨간색 팔찌모양의 열쇠에 노란색 동그란 칩을 꽂아 돌려 잠그고 그 빨간 팔찌 모양의 열쇠를 가방 한구석에 잘 넣어 두었다.

빨간색 팔찌 모양의 열쇠 가운데 들어간 요 노란색 동전 모양의 칩은 캐비닛 이용뿐만이 아니라 수영장 안에 레스토랑을 이용할 경우 지출 내역을 찍어 두는데도 사용된다.

또 무엇보다도 사용 시간이 체크가 되어 있어 시간이 오버되면 돈을 더 내야 하고 들어 가고 나오는 것 을 티켓 대신 사용되는 것이라 잃어버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


*수영장 과 사우나 사진 들은 Kurhessen Therme 홈페이지 에서 가져 왔습니다.

온천 수영장 안에는 아침잠 많지 않은 노인들 몇 분과 부지런히 나선 몇몇 사람들만 있어 텅 빈 듯 한가 하니 좋았다.

수영장 벽면에 붙어 있는 가방 놓는 곳도 빈 곳이 많았다. 남편 가방 옆 칸에 내 가방을 밀어 넣고 벌써 탕? 속에 들어가서 손을 흔들고 있는 남편에게로 갔다.


이 온천 수영장 안에는 수영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넓은 풀이 안에 하나 밖에 하나 있고 중간중간에 동그란 목욕탕처럼 생긴 월플이 온도와 위치 다르게 나뉘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따뜻한 소금 온천 풀이 가장 오른쪽가장자리에 네모 반듯하게 위치해 있고 그 옆에는 누워 쉴 수 있는 비치 의자들이 나란히 있는 휴게실이 있다.


남편이 손을 흔들고 있던 곳이 바로 그 소금 온천 풀이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누워서 둥둥 떠 있기도 하고 구석 여기저기에 비치되어 있는 뽀글뽀글 물마사지를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사부작사부작 천천히 수영을 하며 오가기도 한다.

온도와 소금 농도가 높다 보니 벽면에 맥시멈 20분을 권장한다는 푯말이 간판처럼 붙어 있다.



그 권장 시간이 지나기 전에 "우와 뜨뜻하니 좋다!"라고 흐물흐물 해 지고 있던 남편이 잠시 사우나를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렇다 온천 수영장은 온리 수영장만 이용할 사람, 사우나만 이용할 사람, 그리고 두 가지를 다 겸해서 이용할 사람으로 나누어 표를 끊을 수 있다.

즉 원하는 대로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 나는 수영장만 두 시간 이용하는 것으로 끊었고 남편은 수영장과 사우나 모두 이용하는 것으로 끊었다.


가격차이는 1유로 50 밖에 나지 않지만 나는 사우나를 굳이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사우나는 여성 전용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우나 안에서는 탈의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수건 하나 들고 들어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홀딱 벗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영 거시기 하다.

남편은 이른 시간이라 사우나 안에 사람이 없는 곳도 있을지 모르니 함께 가지고 꼬셨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예전에 그 꼬임에 넘어가 들어갔다가 사람들 줄줄이 들어오는 바람에 대략 난감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 자유로이 훌훌 벗고 있는 곳에서 혼자 수건으로 꽁꽁 동여 매고 앉아 있으려면 가뜩이나 더운 사우나 안에서 더 더워진다.

(독일 사우나 이야기는 다음번에 더 자세히 아쉬워하지 마실 지어다~!)


남편이 사우나를 간 사이 나는 홀로 여행을 온 사람처럼 여기저기 월플들 사이를 오가며 신나게 혼자 놀았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비어 있는 곳 중에는 이전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곳도 있었다.

아주 자그마한 월플인데 아마도 작년 여름 인가 여기 온천 수영장을 싹 다시 뜯어 레노베이션한다고 지역 신문에도 났었는데 그때 새로 만든 곳인 것 같았다.


설날, 수영복 입고...

따뜻한 물이 뽀글뽀글 나오는 곳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마치 전용 월플 같았다.

그 왜 영화나 드라마 보면 있는 것들 집에 프라이빗 하게 돈지랄하며 설치한 그런 공간 말이다.

뭐 전용이 별 건가 혼자 쓰고 있으면 전용이지 해가며 따뜻한 물 안에서 수중 발레도 했다가 뒤집어도 보았다가 갖은 꼴값을 떨고 있을 때 저 멀리서 가방 안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있던 어디서 많이 보던 실루엣이 눈이 들어왔다.


군데군데 피부가 빨갛게 익은 남편이 사우나에서 돌아왔다.

남편과 전용 쪼꼬미 월플 도 들어갔다가 수영을 하러 가기로 했다 수영장 안은 월플 이나 소금 풀보다는 조금 물온도가 낮은 편이다.

들어가기 전에 커다랗고 뽀글이 물발? 이 제일 센 월플에서 몸을 가볍게? 더 풀고 들어 가자고 우리는 제일 큰 월플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생애 이런 일을 겪게 되리라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이다.


월풀 안에서 옆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밖으로 나가고 우리도 이제는 몸은 그만 풀고 수영을 좀 해야 쓰겠다며 일어났다

안으로 있는 작은 계단들을 올라갔다 밖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다시 내려가는 타이밍이었다.

저쪽 벽면 내 가방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수영을 하러 갈까? 아님 그냥 갈까? 생각하던 순간

발 밑이 뭔가 물크덩 하더니 나는 어느새 수영장 천장을 보고 들어 누워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를 인식하기도 전에 뒤쪽에서는 웬 아주머니와 그에 딸로 보이는 젊은 처자가

그리고 파란색 위아래 유니폼을 입고 있는 Bademeister 바데 마이스터라 불리는 독일의 수영장 안전요원이 앞쪽에서 뛰어 왔고 옆쪽의 탕? 안에서 남편이 후다닥 나와 내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그렇다 살다 살다 수영복 입고 발라당 댓 자로 자빠져 보기는 생전 처음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뭣도 아닌 곳에서 개구리처럼 웃긴 포지션으로 오버스럽게 넘어지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그저 코믹스러운 장면이라 생각했지 사람이 진짜로 그렇게 우스꽝 그런 모습으로 넘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찐하게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

그 힘든걸 굳이 내가 해냈다 그것도 설 날에 헐벗은? 모습으로 젠장~~!


넘어질 때 분명 머리가 땅에 닿지는 않았다 정신은 멀쩡 했다.

그러나 지나가던 사람들도 흘끔거리고 짧은 시간 많은 시선을 동시에 받다 보니 그냥 기절 한 척할까? 싶었다.

지나가던 아이가 지네 엄마한테 "저 아줌마 누워서 뭐 해?"라고 묻는 소리가 귓가를 스치자 세상 쪽팔렸다.


"혹시 갑자기 다리가 풀리 셨거나 어지럼증을 느끼 셨나요?"라고 걱정 스레 물어 오는 바데 마이스터(수영장 안전요원) 에게 남편은 "아니요 이 사람이 남의 슬리퍼를 밟아서 혼자 자빠졌어요! 제가 다 봤어요 "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 아까 그 물크덩 한 것이 남의 슬리퍼였군...

이런 졸라리 정직한 남편 같으니라고…,

튼실한 피지컬 덕분에 몸약한 여자 코스프레는 애시당초 못한다 해도

주접스레 혼자 자빠진 여자가 되었다. 슈발~!

하필 이다지도 자로 뻗다니... 설날에 굳이 수영복 차림으로 병원에 실려  뻔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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