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장징 | 옮긴이 / 이목
미녀란 무엇인가
2004년 10월 12일 초판 1쇄 찍음
2004년 10월 22일 초판 1쇄 펴냄
지은이 / 장징
옮긴이 / 이목
펴낸곳 / 도서출판 뿌리와이파리(서울시 종로구 내수동 110-36 2층)
- ‘미인’이란 무엇인가? 미인의 기준은 본래 인종과 문화에 따라 크게 다르다. 특정 문화권에서 미인으로 인식한다고 해서 다른 문화에서도 반드시 미인으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그런 문제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거꾸로 미인의 이미지는 문화와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공통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마릴런 먼로나 오드리 헵번 같은 여성들은 서구인의 눈에 미인으로 비칠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더 나아가서는 동양인이나 아프리카인의 눈에도 똑같이 아름다워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남녀 배우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까닭도 사람들의 그런 믿음이나 오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한낱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미인의 기준이 문화를 초월해 공통한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전 세계 규모로 확대 중인 소비문화와 대중매체의 발달이 사람들의 안목을 ‘표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의 제품이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전역을 파고드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민족과 국가, 피부색을 달리하면서도 똑같은 회사의 화장품을 바르고, 서로 유사한 옷차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문화마다 서로 다른 미인관美人觀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슬금슬금 망각의 깊은 늪으로 사리지고 말았다.
시대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이문화異文化사이에 공통되는 미인관 따위는 전혀 찾아볼 길이 없다. 고대 문화에는 저마다 각기 다른 미인상이 존재했으며, 그 문화들 간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었다. 서유럽이나 동아시아처럼 문화적 차이가 상당히 심한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문화적 친밀도가 높은 문화 사이에서도 그것은 동일하지 않았다. [11~12p]
- 동양인의 눈에도 서양인의 모습은 추하게 비쳤다. 당대唐代 안사고는 『한서漢書』제96권「서역西域전」전의 주석에서 “오손족烏孫族은 서역 여러 민족 중에서 용모가 제일 괴상하다. 지금 호인胡人이 푸른 눈에 붉은 수염(털)을 하고 용모가 원숭이를 닮은 까닭은 이들이 옛날 오손족과 같은 종족이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 사람들은 (호인들의) 푸른 눈과 붉은 수염(털)을 보고 반사적으로 동물들을 떠올렸다. 물론 서역인은 (지금의) 서양인이 아니다. 그러나 당대 중국인들에게 코카소이드계열의 뚜렷한 윤곽선을 지닌 얼굴은 추하게 비쳤다. [16p]
- 그런 이미지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가까스로 역전되었다.
아편전쟁(1840~1842) 이후 중국과 서양의 국력이 역전되자, 서양인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시선도 서서히 변해갔다. 1866년 청나라 관리였던 빈춘斌椿은 최초로 정부를 대표하여 유럽 시찰에 파견된 인물이다. 빈춘의 눈에는 서양의 여성이 ‘용자미려容姿美麗’한 모습으로 비치게 되었다. 더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저술한 『승사필기乘槎筆記』라는 견문록에는 머리카락이나 눈동자의 색을 전혀 문제 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인종이나 다른 민족 사람들을 볼 때, 관찰 대상이 이성이냐 동성이냐에 따라 각 대상의 용모에 대해 내리는 판단은 차이가 난다. 예컨대 남성 관찰자가 동성의 다른 인종을 추하게 보고 있다면, 이인종의 여성을 아름답게 보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전술한 지봍트나 툰베르크, 그리고 엥겔베르트 켐퍼 역시 자신들의 여행기 속에서 한결같이 일본의 여성이 대단히 아름답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청나라의 관리인 빈춘이 서양 여성을 아름답게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가 서양 남성에 대해서도 똑같은 심미관을 지니고 있었다고는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16~17p]
- 다른 인종이 아름다운지 아닌지의 여부는 용모나 스타일 등으로 판단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인종의 문화에 대한 평가와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 본래 백인종과 황인종을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지를 결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안색이나 머리카락의 색깔, 두개골의 구조까지 상이한 인종의 용모를 비교하는 것은, 말하자면 차우차우와 불독을 비교해서 어느 쪽이 아름다운지를 판단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미인대회에 ‘공정한 심사기준’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인종 간에 용모를 비교하는 것, 그것은 인간은 모두 같다는 신화가 그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18p]
- 두 인간 집단의 미추美醜에 관한 판단을 내릴 경우, 판단의 중심엔 언제나 두 집단의 서열관계 내지는 역학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인종이나 종족의 미추에 대한 판단 속에 문화 간의 권력관계가 불가피하게 개재되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문명이 발달한 민족은 아름답다고 보고, 거꾸로 문명이 ‘지체된’ 민족은 추하다고 생각한다. ‘지체된’ 문화가 자신의 후진성을 자각하지 않았을 때에는 자기 스스로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일단 서열의식이 정착되고 나면 용모에 대한 심미관도 급속한 변용을 겪는다.[18p]
- 중국의 신강新彊지역에는 위구르라는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이 위구르족의 얼굴 생김새는 몽골로이드 계통에 가까운 부류와 코카소이드 계통에 가까운 부류 두 유형이 있는데, 특히 후자는 이목구비와 얼굴의 윤곽선이 뚜렷해서, 흡사 서양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제개방이 실시되기 전, 상해 등 대도시로 들어와 살던 위구르족 남성들은 자신들의 높은 코를 부끄럽게 여기면서, 모자 속에 얼굴을 깊숙이 파묻고 되도록 자신의 코를 타인에게 드러내 보이려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몇 년 전부터 뜨거운 햇볕에 얼굴을 검게 그을리고, 귀걸이를 달고 흑인 특유의 머리모양을 하고 다니는 젊은 남녀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이 젊은이들이 미국의 흑인을 흉내 내는 까닭은 미국문화를 동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방의 대상이 된 아름다움, 그것이 사실 객관적으로 아름다운지 어떤지의 여부는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그와는 무관하다. 같은 흑인이라도 아프리카의 흑인이 결코 모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그 같은 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19~20p]
- 이런 여러 사실들을 고려해보면, 미추를 판단하는 데에 명확하고도 변하지 않는 기준 따위는 있을 수가 없다. 미추에 대한 최소한의 판단 척도마저도, 과연 생리적인 이유에서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사회생활 속에서 학습과정을 통해 습득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예를 들면 건강한 체격을 지닌 남성은 어떤 문화에서나 호감을 사고, 여성의 경우 역시 임신이나 출산에 유리한 신체적 특징은 아름답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같은 ‘소박한’ 판단기준이 과연 본능적인지의 여부는 오늘날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물며 현대의 미인관에 다종다양한 권력관계들이 얼키설키 교직된 상황에서야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20p]
- 현대 일본에서는 높은 코에 희고 갸름한 얼굴형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서양문화의 영향에서 비롯된 관념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스즈키 다카시는 과거 도쿠가와가와 이 가문에 속한 여성들의 골격에 관하여 상세한 연구조사를 펼친 적이 있다. 도쿠가와 막부 초기, 쇼오군가의 정실들은 정략결혼 같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시집을 간 경우가 많았는데, 결혼한 뒤 삼대가 흐르면 정략결혼의 효과나 필요성도 사라졌기 때문에, ‘용모’라는 선택사항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첩들의 선택에는 당연히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았다. 첩들 중에는 평민 출신이 많았는데, 거의 대부분이 빼어난 미모로 말미암아 선택된 여인들이었다. 쇼오군가 여성들의 신체 특징을 명확하게 밝혀낼 수 있다면, 에도시대 사람드르이 미인관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스즈키 다카시의 조사에 따르면, 도쿠가와가의 여성들은 당시 서민들에 비해 얼굴의 폭이 좁고 코가 높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면 도카가와 막부 제13대 쇼오군인 도쿠가와 이에사다(1824~1858)의 정실인 덴신인은 균형 잡힌 체형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희고 갸름한 얼굴에 높지도 낮지도 않게 잘 뻗은 콧날과 큰 눈을 하고 있었으며 (중략) 에도시대의 대표적 미인으로 추정된다.”고 스즈키 다카시는 말한다. 약간은 갸름한 얼굴에 얼굴의 폭이 좁고 코가 높다는 등의 여러 조건은 현대는 물론 에도시대에도 미인을 판정하는 기준이었다. 스즈키 다카시에 따르면, 막부 쇼오군의 첩들은 에도시대 우키요에에 그려진 미인의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20~21p]
- 그러한 심미관은 왜 형성되었으며, 과연 생리적인 이유에 기초한 것인지의 여부는 지금까지 여전히 불분명한 상태다. 다만 서양직 심미관과 중국이나 일본 사이에 접점, 공통점이 전혀 없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근대 이후 서양 미인의 이미지가 수용되고, 그 이미지가 사회에 급속하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름의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2p]
- 어찌되었건 미모와 매력 등 마음과 정신에 관계된 문제에 대해, 과학적 분석이라는 수법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사교적인 동물이다. ‘아름답게 보일 것인갗 하는 문제는 각자의 인간성과 사회성에 크게 관계되는 문제일 터다.
본래 아름다움의 문제는 개인의 감정이 얽힌 인식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더없이 아름답게 보여도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보이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매력’에 관한 평가는 개인의 주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귀엽다’는 말이 있다. 객관성을 배제한 미적 판단의 전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눈의 크기가 몇 센티미터라서, 턱의 각도가 몇 도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게 아니다. ‘내 마음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 하는 기준에 근거한 평가다. [25p]
- 미인이란 전체적인 하나의 이미지다. 그것이 이미지인 이상, 관계의 문제=관계성이 더더욱 제기된다. 잘생긴 남자가 못생긴 여자에게 첫눈에 반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거니와, 거꾸로 미녀가 추남을 사랑한 예 또한 드물지 않다. 못생기고 추하다고는 해도, 그것은 한낱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지나지 않으며 당사자들의 입자에서 보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미녀’와 ‘추남’ 혹은 ‘미남’과 ‘추녀’의 판단은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관계’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25p]
- '미녀가 실재實在한다‘기보다는 개개인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릴린 먼로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미인일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여성의 영상映像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본인의 느낌과 별개의 미인상이 형성되고 그 속에 개인적 정서의 편린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미인상은 각 개인의 기억과 경험, 또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기폭제요 촉매제인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미인으로서의 보편성을 획들할 수 있는 것이다. [26p]
- 이성에게 호감을 주고 난 뒤, 상대방의 마음에 자신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는 것이 ‘매력’, 곧 사로잡는 힘이다. 그런 면에서 미모는 상대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지만, 그렇다고 매력이 미모 그 자체는 아니다. ‘섹시 sexy'와 마찬가지로 ’매력‘은 아름다움의 한 종류다. 따라서 아름답게 보이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미모인가 아닌가하는 문제와 반드시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7p]
- 미추가 상하관계를 표시하는 은유였음은 민족 간의 서열의식에까지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근대 이전 중국에서는 이민족이 ‘밖[外]’으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민족漢民族의 입장에서는 ‘하위민족’이었기 때문에 추하게 비쳤던 것이다. [28p]
- 어느 문화에서건 여신女神은 예외 없이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로 묘사되고 있다. [29p]
- 동서고금의 문학작품을 읽어보면, 착한 사람으로 등장하는 여성은 언제나 아름다웠고, 악역을 맡은 인물은 못생기고 추했다. 이를 두고 구舊소설의 도식화라며 한바탕 웃음으로 돌리기란 불가능하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동일한 양식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관객은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않는다. ‘정의’는 아름답고 ‘사악’은 추악하다는 메타포는 어느 시대건 통용된다.
