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코그니토

지은이 / 데이비드 이글먼 | 옮긴이 / 김소희

by Joong

인코그니토
2011년 6월 1일 초판 1쇄 발행
지은이 데이비드 이글먼
옮긴이 김소희
감수자 윤승일
펴낸곳 (주)썸앤파커스(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203-2 신원빌딩 2층)


- 뇌는 모든 정보를 수집해 ‘적절한’행동을 이끌어낸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당신의 의식이 개입되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18p]


-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의 ‘의식’을 신문에 비유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늘 분주하기 짝이 없다. 다양한 지역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국가처럼 말이다. 소집단들은 끊임없이 결정을 내리고 다른 집단에게 이를 전달한다. 집단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더 큰 연합이 나타난다. 당신이 헤드라인을 읽을 때쯤이면 이미 중요한 일은 일어났고 거래는 성사된 뒤다. 그런데도 당신은 ‘뇌’에서 벌어지는 일에 거의 접근하지 못했다. [19p]


- 엄밀히 말하자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애매모호하다. 가령 아래의 그림은 500m 떨어진 곳에서 바라본 ‘피사의 사탑’일 수도 있고, 팔 벌리면 닿을 거리에 있는 장난감 모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우리의 눈에는 ‘동일한’ 이미지로 보인다. 뇌는 눈에 들어온 정보를 분명히 파악하기 위해, 맥락을 고려하고, 가설을 세우고, 기법을 발휘한다. 그럼으로써 명확한 판단을 가로막는 온갖 방해물들을 처리해간다.
이 모든 것이 노력 없이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실제 수십 년 동안 시각 장애인으로 살다 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환자들의 경우 한동안 세상을 보지 못한다. 앞을 보려면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처음 그들이 바라본 세상은 온갖 형태와 색깔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웅성거리고 어지러운 세계다. 완벽하게 시력이 회복되었다 해도, 그들의 뇌는 들어오는 데이터를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40~41p]


- 착시란 사물의 객관적인 성질과 눈으로 본 성질이 ‘다른’ 현상을 말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시각은 착시나 다름없다. [41p]


- 뇌는 관심이 가는 물건을 포착하면 변화를 쉽게 알아차리지만, 이러한 일은 지칠 만큼 철저히 살펴본 다음에나 일어난다. 주변 환경이 바뀌어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변화맹’이라 하는데, 이는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물의 변화를 보려면 먼저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 [42~43p]


- 당신의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각기 다른 이미지(가령 젖소와 비행기)를 제시하면, 지각의 전환은 더 자주 발생한다. 당신은 한 번에 2개의 이미지를 볼 수 없으며, 혼합된 이미지를 볼 수도 없다. 하나를 보고, 그다음 또 다른 하나를 보고, 그리고 다시 되돌아온다. 시각 시스템은 충동하는 정보들의 분쟁을 겪으며, 어떤 지각이 승리를 거두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것을 본다. 외부 세계에는 변함이 없는데, 뇌가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이다. [49p]


- ‘시각’은 그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해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신경을 따라 흐르는 전기화학적 신호들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마이크의 뇌는 신체의 움직임이 감각 귀결(sensory consequence, 시각·청각·촉각·운동감각 등에 의한 감각 피드백 정보, 옮긴이)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령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이면, 장면이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일반인들의 뇌는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거나 무시하는 법을 안다. 하지만 마이크의 뇌는 생각지 못한 결과에 어리둥절해한다. 이게 바로 핵심이다. 시각의 의식적인 경험은 감각 귀결을 정확하게 예측할 때 발생한다. 시각이 외부 세계를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 뇌의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57~58p]


- 뇌로 들어가는 전기신호들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입력된 신호들에 의미가 부여된다. 당신이 즉각 단어들의 의미를 이해하듯, 뇌 또한 눈 덮인 소나무숲을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처럼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전기화학적 신호들을 시기적절하게 해석해낸다. [62p]


- “뇌에게 정보만 제공하라. 나머지는 뇌가 알아낼 것이다.” [63p]


- 잠든 상태의 시각(꿈)은 어떤 현실과도 연결되지 않은 지각이고, 깨어 있는 상태의 지각은 눈앞에 있는 것들 더 많이 반영하는 꿈꾸기와 같다. 느슨한 지각은 칠흑같이 어두운 독방의 죄수들이나 모든 감각이 박탈되는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으며, 양쪽 모두 빠르게 환각으로 이어진다. [64p]


