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Nov 28. 2023

30년 만에 한국 소주를 영접했다.

너 술은 좀 하니?


37년 지기 친구와 속초를 가던 날 우리에겐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하나, 거기까지 갔으니 내친김에 1박 2일 속초 여행을 한다.

둘, 속초에서 놀다가 저녁이 되기 전에 친구집으로 가서 친구 남편과 저녁도 먹고

친구네 집에서 하루 자고 1박 2일 여행을 채운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오기 전부터 친구는 어떤 게 좋겠느냐 물었다.


내 입장에서야 친구와 1박 2일 여행이어도 좋고 친구네 집에 가서 1박을 해도 좋았다.

단지 친구네 집에 가게 된다면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친구의 남편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러나 친구는 남편도 나를 본 지 오래되어 만나고 싶어 하고 오랜만에 친구 집에 와서 묵고 가는 게 어떻겠느냐 먼저 제안을 해 준 것도 남편이라 했다.


너무 고마운 제안이었고 한편 미안했다.

친구야 자주 못 만났어도 내가 편하겠지만 그 남편 입장에서야 마눌의 옛날 옛적 친구이지 사실 살면서 몇 번 만난 적 없는 낯선 아주마이가 아니겠는가

한국에 가서 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그렇게 마음 써준 것이 감사해 그냥 받아 들이 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제안 낼름 안받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그만큼 그날 친구 부부와의 시간이 내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따뜻한 추억 한자락 으로 남았다. (인석 씨~! 땡큐 해요~!)



주홍빛깔의 단감 같은 석양이 저 산너머로 지고 있던 시간 우리는 다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번엔 친구집을 향해 서였다.

올 때 보다 도로에 조금 차량이 많아진 느낌이었고 괜찮다고 하는 친구의 어깨는 굳어 보였다

왜 안 그렇겠는가 아무리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하루에 왕복 5시간 6시간을 계속 운전해야 하는 게

피곤하지 않을 수는 없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깐 쉬는 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혼자 그렇게 내리 몇 시간씩 운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터다.

그 피곤하고 힘든걸 친구는 오래된 친구를 위해 기꺼이 해 주고 있었다.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처음 탔던 것은 아니지만 무면허의 내가 보기에도 친구의 운전솜씨는 독일 아우토반에서도 날다람쥐 같이 달릴 것 같았다.


눈은 전방을 주시하며 가끔 운전을 개떡? 같이 또는 답답스레 민폐형으로 운전하는 운전자를 만나면

"이 싸람아 이럴 땐 비켜 줘야지!" 해가며 참견질도 하고 고상하게 쌍욕도 아끼지 않는 친구의 모습이 예전 학창 시절과 오버랩돼 조금 낯설기도 재밌기도 했다.

다른 운전자들이 들리게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던 것은 아니어서 그들이 들었을 리도 만무하고 알아먹었을 리 없지만 우리끼리는 충분히 그 상황이 너무 찰떡이어서 말이다.


그 와중에도 친구는 저녁은 무엇이 먹고 싶은지? 술은 좀 하는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친구와 함께 술을 마셔 본건 30년 전 일이다.

내가 한국에서 독일 오기 전이 마지막 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몇 년에 한 번 만났어도 남편 아이들 동반한 체 주로 함께 밥 먹고 헤어졌지 술을 마셔 본 적은 없었다.


친구는 그 옛날 맥주 한잔 놓고 고사 지내던 아이였다.

그 시절 한참 유행하던 생맥주 500을 시키면 몇 모금 마시고는 음 취한다 기분 좋네 하던 아이였고

그 이상 마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남은 술 해결사는 늘 나였고 말이다.

그런 친구의 입에서 "술은 좀 마시니? 주량이 어떻게 돼? "라는 이야기가 나오니 웃음이 나왔다.

그 친구가 술을 마시는 게 상상이 잘 되지 않아서였다.


나는 그 시절 산악부부터 여러 가지 동아리 모임을 하고 있던 터라 음주가무가 주말 행사였다.

당연히 맥주, 소주, 오이소주, 과일소주, 동동주 등 골고루 마실 때가 있었고 취했던 기억이 없으니 못 마시는 편은 아니었지 싶다.

물론 그 시절 유행 하던 오이 소주네 뭐네 하는 소주들은 마실 때는 입안에서 쓰지 않아 좋았으나

마시고 난 다음날 머리가 조금 아팠던 기억은 난다.

어쨌거나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셨던 기억도 없고 그렇다고 술을 아예 못 마셨던 기억도 없던 터라 내 주량이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독일 에서야 친구들과 또는 남편과 가끔 맥주 한잔 또는 와인 한잔 하기도 하지만 그건 반주처럼 한잔 또는 음료처럼 한잔이지..

왠지 우리의 술자리? 분위기랑은 달라 그것을 주량이라 이야기하기도 애매하다


예전에 재미나게 보았던 드라마 중에 술꾼도시여자들이라는 게 있었다.