용모의 미추가 가치판단의 메타포로서 논의되는 것은, 그것이 인류문화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표현방식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문화에서건 유사한 가치관이 존재한다. 근대로 진입한 뒤부터 동아시아에서는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아름답다’는 관점은 상식이 되었다. 앞서 서술한 대로 그 같은 인식은 문화 간 권력관계의 표현임에도, 그것이 보편적 미의식이며 또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상위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선입견은, 현대인 오늘날에도 그리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30p]
- 중국에서는 명말청초 明末淸初에 겨우 ‘미인론’이라는 명칭에 어울리는 미인론이 등장한다. 『한정우기閒情偶寄』의「성용부 聲容部」는 중국 최초의 미인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 이어는 용모와 자태, 화장 등 부문에서 미인의 조건에 대해 상세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역사 속 미인들이 늘 찬미되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중국에서 미인은 육조시대이래로 두 가지 측면을 갖게 되었다. 점유와 소유의 대상으로서 끊이지 않는 사랑과 찬미를 받았던 반면, 미모는 파멸적인 힘을 내재한 악녀의 가면으로 묘사되었다. 미인은 어느덧 점유와 지위, 부유와 행운, 향락을 연상시키는 존재기도 했지만 죽음과 실각, 쇠멸과 망국, 상실과 몰락을 초래하는 원흉으로서 두려운 존재기도 했다. [31p]
- 근대 이후로는 서양의 미인상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나 문학이 인물 묘사법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미인이 어떻게 묘사되었으며, 문체와 어휘, 또 수사법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갔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32p]
- 하지만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그 사람이 미인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눈과 눈썹을 가장 중시했던 점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눈은 사람의 얼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가장 먼저 상대방의 눈에 시선을 향하는 습성이 있다. 우리는 서로 시선이 마주치게 되면, 상대방이 던지는 눈길을 통해서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또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지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지 단박에 읽어낸다. 따라서 미모의 이미지를 논하거나, 혹은 미인을 묘사할 경우 무엇보다 먼저 눈을 거론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35p]
- 그러나 고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큰 눈이 아름답다’는 심미관이 없었다. 시문이나 역사기록뿐만 아니라, 그림3과 같은 회화나 조각 등 화상자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가늘고 긴 눈을 아름답다고 인식했다.
고대 동양에서는 미인을 판단하는 데에 눈의 크기나 그 형태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명모’라는 표현법은 그 같은 사실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본래 ‘명모’란 맑은 눈동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 말은 보는 사람에게 주는 인상을 표현하는 것인데, 눈의 외형을 묘사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눈이 주는 인상은 눈의 외관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점은 보는 사람이 거기서 받은 인상이었다. [36p]
- 청대淸代 이어가 저술한 『한정우기』에는 미인의 기준을 다룬 부분이 나온다. 제6권 「성용부·선자選姿」 제1에서 ‘미안眉眼’이라는 한 소절을 마련하여 눈과 눈썹의 품평방법에 관한 전문적인 논의를 펼치고 있다. 저자 이어에 따르면 눈의 미추는 눈의 크기와 눈동자의 움직임, 여기에 검은자위와 흰자위의 비례관계라는 세 요소로 결정된다고 한다. 눈의 크기에 대해서는 가늘고 긴 눈의 여성은 성격이 상냥하며, 거꾸로 눈이 큰 여성은 빤질거리는데다가 성격까지 못된 여자라고 전제한 뒤, 눈이 민첩하게 움직이고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분명한 여성은 꾀가 많다고 주장한다. 또 눈빛과 눈동자의 움직임이 없고 흐리멍덩하고 게슴츠레한데다가 흰자위가 많거나, 또는 검은자위가 많은 경우는 지능이 낮다고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에서 기민하게 대응 가능한지의 여부를 미녀의 조건으로 인식했다는 점은 탁월한 식견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37p]
- 이러한 기록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눈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가는 오랜 옛날부터 주목을 받았다. 다시 말해 보는 이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눈은 아름답고, 감정의 움직임[情動]이 동반되지 않는 눈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선, 즉 눈길은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의 감정적 관계망을 나타낸다. 따라서 눈이 아름다운지의 여부는, 눈의 겉모습보다도 자신의 정서를 전달하는 눈길인가 아닌가가 더욱 중요했다. 똑같은 용모가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비치는 이유도 바로 그런 때문일 것이다. [38p]
- 그러나 중국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떤 형태의 눈이 아름다운가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한다. -중략- 또렷하게 뜬 눈이 아닌, 은근하게 뜬 실눈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점이 자못 흥미롭다. -중략- 하지만 『유선굴』의 ‘안세’는 절정에 다다른 표정이라기보다는 용모 속의 작고 가는 실눈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중국은 오랜 세월 동안 작고 가는 실눈을 아름답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그림 4에 보이는 한 대漢代의 인물조형상 人物造型像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39~40p]
- 눈 다음으로 중시했던 부분은 눈썹이다. 눈, 코, 입과 비교해서 눈썹은 화장술 하나만으로도 외관과 이미지까지 엄청나게 달라진다. 사실 어느 문화에서건 눈썹 화장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41p]
- 중국에서 치아 이상으로 주목을 받았던 부위는 입술이었다. 「신녀부神女賦」에는 “붉디붉은 입술, 모란꽃을 대하는 듯한데……”라 묘사하고 있으며, 「낙신부」에서도 “붉은 입술이 빛나고 있으니……” 하며, 붉은 입술을 미인의 상징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입은 작을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흐를수록 치아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지는 반면, 작은 입은 줄곧 미녀의 기본조건으로 보았던 것이다. [43~44p]
- 『금병매』의 묘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콧날이 선 얼굴은 중국에서는 근대 서양문화를 수용하기 이전부터 벌써 선호하고 있었다. 또한 역대 회화작품 속에서도 낮은 코의 소유자가 미인으로 그려진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콧날이 선 얼굴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심미관은 보편성을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중국의 경우 북방의 기마민족騎馬民族이 지배민족으로서 수차례 중국대륙에 군림했던 역사가 있는 관계로, 미인관의 형성문제를 고찰할 때는 그런 요소까지도 고려해 넣어야 할 것이다. [45p]
- 가는 허리, 개미허리를 선호하는 역사는 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책戰國策』「초책楚策」편을 보면, 초나라 영왕靈王이 개미허리처럼 가녀리고 날씬한 미녀들을 좋아했던 왕의 기호 때문에 궁중의 여성들이 식사량을 줄이고 살을 빼려고 고심했던 기록이 전해온다. 그 궁녀중에는 너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감행한 결과, 굶어죽는 사람까지 나오는 사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마른 체형을 좋아하는 경향은 그 후로도 계속이어졌다(그림 5 참조). [45~46p]
-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연애시』 「오후의 사랑」에서 이상적인 여성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중략- 이 시에 나타난 나체 찬미나 유방에 대한 묘사는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전혀 확인할 수 없다. 유교윤리가 엄격했던 고대에는 공공연하게 나신裸身을 예찬하는 행위가 허용될 수 없었던 경색梗塞된 현실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유는 그뿐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중국의 호색문학好色文學이나 춘화春畵등 유교윤리의 규제가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도 유방의 관심도는 낮았기 때문이다. 청나라 말기가 될 때까지도, 중국인은 유방에 그다지 관심을 비치지 않았다. 그림 6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림으로 표현된 미녀 역시 하나같이 ‘피자파이’였던 것이다. 『가이스야유로쿠』라는 유녀평판기遊女評判記에는 전족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있는데, 유방에 대해서만큼은 한마디 언급도 없다. 이 사실은 유방을 주로 수유기관으로 바라보는 문화습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47~48p]
- 문학작품 속에서 얼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적었지만, 흰 피부는 미인의 조건으로 일찍부터 강조되었다. [49p]
- 흰 피부가 아름답다는 말은, 당연한 말이지만 얼굴만 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 아니다. 얼굴에 백분을 바른다는 말은 본래 전신의 피부가 하얗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이기도 했다. 따라서 얼굴만이 아니라 손과 팔, 목 등 노출된 부위에 백분을 바르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고대 중국에서는 의상에 감싸인 가슴이나 어깨, 그리고 등가지 백분을 바르는 습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관한 더 오랜 기록은 한 대漢代까지 소급된다. [52p]
- 그런데 당대가 되면 하얀 피부가 칭송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얼굴을 붉게 화장하는 풍습까지 나타나게 된다. [54p]
- 당대에 이어 오대五代의 그림들을 보면, 뺨 주변을 빨갛게 물들이던 화장법은 어느덧 사라진다. 한편 하얀 피부를 선호하던 기호는 여전히 뿌리 깊었고, 백분을 바르는 행위는 그 후로도 여성들의 주요한 화장법으로서 오랫동안 계속 이어졌다. [55p]
- 납득 가능한 추정은 백색 피가 갖는 상징적 의미다. 통상 백색 피부를 떠올릴 때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외출도 하지 않는다는 등등의 인상을 갖게 되는데, 이는 유복한 삶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의미에서 백색 피부는 두 가지 상징적 의미를 Elf 수 있다. 제한된 공간 안에 폐쇄되었다는 점이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높은 신분의 상징이다.
중국만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고전기(기원전 5세기~기원전 4세기)에 들어서면, 여성들의 활동이 규방 내로 제한되고, 따라서 이들의 피부가 극도로 창백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백색 피부를 존숭하는 미의식은 남성 중심의 사회성립과 무관할 수 없다. 사실 문화인류학적 연구를 살펴보더라도 모계사회에서 백색 피부를 높이 평가했다는 보고는 아직까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57p]
- 날씬한 체형이 아름답다는 관념은 의외다 싶으로만치 그 역사가 짧다. 다이어트의 발상이나 방법 역시 서양에서 건너온 것이지만, 발상지인 유럽에서는 겨우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풍만한 신체를 여전히 여성미로 인식하고 있었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림 속 미녀들은 모두 풍만한 육체의 소유자들이다.
