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얀 치홀트 | 옮긴이 / 안상수
얀 치홀트의 타이포그라픽 디자인
1991년 6월 1일 초판 발행
2006년 3월 22일 개정증보판 발행
지은이 얀 치홀트
옮긴이 안상수
펴낸이 김옥철
펴낸곳 (주)안그라픽스 413-756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도시 532-1
영역자의 말
앞글
저자의 말
역사적 고찰
장식적 타이포그라피
- 가운데 맞추기 타이포그라피에서 순수한 형태는 낱말이 가지는 의미 이전에 온다. 애초에 중심선은 활자조판 기술에 의한 실용적인 가능성 때문에 생긴 것이 사실이다 서예가들은 거의 이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운데 맞추기’란 타이포그라퍼가 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 중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판짜기 할 때 글줄은 어떤 곳에나 놓일 수 있다. 그러나 손으로 쓰는 경우 한 번 위치가 결정되고 나면 그 위치는 바꾸지 못한다.
가운데 맞추기 형식은 옛날 책표지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융통성 없는 스타일이다. 가운데 맞추기 타이포그라피의 목적은 르네상스와 이의 분파인 바로크, 로코코, 그리고 이후의 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순전히 장식적인 스타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의 몸이었고, 그것은 모든 디자인에 응용되엇다. 이러한 결과로 패턴이 생겨났지만 유기적인 디자인을 만들지는 못했다. 모든 것을 대칭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타이포그라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27p]
- 사람들은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 ‘부분적인 것(활자 자체)’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활자의 배열)’이라는 사실을 그때까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활자의 대부분은 단지 특정한 경우에만 부합되고 모든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활자 사용은 이미 그 디자인이 제한되었고, 활자 디자이너가 만든 활자 보기지에 나온 대로 사용되었다. 적절한 장식물을 쓰지 않고 활자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30p]
- 이 활자들은 성격이 평범하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일과 잘 맞는다. [30p]
신 타이포그라피의 의미와 목적
- 옛것은 모든 배열에서 각 요소들이 서로 다른 성질과 목적을 갖고 있어서, 별개의 해결 방법을 원하면서도 서로 비슷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옛날 타이포그라피 규칙들은 디자인의 합목적성 원리에 어긋나도 오늘날의 비대칭적 배열은 실용적, 미학적 요구에 부응한다. [32p]
- 시각적, 미학적 창조물로서 성공적인 디자인은 인쇄의 최종 제품이지 외형적인 디자인 개념의 실현이 아니다. 또 그것은 단순히 기술이나 명확성 혹은 조직의 정연한 배치만도 아닌 것이다. 예를 들면 넓은 뜻의 ‘짜맞추기Fitness'에서 보는 것처럼 낱말의 의미와 일의 목적 안에서 순수한 시각적, 미학적 성질을 다루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타이포그라피 작업은 합목적성을 지녀야하고, 제작이 쉬워야 하며, 아름다워야 한다. 예술로서 타이포그라피는 오늘날의 ’그라픽 아트‘나 회화에 가깝다. 이제 타이포그라피 형태에 대한 방법을 개발하여 그 쓰임새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예전에 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의 활동도 가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차원적 그라픽 예술인 타이포그라피는 현대 회화에서 리듬과 비례를 많이 습득할 수 있는데, 고전적 타이포그라피에서는 리듬과 비례가 오늘날처럼 중요시되지 않았다. [33p]
활자
- 많은 사람들이 현대 건축의 감각 과잉적 특성을 무시하고 현대 건축의 엄격성을 타이포그라피에 끌어들이려 하였다. 타이포그라피와 건축은 서로 관련성이 없는 다른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신 타이포그라피는 현대 건축의 산물이 아니다. 현대 건축과 신 타이포그라피는 모두 ‘비구상주의 회화 Non-representational painting'의 계통을 이은 것이다. [37p]
손조판과 기계조판
- 글줄 사이가 넓은 본문이나 글줄 사이를 반각 이상 띄운 제목은 어색하다. [45p]
- 마침표가 찍힌 다음 공백은 보통 글줄의 평균 낱말 사이 너비여야 한다. [45p]
- 또한 작업할 때 글자 사이를 ‘전각全角 : thick spaces'보다 더 넓게 띄우는 것은 피해야 한다. [45p]
- 기계조판이라 해서 늘 손조판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손조판가도 기계에서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45p]
- 되풀이 된 낱말을 다 적는 것이 따옴표를 사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낫다. 따옴표를 쓸 자리에는 ‘-’와 같은 ‘짧은 줄표 short dash'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 [47p]
낱말
- 낱말은 대문자로만 짜면 안 된다. [50p]
- 대문자란 그 일반적인 성격으로 보아 너무 허식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을뿐더러 소문자보다 읽기 힘들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대문자는 조판하기 힘들다. 대문자를 사용할 때는 규칙적인 리듬을 이루는 완벽한 글자 사이띄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오히려 글자 사이를 넓히는 것이 좁히는 것보다 낫다. [50p]
- 대문자의 경우 정확한 글자 사이띄기란 내부 공간 글자들(C, D, O)과 외부 공간 글자들(A, J, L, P, T, V, W, Y)이 눈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낱말들 속에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뜻한다. 글자 사이가 너무 넓으면 가독성을 해치기 때문에, 대문자의 정확한 글자 사이띄기는 엄격한 제한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글자 사이를 너무 많이 띄운 낱말들은 글자 사이를 벌린 소문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좋지 않다. 짧은 문장의 경우는 대문자로만 조판하는 방법이 나을 수도 있다. [50p]
- 본문에서 숫자는 반드시 대문자와 같은 비중으로 다뤄야 하고, 글자 사이 띄기는 약간만 한다. 반각 숫자 1 좌우에 공백이 있는데, 반각으로 주조된 숫자들은 1에 비해 너비가 크니까, 1이 다른 숫자들과 어울리게 되려면 그 글자 사이를 고르게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의 규칙들은 본문에는 물론이고 제목짜기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제목짜기의 경우에도 글자 사이를 너무 띄우지 말 것이며, 되도록 대문자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만일 대문자를 꼭 써야 한다면 반드시 완벽한 사이띄기를 해야한다. 글자 사이를 전혀 띄지 않은 대문자는 디자인이나 가독성 모두 떨어진다. [50p]
글줄
- 글줄 사이띄기를 약간 좁게 하는 것이 좋다. 적어도 글줄이 아주 짧을 때는 글줄 사이가 너무 넓기 않도록 중간 정도로 알맞게 해야 한다. [52p]
- 문장이 끝나는 글줄이라고 해서 낱말 사이를 넓히면 안 된다. [52p]
- 글줄 사이가 넓고 글줄 길이가 길 경우, 쉼표나 짧은줄표(하이폰) 앞에 아주 얇은 공목을 끼워 넣을 수 있다. ‘묶음표(괄호) parentheses' 역시 글자와 묶음표 사이에 아주 얇은 공목을 끼워 넣어 주어야 한다. ’긴줄표em dash(―)'는 표에만 사용하고, 본문은 낱말 사이에 사용하는 ‘짧은줄표en dash(-)'를 써야한다. 실무에서는 따옴표는 ’새발톱표 single quotation marks(' ')'를 쓰는 것이 제일 좋다. 같은 작업 안에서 이러한 부호를 사용할 때는 같은 활자체, 같은 크기로 같은 폰트의 부호를 써야 한다. 부호와 맞닿은 글자 사이에는 얇은 공목을 넣어 고르게 보이게 해야 하지만, 글줄이 짧을 경우나, A와 J앞에 새발톱표를 넣을 때는 예외여서 공목을 넣지 않아도 된다.
