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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04. 2019

독일에서 먹는 감과 할머니의 홍시

독일에서 먹는 감


자주 가는 마트를 갔더니 가을임을 알리듯 감들이 행사 품목으로 나와 있다.

아직은 푸른빛이 남아 있는 골라잡아 한 개에 77센트 하는 감은 한화로 한 개 천 원 정도 한다.


조금 있다,가을이 깊어지면 45센트 정도로 세일이 되어 나올테고 터어키 사람들이 하는 과일 가게에 가면 열개 또는 열두 개 담겨 개당 35센트 정도에  박스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때 이른 감 맛을 보고 싶어 얼른 세 개만 장바구니에 담았다.

종종 골라 담은 감 중에 짙은 오렌지 빛이 돌아도 꼭지 부분이 아직 파란 감들 중에 한입 머금은 감의 맛이 떫어,그 입안 가득한 느낌이 하루 종일을 가는 경우도 있는터라 "먹어 보고 또 사지 뭐!" 하는 마음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취향이 단단한 단감 쪽이 아니라 물렁한 홍시 쪽이라 감들이 좀 더 짙은 주홍색이 될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심사도 있었다.


어릴 때 한국에서 먹던 감을 떠올려 보면 도리 납작하고 짙은 오렌지 빛깔에 껍질을 벗기면 중간에 갈색의 씨앗도 네 방향 맞춰 들어 있던 단감과 그것 보도 갸름하게 생긴 짙은 주홍빛의 껍질을 살짝 손으로 벗겨내면 마치 샐로판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던 물렁물렁한 홍시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 말캉하고 달달한 한국의 홍시는 아쉽게도 독일에는 없다.

요 거이 Sharon  생긴 것도 맛도 거의 우리 단감 이랑  같다.


독일에서는 세 가지 이름의 감을  만날 수 있는데, Sharon, Persimone, Kaki 가 있다.

Sharon은 이스라엘 등 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우리의 단감과 거의 같고 Persimone, Kaki는 우리의 홍시보다 크고 껍질이 두껍고 과육이 더 단단하다. 스페인, 터키, 중국 등에서 들어온다.


그런데 이 감들 중에 노란빛이 조금 더 적고 주홍빛이 더 도는 Kaki를  며칠 묵혀 두면 말랑해져서 숟가락으로 떠서 먹을 수 있고 아쉬운 대로 홍시의 느낌으로 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감 하면 독일 사람들은 열대 과일처럼 특별한 과일로 생각해서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그냥 먹는 것뿐만 아니라 감이 들어간 샐러드부터 케이크까지 다용도로 활용하고 있고 비타민이 풍부하고 맛도 좋은 겨울철 과일로 강추받고 있다.(주로 10월부터 12월 사이에 독일 마트에서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Kaki가 물러지면 요렇게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다.
할머니 와 홍시
 

어린 시절 인천에 살고 계시던 할머니가 어쩌다 우리 집에 오실 때면 나는 언제나 방학 맞은 아이처럼 들뜨고 신나 했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엄마가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하게 해 주고 내가 하기 싫어하던 일도 말없이 척척 해주던 온전한 내편 이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언제나 한복을 입고 머리에 쪽을 지고 비녀를 꽂고 계셨다.

할머니의 그 한복 안에는 속치마도 있고 또 그 안의 고쟁이 바지 주머니 안에는 엄마는 이썪는다 못 먹게 하는 비닐 종이에 곱게 쌓여 있던 갈색의 캐러멜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 할머니의 고쟁이 주머니에서 나오는 달콤한 캐러멜을 얻어먹으며 할머니 옆에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는 무척 이나 좋았다.


"할머니 옛날 얘기해줘" 하면 나오는 이야기는 사실 매번 같은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였건만 나는 그 이야기를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듣고는 했다.

할머니의 캐러멜이 맛나서였던지, 아니면 할머니의 리를 쪽지기 위해 매일 바르던 머릿기름 냄새가 좋아서였는지 나는 할머니 옆에서 그렇게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스르륵 잠들고는 했다.


그리운 내편, 깊어지는 가을...


그 시절 우리 집 화장실은 마당을 지나 밖에 있었고 그곳은 언제나 어둡고 냄새나고 추웠다. 그래서 항상 밤이면 마루에 요즘은 박물관에나 가야 구경을 할 수 있을 요강이라는 동그랗게 생긴 이동식 화장실에 앉아서 볼일을 보고는 했었는데 할머니는 언제나 그 요강을 말없이 비워 주시고는 했다.


세 아이 중에 맞이였던 나는 엄마를 도와 어린 동생들을 대신해서 밤새 묵직 해진 요강을 비우는 일을 종종 했어야 했기에 그 싫은 일을 기꺼이 대신 맡아해 주시던 우리 할머니는 온전히 내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할머니가 며칠이 지나 가시는 날이면 언제나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나가고는 했다.

할머니가 탄 버스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달려가며 아쉬운 마음을 담아 손을 흔들며....


그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던 과일이 홍시였다.

치아 가 좋지 못해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도록 물렁물렁한 홍시...

틀니를 끼시던 할머니는 그 말캉한 홍시를 우물우물 꿀떡 드실 때면 아이처럼 말갛게 웃고 계시고는 했는데...


세상살며 아무런 계산과 이유 없이 온전한 내편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된 나이에 머나먼 독일땅에 살고 있다 보니...

그 예전의 할머니와 한국의 홍시가 길가에 떨어진 낙엽 처럼 하나 둘 그리움이 되어 쌓여간다.

깊어 가는 가을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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