유럽에서 날씬한 여성들이 ‘아름다움의 화신’으로 각광을 받은 것은 19세기 말이다. 그 이유에 대해 에드워드 쇼터는 『여성 신체의 역사』에서 “근대에 들어 여성의 신체에 변화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 여성들의 체형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음식물이 풍부해지고 사람들의 영양 상태가 좋아지자, 여성들의 키는 커지고 체격도 좋아졌다. 그리고 남성들과 평등하게 한 자리에서 식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여성의 몸을 옥죄고 있던 코르셋까지 던져버렸다. 이 같은 객관적 조건의 변화로 말미암아 여성의 체형은 몸집이 커지고 비만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작은 몸집에 마른 여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던 시대에는 풍만한 육체가 희소가치가 있었지만, 거꾸로 보동보동한 여성이 많아지면서 날씬한 체형의 주가가 자연히 상승했다―우미노 히로시도 『다이어트의 역사』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서구문화와는 정확히 부합할지 몰라도, 동아시아에 불어 닥친 현상을 충분히 설명해낼 수는 없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날씬한 여성을 아름답다고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초요楚腰’는 지금부터 2천 년 전으로 소급될 뿐 아니다, 『홍루몽紅樓夢』속의 임대옥은 절세미인이었는데도, 역시 마른 체형을 하고 있다. 통계적인 수치는 없지만, 문학작품 속의 묘사라든가 출토된 유체遺體, 예컨대 마왕퇴고분의 유체의 신장이나 외형을 보아도 옛날 여성의 평균적인 체형은 절대 크지 않았다. -중략-
전족이 유행하게 되면서 생리적 제한으로 인해 비만해지기가 어려웠다. 우미노 히로시의 주장에 따르면, 본래 마른 여성이 많던 고대 중국에서는 풍만한 체형이 응당 미인으로 간주되어야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고 한다. 여성 대부분이 작은 체형을 하고 있음에도 날신한 체형이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키가 크고 늘씬한 체형이 건강하며 제대로 발육된 증거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58~60p]
- 하지만 뚱보 유행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송대 그림들은 보면 그런 풍만한 여성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언제사라졌는지, 그 출현과 마찬가지로 아직껏 그 시기를 단정할 수 없다. [62p]
- 가장 가능성 있는 이유로 이문화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수 왕조와 당 왕조의 성립에는 많은 북방민족이 관여하고 있었다. 수의 황제나 당의 황제는 모두 선비족鮮卑族의 혈통을 잇고 있었고, 특히 당대에는 ‘번장藩將’으로 불리던 소수민족 출신의 장교들이 많았다. 군사적 승리와 더불어 변경에 있던 기마민족이 집단적으로 남하하여 한민족이 거주하던 지역에 정착했다.
이 기마민족은 수렵과 목축을 주요 생산수단으로 삼았으므로 곡물보다는 육류를 주식으로 삼았을 것이다. 당시의 생산수준을 고려할 때, 목축을 하는 동안에는 충분한 육류를 섭취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서 무공을 세우고 도시로 들어와 장교나 고위 관직에 올라 정착하고 난 뒤부터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 매끼 섭취하던 식사량이 크게 증가했을 것이다. 이러한 식생활의 급격한 변화가 비만을 초래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변화는 가족에게도 똑같이 찾아와, 활동량이 떨어지는 여성 쪽의 경우 상대적으로 쉽게 더 비만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미의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단순히 그런 요인만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그 속에 문화의 권력구조가 개재하게 된다. 앞서 서술한 대로 당 왕조의 성립으로 말미암아 많은 소수민족 장교가 귖ㄱ에 봉해지고 또 장교 내지는 관인 등으로 변신하면서, 높은 지위와 동시에 권력을 부여받게 된다. 어느 시대의 문화에서건 음식과 복식, 또 화장의 습관은 상층귀족에게서 하층귀족으로 확산되는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 현상은 일어날 수 없다. 본래 ‘아름다움’에는 절대적 기준이란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느 시대건 간에 ‘귀貴’는 아름답고 ‘천賤’은 추하며, ‘상上’은 아름답고 ‘하下’는 추하다. 또 ‘부富’는 아름답고 ‘빈곤’은 추하기 마련이다.
[71~72p]
- 그런 점에서는 송대 역시 마찬가지다. 몇몇 예외를 논외로 한다면, 청대까지 풍만한 여체를 미인으로 묘사한 사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홍루몽』제30회에는 체형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가 나온다. -중략-
젊은 여성이 비만이라는 말을 듣고 창피해서 발끈 화가 났다는 묘사를 보면, 당시 풍만한 체형이 무시되고 있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다시말해 18세기가 되면 적어도 유복한 귀족층 사이에는 풍만함을 아름답게 보는 의식은 없었던 것이다. [73~74p]
- 그러나 추상적 개념인 ‘아름다움=미’와는 달리, 미모는 본래 신체의 특징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뛰어난 도덕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미녀 중에는 선한 이도 있고 또 악한 이도 있기 마련이다. 미모의 소유자라는 단 한 자기 이유만으로 예찬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미녀는 왕왕 선의 상징이 되곤 한다. 사실 선의 화신인 여신들은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이는 인류문화에 나타나는 보편현상이며, 고대 그리스의 경우 ‘아름다움은 곧 선’이라는 관념이 존재했다. [76p]
- 그렇다면 ‘미인은 악하다’는 관점은 언제, 무슨 이유로 생겨났던 것일까? -중략- 다시 말하며 근대로 들어선 이후, 전통적 신분제도가 붕괴되면서 어늦 jd도 사회적 기회평등이 실현되었다. 자유연애 덕택에 미인들은 자신의 아름다운 용모를 무기 삼아 하층사회에서 상층사회로 신분상승이 가능해졌다. 이 같은 계층 이동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미인죄악론이라는 논리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노우에의 해석은 메이지시기의 미인론을 해석하는 데에는 어느정도 설득력 있는 주장인 듯 보인다. 그러나 미인죄악론은 무엇보다도 근대 일본 특유의 논리만이 아니다. [77~78p]
- 『사기史記』에서는 포사의 출현을 주 왕조의 멸망의 원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마천司馬遷은 포사에 대한 유왕의 총애를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보았다. 포사의 전설은 이 『사기』의 기록을 부연해놓은 것이다. [81~82p]
- 하지만 ‘미녀가 재앙을 불러들인다’는 통념은 그것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었다. 사서에 기재된 각 「열녀전」은 180도 반대 시점에서 이 관념을 보강했다. 「열녀전」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대체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그중 하나는 죽음으로써 끝까지 정절을 지켜내는 정녀형貞女型이다. 도적이나 반란군의 약탈을 받아 겁간당할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자신의 정조를 지켜내기 위해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정녀들의 이 같은 행위는 미덕으로 칭송되었다. -중략-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용모는 능욕을 불러들이며 종국에 가서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원인이라고, 읽는 이에게 강한 인상을 던졌다. [82~83p]
- 유령이야기나 동물들의 변신 이야기 등 그 종류는 각양각색인데, 이들이 인간으로 둔갑할 양이면 어김없이 꼭 미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그런데 지괴소설에 나오는 유령이나 여우는 어째서 미남이 아닌 미녀로 둔갑하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부계중심의 사회구조가 그 같은 환상을 만들어낸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부계사회의 확립이 상당히 빠르다. 부계사회가 성립하면 여성들은 주요한 사회활동에서 배제되고, 따라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당연히 낮아진다. 특히 유학이 관학으로 승격되는 한 대 이후부터는 집안에 틀어박히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여성의 역할은 육아나 가사노동에 국한되었고, 이들의 사회성은 거의 완전히 박탈당하고 말았다.
지괴소설은 주로 남성 독자들을 상정하고 씌어진 작품들이다. 바로 이 같은 사실이 지괴소설에 등장하는 귀신들의 성性을 거의 선천적으로 규정했다. 현실 속에서 남성들은 재력이나 권력과 같은 힘을 통해서, 마음 내키는 대로 미녀를 휘어잡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훤칠한 미남으로 굳이 모습을 바꿀 필요도, 혹은 여자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거나 속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거꾸로 여성의 경우는 그런 실력자들의 눈에 들지 않으면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을 수가 없다. [86p]
- 하지만 이렇게 드러난 현상의 그늘 아래에는 권력관계를 확인하련느 욕망이 감쳐어져 있다는 점도 간과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상위에 있는 존재가 위치의 역전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다시 그 고통스런 상황과 투쟁함으로써 하위의 존재를 제압한다는 환상을 통해 서열=계급관계를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남녀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모든 상하관계 속에는 이와 유사한 욕망이 꿈틀거리며 숨을 쉬고 있다. 왕권과 반란자, 중화와 이적, 또 왕위계승자와 그 찬탈자 등 다양한 변주곡을 형성하고 있다.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도 경찰과 범죄자, 백인과 ‘야만적 인디언 원주민’, 선량한 미국시민과 과격파 테러리스트라는 형태를 띠며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87p]
- 귀신들이 모두 미녀로 둔갑하고 있는 것은 불교의 전래와도 무관하지 않다. 원래 불교에서는 여색을 경계해야만 했는데, 여색은 수행을 펼치는 데에 가장 큰 적이기도 했다. -중략- 불교설화에 등장하는 유령이나 귀신 역시 미녀가 아니면 안 되는 이야기 구조였던 것이다.[89p]
- 가서라는 인물은 여성을 농락한 난봉꾼이기 때문에, 그 결말 역시 ‘자승자박’ 혹은 ‘자업자득’이라 말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왕희봉의 잔인성이 부각되었다. 가서에게 삐뚤어진 마음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일이 벌어진 그 자리에서 가서를 꾸짖거나 체념하도록 만들었다면 가서가 생명을 잃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희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치 먹이를 포획하듯이 이중, 삼중으로 함정을 파놓고 유유자적 가서를 죽음의 길로 내몰았던 것이다. [91p]
- 역사책을 읽어보면 잔학성과 미모가 반드시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역사책에 기록된 나쁜 여성들은 모두 후궁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잔학성은, 후궁들 간의 목숨을 건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왕희봉이나 반금련처럼 평범한 여성이면서, 게다가 제 스스로 상황을 피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었다면 본래 피해갈 수도 있는 잔혹한 행위들을 저지른 인물들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93~94p]
- 잔혹한 미녀는 도대체 언제 출현했던 것일까. 미녀로 변신한 요괴들은 별 문제로 친다면, 희곡을 포함한 소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례는 송대의 화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94p]
- 그런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한 가지 공통된 줄거리 설정을 파악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주인공 남성은 모두 ‘신분 내기 능력에 걸맞지 않은’ 미녀와 결혼한다거나, 혹은 강렬한 성적 호기심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다. 『수호전』의 무대는 키도 작았고 용모 역시 아주 추악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희대의 미녀 반금련을 아내로 맞아들여다. 가서의 경우는 용모가 특별히 못나지 않았지만, 가서와 숙모인 왕희봉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차이, 즉 혈연관계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가서는 그런 현실을 분간하지 않았다.
