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낮기온이 30도가 훌쩍 넘어가고 땡볕 받은 머리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해가며 혼미해지고 있었다
잠시 세워 뒀던 자동차를 타려니 안이 후끈하다 못해 으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땃땃하게 덥혀진 자동차 안은 불가마가 따로 없었다. 마치 조만간 우리도 날 더운 날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 흘러내릴 것 같은 날이었다.
우선 안의 열기를 식히려 급하게 창문을 열고 차가 출발하자 평수 넓은 얼굴로 스쳐 가는 신선한 바람은 저절로 콧평수를 넓게 했고 조금 더위가 가시려 하고 있을 때였다.
남편이 앉은 운전석 앞쪽 킬로미터가 나오는 계산기 옆에서 삑삑 하는 소리와 함께 알람이 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그저 자주 울리는 알람 중에 하나 일거라 생각했다 가령 전조등 한쪽이 나갔다거나 자동차 워셔액을 채워 넣어야 한다 거나 하는 소모품 들에 관한 알람 말이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왠지 알람이 넘 자주 울려 대는 것 같았다
수시로 삑삑 하고 울려 대는 소리는 괜스레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뭐지?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터오일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알람이었다.
어? 우리 모토오일 채워 놓은지 얼마 안 됐는데..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는 2주 전에 카센터에서 타이어를 여름용 타이어로 바꾸면서 모터오일도 체크하고 가득 넣어 두었기 때문이다.
그게 2주 만에 바닥이 났을 리도 없고.. 그럼에도 모터에 뭔가 이상이 생기면 큰일 나므로 바로 카센터에 차를 맡겼다. 기술자 아저씨는 일단 열어 보고 나서 연락을 주겠노라 했다.
모토오일을 전체적으로 바꿔 야 할 수 도 있고 필터를 갈아야 할 수도 있지만
그날 늦게 라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이다.
그런데...
당일에 찾을 수 있을 것이라던 자동차는 그날도 그다음 날도 찾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 출퇴근하는 것도 집에 필요한 것 장 보는 것도 전차 타고 다니면 되고 가까운 곳에서 간단하게 장을 보면 되니 며칠 상간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사이 한국요리강습이 끼여 있다는 거였다.
그것도 이번강습은 여름학기 마지막 강습이라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산더미였다.
거기다가 내년도 문화센터 프로그램 책자에 사용될 사진을 찍기 위해 포토그라퍼가 오기로 되어 있는 날이었다
왜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소리가 입안을 맴돌았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에 짜증을 내 보아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스트레스만 더 쌓일 뿐...
일이 계획 대로 진행 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줄일 수 있는 일들을 줄여 나가는 것이다.
아쉽지만 나는 사진발 잘 받을 수 있도록 화려하게 세워 두었던 강습 메뉴를 축소하고 아울러 장 보아야 할 식재료들을 줄였다.
그리고 고민 끝에 강습에 필요한 식재료 들을 시내에 있는 마트와 아시아 식품점에서 바로 구입해서 문화센터로 나르기로 했다.
다행히 문화센터가 시내 한복판에 있어 마트도 멀지 않고 아시아 식품점도 가까운 곳에 있다.
한국 같으면 마트에서 어디로 배달해 주세요 하면 될 테지만 독일에서는 알아서 샐프로 날라야 한다.
물론 요즘은 팬데믹 이후로 독일도 배달 서비스가 많이 달라지고 있어 마트에서도 배달해 주는 곳이 늘었지만 앱에서 미리 주문해 놓은 것에 한한 곳이 많기 때문에 갑자기 급한 경우 쉽지가 않다.
게다가 강습처럼 시간 내에 필요한 것이 모두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경우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원하는 모든 식재료를 한 번에 다 배달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니 힘들어도 몇 번이 되었던 샐프로 실어 날라야 무사히 강습 준비를 마칠 수 있을 테다.
나는 쭉쭉 늘어 나는 편한 반바지에 운동화 신고 전투? 준비를 마친 체 집에 시장 볼게 많을 때 가끔 동네에서 끌고 다니던 바퀴 달린 시장 가방을 끌고 아침 일찍 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가방 안에는 집에서 미리 준비해 둔 소금, 설탕, 물엿, 참기름, 간장,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 등의 양념들과 식칼, 식가위, 뒤집게 등을 가득 담아서 덜덜 거리며 끌며 전차를 타기 위해 길을 걸었다.
바퀴는 달렸으나 누가 봐도 시장 가방인 데다 핸디 캐리어처럼 핸들링하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나 언덕길이나 계단은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냥 걷기도 힘든 언덕길에서 날은 덥고 가방은 무겁고 내 숨소리가 돌비 사운드로 들리도록 숨이 헉헉 찼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피식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생각해 보라 누군가 내 모습이 수상해 보여 가방 좀 봅시다 한다면 식칼에, 식가위 이런 연장? 들이 줄줄이 튀어나올 테니 말이다.
이미 문화센터 안에도 신선로부터 비빔밥용 그릇, 전골냄비에 냅킨, 일회용 젓가락까지 필요한 물품들을 강사 전용 서랍장 내 자리에 차곡차곡 정리해 가져다 둔지 오래다.
그러나 매번 구입해서 사용하는 기본양념 들과 평소 늘 사용해서 손에 익은 식칼과 식가위, 뒤집개 등의 연장은 강습 때마다 가지고 다닌다.
