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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24. 2020

독일에서 먹는 외할머니 컵라면

컵라면을 먹으며 건져내는
 추억 하나


부르륵부르륵 탁 소리도 경쾌하게 물이 꽉 들어찬 주전자가 다 되었음을 알린다. 

따뜻한 봄 날씨 지만 한가득의 뜨거운 물이 필요하다.

며칠 전 동네에 있는 아시아 식품점에서 한국식품들을 비상식품으로 요것조것 담아 왔다.

그 덕분에 오늘 점심은 간편하고 맛나게 라면에 밥 말아먹는다. 아빠는 매운 라면, 그리고 아이들과 엄마는 매운 라면으로...


우리 집,나이도 식성도 다른  아이는 모두 한국 컵라면을 좋아한다.

건강한 식생활과 환경오염에 관심이 많은 큰아들도 컵 라면 앞에서는 "한동안 안 먹었으니까..." 라며 조금 관대? 해 지고, 주기적인 다이어트로 칼로리에 민감한 딸내미도 "먹고 운동하지 뭐!" 하며 느슨해지며 맛난 음식 한 접시면 세상 행복한 막내는 "오예에 라면, 라면!" 해가며 엉덩이를 씰룩 씰룩한다.


그 특유의 짭조름하면서도 맛난 라면의 맛이 좋아서 이기도 하지만 컵라면을 먹을 때면 언제나 그릇도 필요 없는 재미난 외할머니 방법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가 아마 큰아이가 지금의 막내보다 조금 어렸던 10살쯤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아이들 방학에 맞춰 온 가족이 한국에 갔었다. 모처럼 할머니네 놀러 온 귀한 손주들에게 무얼 해주면 좋은 추억이 되려나 고민하던 친정 엄마는 근처 산으로 놀러 가자고 제안하셨다.


넓고 푸른 들판과 커다란 나무들로 우거진 숲을 이루는 독일 산과는 다르게 오밀조밀 생긴 산길을 따라 걸었다.앞뒤로 손을 흔들며 어허 어허 하는 추임새를 넣으며 마치 운동을 하듯 산길을 걷는 할아버지,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마치 알고 지낸 사람 인양 "할머니랑 산에 왔구나 씩씩하게 잘 걷네.." 하며 다정스레 말을 걸어 주는 아주머니..

한참을 걸어 올라간 산 중턱에 앉아서 쉴 수 있던 작은 정자...집 같이 지붕이 있고 방 처럼 신발 벗고 올라가 앉을수 있그곳에서 먹었던 컵라면...

아이들 눈에는 색다른 풍경만큼이나 다른 색의 정스러움... 그리고 맛난 컵라면... 그 모든 것이 외할머니와 추억으로 남았다.


그날 외할머니는, 수프 올려진 컵라면에 따뜻한 물 붓고 다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컵라면 뚜껑을 열어 고깔 모양으로 접어 익은 라면을 담아 후후 불며 먹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셨다.

"상진아 유진아 이렇게 또르르 말아서 그릇 만들어 먹으면 되는 거야 재밌지?"

반짝 이는 눈으로 따라 하던 우리 아이들은 그때부터 독일에서 같은 라면을 만날 때면 언제나 외할머니 컵라면이라 부른다. 외할머니가 그라면을 직접 만드신 것도 아니요 그 회사 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도 남을 만큼 다자란 아이들에게 그 컵라면은 그때나 지금이나 잊을 수 없는 할머니와의 추억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은색의 컵라면 뚜껑을 삼각형으로 접어, 다 익은 꼬불꼬불한 면을 그날의 추억과 함께 건져 올리고는 후후 불어 대며 맛나게도 먹는다. 그 산에서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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