아주 얇은 공목은 ‘어깨글자superscript' 앞에 반드시 넣어주어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 ’R.S.V.P', 'G.H.Q', 'G.B.Smith'와 같은 글자들과 ‘Vols. 1, 2, 3 and 4' 같은 숫자들 다음에는 정상 공목보다 얇은 공목을 넣어야 한다. 그러나 식자 기계로는 이렇게 정교한 사이띄기를 하기 힘들다. 글줄 사이가 활자 크기보다 넓고, 본문 활자면이 흰 여백으로 넓게 둘러싸인 경우, 글줄 사이는 앞에 지적한 것보다 더 넓게 띄어야 하는데, 판면 가장 자리의 넓은 흰 여백이 상대적으로 글줄 사이를 빡빡하게 보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칙들은 손작업이나 기계작업에 모두 적용할 수 있지만, 뽑음글이나 제목 글줄에는 보다 조심스럽게 적용해야 한다. 글자 사이띄기를 망치면서까지 지정된 글줄 길이에 강제로 글자들을 짜맞추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외자남기 Widow'로 처리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52~54p]
- 양끝맞추기 justified의 경우 5 낱말 이내의 글줄은 물리적으로 사이띄기를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또한 낱말 10개 이상의 긴 글줄은 읽기 힘들다. 이것은 무슨 일을 하든 꼭 새겨 두어야 할 기본 규칙이다. 이러한 연유로 한 글줄이 낱말 8~10개로 된 것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너무 짧은 글줄을 양끝맛추기로 할 때, 글줄 안에서 낱말 사이가 엉성하게 되는 것보다는, 시의 경우처럼 낱말 사이를 일정하게 하는 ‘끝흘리기 unjustified' 형식이 훨씬 낫다.
한 글줄 안에서 낱말 무리를 서로 구별하려면 전각짜리 공목 (혹은 이보다 넓거나 좁은 것도 가능)을 사용하면 된다. [54p]
글줄에서의 강조
- 낱말의 강조를 위해 글줄에 사용된 활자 크기를 크거나 작게 처리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본문에서의 강조란, 낱말의 의미를 고려하여 이탤릭체 (강조의 도가 약할 때)나 세미볼드(핵심이 되는 낱말이 두드러지게 나타내야 하는 강조의 경우), 혹은 이 두가지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55p]
- 영어 사용권 국가들은 이탤릭체뿐만 아니라 ‘작은 대문자 small capital'를 가지고 있는데, 때로 이 작은 대문자는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이것은 대문자 대신 제목에도 쓰인다. 이런 연유로 세미볼드는 아직도 영어권에서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55p]
- 활자 크기가 서로 다른 것은 글줄에서 사용할 때, 밑줄을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 [55p]
- 한 글줄 안에서 크기가 다른 활자를 세 가지 이상 쓰면 안 된다. [55p]
글줄 사이띄기, 글줄 길이, 무리짓기
- 빽빽한 활자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특히 산세리프는 글줄 사이를 넓게 띄워 주여야 하며, 빽빽하게 조판하면 읽기 불편하다.
- 제목이나 짧은 문장에서 글줄 길이는 주로 낱말의 뜻과 ‘끊어 읽는 곳’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야 다음 글줄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57p]
- 중요도는 비슷하지만 글줄 길이가 다른 여러 글줄을 목차에서처럼 한 단에 배열할 때, 글줄을 자유자재로 오른끝맞추기나 왼끝맞추기 할 수는 없다. 반드시 글줄은 왼쪽에 맞추어야 한다. 이외의 방법은 모두 올지 않다. 우리는 글씨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나간다. 이때 눈은 자연적으로 각 글줄의 끝부분에서 처음 보기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온다. 만일 다음 글줄이 첫 글줄 머리 부분 바로 밑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면 가독성이 떨어지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 좋지 않다.
모든 글시를 영문과 같은 방형으로 쓰는 것은 아니다. 1930년경까지 터키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다. 또 중국 한자는 위에서 아래로, 가로로 쓰는 경우에는 오른쪽에서 읽는데 간혹 지금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기도한다.