드라마는 제목 그대로 도시의 직장인으로 사는 세명의 여자 친구들이 나와 줄곧 술 마시는 게 주였는데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며 이년 저년 하며 격의 없이 술을 나누어 마시며 삶을 나누는 그들의 끈끈하고 진한 우정이 부러웠다.


내게도 친구들도 지인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30년 가까이 살며 그것도 주를 세 번이나 바꿔서 이사를 다니다 보니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어려웠다.


드라마였지만, 마치 동네 마트를 가듯 너무도 자연스레 서로의 삶의 온갖 기억과 추억들을 함께 공유하며 술 한잔 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찐으로 부럽고 재밌어서 시즌 2까지 챙겨 보았다.

그렇다 보니 오랜만에 친구와 그런 분위기로 한잔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은근히 설레었다.


저녁 7시가 살짝 넘어갈 때 즈음 우리는 친구의 홈그라운드에 도착했다.

행정구역상 경기도에 속한다는 그 동네는 번화해서 그야말로 신도시였다.

동네가 온통 환하고 상가들도 다양해 주변에 주택들과 버스정류장만 덩그러니 있는 독일 촌구석에서 온 촌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가 도대체 워디여~!"


독일 촌년 눈에는 좌우지당간 신기한 것 투성이었는데..

그날밤 신기함의 향연은 끝이 없었다.

예전부터 한 미모? 하기로 유명한 친구 남편은 군계일학의 비주얼을 흩날리며 앞서서 우리를 고깃집으로 안내했다.

깨끗한 내부에 새로 오픈했다는 그 이름도 비싸 보이는 한우 고깃집이었다.


럭셔리한 고깃집에 앉아 더 놀라운 것은 술 한잔 제대로? 마시지 못하던 친구가

글쎄 쏘맥을 말지 뭔가 포즈가 어찌나 자연스럽고 프로페셔널하시던지....

게다가 소주는 병들고 회오리도 만들더란 말이다

이거 티브이 드라마에서나 보던걸 친구가 하고 있으니 놀랍기도 하고 자꾸 예전 모습이 생각나 여러모로 신기했다.


원래도 소주 파 라고 하는 친구 부부와 우리는 소맥에서 본격 적으로 소주로 갈아탔다.

소맥을 말고 계시는 친구도 신기하지만 소주를 꿀떡꿀떡 잘도 마시는 친구는 내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만 신기한 겐지.. 30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그들 부부는 같은 웃음을 머금고 서로 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친구의 연예인삘 나시는 남편도 예전엔 말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외모인데 말수도 없이 조용하니

조금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수다쟁이 친구와 오랜 세월 함께 해서 그런지 고기도 잘 굽고 말씀도 잘하더라 이 말이다.

아마도 친구 부부는 서로에게 좋은 점들을 나누었나 보다 원래 술을 잘하던 친구남편의 주량을 친구가 그리고 웃기도 잘하고 말도 자분자분 잘하는 친구의 밝음을 친구의 남편이 받은 것 같았다.

30년 세월이 그냥 가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 우리는 가족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여러 모로 다른 기량들이 늘고 있었다.


한국의 친구네 동네 새로 생긴 한우 고깃집~ 시작은 쏘맥 이였다!
독일 우리동네 아시아 식품점 주류 냉장고에서 종류대로 만나지는 한국 먹걸리,소주들..

독일 에도 요즘은 한국 소주들이 종류 대로 들어온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원한다면 언제든 소주를 마실 수 있다.

그런데 30년간 소주를 마신 적이 단 한번 없었다. 마실 기회가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이 셋 키우며 공부하고 일하고 정신없이 사느라 여유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지만

술은 그냥 마시는 게 아니질 않은가 함께 마실 사람과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친구남편이 구워준 한우를 향긋한 깻잎에 싸서 먹는 맛도 일품이었고 친구가 채워준 소주를 한 모금 넘기는 맛도 끝내 주더라는 거다.

말로만 듣던 술이 달다..라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는 홀짝홀짝 주는 대로 잘 받아 마시는 내 모습에 놀라고 나는 소주를 그 예전에 좋아하던 바나나

우유 드링킹 하듯 쭉쭉 마시는 친구의 모습에 놀랐다.

우리는 서로 "이야 이년 술 잘 마시는데~!" 라며 감탄했다.

그랬다 우리는 술좀 마시는 여자 들이였다.


그렇게 우리는 2차를 안주 거리까지 사들고 친구 집으로 가서 편안한 츄리닝 바람으로 앉아 새벽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의 시간을 만들어 주려 피곤하다며 먼저 자리를 뜬 친구 남편 덕분에 우리는 새벽 4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까지 소주잔에 사정없이 소주를 따르며 서로의 세월을 말았다.


우리는 소주  병을 거뜬이 거덜 내고도 아무도 취하지 않았다.

지금은 소주 술꾼? 이 되신 친구도 30년 만에 소주를 영접한 나도..

다음날 아침 일찍 말짱히 일어났다

 생애 가장 맛나게 오래 소주를 마신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럽의 유명 해변가를 무색하게 만든 아름다운 이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