- 일차적 감각 영역이 뇌의 다음 영역으로 나아간다는 개념과 반대로, 고차원 영역도 저차원 영역에 말을 걸 수 있다. 잠시 눈을 감고 레드 앤 화이트 컬러의 식탁보 위에서 보라색 젤리병을 향해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상상해보자. 실제 개미는 아니지만, 당신은 ‘마음의 눈’으로 개미를 볼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눈이 뇌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맞겠지만, 고차원 영역이 저차원 영역을 움직인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상호 연결성 덕분에 뇌의 영역들은 어둠 속에서도 자기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뿐 아니다. 뇌라는 혼잡한 교환의 중심에 존재하는 감각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외부에 존재한다고 보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변형시킨다. 예컨대 눈을 통해 들어온 입력은 시각 시스템뿐 아니라 뇌의 다른 영역에도 관여한다. ‘복화술’을 떠올려보자. 소리는 한 곳(복화술사의 입)에서 나오지만, 당신의 눈은 다른쪽(복화술사와 같은 인체모형의 입)을 보고 있다. 결국 뇌는 소리가 인체모형의 입에서 직접 나왔다는 결론을 내린다. [66p]


- 뇌는 당신이 특정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내부적으로 시뮬레이션한다. 내부 모형들은 운동(무언가를 잡거나 피하는 것)에 참여하는 것 외에 의식적 지각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68p]


- 이상한 사실은 청각과 시각의 정보가 뇌에서 다른 속도로 처리되고 있는데도, 툭툭거리는 손가락의 모습과 툭툭거리는 소리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제 손가락을 움직이겠다는 당신의 결정(그리고 행동) 또한,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과 거의 동시에 행해지는 것 같다. 이는 뇌가 벌인 ‘화려한 편집’ 때문이다. ‘시간’ 또한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의 정확한 척도가 아니라, 정신적인 구조물일 뿐이다. [71p]


- 당신이 전에 누군가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면, 나중에 봤을 때 더욱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사회 심리학에서는 이를 ‘단순노출효과 Mere Exposure Effect'라 부른다. 사람들은 어떤 얼굴이나 상품을 ’자주‘접할수록 친밀감을 느끼고, 결국 더 선호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때 암묵적인 기억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87p]


- 암묵 기억은 ‘진실효과 착시illusion of truth effect'라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진실효과‘는 동일한 진술이나 주장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88p]


- 우리의 몸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나쁜 일이 생기면, 뇌는 몸 전체를 활용해 심장 박동이나 내장 수축, 근육 이완 등 자기만의 느낌을 등록한다. 다음에 그 사건을 떠올리면 뇌는 무의식적으로 시뮬레이션을 시작한다. 사건과 관련된 물리적인 느낌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나중에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하는 데 이용된다. 뇌는 느낌이 나쁘면 행동을 포기하게 하고, 느낌이 좋으면 행동을 부추긴다.
이처럼 몸의 물리적 상태는 미래의 행동을 조종하는 ‘직감’을 제공한다. 직감은 단순한 예측보다 적중할 확률이 훨씬 높다. 의식보다 무의식적인 뇌가 먼저 사물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90~91p]


- 뇌는 인간이라는 종(種)에 ‘적합한’ 갈망만을 위해 배열되어 있다. 뇌가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유발하게끔 치밀하게 설계된 기계이기 때문이다. [101p]


- 우리의 생각과 달리 처음부터 맛있거나 역겨운 음식은 없다. ‘맛’은 당신이 그 음식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맛은 ‘유용성’의 지표일 뿐이다.[102p]


- 갓난아기를 살펴보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기들은 백지상태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해결책을 가진 상태에서 많은 문제들을 접한다(이는 다윈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으며, 훗날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중략-
가령 신생아의 뇌는 얼굴을 ‘예상’한다. 태어난 지 10분도 채 안 된 아기라 해도 얼굴과 유사한 패턴으로는 고개를 돌렸지만, 마주잡이 패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두 살이 넘은 아기는 마술쇼에서 고체가 다른 물건을 관통하거나 스크린 뒤에서 물건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매우 놀라워한다. 또한 아기들은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생명체 모양의 장난감에는 자신이 보지 못하는 (내면의) 무언가가 있다고 가정한다. 그들은 어른들의 의도에 대해서도 추측한다. 어른들이 무언가를 행동으로 보여주면 아기들은 어른을 흉내 내려 애쓴다. 하지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아기들은 그들을 흉내 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추측한 행동을 흉내 낸다. [109~110p]