우리는 터키인이나 중국인이 아니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시를 오른끝 흘르기로 짜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시의 굴줄을 가운데 맞추기로 하여 좌우대칭으로 조판되어 있다면 정말 읽기 어렵다. 사람의 눈이란 계속 글줄이 시작하는 곳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57~59p]
- 서로 크기가 다른 활자를 사용하여 본문 조판을 할 경우 눈에 잘 띄도록 ‘무리짓기grouping'를 해줘야 한다. 서로 다른 단위들이 많으면 이해하기 힘들뿐더러, 무리를 지어 주지 않아 어두워 보인다. 만일 이 무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없어서 하나하나 헤아려야 한다면 글무리는 목적을 파괴하게 된다. [59p]
들여짜기와 글줄 끝내기
- 들여짜기는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글마디를 구분하는 데 가장 훌륭하고 단순한 방법이다. 따라서 들여짜기를 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보통 들여짤 때는 전각 하나 정도의 너비를 준다. 그러나 글줄이 길고 글줄 사이를 많이 띄웠을 때는 들여짜기를 해도 괜찮다.[60p]
- 짧은 광고 문안의 경우, 글마디 시작에서 특별한 강조가 필요하다면 첫줄만 들여짜기를 하는 대신, 첫 줄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글줄 모두를 전각 한두 개 정도 들여짤 수 있다. 두 글마디 사이에 공백이 있거나 글마디가 하나만 있을 때, 들여짜기는 하지 않아도 된다. 글마디에 의한 단락 구분이 낱쪽의 통일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않을 때, 들여짜기는 역시 불필요하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 대화가 많거나 특히 글줄이 짧고, 인위적이거나 불필요한 글마디를 나눠서 쪽수가 늘어날 때를 뜻한다.
책이나 잡지의 경우, 들여짜기를 하지 않는 대신 글마디와 글마디 사이에 괜한 공간을 주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신문이나 값싼 소책자 정도에서만 허용될 수 있는 일이다. 좋은 책이나 잡지 인쇄에서 글줄은 안팎 인쇄면을 반드시 맞춘다. 시를 인용할 때 인용된 시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의 글 줄 사이를 그곳에 사용한 활자 크기의 반만큼 더 띄워 준다. [62p]
- 리플릿 따위의 작은 일에서 글마디 첫 부분에 들여짜기를 생략하면, 글마디 사이의 구분은 확연하게 해야 하는데, 이때 공백은 대략 여느 글줄 사이의 두 배 정도가 되어야 한다. 제일 작은 활자의 경우에만 글줄 사이가 2포인트면 충분할 것이다. [62p]
활자 크기, 제목과 활자 섞어쓰기
- 대개 큰일의 경우 활자 크기를 선택하는 것은 첫째, 포맷과 목적, 둘째, 내용이 지닌 의미, 셋째, 활자 크기가 갖는 시각적 관련성에 대한 느낌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 [64p]
- 일반적으로 활자 크기는 세 가지 정도로 한정 짓는 게 좋다. 작은 일에는 두 가지 정도가 적당하고, 좀 복잡한 일의 경우라면 네 가지 정도를 쓸 수 있다. [64p]
- 한 곳에 같이 사용되는 활자들은 반드시 명확한 차이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9포인터와 10포인트, 14포인트와 16포인트는 아주 엇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에 함께 사용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64p]
- ‘그림자 활자’와 ‘입체 활자’는 본질적으로 신 타이포그라피가 갖는 2차원적 성질에 위배된다. 현대 감각이 풍기는 일을 할 때, 제목 활자 선택에서는 되도록이면 입체 활자나 그림자 활자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66p]
작은일
- 타이포그라피는, 첫째 글을 읽기 쉽게 배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배열하기 전에 글 내용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우선 타이포그라퍼는 원고를 전부 읽어보고 이해해야 한다. 읽지 않으면 원고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두 번째는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열하는 일이 타이포그라퍼가 제일 신경 써야 할 임무이다. 이제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전체 본문 모양을 어떻게해야 독자들에게 가장 편하게 읽힐 수 있는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어쨌든 타이포그라퍼는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인쇄 기법 때문에 몇 가지 제약이 디자인에 부과된다. 마지막 세 번째는 기술적으로 완전무결함은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읽기 쉽게 만드는 것인만큼, 인쇄에 필요한 디자인도 중요하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레이아웃 되었을지라도, 눈에 거슬리는 인쇄물로 나타날 때는 성공적이라 할 수 없다. 보기만 좋고 읽을 수 없는 디자인은 쓸모 없는 것이며,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디자인 역시 예술이라 부를 수 없다. 배열이 명쾌하고 아름다우며 제작할 때 기술적인 흠이 없는 타이포그라피만이 예술로 불릴 수 있다. ‘모든 기술은 예술을 뜻한다’라는 의미로서만 ‘예술’이란 말이 쓰일 수 있다. [70p]
-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원고는 조판가의 손을 거쳐 깨끗하고 정연한 형태로 변한다. 어떤 선입견이나 정확한 형태를 가진 디테일의 단순한 조합만으로 전체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이 두 개가 같이 조합되어야 한다. 큰일의 경우 모든 디테일을 정하지 않은 채로 시작할 수 없는데, 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결과만을 얻게 된다. 디테일을 처리할 때 일의 통일성을 위해서는 전체적인 윤곽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디자이너는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세부적인 것에서 전체에 이르기까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하며, 겉만 해결해서는 안 된다.
