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Mar 01. 2024

독일 문화센터에서 생긴 일

내 생애 이런 일은 처음이야!


어느 평범한 수요일 오후였다.

달랐던 것이 있다면 왕진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대왕무지개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가 막혔다 아우토반에서 사고가 난 건지.. 아니면 공사로 인해 어느 구간이 잠시 막혔는지

알 수 없지만 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차가 길에서 정차해야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프랑크푸르트나 베를린처럼 대도시가 아니라 오후 시간에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게 차가 꽉 막힌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파란 하늘에 해가 났는데 비가 내렸다 여우가 시집가는 날 또는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 일컫는 날씨였다.

멀리 보이는 하늘에 밀려다니는 먹구름과 파란 하늘이 마치 양념치킨과 후라이드치킨처럼 반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속을 뚫고 분무기에서 물 뿌려 대듯 곱게도 비가 내렸다

그 끝에 만화영화에서나 등장할 선명하고 또렷한 커다란 무지개가 끝없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대왕카스텔라처럼 보통의 것 보다 큰 것에

대왕을 붙여 준다면 그날의 무지개는 대왕무지개였다

하늘을 두고 도시 두 개쯤은 가뿐히 이어 줄 것 같은 튼실한 무지개였으니 말이다


교통 체증으로 정차되어 있던 차 안에서 무지개 영롱하던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입에서 "우아!"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비가 자주 내리는 독일 이라지만 여러모로 야리꼴랑 한 날씨였다



덕분에 예상 보다 조금 늦게 집에 도착했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밀린 집안일을 하기 위해 분주히 위아래로 오가고 있을 때였다.

이제 막 인덕션에 올려둔 냄비에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차 한잔 하기 위해

찻잔을 들고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폰이 울렸다


익숙한 번호다.

내가 일하고 있는 문화센터의 전화번호였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이벤트나 특강 때문에 가끔 있던 일이라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할로~!"

우리로 여보세요 했는데 알고 있는 목소리 문화센터장인 스테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평소 장난기 많고 텐션이 높은 편인 그의 목소리가 왜인지 낮았고 진지 하다 싶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물었다.

"김쌤 지금 어디야?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나는 그때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여전히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별일 없는데!"

통화를 하며 핸드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워 두고 들고 있던 찻잔에 따뜻한 물을 부었다.

둥굴레차가 밝은 갈색으로 우러나는 찻잔을 지그시 쳐다보며 핸드폰을 다시 손으로 옮겨 들려고 할 때 이어진 그의 다음말에 놀란 나는 핸드폰을 그대로 땅에 떨어 뜨릴 뻔했다



독일 개인병원에서 매니저로 일한 지 6년째가 되었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 까지는 흰가운 입고 주로 병원에서 지내고 밤이 되면 한복치마 곱게 차려입고 그 위에 앞치마 걸쳐 두고 날카롭게 갈아둔 식칼 들고 독일 문화센터에서 독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요리 강습을 한다.


병원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너무 바빠 강습을 많이 줄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즐거이 요리강습을 이어 오고 있다.

나는 병원 매니저 이자 이곳 문화 센터에서만 11년 차 그리고 전체 경력 17년 차 요리강사 이기도 하다.

그날은 내 요리강사 인생에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사건 때문에 말이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 바쁜 2월을 보냈다 여러 가지로 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일이라 하면 병원에서 새로운 회계세무사 사무실과 일을 시작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 병원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회계세무 업무의 많은 자잘한 부분을 자체 해결 한다

그러나 굵직한 것들은 회계세무사 사무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때문에 회계세무 회사마다 달리 사용되는 프로그램에 적응하느라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리고 우리로 보면 고1 여기로 10학년인 막내의 학교에서 행사가 많았다.

우선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학부모 면담을 다녀왔다(요 이야기는 내용이 많아서 다음번에..)

담임 선생님과 약 15분에서 20분가량의 짧은 면담이었지만 오고 가고 하는 시간들을 생각해서 오후 시간을 비워야 했고 아이 일이다 보니 다른 일 보다 더신경이 더 쓰이기 마련이다.

거기다 이번 여름 우리로 고2가 되는 막내는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덕분에 막내를 위해 처리해 줘야 할 서류들 또한 많았으며 그에 따른 관공서 스케줄을 잡는 것 또한 한참이었다.(이것도 정말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서 다음번에..)


