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신발 사건
우리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독일에 살고 있다. 타향살이를 오래 하다 보니 나고 자란 곳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사계절을 제때 만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번 늦가을 한국행도 그런 의미에서 내게 더 특별했다.
유학생일 때도 공부하느라 아무 때나 집에 올 수 없었고 결혼해서 아이들 셋 낳고 키우다 보니 더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이 자라 학교를 다니고부터는 아이들 방학 때가 아니고는 움직일 수 없었다.
살면서 내 나라 내 땅 내 고향 이어도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는 게 그렇게 맘처럼 쉽지 않았다.
한국의 가을은 20년만 이다
이십 년 전 뜻하지 않은 일로 허둥지둥 다녀갔던 그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빨간 단풍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랜만에 오게 된 고향의 가을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노란 은행잎이 노랑노랑 하던 날 나는 가로수 길을 걸어 지하철 타러 가는 길을 사뿐히 걷고 있었다.
바람결에 어깨 위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노란 비를 맞으며 세상 우아한 걸음으로 말이다.
그날은..
우리가 결혼하기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남편의 친구 부부와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해외에 사는 사람들이 한국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들이 그동안 먹고 싶었던 고향의 음식을 먹고 헤어스타일을 바꾸러 미용실을 달려 가는 일 들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때까지 미용실 갈 시간이 없는 거다 물론 지난여름 한국에서 파마를 하기는 했다
동네 미용실표 펌이 어찌나 가격대비 훌륭하신지...
자고 일어나면 파마했던 그날로 되돌아갔다.
그때 겁나 숱 많은 내 머리를 정성 들여 말아 주시던 원장쌤이 그랬다.
"이 머리는 관리할 것도 따로 없어요 그냥 시간 날 때마다 머리를 요렇게 조렇게 꼬고 있으면 돼요!"
라며 손가락 하나로 비비 꼬면 웨이브가 살아나는 놀라운 방법을 알려 주셨다.
그러나 어찌나 머리가 한 올 한 올 충실히도 뽀글 대는지..
마치 소금을 뿌려도 뿌려도 숨 죽지 않는 싱싱하고 알 굵은 배추 한 포기 같았다.
그 많은 머리 손가락 들어 비비 꼬고 있다가는 머리에 꽃 달게 생긴 거다.
남편은 가격 대비 이 보다 더 훌륭하게 실용적일 수 있겠느냐! 고 환호했고 나는 아침마다 솜사탕이 된 머리를 어떻게든 정리 정돈하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오죽하면 우리 집 멍뭉이 나리와 산책 나가면 동네 푸들들이 내게 욜라 친한 척을 하고는 했을까?...
할 수 없이 뽀글대는 사자 머리는 헤어 에센스를 처발처발 해서 간신히 잠재우고..
그 며칠 전 딸내미의 가을옷을 사러 갔던 곳에서 나도 하나 건진 크림색 롱스커트를 입고 핑크니트를 받쳐 입었다.
제법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 비스끄리 해 졌다.
문제는 독일에서 편하게 신고 온 검은색에 야광무늬 들어간 러닝화였다. 이 패숑에 어떻게 해도 구제가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발크기가 비슷한 시어머니 찬스를 쓰기로 했다.
오랜만에 신발장을 열어 며느리에게 이것저것 신겨 보느라 신이 나셨던 시어머니는
굽이 높은 부츠를 추천해 주셨다.
지금 보더 조금? 젊은 시절까지 그 동네 패셔니스타로 유명하셨던 시어머니의 신발장에는 지금 신어도
무방할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깔쌈한? 스타일들이 꽤 많았다.
그러나 발 사이즈는 비슷해도 패션이 앞서 가시던 시엄니에 비해 촌스런 편인 나는
편안하게 굽이 없는 낮은 부츠를 선택했다.
운동화가 아닌 검은색의 낮은 부츠를 신고 치맛자락 사르륵 거리며 사뿐사뿐 지하철을 타고 종각 역에 내렸다
거울에 비춰 보이는 내 모습이 이제 독일에서 온 촌년 티를 조금 벗고 얼추 한국에 있는 아주마이들 비슷해? 보였다.
