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존 러스킨 외 | 옮긴이 / 민주식
미술의 해석
존 러스킨, 월터 페이터, 클라이브 벨, 로저 프라이, 하버트 리드의 미술비평
지은이/솔로몬 피시맨(Solomon Fishman)
옮긴이/민주식
펴낸이/우찬규
펴낸곳/도서출판 학고재(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77)
초판 1쇄 인쇄일/1999년 12월 1일
초판 1쇄 발행일/1999년 12월 7일
- 19세기 이전에는 미술비평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즉 종래의 미술에 관한 저술은 주로 전문적인 논문과 미술가들의 생애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8세기 후반 들어 저술가들의 개인적인 견해를 수록한 전람회 해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나, 그것들은 비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저널리즘의 범주에 속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미술비평은 시각예술을 정신의 완전한 생명력을 포함하는 활동, 즉 상상력의 작용으로 여기는 낭만주의적 개념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고전적인 모방론을 포기하고, 미의 개념보다 표현의 개념을 강조하게 되면서 미학 이론과 비평, 모두에 변혁이 일어났다. 관심의 초점은 미술작품 자체가 되었고, 미적 경험의 특징은 일상적인 경험을 차별하는 데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미술의 형식적인 요소가 미적 경험의 장(場)으로 인식되면서 이러한 동향은 절정에 이르렀다. [12p]
- 비평가가 미술가와 대중 사이의 중개자 노릇을 할 때 비평가의 선호와 판단력은 미술이론만큼이나 중대한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비평가의 감수성과 미술품에 대한 직관적인 반응은 몹시 중요하다. 사실 이론은 때때로 편애를 합리화하는 데 지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미술비평의 주기 속에서 나타나는 좀더 큰 도식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비평가의 개성, 비평가와 당대 미술의 관계, 비평가의 관심, 해석자로서 비평가가 지닌 강점과 한계를 고려하였다. [13p]
존 러스킨
John Ruskin
- 그러나 러스킨의 미학자체는 근대미학의 관점에서 볼 때 많은 한계점을 안고 있다. 러스킨 미학의 가장 큰 딜레마는 예술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예술의 시각적 진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예술의 모방적 기능과 표현적 기능을 함께 주장하는 듯한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러스킨에게 ‘진리’는 ‘모방’과 다른 것이며, 상상력의 작용 자체도 진리에 포함된다.
오히려 러스킨은 진리의 개념을 통해 시각적 인상을 중시함으로써 인습에 얽매인 아카데미즘 미술을 비판한다. 이러한 시각적 인상의 중시는 인상주의의 교의를 예견하고 있는 듯하다. 러스킨의 상상력을 시각예술에서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한 최초의 인물로서 상상력에 관한 그의 이론은 미적 자율성이라는 개념이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18~19p]
- 그러나 비평가로서 러스킨의 가치를 알아주는 데 진짜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단순한 도덕주의에 대한 식상함이 아니라, 미술품을 보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불연속성인데, 이것이 모든 비평가를 1900년 이전과 이후로 양분해놓았다. 이 불연속성은 비평이론과 관계된 어떠한 불일치보다더 더 깊이 진행되었다. 이 불연속성은 단순한 공식으로 축소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현상인 현대미술이 성공을 거두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만 현대미술의 현상은 적어도 미술작품의 다양한 존재방식을 명료하게 밝혀주었기 때문에, ≪근대화가론≫에서 러스킨이 제시했던 임의적인 선택이 지금은 터무니없게 보일 정도이다. [29p]
- 그는 법칙·인습·공식에 근거한 아카데미 미술을 공격했던 것이다. 러스킨이 살았던 시대에 아카데미의 이상은 전성기 르네상스의 전통, 그 중에서도 라파엘로가 정점이 되는 전통을 의미했다. [32p]
- 러스킨 이론의 이러한 측면은 ‘수정되고’ 혹은 이상화된 자연을 고집한 신고전주의적 이성주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미술가로 하여금 현상의 내적 진리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상력의 직관적 특성이다. 게다가 ‘내적인 진리’는 상상력에 인식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외적인 감각의 인상들을 의미 있는 전체로 바꾸는 형식적 기능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러스킨은 근대미술의 발전과정에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한 가지 발견의 경계에 서 있다. 다시 말하면, 미술작품은 그 자체만의 독특한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통일성과 일관성의 원리에 따르고 있고, 자연의 실재와는 구분되는 실재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경계에 서 있다. [43p]
- 들라크루아에게 자연의 사실들은 단지 출발점, 즉 ‘사전(辭典)에 지나지 않는다. 보들레르가 자연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옹호하는 지점에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낭만주의에서 나온 논리적인 귀결이다. 상상력에 우선권이 있다는 관념은 상상력에 자율성이 있다는 관념보다 먼저 나왔다. “미술가는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그는 수세기 동안 자신의 작품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처럼 기약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 외에는 어느 누구도 보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식 없이 죽는다. 그는 그 자신이 왕이며 사제이며 신이다.”[44~45p]
- 러스킨은 형식의 절대적 중요성은 인식했지만, 자신의 미학에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채 고립된 통찰로 남겨둔다. 그는 형식을 설명할 수 없었을뿐더러 분석을 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이미 말했듯이, 조형적 배열의 완전함은 음악에서 멜로디의 배열과 마찬가지로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의 시각적 경험을 서술하는 재능만 타고난 그는 주로 이후 독일 학자가 해낸 형식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러스킨은 주제를 서술하고 논의하는 데 그쳤다. 그림의 형식적인 속성들보다는 문학적인 내용을 다루었다는 말이다. 특히 후기비평에 오면 더욱 그러한데, 사실 그런 태도는 형식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47~48p]
- 그러나 여기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의 미적 판단의 타당성도, 산업사회에 대한 암시적 비평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러스킨이 미적 판단과 윤리적 판단을 통합하는 데 실패했지만, 의도적으로 전자를 후자에 종속시키고 있다는 점이다.[50p]
