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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15. 2020

오스트리아의 아침에 우는 새

애들은 가라, 19금 에피소드


폭염에 독일은 에어컨 대신
창문 열고...


아침부터 푹푹 찐다. 더워, 덥네, 덥다, 진짜 덥다 라는 말이 입에서 차례로 렙처럼 쏟아진다.

우리 집 멍뭉이 나리와 동네 산책 한 바퀴하고 와서는 기진맥진해서 앉아 있는데 아침 먹으러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막내 방은 우리와 같은 한국으로 하면 2층 독일에서는 1층에 있어서 그래도 살만한데...

큰아들과 딸내미는 한국으로 하면 3층 꼭대기 독일에서는 2층 다락방이라 사우나가 따로 없다.

왜 한국과 독일의 층수가 다르냐 하면 우리로 하면 1층을 독일에서는 땅층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가 2층이라 부르는 층을 독일에서는 1층이라 부른다.

한마디로 우리보다 용어상 한층이 더 있는 셈이다.


우쨌거나, 아침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이 더운 날 밤사이 잘 때 괜찮았는지 물었다. 큰아들은 아니나 다를까 너무 더워서 도저히 안 되겠다며 아래층에 있는 손님방으로 옮겨야겠다고 했다. 그 방은 손님이 올 때만 사용하는 방이고 평소 비워 놓고 있어 한바탕 대청소를 해야 하고 요사이 화장실이 고장 나서 조금 불편하겠지만 더워 잠 못 자는 것보다 나으니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같은 층이라 별 차이 없을 딸내미는 괜찮다는 거다. 그 방도 덥기는 매한가지일 텐데.. 라며 딸내미도 내려오는 것이 어떻겠느냐 했더니 잘 때 창문 활짝 열고 자서 괜찮다는 거다.


생각해 보니 큰아들 방은 전형적인 다락방 형식의 창문으로 햇볕을 있는 그대로 받는 대다가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창문이라 열이 빠져나가기에 공간이 적다. 그런데 딸내미 방은 산장처럼 생긴 높은 천장에 창문이 위쪽에 붙어 있고 침대 근처에 창문이 옆으로 열고 닫는 것이라 열을 빼기에 공간이 넓다. 활짝 열고 자면 큰아들 방보다는 훨씬 나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독일은 가정집에 에어컨 있는 집은 거의 없다 선풍기가 있다 해도 잘 때까지 틀고 자는 경우도 드물다. 그래서 요즘 같은 폭염이 지속되는 날씨에는 창문 활짝 열고 자는 독일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2주째 무더위가 계속되자 한국식으로 2층에 있는 우리 방과 막내 방도 찜통이 되었다.

한낮의 열기를 품고 있던 방에서 자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새벽이라 다니는 차들도 거의 없어 조용했고 바깥의 찬바람이 안으로 들어오니 그나마 좀 살 것 같았다.

그러다 불현듯 떠오르는 추억 하나, 얼마 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있었던 마라톤에 관한 글을 하나 썼다. 운동 꽝이 중년에 시작한 달리기 문득 그때 친구들 과의 추억들 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그중 창문 열고 자다 포복절도했던 일화가 하나 떠올라 자다 깨서 새벽에 큭큭 거리며 미친 듯이 웃었다.(그 야 밤에 서로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들렸을지 모를 나의 음산한 웃음소리에 혹여 라도 식겁했을 이웃들이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려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ㅎㅎ)



그렇게 떠난 2박 3일


때는 바야흐로 2년 전 여름이었다. 그해는 더위가 일찍 시작되어 6월 초인데도 지금처럼 무더웠다.

그 당시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뿐만 아니라 프랑스, 오스트리아 할 것 없이 몇십 년 만의 폭염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 폭염 속을 뚫고 조깅 동우회 친구들과 기차 타고 2박 3일 단체 여행을 떠났다.

주로 40대부터 70대 사이의 연령층도 다양한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 조깅 동우회에서는 2년에 한 번 미니 마라톤 국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전통 행사처럼 정해져 있다.

그런데, 사실 말이 마라톤 대회 참가지 2박 3일 중에 하루만 마라톤에 쓰고 나머지는 놀러 다니는데 만전을 기한다고 했다.


그래서 미니 마라톤이라 쓰고 여행이라 읽을 오스트리아행 은 순도 100프로 놀다 온다고만

생각하고 용감하게 따라나선 거였다.

그때 마라톤 대회라는 말에 잠시 주저하던 내게 함께 가자고 꼬셨던 친구 크리스텔은 "가서 안 뛰고 응원해도 되지, 너 아녀도 뛸사람 많잖아?" 라며 가자고 꼬드겼고 그 바람에 홀라당 넘어간 나는 그 아스팔트에 껌처럼 녹아 흘러내릴 것 같은 날에 번호표 달고 허벌라게 뛰고 있을 것이라 고는 상상도 못 한 체 수학여행 이후 몇십 년 만에 처음 친구들 함께 단체 여행이라는 단어에 들떠서 짐을 챙겨 따라나섰다.