‘어떤 여성과 결혼할 것인갗라는 문제는 하나의 상징적 관계를 예시한다. 본래 사회적 지위와 재력만이 미모의 점유를 보증한다. 따라서 관리나 부호들이 미인을 처첩으로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권력과 재력도 없는 남성들은 ‘성적 약자’라는 위치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성들은 자신의 미모와 맞바꾸어 계층서열을 뛰어넘는 사회적 상승이 허용되었지만, 남성에게는 기본적으로 그 같은 기회가 부여되지 않았다. [95~96p]
- 그런 의미에서 잔혹한 미녀들의 이야기는, 본래 ‘미녀는 잔혹하다’는 교훈적 성격보다는, 오히려 남성들에게 ‘신분 내지 능력에 걸맞지 않은 결혼이 야기하는 공포’라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다. 사실 그런 이야기에서 신분이나 능력에 걸맞지 않은 남자들은 통렬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약자인 남자는 구제받을 리가 없으며’ ‘약자는 자기 분수에 걸맞은 결혼을 참고 견뎌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그런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미인은 잔혹하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유포시킨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96p]
-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는 유리문화의 변용을 들 수가 있다. 본래 미인이란 유녀의 대명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곽이 발달한 근세에는 더더욱 그렇다. 당대의 유곽은 기본적으로 관리, 또는 관리후보자가 드나드는 장소였다. 따라서 유녀들의 사회적 지위 역시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런데 시대가 내려올수록 상업문화가 발달하면서 ‘유녀’는 하나의 직업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특히 276년간 지속된 명대에는 농업과 상업을 비롯하여 수공업이 안정적인 발전을 완성한다. 도시의 규모가 확대되고 부가 축적된 결과, 서민들도 유곽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중략- 하층 사회인들까지 매춘이 가능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 같은 작품이 나타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지 않았을까?
상황이 이렇게 변화되자, 사회와 풍속의 변천은 유리문화 자체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이전처럼 고급 유녀들은 변함없이 높은 지위의 사람들의 상대역을 맡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기서 갈라져 나온 유곽들은 서민을 대상으로 매춘업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106~107p]
- 청대로 들어선 이후로는 서양의 승무원들이 지니고 들어온 매독이 유녀의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켰다. [108p]
- '홍안박명‘과 연관된 또 하나의 이미지가 바로 ’미인은 병약하다‘는 함의含意다. 이 미의식도 언제 형성된 것인지 확정하기란 어렵다. -중략- 다시 말해 날씬한 몸매에 가는 허리를 선호하는 문화 속에서, 허약한 신체가 아름답다는 미의식이 태어났던 것이다. [109p]
- 서양문학에는 팜므 파탈femme fatale, 즉 ‘숙명의 여인’이라는 여성상이 있다. 요염한 용모와 자태로 뭇 남성들을 유혹하고 성적 매력으로 이들을 매료시킨 후, 더 나아가서는 이들을 파멸로 인도하는 여성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물론 이 경우가 미모가 반드시 잔혹함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남성들에게 아름다운 여성은 위험한 ‘불장난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115p]
- 『노자』나『장자』에는 여색을 경계하는 말들이 실려 있는데, 한 대 이후로 들어서면, 노골적으로 미인을 공격하는 양상으로 바뀐다. [120~121p]
- 미녀는 불행하다는 관념 역시 ‘홍안박명’을 통해 에도시대 일본으로 전해졌다. [124p]
-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미인죄악론은 근대 특유의 현상이 아니었고, 또 일본에만 한정된 현상도 아니었다. 부계사회라면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모계사회는 자연적인 관계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그 친족구조가 강고했다. 모계사회에 비하면 부계사회는 문화로 구축되어 있다. 그 인위적인 취약성을 보강하기 위해, 미인죄악론이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125p]
- 목판연화의 발달 과정과 공급의 대상, 그리고 제작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아편전쟁 이후가 되더라도 얼마 동안은 서양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옛 중국의 회화와 조각에 나타난 미인은, 예외 없이 홑눈꺼풀이었다. 그러던 것이 명대 이후로 들어서면 쌍꺼풀을 한 미인이 그림 속에 등장하게 된다. -중략- 청대의 연화가 명대의 미인화의 심미관을 계승한 것인지, 아니면 서민의 미의식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문인화의 취향과 일치한다는 점만큼은 틀림없다. [131p]
- 비교의 근거로 대체로 아래와 같은 요소들을 고려해보아다. 첫째, 연화와 우키요에의 미인화는 모두 판화며, 실용성과 장식성을 함께 지닌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전제로 한다면 제한된 비교나마 가능하다는 판단이 선다. 둘째, 서양문화와의 관계는 양국이 공히 훗날 근대화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유사한 배경이 깔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셋째 에도시대의 우키요에는 중국의 판화보다 더 뛰어난 표현기법이 있고, 중국의 연화와의 관계는 다소 희박하다. 따라서 우키요에의 경우는 중국미술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이 장에서 미술에 대해 논의할 생각은 없지만, 다만 ‘미인이 어떻게 표상되었는갗라는 점에 국한하여 고찰하려 한다. 앞의 근거에 입각하면서, 또 비교가 지닌 한계의 유의한다면, 중일 양국의 도상에 의거한 미인표상의 비교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나느 판단한다. [135p]
- 양식화樣式化는 다양한 약속=규칙을 만들어냈다. 일본과 중국에 버들가지 같은 허리나 다소곳이 흐른 어깨선은 미인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이것만 그린다면 신체의 다른 부분을 어떻게 그렸든 간에 미인이라는 승인을 받았다. 문학에서 ‘유미柳眉’는 미인을 표현하는 상투적 표현인데, 회화에 묘사된 길게 휘어진 눈썹은 미인의 은유였다. 이와 더불어 작은 입술 역시 미인을 암시했다. 이 같은 조형상의 수사학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상당한 공통성을 보이고 있다. 그런 반면 차이도 매우 컸다. 에도시대의 미인화는 자세의 변화가 풍부했고, 몸동작도 다양했다. 비단그림과 비교해보면, 중국의 미인화는 양식화가 더더욱 철저했다. 특히 자세나 몸동작에는 몇 가지 패턴이 항상 반복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136~137p]
- 문인화 속 미인은 특정 문화의 맥락에 의거하여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용모가 아름답고 육체적으로 남성을 유혹하며, 때로는 국가를 멸망시키는 재앙을 초래하기도 한다’는 요부에 대한 사회통념이 그것이다. [148p]
- 호색문학의 삽입 판화에 등장하는 미녀들은 노골적으로 ‘음부淫婦’로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뒤따르는 가치판단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다. 문인화나 삽입판화에 묘사된 미인의 그러한 뉘앙스에 대해, 연화 속 미인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려지고 있다. 왜냐하면 연화에는 에로틱한 미인은 묘사되지 않았고, 그려진 대상은어디까지나 ‘바람직한’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150p]
- 중국의 미인화는 궁정의 여성이나 유명한 처첩들은 그린 작품인데, 거꾸로 유녀를 묘사한 사례는 하나도 없다. 사실 중국 그림의 제목을 살펴보면, ‘미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158p]
[제4장] 시문 속의 미녀, 회화 속의 미녀
- 내 눈앞에 존재하는 미녀도 매력적이지만, 전설 속에서 살아 숨쉬는 미녀는 훨씬 더 아름답다. 절세의 미녀들은 본질적으로 실재와 모순하며, 우리는 늘 환상 속에서 이들을 경험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낱 ‘보통’의 미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절대적 미모를 꿈꾸면서도, 그 미모를 명확화하고 도식화하려는 그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무의식적으로 저항해왔다. 왜냐하면 절대적 아름다움이란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미인은 언제나 전설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시문 속에서 미인을 향한 몽상, 혹은 백일몽과 더불어 자라간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미인은 자신의 용모만으로 독자들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모는 사랑, 열정 같은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들과 함께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깊고 진한 미적 감동을 전해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은, 상상력의 가장 세련된 표현양식인 시 안에서만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 절세의 미모를 시각적으로 포착하려는 충동 역시 우리 마음속에 늘 상존한다. 앞서 서술한, 환상을 찾아 나서고 싶은 원망願望과 서로 모순하면서도, 충동은 이 원망과 상호 보완적 관계도 맺고 있다. 비너스 상이나 미인화 등이 끊임없이 제작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점은 오늘날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지난날 크게 유행했던 스타들의 걸개사진(브로마이드)은 그 같은 미인화의 현대판이라 생각해도 무방하다.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 미인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할 정도로 살벌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미인상은 고정된 상태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성질을 지닌다. 그래서 본래 초상화로 표상되기가 무섭게 이상적인 미모도 사라져버리고 만다. 연예인들의 사진이 든 달력과 사진집, 유행 음악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또 영화 등에서 항상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다음번엔 영원한 아름다움이 꼭 나올지도 몰라’ 하는 우리의 환상과 바람은 미인의 이미지를 끊이지 않고 계속 생산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162~163p]
- "여자는 밤에 볼 때, 먼발치에서 바라볼 때, 삿갓(또는 우산)을 쓰고 있을 때 아름답게 보인다.“는 일본속담이 있다. 여성이 아름답게 보이는 경우를 가리키는 조건들이다. 흐릿하게, 또 희미하게 비치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인다. 이는 찬란한 빛에 눈이 부신 것과 똑같은 이유다. ‘어떠어떠하다’는 제한된 구체적 묘사를 배제하면서, 보는 이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둔다. [169p]
- 얼굴에만 치중하는 심미관은 후대에도 계승되는데, 그러나 한조漢朝와 육조대에 이르면 체형에도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면서 비유법을 활용하는 묘사는 더욱 두드러진 양상을 보인다. [170p]
- 위 인용문에서도 어깨와 허리, 목 줄기와 살결, 머리칼과 눈, 입술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외형의 정확한 모사를 의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보는 이가 받은 인상을 통해 아름다운 용모가 던져주는 충격을 보여준다. [172p]
- 이 같은 묘사법은 시문詩文을 감상하는 습관과도 관계가 있다. 시문의 작자가 기대하는 바는, 동일 이미지에 대해 독자들이 함께 공명하는 것이다. 시문의 감상 과정 중 시인이 그려낸 이미지를 독자들은 상상력으로 보정해가고, 이때 비로소 하나의 문학적 이미지가 완성된다. 따라서 세세한 부분에 대한 작자의 현실적인 묘사는, 도리어 독자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방해하고 만다.
