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회화이론사

지은이 / 갈로 | 옮긴이 / 강관식

by Joong

중국회화이론사
갈로 (지은이) | 강관식 (옮긴이) | 돌베개 | 2010-04-30
목차
한국어판 개정판 저자 서문
개정판 역자 서문
발간사


제1장 춘추전국ㆍ진한의 회화이론
개설

1. 『좌전』의 '사민지신간'론
2. 공자의 '회사후소'와 '명경찰형'론
3. 장자의 '해의반박'론
4. 『한비자』의 회화와 생활의 관계 및 조각의 도에 관한 이론
5. 『회남자』의 '군형'과 '근모실모'론
6. 왕충의 회화이론


제2장 위진남북조의 회화이론
개설
1. 조식과 유기의 회화효능론
2. 회화의 특징에 관한 육기의 '존형막선어화'론
3. 서ㆍ화ㆍ문의 제1차 결합과 왕악의 이론
4. 고개지의 회화이론
- 고개지(顧愷之, 345-406)[77p]


- 고개지의 화론은 『위진승류화찬(魏晋勝流畵贊)』, 『논화(論畵)』, 『화운대산기(畵雲臺山記)』세 편이 있다. [78p]


- 고개지의 화론은 주로 인물화와 초상화에 대해 논한 것인데, 앞사람들에 비할 때 그는 이 방면에서 과연 얼마나 독창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더 발전시킨 것이 있는가?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1) 전신(傳神)의 중요성을 명확히 제시함
고개지는 전신을 회화비평의 제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중략- 묘사된 대상이 객관적으로 갖추고 있는, 또는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사상과 감정에 근거하여 전신의 타당성 여부를 논하였다. -중략- 속세의 익힌 음식을 먹지 않고 수련하여 득도한 도교의 시조 장도릉은 살찐 얼굴의 관료들하고는 다른데, 그러나 수척하다는 것은 단지 외형적인 특징일 뿐이요, “범인(凡人)”들 중에도 수척한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에 수척하게 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보다 “신기가 심원한” 신선의 기품을 그려야하니, 그래야만 비로소 형(形)과 신(神)이 겸비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부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79~81p]


- (2) 생활을 반영하는 “이형사신(以形寫神)”론을 제시함
전신(傳神)이 이와 같이 중요하다면, 무엇에 의하여 정신을 전하는가? 고개지는 “형상으로써 정신을 그린다(以形寫神)”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정신은 객관사물의 형상 가운데 존재하고 정신은 이러한 형상을 통해 표현되는 것인데, 형상이 없으면 정신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형상과 정신은 모순의 통일체라고 생각하였다. [82p]


- (3) 인물과 환경의 관계를 중시함
따라서 예술창작에 있어서 환경과 인물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이른바 전형적 환경이란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가리키는데, 회화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다. 통상적으로 말하는 배경이나 소도구는 단지 환경 중의 일부분일 뿐인데, 혹자는 이를 협의의 환경이라 말한다. -중략- 사람과 자연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경물의 묘사는 반드시 인물의 신분과 지위 및 사상과 감정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작용을 해야 된다는 점을, 다시말해 경물을 그리는 것은 인물을 그리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고개지는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85~87p]


- (4) 생활을 체험하는 “천상묘득(遷想妙得)”론을 제시함
대상을 묘사할 때 형상으로써 정신을 그려야 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대상의 정신을 관찰할 수 있는가? 고개지는 “생각을 옮겨서 묘를 얻는다(遷想妙得)”고 대답하였다. “천상묘득(遷想妙得)”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화가와 묘사대상 사이의 주관과 객관의 관계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먼저 묘사할 대상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대상의 사상과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체득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생각을 옮기는 것(遷想)”이다. 그리고 화가는 대상의 정신적인 특징을 점차 이해하고 파악하는 가운데 이를 분석하고 정련(精煉)하는 과정을 거쳐 예술적인 구상을 획득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묘를 얻는 것(妙得)”이다. 천상묘득의 과정은 곧 사유활동을 형상화하는 과정이다. [88~89p]


- (5) 기타
“치진포사(置陳布勢)”의 구도는 반드시 “생각을 치밀하게 하며”, “실제로 마주 대하여 보고 교묘하게 마름질”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는 구도를 이성의 활동으로 보고 정심한 사고와 오묘한 재단을 강조하였다. 또한 고개지는 묘사할 대상에 따라 용필을 변화시켜 무엇을 그리든지간에 대상의 성질을 고려해야 된다고 말하였다. [89~90p]


5. 사혁의 '육법'과 요최의 '심사조화'론
- 사혁(謝赫, 500년경-535년경 활동) -중략- 『고화품록(古畵品錄)』은 6법(六法)의 기준으로 그림의 우열을 평하였다. [91p]


- (1) 사혁(謝赫)의 6법(六法)
6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기운생동(氣韻生動)이 이것이요, 둘째 골법용필(骨法用筆)이 이것이요, 셋째 응물상형(應物象形)이 이것이요, 넷째 수류부채(隨類賦彩)가 이것이요, 다섯째 경영위치(經營位置)가 이것이요, 여섯째 전이모사(傳移模寫)가 이것이다. [91~92p]


- 1) 기운생동(氣韻生動)
기실 기운이란 곧 고개지가 말한 신(神)이니, 사혁 자신도 기운을 신운(神韻)이라 칭하였다. -중략- 기운의 본의는 인물의 정신적인 기질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 후 기운생동의 범위가 산수나 화조 등의 여러 그림에 확대되었고, 또한 전체적인 회화이 예술성을 평가하는 것이 되어 필묵의 효과도 포함하게 되었는데, 이는 기운생동에 내포된 의미가 발전된 것이다. [92p]


- 2) 골법용필(骨法用筆)
골법용필이란 붓을 쓰는 데 있어서 오랫동안 수련하고 단련한 능력이 있어야 됨을 가리키는 것이라 이해한다. -중략- 용이나 말, 매미, 참새의 형상은 인체의 골격과는 전혀 무관하고 오히려 조형적인 용필의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략- 용필이 뛰어나고 힘차다든가, 용필이 활달하지 못하여 가볍고 파리하다는 것은 모두가 필선으로 용필의 우열을 논한 것이지, 이른바 골법용필이 사람의 골격을 그리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다. -중략- 그렇다면 사람의 형체를 표현하는 것은 6법 중 어느 법칙에 포함되어 있는가? 이는 응물상형(應物象形)이라는 법칙에 포함되어 있다. [92~95p]


- 3) 응물상형(應物象形)
회화가 형태를 그리는 것이라는 특징을 창작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여 그 작용을 논함으로써 이를 창작방법에 있어서이 중요한 요체로 만들었다. 응물상형이란 화가가 사회생활을 묘사하든 자연경물을 묘사하든간에 반드시 객관대상의 모습에 근거하여 표현해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작가가 취사선택하고, 상상하고, 과장할 수는 있지만 주관에 의해 마음대로 만들어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95~96p]


- 4) 수류부채(隨類賦彩)
각각의 대상에 의거하여 그 색채를 표현해야 한다. -중략- 즉 종류에 따라 채색하는 것이었다. -중략- 또한 주제의 필요에 따라 채색하는 것도 있었으니, -중략- 실제의 벼랑과 암석은 붉은색을 띤 것이 없으며 자줏빛도 거의 볼 수 없다. 그러나 화가는 신선이 사는 곳의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붉은 벼랑과 자줏빛 돌을 그릴 수 있다. 이러한 낭만주의적 채색법은 중국회화의 우수한 전통 가운데 하나이다. [96~97p]


- 5) 경영위치(經營位置)
경영위치는 곧 구도의 설계이다. -중략- 화면 위에 그리는 형상은 반드시 교묘한 재단을 거쳐야지 눈에 보이는 대로 다 그리는 것이 아니다. 무엇에 의해 교묘하게 재단하는가? 화가의 이성적 판단에 의거한다. -중략- 작가가 구도에 심형을 기울여야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중국화의 구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으니, 예를 들어 형상을 배치하는 데 있어서 공간이나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산점투시(散點透視)를 취하는데, -중략- 사혁이 6법을 제시할 무렵에는 아직 중국화이 이와 같은 구도상의 특징들이 완전히 구비되지 않았지만 후대 화가들의 부단한 실천과 모색을 거쳐 점차 풍부하게 되었는데, 이는 누대에 걸쳐 예술가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경영한 결과이다. [97~98p]


- 6) 전이모사(傳移模寫)
그림을 임모하는 기능이다. -중략- 실제로 창작과 회화비평에서 직접 준수해야 하는 기준은 앞의 다섯 가지 법칙으로 이미 족하다. -중략- 그러나 6법은 일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진 예술이론이기 떄문에, 구체적으로 말하면 위진남북조 이래의 회화실천의 총결이기 때문에 6법이 포괄할 수 있는 이론은 이러한 역사시기를 넘어설 수 없다. -중략- 가령 중국화는 필묵을 중시하여 정묘한 필묵이 요구되는데 6법은 단지 골법용필만 제시했을 뿐 먹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략- 나는, 비록 6법이 동서고금을 통하여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하더라도(6법은 외국에서도 비교적 중시되고 있다) 이를 대할 때는 마땅히 우리가 모든 우수한 문예이론의 유산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를 둘러 나누어보는 과학적인 분석태도를 취해야지 “만고불변”이라는 식의 형이상학적 관점으로 대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98~99p]


(2) 요최(姚最)의 “심사조화(心師造化)”론
- “심사조화(心師造化)”란 조화를 스승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조화는 본래 자연계를 가리키는 것이었는데 후대에는 모든 객관사물을 가리켰다. “심사조화”론은 화가와 표현대상 간의 관계를 정확히 밝혀냈는데, 이는 유물주의적 예술반영론의 견해이다. 조화를 배운다는 것은 중국의 고대화가들이 몸소 노력하여 실행한 매우 중요한 창작원칙이 되었다. 당송대 화가들이 말을 그릴 때 말을 스승으로 삼고 원숭이를 그릴 때 원숭이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고사는 조화를 배운다는 이론의 영향을 말해준다. [99~100p]


