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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30. 2017

독일에서 내 집 마련 하기  

레스토랑을 가정 집으로 신박한 변신


1. 독일에서 내 집을 장만하기 위한
절묘한 타이밍, 기막힌 아이디어


다섯 식구가 독일의 세 개의 주 세 개의 도시를 돌며 이사를 여섯 번 하는 동안 우리는 더 이상 이삿짐을 싸는 것도 싫어졌고 무엇보다 전세가 없는 독일에서 돌아서면 한 달인데 나중에 돌려받을 수도 없는 월세를 매달 꼬박꼬박 적금 붓듯 내는 것도 너무 아깝고 거기에 개인집에 세 들어 살다 보니 집주인 이 가장 중요 한데 보기 드문 집주인을 만나 몸과 마음이 나란히 고생 중이던 때에 은행 이율까지 낮아져 주변에서 모두들 사려면 지금 집을 사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이야기하던 때였다.


사실 한 달 한 달 먹고 살기가 바빠 모아둔 돈도 없었지만 독일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덕분에

집값이 대도시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착한 데다가 보통의 사람들이 독일에서 집을 장만한다는 것은 은행 대출을 왕창 끼고 평생 다달이 갚아 나가는 것이다.

전세라는 것이 없는 독일에서 매달 월세를 내느니 그 돈을 대출금으로 갚아 나가다 보면 언젠가 자기 집이 된다는 것이 적당한 설명이 될 듯싶다.


그렇게 가족들의 직장, 학교 등의 위치를 고려해서 시내에서 멀지 않고 조용한 주택가 쪽으로

가정집을 알아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독일에서 집을 장만할 때 첫째도 둘째도 위치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도 주소지에 따라 배정되고 이웃들도 동네 위치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나중에 집을 팔아야 할 경우도 아주 중요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집이 어느 동네에 위치하는지는 독일에서 집을 고를 때 심사숙고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다.)


남편이 난데없이 좋은 동네에 위치한 레스토랑 하나를 찾았다고 했다.

웬 식당? 우린 식당을 할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남편은 어리둥절 해 있는 내게 무언가 멋진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식당 이였으면 어때 우리가 가정집으로 개조해서 쓰면 되지 "라는 것이다.



2. 독일 레스토랑이던 우리 집과 가정집을 찾고 있던 우리의 첫 만남

그러나

남편이 보여준 독일의 어느 부동산 사이트 상점 매물로 나와 있광고 사진 들은 그당시 내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식당 간판도 그대로 달린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레스토랑 일 것 같은 하얀 회벽의 외관을 가진 독일의 한 레스토랑 겉모습 사진 들은 이것을 가정집으로 개조해서 사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남편의 아이디어만큼 신선 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작고 아담한 정원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우리는 커피 한잔 마시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아늑하고 반듯한 전형적인 독일 가정집을 찾고 있던 내게 그 레스토랑은 그냥 독일 식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큰둥 한 내 반응에도 불구하고 시내에서 멀지 않은 조용한 주택가들 사이에 있는 레스토랑의 위치로 보나 아이들 셋 에게 독립된 방을 줄 수 있는 방의 개수 또 내가 그렇게도 바라던 널찍한 주방 등.... 그 공간들이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말로 나를 꼬득 이던 남편은 그냥 가서 어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해 보자 며 부동산에 연락을 했다.


그래, 보기만 하는데 돈드나? 싶어 쫄래쫄래 따라간 그곳에서 나는 현관문 위에 걸려 있던 커다란 식당 간판과 지금이라도 주문하면 당장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대령할 것처럼 생생히 붙어 있던 면의 메뉴판과 레스토랑 건물의 외형을 눈으로 빠르게 훑고는 사진에서 보던 거랑 똑같구먼 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 런. 데