활자 선택은 일의 목적에 따라야 한다. 특별한 일에서는 전체를 본문 활자체 한 가지와 제목 활자체 한 가지만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작품이 지루하거나 무디게 되지 않도록 온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채택한 방법이 간단할수록 세심한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흰 여백과 활자 인쇄부분과의 조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 비중 있는 배려를 요구한다. [72p]
- 장차 일반적으로 많이 쓰일 활자는 더 많이 만들어내야겠지만 다색의 호화스런 것은 적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그러면 조판실에서 늘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며 일하는 실무자들에게 정말로 유용한 것이 된다. 원고 내용을 바꿔 어려움을 우회하는 것은 기술이 아닌 단순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73p]
공간활용
- 독서 방법과 구성 방법으로 말미암아 대개 낱쪽에서 선은 가로로 되어 있다. 특별한 경우 사선으로 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게 될지 모르지만 작업하는 사람으로서는 까다로운 일이다. 이러한 방법은 어쩌다 한 번 사용해야 효과적이다. 사용할 때는 짧은 낱말이나 짧은 선 여러 개보다는 선 하나가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짧은 선을 여러 개 쓰면 사선 위치가 눈에 잘 띄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76p]
- 타이포그라픽 디자인이 갖는 가장 강력한 효과는 디자인 속에서 대비가 가장 확연할 때 나타난다. 디자인의 비밀은 반복이나 윤곽의 유사성을 피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레이아웃의 꼭대기에 단선 하나의 그룹이 있다면, 그 다음에 오는 그룹은 둘 또는 세 개의 선이 좋을 것이다. 길쭉한 형태는 짧은 형태 다음에 와야 하고, 무거운 형태 다음에는 가벼운 것이 와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생동하는 전체를 위해 모든 부분은 서로 대비되어야 한다. [76p]
표
- 보통 우리들은 일을 쓸데없이 어렵게 만든다. 우선 줄을 사용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해보라.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 만약 단 사이의 너비가 충분하다면 제목 밑에 중간 굵기의 줄만을 써라. 세로줄은 단 사이가 너무 좁아서 잘못 읽힐 수 있는 경우에만 필요하다. 세로줄이 빠진 표는 판짜기도 수월하고 보기에도 훨씬 낫다. 줄을 두 종류 이상 쓰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 그리고 가느다란 줄이 굵은 줄보다 낫다. [78p]
줄
- 타이포그라피에서 줄은 여러 가지 목적에 쓰인다. 도표에서는 내용과 제목을 구분시키고, 광고에서는 테두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줄의 기능을 정의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활자가 모이면 넓거나 좁아서 우둘두툴해 보이는 띠를 만든다. 줄은 이에 대비를 주어 글자가 지니는 추상성을 강조한다. [82p]
- 오늘날에는 중간 줄이나 가는 줄의 오묘한 효과를 더 선호하고 있다. 이 줄은 레이아웃 요소들을 묶어주거나 분리시키는 데 쓴다. 가는 줄 한 가닥이 낱쪽 한 쪽의 전체 효과를 좌우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또 굵은 줄은 대비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특히 획이 가는 글씨체에 사용하면 그 치밀한 구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굵은 줄을 밑줄로 사용하는 것은 강조 수단으로서 비타이포그라피적이기 때문에 쓰지 않는 것이 좋다. [82p]
- 줄이란 단순한 선, 단순한 테두리로 또는 스크린 효과로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82p]
색깔
- 색깔은 신간 서적의 내용 보기와 같은 책의 어떤 특정 부분을 분리하거나, 혹은 이와 비슷한 목적에 사용한다. 빨간색은 선동적인 효과가 있다. 만일 어떤 낱말을 빨간색으로 인쇄한다면, 그 낱말을 주위의 까만 활자들보다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노란 색은 공격적이다. 청색은 차갑고, 물러서는 기분을 자아내는데, 밝은 색으로 쓰이면 검은 색보다 생기를 띤다. 이렇게 색이란 중요한 글자를 돋보이도록 하는 데 사용한다. [84p]
- 또한 같은 잉크로 인쇄했다 하더라도 면적에 따라 그 시각 효과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한다. [84p]
종이
- 망점을 사용할 때는 아주 매끈한 종이가 필요하다. 코팅된 종이는 대개 고급 종이에 속하는데 초보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매트matt지는 인쇄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고, 불쾌할 정도로 딱딱한 느낌을 준다. 이는 종종 듀오톤 잉크를 사용하여 눈가림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미덥지 못한 과정과 매트지는 가능한한 피하는 것이 좋다. [86p]
- 하프톤을 완벽하게 인쇄해 내려면 코팅지에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밝은 빛깔이나 백색 종이를 사용할 수 있다. 이중 따뜻한 느낌을 주는 황갈색chamois은 현대 감각을 살리는 데 맞지 않고, 대신 적색carmine, 회색, 밝은 청색이 더 낫다.[86p]
- 수제 종이나 제지틀mould을 써서 만든 종이는 곱고 아름다우며, 데클deckle은 대단한 만족감을 준다. [86p]
- 오랫동안 보통 종이 위에 특수 에칭 하프톤 인쇄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제 코팅지를 쓰지 않고서도 활자와 망점 인쇄를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 어떤 특별한 장점이라기보다 오히려 책 한 권에 두 가지 종이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버린 것으로 생각한다. 두터운 카트리지 종이catridge paper와 코팅지에 인쇄한 그림이 갖는 대비는 대단히 상쾌하다. 카트리지 종이에 인쇄한 특수 에칭 망점 사진은 코팅지에 인쇄한 사진보다 떨어진다. 종류가 서로 다른 종이들 간의 대비는 효과적이고 권할 만하다. 코팅지에 인쇄한 도판 본문은 반짝거리는 코팅 표지보다 거친 종이로 된 표지와 함께 있을 때 더욱 돋보인다.[88~89p]
포스터
- 포스터란 힐끗 보고서도 명확히 이해되는 데서 그 효과를 얻는다. 글줄 사이와 흰 여백을 적당히 구사하는 것이 포스터의 목적을 달성하는 지름길이다. -중략-
포스터에서 낱말 사이는 일반적인 작업보다 넓어야 한다. 왜냐하면 멀리서도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3분각 정도의 낱말 사이는 낱말이 서로 붙어 보이는 것을 막기에 부족하다. [90p]
풍부한 형태
- 목적과 유용성에 부합하는 것이 훌륭한 작품을 위한 전제 조건이지만,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그 정신적인 내용에 있다. 새로운 운동은 새로운 아름다움의 창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운 아름다움은 이전의 방법보다 재료에 더 밀착되어 있으나, 관심 범위가 재료를 훨씬 초월하고 있다. 재료와 비례에 대한 감각에 의해 단순히 기능적인 것을 예술 작품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이러한 가치를 쉽게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성이 갖는 도취적 특성을 느끼고 그 가치를 인정하려면 그 전에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야 단순성이 갖는 풍부함이 이해될 것이다. 우선 타이포그라피에 쓰이는 재료, 과정, 요소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대비가 갖는 중요성은 현대의 모든 디자인 작업의 기초가 된다. 만약 명함에서 이름 위치가 가운데 있지 않으면 명함을 보는 사람은 형태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보는 사람은 명함에 대한 색다른 느낌을 갖게 되고, 또한 디자인으로 백색 공간이 일익을 담당하고 있고, 비례와 대비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91p]