6. 종병과 왕미의 산수화론

7. 대옹의 조소론


제3장 당ㆍ오대의 회화이론
개설
1. 고개지ㆍ육탐미ㆍ장승요에 대한 비평 논쟁과 장회관의 '신ㆍ골ㆍ육'론
- 장회관은 앞 시대 사람들의 평론을 기초로하여 고개지, 육탐미, 장승요 3대 화가가 가지고 있는 각각의 장점을 확립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사람을 그리는 아름다움에 있어서 장승요는 그 육(肉)을 얻었고 육탐미는 그 골(骨)을 얻었으며 고개지는 그 신(神)을 얻었는데, 신묘하여 짝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은 고개지를 으뜸으로 친다.
3대가가 각각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고개지의 성취가 더욱 높다는 것이다. 이백여년 동안 시대를 달리한 논쟁이 장회관에 이르러 결말이 났다. 이러한 논쟁은 미술사에 있어서의 3대 화가의 위치를 확실히 했을 뿐만 아니라 이론도 또한 발전시켰으니, 3대 화가의 예술표현에 있어서의 장점은 각각 신(神), 골(骨). 육(肉)의 묘를 얻은 데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신, 골, 육으로 그림을 논하는 방식은 일종의 척도로 변화되어 인물화에 대하여 신, 골, 육을 이야기하고 또한 몇몇 동물화에 대해서도, 가령 말을 그리는 데 대해서도 신, 골, 육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회화 이외에 서예와도 관련되어졌다. [122~123p]


- 그런데 신, 골, 육은 무슨 의미인가? 신은 신사(神似), 신운(神韻)을 가리키고 골과 육은 형체의 묘사, 즉 형사(形似)의 문제를 가리키는데, 다만 신, 골, 육이 명확히 나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23p]


- 신, 골, 육의 평론기준이 나타난 이후 이것은 당송대에 사람들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두보는 회화에 대해 골을 갖출 것을 요구했는데 그는 서예를 논하면서도 마르고 굳센 것을 귀하게 여겼다. 이 신, 골, 육의 평론기준은 당대에 이미 서예와 회화예술의 하나의 공통된 심미기준이 되었다. [125p]


2. 회화비평의 새로운 기준, '사격'과 '오등'
- 6법으로 회화의 우열을 평론하는 것은 남제에서부터 당초까지 줄곧 지쳐진 준칙이었다. 6법에 비해 추상적인 신(神), 묘(妙), 능(能), 일(逸)의 4격(四格)은 성당(盛唐, 713-765)경에 비로소 나타났다. 이 회화비평의 새로운 기준이 한번 제시되자 그 영향은 매우 컸다. 우리가 세상에 전하는 고화들을 보면 어떤 것은 위쪽에 “신(神)”이나 “신품(神品)”또는 “무상신품(無上神品)”이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는데, 이러한 글자는 감상가들이 4격에 근거하여 표시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보는 일반사람들은 그 의미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제 그 근원을 찾아 올라가 처음부터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대략 당 고종(高宗, 재위 650-683)의 측천후(則天后, 재위 684-707)시대에 이사진(李嗣眞, ?-696)이 『속화품(續畵品)』을 지어 일품(逸品)에 네 사람을 열거했다. 개원(開元, 713-741) 연간에 이르러 장회관(張懷瓘, 8세기초중경 활동)은 『화단(畵斷)』을 지으면서 신(神), 묘(妙), 능(能)의 기준을 제시하여 그림의 우열을 비교하였다. 그는 『서단(書斷)』에서도 서예를 신, 묘, 능의 3품으로 나누었다. 그 후 주경현(朱景玄. 9세기초중경 활동)은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의 「서(序)」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중략-
주경현은 장회관의 3품 외에 또 일품을 첨가하였다. 그리하여 주경현에 이르러 신(神), 묘(妙), 능(能), 일(逸)의 4격이 완전히 갖추어졌다. 4격은 무슨 의미인가? 주경현은 해석해놓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일품화(逸品畵)가 “상법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라고만 말했을 뿐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장언원(張彦遠, 815년경-?)은 화체(畵體)에 대해 말하는 가운데 다시 자연(自然), 신(神), 묘(妙), 정(精), 근세(謹細)의 5등(五等)을 수립하였따. 그는 자연을 제1등으로 놓았다. 그는 이러한 자연격의 그림에 대해 -중략- 저절로 그렇게 된 표현으로서 인공의 티가 없고 기교의 흔적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중략- 무엇이든지 모두 다 그려내는 것은 하품에 속하는 그림이다. 우리가 5등 중에서 자연과 근세 두 가지를 정확히 파악하면 곧 장언원이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 천의무봉(天依無縫)한 자연격의 예술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반면에 “하나하나 모두 갖추어” “밖으로 세밀한 기교를 드러낸” 그림은 가장 낮은 예술이다. -중략-
그가 5등을 수립한 것은 6법을 개괄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4격이든 5등이든 모두 6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벗어나 6법과는 관계가 없는 듯하다. 기실 4격과 5등은 당나라 사람들이 새로 수립한 회화비평기준이다. 4격과 5등의 기준은 6법처럼 그렇게 구체적으로 준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격과 5등은 작품의 풍격을 가리키는 것이고 또한 예술적인 성과를 포괄하는 것이지만, 주로 풍격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127~130p]


3. 장언원의 회화이론
- (1) 서화동체(書畵同體)론
회화의 기원에 대한 중국고대의 논의는 모두 복희(伏羲)가 8괘(八卦)를 그리고 창힐(蒼頡)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중략- 창힐은 단지 문자를 수집, 정리한 여러 사람 중의 한 사람 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가장 이른 중국의 한자는 상형적인 것으로서 글자의 모양이 사물의 형상에 근거하여 그려진 것이다. 그리하여 역대로 8괘를 그렸다는 것과 상형문자를 그림의 기원으로 간주하여왔다. -중략- 장언원은 창힐시대에는 글씨와 그림이 동체여서 어느 것이 문자이고 어느 것이 그림인지 분명하게 나뉘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중략- 순임금시대에 이르러 회화와 문자가 비로소 나뉘어졌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면 회화와 문자도 처음에는 동체였는가? 나는 동체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글씨와 그림이 처음에는 모두 상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상 문자와 회화는 결코 동체가 아니었다. 우리는 문자와 회화가 이루어진 역사적 조건과 그 각각의 특수성으로부터 이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 회화의 출현은 문자보다 빨랐다. 문자는 역사가 일정한 단계까지 발전되었을 때, 대체로 원시사회에서 노예제사회로 넘어간 시기에서야 비로소 점진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회화는 이보다 훨씬 이른 신석기시대에 이미 존재했다. -중략- 회화의 발생은 다른 에술의 발생이 그러하듯 주로 인류의 노동생산에서 유래된 것이다. 문자와 회화 자체의 특수성에서 볼 때도 양자는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상형문자 중의 일(日)자는 하나의 원 모양의 태양 모습을 그린 것인데, 일단 이러한 글자의 모양이 만들어진 뒤에는 곧 상대적으로 고정된 하나의 사물을 기록하는 부호가 되었다. 비록 후대의 서예에 여러 종류의 서로 다른 서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형상은 계속 지속되었다. 회화는 이와 다르니, 설사 그것이 간단한 형상일지라도 언제나 작가가 일정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131~136p]


(2) 교화(敎化)를 이루어 인륜(人倫)을 도우며, 성정(性情)을 즐겁게 한다는 회화효능론
- 인물화에 대한 장언원의 효능론인데, 그 핵심적 사상은 교화를 이루어 인륜을 돕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화는 이러한 커다란 교육작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6경의 작용에 비길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산수화의 효능작용에 대한 이러한 이론은 바로 종병과 왕미가 자연미를 재현하는 산수화에 대해 그들 스스로 밝힌 바 있었던 “창신(暢神)”작용과 서로 통하는 것이다. [137~138p]


(3) 6법(六法)에 대한 새로운 논술
- 사혁(謝赫)은 6법을 제시하면서 6법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논술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바에 따라 6법을 해석하였다. 장언원은 최초의 해석자였다. -중략- 즉 화가는 대상을 표현할 때 반드시 먼저 기운, 즉 신(神)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바, 기운을 파악하여 형상을 이루어내면 곧 신이 있고 형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장언원의 이러한 관점은 고개지의 “이형사신(以形寫神)”론과 비교할 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요구하고 있는 점에서 볼 때, 장언원은 먼저 대상의 신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어 신으로 생동을 나타내는 조형이라야 올바른 조형이라고 강조하였다. 고개지는 형으로 신을 그리는 것도 또한 옳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인물의 정신상태의 생동은 형을 통해야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언원과 고개지의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을 과연 이와 같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이는 더욱 연구해볼 수 잇는 문제이다.
형사(形似)와 용필(用筆)의 관계에 대해 장언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사물을 그리는 것은 반드시 형사에 있고, 형사는 모름지기 그 골기(骨氣)를 완전히 해야 하는데, 골기와 형사는 모두 입의(立意)에 근본을 두고 용필로 돌아간다. 그리하여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대개 글씨를 잘 쓴다.
-중략-
그의 “의재필선(意在筆先; 뜻이 붓보다 먼저 있다)” -중략- 장언원은 골법용필(骨法用筆)과 응물상형(應物象形)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해석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6법의 내용에 대해서도 새롭게 보충하였다. -중략- 입의(立意)란 곧 구상인데, 이는 창작의 중요한 핵심으로 천상묘득(遷相妙得)의 결과이다. 경영위치는 곧 장법(章法;구성법-역자)으로 입의에 의거하는 것인데, 입의는 화가나 서예가의 머리 속에 있는 “복안(腹案)”이고, 경영위치의 장법은 이미 가시적인 형상으로 구체화된 입의의 물화(物化)이다. 전자는 무형이고 후자는 유형이다. -중략- 입의는 그림의 기초이기 때문에 장언원은
경영위치는 곧 그림의 총요(總要)이다
라고 말하였다. 6법의 상호관계는 경영위치가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기 때문에 일체의 형상은 모두 경영위치의 총괄을 받는다는 것이다. -중략- 장언원은 6법을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새로운 공헌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부정확한 관점도 있었으니, 가령 기운문제는 속된 사람과 더불어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중략- 이는 장언원의 봉건사대부 문인적인 예술편견이다. [138~141p]


