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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05. 2016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Hauptspeise 본요리 10.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카셀의

Documenta Halle 도쿠멘타 할레

라는 곳에서

예술가 들의 전시회 가 있어

다녀왔다.

독일 전역의 수공예

예술 작가들이

자기 만의 창작 작품 들을

가지고 응모해서

그중에

독창 적인 아이디어 작가 들만

골라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하는 기획 전시회 이자

작품 시장.

이번 전시장으로 사용된

도쿠멘타 할레는

 세계 3대 현대 미술전시회 중의 하나 인

독일 카셀의 도쿠멘타 전시장

으로도 사용되는 곳이다.


전시회장 안을 돌아보며

문득

 미대에서 공부하던 때가

떠오른다.

아이 둘을 키우며

정신없이 겨우 겨우

공부를 끝냈을 그때만 해도

나는

10년 뒤에 내가

요리 강사로 일하고 있을 것이 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게 되고

그때마다

요리법을 묻는 이 들에게

신이 나서 설명을 해 주다 보면

"아예 요리 강사로 나가지 그래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남들의 의견이었고

그림을 전공한 나는

당연히 붓을 들고 언제까지나

나의 잠재력과 창조적 열정을

 쏟아 내고 있을 것이라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며

 어쩌면 나는 내 꿈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간을

보류할 수 있는 적절한 핑곗거리를

 찾았을지 모른다.

 자빠진 김에 쉬어 간다고

바람보다 늦게 찾아온

늦둥이 막내가 생기고 난 후에는

아이가 셋이라는 이유로

대놓고

맘 편히 놀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있던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때가 지금 대학 갈 때가 된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다.

학교에서 학부모 회의가

있었는데

막내를 출산할 때가 다된 나는

그냥 있어도 배가 부르고 숨도 차고

날이 더워 쉬 지치 다 보니

 회의에 남편을 대신

보냈었다.

대타로 회의에 참석한 남편은  

가서 중요한 사항들 빠짐없이

 잘 체크해 오라고

했더니

일만 만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당시 학교에서

학부모 들끼리

돌아가면서 다양한

직업의 세계에 대해

블록 세미나처럼 아이들 에게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하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남편이 주저 없이 나를

그 프로젝트에 쏘 ~옥

집어넣었던 거다.

그것도 전공인 미술이 아닌

요리로 ~

삼복더위에 ~

남산 만한 배를 안고 있는

내게

아무런 동의도 구하지 않고

 말이다.

그 더운 7월에

8월이면 출산인데

그냥 서 있어도 배 부른 덕에

발이 안 보일 지경의

남산 만한 배를 안고

태교를 생각해서

튀어나오려는

에이 띠..~ 에이 띠.... 를

속으로 삭히며

독일 초등학교 교사 들과

학생들

40여 명을 데리고

김밥을 쌌던 것이

내 생애 첫 요리강습이었다.

생각해 보라...

한여름에

교장 선생님에

4학년 담임 선생님

아이들을

강당에 쪼로미 모아 놓고

나온 배를 디밀며

다니기도 힘든 테이블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요리 강습을 진행했을 배불뚝이 아줌마를...

월매나 힘들 었겠는가

장난 아니었다....

그나마 양심은 있어서

그 날 하루 휴가를 낸

남편이 보조를 해 주었지만

어설프기 그지없었으며...

그날

사용되어야 했던 밥과 김밥 재료 들.. 

미리 손질해야 했던

그 식재료들 의 양은

실로 엄청났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니

힘들어서 남편에게

투정도 많이 부렸던

그 날의 요리 강습이

서양 회화를 전공한 화가였던 내가

한국요리를 강습하는 요리강사 가된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였던 것 같다.  



그 날의 요리강습은

힘은 들었지만 보람 있었고

무엇보다

학생 들과 눈을 마주치며

열심히 설명할 때의

그 찌르르~~ 한 느낌이

하얀 캔버스에 붓질할 때

만큼이나

나를 설레게 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나는

나를

원하는 곳에는 마다하지 않고

뛰어갔다.

처음부터 버젓한? 문화센터에서

강습을 할 수 있었겠는가?

시에서 하는 문화행사

 학교, 유치원 행사, 양로원,

여성회관 등등

주로 봉사할 수 있는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에게

한 동안 거의 무보수로

봉사를 했다.

어떤 때는 내 돈 들여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내가 또 무언가를 해 냈다는

성취감과 그 벅차오르는 보람은

내게 돈 보다 귀한

경험을 선사했고

나를 주저 없이

그다음 번 강습을

준비하게 해 준 원동력

이 되어 주었다.



인생은 때로

낯선 곳에서

길을 찾는 것과

 같다.

어느 곳으로 가야

정확한 길을 찾은 것인지

 가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마치

여러 갈래의 길들이 한 번에

펼쳐진 것처럼

선택의 순간이 올 때

어느 순간은

그냥 스쳐 지나 온 그 길에 대한

막연한 미련으로

또 어느 순간은

짧은 길 뒤에 이어져

있는 거미줄 같은 길들을

보지 못해서

헤메 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택했던 길을

바꿀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것이다.


누군가 에게

지금 터닝 포인트가

될 무언가 새로운 길이

앞에 놓여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 길을 가 보라고

응원해 주고 싶다

꿈을 이루기에 늦은 시간은 없다고

아직 찾지 못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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