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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12. 2017

독일의 이색 직업과 다시 찾아온 손님


우리 집에 누군가 살고 있었다.

지금 으로부터 3년 전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입주 하기 바로 직전의 일이다.

독일에서 겉보기에 멀쩡한 일반 가정집도 막상 들어가 살려면 손보아야 할 것들이 이것저것 한두 개가 아닐 텐데.. 하물며 레스토랑을 가정집으로 개조해야 했던 우리는 매일 쏟아지는 일거리들로 지루할 여가 없이 화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은 마치 직장 끝나고 투잡 쓰리잡이라도 뛰는 사람처럼 시간만 나면 공구 박스 들고 나무를 잘라 바닥에 깐다던가... 이방 저방 넘쳐 나는 벽면 들에 흰색 페인트 칠을 하고... 구석구석 손질해야 할 것 들을 섭렵 하고 있었고 그 뒤에서 학교 때 짱을 뒤따르던 부하처럼 졸졸 쫓아다니며 보조를 뛰던 나는, 쓰레기 봉지 들고 이곳저곳을 닦고 치우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큰 아들 방으로 사용하게 될 방의 창문이 뻑뻑 하니 열고 닫고 가 잘 되지 않아서 기름칠을 하고 손을 보고 있을 때였다.


빈 집안에는 울 남편과 나, 딱 두 사람밖에 없는데 어디선가 드그덕 드그덕 하는 발자국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는 거다.

아무리 낮이 여도 아직 전등도 들어오지 않아 어두침침 한 실내에 살림살이 들 마저 없이 덩그러니 벽들만 가득한 텅 빈 공간은 작은 소리 조차 메아리 되어 울려 대는데...

분명 그 소리는 머리가 쭈뼛 서게 놀랄 만큼 구체적으로 선명했다.


안 그래도 그  며칠 전 동네를  산책하던 노 부부가(우리의 친절한 이웃 슈발름 씨네였다.)

정원에 서 있던 우리에게 반가이 인사를 해 오며 예전에 이 근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많이 받았었고 동네 전체가 푹 가라앉은 구조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뭔가 더 있는 듯한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지나갔었다.


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 카셀로 이사 오기 전

살았던 독일 남부 도시 에얼랑엔에서는

우리가 살던 집 바로 맞은편에서

살인 사건이 나서 범인을 찾고 있다는 현상금 붙은 전단 지를 이사 들어간 며칠 뒤에 보게 된 적도

있었으며, 밤 12시가 되면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해괴한 소문마저 돌고 있었다.


순간 스쳐 지나가는 이런저런 알고 있던 으스스한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헤집으며

등 쪽 으로는 식은땀이 한 줄기 쭈르륵 흐르고

뭔지 모를 공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날, 무슨 정신 인지 모르게 빈 집을 도망치듯 빠져? 나온  우리는

도대체 아까 우리가 들었던 소리가 무슨 소리 란 말인가?

에 대해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전쟁 당시 그 근처에 폭격받아 무너진 집도

많고 지대도 낮아졌다 는데...

혹시나 밤마다 또는 낮에도 무언가 출몰하며

전설의 고향을 찍어 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사연이 이 집에 얽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 노부부가 우리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해 주려다 만 것이 아닐까?

등등...

우리는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세상에 이런 일이..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다큐를 수없이 머릿속으로 찍고 있던 며칠 후...

별개 다 넘버 원

드디어 우리는 그날 그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 소리의 범인은 다름 아닌....


독일에서 Waschbär 바쉬 베어라고

부르는 북아메리카 산 너구리 라쿤 이었다.


생긴 것은 귀여워 보이지만  가정집의 지붕을 뚫어집안으로 잠입해서는 지붕과 천장 등을 망가뜨리고... 동네 휴지통 들을 뒤집어 놓고...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 또는 반려묘 그리고 사람 들을 공격해서 상처를 입히기도 하는 때로 포악하고 골치 아픈 동물이다.