비유법이 의도하고 있는 점 역시 가시적인 유사성에서 오는 독자들의 인지認知가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자들의 자유로운 연상이다. 바꿔 말하면 용모 묘사에서 구상화를 가능토록 하기 위해 언어의 의미가 수렴되어가는, 이른바 설명적 서술법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거꾸로 의미가 확산되어 나아가는 수사법을 동원하여 한정적인 표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172~173p]
- 이처럼 중국문학에서는 미인의 모습을 본 그대로,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경우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대부분의 경우 현실의 대상에 대한 시각적 인식은 그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에 지나지 않았고, 이는 창작 과저엥서 항상 지양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는 고대 중국의 미학사상과도 일치한다. 『이십사시품二十四詩下에서 사공도는 “한 글자를 쓰지 않더라도 온갖 풍류를 얻는다.”고 주장하는데, 이 발언은 바로 위와 같은 표현미학을 총괄하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대상에 대한 기하학적·조형적 이해와 재현은 여성미를 제한하는’ 부적당한 예술적 태도로 간주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작품에 등장하는 미인상의 거의 대부분은 형이하학적으로 환원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묘사는 당연히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고, 많은 경우 표현의 중심은 외관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쾌감의 일출과 감동의 궤적을 드러내는 데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인체의 미에 대한 흥미는 주로 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정신적 충격이라는 측면에서 집약하고 있으며, 현상으로 드러난 형태의 아름다움과 그것의 인지라는 문제에 대해 문학자들은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같은 표현미학은 19세기 말까지 줄곧 지배적인 지위를 누렸다. [174p]
- 유교윤리 사회에서 여성미는 외형의 아름다움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미모란 눈매와 표정, 행동거지와 언행, 수줍음 등 여성이 갖추어야 할 신체적 표현과 서로 맞물려 움직이면서 늘 변화한다고 보았고, 또 이를 동태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관계로 외형에 대한 모사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176~177p]
- 이 경우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갗 하는 현실성의 척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향수하는 사람의 감수성을 기축으로 하는 좌표 안에서, 미인의 이미지는 지극히 풍부한 모습들을 드러냈으며, 또 그것이 한정된 내용을 갖고 있지 않은 관계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아름다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178p]
- 똑같이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일지라도, 남성에게는 또 다른 계통의 말을 쓰고 있다. 예를 들면 『한서』 제68권에는 미남 곽광霍光을 두고 “백석소미목白晳疏眉目, 미수염美鬚髥” 즉 ‘흰 살결에 눈과 눈썹이 모두 시원시원했고, 턱수염과 구레나룻이 멋졌다’고 묘사하고 있다. 흰 피부는 ‘백석’이라는 말로 형용하면서, 미인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하던 ‘백설 같은 피부’와 ‘하얀 얼굴’이라는 표현들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186p]
- 원래 문학창작은 끊임없이 새로운 문체나 수사학적 실험을 시도하고, 또 독창적인 표현을 추구해야 한다. 상투적 문구는 독창성의 가장 큰 적이며, 시적 참신성을 덜어내는 가장 큰 요소다. 따라서 상투적 문구는 독자들을 곧 싫증나게 할 뿐 아니라, 문학자 자신에게도 그다지 바람직한 창작 수법은 아니다. 역대 시인들 역시 당연히 이런 점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묹제점들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상투어를 활용하는 묘사의 전통은 오랫동안 이어져왔고, 중국에서는 20세기 초 신문학新文學이 탄생할 때까지 전혀 쇠퇴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표현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사 표현들이 반드시 진부한 묘사의 반복이라는 이산을 받지는 않는다.
이처럼 상투적 문구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독자들이 ‘단순한 반복’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첫째로 중국문학에서 전고의 사용이라는 특수한 수사법의 존재를 꼽을 수 있다. 고전 또는 오랜 전설이나 지난 역사에서 특정 어구나 줄거리를 인용하거나 차용하는 것은, 기본 수사법의 하나다. 특히 시가창작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척도로 간주했다. 물론 전고의 인용은 딱히 중국문학만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지만, 전고의 사용을 창작의 기본 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점과 전고에 대한 지식을 작품의 창작과 이해의 전제로 삼고 있는 현상은, 생각건대 여타 분야에서는 그리 흔하게 접할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런 이유로 어구의 인용은 작품의 독창성을 평가절하하게 만드는 부정적 요소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시인의 풍부한 교양을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중략-
그러나 미인 묘사에서 볼 수 있는 상투어라고 해서 모두 꼭 전고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아미’라는 단어가 고전 안에 빈번하게 등장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자주 반복해서 활용된다고 하여 “이것은 전고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전고의 인용이라는 기법이 존재하는 관계로, 독자들은 동일한 어구의 반복에 완전히 익숙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반복적 사용이 진부하고 판에 박힌 표현양식이라 하여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잇었던 것은, 유사 어구들을 배척하는 독차 측의 반응이 저너고라는 존재로 인해 둔화되었던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상투어들이 지속적으로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다른 단어들과의 조합이나 시문 속 어느 곳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풍성하고도 다채로운 변화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투어라고는 해도, 완전히 동일한 시구의 반복은 존재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아미’라는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백낙천의 “완전아미마전사宛轉蛾眉馬前死”라는 시구가 그대로 차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상투어의 변형은 두 차원에서 구성되었다. 첫째는 단어의 내부변환이고, 둘째는 문장 중에서 다른 단어들과의 조합에 따른 변환이다. [193~195p]
- 이렇게 한자의 위치를 이동하거나 글자 하나를 바꿈으로써 상투어를 끊임없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202p]
- 유사 어구의 용례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각 시대에 흐르던 독특한 경향을 읽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육조와 당대의 시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아미’는 원대와 송대의 시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현저하게 줄어드는데, 명대가 되면 다시 그 사용이 증가하고, 특히 백화문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단순’이나 ‘호캄 같은 상투어 역시 육조시대에는 빈번히 쓰이다가 원·송 이후로는 그 빈도가 낮아진다. 그 대신에 눈썹을 버들잎에, 입술을 앵두에 비유하는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게 도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하자면 혹사된 특정 어구에 자율적 회복 기능이 작용하여 일시적으로 조절하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203p]
- 문학작품에 바탕을 두고 제작된 이상, 어느 정도는 원작의 제한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앞서 언급한대로 「낙신부」의 미인 묘사가 애매하기 때문에, 이를 구상화具象化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원작 「낙신부」가 주는 구속을 받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그림은 동시대의 미의식을 상당히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당시 사람들이 미인상을 고스란히 묘사했다고 봐도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206~207p]
-<낙신부도>는 일종의 그림을 통해 「낙신부」의 뜻과 내용을 보충 설명하는 성격을 띠고 있고, 게다가 순수한 인물화도 아니다. 이에 비하면 당대에는 여성을 대상으로 그린 초상화, 특히 미인화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꼭 다루어야 할 작품이 바로 ‘사녀도’다. 이 사녀도는 ‘사녀화士女畵’라고도 부르는데, 본래 귀부인들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녀’라는 명칭 자체는 당대에 처음 등장했는데, 이 말이 미인을 의미하게 된 시기는 송대 이후부터다. [208p]
-<한희재야연도>는 미인상이 회화적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을 경계로 하여 회화 속에 등장하는 미녀의 모습이 확연히 바뀌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게다가 이 작품에 나타난 미적 취향은, 그 뒤 이어질 10세기에 가까운 역사 동안 시종 지배적인 위치를 누렸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해두어야 할 점은, 화면에 등장하는 미녀들의 얼굴이 홀쭉해졌다는 사실이다. 당대까지 역대 미인화에서 빠지지 않던 통통한 볼이 여기서 그 자취를 감춰버리고, 이를 대신하여 훗날 미인의 얼굴형으로 간주하는 달걀형의 갸름한 얼굴이 등장했던 것이다. 얼굴에 자리 잡은 눈과 코의 위치도 적절한데, 이는 그 표현에 정확한 관찰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곧게 뻗은 콧대는, 이것이 단지 선묘법에 그친 것이 아니라 색채의 농담을 능숙하게 사용함으로써 코를 비롯하여 안면 전체에 뚜렷한 입체감을 부여했다. 간략한 선으로 코를 묘출해내던 당대 이전의 화법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인물의 표정을 포착하고 있다. 이 같은 기법의 진보로 말미암아, 화가들은 더 올바르게 미인들의 용모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216~217p]
- 주방의<휘선사녀도권>과 비교하면 치마는 허리춤 가까이까지 내려왔다. 이는 ‘세요’ 즉 가는 허리의 복권을 의미하기도 하거니와, 날씬한 체형의 미녀로 회귀해가는 징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의상에 곡선을 많이 사용하고 의복의 곡선을 통해 유연한 육체를 표현하려는 취향은, 아직도 여전히 육조시대 이래의 전통을 연상시킨다. [216~217p]
- 한편 사실적寫實的수법으로 시대정신을 포착하면서, 현실의 삶 속에서 미인을 여실히 재현했던 화가들도 분명 존재했다.
그중 명대의 진세수 陣世綬와 엄담嚴湛의<여선도축>(그림 20)은 미인상의 변화상을 고찰하는 데에 훌륭한 자료다. 작품의 대상은 여선女仙과 여선을 모시는 두 명의 시녀다. 여선이라고는 해도 현실 속의 여성이 그 모델이었음은 두말이 필요 없다. 이 여선은 헐렁한 큰 옷을 걸치고 있는 탓에 그 체형이 분명치 않지만, 신체의 비례관계로 미루어 마른 체형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육등신 반의 날씬한 체형은 고대의 회화작품속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오랜 역사 가운데 발생한 변화의 진폭이 너무도 놀랍다. 얼굴의 아랫부분은 고굉중의<한희재야연도>보다도 더 좁아들어, 소위 희고 갸름한 오이씨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눈썹은 주방의<잠화사녀도권>의 짧은 눈썹이나 고굉중이 묘사한 가늘고 긴 눈썹과도 다르다. 약간 굵으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형태를 하고 있다. 콧날이 서 있는 얼굴을 숭상하던 취향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지만, 콧날 부위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종래의 미인화와는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며, 이는 명대의 다양한 심미관을 느끼게 한다.