- 대비의 절대적인 무게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것들이 이뤄내는 긴장감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탐구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는 추상적인 것이고, 우리는 아름다움과 유용성을 주장한다. 우리가 흔히 재료를 써서 전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성공은 우리의 것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새로운 형태를 세계를 소개해 준 추상 회화에 많은 빛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발견의 예는 다른 시대나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고딕 이전 시대의 세밀화와 일본 에도 시대의 목판화 ‘우키요에’를 말한다. 그것과 우리 작업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93p]
추상 미술
- 전통적 타이포그라피는 회화보다 르네상스의 파사드 facade 건축, 그리고 파사드 스타일의 유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조판가들이 속표지에 교회 건물 앞면의 효과를 내고자 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파고 들어가 보면 르네상스 파사드와 같은 시대의 책 속표지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같은 식으로 말하자면 현대 타이포그라피와 현대 건축 사이에도 연관이 있지만, 그렇다고 신 타이포그라피가 신 건축에서 유래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 둘의 유래는 새로운 회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대 회화는 현대 타이포그라피와 현대 건축에 새로운 형태적 의미를 부여해왔다. 비재현적 회화 또는 추상 회화를 의미하는 새로운 회화는 현대 건축보다 앞섰으며, 현대 건축은 추상 회화가 아니었더라면 잉태될 수 없었다. 보통 주제가 없는 그림을 추상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추상이 다루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것이다. 하나의 선, 원, 면적은 그 자체로도 의미를 갖는 반면, 재현적 회화에서는 이것들이 그 자체가 아닌 다른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상’이란 말을 묘사적 회화에 적용해도 틀리지 않다. [96p]
- 이제 ‘우리가 보는 그대로’ 세상을 재현하는 사람은 화가만이 아니다. 사진가는 화가보다 더 빠르고 훌륭하게 해낼 수 있으며, 컬러로도 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사물의 재현은 종종 사진가에게 맡겨진다. 사진 발명 이후로 회화의 임무는 평면 위에서 색과 형태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추상 미술에서 색과 형태는 이제 더 이상 자연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데 사용하지 않고, 그 자체만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98p]
- 원래 실제 사물의 상징적 추상 형태인 장식ornament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갖는 의미를 상실해서 단순한 꾸밈물decorations로 위축되었다. 기계가 고급스런 장식을 값싼 재료로 대량 생산함에 따라 이것들이 지녔던 사회적 지위조차 상실해 버렸다. 그림의 각 부분들은 공명하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인 구성이 갖는 음조와 리듬을 통해 의미를 획득하는, 음악 한 곡에 담긴 음표들에 비교할 수 있다. [98p]
- '추상‘ 회화와 신 타이포그라피의 연관성은, ’추상‘ 형태를 사용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작업 방법의 유사성에 있다. 어느 쪽이든 작가는 맨 먼저 이용 가능한 재료에 대해 과학적인 연구를 거친 대비를 사용함으로써 사용 재료를 하나의 실체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추상 회화, 특히 ’아주 단순한 형태‘의 회화는 하나하나 성격을 분명하게 하는 것 외에도 서로 상관 관계를 갖는 명확한, 예술적 혹은 그라픽적 요소를 지닌다. 여기서부터 타이포그라피는 가깝고, 단순하게 대비를 이루는 요소들로부터 질서를 창조해낸다. [101p]
타이포그라피, 사진, 그림
- 조판실의 기호나 활자만이 신 타이포그리파의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그림이나 사진은 글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더 많은 뜻과 내용을 빨리 전달해 준다. 오늘날 그림으로 나타낸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사진이다. 사진 사용은 매우 다양해져서 사진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사진의 질은 작업의 성공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사진은 신 타이포그라피와 똑같은 원칙에 바탕을 둔 나름대로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106p]
- 신 타이포그라피에서 사진이 그림 표현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 할지라도 자유롭고 도식적인 선화線畵 : line drawings의 사용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과 선화는 대비를 이루며 조화가 잘된다. 이 세가지 모두 함께 사용하면 새롭고 풍부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낼 것이다. [106p]
오늘날의 책
- 인쇄된 책이란 본래 필사본을 모방한 것이다. 필사본의 관습에서 탈피하여 책 자체가 자유로워진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이루어졌다. 색과 손 레터링은 여러 단계를 거친 후에 없어졌으며, 이는 오랜 세월이 소요되었다. [109p]
- 현대의 책은 고전적 규칙에 대해 겉멋만 적당히 흉내내거나, 아니면 아예 그 규칙들에 너무 전문적이고 현학적으로 복종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첫 번째 방법보다 좋지 못하며, 오늘날 다른 분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예술적 황폐만을 자아내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책을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수단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고전적인 형식에 의지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109p]
- 종종 아래 여백 foot margin이 너무 좁은 것을 본다. 아래 여백은 양옆 여백보다 분명히 넓어야 한다. 활자 부분의 안쪽이 가장 좁고, 그 다음에 윗 여백, 바깥 여백, 아래 여백의 순으로 차츰 넓어지는 것은 상식으로도 통한다. 비례에 대해 민감한 느낌으로 우리는 이러한 규칙 내에서도 약간의 다양성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리하여 평범한 책을 디자인이 훌륭한 책으로 바꿀 수도 있다. [110p]
- 내용이 구태의연한 옛날 책을 현대적인 레이아웃으로 장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므로, 오히려 전통적인 타이포그라피가 알맞은 것이다. 즉, 형태와 내용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111p]
- 본문 제목과 본문 사이는 한 줄을 띄우는 것이 좋다. [114p]
- 짙은 색 천에는 금·은박 인쇄를 해야 한다. 표면이 거친 천에는 두꺼운 활자체만 쓸 수 있지만 인쇄 효과는 뚜렷하지 못하다. 거친 천일 경우에는 비단에 인쇄하여 부착시키는 편이 낫다. [115p]
- 면지는 흰색이나 밝은 색 계통이면 무방하며, 책에 사용한 다른 색과 대비를 의도한 경우라도 잘 어울려야 한다. 책의 자켓은 지난 10년 동안 커다란 발전을 했다. 현대에 와서 그 가치가 새롭게 발견된 자켓은 흔히 책의 여러 요소들 중에서 가장 디자인이 잘 되고 있는 부분인데, 그 이유는 전통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사진과 포토몽타주는 자켓 디자인의 좋은 소재가 되며 매우 현대적인 타이포그라피 처리를 요구한다. 사진이나 그림을 사용하지 않고 좋은 자켓 디자인을 하기란 더욱 어렵다. 제본에서도 그렇지만 그림을 넣은 타이포그라피 자켓에서도 책의 통일성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전통적으로 디자인된 책에 현대식 자켓을 씌운 경우를 가끔 본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116p]
부록
얀 치홀트의 『신 타이포그라피』
1. 타이포 그라피
2. 얀치홀트와 신 타이포그라피의 주변
- 앞에서 얘기한 《타이포그라피 기초》 특집호에 참가한 사람들만 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이 사람들은 당시 다양한 조형 미술의 세계에서 활동한 - 다다이즘에 이어 받아들여진 러시아의 절대주의, 구성주의, 데 스틸 등의 운동- 중심인물이거나 또는 강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고, 얀 치홀트도 그들 중 한사람이었다. [126p]
3. 신 타이포그라피 이전
- 7. 새로운 책은 새로운 글자의 필기도구를 요구한다. 잉크병과 거위깃털펜은 이미 죽었다.