원래 바쉬 베어 라쿤은 북아메리카 쪽에서 서식하고 있는 야생 동물 이여서 이 동네에서는 동물원에 가서나 만날 수 있던  동물이다.


그런데.. 누군가 동물원에 기증하려고 캐나다에서 데려 온 바쉬 베어 한쌍을 운반 도중 잃어버리는 바람에 동물원 에서나 만날 수 있던 야행성이며 다분히 공격적 성향을 가졌다는 야생 바쉬 베어를 주택가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거다.


게다가 그들을 처음 잃어버린 동네가 카셀이고

우리 동네에서부터 전 독일로 퍼져 나갔기 때문에 독일의 야생 바쉬 베어의 시발점도 카셀이요 잠정적으로 수만 마리가 넘는다는 바쉬 베어의 보유 숫자 면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카셀이 전 독일에서 넘버 원 이란다.

참 별개 다 넘버 원이다. 그딴 건 안 해도 되는데....


사람 손가락처럼 생긴 손으로 동네 쥐 같은 작은 동물 들을 잡아먹고 손까지 씻으신다는 머리 좋은 잡식성 동물 바쉬 베어는 특히나 가을이 오면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려고 집으로 지낼 만한 곳을 물색한다. 숲이 아닌 주택가로 내려와서 말이다.


문제는 그러기 위해 주택의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 구석구석을 손으로 긁어내고 떼어 내고 구멍을 뚫어 비가 오면 비가 새도록 집 지붕을 고장 내고... 그러다 사람을 만나면 날카로운 이와 손톱을 들어 대며 공격적으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기괴한 소리의 주인공들이 바쉬 베어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큰아들 방 천장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쉬 베어 가 다니는 길을 추적해 보는 사냥꾼 아저씨와 바쉬 베어를 잡는 나무통으로 된 덫.....)

 독일의 이색 직업 바쉬 베어 사냥꾼
그리고 독일스러운 사냥 시기


큰아들 방에 빗물이 줄줄 새는 벽면을 따라 이어지는 지붕 쪽을 살펴보니 그곳이 뚫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 손으로 뜯어 낸 것처럼....

그래서 급히 모셔온 지붕 고치는 일을 하시는 기술자 아저씨 들은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거 바쉬 베어 짓인 것 같은데요.."라고 말이다.

이 집 저 집 지붕이 그 꼴이 된 것을 좀 많이 보셨겠는가? 척하면 척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바쉬 베어들의 흔적들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비상이 걸린 우리는 뭔가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게 되었고 이 눔에 사고뭉치 동물 바쉬 베어는 야생 동물 보호 대상 이여서 법적으로 일반인이 함부로 잡을 수도 처치? 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한단다. 이름 하여 바쉬 베어 사냥꾼.

사냥꾼이라 하면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마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우리의 백설공주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그 사냥꾼 밖에 모르는 내게 참으로 낯선 직업이었다 그것도 바쉬 베어 사냥꾼 이라니...


우리가 만난 바쉬 베어 사냥꾼은 이미 3년간의 사냥 직업 교육을 다 마치시고 현장에서 오래 일하시며 TV 방송까지 타신 업계에 소문난 베테랑 중에 베테랑 이셨는데 바쉬 베어들이 움직 이는 동선을 체크하겠노라 집 안과 밖을 매의 눈으로 샅샅이 탐색하는 그의 민첩한 동작들은 흡사 영화에서 보던 인디언 들의 그 모습과 닮아 있었다.

"여기, 저기, 그리고 이쪽이 바쉬 베어들이 현재 이 집을 오가는 길입니다"라고 다부지게 이야기하던 사냥꾼 아저씨의 말대로 라면 바쉬 베어 들은 이웃집 지붕을 건너 그 집 아름드리나무를 그네 삼아 타잔처럼 우리 집으로 넘어온다는 이야기가 였다.