- 그의 대중적 영향력은 분석능력이 쇠퇴한 뒤에 정점에 이른다. 결국 빅토리아 시대 대중의 취미를 형성한 것은 상상력, 유기적 형식, 추상과 상징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가 아니라 개인적인 편애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조안 에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가 취미에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그가 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비평가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사건들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초기 비평 저작에 큰 감명을 받았던 독자들은 런던의 디너 파티 풍조를 조성했던 캐닝(Canning)부인, 워터퍼드(Waterford) 부인과 같은 재능과 교양을 겸비한 여성들이었다. 그 시대에 그들의 승인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스킨은 다른 시대에 그랬던 것보다 더 많은 무게를 얻게 되었다.……사실 그의 저작은 무지하고 소심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지팡이었다. 그가 당대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부유한 제조업 계층이 지위상승하여 사교계에서 한 자리르 차지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추악한 산업시대를 살아내면서 미술, 즉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 미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러스킨이 이것을 제공했다. 그는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어두웠는데, 그래서 역사적 사실에 똑같이 무지했던 중산층들은 그의 발언을 쉽게 소화해낼 수 있었다. [54~55p]
페이터
Walter Horatio Pater
- 페이터의 절제력과 분별력은 아주 인상적이다. 그런 점들이 러스킨의 영감에 찬 광적인 설교보다 세련되기 때문이며, 그의 상대주의적·회의주의적 태도가 러스킨의 독단주의보다는 우리 시대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이터도 미적 경험이 최고의 경험 형태라고 생각했음에도 러스킨처럼 미술의 중요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는 실패한다. 아마도 페이터가 작품 자체의 고유한 생명력과 강렬함보다 미적 교류에서 관람자가 하는 역할, 즉 관람자의 경험에 지나치게 기댔기 때문일 것이다. [67p]
- 심미비평은 사회적·윤리적 문제, 심지어 미적 선입견과 같은 산만한 것들을 없애주지만, 비평하는 과정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한” 객관성의 가능성을 너무 쉽게 포기한다. 후기 형식주의 비평이론은 개인적인 편견이 미적 정서에 불가피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주관적인 선호를 최소화하는 형식분석을 약속한다. 레오나르도·보티첼리·미켈란젤로에 관한 평론은 주로 미술작품에 반영된 인성에 관한 연구였다. 페이터는 어떤 미술가가 창조한 작품의 독특한 미적 ‘가캄의 근원을 미술가의 인성에 두는 성향이 있지는 않았다. [72p]
- 저술가의 목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 세상이나 단순한 사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미술가가 되고 그의 작품은 ‘순수’미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궁극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휼륭한 미술은 그러한 느낌에 대해 미술가가 제시한 진리와 비례한다. 문학의 보잘것없고 평범한 기능 속에서도 진리,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대한 진리는 그 기능이 지닌 예술적 본질의 핵심이다. [83p]
-<양식>의 마지막 단락에는 전통주의에 관한 페이터의 견해가 대부분 밝혀지는데, 여기서 그는 수만은 동시대인들을 격분시켰던 심미주의에 변화를 시도한다. 즉 심미비평의 역량을 전체 비평과정의 첫 번째 단계로 제한시키며, 전체적인 비평과정은 도덕적 판단으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페이터의 이러한 철회 행위를 자신을 험담하던 이들에 대한 양보로 보아서는 안 되며, 이전 견해들에 대한 포기로 보아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이때 그가 대상으로 삼은 것은 대체로 비문학적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문학에서 위대한 예술(great art)이 되느냐 솜씨 좋은 예술(good art)이 되느냐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달려 있다.……문학의 위대성은 문학이 제공하거나 조절하는 내용의 질과 범위와 다양성에 달려 있다. 또는 위대한 목적에 얼마나 전념했는지, 그리고 작품내에 스며든 반항적 어조가 얼마나 깊은지, 혹은 희망이 얼마나 웅대한지에 달려있다. [85~86p]
- 이러한 진리를 역설해야 할 분야는 바로 회화비평이다. 모든 미술을 시의 형식으로 일반화하는 잘못된 생각이 회화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서 가장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성에 호소하는 선 묘사나 터치에서 단순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 미술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시 지성에 호소하는 시적인 것 또는 문학적 흥미가 미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회화적 본질을 한번도 알아보지 못한 대부분의 관람자와 많은 비평가들이 택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진정한 회화적 본질은 재능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인 순수한 색과 색채를 독창적이고 창조적으로 다루는 방식에 있다. 이러한 본질은 대부분의 네덜란드 회화나 티치아노의 베로네제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림에 수반되는 아주 시적인 주제가 지닌 그 무엇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회화의 본질은 우선 소묘, 다시 말해 특별한 회화적 기질 혹은 성향이 투사된 도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특별한 회화적 성향으로 인해 진정한 해부학적 비례가 무시될 수도 있지만, 그 어떤 사물이나 시, 그 어떤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까지도 시각적인 정경 혹은 이미지로 떠오르게 한다. 회화의 본질은 또한 채색, 예를 들면 티치아노의<레이스를 걸친 소녀>에서 의상과 육체와 대기 가운데에 금실처럼 빛을 짜넣어 그 화면 전체에 어떤 새롭고 상쾌한 특질을 섞어놓은 듯한 채색이다. 틴토레토가 그린 날아가는 형상들과, 티치아노가 그린 숲의 나뭇가지들에 의해 공중에 남겨진 아라베스크 무늬와 같은 소묘, 티치아노의<레이스를 걸친 소녀>나 루베슨의<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가 내뿜는 빛과 색조가 빚어내는 마력적인 분위기의 색조 같은 회화의 본질적 속성은 무엇보다도 베네치아 산 유리조각처럼 직접적이고 순수하게 우리의 감각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오직 이러한 즐거움을 통해서만 작가가 의도한 것 이상의 것, 즉 시와 과학의 매체 같은 것도 표현되어야 한다. 위대한 그림도 일차적으로는 마치 벽이나 바닥에 잠시 머무는 햇빛과 그늘이 만들어낸 유연한 유희를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명확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지는 않는다. [27~28p]