- (4) 그림을 논할 때는 모름지기 사자(師資), 전수(傳授)와 남북(南北), 시대(時代)를 알아야 한다.
작가를 완전히 이해하여 전면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확한 평론을 할 수 있다. -중략- 장언원의 사자와 전수에 대한 이론의 의의는 또한 예술의 계승성과 발전의 연계문제와도 관계 있다. 화가는 그가 가지고 있는 기교에 의해 풍격과 유파를 형성하게 되는데, 거의 모든 경우 우연한 것이란 없으며, 우연하게 보이는 것도 기실은 단지 찾아낼 자료가 없는 것일 뿐이다. 역사상의 어떤 화가들은
특별히 빼어나 나면서부터 알고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지 아니하였다
거나, 또는
본래 방종하게 태어나 조술(祖述)한 바가 없었다
고 말해지기도 하는데, 기실 그들은 동시대 사람으로부터 그림을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전시대 사람의 예술은 배우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직접 또는 간접적인 사승(師承)관계를 맺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중략- 하나의 새로운 풍격의 출현은 일반적으로 전통의 기초 위에서 발전되고 혁신되는 것이다. [141~143p]


- (5) 회화의 용필(用筆)론
1) 글씨와 그림은 용필법이 같다(書畵用筆同法)
서화동체론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글씨와 그림의 용필법이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정확했다. -중략- 글씨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개념이 있으니, 하나는 문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로서의 서예이다. -중략- 서예를 예술이라 칭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예술적인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중략- 이러한 몇 가지 예는 회화가 용필에 있어서 서예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이를 통해 필력을 배우고 또한 계발시킬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2) 필법이 같지 않으면 풍격이 서로 다르다.
장언원은 4대화가의 용필의 특징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들이 서로 다른 풍격을 지닌 양대 유파에 속하는 것임을 이론적으로 확정하였다. 즉 용필이 같지 않기 때문에 그려진 선의 형식미도 다르다는 것이다. -중략- 용필이 다른 풍격의 양대 유파를 "성기고 세밀한(疏密)“ 두 가지 체(體)로 귀납시켰다.
3) 뜻이 붓보다 먼저 있고(意在筆先) 그림이 다해도 뜻이 남아 있다(書畵意在)
화가의 사상과 감정은 용필을 지배하기 때문에 붓과 뜻의 관계는 뜻이 붓보다 먼저 있다. -중략- 이에 반해 만약 붓을 잡고 생각해가면서 그려나가면 “신기를 완전하게 하는 데” 영향이 있어 예술적인 효과를 버리게 된다. -중략- 뜻은 붓에 의하여 표현된다. 다시 말하면 붓이 이르면 뜻도 이르고 붓이 이르지 않으면 뜻도 또한 이르지 않는다. -중략-
장언원은 고개지와 육탐미를 “필적이 주도면밀한” 유형으로 보고, 장승요와 오도자를 “필은 주도면밀하지 않지만 뜻이 주도면밀한” 유형으로 보았다. -중략-
즉 뜻이 주도면밀한가의 여부는 선의 많고 적음이나 성기고 세밀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뜻을 완벽하게 표현했는가의 여부에 있다는 것이다. -중략- 필이 주도면밀하지 않지만 뜻은 주도면밀하고 그림이 다해도 뜻이 남아 있다는 것, 이는 중국회화가 추구하는 함축미가 용필상에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중략- 회화의 내용이 의미심장하여 사람에게 상상의 여지를 준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내용에 있어서의 중국화의 함축적인 요구를 말한 것이다. 장언언이 말하는 그림이 다해도 뜻이 남아 있다는 것은 필묵에 있어서의 함축을 가리키는 것이다. 함축과 내재미의 추구, 이는 중국화의 하나의 커다란 특징이요 장점이다. [145~152p]


- (6) 뜻이 그림에 있지 않아야 그림을 얻을 수 있다
즉 정신을 극도로 집중시켰기 때문이라 했는데 이는 확실히 올바른 해석이었다. -중략-
무릇 생각을 움직여 붓을 휘두를 때에 스스로 그리는 것을 의식하면 곧 더욱 그림을 잃게 된다. 생각을 움직여 붓을 휘두를 때에 뜻이 그림에 있지 않아야 그림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이치는 과연 옳은 것인가? 장자(莊子)의 고사는 기실 숙련된 기교는 실천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도자와 같은 뛰어난 기예는 그의 천재적인 요소가 내재해 있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또한 실천을 통한 산물이기도 하다. [153~155p]


- (7) 산수화의 변천을 논함
오히려 사원의 승려나 도사들도 산수화를 환영했으니, 산수와 화죽화(化竹畵)는 승려나 도사들의 “설법(說法)”을 대신할 수 있었다. -중략- 장언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중략- 요컨대 위진 이후의 산수화가 고졸하다는 것이다. -중략- 산, 돌, 나무에 변화가 없고 형질이 비교적 단순하고 얇은 것은 오로지 그 장점을 드러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의 산수화 기법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던 데서 나타난 결점이다. 수(隨, 581-618)대의 산수화에 대하여 장언원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중략- 즉 산과 돌을 그리는 데 선으로 윤곽선을 그려 모습이 마치 얼음조각이나 도끼날 같고, 나무들도 단지 선만을 사용하여 모습이 간략하다는 것이다. -중략- 장언원은 산수화 발전의 새로운 단계는 오도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여 오도자는 산수화를 일변시킨 창시자라고 말하였다. -중략-
산수의 변화는 오도자에서 시작되어 이사훈(李思訓, 651-715), 이소도(李昭道, 670년경-730년경)에서 이루어졌다.
-중략-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산수의 변화가 오도자에서 시작되어 이사훈, 이소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가 이사훈, 이소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155~159p]
4. 수묵산수화의 창시자 장조와 그의 '외사조화, 중득심원'론
- 장조는 -중략- “밖으로는 조화를 배우고 안으로는 마음의 근원에서 얻었다”는 한 마디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말은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는 화가의 창작과정 중에 반영되는 객관적 사물과 주관적 사상감정의 연계작용을 개괄하고 있다. "밖으로 조화를 배운다(外師造化)“는 것은 화가가 객관적 사물에서 섭취한 창작의 원료로서 화가가 묘사하는 대상에 충실한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에만 머물로서는 불충분하며, 화가는 이에서 더 나아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하여 분석하고 연구하고 판단하여 머리 속에서 이를 가공하고 개조해야만 하니 이것이 곧 ”안으로는 마음의 근원에서 얻는다(中得心源)“는 것이다. ”외사조화“와 ”중득심원“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정확하고 완전한 창작과정이다. -중략- 요최(姚最)는 일찍이 ”마음으로 조화를 배운다(心師造化)“는 관점을 제시했는데, 장조 이론의 공적은 그가 이에서 일보 더 나아가 양자를 전면적인 사상으로 결합시킴으로써ㅗ 내용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163p]


5. 형호의 산수화론: '육요'와 '이병'
- 형호(荊浩, 870년경-930년경)는 당말, 오대(五代, 907-960) -중략- 『필법기(筆法記)』[163~164p]


- (1) 6요(六要)
형호가 전문적으로 산수화 창작을 위해 제시한 여섯 가지 기준으로서 사혁(謝赫)이 인물화에 근거하여 제시했던 6법과는 다르다. 그러나 6요는 확실히 6법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이니, 산수화의 특수한 요구와 형호 자신의 창작실천에 근거하여 6법을 취사선택함으로써 6법의 기초 위에서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6요란 무엇인가?
무릇 그림에 여섯 가지 요체(六要)가 있으니, 첫째는 기(氣)요, 둘째는 운(韻)이요, 셋째는 사(思)요, 넷째는 경(景)이요, 다섯째는 필(筆)이요, 여섯째는 묵(墨)이다.
-중략 - 기란 무엇인가?
기란 마음이 붓을 따라 움직여 상(象)을 취하는 데 미혹됨이 없는 것이다.
“마음이 붓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실제로는 붓이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화가의 사상이 용필을 통솔하여 형상을 묘사해야만 비로소 마음 속에 분명한 주견이 있게 되어 상을 취하는 데 미혹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운이란 무엇인가?
운이란 필적을 숨기고 형을 세워 의형(儀形)을 갖추는 데 속되지 않은 것이다.
필적은 형상에 이바지해야지 형상을 벗어나 단독으로 드러나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형호는 기운을 기와 운의 두 가지 법칙으로 분리시켰는데, 그 자신이 해석한 기와 운의 의미에 의하면 기운을 분리시킬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와 운은 인물화에 있어서나 산수화에 있어서나 모두 대상의 신(神)을 표현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 기운이 완전한 말이다. 후대에 그림을 평할 때 여전히 기운이라는 말을 쓰고 기와 운으로 나누지 않은 것은 혹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 번째의 사(思)란 무엇인가?
사란 깎고 덜고 크게 요약하여, 생각을 응축시켜 사물을 그리는 것이다.
형호가 다른 곳에서 말한
그 번거로운 꾸밈을 제거하여 그 큰 요체를 취한다
는 것도 곧 깎고 덜어 크게 요약한다는 의미이다. -중략- 화가는 요점을 모으고 정신을 응축하여 그 표현하는 대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의심할 나위없이 화면 위에 나타나 있지 않은 입의와 구상활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중략-
네 번째의 경(景)이란 무엇인가?
경이란 법도를 세우는 데 때에 의거하고, 묘(妙)를 찾아 진(眞)을 창조하는 것이다.
자연경물을 그릴 때는 계절과 시간 및 환경조건의 변화에 근거하여 묘사해야 하며, 자연경물의 정신과 모습을 집중적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호는 특히 예술의 진(眞)을 중시했는데, 진이란 신사(神似)와 형사(形似)가 겸비된 것이다. 그는
사(似)란 그 형(形)은 얻었으나 그 기(氣)는 잃은 것이요, 진(眞)이란 기(氣)와 질(質)이 모두 성(盛)한 것이다
라고 하여 진실로 좋은 산수화는 기와 질이 모두 성해야 한다고, 다시 말해 형과 신이 겸비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다섯 번째는 필(筆)이고 여섯 번째는 묵(墨)인데, 이는 필묵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중략- 중국 고대에서 형호는 처음으로 필묵을 다 같이 중시한 사람이다. 사혁의 6법은 단지 골법용필만을 말했을 뿐 용묵은 제시하지 않았다. -중략-
필이란 비록 법칙에 의거하기는 하지만 운용에 따라 변통하여 질(質)만을 취하지도 않고 형(形)만을 취하지도 않아 마치 나는 듯하고 움직이는 듯한 것이다.
묵이란 높고 낮음에 따라 흐리기도 하고 맑기도 하며 물체에 따라 얕기도 하고 깊기도 하여 문재(文采)가 자연스러워 마치 붓으로 그리지 않은 듯한 것이다.
요필에 비록 법칙이 있기는 하지만 변화를 주어 용필이 원활하고 생동해야 하며, 용묵은 물체의 입체감과 명암관계를 선염(渲染)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형호는 또한 용필에 근(筋), 육(肉), 골(骨), 기(氣)의 4세(四勢)가 있다고 제시하였다. -중략-
필적이 떨어져 있으나 끊어지지 않는 것을 근이라고 하고, 굵기도 하고 가늘기도 하여 실체감을 이룬 것을 육이라 하며,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굳세고 곧은 것을 골이라 하고, 획의 자취에 잘못됨이 없는 것을 기라 한다.
[163~168p]


