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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26. 2020

코로나 19에도 피는 엄마의 꽃.


코로나 19로 갑자기 내려진 휴교령에 때아닌 방학을 맞이해 온라인으로 받은 숙제 하는 것 외에는 게임하며 친구들과 온라인 상에서 만나는 것이 전부인 막내와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이것저것 아르바이트하며 자금을 모으고 자동차 면허를 준비하던 딸내미는 코로나 때문에 더 이상 알바도 못하고 필기시험 붙었는데 실기 시험을 준비할 수 없어 집콕하고 있은지 어언 몇 주째...


너무 심심했던 겐지 아니면 이렇게 라도 알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정원 일에는 통 관심도 없던 딸내미가 막내를 꼬셔서 나리를 데리고 정원 정리를 하겠노라며 밖으로 나갔다.

웬일이래?...

날씨도 좋으니 우리 집 멍뭉이 데리고 장난치며 놀다 대충 하고 들어 오려니 했다.

어? 그런데 녀석 들이 진짜로 정원 청소를 시작했다. 삽 들고....



정원 안 아름드리나무에서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려 겨우내 구석구석 박혀 있던 낙엽 찌꺼기 들을 긁어내어 커다란 쓰레기봉투 안에 소옥 속 집어넣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넣다 보면 반은 바닥으로 다시 굴러 떨어지기 일쑤이고 구석에 박혀 있던 낙엽을 긁다 보면 흙이 반이상 딸려 와서 다시 털어 내야 하고....

그런데 두 녀석이 제법 잘하고 있다. 일곱 살 차이가 무색하게 별것 아닌 일로 투탁 거리는 평소와 다르게 한 녀석이 봉투 들고 있으면 다른 녀석이 그 안에 긁어모은 낙엽 눌러 담으며 금방 커다란 봉지를 꽉꽉 채운다.

그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열린 문틈으로 빼꼼히 고개 내밀고 거실에서 구경하던 나는 어느새 신발 신고 따라 나왔다.

정원에 나와 서있자니...

아이들이 치우고 있는 낙엽 틈 사이사이로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았는데 하나 두울 고개 내밀고 있는 꽃들이 아이들 보물찾기 할 때 여기저기 숨겨 놓은 색종이들처럼 눈에 들어온다.



심어 놓은 적도 없었는데... 바람 따라 꽃씨가 살포시 내려앉았던 겐지.. 정원 바닥 돌 틈 사이에 노란 꽃이 피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친정엄마가 오셨을 때 만들어 주고 가신 엄마의 꽃밭에도 하나 둘 꽃이 피어난다

마치 지금 만나야 한다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친정 엄마는, 관리 안 해 줘도 알아서 자생한다는 식물들 마저도 보내는 딸내미 하고는 다르게 쌔들 쌔들 하게 시들어 가던 식물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파릇파릇 다시 살려 내시는 신기한 손을 가지셨다.

그런 엄마가 독일 딸내미 집에 놀러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것이 꽃밭을 만들어 주시는 거였다.

독일 정원 스타일하고는 조금 다르게 아기자기한 모양새를 띠는 꽃밭에 하루 종일 나와 앉아 즐거운 콧노래 부르며 이쪽 일구고 저쪽 일구어 색색의 꽃들을 심고 있는 동양 할머니 모습에 우리 이웃들은 엄지를 높이 치켜들며 원더풀을 외쳐 주었 더랬다.

남의 집 꽃밭이지만 자기네 마음대로 엄마의 꽃밭이라 이름도 붙여 주고 말이다.

 


해마다 엄마의 꽃밭에 꽃이 피어 나기 시작할 때면 이웃들은 이렇게 묻고는 했다, "어머니는 언제 또 오시니? 꽃밭 궁금하실 텐데..."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답 하고는 했다 "내년 이맘때면 꽃밭에 새로운 꽃 심으러 오시지 않을까?" 그때 그 봄에는 지금 땃땃한 햇빛 쬐며 '제네 저거 언제 끝내고 나랑 놀아 줄려나, 내가 좀 도와 주리? '하는 얼굴로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는 나리는 아직 우리 집에 오기 전이었고, 이제는 키가 누나만 하고 힘은 훨씬 더 세서 봉투를 붙잡고 있는 것을 지가 하겠다며 의젓하게 서있는 막내는 작았으며, 낙엽 긁어모으는 일이 점점 무거워지는 봉투 붙잡고 있는 것보다 훨씬 일이 많은 거라며 생색내고 있는 딸내미는 어린 소녀였다.

엄마의 꽃밭에 네 번째 봄이 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이웃 간에도 보이지 않는 담장이 생겨 버린 정원에도 엄마가 다녀가신 그 봄과 다름없이 똑같은 빛깔과 향기의 꽃들을 피워 내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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