- 본능은 배울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자동화된 행동(타이핑, 자건거 타기, 테니스 서브)과는 다르다. 본능은 처음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인간의 타고난 행동들은 매우 유용해서 ‘DNA'라는 수수께끼 같은 암호문에 기록되었고, 자연선택의 논리에 따라 생존과 번식 본능이 강한 조상들을 통해 면면이 전해져왔다.[114p]


- 당신이 아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아마 그(혹은 그녀)는 환상적인 신체 비율과 호감을 주는 얼굴에 이성을 끄는 매력까지 두루 갖추었을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이러한 외모를 포착하게끔 절묘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좀 더 매력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더 빨리 승진하고, 더 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매력적이라는 감정은 외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종족 번성’이라는 생물학적 목적을 위해 신경 소프트웨어에서 보내는 신호의 결과일 뿐이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질로 꼽는 것들은 호르몬 변화가 드러내는 가임可姙의 신호다. 사춘기 전까지 소년소녀들의 생김새는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나 에스트로겐(난소와 태반에서 주로 분비되는 여성 호르몬, 옮긴이)이 상승하면 소녀들의 입술은 도톰해진다. 반면 소녀들의 테스토스테론은 강한 아래턱, 더 큰 코를 만든다. 에스트로겐은 가슴과 엉덩이를 발육시키고, 테스토스테론은 근육과 넓은 어깨를 만든다. 여주들의 도톰한 입술, 둥근 엉덩이와 가는 허리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건강한 여자라고요!”
남자의 경우에는 단단한 턱과 거뭇거뭇한 수염, 넓은 가슴이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프로그램되어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뇌에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에 미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은 큰 차이가 없다. 연구자들은(그리고 포르노영화 사업자들도)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허리-엉덩이 비율(WHR, waist to hip ratio : 허리둘레를 엉덩이 둘레로 나눈 것, 옮긴이)’이 낮은 여자들을 매력적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성인 잡지에 실리는 섹시한 여자들의 허리와 엉덩이 비율은 대개 0.7을 유지한다. 남자들은 이러한 비율의 여성들을 매력적일 뿐 아니라, 건강하고 유머 감각이 있으며 심지어 지적이라고 간주한다. 여자들은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비율에서 벗어난다. 배가 아노고 입술은 얇아지고 가슴은 축 처진다. 가임기가 이미 지났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생물학 교육을 받지 않은 십대 소년도 나이 든 여자보다는 젊은 여자에게 더 끌린다. 소년의 ‘뇌’ 회로가 ‘번식’이라는 분명한 임무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그의 의식은 꼭 필요한 헤드라인(‘그녀는 매력적이야, 좇아가자!’)에만 집중한다. [116~117p]


- 다시 당신이 아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의 미간, 코 길이, 입술의 두께, 턱 모양 등을 측정한 뒤에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의 그것과 비교해보라. 아마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외계인이나 독일 사냥개는 두 사람을 구별하지 못한다. 당신이 매력적인 외계인이나 그렇지 못한 외계인, 혹은 매력적인 사냥개나 그렇지 못한 사냥개를 구별하기 힘든 것처럼.
하지만 당신이 속한 종 내에서의 작은 차이는 당신의 뇌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떤 사람들은 다리를 훤히 드러낸 여자를 매력적이라 여기지만, 남자가 그러면 역겨워한다. 기하학적 관점에서 보면 둘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121~122p]


- 문제를 ‘서브루틴(subroutine, 프로그램 안의 다른 루틴을 위해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적 프로그램, 옮긴이)’으로 나누어 해결하자는 아이디어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자극했다. 한 가지 목적을 가진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로봇 개발이 한 가지 업무를 잘하는 ‘로컬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로 전환된 것이다. 특정 시기에 누가 통제권을 가질지만 바꾸어주면, 시스템은 문제없이 돌아간다. 핵심은 각각의 업무가 아니라, 언제 누가 무엇을 할지를 배분하는 것이다. [137p]