- (2) 2병(二病)

유형의 병과 무형의 병 -중략- “유형의 병(有形之病)”이란 무엇인가? -중략-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생긴 것이 있으니 가령 “꽃과 나무가 때에 맞지 않는 것” 같은 것이 그것이고, 어떤 것은 투시법상 불합리한 것이 있으니 “집은 작으나 사람이 큰 것” 같은 것이 그것인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결점을 알아낼 수 있고 또한 고칠 수 있는 것이다.
“무형의 병(無形之病)”이란 무엇인가?
기(氣)와 운(韻)이 모두 빠지고 물상이 완전히 어그러져 필묵이 비록 행해지기는 하였지만 죽은 물상과 같아 졸격(拙格)에 떨어진 것인데, 이는 깎아 고칠수도 없다.
-중략- 무형의 병은 기실 그림의 격조를 가리킨다.
[169~170p]


6. 전 왕유의 『산수결』과 『산수론』

7. 민간화가들의 경험의 총결: 전 형호의 『화론』


제4장 송대의 회화이론
개설
Ⅰ. 송대 회화비평의 몇 가지 기준
1. '사격'의 해석과 순서 변화
- 성당의 장회관(張懷瓘)이 처음으로 신(神), 묘(妙), 능(能)이라는 회화비평기준을 제시했으며 그 뒤 주경현(朱景玄)이 일격(逸格)을 첨가하여 신(神), 묘(妙), 능(能), 일(逸)이라는 4격의 회화비평기준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송초의 황휴복(黃休復, 10세기말-11세기초)은 『익주명화록(益州名畵錄)』에서 4격의 순서를 새롭게 배열하여 당대 4격의 맨 끝에 놓였던 일격을 맨 위에 올려놓았는데, 이로 인해 송대에는 “상법(常法)”에 구애받지 않는“(일격에 대한 주경현의 해석) 일격이 중시되기 시작했다. 황휴복은 당나라 사람들이 거의 해석하지 않았던 4격에 대해 하나하나 그 의미를 밝혀놓았다.
일격(逸格) : 그림의 일격은 그것을 분류하기가 가장 어렵다. 네모와 원을 법도에 맞게 그리는 데 서툴고, 채색을 정밀하게 칠하는 것을 하찮게 여기며, 필이 간략하나 형태는 갖추어지니, 자연에서 얻을 뿐 본뜰 수 없고 뜻 밖에서 나온다. 그리하여 이를 이름하여 일격이라 할 뿐이다.
신격(神格) : 대저 그림이라는 기예는 사물에 응하여 형상을 그리는 것인데, 그 천성이 심원하고 고매하면 생각이 신과 합일되어, 뜻을 내고 체(體)를 세우는 데 조화와 권능이 신묘하게 합일되니, 이를 “부엌을 열고 이미 도주하였다”거나 “벽에서 빠져나와 날아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를 이름하여 신격(神格)이라 할 뿐이다.
묘격(妙格) : 그림은 사람에 따라 각각 본성이 있는데, 필(筆)의 정밀함과 묵(墨)의 현묘함이 왜 그러한가는 알지 못하되, 마치 소를 잡는 데 칼날을 대듯이 코를 찍는 데 도끼를 휘두르듯이 마음에서 손에 맡겨 현묘함과 미세함을 다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이름하여 묘격(妙格)이라 할 뿐이다.
능격(能格) : 그림에 성품이 동물과 식물에 두루 미치고, 하늘의 재주와 짝할만큼 배워서 이에 산을 결합시키고 내를 풀어내며 물고기를 자맥질시키고 새를 날게 하는 데 있어 형상이 생동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름하여 능격(能格)이라할 뿐이다.
이에 의해 우리는 대체로 일격이 회화의 법칙을 중요시 하지 않지만 필묵은 정련되어 있고 의취(意趣)가 보통 사람의 상식을 넘어선 작품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83~184p]


- 당대의 서예가 두몽(竇蒙, 8세기중반경 활동)은 서예의 풍격에 대해 해석하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 일정함이 없는 것을 일(逸)이라 한다
고 하였다. 자기 자신의 흥취에 따라 쓸 뿐 어떤 방법도 없는 것, 이러한 서예는 격(格)이 일(逸)하다는 것이다. 서예에서 보든 회화에서 보든 일격에 대한 해석은 그 기본정신이 동일하다. 신격은 형(形)과 신(神)이 겸비되고 입의(立意)가 오묘하여 자연과 합일된 작품을 가리킨다. 원(元, 1264-1368)대의 도종의(陶宗儀, 14세기중후반 활동)는 『철경록(輟耕錄)』에서 신품(神品)을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운이 생동하고 천기(天機)에서 나와 사람이 그 교묘함을 엿볼 수 없는 것을 일러 신품이라 한다.
묘격은 마음에서 얻어 손으로 응해내고 필(筆)이 정확하며 묵(墨)이 현묘한 작품을 가리킨다. 능격은 공력을 들여 대상을 생동감있게 표현한 작품을 가리킨다. [184~185p]


- 어떠한 예술비평기준이든지 그 안에는 비평가의 예술취미와 심미관이 포함되어 있다.[185p]


- 황휴복이 일격을 높이 평가한 것은 문인화가의 예술심미관이 반영된 것이다. 송의 휘종(徽宗, 재위 1100-1125) 조길(趙佶, 1082-1135)은 궁정화원을 주제하면서 황휴복이 배열한 4격의 순서를 부정하고 “신(神), 일(逸), 묘(妙), 능(能)으로 차례를 정했는데”, 이 사실은 『화계(畵繼)』의 「논원(論遠)」에 기록되어 있다. 조길이 4격의 순서를 바꾼 것은 그의 “오로지 법도에 맞게 그리는 데 서툴고 정밀하게 채색하는 것을 하찮게 여기고 필이 간략하나 형태는 갖추어져 있는” 일격은 바로 조길이 제창한 “법도”와 서로 대립되는 것이며, 그가 수립한 황전(黃筌, ?-965)파의 “묘가 색칠하는 데 있고 용필이 매우 새롭고 자세한(심괄의 평어” 것과도 서로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일격을 맨 위에서 내려놓으려 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조길이 바꿔놓은 그림의 격, 즉 신, 일, 묘, 능의 순서로 된 회화비평기준은 당시에도 단지 화원이나 화원의 영향을 받은 평론가들 사이에서만 활용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길이 배열한 순서에 대해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남송(南宋, 1127-1279)의 등춘(鄧椿, 12세기중후반 활동)은 황휴복이 일격을 “맨 앞으로 올려놓은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일격이 높여졌다 내려졌다 하는 상황에서도 송대 원체화와 문인화의 서로 다른 심미관이 대립, 투쟁하는 상황을 엿볼 수 있다. [185~186p]


2. 곽약허의 '기운비사'와 용필의 '삼병'론
- (1) “기운비사(氣韻非師)”
회화비평기준으로서의 6법은 송대의 일부 화가들 사이에서는 그 의미가 고정된 것이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의미를 더 이상 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높여놓았다. 그러나 6법에 대한 해석과 논술에 있어서 어떤 측면에 대해서는 그 본래의 모습을 수정하여 유심주의적 관점을 취했다. 곽약허(郭若虛 , 11세기후반경 활동)가 “기운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氣韻非師)”라고 논한 것은 그 하나의 예이다. -중략- 기운은 화가의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객관대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부정확한 것이다. 애당초 사혁(謝赫)이 6법을 제시했을 때 그는 단지 화가들이 6법을 “능히 다 갖춘 것이 드물어” “모두 겸비한 사람이 적다”고 말했을 뿐 결코 기운생동이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는 곽역허가 사혁의 6법을 수정하여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라는 유심주의적인 관점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중략- 이 글은 인품이 높으면 기운은 곧 저절로 생동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중략- 기운생동은 화가가 사물의 형상을 인식하는 사유능력과는 관계가 잇지만 결코 작가 자신의 정신적 품위문제와는 관련이 없다. 기실 곽약허가 인품이 높은가 아니 높은가를 구분하는 기준도 화가의 정신적 경지가 어떠한가가 아니라 주로는 사회적 지위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다. 그가 인품이 높다고 생각한 “고위고관의 현인, 재사나 재야에 은둔한 명사”들이란 기실 장언원이 말했던 “예로부터 그림을 잘 그린 사람은 고간, 귀족, 일사(逸士), 고인(高人)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할 때의 바로 그 사람들로써 이들이 그린 그림은 기운이 저절로 생동하다는 것이다. [187~189p]


