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봄이 오려나?
보드라운 햇빛이 코끝을 간질이는 따사로운 주말 아침이다.
이러다 봄이 오려나? 싶은 설렘마저 피어 난다.
언제 그렇게 눈이 나리고 길이 꽁꽁 얼어붙던 영하의 날씨였던가 싶게 푸근한 날씨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겨울에 영하의 날씨야 종종 만나지는 일이었건만... 올 겨울은 마치 한국의 겨울을 빌려 온 듯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하얗게 얼어붙은 길이 그랬고... 콧속이 뻥하고 뚫릴 듯 차갑기 그지없던 바람이 그랬으며...
녹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던 눈들이 그랬다.
영하 3도 4도 여도.... 낮 이어도 어둡고 습하게 추워서 없던 신경통 마저 도질 것 같은 독일의 겨울 날씨와는 다르게 영하 10도가 넘어 짱 하게 추워도 햇빛 가득한 한국의 겨울 날씨를 몹시도 그리워했었다.
추워서 종종걸음을 걷다가도 골목길 모퉁이를 돌면 고소한 기름 냄새 솔솔 풍기며 널찍한 검정 프라이팬 위에 하얀 호떡을 굽고 있는 아주머니와 새하얀 연기를 몽글몽글 뿜어 대며 단내가 진동하는 달콤한 군고구마를 굽고 계신 아저씨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날씨 말이다.
내가 그리도 그리워했던 아싸 하게 추운 겨울 날씨가 계속되었건만 문제는....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와 무서운 속도로 돌고 있는 감기였다.
독일은 올겨울 감기 대란...
영상 7도 8도 에서 어느 순간 영하 11도 12도를 오가던 독일은 여러 유형의 독감이 동시에 돌기 시작했고 가정의 들도 종합병원도 감기 환자들로
넘쳐 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한학급에 여러 명이 감기로 학교를 못 나왔고 교사들도 병가를 낸 분들이 점점 많아졌으며....
직장에도 병가를 내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요가, 피아노, 기공, 농구 등의 취미교실 들은 아예 수업이 취소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었다.
어느 겨울이던 감기와 독감 경보는 늘 있던 일이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했다.
길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콜록콜록 기침을 해 대는
사람들이 즐비하던 2월 중순 어느 날.. 개구쟁이 우리 집 막내가 학교 다녀온 후에 유난히 피곤해하더니 그 밤에 열나고 콧물을 훌쩍이며 기침을 해서 학교를 며칠 못가는 것을 시초로 우리 집에서도 감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매일 평창 올림픽 소식을 독일의 TV 방송과 라디오에서 전해 들으며 올림픽 스페셜 강원도 요리 특강으로 연이은 한국요리강습을 소화하던 그때에..
강습을 끝내고 집에 오니 목이 따끔 거리는 것을 시점으로 열이 나고 기침, 콧물, 근육통... 종류별로 들어 있는 종합감기가 내게도 찾아왔다.
항생제 잘 안 주기로 유명한 독일에서 감기로 병원에 가 보아야 해열제와 기침에 관련된 시럽, 콧물 멈추는 스프레이 등 약국 가면 바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주거나 집에서 차 많이 끓여 마시라는 말을 듣고 오기가 일쑤이니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여러 종류의 감기 걸린 사람들과 마주 앉아 서로의 감기균만 주고받고 오지 싶어 웬만하면 감기로는 병원을 잘 가지 않는다.
독일 종합병원 응급센터에서....
그런데 이번 감기는 며칠 아프고 나면 괜찮아지던 기존의 감기 와는 다르게 일주일을 꼬박 앓아도
나아지지를 않는 거다. 이주일이 다 되도록 나아질 기미는커녕 몸상태가 더 나빠지고 있었고...
남편은 아버님 기일을 지내기 위해 한국에 나가 있고 학교 다니는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난감 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던 주말 오후에 딸내미에게 막내를 맡겨 놓고 남편이 일하는 종합병원 응급센터로 갔다.
몇몇 얼굴 아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친절한 도움으로 접수는 빠르게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응급실은 누가 먼저 왔는가 가아니라 누가 더 응급한 상황인가에 따라 진료 순서가 정해 진다.
열이 있는 사람들은 독감일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고속버스 터미널 같은 대기실에 주루미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야 마스크를 쓰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독일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모습이라
사람들은 눈만 내놓고 마주 앉은 모습에 서로 겸연쩍어했다.
기침을 숨 넘어 가게 하는 사람... 아예 대기실 의자에 드러눕다 시 피한 사람... 울고 불고 하는 애기를 안고 끊임없이 복도를 오가는 사람...( 독일 응급실은 만16세를 기준으로 어린이 응급실과 일반응급실로 나뉜다 그래서 보통 건물이나 층이 다른데 아마도 엄마가 아픈데 아이를 맡길곳이 없어 응급실로 데려 왔나 보다...)
수시로 응급 환자들을 수송하며 오가는 빨간 옷을 입은 구조대원들.... 응급센터 안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두 시간이 넘어 검사를 위한 혈액을 채취하고 해열제 수액을 맞았다.