- 그런데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가 일차적 의미에서 회화적 특성이 내재한 순수 형식미술을 실제로 선전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페이터는 음악적인 유추, 말하자면 19세기 상징주의 미학에 만연해 있던 어떤 생각에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것은 20세기의 비구상미술 이론에서도 되풀이된다. 페이터는 이것의 사례에 대해 고전적이 진술을 남겼다.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끊임없이 동경한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예술작품에서는 형식과 내용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인간은 오성으로써 항상 이러한 구분을 할 수 있지만, 모든 예술은 또한 그러한 흔적을 지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순히 소재에 지나지 않는 주제 또는 주어진 사건이나 상황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시, 어떤 사건의 실제 상황이나 풍경의 실제 지형을 그린 그림은 그것들을 다루는 형식이나 정신이 없다면 무의미할 뿐이다. 바로 이런 형식과 처리방식 자체가 목적이 되고 내용 전체에 침투해 있어야 한다. 이 점이야말로 성취하는 정도는 다 다를지라도 모든 예술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바이다. [89p]
클라이브 벨
Clive Bell
- 벨의 절대적 형식주의 이론은 페이터가 이미 주목한 바 있는 ‘그 자체가 목적인 형식’의 개념을 심화시켜놓은 것이다. 페이터가 형식적(회화적) 요소를 미적 속성의 하나로 보고, 재현을 회화의 감각적 매체인 형식에 종속시켰다면, 벨은 재현된 대상이 불러일으키는 미적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고, 재현이 의미 있는 형식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벨의 미학체계는 《미술》이라는 저서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모든 시각예술 작품의 미적 존재가 검증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인 가설을 제시하였다. 즉 모든 시각예술의 본질은 바로 ‘의미 있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의미 있는 형식에 대한 벨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미학체계든지 그 출발점은 독특한 정서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이어야 한다. 이러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우리는 미술작품이라고 부르는데, 개별 미술작품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된 선과 색, 즉 어떤 형식과 그 형식들의 관계는 우리의 미적 정서를 자극한다. 나는 선과 색의 이러한 관계와 결합, 즉 이러한 것들이 미적으로 움직이는 형식을 ‘의미 있는 형식’이라고 부른다.”[94p]
- 그러나 의미 있는 형식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직관적으로 통찰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이다. 단지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의미 있는 형식이 미술작품 안에 현존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은 관람자에게 불러일으키는 정서의 강도뿐이다. [101p]
- 벨은 삶에 대한 미적 태도가 존재의 무의미를 이겨내는 수단이라고 옹호했던 사람들과 달리, 미적 인식이란 획득되거나 교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적 정서를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은 아마도 천부적일 것이다. 게다가 그런 정서를 타고 나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의미 있는 형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미술가들은 그러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문화에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 대다수는 단지 회화의 설명적 가치와 자신의 감상적인 연상에 반응할 뿐이다. 아마도 일종의 시각적인 퇴화를 불러온 지나치게 문학적이고 지적인 문화에 젖어 있는 교육받은 계층의 구성원들이 의미 있는 형식에 가장 둔감할 것이다. 벨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문명화한 보통 사람은 사물 자체보다는 꼬리표를 보는 데 아 주 익숙해져 있어서 형식에 대해서는 사실 무감각하다고 한다. 개념화 하는 작업을 하는 지각과 정서적 활동을 하는 지각은 상당히 다르다. 어린아이와 원시인은 시각형식에 민감하게 정서적 반응을 보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들과 특별한 감수성을 부여받은 사람들을 제외한 문명화한 성인은 더 이상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102p]
- 의미 있는 형식에서 나온 완전한 미적 행복감은 경험적 증거를 가지고 입증할 수는 있지만, 합리적인 분석이나 설명을 하기란 쉽지 않다. 벨은 이러한 어려움을 미적 경험의 절대적 고유성을 주장함으로써 해결한다. 미적 경험은 오로지 유추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벨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삶에 대한 선험적 지식이 필요없으며, 사상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정서의 축적 역시 필요없다고 일러준다. 미적으로 관조하는 행위는 일상적인 경험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 행위가 지속되는 동안 다른 인간적인 관심은 잠시 접어두게 되고 기억도 멈춰지며 삶의 흐름 또한 넘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순진한 수학자의 정신상태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이러한 행위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104p]
- 벨은 미의 창조 과정에 관한 심리보다 미적 반응에 관한 심리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미학이란 그것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미술작품과 미술작품이 유도한 정서에만 고나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대상을 만든 사람의 정신상태를 조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의미 있는 형식이라는 현상은 절대적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기 때문에, 심리적이건 환경적이건 간에 외부 조건에 종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벨은 전문적이고 사회학적인 미술사 연구를 미술비평에서 제외시켰을 것이다. [105p]
- 어떤 작품에 의미 있는 형식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근거는 주관적인 정서뿐인데, 이것은 다른 모든 종류의 정서와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의미 있는 형식이란 것이 단순히 미적 정서와 동일한 말은 아니다. 그것은 미술가가 경험한 미적 정서의 소산이므로 작품 속에 내재해 있으며 관람자와는 따로 떨어져 존재한다.