- (2) 용필(用筆)의 “3병(三病)”
그(곽약허)는 용필에 3가지 병이 있다고 제시하면서 뜻(意)과 필(筆)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림에 3가지 병이 있는데 모두 용필에 관계된 것이다. 이른바 세 가지란 첫째는 판(版)이요, 둘째는 각(刻)이요, 셋째는 결(結)이다.
판이란 팔뚝의 힘이 약하고 필치가 아둔하여 필선의 억양이 완전히 어그러짐으로써 물체의 모습이 평편하여 둥근 덩어리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각이란 붓을 움직이는 가운데 의혹이 일어 마음과 손이 서로 어긋나 획을 구부리는 곳에서 망령되이 모가 생긴 것이다.
결이란 가고자 하나 가지 못하고 풀어야 할 곳에서 풀지 못하여 물체가 엉기고 막힌 듯하여 유창하지 못한 것이다.
-중략- 곽약허가 말하는 용필의 세 가지 병을 종합해보면 그러한 병이 생기게 된 원인은 어떤 것은 용필에 대한 공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데 있으니, 예를 들어 팔의 힘이 약하고 필치가 치졸한 것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주된 원인은 뜻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은 데 있으니, 운필할 때 가슴 속에 묘사할 대상이 정확히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용필하는 가운데 의혹이 일고 가고자 하나 가지 못하며 풀어야 할 곳에서 풀지 못한 채 생각해가면서 그리게 됨으로써 곧 선에 여러 가지 잘못이 나타난 것이다. 장언원은 “뜻이 붓보다 먼저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지만 이러한 원칙을 어겼을 때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곽약허는 이 문제를 논증하여 이에 답함으로써 용필의 이론을 풍부하게 하였다. [190~191p]


3. 유도순의 '육요'와 '육장'론
- 유도순의 6요의 내용을 사혁의 6법과 비교해보면 6법을 모두 요구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6법의 전 범위를 언급하고 있지도 않다. 이는 형호와 6요와 유사하지만 형호의 6요만큼 정채롭지는 못하다. 유도순의 6요는 독창적인 견해가 적어 6요 중의 적지 않은 내용이 사혁이 말한 것과 유사하다. 즉 기운겸력(氣韻兼力), 변이합리(變異合理), 채회유택(彩繪有澤)은 그 기본내용이 6법의 기운생동(氣韻生動), 경영위치(經營位置), 수류부채(隨類賦彩)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거래자연(去來自然)는 격법과 체제가 노숙한 데 이른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6요 중의 마지막 항목인 사학사단(師學舍短)이 오히려 중시할 가치가 있다.
유도순은, 사학사단의 정신은 회화를 평론하는 데 있어
단점을 보면 이를 낮추지 말고 오히려 그 장점을 구하며, 잘된 것을 보면 이를 칭찬하지 말고 오히려 그 서투른 점을 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회화비평은 마땅히 단점을 보면 그 단점을 말하고 장점을 보면 그 장점을 말하며, 잘된 것을 보면 그 잘된 것을 말하고 서투른 것을 보면 그 서투른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그러나 배우는 태도로서 사학사단은 매우 뛰어난 견해이다.[192p]


- 유도순의 6장(六長)은 그의 6요에 비해 보다 더 가치가 있다. 특히 6장의 이론적 가치는 그 안 에 예술형식미의 대립과 통일의 법칙이 포함되어 있다는 데 있다. 즉 첫 번째의 추로구필은 거칠고 호방한 가운데에도 필과 묵이 있어야지 호방하다고 해서 용필, 용묵을 무시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벽삽구재는 서투른 가운데에도 법도가 갖추어져 있어야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청대의 어떤 사람은 “구재(求才)”란 곧 “구통(求通)”이라 해석했는데 이 해석은 그렇게 타당한 해석은 아니다. 세 번째의 세교구력은 세밀하고 정교한 가운데에도 힘을 표현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정밀한 풍격은 왕왕 섬세하여 힘이 없는데, 섬세하면서도 반드시 힘이 있어야 하니, 예를 들어 고개지나 이공린의 그림은 섬세한 용필 속에 힘이 충만되어 있어 춘잠토사이든 유사묘이든 섬세하면서도 약하지 않아 섬세함과 힘 양자가 통일되어 있다. 네 번째의 광괴구리는 괴이하고 허탄한 가운데에도 이치에 합당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서위 같은 명청대 사람들이 그린 화훼는 구도나 필묵이 기광하고 괴이하지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인정과 도리에 맞는다. 예술은 괴이함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인정과 도리에 맞아야 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의 “무묵구염”은 필묵이 없는 곳에도 여전히 형상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필묵이 없는 곳은 백지가 아니라 허로써 실을 대신하고 백으로써 흑을 감당해내는 것이다. 여섯 번째의 평화구장은 평이하고 담백한 곳에도 심장한 의미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북송과 원대의 일부 산수화가들은 “평담천진”을 중요시하였는데 아마 이것도 곧 그러한 의미일 것이다.
6장을 종합적으로 보면 추로구필과 무묵구염은 필묵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고, 벽삽구재와 평화구장은 필묵이나 화풍 또는 의취를 가리키는 것이다. 세교와 유력, 광괴와 이치, 평담과 심장은 모두 쉽게 통일시킬 수 없는 모순이다. 그러나 능력있는 화가의 손에서 이들은 완전히 통일된다. [194p]


4. 구양수ㆍ심괄ㆍ소식의 '중신사'론
- 소식은 명백하게 문인화를 높이 평가하고 화공의 그림을 멸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분석해야 하는 것은 소식이 천리마를 상(相)보는 것으로 그림 보는 것을 비유하여 설명하고자 한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말이 천리마인가 아닌가는, 말을 감정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뛰어난 준마(駿馬)의 기(氣)가 있는가 없는가를 관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털가죽인 검은가 누른가와 같은 것은 고려할 만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말이 검은지 누런지, 암컷인지 수컷인지는 누구라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신준(神俊)한 기는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3p]
5. 소식의 회화이론의 기준: '상리'
- 소식이 말하는 이(理)는 사혁이 말하는 이(理)와 동일한 의미이다. -중략-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즉 회화의 표현대상 중에서 어떤 것은 상형(常形)이 있으니, 가령 인물이나 새, 건축물 등과 같은 것은 형태의 변화가 크지 않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상형이 없으니, 예를 들어 산, 돌, 대나무, 나무, 물결, 안개, 구름 같은 것들은 그 자체에 상형이 없거나 또는 그 자체에 비록 정형(定形)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자연조건의 작용에 의해 그 모습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상형이 있는 사물이든 상형이 없는 사물이든간에 모든 사물에는 상리(常理), 즉 법칙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파악할 수 있따. 상리는 사물의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208~209p]


6. 소식의 '시정화의'론


7. 화가의 수양론
- 송대는 이론적으로 화가의 수양(修養)을 중시하기 시작했고, 아울러 화가의 수양을 회화비평 또는 창작에 있어서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다. 송나라 사람들이 제시한 수양에는 세 가지 측면이 포괄되어 있다. 첫째는 문학적인 조예이고, 둘째는 생활의 경력이며, 셋째는 예술전통에 대한 연구와 계승이다.[219p]


- 이 세가지 조건은 곧 문학적인 수양, 예술전통에 대한 연구, 생활경험의 풍부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223p]


Ⅱ. 송대의 인물화론
1. 송대의 오도자와 주방론: 당ㆍ송대 심미관의 차이
2. 곽약허의 사기모론과 진욱의 사심론
3. 이공린의 인물의 내면 정신 표현론
4. 소식과 진조의 전신론
Ⅲ. 송대의 산수화론
1. 송대 산수화의 심미관과 예술 정취 논쟁
- 북송의 산수화는 기본적으로 당과 오대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송대의 많은 화가들은 당대에 성행했떤 청록산수는 배우지 않았다. 그들이 흥미를 느낀 것은 수묵산수였다. 수묵산수는 송대에 이르러 양대 유파가 형성되었는데, 일파는 북방의 웅장하고 거대한 산수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형호(荊浩), 관동(關同, 10세기경), 이성(李成, 919-967), 범관(范寬, 10세기경)이 그 대표적 인물이고, 다른 일파는 강남의 명징(明澄)하고 수려한 산수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동원(董源, 907?-962?), 거연(巨然, 10세기중후반경 활동)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이 밖에 오로지 강남의 안개와 비에 젖은 경치를 표현한 미불(米芾, 1051-1107), 미우인(米友仁, 1086-1165)이 있는데, 이 미가산수(米家山水)는 동원과 거연화파의 갈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양대 유파, 3종의 예술풍격이라고 할 수 있다. 송대의 산수화에 대한 평론은 주로 이 양대 유파에 집중되어 있다. 마원(馬遠, 12세기후반-13세기중반경)과 하규(夏珪, 12세기후반-13세기초반경)의 경우는 우선 그들이 늦게 출현하여 북송의 이론이 활발하던 시기와 맞지 않았고, 다음으로는 그들의 예술이 남송 당시에도 이론상 중시받지 못했기 때문에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대와 북송 양대 유파의 산수 화가들에 대한 평론에는 2종의 심미관과 예술정취가 반영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는 각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문인화가의 심미관이 일반 화가의 심미관을 이긴 것인데, 이러한 형세변화는 송대 이후 산수화 발전의 모습을 결정지었다. [250~253p]


2. 곽희의 산수화론
- 곽희(郭熙, 11세기초-11세기말)의 -중략- 『임천고치(林泉高致)』[263p]