그녀들의 단체 여행


그 여름 우리는 아침 일찍 중앙역에 모여 예약해 둔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 린츠로 향했다.

우리 조깅 동아리 내에는 두 명의 총무가 있는데, 한 명은 생일 파티 등의 내부 행사를 주관하고 다른 한 명은 이런 마라톤 대회 등의 외부 행사를 담당한다.

그 외부행사 담당은 돛 단 배 여행의 달인 우테 다. 지금도 어느 바다 위를 남편과 함께 항해 중일 것이다.

우테의 미리미리 예약 덕분에 우리는 모두 같은 칸에 수학여행 가는 여학생들처럼 조롱조롱 앉아 각자 가지고 온 아침 도시락을 펼쳐 놓고 나누어 먹으며 왁자지껄 하게 다섯 시간 넘는 기차 시간을 함께 보냈다.


보통 때의 독일 기차 안은 책을 읽거나 또는 노트북 등을 꺼내 놓고 일을 하며 가는 사람들이 많아 굉장히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러나 단체팀이 한두 팀 끼여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나 이렇게 올 아줌마 부대인 경우와 축구 경기 응원 가는 축구팀 팬클럽이  만나그 칸은 들썩 거리다 못해 떠나간다.


그때 기차를 들었다 놨다 한 그 칸 에는 막내이던 35세의 크리스틴부터 큰언니 75세의 홀가 까지 모두 24명의 센 언니들이 함께 였고 베를린에서 축구 응원을 가는 중이 라며 형님 들 같은 체격의 20 30 아들 또는 손자 뻘의 남정네 클럽이 단체로 들어와 있었다.


그 귀여븐? 20 30 들은 아침부터 아이스박스에 쟁여온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우리는 아침 도시락으로 가져온 소시지와 과일 등을 내밀며 그 시원한 맥주와 바꿔 먹었다.

그날, 린츠로 가고 있던 기차의 스페셜했던 칸은 비주얼 과는 무관 하게 마음 만은 여고생 같이 소녀소녀 한 아우디 들과 (며칠 전 요즘 유행어로 회자되고 있다는 아우디의 뜻을 알았다. 혹시나 아직 모르는 분들을 위해; 아우디는 아줌마들의 우정은 디질 때 까지의 준말 이란다.ㅋㅋ)

경기 시작되려면 멀었건만 벌써부터 분의기로 축구장에 앉아 있던 20 30의 응원가로 들썩였다.


드디어 도착한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우리는 유스호스텔보다 조금 더 넓고 쾌적한 호스텔에 한층을 점령? 한 체 두 명 또는 네 명이 들어갈 방을 정하고는 이방, 저 방 몰려다니며 집에서 가져온 간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여행 계획을 짰다. 도착한 날부터 두쨌날 마라톤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과 가는 날까지 어디를 어떻게 다닐까를 말이다.

나는, 나를 이 여행에 가담? 시킨 친구 크리스텔과 한방을 썼다.

우리가 함께 썼던 방은 아담 했지만 복도 끝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른 방이 (네 명인 방들은 난리도 아녔음 ㅋㅋ) 시끄러워도 자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으며 햇볕도 많이 들어오지 않아 블라인드 내려놓고 나갔다 오면 다른 방에 비해 시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와 나는 죽이 잘 맞았다. 둘 다 밤늦게 까지 조곤조곤 수다 떨다 어느새 누가 업어 간데도 모르게 곯아떨어지는 스타일 들이고 적당이 게으르고 적당이 깔끔 떨었다.

또 가고 싶은 곳들 예를 들어 보고 싶던 미술관 전시회, 쇼핑 갈 곳들 이 척척 맞았다.

그래서 2박 3일 내리 붙어 다녔다.

린츠에서는 독일 남부 바이 어른으로 이사를 했던 그리고 스위스로 이사 간 옛날 동우회 멤버들이 곧바로 숙소로 합류해 와서 우리는 27명의 아줌마 부대가 되었다.

모두 함께 다니기에는 좀? 많은 숫자 여서 이래 저래 뜻 맞는 사람들끼리 나누어 다녔는데..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나누어 갔다가도 우리 동우회 친구들을 여기저기서 만나 다시 합쳐 다니게 되고 결국은 단체로 돌아다닌 구간이 많았다.

그러다가...... 운명의 그날...

19금 오스트리아의 아침에 우는 새

불가마 같은 도나우 강변에서 미니 마라톤을 뛰었던 날 우리는 모두 모여 비어가든에서 저녁을 먹으며 모든 참가자의 (걸었던 뛰었던) 완주를 자축하며 밤늦게 까지 놀았다.

