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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22. 2019

세상에 둘도 없이 특별한 삼계탕

범생이와 날라리아


자라 면서 언제나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고 단 한 번도 개근상과 우수상을 놓쳐 본 적이 없다는 남편과 공부 빼고 웬만한 것은 다 잘했던 나는 각자 유학 나온 독일 땅에서 우연히 만났다.

살다 보니 닮는다고 20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은 부부가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 우리지만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오매나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인간이 존재할까?" 싶을 만큼 서로가 너무나 달랐다.


가령, 햇빛 귀한 독일 땅에서 아침부터 해가 짱짱한 날이면 남편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다들 날씨 좋다고 야외로 나가기 바쁠 것이니 텅 빈 도서관에서 앉고 싶은 자리 골라 앉으며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좋냐는 거다.

날씨 좋은 날 라테 한잔 손에 들고 햇빛 받으며 마냥 걸어도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내게 그런 날 도서관 간다고 신나 있던 남편은 정말 신기한 범생이 일 뿐이었다.


그런 남편은 날씨가 좋으면 햇살이 따사로워서 비가 오면 빗방울 소리가 맑아서, 바람 불면 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더없이 경쾌해서... 수도 없이 놀러 갈 핑계를 만들어 내던 내가 그렇게 신기하더란다. 예를 들어 공부한다고 일찌감치 도서관에 좋은 자리 턱 하니 맡아 놓고 책은 바리바리 싸들고 나와서는 머리를 맑게 할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서, 지금 딱 햇빛의 따사로움이 적당한 온도라서, 어디선가 커피 향이 풍겨 오는 것 같아서... 십 분이 멀다 하고 휴식의 다양한 핑겟거리를 대던 내가 남편 에게는 세상 신기한 날라리 였던 거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하던 우리는 그 다름에 이끌려 불같은 연애를 시작했고 연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결혼을 하겠노라 함께 한국으로 들어갔다. 그때, 공부만 하던 아들이나 맨날 놀다 이제   공부 좀 해보겠다고 유학 간 딸이나 양가 부모님을 놀라게 해 드리기에는 매한지였던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절초풍하셨던 분이 시아버지 셨는데...

아버님은 그 당시 작은 로망이 하나 있으셨다.

그것은 가장 가깝게 지내시는 친구분들 중에 예쁘고 착하고 똑똑한 따님을 두고 계신 친구분과 사돈이 되어 가족으로 거듭나는 거였다. 그런데  이미 오랜 연인이 있었던 둘째 도련님이나 학생 데모에 열일 하고 있었던 막내 도련님이나 그 꿈을 이루어 드리기에는 애즈 녁에 글렀다. 그러니 아들 셋 중에 속 썩인 적 한번 없이 공부 잘하고 착해서 언제나 자랑 거리였던 큰아들이 그 로망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 공부도 안 끝난 아들이 어느 날 독일에서 연애를 했다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다짜고짜 결혼하겠다 하니 기대하고 계시던 아버님 께는 날벼락이 따로 없었던 모양이다.


철벽수비 시아버지 기습공격 며느리


그렇게 처음부터 마이너스 점수였던 탓에 결혼하고 나서도 시아버지께 점수 좀 따 보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만 큰며느리지

한국에 사는 것도 아니요 달랑 결혼식만 한국에서 올리고 머나먼 독일 땅에 뚝떨어져 살고 있다.

집안의 대소사를 일일이 챙길 수가 있나... 명절을 함께 지 수가 있나 자주 만나야 없던 정도 쌓일 것인데..

어쩌다 때 되면 전화로 목소리 들려주는 것이 다인 큰며느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냉정히 말해 가족 이라기보다 아들이 함께 살고 있는 남의 집 딸내미였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그때가 지금 스무 살이  다 된 딸내미를 가졌던 해였다.

남편이 갑자기 한국에 다녀 올 일이 생긴 것이다. 배는 불러왔지만 이미 안정기에 들어갔기에 세 살이던 큰아들을 데리고 한국 나들이를 따라나섰다.


그 당시 독일에서 혼자 상상하기로는 이번엔 다른 때보다 한국에 조금 길게 있을 예정이니 그동안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했다. 이것도 해드리고 저것도 해드려야지 계획을 빵빵하게 우며 말이다.


막상, 한 지붕 아래 함께 지내게 되니 아버님께 독일에 살고 있어 자주 볼 수 없 손주는 더 애틋하고 귀엽지만 며느리는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셨다. 

그래서 시아버지는 매일 바쁘셨다.

아침 식사도 집에서 하지 않으시고 친구들과 새벽에 만나 해장술 곁들인 식사를 하시고 저녁 식사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늦은 시간에 약주 한잔 거나 하게 걸치시들어 오시니 같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어도 만날 시간이 없고 그동안 갈고닦은? 솜씨로 밥상 한번 제대로 차려 드릴 일이 안 생기는 거다.  

