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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28. 2017

비오는 날의 빨간 사루비아


비가 내린다

내리는 빗줄기가 굵지도 얇지도 날이 덥지도 춥지도 않다.

떨어지는 맑은 빗방울 소리가 왈츠의 스텝 처럼 가볍고 쾌하기 까지 하다.

그 빗소리를 들으며 우산을 쓰고 남편과 함께 꽃과 나무를 파는 꽃상가에 들렸다.

정원, 베란다 등에 철철이 꽃을 심고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독일 사람들은 옷을 갈아입듯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 꽃을 피우는 꽃들이 시들어 가는 이맘 때면 여름부터 겨울 이 되기까지 꽃을 피우는 꽃들로 바꾸어 심고 가을걷이 채소 등을 심느라 바쁘다.

사람들로 붐비리라 예상했던 꽃상가 안은 비 오는 평일 이여서 그런지 한산하고 여유 로왔다.


그래서 였을까?

전면 유리로 되어 있는 꽃상가의 천정..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맺히던 빗방울 들이 또르륵 또르륵

굴러 흐트러지게 핀 꽃들 위로 방울방울 떨어지며 톡 톡 하고 내는 소리들은 마치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비밀의 정원을 거닐고 있는 환상 속 으로  빠져들게 한다.


어린 시절 두근두근 거리며 재밌게 읽었던 비밀의 화원이라는 책을 떠올리며

활짝 핀 꽃들을 구경하는 기분은 향 짙은 에스프레소 한 모금을 넘기며 화이트 초콜릿 한입 머금은 느낌이다.


꽃을 좋아하시는 친정엄마가 유난히 좋아하시는 안개꽃을 한참 넋 놓고 보고 있다가

내 눈에 들어온 빨간 꽃 사루비아.

유리 구슬 같은 빗방울 내려앉은 사루비아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추억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여름이면 저렇게 빨간 사루비아 꽃이 어린 시절 증조할머니부터 조카까지 5대가 함께 살았던 한옥집 마당 한켠 그네가 매달려 있던 화단 한 귀퉁이에 흐트러 지게 피어 있었다.

어느 날 그네를 타던 내게 엄마는 빨간 사루비아 꽃잎 사이에 하얀 대롱을 쭉 뽑아 올리며 "이거 요렇게 입에 넣고 쪽 빨면 꿀이 나온다" 라며

내게 사루비아 꽃 먹는 방법을 알려 주셨고

그 빨간 사루비아 를 어린 나는 그네를 타다 가도 엄마와 숨바꼭질 하며 뛰어놀다 가도 하나둘 따서 입속에 넣고는 했었다.

지금처럼 과자에 사탕에 넘쳐 나는 간식거리가 그리 흔하지 않던 그때 그 시절 빨간 사루비아 는 엄마의 특급 간식거리 중에 하나가 되었다.

빨간 꽃잎 사이에 하얀 꽃대따서 입속에 쏙 넣으면 달달한 꿀이 입안으로 굴러 들어오던그 보드랍고 달콤한 그느낌은.... 옷장 문을 열면 늘 나던 엄마의 보드라운 블라우스에서 나던 향긋한 냄새와 닮아 있었다.

그네를 타며 까르르 웃가도..엄마와 숨박꼭질을 하며 뛰어 놀다 가도 따서 먹던 빨간꽃 사루비아...

어린 시절... 한 장의 흑백 사진 같은 엄마와 의 추억을 살며시 떠올리며 배시시 웃던 나는

남편이 안겨준 빨간 사루비아 꽃 화분 한아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며......

우리 아이들 에게도 먹어 보라고 하면

우리가 토끼야? 벌 이야? 꽃을 먹게? 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다시금 웃음을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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