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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12. 2020

아직은 절반의 수영

발이 닫지 않으면 안 되는 여자.


코로나 시대의
독일 수영장 은 이렇게 바뀌었다.


이것이 얼마 만에 온 수영장 이던가, 올해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바로 직전에 갔던 이 마지막이었으니 아마도 5개월 만인 듯싶다. 독일에 살면서 이렇게 오랜만에 수영장을 오기는 처음이다.

여기저기 뭉쳐서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거의 매주 수영장을 오갔었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자연스레 생일 파티 초대 다 뭐다 해서 수영장 나들이 올 일이 수시로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현듯 세계로 퍼진 코로나 때문에 독일도 락다운이 되며 당연히 수영장과 사우나가 일 순위로 문을 닫고 다시 이용이 가능한 때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제는...

독일의 확진자수가 줄며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이 풀리고 여러 가지 규제 들이 완화되면서 수영장도 문을 열었다.

아직 코로나가 다 지나가지 않은 상황에서 수영장 이용은 조심스러운 일중에 하나 이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었는데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 허리며 어깨 뭉친 곳이 많아 몸상태가 말이 아니던 남편이 도저히 안 되겠다고 수영장을 가자고 했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수영장 안전 이용 규칙들이 새로 생겨났다.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고 수영장 이용 티켓을 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주소와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모두 인터넷으로 기재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인원을 제한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되던 탈의실도 반이상을 줄여 놓았고 샤워장도 맥시멈 5명 이상은 들어갈 수 없도록 해 놓았다.

여기저기 손소독제를 배치해 두는 것은 물론 이요 2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 달라는 빨간 스티커들이 수영장 곳곳에 붙어 있다.


사람들은 시간 안에 제한된 인원 즉 예약된 사람들만 수영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예전 주말에 비하면 물속에서의 서로 간의 공간이 충분했다.

특히나 나처럼 아이들이 노는 Spielbecken 이라 불리우는 얕은 곳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은 평소 주말 이면 아이들이 많아 서로 부딪힐까 맘 놓고 수영하기가 어려웠다.

그곳은 애초에 물놀이를 하기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수영하다가 공놀이 하는 아이들의 공을 맞은 적도 종종 있고 이제 물에 뜨는 것을 배우며 어프어프 하며 허부적 대고 있는 아가들과 같이 수영을 한적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독일어 로Shcwimmerbecken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정해 놓은 곳. 즉 2미터가 넘는 깊은 곳은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영을 할 수 있음에도 그런데는 나름 사정이 있다.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끊어 놓은표를 집에서 인쇄 해서 들고 오면 입구에서 수영장 직원이 확인 후에 수영장 안으로  들여 보내 준다.곳곳에 비치 되어 있는 손소독제와 안전수칙 판.
그 여름의 해운대 바닷가


그때가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여름에 모처럼 놀러 간 외갓집에서 사촌 들과 함께 해운대 바닷가로 놀러를 갔었다.

커다랗고 까만 튜브에 네댓 명의 아이들 이 대롱대롱 매달려 깔깔거리며 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덮쳐 나는 어디론가 떠내려 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놀고 있던 동생 들과 사촌들은 온 데 간데없고 발이 닫지 않는 물속에 눈에 보이는 것은 뿌연 바닷물뿐이었다. 그렇게 어디론가 떠내려 가는 가운데 너무 무섭다 못해 멍해진 상황 속에서도 더는 떠내려 가면 안된다는 극박함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바위에 박혀 있던 미역 같이 생긴 해초를 부여잡았다.

그날 다행히 수영 잘하는 작은 외삼촌이 바닷속 어딘가에 미역 줄거리 같은 것을 부여잡고 있던 나를 건져 올렸다. 그곳은 우리가 놀던 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했다.

그 당시 해운대는 물살이 쌔고 파도가 높아 종종 수영 잘하는 사람들도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가고는 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내가 물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던 것은...

그 후에 아무리 수영을 배우려 해도 물속에 머리를 넣는다는 것이 무서웠다.

물속에 머리를 넣을 수가 없으니 몸이 물에 떠서 수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영장 입구에서 탈의실 까지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 이며 이미 반이상 줄여 놓은 탈의실도 서로 간의 거리 확보를 위해 하나 건너 하나만 사용 할수 있다.

아직은 절반의 수영


그렇게 나는 한국에서는 수영장 근처에도 가지 않다가 독일로 왔고 늘 수영을 해온 남편을 만나

다시 수영장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렇다고 물에 대한 두려움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처음,독일에서 수영장을 가게 된 것은 잘못된 자세로 오래 앉아서 그림을 그리다가 허리 통증이 심해진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그런 내게 그냥 물속에서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허리와 다리 통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꼬드겼고. 그렇게 나는 수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날은 물속에서 발만 담그고 왔다 갔다 하다가 그 며칠 후에는 물속에 앉아 보는 것 까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긴시간이 걸려 언젠가부터는 물속에 머리를 넣게 되었고 저절로 몸이 뜬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었다.


물론,멋진 모습으로 푸아 푸아 하며 자유형 이라던가 배형 이라던가 제대로 각 잡은 모습의 수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물 위에 떠서 머리를 내어 놓고 팔다리를 저어 가며 하는 개구리헤엄이다.

그마저 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내게는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지 모른다.

이제는 물 위에 떠다니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아직은 물속에서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안된다.

아마도 그때 바닷물 속에서 발이 닿지 않았던 것이 아직도 내게 생생이 남아 있어 그런가 보다.

일단 물속에서 바닥에 발이 닫는 것이 확인 이 되지 않으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 가고 되던 호흡도 엉켜 수영을 할 수가 없다.

옷과 소지품을 넣어 두는 사물함도 여러곳을 막아서 숫자를 확 줄였고,여러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옷등을 걸고 담는그물달린 바구니 같은 옷걸이 도 없앴다.

그럼에도 나는 오랜 세월 걸려 물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이겨 고 이렇게 발이 닫는 얕은 곳에서 나마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절반은 이루어 낸 것이다.

언젠가는 발이 닫지 않는 곳에서... 수영하는 사람들만 갈 수 있는 2미터도 넘게 깊은 곳에서

수영을 하게 될 날도 분명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얕은 곳에서 튜브 타고 노는 애기들과 섞여 태연하게 수영을 할 것이다.

마치 푸른 바닷물과 하얀 파도를 가르는 물고기가 된 것처럼....


샤워장 도 맥시멈 5명 ,거리 유지를 위해 샤워기 하나  걸르고 다음번 샤워기 사용 하도록 되어 있다.
실내 에서 마스크착용이 의무 이며 헤어드라이기 사용을 금지,기존에 머리 말리던 곳 전체 전원을 내려 놓았다.집에서 들고간 헤어드라이기도 못쓰고 젖은 머리 휘날리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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