그렇게 힘찬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딛는데 무언가 뭉클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흘리고 간 장갑이나 목도리 같은 것을 모르고 밟았나? 싶어 발밑을 확인하다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오 마이 갓뜨!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까만 신발 부스러기 빼고는...
세상에나 부츠의 뒤축이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조심 스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양쪽의 바닥이 바스러지고 있었다.
내 체중이 좀 되기는 하다만 설마 신발 바닥이 육중한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었던 겨?
그런가?
한쪽 신발만 바닥이 떨어져 나갔다 해도 황당할 판에 양쪽이 다 그러고 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거다
이러다 맨발로 종로 한복판을 걷게 생겼다
날씨 좋은 날 해맑은 모습으로 말이다
부서져 가는 신발을 신은 체 아슬아슬하게 벽을 의지한 체 계단을 타듯 올라왔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만약 신발에 바닥이 더 이상 존재 하지 않게 되면 나는 신발을 벗어 버리겠지..,
신발을 벗고 스타킹 신은 맨발이 된 채 종로타워 일대를 걷게 된다면 사람들이 신기한 듯 자꾸 흘깃 대며
쳐다보겠지…
그러다 사진 찍어 자신의 별스타그램 같은데 올리는 사람도 있겠지…
혹시 그러다 SNS에 종로타워 맨발의 스타킹녀로 등극하는 거 아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웃겨서 키득거렸다 그 와중에도 그런 상상을 하고 있는 나는 또 뭐란 말인가?
왜 일상이 이다지도 매번 개콘스러운지..
좀 우아하면 안 되겠니?
아직 약속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보통 난감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황당한 일을 겪는다 해도 정신줄만 놓지 않으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부서지고 있는 신발을 신고 간신히 뒤뚱뒤뚱 계단을 올라온 내 눈앞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신발가게가 두둥 하고 보이지 무언가?
그것도 내가 내린 그곳에서 바로 나오자마자 말이다.
오 ~할렐루야~!
평소 아끼느라 자주 못하던 기도가 술술 나올 판이었다
잊고 살았지만…
한국은 감사하게도 지하도 안에 지하상가라는 것이 있었다
맘 속에서 심봤다! 를 열 번은 외쳤을 것이다.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좌우지당간 신발 가게에서 뭐가 되었던 맨발은 면하지 않겠는가…
뒷뚱거리며 들어간 신발 가게에는 핸드폰 하시다 반가이 맞아 주시던 노련해 보이는 신발가게 싸장님이 계셨다.
전후사정을 구구절절 읊퍼대지도 않았건만 단번에 내 상황을 알아채셨다.
그리고는 "신발이 비싼 신발이긴 한데 오래 안 신으셨던 것 같네요 삭아서 그래요"라고 했다.
오올~용하다 어찌 그리 대번에 아셨을까나? 나는 싸장님의 남다른 눈썰미에 무한 감동을 받으며
"그런 거죠? 설마 이 신발이 제 체중을 못 이긴 건 아니겠죠?"
라며 확인에 들어갔다.
그런 내 말이 웃겼던지 싸장님은 호호호 웃으시며 "설마요... 그거 그래도 비싼 가죽인데.. 신발을 오랫동안 안 신고 보관만 해 두면 바닥이 이렇게 삭아서 부서지기도 해요!" 라며 전문가의 식견을 펼쳐 주셨다.
나는 너무 안심되는 마음에 "네! 맞아요 이 신발이 제 것이 아니라 어머니 건데 오래 안 신으셨어요!"라고 했다.
너무나 편해진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안 해도 될 말까지 나불 대다 보니
싸장님이 물으셨다
“어디 멀리서 오셨나 봐요?”
아~된쟝 들켰다. 내 기껏 이 동네 아주마이들처럼 꾸미고 나왔건만 뭔가 표가 났던 모양이다.