- 민스키의 이론에 빠져 있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문가들의 ‘경쟁’이다. 인간의 뇌는 마치 흥미진진한 드라마처럼 구성원들의 ‘갈등’으로 운영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각각의 노동자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와 같다.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 반면 민주주의 하의 정당들은 같은 이슈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갖는다. 그들은 ‘국갗라는 배의 조종을 놓고 일종의 투쟁을 벌인다. 이러한 점에서 뇌는 ‘민주주의’와 같다.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심사숙고하고, 가늠하고, 경쟁하는 여러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138~139p]


- 심리학자들들과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기이한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종종 ‘듀얼 프로세스’라는 개념을 예로 든다. 이는 뇌가 2개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점이다.
하나는 빠르고 자동적이며, 의식적인 인식의 이면에 존재한다. 다른 하나는 느리고 인지적이며 의식적이다. 첫 번째 시스템은 자동적, 내현적, 발견법적, 직관적, 전체론적, 반응적, 충동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반면 두 번째 시스템은 인지적, 체계적, 외현적, 분석적, 규칙 기반적, 심사숙고적이다. ‘듀얼 프로세스’라는 비유에도 불구하고, 두 시스템은 화합하지 않고 항상 서로 다툰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굳이 시스템이 2개라고 단정 지을 근거는 없다. [141p]


- 한마디로 ‘이성 시스템’은 외부 세상을 분석하는 데 신경을 쓰는 시스템이다. 반면‘ 정서 시스템’은 내부 상태를 모니터하고 상황이 좋은지 나쁜지를 걱정한다. 이성적 인지가 외부 사건들을 포함한다면, 정서는 내면 상황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내면의 상태와 관계없이 수학문제를 풀 수 있다. 하지만 다음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우선순위를 세우거나,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할 수는 없다. 정서 시스템은 다음에 할 행동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43p]


-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은 한 가지 이상이다. 지금 우리는 다른 사건들에 대한 하나의 기억이 아니라, 동일한 사건에 대한 여러 기억들을 논하고 있다. 성격이 다른 2명의 기자가 하나의 사건에 대해 기사를 써내려가는 것처럼, 뇌의 여러 분파들은 같은 임무에 관여하고 개입한다. 다른 정보를 받아 적으며 서로 자기가 이야기하겠다고 경쟁을 버리는 것이다. 기억이 한 가지라는 확신은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158p]


- 숨겨진 프로그램들이 행동하면, 좌뇌는 그 행동을 정당화시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가자니가의 말대로 이러한 발견은 좌뇌의 해석 기제가 사건의 의미를 찾기 위해 항상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좌뇌는 끊임없이 사건의 순서와 이유를 추구한다. 심지어 그런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하다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167p]


- 재갈매기 둥지에 붉은 알을 둔다고 가정해보자. 붉은색은 새의 공격성을 유발하는 반면, 알의 형태는 알을 품는 행동을 이끌어낸다. 그 결과 재갈매기는 알을 공격하는 동시에 품으려 한다. 동시에 2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비생산적인 최종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붉은 알은 갈매기의 뇌에서 각자의 주권을 가진 경쟁 프로그램들을 발동시킨다. 경쟁은 치열하지만 새에게는 매끄러운 협력을 이끌어낼 중재 능력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암컷 큰가시고기가 수컷의 영토를 침입하면, 수컷은 공격과 구애라는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드러낼 것이다. -중략-
나는 ‘의식’의 지표는 갈등하는 좀비 시스템들을 성공적으로 조율하는 능력이라 생각한다. 내재된 서브루틴들이 제대로 조율되지 못하고 엉킬수록, 그 동물의 의식은 적다고 봐야 한다. 서브루틴들이 더 많이 통합되고, 욕구 충족을 미루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울수록, 더 많은 의식을 가진 것이다. [177~178p]


- 술에 취한 맬 깁슨 이야기로 돌아가 애초 ‘본심’같은 게 있는지 생각해보자.

분명히 말해두지만, 멜 깁슨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뇌가 ‘라이벌들로 이루어진 팀’이라면 인종주의자와 비인종주의자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모두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술은 자백유도제가 아니다. 하지만 술은 단기적인 시스템이나 경솔한 분파 쪽으로 쏠리게 만든다. 아무래도 경솔한 분파에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반사회적이거나 위험한 행동을 저지르기 쉬울 테니까. [184p]


- 환자는 결국 자신의 생물학적인 뇌와 별개로 행동할 수 없는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내린 선택이 본인의 자유의지라 믿는다. “난 의지가 강해서 도박은 안 해.”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소아성애자 알렉스와 도둑질하는 전두측치매 환자들, 도박에 빠진 파킨스병 환자들의 사례는 이러한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회적으로 적합한 선택을 할 때, 모두가 ‘동등하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194p]


