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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찬바람 불던 날의 왕진

그며느리의 속마음이 궁금해

by 김중희


늦가을 찬바람에 낙엽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던 어느 날.. 발터 할아버지와 크리스티안네 할머니 댁으로 빨간 의료가방을 든 남편과 함께 왕진을 나갔다.


마당도 넓고 나무도 많은 주택인 그 댁은 거리에도 다른 집 마당 에도(특히나 우리 집ㅎㅎ) 가을 낙엽이 지천으로 바닥에 깔리다 못해 눈처럼 쌓이는 때에 언제나처럼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되어 있다.

마치 이 집 나무들은 애초에 잎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위층에 사는 아들 내외가 부지런히 치우는 덕분일 것이다.

두 노인 돌보아 드리는 것만으로도 늘 바쁠 텐데... 참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싶다.


두 분은 연세도 연세지만 모두 지병이 있으시다. 할머니는 심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걷는 것도 겨우 하시고 할아버지는 파킨슨에 치매까지 겹쳐서 누워 계신다. 한마디로 대소변도 받아 내야 하는 경우다.

물론 독일의 돌봄 전문 의료인 인 Pflegedienst가 아침저녁으로 찾아와서 두 분 약도 전해 드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상처 난 곳도 새로 소독하고 약 발라 붕대도 갈아 드리고 카테타로 연결되어 있는 소변주머니도 관리해 드린다.

그러나 이런 경우 하루 두 번 의 돌봄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사실 상황만 보면 두 분 모두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에서 전문가의 손길을 받으며 계시는 것이 가족들에게나 두 분 모두 에게 나은 선택 일수 있다.


독일의 수많은 노인 분들은 더 이상 스스로 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양로원 또는 요양원을 택한다. 자식이 있건 없건 간에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두부류가 있다.

그 하나는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자신의 집을 떠나지 않겠노라 고집? 또는 원 하는 분들이고 다른 하나는 양로원이나 요양원에 가실 경제적인 형편이 되지 못하는 분들이다. (천차만별 다양한 독일의 요양원과 양로원 이야기는 다음번에..)

크리스티안네 할머니 댁은 전자에 속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할머니의 의지에 의해서다.

의식이 다른 세계에 계신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본인에 관한 모든 기억을 잃으셨고 더 이상 의사소통을 하실 수 없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누구에겐가 무언가를 종일 설명을 하신다. 할아버지 만의 언어로.. 그런 할아버지를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뫼시는 것을 할머니는 원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할아버지를 할머니가 직접 돌보아 주실 형편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본인도 도움을 받으셔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간신히 침대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어딘가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을 보며 누워 계시는 할아버지에게 조곤조곤 설명을 하신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발터, 여기 닥터 김네 내외가 왔어요 오늘 우리 독감 예방 주사를 해 주러요"


우리는 우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시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고 천천히 할아버지께 독감 예방 접종을 해드릴 준비를 했다. 혼자서는 침대 밖 그 어디에도 가실 수 없는 할아버지는 독감 등의 감염 위험이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그리고 오가는 의료진 들 사이에서 혹시 라도 노출될지 모를 감염 우려가 있으니 접종을 해 드려야 한다. 팔에 살짝 뿌린 소독약에도 발터 할아버지는 마치 병원 진료실에 처음 들어가 본 아이처럼 소리 지르며 우셨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괜찮아요 발터 이건 조금 차가울 뿐이에요. 소독약이에요"라며 예전에 우리가 아이들 키울 때 하나하나 알려 주었던 것처럼 자세히 설명을 하신다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체.. 그런데 그 미소가 너무 짠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그 어린아이 같은 반응에 안도하시는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낯선 곳에 머물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눈빛과 의식이 비로소 우리와 함께인 현실에 계신 것 같았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할머니는 그 짧은 찰나 들을 통해 할아버지가 함께 살아 계시는 것을 확인하고 계시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차례로 진료해 드리고 있는 가운데 묵묵히 옆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며느리는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 다. 내 기억에 단 한번 빼고는 모두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그날 이후 그녀를 만날 때면 살짝 속마음이 궁금해 지고는 한다.

그날을 꺼내기 전에 먼저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를 잠깐 이야기해야겠다.

원래 발터 할아버지와 크리스티안네 할머니는 우리 환자가 아니었다.