또 막내학교에서는 공식 행사로 다음 달에 TanzBall이라는 파티가 열린다.

남학생은 양복을 입고 여학생은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참가해야 한다.

키 185cm에 비교적 체격이 좋은 편인 막내의 몸에 맞고 마음에 드는 양복을 사러 다니느라 한주 주말은 고스란히 백화점들을 전전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 집 멍뭉이 나리가 동물 병원에 다닐 일이 생겨서 진료받으러 다니고 시간 맞춰 약 먹이고 하는 것도 2월 내내 해야 할 일 중에 하나였다.

그 외에 크고 작은 일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평소 병원일 하나 만으로도 바쁠 때가 많은데 사이드로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들이 유난히도 많던 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는 없다.


단언컨대 이렇게 놀라기도 요리강습 시작 하고 처음이 아닐까 싶다.

스테판이 말했다 "아니 아직까지 집이면 어떻게? 16명의 배고픈 사람들이 강습실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도 안 돼...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스케줄 표는 분명 비어 있었고 몇 주 뒤에나 강습이 있다고!


나는 최대한 침착하려 노력하며 말했다."뭔가 착가 한 거 아니야? 나 오늘 강습 없어!"

그런데 스테판은 "원한다면 사진 찍어 보내 줄 수 있어 너 오늘 강습 있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잠깐만 나 지금 우리 프로그램 가지고 있어!"

라며 문화센터 2024년 여름 학기 프로그램 책자를 펼쳐 들었다.

요리강습 쪽으로 페이지를 옮기며 종이 넘기는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렸던지 스테판은 인내심 가득한 목소리로 알려 주었다

"81페이지야!"


나는 요리강습 플랜이 나와 있는 페이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리고는 동공 지진이 일었다

진짜였다 그날 저녁 6시 타임에 내 강습이 내 이름과 함께 또렷이 적혀 있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내가 강습을 잊어버리고 있었단 말인가


요리강습을 위한 강습실에 수강생 들은 모두 모여 있는데

시작하기로 한 강습시간이 지나도록 강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강사에게 문화센터장이 전화를 걸어 "지금 어디냐?" 물었다.

살다 보면 교통체증 안에 있을 수도 있고 혹시 사고나 뜻하지 않은 뭔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강습이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집에서 탱자 탱자 하고 있던 강사는 해사 하게 웃으며 집이지 어디겠냐고 했다

얼마나 상대방이 황당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 아니겠는가


변명의 여지없이 이건 전적으로 내실수다 나는 벙쪄 있을 스테판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는 내 사과를 수강생들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일단은 수습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다시 통화하자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강습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기다리고 있는 16명을

마냥 기다리게 둘 수도 없다.

그 순간 진정성 있는 사과를 전달하고 빠르게 귀가시킨 후 보강 날짜를 따로 잡는 것이 수강생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럼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앉았다 일어섰다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이럴 수가.. 도대체 어떻게? 내가.?. 왜?...라는 자문을 한 세 바퀴째 돌리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스테판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잘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우선 받았던 수강료 전액을 모두 에게 다시 그대로 돌려주며 (아마 속이 무지 쓰렸을 것이다 ㅠㅠ)

강사는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집에 잘 있더라 무지 미안해하더라고 전했다고 한다


아무도 화내거나 짜증 내지 않고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며 아무 일 없어 다행이라고 했단다

인내심도 많고 고마운 사람들..,

보강 날짜를 잡아 주면 꼭 참석하고 싶다 라며 모두들 웃는 낯으로 귀가했다고 했다

배가 고프니 빨리 저녁 먹으러 가야겠노라 하면서 말이다.

전화 통화였지만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미안하고 민망해서 볼이 빨개지고 이불킥이 절로 됐다.


끝으로 내가 "내 생애 이런 일은 처음이다" 하자 스테판도 말했다

"우리 문화센터에서도 창립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야!"

우 씨! 된쟝 뭐든 기록을 세우는구나 …

이런 처음은 싫다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애꿎은 대박 큰 무지개만 타박하며..,

멘붕 와서 머리에 꽃꼿을 뻔 한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이냉국과 막걸리에 반한 독일 수강생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