남편의 꼬드김이 먹혔던 겐지.. 탁월한 아이디어에 아하 하고 내심 설득이 되고 있었던지 어쨌거나

건물 안으로 들어와 하나하나 둘러본 식당의 내부는 2년 동안 비워 놓았다는 데도 지금 막  출근할 주방 사람 들과 홀 사람 들을 기다린데도 이상할 것 없는 생동감 있는 식당의 모습 그대로였으며 푸근하고 아늑했으며 시원하게 넓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 요기는 떼고 저쪽 것은 그대로 두고.... 하며 내부 인테리어를 구상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 집을 처음 만난 우리의 느낌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설레어서 심장이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은 아녀도 "내가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 이랑 하겠구나 하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듯한 운명적 인연에 대한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그냥 왠지 우리 집 이 될 것 같은 그런 느낌 이 들었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다 내 것 되는 것 아니듯이 결혼식장에 손잡고 들어가 봐야 안다고

집을 본다고 해도 계약할 때까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3. 독일에서 집 계약


누가 그 집을 우리에게 준다고 한적도 없건만 우리 집이 될 거라는 대책 없는 믿음과는 상반되게 우여곡절 끝에(이 이야기는 하자고 들면 밤을 새도 모자란다) 집을 계약했다.


우선, 독일에서  집을 장만 하기 위해 계약하는 과정은 비용도 많이 들고 그전에 거쳐야 할 과정도 길고 복잡하다. 부동산 전문가(공인 중개사)의 안내로 몇 차례 집을 둘러본 후 그 집이 마음에 든다면 다음에 할 일은 건축 전문가와 기술 전문가 들 을 섭외 해서 그들에게 집을 보여 주고 구닥텐 이라는 의견서를 받는 것이다. 당연히 비용이 든다 그러나 독일에서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 집을 샀을 경우 고쳐야 할 곳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는 과정이다.

즉, 지금은 집값이 시세에 비해 괜찮더라도 앞으로 들어가야 할 비용이 더 많이 생긴 다면 집 가격은 조금 더 비싸 더라도 나중에 고쳐야 할 것이 별로 없는 다른 집을 샀을 경우가 길게 보았을때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100년이 넘은 오래된 집들도 많고 새로 지어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지하실에 물이 센다거나 지붕이 너무 오래되어 조만간 엄청난 돈을 들여 모두 바꾸어야 한다거나 하이쭝(난방시설) 또는 창문 들을 교체 해야 할 상태 라면 집 가격은 현시가에 맞게 또는 싸게 샀더라도 막상 집을 사고 보니 집을 수리해야 하는 비용이 더 많이 나와 결과적으로 집을 아주 비싼 비용으로 장만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게 된다.


건축 전문가와 기술 전문가 와 집에 관한 점검이 모두 끝나고 마음의 결정이 됐다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은행을 알아보아야 한다.

미리 은행을 알아보기도 하지만 전문가 들의 의견을 참고해서 집 값을 흥정하게 되고 결론 적으로 얼마에 집을 장만하게 될지 최종 계약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집 값이 결정되고 얼마의 대출금이 필요한지 정해 지면 몇 군데 의 은행 들 중에 이율과 여러 가지 옵션들 이 맞아 떨어지는 곳으로 은행을 결정하고 계약을 진행하게 된다.

대출받을 은행 도 꼼꼼히 알아보아야 하는 과정 중에 하나인데 독일에서는 집값을 장기간 대출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의 이율 뿐만 아니라 그 외에 상환 기간에 따른 이율 변동 등..상세한 옵션들은  은행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한국에서는 없는 과정 중에 하나인데 독일에서는 집을 사려면 부동산 공인 중개사뿐만 아니라

집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나란히 앉아 집 계약 등 계약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노타 )와 계약서 조항 들을 하나하나 확인 후에 양쪽이 사인을 한다.

당연히 변호사 비용도 추가로 들고 앉아서 한줄 한줄 계약 조항을 읽어 주는 변호사 의 확인에

고개를 끄덕 이며 독일은 참 철저한 동네 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 했다.

우리는 그렇게 독일에서 내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4. 해도 해도 끝이 없던 집수리

같은 공간 전혀 다른 느낌
before &after  비포 &애프터

그렇게 떼어 내고, 닦고, 칠하고, 조립하고, 심고, 가꾸고....
집안과 밖을 넘나들며 전문가 들의 손길도 빌려 가며
(그 속 터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이러다 집 하나 새로 짓고 말지 싶을 때 즈음 누가 봐도 식당이던 곳이
서서히 가정집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었다.