평소 자동차에 싣고 다닐 때는 괜찮았는데 왠지 핸드커리어처럼 생긴 가방 안에 넣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를 활보? 하자니 거시기 하긴 했지만 외모가 안전? 하게 생긴 덕분에 다행히 가방 좀 보자는 경찰은 없었다.
시장 가방을 덜덜 끌고 시내를 관통해서 문화센터 정문을 통과할 때였다.
정문 프런트에는 못 보던 경비 아저씨가 앉아 계셨다.
여기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 보니 사무실 직원들 뿐만 아니라 경비 아저씨 들 청소 아주머니들...
그 건물에서 사실상 모르는 얼굴이 거의 없다.
그런데 낯선 분이 앉아 계셨다.
아마도 제일 오래된 아저씨가 정년퇴직 하시고 새로 오신 분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분도 나를 처음 보셨으니 예의 그 질문을 하셨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는 웃으며 "네 제가 여기 문화센터 요리 강사예요 오늘 밤에 강습이 있어서 준비하느라 왔어요"
아저씨는 잠깐 꿈틀 하시더니 알았다며 들어가 보라고 하셨다.
가방을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거울 안에는 자기 키와 비슷 해 보이는 시커먼 가방을 들고….
더워서 땀범벅에 틀어 올린 똥머리는 헝클어져서 여기저기 삐죽삐죽 솟았고 얼굴까지 빨개진 전투적인 아낙네가 넋 빠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헐~나였어도 뭔 일로 왔는지 물어봤겠네 싶었다.
집에서 가져간 것들을 실습주방에 가져다 두고 검은색 시장 가방을 밀고 다시 시내 마트로 향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강습을 위한 채소들을 사야 했다.
마트는 시내 쇼핑센터 지하에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채소가 다른 곳 보다 상태가 더 좋을 때가 많고 유기농 가짓수도 많으며 무엇보다 버섯 종류 많다.
강습 메뉴 중에 두부 버섯 불고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마트로 들어가기 직전 혹시 그 안에 식구들에게 전화 온 거 있나 보려고 가방을 열었는데 그 안에 있어야 할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엉? 어딨지? 하다가 가방에서 꺼낸 양념들과 식재료 들 정리해 두고 사진 한두 장 찍다가 주방 옆 또 다른 방에 두고 온 것이 떠올랐다.
그 방은(위에 사진) 이론 수업을 하는 교실 겸 함께 만든 요리를 시식하는 식당이다 그곳의 탁자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온 기억났다.
이런 씨이앙 하고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 뙤약볕에 또 그 길을 가서 핸드폰을 들고 다시 오려니 쓴 물이 올라 오려했다.
실습 주방이야 열쇠로 잠가 두고 왔고 강습 시간 외에는 열쇠가 있는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지만…
같은 강사들 중에 가끔 강습 하루 나 이틀 전에 미리 준비해 둬야 할 것들 가져다 둔다고 들리는 사람들도 있고,사무실 직원들도 오갈 수 있고,또 청소 아주머니 중에 오후 근무 하시는 분이 강습 전 실습실 정리 정돈하신다고 오실 시간이 다 되어 가기도 했다.
혹여라도 다른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해서도 안되고 내가 실수로 두고 와 놓고 괜히 다른 사람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별수 없이 빠른 시간 내에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싶었다.
덥지... 지치지.. 발은 무겁지... 짜증은 머리끝까지 나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듯 하지...
입에서 띠불... 띠불... 이 주문처럼 쏟아졌다.
돌아 나오는 길에 마침 마트 앞 지하 이벤트 장에 히어로 트레이닝 이라는 베트맨 컴퓨터 게임과 가상현실 안경 체험장이 설치 되어 있었다
그곳에 검은 망토는 어디다 가져다 버리고 빨간 쫄쫄이 내복만 입은 커다란 베트맨 피규어가 마치 나를 보고 비웃고 있는 듯했다.
(*울 애독자님 께서 번개맨 이라 알려주심
그때까지 계속 헐벗은 베트맨으로 생각함 ㅋㅋ)
나는 그피규어를 째려보며 "뭐 뭘 봐 더운 날 몸에 붙는 쫄쫄이 입고 있는 주제에!"라고 했다가
"야,너라도 좀 도와주면 안 되겠니? 지구를 지키는 일은 아니다만 이 가녀린? 아줌마 대신에 네가 번개 같이 뛰어갔다 오면 안 될까?"했다.
말없이 묵묵히 서서 언제든 달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히어로 피규어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듯 보였다.
"보자 보자 하니 원~ 지럴 염병을 하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이 보며 좋아라 하는 겁나 빠를 것처럼 보이는 히어로 피규어를 애들처럼 부러운 눈으로 스캔 했다
쇼핑센터 안에 있는 마트와 아시아 상점을 오가며 세 시간 만에 강습에 필요한 모든 식재료를 문화센터로 실어 날랐다.
미션 클리어~~!
하도 검정가방 끌고 왔다 갔다 하니 새로운 경비 아저씨는 왜 저러나 하는 눈길로 쳐다보시길래.,,
자동차가 공장에 들어가 있어서 강습할 식재료들을 직접 들어 날르고 있다고 하니
내가 검정 가방을 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박수갈채로 파이팅을 보내 주셨다.
마라톤도 아닌 시장 봐다 나르며 오가는 걸로 박수받아 보기는 처음이다
물론 몸은 이미 철인삼종 경기를 마친 사람 저리 가라로 너덜너덜해진 상태 였지만 말이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