다른 가정의 병원의 환자 셨는데 그 병원 원장 선생님이 은퇴를 하시고 더 이상 그 가정의 병원을 맡아줄 의사가 없어서 그 병원이 문을 닫게 되었다.(주치의 시스템인 독일의 가정의 병원이 계속 줄고 있어 문제가 많습니다 이 이야기도 다음번에....) 그렇게 우리 병원으로 오신 두 분은 그때도 거동이 불편한 상태 여서 처음부터 왕진 환자였다.


왕진을 가서 환자들을 첫 진료 하기 전에 처음 만난 사람은 그 댁 며느리였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하나로 묶은 갈색 머리는 그녀를 더 단정하게 보이게 했다. 또, 의료보험 회사에 신청할 돌봄 전문 의료인 신청서 작성에 관해 설명해 줄 때도 그것을 귀담아듣던 그녀의 진지한 모습은 흡사 시험을 앞두고 족집개 과외를 듣고 있는 수험생의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필요한 약, 상처 소독제, 붕대, 연고, 성인용 기저귀 등의 처방전 등을 받으러 오는 날이면 예의 그 진지한 모습에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 톤을 얹어 하나하나 물어 가며 챙겼다. 그 꼼꼼하고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마치 우리 병원 다른 환자의 딸내미인 초등학교 교사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그 며느리는 언제나 처음 병원에 찾아온 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단정한 모습과 차분한 분위기로 우리 병원에서 혹은 그 댁에서 우리와 만났다. 할아버지의 의료용 침대 가 잘못 배달되어서 이사하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을 때도, 식사 중에 물 가져다 드리러 자리를 비운 그 잠깐 사이에 휠체어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셔서 머리를 꿰매어야 할 때도 그럼에도 할머니가 할아버지 요양병원행을 결사반대하셔서 날마다 온 집안에 온갖 의료 용품 들로 꽉 채워져 가도 그 댁 며느리는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가 동요되거나 흥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한 번은 왕진을 갔다가 할아버지 상태가 응급한 상황이어서 급하게 응급차로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한 적이 있었다. 그날 조금만 늦었어도 환자 상태가 위태한 상황이어서 아슬아슬했었는데 언제나와 처럼 그녀는 침착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그녀를 우리끼리는 대단한 며느리 또는 농담으로 혹시 물려받을게 많을지도 몰라 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그런데... 단 한번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마주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날은...


발터 할아버지가 위급한 고비를 잘 넘기시고 대학병원에서 다시 집으로 퇴원을 하시고 난 다음날이었다. 그 며느리가 퇴원 편지를 들고 우리 병원으로 왔다.

독일에서 보통 환자가 응급 또는 수술 등의 이유로 대학병원 또는 종합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게 될 경우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을 하면서부터는 다시 거의 모든 것을 가정의가 맡게 된다.

그 첫 번째가 퇴원 편지와 함께 시작된다. 그 퇴원 편지 안에는 환자가 무슨 증상 또는 병으로 그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지 진단은 무엇인지부터 치료 과정과 행해졌던 검사들 또 앞으로 치료해야 할 내용들이 빼곡히 적혀 있고 보충되었거나 새로운 약 처방 또는 치료법 등에 관한 담당의 들의 소견들이 함께 적혀 있다. 환자마다 차이가 있으나 보통 A4용지 3-4장 분량이다.


그 모든 내용을 확인한 남편이 처방전 오더를 내리고 서명하는 동안 대기실 복도에서 기다리던 그녀를 보며 나는 그날의 아슬아슬했던 상황이 떠올라,

"조금 늦었다면 큰일 날 뻔했지 뭐예요. 다시 회복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 까지 보지 못했던 갈 곳 잃은 눈동자로 멍하니 마주 서서는 "그러게요 다시 회복이 되셨네요"라고 했다. 얼핏 들으면 그리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지 모르나 평소 와는 다른 그녀의 분위기와 말투 속에서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날 자기도 모르게 내비친 마음에 당황하며 빠르게 갈무리하던 그녀의 표정을 보며..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그녀의 보이는 모습만으로 그녀를 원치 않는 효부 자리에 취직시켰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가 생각하던 그 이미지 대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해서 실망스럽다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상황이라면 그런 마음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안쓰러울 뿐이다. 단지 가끔 이렇게 왕진을 가서 그녀를 만날 때면 멍한 표정과 낮은 목소리로 그러게요 다시 회복되셨네요 라고 이야기했던 그날이 떠오르고는 한다.

나도 모르게 "우리가 괜한 일을 한건 가요? "라고 물을 뻔했던 그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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