특히나 꼭 지적해두어야 할 점은, 그림 속에 쌍꺼풀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쌍꺼풀을 ‘미’로 보는 시각은 근대 이후 서양의 영향을 받아 발생했다고 생각해왔는데, 실제로는 중국 내부에서도 자생적으로 그 같은 관념을 형성하고 있었다. [217~218p]
- 문학과 회화의 크게 서로 다른 점은 표현 메커니즘의 차이다. 특히 고전 중국어는 묘사된 대상도 그렇지만, 단어와 문체, 운율 등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도 매우 중시했다. 그래서 작품과 표현하려는 대상 사이에 가끔 균열이나 불일치가 발생했던 것도 그리 기이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그 같은 거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문학작품에 묘사된 미, 곧 아름다움은 오히려 보편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220~221p]
- 얼굴은 각 개인이 소유하고 있지만, 미추의 판단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몫이다. 아름답게 보이는가의 여부는, 본인의 의사나 취미와는 무관하게 타인의 안목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까지 ‘겉모양’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눈=시선’이 기준이 되고 있는 이상, 그러한 노력도 본인의 기호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호오와 합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추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이 ‘타인의 눈’은 어느 특정 개인의 기호가 아니고 대다수 사람들의 미적 감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추를 결정하는 척도는 항상 대중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은 풍토와 시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며, 대중적인 취미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간다. 미인상은 변하지 않는, 언제나 똑같은 그 무엇이 아니며 시대와 더불어 크게 요동친다. 이상적인 얼굴은 고정된 기준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 얼핏 생각하면 용모는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듯 보이기도 하는데,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의 수준’에 가까워지면 동일한 얼굴일지라도 미추의 평가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224~225p]
- 화장과 미용은 아주 흥미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미용이 수동적이라고 한다면, 화장은 능동적인 행위다. 한 사람의 용모에 대한 평가는 타인의 시선, 곧 그 잣대를 타인에게 위임할 수밖에 없지만, 화장은 이 타인의 시선에 적극적인 작용을 가하는 행위다. 얼핏 생각하면 화장은 ‘얼굴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아름다움의 여부와는 무관하다. 세상의 심미관을 예상하고, 세상의 기호 혹은 기대에 맞추어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은 반드시 공동체 내에서 비로소 (참다운)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 자기 홀로 표착했을 경우, 평소라면 자신의 겉모습에 신경을 쓰는 데 골몰하던 여성일지라도 분명 화장을 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을 보는 타인이 있고, 그들에게 보이는 자신이 존재한다. [225p]
- 화장을 통해 얼굴은 ‘보다’와 ‘보이다’는 관계에서 ‘보게 만든다’와 (의식적으로) ‘보여주다’라는 관계로 변화한다. [226p]
- 화장은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으며, 그 방법이나 상태에 따라 여러 다양한 메시지를 표출한다. 특정 인물의 시선을 끌기위한 경우도 있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호감을 사기 위한 경우도 있다. 화장에 담긴 의미는 화장법의 유사성과 차이에 따라 사용방식이 갈라진다. 유행의 흐름에 충실한 화장법은 유사(점)를 통해 공동체에 대한 의례적 귀속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위 사람들과도 다르고 일상과도 다른 화장은 (그) 차이를 통해 자신감과 과시욕, 우월감 또는 멸시와 반발, 도전 등 여러 특정한 의미를 강렬하게 주장한다. [226p]
- 근대 이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화장은 공중의 시선과 빈번히 접촉하게 되었다. 사적인 공간에서 공공의 공간으로 전이되는 과정 속에서, 화장이 지닌 의례적 측면이 점점 강화되었다. 특히 비즈니스나 사교의 장에서 화장은 때로 사회적 의례를 나타내기 위한 기호記號로 변모했다. 청결한 차림새의 유지와 적절한 화장은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시함과 동시에, 상대방과의 적정한 거리까지 암시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화장은 복장과 행동거지, 말시 등과 함께 신분과 직업, 교양의 수준과 사회적 지위 등을 표시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27p]
- 용모를 아름답게 하기 위한 화장은 일종의 자기표현이다. 정치적 의도나 악의가 있는 경우를 별문제로 친다면, 일반적으로 화장에는 독창성에 대한 지향은 극히 희박하다. 화장을 할 때 타인과의 차이를 줄곧 의식하면서도 그들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 화장을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상식적인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현대예술의 화구畵具처럼 다루는 사람은 없다.
화장은 공동의 이미지를 전제로 한다. 이 공동기준에 대한 편차는 화장에 다종다양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 점에서는 동서고금이 모두 공통된다고 할 수 잇따. 그러나 근대로 들어서면서 미추에 대한 판단기준은 상업주의라는 영향에 크게 좌우되었다. 유행하는 미모는 현실보다 앞서 움직이는 이미지로 제시되고, 이는 미디어를 통해 대중 속으로 침투해간다. 그 뒷면에는 유행, 액세서리나 화장품의 소비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아름다워서 유행하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유행하기 때문에 아름답게 비치는 얼굴도 존재한다. [228~229p]
- 체형에 비하면 미모의 기준은 더더욱 크게 요동쳤다. 아름다운 얼굴은 때로는 상투적인 말과 단어로 표현되었으니, ‘아미’나 ‘유요’ 등은 그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이러한 상투어들을 잘 음미해보면, 화장에 관한 표현 혹은 화장의 결과를 나타내는 말들이 적지 않은데, 특히 고대의 경우는 그렇다. 예를 들면, ‘백설같이 흰’ 피부는 백분을 바른 결과를 표현한 말이며, ‘앵두같이 붉은 입술’ 역시도 입술연지의 사용을 전제로 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 미인으로 평가받거나 또는 미인으로 묘사된 것은 실제의 얼굴이 아니라 화장으로 만들어진 미인을 가리킨다. [230p]
- 이렇게 서로 다른 민족들의 문화가 대립하고 충돌하는 가운데, 미모의 기준도 변화하고 얼굴도 끊임없이 표류했던 것이다.
이민족문화의 여성들을 흉내 내려 할 때, 가장 손쉽게 이용되던 방법이 복식과 화장이었다. [233p]
- 문화의 상하관계에서 보자면, 이문화의 화장법을 수용하는 데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하위문화에 대한 상위문화의 영향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인 경우다. 요컨대 반드시 하위문화가 상위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한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교착하는 복수의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보는 쪽이 도리어 실상에 가깝다. [233p]
- 이 지구상에 ‘고유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들 문화를 이야기할 때 동원되는 ‘전통’이니 ‘고유’라는 말은 환상이거나, 혹은 한낱 수사학에 지나지 않는다. [251p]
- 괵극 부인이 화장을 하지 않은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 모습을 시 속에서 묘사할 정도였으므로 당대의 화장풍습이 상당한 정도로 널리 퍼져있었을 것이다.
두보의 시는 후세인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던 듯하다. ‘진정한 미인은 화장을 하지 않더라도 아름답다’는 견해는 청대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강했다. [261p]
- 어쨌거나 위에서 인용한 이어의 화장론을 통해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화장에 대한 청대의 사회적 평가가 반드시 좋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다. ‘화장품이 사람의 못난 부분을 감춰준다’는 견해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262p]
- 동·서양 미인의 변천상을 역사적으로 비교해보면,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떠오른다. 서양의 비너스 상과 아프로디테 상 등, 고대 그리스 조각이나 로마시대의 석상에 표현된 미녀들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아름답다. 이에 비해 동양의 이상적인 미인상은 크게 변화했다. 한나라 당대의 경우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명청시대의 사녀도에 등장하는 미인들의 거개 역시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결코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겐지 모노가타리 에마키>나 우키요에에 나타난 미인상은 현대인의 눈에는 거의 미인으로 비치지 않는다.
근대로 들어오고 난 뒤부터 서양의 미의식이 동양에 침투하면서, 그로 인해 동양인의 심미관이 서양식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편전쟁 이전의 중국은 유럽의 영향을 받지 않았음에도 각 시대의 미인상은 크게 달라졌다. [263p]
- 문학작품 속 미인상은 독자들의 상상을 자극하지만, 선호하는 미인의 용모를 시각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지는 않는다. 이에 비해 회화나 조각은 미모를 구상화하고 개별화함으로써 시각에 호소할 뿐만 아니라, 미모의 규범까지 만들어낸다. 이렇게 창출된 미의 규범은 다시 생활문화로 피드백 되고, 피드백 된 이 규범은 그것이 소속된 문화의 심미관 형성에 다시 영향을 끼친다. 고대 그리스 조각을 눈에 익히고 자란 사람이 상상하는 미인상이,<겐지 모노가타리 에마키>만 알고 있는 사람이 생각하는 미인상과 서로 다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278p]
- 왜냐하면 어느 시대건 미인의 조건은 보편적인 미의식에 기초하고 있는 관계로, 결코 사회적 지위나 어느 계층에 속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성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287p]
- 스기와라 미치자네의 한시에 나타난 미인상과 중국의 미인상을 비교해보면 공통점도 있지만, 동시에 양자 간에는 분명한 경계, 즉 차이점도 존재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시에는 백색 피부, 길고 부드러운 손, 가늘고 잘록한 허리, 봄날 구름 같은 머리채, 가늘고 긴 눈썹 등이 아름다운 여성미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런 점들은 중국의 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중국 시에는 있어도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시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보면, 중국문학에서는 미인의 조건으로 꼽히는 반짝이는 눈과 붉은 입술, 미백의 치아등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시에는 이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특히 하얀 치아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작시법이나 묘사의 기교 면에서 볼 때, 이 같은 용모상의 특징을 묘사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용어들을 시어로 쓰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간단히 수용할 수 있는 일이다. 한시문에 조예가 깊은 스가와라 미치자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의식적으로 이를 회피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미백의 치아를 어떤 이유에서 회피했던 것일까?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로는, 당시 일본에서 하얀 치아를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당시의 풍습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겠다. 중국 시문에 아무리 그런 표현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묘사는 역시 불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293~294p]
- 그러나 일단 백색 피부를 아름답게 생각하는 미의식이 성립하고 나면, 그 정도가 다소 지나치다고 해도 결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령 ‘백색 피부는 미다’라는 관념이 정착해버리면 ‘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름답다, 예쁘다’라는 함축적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백색 피부 자체가 추악함과 미움의 대상으로 취급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중국문학의 용모 묘사를 들여다보면, 백색 피부가 추악함과 미움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사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질병으로 건강하지 않거나 혹은 과다출혈 등 기타 여러 원인으로 인해 피부가 하얗게 보일지라도 ‘희다, 하얗다’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안색이 나쁘다’나 ‘해쓱하다’, ‘혈색이 좋지 않다’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한다. 갈색 피부를 아름답다,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조차 인물을 묘사할 때 ‘백색 피부’를 추악한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는 좀체 보이지 않는다. [310~311p]
- 19세기 영문학에서는 ‘금발’이라는 말만이 ‘미인’을 의미했다. 추악한 사람의 경우는 실제로 그가 금발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의 용모를 묘사할 때에는 의도적으로 그 점을 누락시키고 ‘금발’로 표현하지 않았다. 중국문학에서도 ‘명모호캄라 하면 그 사람이 미인이라는 말이었다. 얼굴 생김새가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제아무리 새하얀 치아를 하고 있다 해도 ‘호캄로 표현하지 않은 것과 동일한 원리다. 왜냐하면 ‘금발=미인’과 ‘호치=미인’이라는 이 두 경우에는 그것이 이미 함축적 의미를 띤 언외지의 言外之意로 성립해있기 때문이다. [313p]