- (1) 산수를 관찰하는 방법과 태도
어떻게 하여 형과 신을 얻는가-중략-
실제 산수의 시내와 계곡은 멀리서 바라보아 그 세(勢)를 취하고 가까이에서 관찰하여 그 질(質)을 취한다.
이는 산수를 관찰하는 가장 중요한 요점인데,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것의 결합은 산수의 기(氣)와 질(質)을 획득하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되는 길이다. 산수, 화훼(花卉), 죽석(竹石)이 다 같은 자연경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관찰방법은 서로 다르다. -중략- 멀리서 바라보는 목적은 산천경물의 기개(氣槪)를 알기 위해서, 즉 그 세(勢)를 취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어떤 자연경물은 멀리서 바라보지 않으면 그 신(神)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형도 알 수 없다. -중략-
자연경물을 관찰할 때 멀리서 바라보지 않으면 곧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알 수 없게”된다. 반면에 자연경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목적은 자연물의 질감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중략- 산수화의 수많은 준법은 바로 화가가 여러 가지 산과 돌의 재질이나 겉모습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화법상 추출해내고 정제시킨 것이다.
곽희는 이와 같이 멀리서 바라보고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것 외에도 원근에 따른 이동법(移動法)을 제시하였다.
산은 가까이에서 보면 이와 같고 몇 리 떨어져 보면 또 이와 같으며 십여 리 떨어져 보면 또 이와 같아 매번 멀어질수록 매번 다르니, 이른바 산의 모습은 걸음걸음마다 바뀐다는 것이다. 산은 정면에서 보면 이와 같고 측면에서 보면 또 이와 같으며 뒷면에서 보면 또 이와 같아 매번 볼 때마다 매번 다르니, 이른바 산의 모습은 면마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산이면서 수십, 수백의 산모습을 겸하고 있으니 가히 자세히 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산의 모습이 걸음걸음마다 바뀐다”는 것은 산의 가까운 곳에서부터 점차 뒤로 물러나면서 관찰할 때 산이 달라지는 효과이다. -중략- “산을 면마다 본다”는 것은 앞뒤, 좌우로 두루 보는 방법이다. -중략- 흔히 사람들은 강산이 그림처럼 아릅답다는 말을 하는데, 그림이 강산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강산을 그릴 때는 선택해서 그리기 때문이다. -중략- 그가 자연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정(情)과 경(景)을 서로 융합시키고 있는 태도이다. 그는 정감을 품은 채 자연물을 대하였다. -중략- 이러한 물상의 특징은 화가에게 상상과 비유의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정감과 경물이 상호 융합되는 데 있어서 주도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오히려 화가의 정감이다. [264~266p]


- (2) 소재선택의 전형화(典型化)
즉 자연미를 재현할 때는 반드시 취사선택하여 산천의 정수를 그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지도를 그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중략- 예술은 자연을 재현하는 데 있어서 모든 것을 다 나열할 필요가 없다. [267~268p]


- (3) 3원(三遠)론
종병(宗炳)이 가까운 것은 크고 먼 것은 작다는 투시법의 기본원리를 확립한 이후 오랫동안 이론적으로 이를 깊이 있기 다시 연구한 사람이 없었다. -중략- 곽희는 투시법의 3원론을 제시하였다.
산 아래에서 산 꼭대기를 올려다보는 것을 일러 고원(高遠)이라 하고, 산 앞에서 산 뒤를 넘겨다보는 것을 일러 심원(深遠)이라 하며,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을 일러 평원(平遠)이라 한다. 고원의 색은 맑고 밝으며, 심원의 색은 무겁고 어두우며, 평원의 색은 밝은 것도 있고 어두운 것도 있다. 고원의 세(勢)는 높이 솟아 있고, 심원의 뜻은 중첩되어 있으며, 평원의 뜻은 온화하고 아득하다.
고원은 앙시(仰視)로 산을 보는 것이고, 심원은 부감시(俯瞰視)로 산을 보는 것이며, 평원은 평시(平視)로 산을 보는 것이다. -중략- 산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산세가 높이 솟아 있고 산색이 청명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산의 뒤를 내려다보면 층층이 중첩된 산 봉우리와 산색이 무겁고 어두운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수평으로 멀리 바라보면 경치가 아득하고 산색이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 것을 볼 수 있다. -중략- 이러한 변화는 물론 자연의 진실에 기초되어져야 하겠찌만, 그러나 예술적인 생략에 의한 경영위치의 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269~271p]


Ⅳ. 송대의 화조화론
1. 서희와 황전의 양대 화풍에 대한 평론
2. 대상에 대한 철저한 관찰 정신과 사물의 '신명론'
3. 사물을 통한 우의와 서정


제5장 원대의 회화이론
개설
1. 조맹부의 '고의론'과 '서화용필동법론'
- 조맹부(趙孟頫, 1254-1322) -중략- 그림은 고의(古意)가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며 글씨와 그림은 용필법이 같다는 이론이 그것이다. [296p]


- (1) 고의(古意)론
조맹부가 제창하고 추구한 고의는 무엇인가? 오늘날 평론가들 사이에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의를 추구하는 것은 곧 옛날로 돌아간다(復古)는 것인데 회화사적 측면에서 볼 때 이는 퇴보적인 관점에 속하는 것으로서 퇴보를 재촉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마땅히 비판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곧 옛것을 배운다(師古)는 문제로서 회화기법상 당나라 사람들을 숭상하는 것이며 조맹부의 이 이론은 원초에 이목을 일신시키는 작용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는 당나라 그림의 풍격이 송보다 높다고 생각했다. -중략- 원나라 화가들이 눈으로 볼 때 이러한 결점은 원체화의 속된 표현이었다. 조맹부가 고의를 추구한 것은 문인화가의 예술심미취미의 산물이다. -중략- 즉 조맹부 청록산수의 방일한 특징은 문인화가가 추구하는 예술풍격으로서, 말끔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직업화가들의 회화와 서로 대립되는 것이다. -중략- 화가들은 그들의 그림이 화공의 그림과 그 고하가 구분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는 신(神)을 중시하고 하나는 형(形)을 중시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중략- 즉 조맹부는 고의를 제창했고, 그는 원대의 복고파인데, 그의 생질인 왕몽처럼 그를 통해 배출된 화가들은 그의 한계를 벗어나 창조적인 길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는 단지 문제의 표면적 현상만을 보고 아직 그 내재적인 본질적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먼저 복고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중략- 복고인가 복고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관건은 예술이 현실을 반영하는가 반영하지 않는가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조맹부는 결코 복고파가 아니며, 그는 고인을 모방하는 것을 능사로 여겼던 명말 청초의 4왕(四王)등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중략- 따라서 화가가 어느 화가나 어느 화파를 배운다는 것은 단지 예술적인 취미와 심미애호의 문제이다. -중략-
이는 그가 배우는 대상을 선택하는 자유이지, 이로 말미암아 복고파로 판정할 수는 없다. -중략-
조맹부가 그린 인물화도 전신(傳神)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중략-
그가 말하는 고전을 배운다는 것은 옛 사람들의 기법과 풍격을 배우는 것이었고, 결코 그가 현실을 반영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중략-
그러나 조맹부의 고의론은 잘못된 점도 있고 좋지 않은 영향을 준 점도 있다. 조맹부는 자기의 예술취미를 그림의 우열을 논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삼았다. 가령 그는
고의가 이미 이지러지면 온갖 병이 마구 생기니, 어찌 볼 수 있겠는가
라고 하여 절대적으로 말하였다. 이러한 잘못된 견해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는 필연적으로 “용필이 섬세하고 채색이 고운” 원체화나 화공들의 그림은 낮게 평가하였다. 이러한 예술적인 편견은 송대 이래 문인화가들의 공통된 병이다. -중략- 이는 계급적인 편견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문인화가들의 예술적인 심미취향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296~309p]


- (2) 서화용필동법(書畵用筆同法)론
조맹부는 회화발전의 새로운 단계에서 다시 글씨와 그림은 용필법이 같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중략-
글씨와 그림의 용필법이 같다는 것에 대해 장언원은 인물화로 논증했고 곽희는 산수화로 논증했는데, 조맹부는 죽석(竹石), 화훼(花卉)까지 이를 확장시켰다. -중략- 사화용필동법론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몇몇 사람들은 조맹부의 이론은 필묵취미를 추구하는 것으로서 화가의 창작이 현실을 벗어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는 못한다.
조맹부의 서화용필동법론에 대한 나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는 조맹부의 독창이 아니라 그가 대나무그림의 대가였던 가구사(柯九思, 1312-1365)와 조맹견(趙孟堅, 1199-1295)의 경험을 종합하여 제시한 것으로서 그들의 공통적인 관점을 나타낸 것이다. 둘째로, 이 이론은 문인화가 송대 이후 원대까지 발전하면서 죽석(竹石)이나 화훼(花卉)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이루어진 필묵기법에 대한 부분적인(전체가 아니라)개괄이다. 셋째로, 후대 중국 사의화(寫意畵)의 수백년 간의 실천과 발전에 근거해서 볼 때 이 이론은 중국화가 정묘하고 현묘한 필묵법을 이루어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중략-
우리는, 서예가 매우 발달했던 진, 당 이래로 몇몇 화가들이 이미 서예의 용필법을 회화에 결합시켰었는데, 조맹부는 단지 다시 한번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을 표방한 데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략-
청대의 동계(董棨, 1772-1844)는
글씨가 이루어지고 나서 그림을 배우면 곧 그 체(體 )는 바꾸어도 그 법이 바뀌지 않는다
고 말하였다. 이는 글씨와 그림이 표현의 대상은 다르지만 그 용필법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310~319p]


2. 전선의 '사기론'
3. 예찬의 '일필론'과 '일기론'
4. 이간의 '화죽론'


제6장 명대의 회화이론
개설
1. 왕리의 『화산도서』
2. 절파와 이개선의 『중록화품』
- 명초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절파(浙派)는 이당(李唐), 마원(馬遠), 하규(夏珪)등의 회화풍격을 계승한 것이었다. 이 절파의 화풍은 역대로 문인화가들로부터 중시받지 못했다. 더욱이 명말에 이르러서는 절파를 광태사학파(狂態邪學派)라고 공격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절파화가들 중에는 자기들의 예술사상을 천명하는 글을 쓴 사람이 없었다. 명 중기의 감상가인 이개선(李開先, 1501-1568)은 유일하게 절파화가를 대신하여 변호한 사람이었다. 그가 『중록화품(中麓畵品)』-중략- 절파를 높이 평가하고 오파(吳派)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성이 분명하다. 그는 대진(戴進 , 1388-1462)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그 다음으로 오위(吳偉-, 1459-1508), 도성(陶成중, 15세기말경 활동), 두근(杜菫략, 15세기말경 활동)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예찬(倪瓚-, 1301-1374)(명의 화가에 넣고 있다), 당인(唐寅 , 1470-1523), 심주(沈周, 1427-1509) 그리고 그 당시 아직 생존하고 있었던 문징명(文徵明 , 1470-1599)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353~354p]


