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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Feb 18. 2018

독일 작은 도시의 일요일 아침

일요일에 빵 배달


독일의 일요일 아침은 조용하다 못해 고즈넉하다.

한 폭의 동양화에 그려진 강가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염없는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처럼 앉아 명상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적막함에 묻혀 있다.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 일요일... 그것도 이른 아침에는 큰 도시도 마찬가지 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는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조차 드물다.

나는 이 적막강산 같은 모든 것이 멎은듯한 고요함을 사랑한다.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움직이고 흐르던 모든 것이 어느 순간에 멈춰 서고 주인공만 움직이고 있는 묘하게 낯설고도 생뚱한 설렘이랄까?

아무 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시간이 좋아 일요일 아침 이면 자진해서 식구들 먹일 빵을 사러 집을 나선다.


그래 봐야 동네 빵집에 빵 사러 나가면서 미니시리즈 라도 찍는 것처럼 요란스레 느낌이 충만한 이유는 아마도 저 멀리 떠 올라오는 둥근 해를 마주 해서 일 것 같다.

이렇게 회색 하늘을 벗어나 맑은 날 이면 운 좋게도 선명하게 붉고 둥근 해를 만날 수 있다.

독일은 사람도 크고 사물도 큰 것이 많다. 그중에는 달도 크고 해도 크다.

정동진 바닷가에 일출이 아녀도 동네 한가운데 둥그렇게 떠오르는 해는 멍하니 서서 한동안 바라볼 만큼 충분히 감동적이다.


모퉁이 돌아 빵가게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븐에서 빵 익어 가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독일에서 일요일 아침에도 문이 열린 곳이 라면 빵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 오는 빵가게 다.

지금 막 구워 낸 노릇노릇한 빵들은 한쪽에서 한 김 식히고... 하얀 반죽에 동글동글한 빵들은 오븐에 넣고... 다 식혀진 빵의 겉껍질을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 바삭하는 소리가 들리는 탱탱한 빵들을 나누어 진열하느라 빵가게 아저씨의 손은 소리 없이  분주하다.


나는 "나 방금 오븐에서 나왔음" 하는 자태를 뽐내는 빵들을 눈으로 감상하며 어떤 녀석들을 데려 가야 식구들이 좋아할까를 곰곰이 생각한다.

잡곡빵을 좋아하는 딸내미를 위해서 시아 씨 가  Chia samen brötchen 들어간 빵, 해바라기 씨가 들아간 빵, Sonnenblumenkern brötchen 그리고 종합 적으로 여러 잡곡이 들어간 빵 Mehrkorn brötchen 이렇게 세 종류의 잡곡빵 (세 개 사면 세일 가격..)을 고르고 소시지를 끼워 먹는 것을 좋아하는 막내와 어제 우리 집에서 놀다 함께 주무신 막내 친구 헨리를 위해서 독일빵 nomale brächen이라고 불리우는 흰 빵을 담고(보통 그릴 해서 구운 소시지도 이 빵에 끼워 먹는다.)  종종 부드러운 촉감과 커피의 환상적인 궁합을 선호하는 남편과 나를 위해 크로와상을 골랐다.


가방 가득 빵 봉지 들을 담아 걸을 때마다 고소한 향을 흩뿌리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골목길에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개를 아니 반려견을 동반하고 산책을 하고 있거나 정말 부지런한 사람 몇 명은 아침 운동으로 조깅을 하며 지나간다.

게 중에는 빵 가게로 빵을 사러 가는 사람 들도 있으리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빵가게에서 오늘 제일 먼저 구워낸 빵을 내가 담아 간다는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에 콧노래가 더해진다. 아마도 학교 다닐 때 일등을 해본 적 없는 억울함? 이 이상한데 발동되는 듯하다.

제일 먼저 샀다고 빵맛이 다른 것도 아니건만 하얗게 쌓인 눈길에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제일 처음 발자국을 남겼을 때만큼 뿌듯함이 퍼져 가는 햇살처럼 넘실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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