벨이 의미 있는 형식과 특수한 정서를 동일시한다고 해서 미술을 정서의 표현이라고 여기는 여타의 친숙한 미술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는 의미 있는 형식을 담고 있는 미술작품이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는 미술가의 욕구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미술가가 어떤 대상(어떤 방의 내용물이라고 하자)을 바라볼 때 그는 그것들을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진 순수한 형식으로 인식할 수 있다. 또 그 대상을 통해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서의 표현이 시각예술 작품이 가진 특성 가운데 결정적이거나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직 관람자에게 미적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지닌 힘 속에 들어 있다. [108p]
- 벨은 가시적인 것의 재현이 가진 미적 가치나 재현된 대상이 불러일으키는 연상의 미적 가치를 부정함을써, 과거 어느 이론가들보다 더 앞서간다. 논리적으로 보면, 그의 이론은 재현적 요소가 최대한 축소된 추상미술이나 재현적 요소가 완전히 제거된 비대상미술을 요구한다. 그런데 일부 중요한 현대 화가들은 이러한 전제하에서 활동한 반면, 벨 자신은 비대상미술이나 추상미술을 지지하지 않았다. 재현이 의미 있는 형식에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며, 단지 의미 있는 형식과 무관할 뿐이다. 깨어 있는 관람자, 다시 말해 심미주의자라면 재현적인 회화 속에 나타난 형식에만 반응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추상작품으로서 경험할 것이다. [110p]
-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렘브란트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희생자였다. 벨에 따르면, 렘브란트는 형식과 구성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동시대인들이 요구한 문학적인 내용, 즉 수사학과 연애소설에 가려 빛을 일었다. [116p]
- 의미 있는 형식이라는 규준은 미술작품의 진정성을 확립하는 데에는 충분할지 모르나, 그 범주 속에 들어가는 작품들을 식별하는 데에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라파엘로와 드랭을 언급할 때 둘 다에게 공통되는 인간의 특성을 지적한 것은 형식적 순수성이 더 이상 가치의 유일한 척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세잔 이후》에 실려 있는 아프리카 조각에 대한 논고는 엄격한 형식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보여준다. 벨은 아프리카 조각에 최전성기의 중국·고대 그리스·비잔틴·이슬람·로마네스크의 조각 같은 위대한 조각보다는 낮은 등급을 매긴다. 그러나 앗시리아·로마·인도·고딕·후기 르네상스의 조각보다는 높은 등급을 매긴다. 니그로 조각은 형식적 속성이 아닌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게 하는 내용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위대한 미술에서 발견되는 속성들, 말하자면 심오한 통찰력, 복잡한 구조가 지닌 유기적인 통일성, 창조적 상상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럽인들이 위대한 미술에서 발견하고 싶어하는 개인적인 직관에 대한 열정에 찬 확신”이 빠져 있다. 뒤에서 더 언 급하겠지만, 여기서 거론된 규준들은 전통적인 것이며, 마지막 두 규준은 대체로 낭만적 표현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120p]
- 벨의 이론이 풀기 힘든 문제는 형식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면서 또 실제로는 자기 의미적(self-significant)이라는 점이다. 벨은 의미 있는 형식을 완전히 보증하려면 미적 적성과 관계 없는 모든 경험에서 의미 있는 형식을 완전히 보증하려면 미적 정서와 관계 없는 모든 경험에서 의미 있는 형식을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이론을 펼쳐나간다. 이 이론을 논리적으로 보면 순수한 형식을 가진 미술, 즉 비본질적 요소가 제거된 미술에 대한 변명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벨은 마침내 그런 미술이 나타났을 때에는 거기에 냉담했으며, ‘순수하지 못한’ 미술, 예컨대 앵그르와 라파엘로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121p]
로저 프라이
Roger Fry
- 로저 프라이는 1910년경 런더넹서 두 차례에 걸쳐 후기 인상주의 전시회를 개최하여 영국 대중에게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를 소개했으며, 후기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인 사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 덕택에 지방주의라는 한계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영국 비평계에서 최초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비평가로 평가받게 된다.