나의 다급한? 사정에 맞춰 싸장님은 날듯이 여러 개의 신발들을 가져다주셨다.
역시나 프로는 남달랐다 그냥 한번 스캔하시고는 바로 맞을만한 신발들을 내어 놓으셨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아까 까지만 해도 맨발만 면할 수 있다면 뭐든지.. 였는데..
이제는 기왕지사 이렇게 되고 보니..,
어차피 신발 하나 사야 한다면 사고 싶던 롱부츠를 살까?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더라는 거다.
평소 독일에서도 롱부츠를 사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발이 작고 종아리는 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신발 사이즈로 225에서 230 사이를 신는 나는 그 동네에서는 발이 굉장히 작은 편이다
해서 발에 맞추어 롱부츠를 꺼내 들면 튼실한 종아리 덕분에 지퍼가 올라가다가 말고...
그렇다고 발보다 훨씬 큰 사이즈를 깔창까지 깔고 신자니 롱부츠를 끌고 다녀야 할판이다.
이래저래 롱부츠 신기 어려운 신체조건을 가졌다.
롱부츠를 신고 싶은데 종아리가 맞는 게 있을런가 모르겠다는 내 말에 싸장님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가득 담으시더니 물찬제비처럼 빠르고 우아한 속도로다가 내 발에 맞을 아니 종아리에 들어갈 것 같은 롱부츠를
꺼내 들고 나타나셨다.
놀라운 건 이건 가죽이 아니라 그런지 쭉쭉 늘어나서 지퍼가 올라가 잠기더란 말이다.
유후~! 덕분에 롱부츠 장착 하고 부스러진 엄니 부츠는 쇼핑백에 넣어 들고 신발가게를 나왔다.
새 신발은 신고 갈 테니 대신 그 망가진 부츠를 쇼핑백에 담아 달라 하니
토끼눈이 된 싸장님의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걸 안 버리고 가져가시게요? 여기 쓰레기통 있는데.."
그래도 어머니 건데 아무 데나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보여 드리고 분리수거를 하든 말든 그때 가서 할 일이다 싶었다.
어쨌거나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고 롱부츠씩이나 신고 종로 타워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 하나 바꿔 신었을 뿐인데..
마치 딴사람이라도 된 듯 없던 우아가 갑자기 머리 부터 발끝까지 저절로 우악 거리며 흐르는 것 같았다.
그때 카톡~하고 톡이 들어왔다.
만나기로 한분들이 사정이 생겨 미안하게도 조금 늦으실 것 같다는 톡이었다.
나는 너무 괜찮으니 걱정 마시고 볼일 다 조시고 천천히 오시라 했다.
이김에 혼자 우아 하게 커피 한잔 하고
있겠노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계단 올라가면 된다는 스타벅스로 톡톡톡 경쾌한 신발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지난번 딸내미와 쇼핑 같던 숍에서 걸려 있던 가을 신상과 매치 되어 있던 롱부츠가
떠올라 저절로 어깨가 펴졌다.
비쥬얼은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이제 이만 하면 파숑 적으로다가 느낌 비슷하다 치자!
스타벅스 안에 들어가 빈자리에 가방과 코트를 벗어 두고 주문을 하기 위해 젊고 발랄해 보이는 아르바이트생 앞에 섰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이 아무리 기다려도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기다릴 수 있다.
치마의 길이와 다리의 두께가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나도 스커트 입고 롱부츠 신은 여자가 아니던가
한참을 지나 고개를 숙이고 저 할 일만 하던 아르바이트생이 잠시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우아 처바른 코맹맹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주문해도 될까요?"
젊고 발랄한 아르바이트생은 이 아줌니 뭔 시나락 까먹는 소리여? 하는 눈길로 이렇게 말했다.
“손님 주문은 저쪽에서 하셔야 됩니다"라며 반대방향을 가리켰다.
쓋뜨 스커트에 롱부츠 신었어도 우아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됀쟝 우아하기 디럽게 힘든 하루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