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5월인데 독일은 여름에 들어섰다.
오전 진료를 끝내고 병원 밖으로 나오니 훅 하고 더운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덥다. 이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살랑살랑 봄 날씨가 아니라 쨍 한 여름 날씨 다. 병원 안은 시원해서 몰랐는데 세워둔 자동차를 올라타는데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도대체 온도가 얼마나 되나 싶어 차 안 온도계를 보니 32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니, 두꺼운 겨울 잠바를 벗어던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직 5월인데 말이다
안 그래도 며칠 전 독일 중부 지역신문인 HNA에 환경 이슈 칼럼에서 이번 5월 에 30도가 넘는 더위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그래도 설마 했다. 이렇게 빨리?
햇빛 귀한 독일에서 해나는 날이야 늘 반갑지만 이렇게 지구가 환경오염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데워지는 건 바라는 바가 아니다
게다가 나는 아직 여름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단 말이다.
'그거야 니 사정이지!' 라고 말하는 듯 햇빛이 따사롭다 못해 따가웠다.
집에 오자마자 옷장 문을 열어젖히고 어떻게 빠른 시간 내에 계절에 맞춰 다시 옷 정리를 하나 고민했다.
옷장 안에도 서랍장 속에도 빼곡히 길고 두꺼운 겨울 옷들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여름옷들은 지난가을 고이 접어 통속에 넣어 따로 보관하고 있다.
긴 겨울 지나 봄이 오면 천천히 옷장 정리를 해서 바꿔 둘 요량이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아직 옷 정리도 못했는데 훅 들어온 여름에 당황했다.
작년 여름에 뭘 입고 살았더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통 몇 개를 열었더니 반팔, 반바지, 원피스가 차례대로 나온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데..,
이아이들이 요래 작은 사이즈였던가? 싶은 거다.
사람이 살이 찌면 감각도 함께 찌는지 예전에 입던 옷 또는 들어갔던 옷들이 앙증맞아 보이고 한참은 널널 하거나 컸던 사이즈의 옷들이 적당해 보인다.
본능이 말하고 있는 거다 그 옷 안 맞을껴~!
사람을 보는 눈도 마찬가지 이전에 풍채가 좋다고 느끼던 이웃 사람이 왜소해 보이고 나와 비슷한 체격이다 싶던 직장동료가 피골이 상접해 보이기 시작했다면 빙고! 찐 거다.
땀나게 이 옷 저 옷 입어 보며 확인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맞는 옷이 몇 개 되지 않는 다는걸... 일 년 만에 얼마나 체중이 업그레이드 되었는지 굳이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아도 안다.
당장 최소한 출퇴근 용 짧은 팔 티셔츠가 필요하다는 것도.
집 근처에 마트와 옷가게들이 함께 들어가 있는 작은 쇼핑센터로 바로 뛰어갔다.
쫄티가 되어 버린 반팔 티셔츠들 대신에 넉넉하게 나의 살들을 가려줄 티셔츠가 필요하다.
때마침 옷가게 들은 50프로 에서 20프로 세일에 들어갔다. 나이슈!
시내에 쇼핑센터에 가면 다양한 옷가게들이 있어 여러 군데 돌아다니며 가격을 비교하고 맘에 드는 것으로 골라 살 수 있겠지만 덥고 지치는 날 구태여 시내까지 나갈 힘도 없고 주말에 가는 걸로 미루고 우선 가까운 곳으로 갔다.
시내 쇼핑센터의 옷가게 들은 2030의 젊은 처자들이 선호하는 옷가게들과 4050 이상이 찾을 옷가게들이 쇼윈도에 걸려 있는 옷들만 봐도 금방 구분할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그 기준은 뭐니 뭐니 해도 디자인이라 하겠다.
아무래도 울 딸내미 또래의 아가씨들이 가는 옷가게들은 몸매를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쫙 붙는 핏으로 만들어진 짧은 옷들의 작은? 사이즈들이 많고 가격도 적당한 것들 위주다.
그에 반해 4050이상은 아무래도 적재적소를 잘 가릴 수 있는 디자인들 이 많고 소재는 고급스럽고 가격은 조금 더 비싸다.