- 원래 헤이안시대의 의복은 허리춤이 넉넉해서 신체의 허리선을 볼 수 없다. 따라서 걸음걸이나 걸터앉는 동작을 보고 미루어 추측하는 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게다가 ‘그 허리는 가녀린가 그렇지 않은갗하는 문제보다,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묘사한다. 모노가타리 문학에는 허리에 대한 묘사가 적다. 『겐지 모노가타리』의 경우도 ‘허리 맵시’를 묘사한 사례는 둘뿐이다. 아마도 그것은 헤이안시대 의복의 객관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제한을 받았기 떄문일 것이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를 볼 수 없는 의복을 착용하고 있는 한, 버들가지처럼 나긋하고 가는 허리인 ‘유요’를 미로 파악하는 의식은 탄생하지 않는다. [317p]
- 외부에서 전래된 화장법 역시 이를 수용하는 나라의 생산조건에 따라 그 영향력은 크게 달라진다. 헤이안시대와 같이 홍과 백분의 사용 범위가 귀족사회로 제한된 경우에는, 이것이 상품으로 대량생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편 수입품은 그 수량이 한정되어 있던 관계로, 화장품 사용 인구가 널리 확대되어 서민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따. 이런 점들은 고려할 때 대륙에서 건너온 미의식이 일상생활에서 급속하게 확산되어 정착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329p]
- 그러한 비도상적 묘사에는 기계적인 정확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언어를 거치면서 하나의 이상상이 제시된다. 그리고 나아가 그 같은 미인상은 미의식의 규범을 만들어내고, 이어지는 시대의 심미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문학작품은 개별 작품들 간의 차이가 크고, 작가에 따라 작품이 지닌 미의식 또한 다양해진다. 따라서 표현법이 다르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또 앞선 시대의 모노가타리 문학의 표현법을 어떤 식으로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작가와 작품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347p]
- 이상적 미인상은 고유명사를 통해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 여성은, 그녀에 관한 ‘전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미녀가 될 수 없다. 생김새의 미추보다도 ‘남성들을 얼마나 매료시킬 수 있는갗 하는 것이 더 흥미를 자극한다. 중국에서는 서시나 모장 같은 미인상들이 일찍부터 등장했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왕소군이나 이부인 등이 미인의 반열에 추가되었고, 양귀비 역시 그런 후발 주자 중 한 명이었다.[358p]
- 에도시대로 들어서면, 중국문학을 ‘번역’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번역’에 이용된 문체는 한문적 표현을 받아들인 가나仮名문장이었다. 한시문을 그대로 훈독하던 역사에 혁명적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참다운 의미의 ‘번역’은 아니었고, 원문의 표현을 무시하는 ‘번안飜案’이었다. [368p]
- 그렇다면 ‘젊고 싱싱하다’와 ‘젊다’는 말은 도대체 몇 살을 가리키는 것일까? 현대인들의 눈에는 아무래도 딱 정해진 연령은 없는 것 같다. 사람에 따라 열여덟 살일 수도, 또는 스무 살 전후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30, 40대인데도 젊다고 느끼는 사람이 잇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문학에서는 미인과 연령 간에 대응관계가 존재했다. 특히 문학의 미인 묘사에서 연령은 일종의 상징성을 띠고 있다. [371p]
- 열여섯 살이 좋은 나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조혼 관습이 있던 시대에는 흔히 있는 심미관이다. 다만 문학에서 ‘열여섯 살=아름답다’는 함의가 성립했던가를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았다. [373p]
- 나이 열여섯을 뜻하는 ‘이팔’이라는 말이 미인의 은유로 쓰이게 된 것은, 비교적 그 시기가 늦다. 중국에서는 원래 『옥대신영』과 백낙천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이 말은 비단 연령만을 나타내지 않았고, ‘아름답다’와 ‘미혼’이라는 뉘앙스까지 드러냈다. [373p]
- ‘미인’이라는 개념은 시대에 따라, 상정하는 상대가 다르다. 고대에는 여신이 상상 속의 미인이었다. 그 다음에는 왕비나 왕녀가 여신이 하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사대미인四大美人’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러 다양한 인물들로 조합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서시(오왕의 측실)와 초선(동탁의 애첩), 왕소군(한나라 원제의 측실)과 양귀비(당나라 현종의 비) 이 네 미인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초선을 제외하면, 세 사람 모두 왕비다. 그러나 동탁이 실질적인 황제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초선 역시 왕비로 간주해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유리문화가 융성한 시대가 오면, 미인은 서민들에게 더욱 친근한 존재로 변하고, 거기서 명기들이 대표적인 미인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377~378p]
- 쌍꺼풀에 관한 묘사는 청나라 말기까지 중국문학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서양문화가 유입되기 이전 시기에, 쌍꺼풀을 아름답다고 인식했는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다케베 아야타리의 『본조수호전』으로 말미암아, 서양의 근대문화가 수용되기 이전의 일본에서는 벌서 쌍꺼풀을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심미관이 존재했던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394p]
- 중국문학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흔히 꽃에 비유한다. [398p]
- 중국문학에서 미모를 꽃에 견주는 수사법은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상투어구로서 활발하게 이용하게 된 것은 명나라 이후의 일이다. 아마도 이 사실은 유녀평판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유녀평판기에는 유명한 기녀들을 흔히 꽃에 비유하면서 그 순위를 매겨놓고 있다. 이런 기술방식으로 인해 미인과 꽃의 대응 내지는 연상관계가 확립되었다. [408p]
- 에도시대에는 결혼한 여성은 눈썹을 깎아내는 풍속이 있었다. 여성의 눈썹에 관해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하얀 치아를 예찬하지 않았던 까닭 역시 ‘흑캄의 관습과 유관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415p]
-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소설의 묘사에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미의식의 일부분밖에 읽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문학작품에 나타난 미인상은 ‘현실은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갗 하는 문제보다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갗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417p]
- 동아시아는 근 백 년 이래로 서구문화의 미의식을 수용해왔다. 오늘날 미인을 바라보는 관점도 서양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근대 이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예컨대 현대인들은 커다란 눈망울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는 터라, 어린이용 만화 등에서는 비정상으로 보이리만치 눈을 크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고작 1세기 전만 하더라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청나라 이어는 『한정우기』에서 “눈이 우락부락하게 큰” 여성은 성격이 고약하다고 하면서, “가늘고 눈초리가 긴” 여성이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여성의 큰 눈(망울)을 좋게 평가하기는커녕, 도리어 이를 결점으로 지적했다. [420p]
- 이런 문학작품에 비해 회화는 그나마 현실에 가깝다. 물론 화가에 따라서, 혹은 묘사하려는 대상에 따라서 미인의 도상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회화보다도 더 확고한 증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진이다. 다행스럽게도 일본의 막부 말기와 중국 청나라 말기에 촬영된 사진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예컨대 청말 광서제가 총애하던 진비의 사진은 훌륭한 참고자료다. 측실은 용모로 선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황제의 총애를 받던 측실 대부분은 예외 없이 거의 미인들이었다. 그림 58의 진비 사진을 들여다보면 곧게 뻗은 콧대에 귀여운 입술, 눈매 역시 또렷하여, 오늘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빼어난 미인이라 하겠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도쿠가와 요시노부(1837~1913)의 측실인 니무라 마코토는 달걀형 얼굴에 콧대가 죽 뻗었으며, 흰 피부에 마른 체형을 한 미인이었다고 한다(그림 59 참조).
이런 사진들을 접하면 서양적 미인상과 기존의 미의식이 꼭 충돌한다고 보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공통점마저 존재한다. 이렇게 공통된 미의식은, 훗날 서양 미인의 이미지를 수용하는 하나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서양적 미의식을 수용함으로써 발생한 변화를 몇 가지 손꼽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쌍꺼풀과 윤곽선이 뚜렷한 얼굴형을 들 수 있겠다. 앞서 서술한 대로 에도시대의 일본과 청대의 중국, 두 나라 모두 쌍꺼풀을 한 여성의 얼굴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와 동시에 홑눈꺼풀에 대해서도 역시 좋은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근대로 들어선 이후부터는 오로지 쌍꺼풀의 우위만을 강조하게 되었다.
미인의 사진에서도 이 같은 변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메이지 초기의 미인 사진을 살펴보면 홑눈꺼풀을 한 여성들이 보인다. 그러던 것이 1907년(메이지 40)부터 이듬해까지 두 해에 걸쳐 펼쳐진 일본 최초의 미인 선발대회의 입상자들 중 쌍꺼풀을 한 미인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전국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스에히로 히로코는 얼굴의 윤곽선이 뚜렷한데다가 쌍꺼풀까지 하고 있다(그림 60 참조). 홑눈꺼풀을 한 미인의 경우는, 교토 대표 1위에 입상한 히나쓰 미네코 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그림 61 참조). 현대인의 눈에 비춰보더라도 스에히로 히로코와 히나쓰 미네코 중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지 가려내기 힘들다. 하지만 스에히로 히로코가 전국 1등에 선출된 원인은, 앞서 말한 미인관의 변용이 빚어낸 결과일지 모를 일이다. 서양풍의 미인에 얼마만큼 가까이 접근했느냐가 미인을 가르는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423~426p]
- 인물 묘사에서 가장 획기적이라 손꼽을 작품은 창작보다는 오히려 번역 작품에서 나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후타바테이 시메이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와 곤차로프를 모방하면서 고심하고 쓴 작품과 비교할 때, 번역작품은 훨씬 더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중략- 무의식적인 동작이나 쉽게 보고 지나쳐버릴 수 있는 세세한 장면까지 미인 표현의 한 부분으로서 꼼꼼히 그려내고 있다. 이는 당시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충격적인 묘사법이었을 것이며, 독자들은 이 문장을 접하면서 분명 새로운 표현법이 주는 매력을 발견했을 터이다. [442~444p]
- 근대 이전의 미인 묘사는 아름다운 신체적 특징을 막다른 지점까지 과장하며 예찬할지언정, 결점은 절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지만 고대에는 미모가 미덕의 은유였고, 미인이란 정절지녀와 요조숙녀를 의미했다. [446p]
- 신문 구독자의 수를 고려할 때, 오자키 고요가 그려낸 미인 묘사의 영향력은 심대하다. 그런 점에서 「뜬 구름」이나 『당세서생기질』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현실이 소설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거니와, 소설에 묘사된 용모나 패션이 현실로 귀환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경우도 있다. [451p]
- 남성 작가에 비해 여성 작가들은 미인 묘사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 듯 보인다. 이들은 자기 자신의 투영이거나, 또는 이상적 여성의 이미지를 나타낼 때만 여성의 미모를 형상화했다. 이런 측면은 가볍게 미인상을 그려내 버리는 남성 작가들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회화 부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인화는 거의 예외 없이 남성 화가들이 그려낸 작품들이다.[455p]
- 요미혼이나 닌죠본의 문체는 한문학과 가나문학 쌍방으로부터 문장 표현의 핵심을 흡수하면서 완성된 문체의 형식이다. 오랜 동안의 축적되어 쌓였던 만큼, 그것을 뛰어넘을 새로운 양식을 창출한다는 것은 손바닥 뒤집듯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458p]
-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서는 동양적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산시로가 아름다운 서양 미인을 보고 “내가 서양으로 가서 이런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산다면, 필시 면목이 없는 일일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는 말은 바로 그 때문이다. [463p]
- 그런데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되면 상황은 일변한다. 특히 「치인癡人의 사랑」에서 서양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예찬이 펼쳐졌다. 일본인 여성을 철저한 서양인의 얼굴로 그려낸 것은, 아마도 이 작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나오미가 메리 픽포드를 닮았다고 쓰고 있다. 까페에서 여급으로 일하고 있던 당시, 그녀는 휴일이면 아직 일본식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지(남자주인공 ‘카와이 조지’를 말함)와 동거한 이후로 묶었던 일본식 결발을 풀어버렸다. 복장도 처음에는 일본식으로 입다가, 동거 뒤부터는 거의 서양식 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사실 나오미의 얼굴에 대해서 “이가 매우 반짝이는 아름다운 치열” 이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묘사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에 체형에 관해서는 자세한 소개를 붙이고 있다.