그해 우리가 이사 들어오기 전까지 그리고 이사하고 나서도 거의 살다시피 했던 곳이

아마 건축 재료 마트 일 것이다.

우리의 본격적인 우리 집을 가정집 으로의 개조 작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독일은 인건비도 비싸고 집안을 고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건축에 관련된 온갖 재료들을 모아 파는 커다란 상가 OBI오비, BAUHAUS바우하우스 등등 여러 곳 이 있는데 이곳에 가면 크기별 나 하나부터 종류별 페인트, 창문, 문짝.... 말 그대로 집 안팎을 고치고 만드는데 관련된 재료 중에 없는 것이 없다.

문제는 이렇게 하나하나  뜯어 내고 칠하고 다시 달고 고치고 하는 일들이 엄청난 시간과 돈과 노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술자 들도 아니고 직장을 다니면서 짬짬이 해나가려니 식당 가구 떼어낸 벽에 구멍 난 자리 메꾸어 가며 페인트 칠 하는 데만도 온 가족이 들러붙어 몇 날 며칠이 걸려야만 했다.


정말이지 식당을 가정집으로 개조한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간단하고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첫 번째로(바로 위에 사진) 우리가 가정집으로 개조한 공간은 예전 식당 일 적에 맥주나 음료수를 준비하던  BAR바 와 장식장이 붙어 있고 식당 테이블이 들어와 있던 공간으로 그곳에 있던 오래된 가구들을 과감하게 떼어 내고 치우고 비웠다.  

어둡고 클래식한 조명도 밝고 모던한 것으로

바꿨다.

사실 요즘은 구하기도 힘든 옛날 내추럴한 통나무 앤티크 BAR 바가 탐이나 그냥 둘까? 고민하다 아무래도 색상이 너무 어두워 실내가 푹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 떼어 냈는데 두고두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우리의 오픈 주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침 이면 향긋한 커피도 내리고 고소한 빵도 구워 내고 시간 있는 오후에는 케이크도 굽고 저녁이면

식구들의 저녁을 보글보글 준비하고 어쩌다 남편과 맥주도 한잔 하는....

하루 중 젤 많은 시간을 이 공간에서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로는

테이블 들로 빼곡하던 식당의 Hall 홀로 쓰였던 길고 넓던 공간에 테이블을 깨끗이 치우고

군데군데 데코 벽지가 붙어 있던 벽면을 뜯어내고 새로 하얀색 페인트칠을 하고 공간을 나누어 개조했다.


이렇게 공간을 나누어 정원이 가까운 아래쪽은

어딘지 알 수 없는 풍경화 가득하던 벽면을 커다랗고 하얀 책 고지 들을 차례대로 세워 가려 두고 책을 꽂아 서재를 만들고 그 옆에 쓰다 남은 벽난로용 나무들을 쌓아 포근하고 내추럴한 분위기로 포인트를 주었다.


나머지 위쪽 공간에는

하얀 식탁을 놓고 한쪽 벽면 에는 피아노를 붙여 두고 식구들이 식사를 하고 때로는 숙제를 하기도 글을 쓰기도 하며 또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피아노를 치기도 하는 식당 겸, 거실 겸, 서재겸, 기타 등등의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지금도 나는 거품이 하얀 라테 한잔을 들고 막내의 뚱땅 거리는 피아노 소리를 달콤한 배경 음악 삼아 드라마 작가 코스프레하며 글을 쓰고 있다. 삘 충만하게...



세 번째로는

식당 일 때 단체 손님을 받았을 듯 보이던 개별 룸으로 그 안에는 붙박이 의자 들과 식당 용

테이블들이 촘촘히 쌓여 있었다.

그 공간에 우리는 벽을 세우고 문을 달아 없던 화장실과 샤워실을 따로 만들고 그곳을 손님방으로 개조했다.

당연히 철저히 전문 분야가 나뉘어 있고 숨 넘어 가게 꼼꼼한 독일 분야별 기술자 들의 손을 빌려서

샤워실 벽면 타이루 한 장 한 장 붙여 가며.....


그렇게 만들어진 손님방 에는 딸내미의 프랑스 교환학생인 콜린을 시작으로 남편의 친구분들,

두 어머니들,..... 많은 분들이 묵고 가셨다

물론 그때마다 손님들의 수와 연령 등에 따라 내부 인테리어가 조금씩 바뀌 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곳은 우리 집의 손님방으로 애용되고 있다.