클라이브 벨과 함께 영국 형식주의 미학의 선구자가 된 프라이의 비평과 이론은 주로 시각예술에 한정되어 있다. 시각예술을 오로지 시각적 용어로 이해하고 시각예술에서 형식의 자율성을 옹호한다는 형식주의의 기본적인 견지에서 보면 벨과 프라이는 동일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프라이는 좀더 나아가 ‘형식’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선·양감·공간·빛과 그림자·색등의 조형적 관계에 주목하여 나름의 독자적인 미학체계를 확립하면서 형식주의를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126p]
- 프라이가 집필한 최초의 평론집 《시각과 디자인》은 그가 형식주의 미학에 이르는 과정을 개괄적으로 보여준다. 비평가로서 20년간 썼던 평론들을 묶어서 출판한 이 평론집에서 프라이는 시각예술에서 비본질적인 요소들을 연속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미적 경험의 자율성을 확인한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주제를, 그 다음에는 심적 상태의 표현을, 그리고 마지막에는 재현을 차례로 배제해나가는 과정이 이 저서에 나타나 있다. [126~127p]
- 러스킨과 프라이의 권위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해설자적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들의 권위는 주로 예술가들을 훈련시키는 데 적합한 지식과 시각의 훈련에서 비롯된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시각예술에서 그들이 성취한 것이 자신들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들의 비평은 많은 것을 성취했다. [133p]
- 회화가 일차적으로 눈과 관련된 예술이라는 것, 그리고 화가는 어쨌든 한정된 범위 내에서 시각적 재료들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르네상스 시대에 ‘디자인(design)’이란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시각예술(visual arts)’이란 말과 동의어였는데, '시각‘과 ’디자인‘이라는 말 또한 모호하지 않은건 아니다. 시각을 시지각(視知覺)으로 읽는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역설적인 심리적 현상에 직면하게 된다. 디자인을 형식으로 바꾸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해도, 사실 형식은 프라이의 미학과 비평에서 핵심 용어이다. -중략- 다시말하면, 그는 시각과 디자인과 관련된 용어로 예술을 서술하고 시지각의 재료를 형식으로 전환하는 데 꾸준히 공을 들였다. [134p]
- 프라이가 예술에 적용하고 있는 유일하고 특별한 윤리적 기준은 정직(honesty)과 성실(intergrity)이다. 이 기준은 그의 비평과 지적 생활을 통제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예술에서 정직이란 무엇보다도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의 작업은 정조의 환기라기보다는 형식의 창조이다(이 강령은 논점을 교묘하게 피해간다. 왜냐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프라이의 미학적 전제를 수락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예술가에게 정직은 충실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러스킨이 때때로 잘못 주장한 자연의 사실에 대한 충실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에 대한 충실성이다. [135~136p]
- 프라이는 형식적인 성질이 시각예술 내에서 어떤 미학적 지위를 갖는지 알아내는 데 몰두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매우 생산적인 연구노선이었다. [142p]
- 프라이가 생각한 상상적인 삶의 뚜렷한 특징은 관조적이고 비공리적인 것이다. 우선, 상상력은 자유롭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떤 행동을 유발하지 않고 전적으로 관조적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판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두 번째로 상상력은 무심하다. 다시 말해, 상상력은 대상과 대상의 정서적 속성을 알게 해준다. 또한 직관적인 행위나 실제 행위의 수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대상에 관심을 쏟게 한다. 프라이는 심미주의에 반감을 가졌음에도 예술은 자율적이라는 개념에 접근하고 있다. 상상력은 윤리적 판단에 종속되지 않는 미적 정서를 낳기 때문이다. [144~145p]
-<미학에 관한 에세이>의 출발점은 예술과 도덕성의 분리인데, 그 결과 프라이는 정서라는 자율적인 영역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에 대한 반응으로 예술작품을 판단하려는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예술을 그것 자체가 목적인 정서의 표현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학적 담론에서 정서는 기껏해야 지극히 어려운 용어일 뿐이며, 프라이는 정서의 의미를 상술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정서란 프라이가 조토의 작품에서 극적인 표현과 심리적 통찰을 통해 전달된다고 칭송한 그런 종류의 정서는 분명 아니다. 오늘날의 문맥에서 보면 정서는 감각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 같다. [145~146p]
- 한편, 회화형식은 감각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요소들이 결합되면 통일성이나 균형과 같은 기하학적 분석이 가능한 질서의 특성을 띠기도 하고, 비기하학적인 특성을 띠기도 한다. 여기서 비기하학적인 특성이란 “이어지는 각각의 요소가 그에 선행하는 요소와 근본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껴지는” 일련의 연속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프라이는 미적 정서가 감각적인 디자인과 어떤 식으로 관련되는지, 즉 정서가 어떻게 질서를 잡아가는지 보여주지 못한다.
프라이가 이러한 어려움들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입체파와 같은 후기 인상주의의 좀더 실험적인 특성과 더불어, 의미 있는 형식에 대한 클라이브 벨의 대담한 가설 덕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과 삶을 훨씬 더 많이 분리시키고, “순수하고 추상적인 디자인”이라는 좀더 엄격하고 한정된 형식개념을 받아들이는 희생을 치른 뒤에 얻은 해결책이었다. [148p]
- 프라이는 물론 형식주의자들의 가설이 후기 인상주의 회화뿐 아니라 모든 시기, 모든 종류의 예술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적인 생각이었다. 프라이는 순수한 형식의 존재를 단정적으로 가정했다. 그러나 그는 세계의 예술 대부분이 순수하지 못한 요소를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따럿 비평가의 일차적인 임무는 순수한 요소와 순수하지 못한 요소를 판별하는 것이 되었다. [150p]
- 프라이는 이 문제를 처리하면서 회화에서 재현과 형식이 본질적으로 어떤 관계인지 집중적으로 논한다. 그리고 회화에서 재현과 형식의 관계는 시에서 내용과 형식의 관계에 해당한다고 받아들인다. 그가 내린 총체적 결론은 재현과 형식은 실제로 참된 혼합이나 융합을 이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클라이브 벨이 주장한 바대로 재현은 순수한 미적 효과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프라이는 모든 예술이 음악의 경지를 열망한다는 페이터의 공식적인 견해에 동의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지극히 독특한 형식은 “독특한 추상 음악의 구성, 심지어는 어떤 종류의 건축”에서 발견되는 견해에 이르게 된 것 같다. 다시 말해, 그러한 형식은 인간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멀리 떨어진 비재현적 예술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케네스 클라크 경이 거의 피타고라스적인 개념이라고 불렀던 것을 지지하고, 회화형식의 감각적인 근거는 폐기한다. 미적 정서는 선·매스·공간·빛과 그림자·색채와 같은 회화 자체의 감각적 요소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이러한 요소들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151p]