- 예술의 풍격은 본래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비유를 사용해야만 비로소 그 추상적인 개념을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357p]


- 이개선은 또한 “6요(六要)를 세워서 제가(諸家)의 장점을 개괄하였는데”, 6요란 여섯 가지 종류의 필법(筆法)을 말한다.
첫째는 신묘한 필법(神筆法)이라 하는데, 종횡으로 오묘한 이치가 신기하게 변화되는 것이다.
둘째는 맑은 필법(淸筆法)이라 하는데, 간소하고 뛰어나며, 밝고 깨끗하며, 탁트이고 넓으며, 텅비고 밝은 것이다.
셋째는 노숙한 필법(老筆法)이라 하는데, 마치 푸른 등나무와 오래 묵은 측백나무, 험한 돌과 구부러진 쇠, 옥의 터진 금과 장군의 갈라진 틈과 같은 것이다.
넷째는 굳센 필법(勁筆法)이라 하는데, 마치 강한 활과 거대한 쇠뇌가 기를 당기자 힘차게 발사되는 것 같은 것이다.
다섯째는 살아 있는 필법(活筆法)이라 하는데, 필세가 날고 달리는데 잠시 느린 듯 하다가 도리어 빠르고 갑자기 모였다가 갑자기 흩어지는 것 같은 것이다.
여섯째는 윤택한 필법(潤筆法)이라 하는데, 자윤(滋潤)함을 머금고 광채를 모아서 생기가 넘치는 것이다.
-중략- 이개선은 명대 4대가의 수장(首長)인 심주에 대해 “마르고 담백한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오파를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다. -중략-
이당, 마원, 하규의 작품은 아직 내재미를 중시하고 함축미를 추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을 계승한 절파의 몇몇 화가들에 이르자 곧 칼을 뽑고 쇠뇌를 당기는 듯한 결점이 나타났다. [353~360p]


3. 서위의 회화이론
4. 산수화의 남북종론
- 명 만력(萬曆, 1573-1620) 연간에 막시룡(莫是龍, 1537-1587), 동기창(董其昌, 1555-1636), 진계유(陳繼儒, 1558=1639), 심호(沈顥, 1586-1661 이후)가 제시한 산수화의 남북종론(南北宗論)은 중국회화사상 처음으로 제시된 화파(畵派)에 대한 이론이다. -중략-
남북종론에 대하여 회의(懷疑)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십년 간의 일이다. -중략-
남북종론을 창안한 네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동기창이었다. -중략- 그는 자기 자신의 심미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심미관이 바로 그가 남북종론을 제시한 근거였다. -중략-
이사훈은 “착색산수”이고, 왕유는 “처음으로 선담법을 써서 구작의 법을 일변시켰다”는 것이다.
동기창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문인의 그림은 왕우승(왕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동원, 거연, 이성, 범관이 적자요, 이용면(이공린), 왕진경(왕선), 미남궁(미불), 미호아(미우인)가 모두 동원, 거연으로부터 나왔으며, 그 후 곧바로 원4대가 황자구(황공망), 왕숙명(왕몽), 예원진(예찬), 오중규(오진)에 이르렀는데, 이들도 모두 그 정전(正傳)이다. 우리 명의 문징명과 심주도 또한 멀리서 의발을 접했다.
마원, 하규 및 이당, 유송년 같은 사람들은 또한 대이장군(이사훈)의 파로 우리들이 마땅히 배워야 할 바가 아니다.
동기창은 문인화가 아닌가로 남북종을 나누었다. -중략-
이사훈파는 새긴 듯이 자세하여 사기(士氣)가 없는데, 왕유파는 맑고 온화하며 조용하고 한가로우니 이는 또한 혜능(慧能)의 선(禪)이요 신수(神秀)가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략-
심호도 그림의 풍격으로 남북종을 나누었다. -중략- 남종은 문인화이고 북종은 행가화(行家畵)라고 생각하였다.
네 사람의 논의는 그 주된 관점이 서로 동일하다. 즉 남북의 분종(分宗)은 당대에서 시작되었는데, 남종의 창시자는 왕유요 북종의 창시자는 이사훈이며 양파의 차이는 주로 풍격에 있는 바(막시룡이 말하는 화법의 차이도 곧 풍격의 차이의 표현이다), 남종은 문인화요 북종은 행가화라는 것이다. [369~378p]
- 중국의 산수화가 하나의 독립된 화과(畵科)로 발전된 것은 동진(東晋, 317-420)에서 남조(南朝, 420-589)에 이르는 시기에 비롯되었는데, 종병(宗炳, 375-443)과 왕미(王微, 415-443)는 그 대표적 인물이었다. 종병과 왕미의 화론은 문인화적인 주장으로서, 그들은 자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것과 정신을 드날리게 해준다는 산수화의 효능론을 제시하였다. -중략- 성당(盛唐, 713-765) 이전에는 단지 두텁게 채색하는 것에 불과했으니 -중략- 만약 청록과 수묵으로 화파를 구분하는 기준을 삼는다면 마땅히 전자건이 이사훈의 지위를 대신해서 청록산수의 시조가 되어야 한다. -중략- 이사훈을 청록산수의 창시자로 본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한 가지 이유는 명나라 사람들은 아직 전자건의<유춘도>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이 부분에 관한 고대의 화론을 오해했다는 것이다. -중략- 장언원의 말은 산수의 변화가 이사훈, 이소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지 결코 이사훈, 이소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중략- 왕유를 수묵산수의 시조로 보는 것도 근거가 부족하낟. -중략- 왕유(王維, 701-761)인가 장조(張操, 8세기중반-8세기말경활동)인가? 매우 말하기 어렵다 -중략- 왕유의 수묵진적을 보았떤 장언원은 와융의
파묵산수(破墨山水)는 필적이 정세하고 상쾌하였다
고 했는데, 이는 진계유와 심호가 말하는 바 “맑고 온화하며 조용하고 한가하다”든가, 또는“운치가 그윽하고 담백하다”는 품격과는 다르다.
하나의 화파가 형성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가가 현실생활에 대해 공통적인 이해와 감각을 가지고 있고 예술적으로 공통적인 심미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화법은 예술의 유파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중략-
그러나 당에서부터 명대까지 이르는 동안 산수화의 풍격이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쳤고, 또한 자연경물에 대한 화가의 태도나 심미취미에도 여러 가지 차이가 있었는데, 이렇게 오랜 역사시기에 대해 단지 두 개의 화파로 분류함으로써 견강부회를 면하기 어려웠다.-중략-
동기창은 회화를 평하면서 “사기(士氣)”의 유무를 문인화의 기준으로 -중략- 남북종론은 일종의 문인화사조(文人畵思潮)의 반영이다. -중략- 이러한 사조 아래에서 남북종론이 출현하자 곧바로 문인화가들에의해 동의되어졌다. 청대에 이르러 가령 석도(石濤) 같은 몇몇 창조적인 화가들은 어느 것도 종(宗)으로 삼지 않고 자기 자신의 주장을 폈지만 일반 화가들은 여전히 남북종론에 동의하였다. 최근 몇 십년 사이 회의적인 사람들이 나타나 비판적인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남북종론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바 북종산수를 경시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역사상 산수를 그리는 데 있어서 필경에는 두 가지 종류의 풍격과 화법이 있는데, 황빈홍(黃賓虹)은 이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하였다. [378~381p]


5. 명ㆍ청대의 '사ㆍ첨ㆍ속ㆍ뢰'와 '생ㆍ숙'론
6. 명ㆍ청대의 제발론과 인장론
제7장 청대의 회화이론
개설
1. 왕원기 등의 의고사상
2. 운격의 '섭정론'과 추일계의 '활탈론'
3. 석도의 회화이론
- 청초 화단 -중략- 석도(石濤, 1642?-1707?)와 팔대산인(八大山人, 1626?-1705?)을 수장(首長)으로 하는 일군의 창조적인 화가들, 즉 회화사에서 명의 유민화가(遺民畵家)호 불리는 화가들이었다. 석도와 팔대산인은 서로 달랐다. 팔대산인은 그의 기이한 그림으로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그가 왜 그렇게 그렸으며 그의 예술사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는데, 그의 작품에 반영된 격정과 묘취는 모두 세상사람들의 평론을 불러일으켰다. 석도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재기 넘치는 많은 그림을 그렸고 사람들의 주목을 끈 적지 않은 화론을 발표하였으며 손 닿는대로 쓴 제발 외에 전문적인 저술도 남겼다. -중략- 그는 “일획(一劃)의 법을 세워서” 전 책의 18장(章)을 일관하는 중심사상으로 삼아 나름대로의 체계를 갖추었다. -중략- 나는 “일획”이란 곧 필도(筆道)라고 생각하는데, 혹자는 이를 선조(線條)라고 말한다. -중략- 그 후 자연이 만물이 각각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여 그 형태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수단이 곧 “일획”이다. 천지간의 사물의 만상(萬象)은 -중략- 수없이 많은데, 이를 묘사하려면 결국 윤곽을 그리는 필도(筆道)를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필도에서 시작하여 어느 하나의 필도에서 끝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에서 시작하여 만(萬)에 이르고, 만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로 다스려……억만만의 필묵이 이에서 시작하여 이에 끝나지 않는 것이 없다
-중략- 선은 회화와 서예의 매우 중요한 표현수단의 하나이다. -중략- 다만, 선이 회화의 유일한 표현수단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석도는 선의 작용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는데, 회화에는 선으로 해결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들이 매우 많다. -중략- 가령, 화가와 자연물의 정(情)과 경(景)의 교감과 융합의 문제, 그림의 의경(意境)과 화가의 생활에 있어서의 수양의 문제 같은 것들은 결코 “일획” 속에 포곽될 수 없으며 더욱이 “일획”으로 총괄할 수 없다. -중략- 그 중에는 「변화(變化)」라는 장이 있는데 나는 “변화”라는 두 글자가 석도 예술의 주도적인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의고주의(擬古主義)에 반대하고 회하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예술은 발전하고 혁신되어야 한다는 변화의 사상을 주장한 것과 관계 있다. [420~424p]