네 번째로 우리가 대대적?으로 개조 한 곳은  

날씨 좋은 날에 맥주나 음료수를 마시며 여러 사람들이 나와 앉아 있었을... 동네 축제 때면 인기 폭발 이였다는 비어가르텐이었다. 덩그런 공간에  파라솔 가져다 꼽기만 하면 되도록 촘촘히 꽂혀 있던 기둥 들을 제외 하면 회색의 시멘트 바닥만 남아 있던...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을 꿈꾸던 내게 여기는 도대체 어찌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안겼던 대략 난감한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맡겨 볼까 하고 견적을 뽑아 보니 6천 유로 한화로 나무 심고 조경

하는 데만 7백만 원을 이야기하길래 고이 접고 우리끼리 잔디 심고 세일하는 나무, 꽃 심고

중간중간에 돌도 깔고 꽃밭도 만들고 먹거리도 심어 가며 전문성은 떨어져도 우리만의 정원을 만들었다.

물론 관리 부실로 유명을 달리하신 나무 들도 있고 뿌린 씨앗에서 감감무소식인 적도 많지만

그럼에도 처음에 비하면 우리 집 정원 용 됐다.  



5. 레스토랑에 사는 사람들
집 그 외의 의미

그렇게 작달막한 검은 머리의 부부와 그들을 똑 닮은 일땅이 이 땅이 삼땅이가 이사 들어와 살고 있는지가 어언 몇 년째 이건만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집은 아직도 예전 레스토랑이던 시절의 가게 이름인 클라이네 바이데로 불린다.

클라이네 바이데라는 레스토랑은 우리로 하자면 아바이 순대집이나 할머니 족발집 같은 독일 전통 식당 이였다고 한다.

제대로 된 독일식 고기 요리를 먹기 위해 다른 동네에서 까지 찾아오고 생일 등의 특별한 날이면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던 독일식 맛집.... 이 동네의 사랑방 같은 존재였다.

그런 이곳에 우리가 이사를 들어오자

동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관심 은 실로 대단했다.

어느 날 창문에 커튼을 걸고 있는데 창문 하나 사이를 두고 왠 낯선 아주마니가 우리 집안을 들여다보려고 애를 쓰고 계신 거다.

놀라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창문을 열고 웃으며 "아주머니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했더니 뭔가 몰래 하다 들킨 사람처럼 쑥스러운 듯 웃으며 "이 집이 어떻게 바뀌는지 너무 궁금해서요"라는 거다.

우리의 친절한 이웃 카타리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로도 정원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으면 수시로 낯선 사람들이 울타리 너머로 말을 걸어오고는 했다.

가령 "여기 이제 중국집인가요?"라고 묻는다거나, 또는 "이제 식당 문 다시 열었나요?"하며 남의 집 정원문을 서슴없이 열고 들어와 나를 식겁하게 만든 이들도 있었다.

또 저쪽은 이렇게 이쪽은 요렇게 꾸미는 게 어떻겠느냐며 두 팔 걷어붙이고 당장이라도 돕겠다는 크루거 아저씨네부터 언젠가는 푸른

나무들을 심고 가꿀 계획인 거죠? 라며 아무것도 없던 정원을 쳐다보며 은근히 부담을 얻어 주던

슈 바름 씨네 부부까지... 오며 가며 끊임없이 지치지 않는 사람들의 넘치는 관심이 처음엔 버겁기도 귀찮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 정원 끝에 자리한 아름드리 자작나무의 나이테만큼이나 내려앉아 있을 이곳에 담긴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 들과 마주 하며 우리가 먹고 자고 살아가는 우리 집이 가진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프러포즈를 받았던 곳이고

또 이제는 청년이 다된 아이가 생의 처음 감자튀김을 맛본 곳이며 그 누군가 에게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친구 와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우리 집은 이 동네 사람들에게 누구네 집이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냥 클라이네 바이데 다.

그래서 우리는 레스토랑에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 동네 사람들 마음속에 남은 아련한 향수 레스토랑 클라이네 바이데... 우리가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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