그 바쉬 베어의 길들을 훤히 꿰고 계시는 그들에 한해서 도사급인 사냥꾼 아저씨는

그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쉬 베어들이 집으로 오는 길을 막아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왜냐 하면 바쉬 베어를 잡는 덫을(위에 나무통처럼 보이는 사진 ) 놓고 사냥하는 것도 아무 때나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야생동물 보호법에 등록되어 있는 바쉬 베어는 원래는 사냥이 금지였으나 (예전에는 잡아서 멀리 가서 풀어 주고는 했단다. 다시 돌아오면 또 잡고... 돈 들여 잡아서 묻어 버리는 것도 아니고 멀리 숲 속에 고이 풀어 준다니

참 독일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날이 갈수록 바쉬 베어의 숫자는 늘어만 가고 그에 주민들의 피해도 급증하게 되니

헤센주에서는 바쉬 베어를 사냥꾼이 사냥해도 되는 사냥 시기 Schonzeit를 정해 놓았다.


카셀과 그 근처에서 2015년 16년에 사냥 시기에 잡혀 유명?을 달리 한 바쉬 베어 만도만 사천 마리에 달한다고 하니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바쉬 베어들의 생식기간 3월 초부터 7월 말 까지 를 제외하고 8월 1일부터 사냥 시기가 정해져 있는 이유는 민가에 피해가 되니 잡기는 잡되 야생동물의 숫자를 조율해 멸종이 되는 것은 막겠다는 이유에서 라고 했다.


(우리의 친절한 이웃 크루거 아저씨네가 직접 촬영해 주신 우리 집 지붕 밑에서 놀고 있는 바쉬 베어 들..)

(바쉬 베어들의 만행.. 지붕 한 구석을 뜯어 놓았다)

다시 돌아온 손님

어쨌거나, 그때 사냥꾼 아저씨가 내어 놓은 방법으로 그놈들의 출입로를 차단하기 위해 특수 처리된 비닐 판 같은 것을 설치하고 작업하는데 인건비, 재료비 등을 감안한 견적서는 육백 유로에서 천 유로를 잡고 있었다.

한화로 하자면 칠백 이십만 원 에서 백이십 만원 을 들여 그 바쉬 베어들이 기어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견적서에 적힌 비용이 비싸도 너무 비쌌다. 견적은 늘 그 이상 나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쓰여지는 것이 아니던가? 그 순간 나는 아주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이 바쉬 베어들이 이웃집 지붕과 담 그리고 아름드리나무를 타고 우리 집으로 기어 올라온다는데..

그쪽을 특수 비닐판을 다 깔아서 그 갈쿠리 같은 손으로 못 올라오고 쭉쭉 미끄러진다 해도

그렇다면 저 옆쪽 다른 이웃집을 통해서 온다면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그 집 까지 들어가서 작업을 할 수도 없고 말이다.

내 질문에 바쉬 베어 사냥꾼 아저씨는 잠시 멈칫하더니 그 이웃집과 의논해서 함께 설치를 하라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아 이건 아니다 " 하는 생각을 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주택가에 있는 가정집이다. 그렇게 바쉬 베어들의 출로를 따지자면 최소한 이웃하고 있는 가정집이 앞뒤 옆으로 다섯 개는 되는데 다섯 가정과 의논해서 대대적인 출로 차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 가 되기 때문이다.

그 영리한 바쉬 베어 들은 어느 쪽 에서는 뚫고 들어올 길을 찾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때 우리는 바쉬 베어 사냥꾼이 정확하게 집어 준 바쉬 베어가 들어올 수 있다는 출로를 우리가 건축물 자재 상가에 가서 비닐 판들을 이만 사천 원 들여서 사다가 직접 막았다.

그리고 몇 년간은 조용히 살았다. 바쉬 베어의 위협? 없이...


그. 런. 데 며칠 전 그놈들이 예약한 손님처럼 당당히 다시 돌아왔다.

우리의 친절한 이웃집 크루거 씨네 발코니에서 우리 집 지붕 아래에서 놀고 계시는 바쉬 베어 가족을 촬영해서 우리에게 건네주셨다.

모두 다섯 마리라 고 했는데.... 이 바쉬 베어들을 어찌해야 할지 우리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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