- (1) 법(法)과 변화(變化)
1) “법이 있으면 반드시 변화가 있다(有法必有化)” -중략-
무릇 그림이란 법의 표현이다.
-중략- 석도는 법이 있으면 동시에 반드시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무릇 일에 기본원칙(經)이 있으면 반드시 수단(權)이 있고, 법이 있으면 반드시 변화가 있다. 한번 그 기본원칙을 알면 곧 그 수단으로 변화시키고, 한번 그 법을 알면 곧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어떠한 사물이든 법칙(“經”)이 있으면 동시에 또한 법칙을 운용하는 변통선(“權”)이 있어야 한다. 회화도 이와 같아서 법도가 있으면 동시에 또한 법도를 운용하는 융통성 (“化”)이 있어야 하는데, 법과 변화 양자의 관계는 서로 도와 서로를 형성하는 변증법적 통일의 관계이다.
-중략- 즉 고법은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석도는 분석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고법을 분석적으로 받아들이는 목적은 고법을 변화시켜 예술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고법을 받아들이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지만 고법을 변화시키는 것은 비교적 어려운 일이다. -중략-
군자는 오직 옛것을 빌어 지금을 열 뿐이다.
- 중략- 산수를 그리는 것은
필묵을 빌어 천지의 만물을 그림으로써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 중략-
석도는 화가가 고인에 의해 부림을 당하는 원인이 한 가지 더 잇다고 지적하였는데, 그것은
고인의 자취를 배우고 고인의 마음을 배우지 않는 것
이다. 석도는 필묵전통의 계승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중략-
예전에는 사람들이 고법을 배운 것은 결코 “임모하여 모든 것을 갖추는” 데 정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은 고법의 도움을 빌어 자기의 예술적인 표현능력을 발전시킨 것이라는 것이다. -중략-
고인의 자취를 배우고 고인의 마음을 배우지 않으면 고인을 조금도 넘어설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424~426p]


- 2) “나는 나의 법을 사용한다(我用我法)”
법은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중략-
황정견은 예술창자을 평론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고법에 비추어 그 득실을 평가하려고하는 것은 터무니없이 가소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예술의 변화와 발전을 강력히 주장한 석도는 법에 대해 황정견과 동일한 관점을 취하였다. -중략-
고인이 법을 세우기 전에는 고인의 법이 어떠한 법인지 알지 못하였다. 고인이 이미 법을 세운 뒤에는 곧 지금 사람이 고법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천백년 이래 드디어 지금 사람이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내가 나 됨은 스스로 내가 존재함에 있다. -중략- 비록 때때로 모가(某家)를 접촉하기는 하지만 이는 모가가 나에게 나아가는 것이지 내가 고의로 모가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중략-“나는 스스로 나의 법을 쓴다.”
-중략-그가 법을 세우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법이 사람에 의해 수립된 것이라는 데 근거한 것이 아니라 고인이 능히 법을 세울 수 있다면 오늘날의 사람도 또한 능히 법을 세울 수 있다는 논리에서 추론된 것이며, 또한 각각의 사람은 그가 종사하는 예술이 다르고 예술 창작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사상과 감정이 달라 그가 요구하고 적용하는 법칙도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화가들 각자의 특수성과 생활의 발전, 변화를 무시한 채 화가들에게 일률적으로 앞 시대 사람의 법칙을 억지로 적용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곧 옛날 사람의 모습과 마음을 요즈음 사람의 몸에 가설해놓는 것과 같은 것이다. -중략-
지고의 경지에 든 사람은 법이 없는데, 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법이 없으면서도 법이 있어야 곧 지극한 법이다.
예술창작은 능히 “법이 없으면서도 법이 있는”데 이르러야 하는데, 이는 법과 변화가 통일된 최고의 경지이다. -중략-
화가는 법을 망각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법이 있는데, 이는 단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대로 따르더라도 법도를 넘지 않는 것이다. [424~430p]


- (2) 법(法)과 생활(生活)
회화의 법도가 화가에 의하여 수립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석도는 “생활(生活)”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산수화에서 묘사하는 객관대상을 “생활”이라고 명명하고, 이 “생활”의 법칙을 “이(理)”라고 명명하였다. -중략-
화가는 바로 천차만별의 산천경물을 표현함으로써 비로소 각양각색의 법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건곤(乾坤)의 이(理)를 얻은 것은 산천의 본질(質)이요, 필묵의 법을 얻은 것은 산천의 꾸밈(館)이다.
자연의 본질적인 법칙을 인식해야만 비로소 산천의 정신을 획득할 수 있고, 필묵의 법을 획득해야만 비로소 산천의 형태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석도를 전후한 논자들은 모두 필묵기법의 수련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석도도 필묵은 정도(正道)를 닦는(“蒙養”) 노력이 있어야 됨을 인정했지만 동시에 그는 필법과 “생활”의 관계를 지적해냈는데, 이는 그의 새로운 견해였다.
능히 정도를 닦은 영기는 받았지만 생활의 신(神)을 알지 못하면, 이는 먹은 있되 필이 없는 것이다. 능히 생활의 신은 받았지만 정도를 닦은 영기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이는 필은 있된 먹이 없는 것이다.
석도가 필법을 생활과 관련시키는 이유는 필법이 형태를 부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중략- 변화가 무궁한 자연경물을 “꾸미기(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영기를 다하고 그 신을 충족시키는” 필묵법이 있어야 한다. -중략
산의 형상은 만가지 모습이므로 곧 그 모습을 여는 것도 한 가지 방법만이 아니다.
- (3) 물아(物我)의 교융(交融)
창작활동을 두 개의 단계로 나누었다. 하나는 “산천이 나에게서 태를 벗는” 단계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산천에서 태를 벗는”단계이다. “태를 벗는다(脫胎)”는 것은 본래 도가(道家)의 용어로서 이른바 범인의 태를 벗어버리고 신선의 태로 바꾼다는 뜻인데, 석도는 이를 빌어 화가와 산천자연의 관계를 나타냈다. -중략-
50년 전의 석도는 아직 “산천에서 태를 벗지” 못하여, 즉 산천이 석도에게서 태를 벗어 그는 겨우 산천의 형상과 정신을 보여줄 수 있었을 뿐 아직 물아교융(物我交融)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다. 50년 후 석도는 “산천에서 태를 벗은”단계에 들어섰는데, 이때 그는 “진기한 봉우리들을 다 찾아서 초고를 만들어” “산천과 정신으로 만나 자취로 화하고” 물아가 혼연일체를 이룬 주관과 객관이 통일된 경지에 이르렀다. -중략-
석도가 말하는 “내가 산천에서 태를 벗는다”는 것은 그 기본관점이 유물론의 반영론과 부합되는 것이다. 그는, 산천경물의 형상과 정신은 하늘(天)이 부여한 객관적 존재[석도가 말하는 하늘(天)은 상제(上帝)가 아니라 물질세계를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으며, 동시에 사람의 사상과 행위도 물질세계에 의해 부여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중략-
감정이입론자들은 객관사물 자체의 특징이 어떠하든 관계없이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객관사물에 강제로 덧붙인다.
석도는 산천경물에 대해 그 특수성에 주의할 뿐만 아니라 그 공통성에도 주의했다. -중략- 석도는 자연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에 근거하여 그의 산수화에 의취(意趣)와 의경(意境)을 불어넣었다. [432~435p]


- (4) 닮지 않은 닮음(不似之似)
그러나 생활 가운데서 유래한 예술적인 형상과 생활 속의 실제의 물상과이 차이는 어디에 있으며, 예술적인 형상의 특수성은 어디에 있는가? -중략- 석도의 “닮지 않은 닮음(不似之似)”의 이론은 이에 대해 타당한 대답을 해주었다. -중략- 예술의 진실을 “닮지 않은 닮음” -중략-
신기하게 변환한
몽롱한 사이
닮지 않은 닮음에
절을 해야지.
-중략- “신기하게 변환한 몽롱한 사이”란 바로 “닮지 않은 닮음”의 예술형상이 산수화상에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다. -중략- 실제 산의 원래 모습이 아니라 화가가 묘사하는 본래의 산이 신기하게 변화된 “몽롱”한 형상이다. -중략- 이러한 미묘한 표현은 화가의 정련(精煉), 개괄, 전형화를 거친 뒤에 이루어진 예술형상의 특징이다. -중략- 그의 그림이 무슨 봉우리인지 이름하기 어려운 것은 그가 그리기 전에 어떤 봉우리와 닮게 그리려고 예정하지 않은 채 황산의 전형미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림이 완성된 후 그것이 황산의 산봉우리를 닮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황산의 어떤 산봉우리인지는 알 수 없다. -중략- 예술의 진실이 생활의 진실과 연계될 뿐만 아니라 또한 구별되기도 하는 연고(緣故)이다. -중략-
글씨와 그림이 소도(小道)가 아니나
세상사람들은 단지 형사(形似)만 알 뿐이네
라고 말하였다. 석도는, 보통화가들이 능한 것은 형사인데, 진실로 예술에 있어서의 “닮지 않은 닮음”에 이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닮지 않은 닮음”에 이른 그림이라야 비로소 훌륭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중략- 제백석(齊白石, 1863-1957)은 그림은 “닮음과 닮지 않음의 사이(似與不似之間)”에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말했는데, -중략- 제백석은 회화의 형상과 감상자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문제를 분석하였다. 그는, 닮지 않은 것은 “세상을 속이는 것”이고, 지나치게 닮은 것은 “세상에 아부하는 것”이라 말하였다. 만약 감상자가 응물상형을 한 그림이 무엇을 그렸는지조차 분명히 알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예술이고, 이와 반대로 만약 그림이 지나치게 닮았다면 그것은 고의로 감상자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며, “닮음과 닮지 않음의 사이”에 있어야만 비로소 귀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435~439p]


4. 김농의 회화이론
5. 정섭의 회화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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