피곤한 사람들은 먼저 들어가고, 알고 보니 체력이 좀 된다 싶은 몇몇은 호스텔 근처의 노천 Bar로 자리를 옮겨 2차까지 갔다.

다들 맛난 저녁을 그득히 먹은 포만감에 더운 날 운동까지 했으니 기분 좋은 노곤 함에 달달한 칵테일까지 들어가 주시니 어찌나 말들이 많던지.. 원래도 여자들끼리 모이면 폭풍 수다이지만 미니 마라톤을 뛰고 동지애까지 부록으로 딸려와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했다.

그중에서도 뭐니 뭐니 해도 남의 연애 이야기가 젤루 재미있다, 자비네의 춤추다 만났다는 연하남부터 엘케 큰 딸네미가 멕시코 남자와 연애하다 결혼한 이야기, 베티나 친구 남편의 바람 난 이야기, 크리스텔의 남편 전에 만났던 전 남자 친구와 그 넘의 부모에게 반대받았던 이야기 그리고 제일 친한 친구와 바람이 나는 바람에 결국 깨졌던 이야기... 연애 이야기에서 바람 이야기까지 우리의 아침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이야기 들이 그날 밤하늘에 떠있던 별만큼이나 쏟아졌다.

우리는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침대 위에 누워서도 크리스텔의 옛날 옛적  x남자 친구와 베프 그 염병할 연놈들을 성토하며 잠이 들었다.




어렴풋이 동이 트는 것을 느끼던 시각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5시와 6시 사이 이른 아침이었다.

한참 잘 자고 있는데 먼저 코 골며 곯아떨어졌던 크리스텔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종히이 종히이 일어나 봐 지금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아?" 하는 거다.

나는 비몽사몽 간에 더 자고 싶다는 생각 외에 아무 생각  없었다. 그래서 "무슨 소리? 아무 소리도 안 들려"라며 다소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전날의 마라톤의 영향은 바로 다음날 이 되어 온몸으로 느끼게 되지 않겠는가?

눈 커플도 몸도 천근만근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크리스텔은 집요 했다.

그 발음도 잘 안 되는 종히이 를 계속 불러 재끼느라 애쓰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다 싶어 눈을 비비고는 반쯤 올라간 눈꺼풀에 힘을 주고 크리스텔이 말하는 이상한 소리가 도대체 뭔지 귀 기울여 보았다.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들려오던 소리는 무슨 새가 지저귀는 또는 꽥꽥 거리는 소리 같았다. 그래서 "크리스텔, 새가 우나 봐 " 했다 그랬더니 "종히이 잘 들어봐 무슨 새가 이 아침에 저렇게 울겠어" 하는 거다. 난 암만 들어도 새 우는 소리 구만.. 그래서 나는 "오스트리아 새는 원래 저렇게 우나 부지" 했다. 그랬더니 크리스텔이 침대를 쳐가며 웃더니 빨리 와봐 하며 창문에 매달렸다. 무거운 몸을 움직여 창가에 갔더니 적나라하게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삐리리한 영화를 찍는 영화감독이 들었다면  케스팅 하겠네 싶을 만큼 누군가 제대로 19금 영화를 찍는 듯한 묘한 신음인지 헐떡임 인지를 내며 그 가열찬 소리로 장면을 그려 내고 있었다. 듣는 사람 찰떡같이 상상되게끔...

더 기가 막힌 것은 우리처럼 창문 열고 자다 그 오묘한 소리에 깨서 전깃줄에 참새 내려앉듯 창가에 매달려 있던 머리통들이 많았다는 거다.

거기에 건너편 건물에도 그리고 심지어 길 가다 멈춰 서서 듣고 있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날 수많은 관객들의 숨죽인 응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오스트리아의 새는 한참을 더 그렇게 울었더랬다.

우리는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가며 분명 2층 내지는 3층에서 올라오던 소리였다며

엘리베이터가 그 층에 멈춰 서서 태우는 처자들을 눈여겨보며 우리끼리 속닥 거렸다

"쟤는 아니겠지?" "에이 그럴 리가, 저 체격에 그런 소리는 아니지 " 해 가며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능글 거리며 말이다.



P.S: To 독자님들..

지구촌이 아직 코로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물난리에 끊이지 않은 사건사고 그리고 여기저기 다시 늘고 있는 코로나 19 확진자 숫자... 뉴스 보기가 겁나는 요즘입니다.

그저 제 글 읽고 계시는 잠깐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웃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9금이라는 딱지를 보고 일부러 찾아 주신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글로 쓰려니 혼자 부끄 부끄해서 노트북 잡고 간신히 썼습니다. 더 상세한 묘사로 나가지 못한 점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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