- 렘브란트의 경우는 다르다. 그의 그림은 주제가 매우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라이는 도해에 대한 재능과 조형적 구성데 대한 재능을 똑같이 겸비한 위대한 작품일지라도 형식과 주제 두 가지 모두에 동시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두 가지 요소에 따로 초점을 맞추도록 강요받는다.……어떻게 해야 심리적 실존의 무한한 세계, 그리고 공간적 관계에 대한 이해에 관심을 고정시킬 수 있을까?……우리는 하나에서 또 다른 것으로, 앞에서 뒤로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이동시킨다.”[154p]
- 프라이는 부정적인 과정을 통해, 말자하면 비본질적 요소들을 연이어 제거함으로써 미적 경험의 자율성에 관한 개념에 도달하게 된다. 처음에는 도해로 인식된 주제를 제거하고, 다음엔 심리적 상태의 묘사를 제거하고, 마지막으로 재현 자체, 즉 시각적 자료의 모사를 제거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 형식이다. 여기서 형식은 그림 속에서 특히 재현적 기능을 하는 회화작 요소들의 관계로 인식된다. [156p]
- 회화비평가로서 프라이거 거둔 이론적 업적의 바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미적 정서의 근원은 오로지 이른바 조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형식과 관련되어 있다. 조형적 형식은 외관의 자료들을 단일하고 일관성 있는 구조로 변형할 때 생기며, 이 구조를 이루고 있는 요소는 공간 내에 존재하는 양감들의 관계이다. 그 구조는 자율적인 원리를 통해 스스로 질서를 잡아가는데, 이러한 원리가 예술작품에서는 특별하다는 의미에서 자율적이며, 그것은 예술작품의 외적 실재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프라이는 이러한 구조들이 정신적 실재를 형성한다고 여겼는데, 이 정신적 실재는 그 구조들이 불러일으킨 정서들을 통해 그 존재가 입증된다. 프라이는 그 구조들의 정서적인 효과는 확신한 반면, 이러한 정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형식의 능력을 설명하는 데에는 곤란을 겪는다. 그의 가설은 보통 때는 경험할 수 없는 관심을 쏟을 수 있게 해주는 미적 경험의 관조적 특성과, 형식의 관계속에 있는 추상적인 본질 사이에서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프라이는 미적 경험에서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다만 형식이 유발하는 정서적 충격에서 지성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 구조인 형식으로 강조점이 이동할 뿐이다. [158p]
- 이에 반해 프라이는 베네치아 화파에 늘 무관심했다. 프라이는 피렌체의 건축적인 그림에 강하게 끌려는데,<피렌체의 미술(The Art of Florence)>(1919)이라는 평론의 첫 구절은 그가 이런 취향을 갖게 된 계기를 보여준다.
예술가란 일시적인 생각이나 변덕을 지닌 사람, 과민하고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은 예술을 실행하고 있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진실이다. 그러나 미술의 전통에 아주 깊이 영향을 끼친 작품을 그린 화가들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설명이다. 또한 피렌체 화파의 위대한 미술가들에게도 전혀 맞지 않다. 13세기에 근대미술이 발흥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피렌체와 프랑스는 유럽 미술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되어왔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미술은 한없이 감상적이고 극적인 분위기나 반영하고, 갖가지 호기심과 유동적인 상황을 그렸을 것이며, 형식에 대한 보편적인 진리에는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보편적인 미술―더 좋은 말이 없기 때문에 그냥 ‘지적인 미술’이라고 부르겠다―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14, 15세기 피렌체 미술과 17세기 이후 프랑스 미술 덕택이다.[162p]
- 우리는 프라이가 ‘예술의 전통’을 단수형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르네상스기에 출현하여 18세기 말까지 유럽의 예술 개념을 지배해왔던 고전적인 전통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에서 도출된 미의 규준이 지닌 보편타당성에 대한 믿음을 그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프라이 역시 유럽의 단일한 전통에서 도출된 형식 개념에 보편적인 가치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미술비평이나 미학에서 그와 반대되는 경향인 다원주의나 상대주의보다 훨씬 더 일반적이다. 프라이는 독단주의를 몹시 싫어했으며, 미술에 대해 편협한 관점을 갖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했다. 이렇듯 말설였음에도 그는 유럽 미술의 크고 중요한 단면, 즉 지중해 미술과 구분되는 북유럽 미술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친숙한 사물을 모방하는 놀라운 기술을 지닌 플랑드르 미술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플랑드르 미술에는 “형식의 보편적 양상”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플랑드르 미술이 실패한 이유는 플랑드르 미술이 형식적이라기보다 장식적인 미술인 고딕의 디자인 전통을 계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62~163p]
- 디자인은 사물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열망에 조응하며, 불변의 법칙과 인과관계에 대한 감각에도 조응한다. 반면에 감수성은 변화·다양성·우연·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에 조응한다. 의식적인 마음은 사물들에 대한 기계적인 견해, 즉 수학적 진술에 순응할 수 있는 견해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마음은 수학적인 진술을 벗어나는 생명력이 넘치는 요소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미술작품에는 지성이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수학적 질서와 유형에 대한 순응 사이의 타협이 존재한다. 그러나 유기적 생명체의 특징인 변화무쌍함 또한 지니고 있다. 예술에는 질서와 독창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독창성은 정확하고 수학적인 질서의 끊임없는 변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감히 미술에서 누리는 지적 즐거움이라고 부르는 것의 원천이다.[167p]
- 그는 선배 형식주의자들이 실패했던 것, 즉 예술의 형식적 분석을 위한 객관적인 뼈대를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프라이는 생애의 상당 부분을 회화가 지닌 설명적인 내용과 문학적인 연상에 우선적인 강조점을 두었던 당시의 지배적인 태도와 싸워왔다. 그 결과 그는 정반대의 극단, 즉 예술의 인간경험에서 떼어놓는 심미주의를 향해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는 진정한 형식의 자율성이라는 관념은 아니더라도, 생산적인 시각예술 연구에서 형식이 우위를 차지한다는 생각을 확립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172p]
허버트 리드
Herbert Read
- 미술비평가로서 리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양한 현대미술의 변화와 실험에 대한 개방성이다.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려는 리드의 노력은 그의 다원주의적 미학사상 속에 반영되어 있다. 그의 예술론은 수많은 근원에서 도출된 다양한 관점, 심지어 적대적인 관점들조차도 조화롭게 동화시키고 있다. 리드의 목표는 순수하게 형식적인 요소들 또한 상징적·표현적이라고 정의함으로써 형식과 표현, 형식과 상징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는 에술이란 주관적이고 비이성적인 요소가 우세하다고 생각했다.