몸통이 짧고 다리가 길었기 때문에, 조금 떨어져 쳐다보면 실레보다도 훨씬 키가 커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몸통은 S자처럼 대단히 깊고 잘록해 있었고 제일 잘록한 (허리)부분에는 이미 여성스러움이 넘쳐흐르는, 둥그런 모양의 엉덩이의 융기가 있었습니다(굵은 글씨는 원문의 강조).
이는 분명 서양 여성의 몸매를 기술한 내용이다. 다나자키 준이치로는 단정한 얼굴이 아니라 건강하고 관능적인 신체 비례를 통해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 [463~465p]
- 다리가 길면 그만큼 아름답다. 미의식이라기보다, 오히려 강박관념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관념을 지탱해주는 것은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과 콤플렉스 위에 형성된 심미관이다. [465p]
- 그러나 그 같은 묘사법 자체는 서양 회화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탄생한 것이었따. 이런 측면에서 이들 작품은 ‘동양적인’,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기보다는, 서양적 심미관과의 상관관계라는 구도에서 이해하는 편이 오히려 정당할 것이다. [468~469p]
- 문학의 묘사뿐만 아니라, 회화나 포스터 등 각종 도상 표현에서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메이지시대에서 쇼와시대(1925~1988)에 걸쳐 ‘서양인화’는 끊임없이 진전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다이쇼시대는 가장 과격한 시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일본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동아시아에서 널리 나타나는 경향이다. 어찌 되었건, 서양인처럼 ‘이목구비와 얼굴 각 부위의 윤곽선이 뚜렷한 얼굴이 아름답다’는 심미관은 19세기 후반부터 거의 강박관념인 양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예컨대 중국의 회화에서는 미녀를 서양인풍으로 묘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일반대중들의 감성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광고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더욱 강했다. [470~471p]
- 패전 이후 일본의 미인관은 할리우드의 기준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 서구형 얼굴에 얼마나 가까운지가 미인의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시대의 흐름과 유행에 따라 일본풍의 미인을 선호하던 현상도 나타났지만, 그러나 결국 그것은 할리우드 기준을 의식한 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동양적 미모를 평가하는 행위 자체가 할리우드 콤플렉스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패전 이전에도 할리우드적 심미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잡지나 텔레비전 등을 통해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것은 역시 대중 소비문화의 정착을 기다려야만 했다.
대중 소비문화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동안, 미의식에도 몇 가지 변화상이 나타났다. 윤곽선이 뚜렷한 얼굴에 크고 서글서글한 눈매, 이런 점들은 메이지 이래와 비교해보아도 그다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물론 몇 가지 차이점도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얼굴의 균형과 비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사실은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여성의 체형은 얼굴과 마찬가지로 경우에 따라서는 얼굴 이상으로 미인과 비미인을 구분하는 잣대가 되었다. 종래 동양에서는 그 사람이 미인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경우, 키에 관해서는 그다지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중키에 적당히 살진’ 체형을 이상적으로 생각했으며, 한편으로는 자그마한 체형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용적인 편이었다. 극단적인 장신이거나, 혹은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작은 키라면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신장을 아름다움의 한 지표로 언급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근대 이래로 서구식 체형을 아름답게 보면서, 특히 긴 다리와 풍만한 가슴, 탐스러운 둔부를 여성미로서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같은 심미관은 미인 선발대회나 광고 인쇄물, 또 텔레비전 광고등을 통해 한층 더 강화되었다. 다만, 서구식 심미관이라고는 해도 그것이 실체적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고 대개는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473~474p]
- 미인 선발대회의 출발은 메이지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패전 이전에는 참가자들의 사진 전형만 있었을 뿐이었고,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직접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다. 대회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라 심사위원들 앞에 서게 되었던 것은 패전 이후의 일이다. 게다가 일반여성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1950년대 이후의 일이라고 하니, 그 역사는 생각보다 의외로 짧다.
그러나 수영복 심사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심사원 앞에서 다리를 노출시킴으로써 상반신과 하반신의 균형을 심사기준으로 삼게 되었고, 눈과 코만 아름다워서는 미인으로 선발될 수 없었다. 그리고 신장, 특히 다리의 길이가 새삼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서양인에 대해 갖는 동양인들의 신장 콤플렉스는 그 뿌리가 깊다. 그런 경향 자체는 패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수영복 심사를 거치면서 신장 콤플렉스는 더더욱 조장되었다. 본래 남성들이 갖고 있는 열등감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으로도 옮겨졌다. 사실 미인 선발대회에 따라서는 응모자격에 신장 조건이 부가되는 경우도 있었다. 키가 큰 여성이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심미안이 그런 응모자격에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의 길이는 신체의 균형과 관계될 뿐 아니라, 신장과도 어느 정도 관련된다. ‘긴 다리가 아름답다’ 이같은 시각은 균형의 중시와 더불어 상관관계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474~475p]
- 미인 선발대회가 갖는 의미는 ‘공통의 기준’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 앞서 서술했듯이, 어떤 여성을 미인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상당 부분 개인의 취향에 따른 문제다. 그 사람의 용모가 어떻게 보이는가는, 때때로 보이는 사람의 심리와 상대방에 대한 감정, 상호간의 관계 등 복잡한 요소에 따라 좌우된다. 어떤 이에게는 절세의 미인으로 비칠지 모를 인물이, 그 밖의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그런 고만고만한 용모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대상을 두고서도 그렇다. 스무 살 때 미인이라고 생각했던 여성을 몇 년이 지나 재회했을 때 ‘전혀 아니올시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리 신기한 일만도 아니다. 눈의 크기는 직경 몇 센티, 코의 높이가 몇 센티 등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런데 미인 선발대회가 선고選考의 중심을 비례 쪽으로 이동시킴으로써, ‘공통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일반적으로 미인대회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신장을 시작으로 가슴과 허리, 또 엉덩이의 크기가 공표되는 경우가 많다. 패전 후 일본에서는 1953년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 이토 기누코가 가장 빠른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각종 미디어들이 그녀의 쓰리 사이즈를 보도했고, 이는 당시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얼굴보다도 균형과 조화를 중시했던 까닭은 ‘건강한 사람이 아름답다’는 관념과 연관된다. [474~476p]
- 1960년대 성 해방 물결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성적 매력은 미인에게서 빠뜨릴 수 없는 하나의 요소로 추가되었다. 이 의식은 각종 남성지 등을 통해 극적으로 증대되었다. 사진기술의 진보까지 이런 흐름에 합세하여, 가슴과 엉덩이까지 영상미로 이를 강조하고 과장하게 되었다.
전근대시기 미녀가 곧 유녀의 은유였다고 한다면, 근현대로 들어서서는 여배우를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여배우들이 텔레비전 상업광고 등에 출연하는 광경은 주변에서 너무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직접적인 상업용 광고가 아닌 경우일지라도, 미인의 사진집을 통해 미인의 이미지를 연출해내는 경우도 있다. 여배우들의 사진이 각 주간지의 표지를 장식하고, 텔레비전 버라이어티쇼의 초대 손님으로 출연하는 모습도 일상적이며 식상한 풍경이다. 공공 광고포스터에서 여배우들을 기용하는 것도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되돌아보면 우리 주변에는 여배우들로 상징되는 각양의 미인 이미지들로 넘쳐흐른다. 절세의 미녀들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대상이다. 이런 의식은 고대나 현대나 별반 다르지 않다. [476p]
- 오늘날 미인상의 생산과 유통은 산업의 전 부문에서 경제활동과 긴밀하게 연계되고 있다. 할리우드의 여배우나 인기 있는 가수, 텔레비전 탤런트 또 슈퍼모델부터 화장품 정보지에 등장하는 미녀들에 이르기까지, 이상적 미모는 항상 상업전략의 일환으로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인상의 생산은 여하한 경우든 반드시 경제활동을 동반한다. 시선의 시장으로 공급된 미모는 영화의 관객동원 수와 텔레비전의 시청률, 패션의 판매 동향, 남성지의 판매부수 등에 따라 철저하게 지수화指數化되고 있다. 이런 문맥 속에서 아름다움이 창출되고, 이 아름다움은 상품으로 소비된다.
물론 미모 그 자체는 상품경제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목적이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는 관계로, 적어도 소비자들은 전혀 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미인상의 공급은 어디까지나 쾌락이라는 원칙에 기초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479p]
-그러나 대중 소비문화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이상적 미인의 존재는 동경의 대상에서 누구나 각자 스스로 꿈꿀 수 있는 목표로 변했다. ‘미인’은 이제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다. ‘당신도 미인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의 위력은 그만큼 측정할 수 없다. [479p]
- 최고의 도덕과 절세의 미녀 모두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은 절세의 미녀를 동경하고 있다. 마치 절대적 도덕이라는 환상을 가슴에 품고 있듯 말이다. 미인이 얼굴의 평균값인 것처럼, 도덕 역시 양심의 평균값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편 인간은 언제나 평균보다도 높은 도덕을 희구한다. 흡사 평균값에서 멀어진 미녀들을 그리워하듯이 말이다.
도덕이 배덕을 전제로 존재한느 것처럼 미녀 역시 추녀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관념으로 성립한다. 모든 이들이 전부 성인군자인 것만큼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일도 없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여성이 전부 미녀인 세계만큼 두려운 것도 달리 없다. 도덕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기보다는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으로 논의되기 때문에 존재한다. 미인도 다양한 언설을 통해 조작되고, 언설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인이 어떠한 외관을 하고 있는가보다는, 어떻게 묘사되어 왔는가 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48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