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Sep 14. 2023

몸살감기엔 소고기 미역국

끓일수록 진한 국물맛은 오랜 친구를 닮았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코맹맹이 목소리로 남편이 말했다

“콧물이 나고 목이 좀 부은 것 같아!”

비상등이 켜졌다 그렇게 조심했건만...


혹시 코로나 인가? 독일도 여전히 코로나 환자들이 생겨 나고 있기 때문이다

급하게 자가 진단키트를 꺼내 들었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 나왔다


그럼 환절기 감기 인가?

독일도 요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어 아침저녁은 온도가 뚝 떨어지고

낮기온은 쭈욱쭉 올라가 일교차가 시소를 타고 있다


그럼 지난주 감기로 고생한 막내한테 옮았나?

콧물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기관지 염으로 갔던 막내의 감기와 증상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사실 그간 무리 하기는 했다.


폭염경보를 뚫고 한국에서 온 가족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덕분에 아이들이 가보고 싶어 하던 소위 핫플이라는 핫플은 이래저래 두루 섭렵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밤중까지 에너지가 남아돌던 십 대 이십 대의 아이들과

50대 후반으로 가고 있는 우리의 체력은 여러모로 달랐다.


이러다 몸살 나지... 싶게 다녔어도 다행히 한국에서는 멀쩡한? 상태로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그간 누적된 피로와 매일 하는 일이 병원에서 감기 또는 코로나 걸린 환자들 만나 진료 하는 것이니 감기가 걸려도 이상할 것이 없고 몸살이 났데도 그럴만했지 싶다.


그렇게 하루를 일주일처럼 전투? 적으로 보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아이들과 추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언제나 속절없이 우리 곁을 빠르게도 스쳐 지나간다

작디작던 아이들도 언제 이렇게 컸나?

싶게 자라났고 어느새 하나 둘 독립을 했다.


이번에 큰아이가 일가친척들 앞에서 여자친구의 존재를 확실히 공개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여자 친구가 있다 정도였는데 이번엔 사진도 보여 주고 자세한 소개를 하는 걸 봐서는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싶었다.

언젠가는 아들 입에서 "이제 우리 결혼해야겠어요!" 소리가 나와도 헉? 하고 놀라지 않도록 말이다.


따지고 보면 놀랄 것도 아니다...

20대 후반으로 가고 있는 직장인 아들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거야 반갑고 감사한 일이고 당연한 수순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하나 둘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나면 가족 모두 함께 여행은 점점 간단치 않아 질 테다.

그런 마음이 우리의 여행본능을 부추겼고 삼복더위에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전주, 부산, 포항 할 것 없이 돌아다닐 이유를 얹어 주었다.


남편은 아무래도 감기 몸살이 걸린 듯하다.

우선 목이 아프다는 남편을 위해 각종 따뜻한 티와 감기에 필요한 비타민들을 주고 국을 기로 한다.


냉장고를 확인하며 된장국을 끓일까? 갈비탕을 끓일까? 하다

남편이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이기로 한다. 이번에 한국에서 가져온 마른미역을 잘라 맑은 물에 불린다.


마른미역은 이 동네에서도 살 수 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미역은 다르다

챙겨준 이들의 마음이 살며시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행에서 가족들과 일가친척들 위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만나고 싶은 친구들과 지인들을 다 만나려 욕심?을 부릴 수는 없었다.

잠깐? 다니러 간 우리도 우리지만 한국의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서로 일정을 맞춰 만난 다는 게 애당초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지인들께는 연락만 드리고 꼭 만나야 할 남편 친구 한 팀과 내 친구 한 명은 어떻게든 만나고 오자 했는데 다행히 만날 수 있었다.


참 신기하게도 오래된 친구는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본 듯 어색하지가 않다.



오염수 문제가 나오기 전에 미리 장만해 두었다는 귀한 다시마와 미역을 중국에서 엄청 힙하다는 반짝이 에코백에 넣어 주던 남편의 친구 부부는 아주 오래전 우리가 결혼 전에 만났던 유일한 친구들 중에 하나다

그 옛날 지금은 사라져 버렸을지 모를 고갈비 골목에서 함께 고등어구이에 소주잔을 기울이던 친구 부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짧지 않은 세월을 만나지 못했고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왔지만 마치 함께였던 그 예전처럼 무리 없이 대화가 이어졌고 (내가 하도 떠들어 대서 귀에 피가 났으려나?ㅎㅎ)

변함없는 마음들이 빼곡히 전해져서 반갑고 좋았다.


잘 불려진 미역을 깨끗이 헹궈내서 미리 꺼내둔 커다란 국솥에 넣고 그 위에 마늘과 잘게 자른 소고기를

한 움큼 얹는다.

원래는 참기름 넣고 달달 볶았었는데...

참기름이나 들기름에 온도를 올리는 게 몸에 좋지 않다고 해서 국간장 진간장만 넣고 볶는다.


물을 넣고 뭉근히 끓인 후에 간을 맞추면 될 터였다.

미역국을 끓이며 한국 다녀온 생각... 친구들 생각... 을 하다 보니 구수한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진다.

한 숟가락 간을 보니 이대로도 좋다.


밥솥에 보글보글 뜸 들이는 소리가 난다.

미역국에 소금 대신 멸치액젓과 참기름을 한 숟가락씩 넣고 간을 맞춘다.

훌륭하다.


고슬 고슬 기름이 짜르르한 새로 지은 밥을 주걱으로 살살 저어 두고는 불 줄이고 끓이던 미역국의 간을 다시 한번 본다.

아까보다 국물 맛이 깊어졌다.

미역국은 끓이면 끓일수록 국물 맛이 진해 진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남편은 "아.. 좋다... 목이 확 풀리는 것 같아! "라며 연신 감탄사를 뱉어 내며 밥 한 공기를 미역국에 슥슥 말아 가쁜 이 비워 낸다.

내일 이면 몸살감기도 괜찮아질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텃밭에서 나온 호박 야채 그라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