8. 인쇄 지면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인쇄된 지면, 책의 무한성을 극복해야 한다. 전기電氣 도서관 [134p]
4. 신 타이포그라피의 원리
현대인의 생활 주변은 인쇄물로 쌓여 있다. 인쇄물에 관하여 시대를 구분하는 일은 형식보다 양에 의존한다. 그러나 양이 늘어감에 따라 형식도 변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인쇄물을 읽는 사람은 인쇄물을 신속하게 파악해야 하지만 시간 부족으로 읽는 과정에서 고도의 경제성이 요구되므로 ‘형식’ 또한 현대 생활의 조건에 맞출 수밖에 없다.
과거의 타이포 그라피느는 내용이나 형식으로 볼 때 여러 사람이 함께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읽을 수 있었던 옛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 당시 합목적성은 아무런 중요한 의미도 없었다. 거기에서는 형식미학적인 문제(글자체의 선택과 섞어쓰기, 장식)가 주요한 관심사였다. 따라서 마누티우스 이래의 타이포그라피의 역사도 겉모양의 명쾌함, 순수함보다는 역사적인 글 자체나 장식이 주된 형상이었다(유일한 예외는 디도, 보도니, 바스커빌, 발바움 시대이다.)
‘형태’ 문제에 대하여 활발한 의식을 갖게 된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이다. 자연과 기술은 ‘형태’가 독립된 것이 아니라 기능(목적과 목표), 사용된 재료(유기적 또는 기술적 재료)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자연적 형태에 못지 않은 훌륭한 기술적 형태가 발생된 것이다. 기술적 형태는 자연적 형태와 똑같이 유기적(정신적인 의미에서)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적 형태라고 할지라도 이것을 겉으로만 관찰하고 비행기나 자동차 등의 ‘아름다움’에 감탄만 할 뿐, 완성된 본래 모양이 정확한 경제적 기능의 표현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술은 결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존재를 위한 수단, 즉 인간의 정신 생활에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밖에 없는 것에 반해, 인간이 직접 관여하는 조형 분야는 그 정신적 성격 때문에 단순한 기술적 형태가 갖는 순수한 합목적성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이것 또한 자연 법칙에 따라 고도 형태의 명확함과 순수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시대의 제약을 받았던 과거 훌륭한 타이포그라피 작품을 모방하여 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거나, 그런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대는 본질적으로 다른 수단을 갖고, 과거와 다른 과제를 갖는 고도로 발달된 새로운 형태의 기술을 요구한다. 오늘날 여전히 구텐베르크의 성서를 ‘결코 다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소박하고 근거 없는 낭만적인 생각이고, 이미 버렸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것 자체가 과거의 없는 중요한 업적인 데 대하여, 우리들이 그것에 ‘필적하는 것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면, 우리들은 독자적인 업적이나 현대에서 이룩된 업적을 대립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역사적인 것이 비로소 ‘고전적’이 되는 것이다.
신 타이포그라피의 본질은 명쾌함에 있다. 신 타이포그라피는 이 명쾌함을 미의 기초로 하여 명쾌함이 결여된 과거 타이포그라피에 의식적으로 대립한다. 최고의 경제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현대인에게 이 완벽함 명쾌함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과거 타이포그라피에서 개개 그룹의 구성은 가운데 맞추기 언칙에 따르고 있다. 이런 형식을 갖는 조판의 외적인 면은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의 책속표지 조판을 보면 명백해진다. 그 조판 형식에서 개념이란 완전히 제멋대로 분리되어 버린다. 논리적 구분이란, 예를 들면 여러 가지 크기의 활자 사용에 따라 표현되어야 하지만, 여기에서는 주된 글줄이 주 개념의 4분의 3밖에 나타나지 않고 나머지는 그보다 좀 더 작은 활자로 다음 그룹에 짜 넣는 경우로, 외적인 형식을 살리기 위해 희생된다. 오늘날 이러한 예는 거의 없지만 가운데 맞추기 구성의 경직성은 요즈음 생활에서 요구되는 것과 같은 논리적 관점에 바탕을 둔 구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가운데 맞추기가 보이지 않는 인공적 척추로서 전체를 관철해서 내면의 태도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떤 텏스트를 글줄 중심에 두고, 그 구성을 정당화해서 특별한 역점이 있는 것처럼 편성하는 것은 오류이다. 그러한 역점은 존재하지 않으며 언어는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읽히는 것이기 때문에, 강조해야 하는 글자의 시작과 끝의 거리는 일정하지 않으므로 가운데 맞추기 구성의 오류는 자명한 것이다.
그러나 가운데 맞추기 구성이라고 하는 예정된 형식 이념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념-의사 구성적인 것들- 도 타이포그라피의 본질에 어긋난다. 선입견으로 받아들인 형식 이념에서 출발한 타이포그라피는 항상 오류를 내포한다.