- 중요한 것은 모든 행동이 오토파일럿의 지배를 받는지, 아니면 생물학적인 뇌와 상관없이 선택할 자유가 조금이라도 있는지의 여부다. 알다시피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은 다른 활동들과 연관되어 있다. 즉, 기계 안에 유령이 존재할 여지는 없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만일 자유의지가 신체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면, 뇌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쳐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최소한 일부 뉴런들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껏 뇌에서 다른 부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곳’은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 모든 뇌는 다른 영역과 긴밀히 연결되어 영향을 받는다. 어떠한 부분도 독립적이지 않고 자유롭지도 못하다.[204p]


- 즉, 뇌는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충동을 느끼기 훨씬 전에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의식을 신문에 비유한 내용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손가락을 움직이겠다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뉴스를 듣기 전, 이미 우리의 뇌는 무대뒤에서 모든 일을 마친 것이다. 신경 연합을 추진하고, 행동을 계획하고, 표결에 붙이는 일들 말이다. [205p]


- 이는 바로 ‘성숙’을 의미한다. 십대와 성인 뇌의 주된 차이는 뇌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즉 전두엽이 얼마나 발달되었는지에 달려 있다. 인간의 전전두엽 피질은 20대 초반까지는 완전히 발달하지 못한다. 십대들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다. 전두엽은 때때로 ‘사회화 기관’이라 불린다. 사회화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충동을 억누르는 회로가 발달되었다는 뜻인까. [223p]


- 하지만 다양성은 인간이 모두 동등하다는 전제에 기인한 법적 시스템을 곤란하게 만든다. ‘인간평등’이라는 신화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의사를 결정하고, 충동을 통제하고,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에 위배되는 ‘평등’이라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중략-
사람들은 동일한 능력을 갖고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각자의 유전자와 개인적인 내력은 ‘뇌’를 전혀 다른 모양으로 만든다. 법도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하는 사실이다.
‘나이’만 봐도 그렇다. 사춘기 아이들은 성인들과 대단히 다른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충동을 억제한다. 아이들의 두뇌는 어른들의 두뇌와 다르기 때문이다. [226~227p]


- 당신의 인지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 중에는 인간이 아닌 미세한 생명체도 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은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전투를 벌이며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례는 바로 광견병 바이러스다. 작은 총알 모양의 이 바이러스는 포유류끼리 ‘깨무는’ 행동을 통해, 신경을 기어올라 뇌의 측두엽으로 간 다음 그곳의 뉴런들에 자신을 맞추어 넣는다. 그리고 그곳의 활동패턴을 바꿈으로써, 감염된 숙주에게 공격성, 분노, 물려는 성향을 유발시킨다. 또한 이 바이러스는 타액선을 타고 이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다음 숙주를 깨물게 만들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동물의 행동을 조종함으로써 다른 숙주에게 퍼져나가는 것이다. [251p]


- 그렇다면 정신분열증은 유전적인가, 아닌가? 해답은 유전학이 어느 정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만일 유전학이 약간 기이한 모양의 부품들을 생산한다면, 전체 시스템은 특정 환경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물론 다른 환경에서는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DNA에 새겨진 분자적 특성이 전부가 아니다. 그 밖에도 많은 원인이 존재한다. [256p]


- 그들은 인간의 성향을 사전에 결정짓는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실제 우울증에 걸릴지는 살면서 겪은 ‘사건’들에 달려 있다. 연구자들은 어떠한 종류의 외상적인 사건들을 겪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수십명을 신중하게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대형 교통사고 등을 겪은 것이 외상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258p]


- 하지만 환원주의는 모든 것을 다 설명하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물론 뇌와 마음의 관계를 전부 설명하지도 못한다. 이는 ‘이머전스’라 알려진 특질 때문이다. 가령 비행기를 구성하는 개별적 금속 조각들은 ‘비행’이라는 특성을 갖지 않지만, 올바른 방식으로 조립되면 하늘을 날 수 있다. 가느다란 금속 막대는 맹수를 가두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지만, 여러 개를 붙여 세워놓으면 ‘철장’이라는 특성을 갖춘다. 여기서 ‘이머전스’의 개념은 부분에 전혀 내재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가 도입된다는 의미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2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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