생각보다 아버님의 수비는 단단했고 그래도 언젠가는 득점을 할 틈이 있겠지 하던 나는 독일로 다시 돌아올 날짜가 다 되어 가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해서,

며느리와 함께 있는 시간을 어떻게든 줄여 보기 위해  집 밖으로 돌고 계시는 시아버지를 꼼짝 못 하시게 기습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아버님의 생신은 원래 가을인데 우리가 한국에 나온 김에 생신잔치를 미리 당겨서 해드리는 것으로 하고 만나시는 친구분들 모두와 일가친척들 그리고 이웃사촌들을 금, 토, 일 에 걸쳐 팀?을 짜서 초대하고 집에서 생신 잔치를 삼일 내리 계속하는 것으로 일명 동네방네 삼계탕 작전?을 개시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둘도 없이 특별한 삼계탕


당연히, 덥고 더운 8월 삼복더위에 신선한 식재료들 장 봐 오고 전을 부쳐 대고 잡채 할 채소들을 볶고 그날의 메인 요리인 닭들을 깨끗이 손질해 삼 넣고 대추 밤 넉넉히 넣고 삶아서는 그 진한 국물에 찹쌀과 녹두로 죽도 끓이고 고기도 보기 좋게 담아내고 하는 일들이 그리 간단한  일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은 배달이라는 기막히게 편하고 친절한 서비스가 있지 않던가, 만약 그 잔치를 배달 서비스 제대로 없는 독일에서 벌렸 더라면 주말 내내 식재료 장 봐서 이고 지고 나르다가 뻗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배불러서 시아버지 생신 잔치해드린 다며 정 많은 이웃사촌 들과 친척들이 팔 걷어 부치고 자기네 잔치 인양 도와주신 덕분에  마을 회관에 모여 동네잔치 준비하듯 동그랗게 둘러앉아 수다 떨며 동그랑 땡에 깻잎전, 고추전 할 것 없이 부쳐 가며 중간중간 따끈한 전 맛보는 재미도 솔솔 했오랜만에 그립던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몸은 고됬어도 즐거웠다.


또, 보너스로 궁금함, 쑥스러움, 겸연쩍음, 흐뭇함 이 시시때때로 바뀌는 아버님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엿볼 수가 있어 더 재밌었다. 매일 만나시는 분들을 집으로 초대해 모시기로 해놓았으니 밖에 나가시고 싶어도 만날 사람이 없어 잔치하는 내내 계속 집에 계실 수밖에 없었던 시아버지는 부엌과 거실 가득 친척 아주머니들 동네 이웃들이 들고 나며 시끌벅적 하니 궁금해하시다가  부치다 맛보시라 드리면 겸연쩍어 하시면서도 맛보시고 잡채 간이 맞는지 드셔 보시라 하면 나는 이제 됐다 하시면서도 간 보아주시고 수시로 불쑥불쑥 접시 들고 쫓아다니는 큰며느리를 처음처럼 불편해하지 않으시고 어느새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그 삼계탕 잔치 이후로 였던 것 같다. 독일에서 종종 시아버지께 전화를 드리고 아이들 꼬물꼬물 커가는 이야기 독일에서 사는 이야기 한참 종알 종알 말 많은 며느리의 전화를 예전처럼 바쁘다며 먼저 끊지도 않으시고 간간이 웃어 주시기도 하고 또 "아프지 말아야 한다 건강이 최고여" 걱정해 주시기도 하고 그렇게 점점 가족이 되어 가기 시작했던 시기가 말이다.


한국식 밥상은 그렇게 함께 둘러앉은 자리에서 국을 나누고 밥을 나누는 것뿐만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이는 서로의 마음 또한 나눈다.

마치 더운 날 끓여낸 삼계탕 안에서 함께 우려낸 밤에도 대추 속에도 찹쌀과 녹두 속에도 그 진하고 깊은 닭국물 맛이 베어 같은 맛을 내는 것처럼 그렇게 같은 빛깔의 정을 가족 간에 소리 없이 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말없이 며느리 밥그릇 가까이 반찬을 슬그머니 밀어주시던 시아버지와 따뜻한 밥상을 마주할 수 없다.

그러나 매해 더운 여름날이 찾아오면 삼계탕은 어김없이 차려지는 우리 집 특별식이다.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붓고 삼계탕 끓일 준비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시아버지의 살짝 붉어지시던 눈시울과 쑥스러운 듯 웃음 맺으며 접히던 입가의 투박한 주름.... 그리고 그날의 잊을 수 없는 삼계탕 맛이 선명하게 떠오른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특별했던 그 맛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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