신 타이포그라피가 그 이전의 것과 다른 점은 처음으로 외적인 형식을 텍스트에 기초하여 만들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인쇄물의 내용에는 순수하고 직접적인 표현이 주어져야 한다. 우리들이 현대 인간의 정신발달 단계에 대응하는 타이포그라피에 도달하는 데는 이 길밖에 없다. 텍스트의 기능이란 전달의 목적, 강조(언어의 가치) 그리고 내용의 논리적 유용이다.
텍스트도 처음부터 다른 부분에 대하여 주어진 일정한 논리적 강조 가치 관계에 있다. 타이포그라피는 활자 크기나 굵기와 관련한 순서, 색채, 사진 등을 활용하여 그것에 일관된 내용과 명쾌한 표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타이포그라피는 그 작품이 어떻게 읽혀지며, 그 가독성은 어떠한지에 대하여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한다. 확실한 것은 우리들이 대개 인쇄물을 단계적으로 읽는다는 사실이고, 우선 제목을(이것을 반드시 문두에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읽고, 다음에 내용을 읽은 후에 차츰 다른 부분을 읽는 것이 보통이다. 어디부터 읽어야 할지에 대한 판단은 완전히 인쇄물의 성질이나 문장을 파악한 후의 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아래로 읽는다는 근본 원칙을 벗어나는 것은 위험하다. 따라서 보통 뒷부분을 앞부분보다 위에 배열하지 않는다(텍스트의 부분의 논리적 상호 의존성을 전제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구성하면 대부분의 경우 재래의 두 낱쪽 대칭형의 리듬과 다른 리듬, 즉 비대칭 리듬이 생겨난다. 비대칭은 기능적인 디자인의 리듬적 표현이다. 신 타이포그라피에서 비대칭이 지배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비대칭 형식은 그 논리성 외에도 전체가 대칭보다 시각적으로 효과적이다. 또 이동적인 대칭 형식은 우리들 자신 그리고 현대인의 운동적 표현이기도 하다. 타이포그라피에서 대칭의 안전성에 대신하여 오늘날 비대칭의 움직임이 나타났지만 이것은 생활 형태 변동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불안과 혼돈으로 끝나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질서는 비대칭적 디자인에서도 표현될 수 있고 또 표현되어야 한다. 이 디자인에서야말로 그 법칙을 안이 아닌 바깥에서 얻고 있는 대칭적 형식보다 우수하고, 보다 자연적인 질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더욱이 비대칭적 디자인 원리는 신 타이포그라피에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준다. 이러한 점에서도 신 타이포그라피는 단순한 외관상의 활자 변화 가능성 이외에 어떤 근본적인 변동을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맞추기 구성과는 반대로 근대 생활의 다양성에 대응하고 있다.
신 타이포그라피가 한쪽에서 구성상의 변동 가능성을 한 번에 늘렸지만, 다른 쪽에서는 건축예술 발달과 똑같은 수준으로 구성의 표준화를 추구한다. 반대로 과거 타이포그라피에서 형식은 하나밖에 없었지만, 모든 가능한 그리고 엄청난 구성 부분(활자의 종류, 장식 등)의 사용을 하용했다. 전달할 때 어떻게 하면 명쾌하고, 하나의 뜻을 가진 형태에 도달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항상 새롭고, 근원적인 개념을 갖고, 모든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명쾌한 사고를 함으로써 그때마다 신선하게 문제에 과감히 대처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해결책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계율은 즉물성卽物性이다. 즉물성이라는 것은 이전의 부수적인 것들을 배제한다는 외면적 형태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새로운 형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수식을 없애야겠지만 과거 형식을 완전히 없애는 것만으로는 무의미한 일이며, 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러한 기능적인 디자인이 몇 백 년 동안 계속된 장식활자의 지배를 대신할 수 있는 의미를 갖게 된다.
현대인은 장식의 남용을 금세기가 극복해야 할 표준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과거 시대가 극도로 장식을 남용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타이포그라피의 본질, 즉 전달의 인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신 타이포그라피의 본질을 단순히 굵은 선, 원, 삼각형 등의 사용으로만 해석한 사람이 많았다. 과거의 장식 활자에서도 이런 점은 마찬가지다.
단지 장식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진실로 합리적인 형식이 될 수는 없다. 단순히 장식성만을 없앤 과거 활자는 그것이 전적으로 장식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장식적 활자의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장식을 없앤다면 오히려 효과마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과거 타이포그라피는 형태상으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읽는 과정은 기능적이지 못했다. 가령 인쇄물의 윤곽을 한 번에 인식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정말로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읽는다는 것은 시선 운동을 전제로 한다. 신 타이포그라피는 독자이 시선을 하나의 낱말, 그 낱말 무리에서 다음 낱말 무리로 계속 유도할 수 있도록 크기의 차이, 강도, 공간에서의 위치, 색채 등에 의해 텍스트를 합리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는 대립하는 디자인을 채택함으로써 그 독자성이 가장 확실하게 나타난다. 대비의 가능성은 무수하게 많다. 크고 작음 명암, 수평과 수작, 각과 원, 평면과 입체, 폐쇄와 개방, 다색과 단색 등의 간단한 대립이 이미 조형상 시각 효과를 얻게 함으로써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무게의 차이가 큰 만큼 효과도 크며, 만일 사용된 활자 크기가 근접하면 효과가 불명확하다. 소수의 호수(보통 3호에서 가능한 한 5호까지)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작업이 간단해 진다는 의미에서도 바람직하다. 또한 명암, 크기 등의 대비는 항상 합리적일 필요가 있고, 그 내용에서도 일의적一義的 표현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히 비대칭 디자인에서 종이의 흰 바탕은 능동적으로 형태의 일부가 된다. 과거 타이포그라피의 전형적인 주요 형식인 책의 속표지에서는 종이는 극히 소극적인 역할밖에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형식에는 참가하지 않은 채 그저 흰 바탕 위에 검은 형태로 어울렸을 뿐이었다. 비대칭 형식은 바탕 공간에 대하여 다른 관계를 갖는다. 바탕 지면은(강하게 혹은 약하게) 조형 요소로서 참가하고 있고, 참가 비율은 그것이 의식적으로 강화되어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러나 어떠한 비대칭 형식에도 그것은 잠재하고 있다.