우리 동네 작은 쇼핑센터 안의 두 군데 옷가게는 아이들 옷부터 엄마 아빠까지 연령대 별로 고를 수 있고 가격도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면소재의 옷들이 괜찮다.
그럼에도 언제나 기장과 사이즈가 때로 맞아 떨어지지 않아 옷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다.
옛날 옛적에 한국에서는 옷 살 때 44 사이즈 또는 55 사이즈에서 골라 입었다.
그때 키는 162.5여서 반올림해서 163에 몸무게가 42kg, 45kg였다.
내 인생에 분명 그런 사이즈 인 적도 존재한다. 20대 초반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요즘은 우리 때와 사이즈가 많이 달라져서 44,55 가 예전의 그 사이즈가 아니라고 하기도 하던데...
지금은 키는 그대로 인데 아니 어쩜 조금 줄었으려나? 어쨌거나 몸무게는 코로나 시국에 운동도 부족했고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었고 갱년기라 호르몬 관계도 있고 등등 변명을 늘어 놓아도 늘어난 정도가 아니라 매번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독일에서는 여성복 사이즈로 34,36,38,40,42,44,46라는 숫자를 사용한다.
(주로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옷들은 Xs, S, M, L, XL, XXL을 사용하기도 한다)
옷의 디자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으나 34가 엑스스몰 , 36이 스몰, 38이 미디엄, 40에서 42가 라쥐, 44, 엑스 라쥐 46이 투엑스 라쥐 정도 되겠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상의는 36에서 38까지 맞았고 디자인에 따라 서는 34도 맞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40에서 42 사이를 보아야 한다.
그나마 상의는 맞는 걸 찾기가 수월하다 뒤에 더 큰 사이즈들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안타까운 현실만 제외하며는 말이다.
문제는 원피스나 바지,치마 등의 하의다.
원피스 또는 바지를 내 체급? 에 맞춰 품과 다리, 허리가 맞는 40에서 42 사이의 것으로 고르면 기장이 너무 길어서 온 동네방네 땅바닥 청소를 하며 다녀야 할 지경이 된다.
아니 조금? 후한? 모습의 사람들은 키도 클 거라는 건 누가 정한 거지?
키는 크지만 마를 수도 있고 작지만 넉넉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세일 한 옷에 더 세일을 한다는 빨간딱지들이 붙은 사이즈 작은 옷들 사이를 누비며 들어 가지 도 않거나 작을 것이 분명한 옷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세일에 세일을 더한 것 중에 딱 내스타일 이지만 맞지도 않은 옷 사다가 옷장에 걸어 두고 살 빠지면 입어야지 했다가 전시용으로 걸어 두느니 맞는 옷만 골라 가기로 했다.
"어차피 짧은팔 티셔츠 필요 해서 온거잖아? 기장이 길어 입으니 발도 보이지 않는 샬랄라 야시시 한 원피스와 단추가 잠기지 않는 예쁜 반바지는 그냥 한번 입어 본 걸로~!" 라며 마른침을 삼켰다.
되지도 않을 것 입었다 벗었다 하느라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예전? 같았다면 득템 했을지도 모를 쪼맨한 옷들에 아쉬움을 그렁그렁 담아 쳐다보며 내려 놓았다.
그래 살을 빼는 게 돈을 버는겨!
말리지 마 내일부터 다이어트한다.
얘들아 기다려 이 언니가 호올쭉 해 져서 다시 돌아온다
라며 책임 지지 못할 말을 남발 하며 혼자 헤벌죽 웃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따 집에 가는 길에 아이스커피나 한잔 때릴까?라는 발칙한 상상을 하며 말이다.
독일의 아이스커피는 얼음이 들어 간 아메리카노가 아니다.
아이스크림이 퐁당 빠져 있는 열량 높은 달짝지구리 한 커피다.
아마 한국에 있는 절친 강여사가 이소리를 들었다면 이렇게 이야기 했을거다.
"이뇬아 다이어트는 개뿔~~! 돼지 꼬리 펴지 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