초기 미학이 반영된 《이성과 낭만주의》에서 리드는 무의식을 미적 정서의 근원으로 인식하고, 형식 자체는 무의식에 근거한 표현과 상상력의 운반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리드는 형식주의 미학에서 형식이 우위에 있다는 견해는 받아들이지만, 형식이 자기 목적적이라는 견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술형식의 기원은 자발적이며 무의식적인 것이므로 예술은 인간의 삶과 괴리된 것이 아니라, 인간 생명의 근원과 반드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형식은 예술의 상부구조일 뿐이지 예술의 토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리드는 예술이 인간의 관심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러스킨의 신념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형식의 우위성을 인정하는 형식주의자의 인식을 유지하고 있다. 예술의 기원으로서 무의식을 상정하는 리드의 신낭만주의는 외부 세계를 변형시키고 포기함으로써 내부 시각에 열중하는 현대예술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174p]
- 프라이는 현대미술을 고전의 부활, 즉 보편적인 형식원리로의 복귀라고 해석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프라이는 반 고흐의 표현주의적 단계나 피카소의 초현실주의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19세기의 낭만적 표현주의와 독일 회화 일반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다. 게다가 프라이가 추상미술에 관심이 없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그의 본성 저 깊은 곳에는 모험심이 없었다는 리드의 비난이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리드에게는 이와 유사한 비난을 할 수 없다. 그는 현대의 혁신적인 미술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비평가로서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지금까지 분석은 물론이고 비평적 이해도 하기 어려다는 액션 페인팅이나 타시즘(Tachisme)을 비로샇여 전통과 가장 격렬하게 단절된 현대의 혁신적인 미술의 출현을 옹호했다. 리드는 새로운 미술은 어떤 것이든 인간의 경험과 인식을 확장한다며 환영했다. [186p]
- 18세기 후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낭만주의 미학에서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구별되는 두 가지 관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첫 번째 관념은 예술작품과 예술가의 인성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가정하는 발생론적 사고이다. 두 번째 관념은 원시주의라 명명될 수 있는 것으로, 18세기 초 잠바티스타 비코가 천명한 신념이다. 비코의 신념에 따르면, 시는 인간 발달의 초기 단계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에는 원시적인 정신 상태로 회귀함으로써 이성적인 지성의 작동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시를 생산할 수 있다.
낭만적 미학의 세부적인 사하은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직관과 상상력에 대한 다양한 낭만적 교의들이나 예술의 창조과정을 규정하는 데서는 의견이 일치되지 않지만, 예술의 비이성적인 근원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리드에 따르면, 현대미술은 낭만적 이론 자체가 아니라 낭만적 이론이 낳은 예술관에서 유래했다. [188~189p]
- 분명한 것은 프라이가 이른바 ‘구성된(constructed)’ 형식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형식은 신중하고 매우 의식적인 규제가 있었음을 입증해준다. 리드는 이러한 구성들과 합리적인 형식분석이 서로 관련될 수 있다는 사실은 기꺼이 인정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할 때 예술형식이 지닌 진짜 의미 있는 측면은 예술의 자발적이고 거의 무의식적인 기원이다. 직관된 형식을 의식적으로 형태로 만들어주는 것은 예술의 상부구조이지 토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193p]
- 리드는 형식을 탐구하면서 심리적인 길과 역사적인 길이라는 두갈래 길을 따라간다. 하지만 그는 예술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온갖 잡다한 지식의 원천을 끌어오는 일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주로 영향을 받은 이론은 정신분석에 간한 일반론과 특히 융(Jung)의 작업이다. 정신분석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거나 모호하게만 인식되었던 정신활동의 전 영역에 믿을 만한 근거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 근거에 따라 예술에서는 직관적이고 비이성적인 요소가 본질적이라는 낭만주의 비평의 중심 교의가 입증되었다. 뿐만 아니라, 예술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기준이었던 미에 대한 고전적인 교의를 포기하면서 제기된 미학의 문제점들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194~195p]
- 허버트 리드에게 더 중요한 형식 분류는 빌헬름 보링거의 분류방식이다. 보링거의 미학은 20세기 미술가들의 이론과 실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추상과 감정이입, 기하학적 형태와 유기적 형태를 구별하는 보링거의 이론은 뵐플린의 이론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으며, 미술 전체로 그 범주를 확장한다. 예를 들면 그의 가설은 구석기시대 미술과 신석기시대 미술의 양식에 나타나는 근본적인 차이를 논하는 데 적용된다. 보링거의 분류 방식 또한 양식이란 원래 심리학적·사회학적인 것으로, 가시적 세계에 대한 한 사회의 근본적인 태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추상적·기하학적 형식은 자연의 억압을 받는 사회와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비물질적인(정신적인) 실재에 몰두하게 된다. 반면에 유기적 형식은 자연의 통일성을 의식하는 사회, 가시적 세계에서 정신적 만족을 찾는 사회와 관련이 있다. [198p]
