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Nov 24. 2023

김떡순 있다고 왜 말을 못 해?

한국 분식점에서 생긴 일...


하늘에서 마치 은행잎 비가 쏟아져 내린 듯...

아직 노랗게 물들지 못한 초록의 은행잎 들과 노란 은행잎이 뒤섞여 연두빛깔의 길을 내어 주던 주말이었다.

딸내미와 점심을 먹기 위해 오며 가며 보기만 했던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야채김밥, 참치김밥 해서 김밥 두 줄에 어묵꽂이를 시키고 떡볶이에 순대를 더하려니 직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손님 그럴 바에는.. 하며 말을 하다 마셨다.

나는 "네? 뭐라고 하셨죠?"라고 되물었다.

분명 한국말이지만 상대가 조금 빨리 말하거나 낮게 중얼거리듯 하면 종종 못 알아듣고는 한다.


뒤쪽으로 각자의 위치에 서 있던 다른 아주머니들의 눈치를 보는 듯 한번 쓰윽 쳐다보던 그 아주머니는

 "아니에요!" 라며 말을 얼버무리셨다.


뭐지? 싶어.. 무언가 석연치 않았지만 먹을 것에 정신이 팔린 나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딸내미가 먹고 싶어 하던 소떡소떡까지 더하고 나니 분식으로 한상 가득히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자주 꺼내 들던..

독일에서 이렇게 차리려면..으로 시작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양이 좀? 되어 보였지만 아침도 안 먹고 다니고 있던 터라 둘인데.. 어떻게 되겠지..

하며 분식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한참을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며 딸내미와 요것조것 입속에 집어넣으려니 학창 시절 방과 후에 친구들과 몰려 가던 떡볶이 집이 떠올랐다.

마냥 아이 같던 딸내미가 어느 날 다 자라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 친구처럼 함께 돌아다니며 분식을 먹고 있노라니 감회가 새롭고 새삼 찌르르한 것이 감동스러웠다.


한국의 어느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딸내미는 주로 평일 에는 기숙사와 학교 안에 있는 학생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는 것 같았다.

그러니 바깥 식당의 밥맛이 제법 마음에 들었던지 신나게 함께 먹어 주었다.


그런데 둘이 그렇게 해치우고 있어도 여전히 음식이 남아 있었다.

~! 우리가 간과  것이 하나 있었다 탄수화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뱃속 그득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았던 분식 몇 가지를 아깝지만 남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음식이 남아 있던 접시들을 가져다주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멋쩍은 웃음을 날리며 "정말 맛있었는데 양이 조금 많았어요!"

라고 했다

직원 아주머니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웃음을 머금으며 "손님이 원체 많이 시키시기도 했어요"라고 했다.

내가 너무 식탐을 부렸나? 하는 생각을 하며 휴지통에 사용한 젓가락 등을 버리려는데 바로 등뒤에서

들려오던 한마디에 나는 그만 아하! 하고 무릎을 치고 말았다.


그 말이 무엇인고 하니 혼자 온 듯 보이는 어느 젊은 아가씨 손님이 "여기 김떡순 되지요?" 라며 "김떡순 하나 주세요"라는 것이 아닌가?

분명 메뉴판 에는 따로 적혀 있지 않았다 김떡순...

그러나 날 추운 날 안경에 서린 김을 닦아내면 선명히 앞이 보이듯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아까 그 직원 아주머니가 하려다 만 말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김떡순 이 무엇인가 김밥과 떡볶이와 순대를 골고루 조금씩 담은 메뉴가 아니던가

나는 왜 그걸 생각 못했지? 하며 역시나 인터넷으로 배운 신조어 들은 실생활에서 써먹을 새 없었다면 무용지물이구나 싶었다.

말로만 들었던 김떡순...

우리가 김떡순을 시키고 나머지를 더했다면 아마 음식도 남지 않고 분명 음식값도 적게 나왔을 것이다.


순간 기분이 묘했다.

그분은 우리가 딱 보아도 많이 묵게 생겨서 놔뒀을 수도 있고 실제로는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왠지 지난번 광장시장에서 한 아주머니가 하시던 말이 생각났다.

"요즘은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어요 그래서 저렇게 여럿이 와서 한두 개만 시켜서 먹고 가면 남는 게 거의 없어요!"라며 외국인 가족을 보며 이야기했었다.


그 가족들 입장에서야 시장에서 요것조것 맛보고 싶어 조금씩 사드시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물가가 너무 올라 재료값도 버거워진 자영업자의 고충과 고민을 살짝 엿보게 된 순간이었다.

그래.. 그래서였을 수도 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해가 되면서도 다른 구석에서는 못내 아쉬웠다.


물론 지금도 한국의 분식점 또는 식당의 밥값은 독일에 비해 엄청 착하다. 물도 공짜요 단무지나 김치도 셀프로 떠다 먹고 반찬도 리필이 되는 서비스 독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독일에서였다면 물부터 모두 각각에 맞는 비용을 따로 지불해야 하고 음료와 음식을 가져다주며 서비스를 해준 직원에게 팁(Trinkgeld)을 주는 것 또한 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내 추억 속 장면들을 때 묻은 앨범 뒤적이듯 꺼내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예전 우리가 분식점을 가던 그때는 주머니 얕은 학생들의 접시에는  푸짐히 담기던 떡볶이에 얹힌 정이 있었다.  

왠지 입맛이 씁쓸해졌다.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상황이 아쉬워 순진하게도 맑은 하늘에 대고 한참 지난 드라마 남의 대사를 읊었다. 됀쟝~!

"왜 말을 못 해! 이게 김떡순이다 왜 말을 못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