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하늘 꽃잎 날리던 봄에서 후끈한 여름으로 마치 제자리 멀리 뛰기 라도 해서
뛰어들어온 듯
갑자기 날씨가 30도를 웃도는 뜨겁던 5월 어느 날 오후였다.
일 년에 한 번 독일 아이들 에게도 체력장 비슷한 것이 있다.
이름하여 Bundesjugendspiele, 줄여서 Bujus라고 도 부르는 체력 테스트가 있는 이날은
아이들은 책가방을 집에 두고 운동복, 운동화 차림으로 학교 대신 시립 운동장에 모여
달리기, 던지기, 멀리뛰기 등 다양한 테스를 거친다.
그냥 앉아 있기도 헉헉 거리게 더운 날 꼬맹이들이 하루 종일 뛰고는 특별 활동반에 나왔다.
너무 덥고 지쳐 집으로 곧장 간 아이들도 있었지만 이 땡볕을 뚫고 용감하게 나온
아이들을 위해 더위를 날려줄 한국식 수박화채를 만들기로 했다.
재료: 수박 한통, 후르츠 칵테일 한통, 사이다 3컵, 아이스크림 스푼 1
커다란 볼, 국자
투명한 볼에 준비해 간 사이다 3컵에 달달한 후르츠 칵테일을 넣고 거기에
뚜껑처럼 위쪽을 잘라낸 튼실한 수박을
동그란 아이스크림 스푼으로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폭폭 동그랗게 파냈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내입으로 넣어 아~~!" 해가며 시원하고 달큼한 냄새의 수박 파기에
신이 났고 톡쏘고 시원한 사이다와 달콤한 후르츠 칵테일을 만난 수박이 어떤 맛을 낼지 너무나 궁금해했다.
물론 그사이 잘라낸 윗부분의 수박은 이미 아이들의 입속으로 흡입됐다 맛보기로~!
아이들은 폭폭 동글동글 때로는 길쭉길쭉 또로롱 야무지게 수박 속을 다 긁어 내고는 수박 국물까지 쪼르륵 따러서 수박화채를 준비했다.
이제 먹을 수 있겠구나 환호하던 아이들 중에 한 명이 두 눈을 반짝이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선생님 그럼 이 수박 통은 뭐해요? 음 글쎄... 뭐 할까? 라며 미소 짓고 있는 내게
"우리 아빠는 수박 통에 새도 그릴 수 있는데 선생님도 할 수 있죠?"라는 말로 묘하게 나를 부추겼다.
나는 차마 "너희 아버지는 태국까지 가셔서 수박에 조각하는 것을 따로 배우고 오셨나 보구나 선생님은 그런 건 못한다"
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어서 "음 선생님도 할 수 있기는 한데 (한 번도 해본 적은 없다만..) 그거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텐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했더니 귀여운 아이는 디그럭 디그럭 두 눈을 굴리며 "아니에요 그럼 우리 그냥 먹어요" 한다.
하마터면 뭉툭한 부엌칼로 수박에 조각 딸 뻔한 나는 휴우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남몰래 날리우고 대신에 꽃 모양 비슷하게 수박 통을 돌려 깎고?
그 속에 아이들이 만든 수박화채를 담자고 했다.
사실 이렇게 먹으나 저렇게 먹으나 맛은 매한가지 이겠으나
아이들은 왠지 나름 모양낸 수박 통에 자기들이 만든 화채를 담아 떠서 먹을 것이라는 것이
꽤나 그럴듯하게 들렸나 보다.
신이 나서 담아 대는 아이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다음번 수업에서는 수박을 얼려서 빙수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짜자잔~~독일 아이들이 만든 수박화채~~!
보통 한국에서는 수박화채에 우유, 연유 등을 함께 넣기도 하는데 애나 어른이나 이것저것 많이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독일 사람들 인지라 사이다와 후르츠 칵테일만 넣었지만
시원하고 달콤하니 맛나다며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했다.
그렇게 만들기도 재미났던 수박화채를 신나게 먹으며 우리는 그날의 더위를 날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