- 미술교육의 역할에 관한 논문에서 리드는 획일적인 양식과 획일적인 전통, 획일적인 미술에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논문의 주된 가설로 삼고 있다. 그의 네 가지 분류법은 앞에서 말한 구분들을 종합한 것이다. 리드에 이하면, 미적 지각의 유형은 사고·감정·감각·직관이라는 네 종류의 정신적 활동에 각각 상응한다. 다시 말하면, (1)사실주의 또는 자연주의, (2)이상주의·낭만주의·초사실주의·환상적 또는 상상적 미술은 시각적 근원을 갖는 이미지들을 독립적인 실체로 변형시키는 것이며, (3)표현주의는 즉각적인 감각에 대한 조형적 등가물을 발견하는 것이고, (4)추상미술과 구성주의 미술은 공간·매스·색채의 순수한 형식적 관계를 이용하여 개인적인 요소는 전부 피하려는 양식이다. [199p]
- 리드의 다원주의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강력하게 정당화되는 이유는 전통적인 분석적·재단적 비평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는 현대예술의 압도적인 다양성 때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199p]
- 좋은 나쁘든 이제 우리는 에술가에게 ‘진리’를 표현하라고 요구한다. 예술가가 이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는지 아닌지 평가하는 규준은 조화라는 객관적인 규준이 아니라 생명력이라는 주관적인 규준이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두고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마음을 끈다, 우리를 매혹시킨다, 우리를 흥분시킨다라고 말하는데, 이 모든 표현은 지적인 반응이 아니라 심리적 반응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와 똑같은 주관적인 방식으로 과거 예술을 재평가해왔고, 그 결과 우리는 18세기와 19세기의 미적 판단에 경멸감을 느낄 뿐이다. 이렇듯 미에서 진리로, 이상주의에서 사실주의로, 차분함에서 생명력으로 이동된 미적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인상주의와 더울어 시작된 예술의 현대적 동향은 전체적으로 실질적인 활동에 돌입하며, 현대 미술비평도 철학적인 활동에 돌입하게 된다.……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무한히 복합적인 영역과 미묘하게 복잡한 인간의 감수성을 도구로 삼아 실재, 지극히 넓은 의미의 실재를 이해하는 것이다.……우리의 목표는 쾌락이 아니다. 혹은 쾌락은 이러한 목표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술도 생물학적인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우주광선에서 창조적 에너지를 흡수하는 광합성 세포처럼, 예술가는 진화하는 의식을 가진 민감한 기관, 말하자면 우주에 대한 인간의 점진적인 파악과 이해를 감지하는 섬세한 기관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204p]
- 그는 조형적 수단을 통해 전달 될 수 있는 의미나 내용에 관심이 있었지만, 형식과 상징이 실제로 단일한 판단에 따를 수 있을지, 혹은 어떤 통일된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심쩍어했다. 그는 예술의 미적 기능과 인식적 기능을 명백히 구분했으며, 상이한 두 종류의 예술, 즉 이미지스트적인 예술과 상징적인 예술을 명백히 구분했다. [207p]
- 빠르냐 늦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이 외적 실재를 구성하려고 할 때 자신이 창조한 모든 이미지와 상징의 주관적 근원을 이해하고 또 재현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즉 인간은 자아를 실현하고 표현하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각 개인에게 독자적인 것, 즉 주관성을 의식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 즉 인간성을 의식하는 것이다.
물론 후자는 신석기 미술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원리의 합리화이자 발전이며, 그리스 미술이 남긴 업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자는 르네상스에서 근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212p]
- 리드가 좋아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는 그의 자서전 제목이기도 한 ‘순진무구한 눈’이다. 그의 교육론의 바탕에 깔려 있는 인성 개념은 분명 낭만적인 심리학과 낭만적인 철학에 그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그가 원시미술뿐만 아니라, 금세기에 대두된 아동미술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그의 교육 프로그램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동의 미술은 11세 이후에는 쇠퇴한다. 왜냐하면 아동의 미술은 모든 방면에서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즉 논리적인 활동으로 인해 마음속에서 억지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왜곡된 사춘기 정신 때문에 우리가 치르는 대가는 점점 더 커지기만 한다. 섬뜩한 사물들과 일그러진 인류의 문명, 병든 마음과 불행한 가정의 문명, 대량파괴의 무기로 무장한 분열된 사회의 문명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파멸의 과정을 지식과 과학으로, 발명과 발견으로 부채질하고 있으며, 우리의 교육체계는 대량학살과 보조를 맞추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을 아름답게 만들고, 인간과 자연을 결합시키고, 나라와 나라를 결합시킬 수 있는……이러한 창조적 활동을 쓸데없고 엉뚱하고 공허하다고 무시해버린다. [22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