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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08. 2017

 로맨틱 찾다 디질뻔 한 남자


평소 우리 부부는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그저 친한 지인들에게 그동안 잘 지내고 있다고 간간히 살아 있음을 인증하는 통로 이자 페친이 우리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우리 큰아들과 딸내미가 요즘 새로 알게 된 친구들은 누가 있나? 살짝? 감시하는 용이요 카톡은 두 어머니들에게 아이들 사진 퍼다 드리는 용도이며 whatsappe은 각각 과테말라와 미국에 머믈고 있는 큰아들과 딸내미가 우리에게 뭐 필요한 것 있을 때 메모 남기는 메모판의 용도로 쓰일 때가 대부분이다.

사실 우리가 sns를 자주 애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세상에서 친분을 쌓고 유지하기에 시간이 부족하고 게으르기 때문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그간 페북에 아직 읽지 않은 소식이 수십 개라는 알림이 핸디에 떠야 겨우 들어가

빨래 걸이에 빨래 널듯 이쪽저쪽 게시글에 좋아요 누르고 나오는 게 다일 때가 많은 나에 비해

그마저도 잘하지 않는 남편이 어쩐 일이진 페북에 들어갔는데 근사한 뭔가를 보았다며

저녁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내게 굳이 와 서 좀 보라는 거다

그기 뭔데? 라며 손에 뭍은 물기를 탁탁 털며 별거 아님 야짤 없어라는 메시지를 가득 눈을 곱게 흘기며 다가갔다.

남편이 들이민 핸디 안에는 색색의 장미꽃잎이 커다란 하트가 되어 그 안에 우리가 잘 아는 지인 부부를 담고 그 하트 주변에 영롱한 촛불들이 아름답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분들의 20주년 결혼기념일이라는 대문글처럼.....

"아.. 이분들이 벌써 결혼 20주년이 되었구나"라고 별 감탄사 없이 이야기하는 내게

남편은 "우와 진짜 멋지지 않냐? 이분 그렇게 안 생겼는데 진짜 로맨틱 가이네

나도 우리 20주년 결혼기념일에 꼭 이렇게 해줄게 " 라며

나 잘했지?라는 칭찬을 바라는 아이 같은 표정으로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의 나는 평온했다.
폭풍우 오기 전의 밤바다처럼...
그저 눈빛 속에 네가 죽고 잡지? 하는
메시지만을 묵묵히 담은 채 딱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 래?"

나의 너무도 담백한 한마디와 쌀 벌한 눈초리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남편은 순간
띠굴럭 떼굴럭 굴리던 커다란 눈을 꼭 감은채 외쳤다
"죽여줘..."

그렇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대강 눈치 깔? 만한 상황
우리의 결혼 20주면 기념일은
이미 지난달에 후딱 하니 지나갔던 것이었다.
장미 꽃잎과 달콤한 시간은커녕
소리 소문 없이.....

사실, 연애 초부터 화이트 데이가 뭔지도 모르던 이 남자를 보며 아직 갈길이 멀었구나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사람이 이다지도 꾸준하고 한결같을 줄이야...

애당초 로맨틱한 프러포즈 따위 울 남편 에겐 마치 주문 해 놓고도 어떻게 생긴 게 나올지 모르는

프랑스 전통 요리 같은 거리가 먼 남의 이야기 여서 기대도 하지 않았었고 내 생일도 아이들이 커가며 챙기기 전 까지는 단골로 잊어버리는 메뉴였으며 결혼기념일은 빨간 날 즉, 공휴일이 아니므로 염두에 두지 않는 365일 중에 하나 일 뿐이었다.

그래서 해마다 지나고 나서 생각났다며 멋쩍게 뒷북을 쳐도 그러려니... 결혼기념일을 음력으로 지내는 것도 아니건만 날짜마저 왔다 갔다 할 때도 저러려니... 내 넓은 마음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지난 결혼 20주년 기념일이던 당일날 함께 시장 보고 나서 시내 나온 김에 외식하고 들어가자고 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지난 주말에도 외식했는데 설마 오늘도 외식하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

라며 속 보이는 선수를 치던 남편에게 속으로는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에구.. 이 인간아 오늘이 무슨 날인 줄이나 아냐?'

그럼에도 겉으로는 "아니야 집에 가서 국수 삶아 먹자" 했었다.

그런데... 이젠 하다 하다 남의 집 20주년 결혼기념일 사진을 보고 침 튀기며 감탄사를 뿜어 대고는

우리 때도 꼭 그렇게 해 주겠단다. 이미 지난달에 휘 하니 지났는데 말이다.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며 멘붕이던 남편이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나 기특하지 않냐?
어쩐지...
지난달에 너한테 자꾸 이것저것 선물을 하게 되더라고
 핸디도 바꿔 주고... 자전거도 사주고..
본능이 알고 있었던 거지, 본능이.."
본능 같은 소리 한다,
인간아 애쓴다 왜 십 년 전에 산 냉장고는 거기 안 넣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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