독일의 응급센터, 응급실은 대기실과 복도만 오픈되어 있고 그 외에 진료실들이 외과, 내과 등의 상황에 맞게 구분되어 모두 문이 달린 각각의 크고 작은 방으로 나뉘어 있다.
즉 환자들이 상태에 따라 각각의 방에서 진료를 기다린다. 물론 진료실로 들어가는데 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는 그때그때 응급실 상황에 따라 달라 지므로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응급실 29번 방 안에서...
29라는 숫자가 쓰여있는 응급실 작은방 간이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으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열도 높고... 기침도 심하고... 숨 쉬기도 힘든데....
만약 폐렴까지 간 상황이라면 입원을 해야 하나?
남편이 한국에서 돌아오려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내가 입원을 하게 되면 우리 아이들은
누구에게 맡겨야 하나...
하나하나 떠오르는 친구들의 얼굴들과 함께 나름의 계획을 세우며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구강 검사와 혈액 검사 흉부 엑스레이 등의 검사도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며... 응급실 안에서는 인터넷도 전화도 잘 터지지 않아 아이들과 연락도 안되고...
멍하니 누워 있으려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평소 라면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에 응급실 하얀 벽보고 누워 벽면 한쪽에 구비되어 있는 서랍장 안에 주사기 숫자를 눈으로 세고 있으려니..... 학교 갈 책가방은 챙겼니? 도시락 통은 내놨니? 준비물은 체크했니? 숙제는 빠짐없이 했지? 해가며 아이들에게 폭풍 잔소리를 해 대며 밥 하고 반찬 하던 나의 소소하고 평범한 저녁이 눈물 나게 그리웠다.
내 생애 가장 길었던 5시간의 외출
해열제 수액을 다 맞고도 팔에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주사관을 달고 있은 체 응급실 간이침대에 누워 계속 기다리 기만해야 하는 상황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과 연락도 되지 않은 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급해지고... 입원을 시키던 집에 보내 주던 빨리 의사가 들어와서 검사 결과랑 좀 알려 주면 좋으련만 아무리 기다려도 의료진 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만약 입원을 해야 한다면 아이들을 부탁할 친구 들 에게 어떻게든 연락을 해야 하는데...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안 되겠다 싶어 응급실 한쪽 벽 구석에 있는 빨간 단추를 눌렀다. 원래는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비상벨인데...
독감 검사 결과 용지가 나온 지 한참이 지나서도 아무도 오지 않길래.. 미안 하지만 눌렀다.
종종 응급실 상황을 남편에게 전해 들어서 급한 응급이 터졌을 때 병원 상황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고..
지금처럼 독감에 감기에 기타 등등 환자들이 폭주? 하는 상황에 의료진들이 얼마나 힘든지 익히 알고 있어 정말 망설이다 그 벨을 눌렀다.
그때가 내가 응급실로 들어와 아이들과 연락도 되지 않은 체 4시간이 넘어가고 있던 때였다.
오렌지색 벨에 빨간 불이 켜지자 곧 간호사 선생님 중에 한 분이 들어왔다.
나는 조용히 지금 바쁘신 거 충분히 아는데 검사 결과 용지 들어온 지 벌써 한 시간이 넘었고 집에 아이들 혼자 두고 와서 마음이 좀 급하다. 언제쯤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물었다.
그랬더니 간호사 선생님이 저 벽 넘어 계신 의사 선생님에게 묻고는 지금 결과 나온 것들 모아서 퇴원 편지 (독일 응급실에서는 환자를 퇴원시킬 때 꼭 검사 결과와 진단 결과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앞으로 치료해야 할지 등의 소견이 상세히 적혀 있는 편지를 써주어야 한다.)를 작성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응급실에 간지 5시간 만에 정확히는 5시간 30분 만에
혈액, 구강, 엑스레이 검사 결과로 다양한 독감 중에 하나도 아니요 폐렴도 아니 라는 검사 결과와 일반 감기 라는 진단 내용과 소견이 적힌 퇴원 편지와 해열제와 차를 많이 마시라는 예의 그 처방을 받은 체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내 생애 가장 길었던 외출이었다.
보너스
To. 애정 하는 독자님들께...
사랑하는 독자님들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독일에서 인사드립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이 글을 쓰면 서도 울컥합니다.
정말 2주 동안은 아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팠고 남편 없이 아이들과 영하 12도의 한파 속에서 마트도 주택가에서 멀리 있고 배달 서비스도 낙후되어 있는 독일 땅에서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해서 정신없었습니다.
그동안 날씨도 봄을 향해 가고 있고 한국 갔던 남편이 아이들 좋아하는 보기만 해도 그저 흐뭇한 일용할 양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고 저도 이제 징그럽게? 길게 아프던 감기에서 벗어나 기운을 차리고 있습니다.
3-4주 사이였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지금이야 너무 엄살을 떨었나 싶어 응급실까지 다녀온 것이 민망하기도 하고 웃음도 나지만 그때의 상황은 제게 진짜 심각했답니다.
어쨌거나 이번 기회에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바라요.
독일에서 사랑을 전하며... 김중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