신 타이포그라피는 과거 ‘배경’이 주는 효과의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활용하여 흰 지면을 검은 글자나 평면 형태와 마찬가지로 같은 가치를 지닌 조형 요소로 인정하는 것이다. 신 타이포그라피의 압도적 효과에 대한 수많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커다란 흰 공간을 활용함으로써 얻는 바는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흰 공간을 설정하고 텍스트를 그 속에 압축해서 넣으려고 하는 것은 완전히 우리의 목적을 오해한 것이다. 논리적 관점에서 보면 물론 글자만이 중요하다.
색채도 형식과 마찬가지로 장식적으로 사용한 과거 타이포그라피와는 다르게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한다. 즉 특유의 심리 효과를 갖고 있는 개개의 색을 활용하여 일정한 활자 그룹, 또는 사진을 부각시키거나 약화시킨다. [136~141p]
4_1 글자체
- 옛날 글자체도 신 타이포그라피에서 새롭게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좋았던 옛날 시대’를 나타내고 싶을 때, 즉 타이포그라피에서 본래의 고전적 느낌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와 위트로서 혹은 산세리프 속에서 특히 시선을 끌 수 있는 요소로서 쓰일 때가 있다. [142p]
4_2 글자체의 표현 가치에 대하여
- 현대에 제작된 인쇄물은 어떤 것이라도 현대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어야만 하며, 과거 인쇄물 어떤 것이라도 현대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어야만 하며, 과거 인쇄물을 모방하면 안 된다. 이것은 글자체뿐만 아니라, 모든 구성 요소, 도판, 장정에도 적용된다.
모든 시대와 똑같이 우리들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글자체를 탐구해야한다. 우리 시대의 표정은 명쾌와 진실, 순수 형태로의 일반적 지향이다. 산세리프는 이러한 요청에 매우 가까운 글자체이며, 그러므로 현대의 글자체를 강조하기 위한 장래의 작업에 기반이 된다. 좋은 글자란 스스로를 가능한 한 명쾌하게 표현한다. [143p]
4_3 재래의 정서법인가, 일반적인 ‘소문자’ 서법인가?
4_4 흔히 나타나는 오류
4_5 사진과 타이포그라피
- 사진+산세리프! 이 둘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객관성과 비개인적 형식으로, 그것이 둘로 하여금 시대에 부합하는 수단이 되게 한다. 객관적 자체는 오로지 하나의 산세리프이고 우리들 환경의 객관적 묘사법도 단지 하나, 사진밖에 없다. 이리하여 개인적인 그라픽 형식, 수서문자手書文字 등 묘사하는 그림에 대하여 오늘날의 집합적 형식, 활자-사진Typo-photo이 등장했는데 이 둘의 종합을 우리는 타입포토Typephoto라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말하고, 쓰는 귀찮은 방법보다 훨씬 정확하고 빠르게 사진을 이용하여 표현할 수 있다. 이리하여 사진판은 시대에 맞고 더구나 분화된 타이포그라피의 구성 요소로서 활자나 괘선에 버금갈 수 있다. 타입포토는 오늘날 타이포그라피와 광고의 가장 우수한 그라픽 표현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직 여기에는 완전한 정당성을 갖지 않는, ‘전통적 관념’에 강하게 영향 받고 있는 타입포토의 대중적 형태(사진 신문, 사진 잡지, 일부 광고)가 그러한 관념에서 해방되고, 의식적으로 완전히 합시대적合時代的 디자인에 의해 현대의 문화 수준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146~147p]
5. 신타이포 그라피 이후
- 회화에서 이와 같은 변화는 거대한 힘으로 인상주의에 투사된다. 그 이후 더욱 가속화되는 속도와 끊임없이 전개되는 변화, 자주 대립되는 듯이 보이는 미술사조는 수동적인 경험자들에게 그들 시대의 양식 변화(일반인에게는 이러한 동향이 그렇게 보인다)가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속도를 내고 있다고 여겨지게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모든 미술사조들이 결코 양식(오늘날에도 여전히 성취하지 못한 총체적인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이 아니라, 이는 단지 평면회화를 구하고자 하는 화가들의 필사적인 시도이자 몰락하는 사회의 격렬한 몸부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적이고 해체적인(파괴적인) 이들 화가 세대의 성취는 오늘날 우리 작업의 본질적인 전제가 되었다. 새로운 시대는 지금 우리들이 그와 같은 출발점에 서 있는 것처럼 결코 하루아침에 시작되지 않는다. 그와 같은 변화란 끊임없는 믿음과 함께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151p]
타이포그라피 보고
새로운 조형
- 총체적인 예술 창작의 종합은 건축이며, 예술은 그 안에서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바우하우스의 첫 위대한 업적은 ‘아름다운’ 새로운 그림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1923년 9월 바우하우스 전시회에서 본 바이마르의 ‘암호른 주택Haus am Horn' 같은 견본 주택 건설이었다. 위에서 거론한 트로츠키의 뛰어난 책에서 발췌한 문장을 보자.
미술과 산업 사이의 벽은 무너질 것이다. 미래의 위대한 양식은 장식이 아니라 조형이다. 그러나 이것을 예술의 폐업으로, 기술 앞에 스스로를 차단해 버리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이상적인 대상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와 작업 방법에서의 숙련은 차치하고라도 여전히 상상력과 미감Geschmak이 필요하다. 우리는 상품을 생산하는 분야에서 예술적인 상상력이 ‘사물에서의 이상적인 틀’을 세우는 것이 ‘산업 문화의 전반적인 경향’과 일치하게 되는 것을 믿는다. 장식이 대상물 자체에 창작적인 덤으로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공방 미술의 청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먼 미래에도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모든 여타의 기술 분야들 간에 직접적인 공동작업이 전면에 내세워질 것이다.
미래의 예술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던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을 것이다. 추측컨대 사진과 영화가 점점 더 많이 사용될 것이다. 이미 많은 작업들이 이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파리에 사는 미국인 만 레이Man Ray(추상적인 사진), 유감스럽게도 최근에 죽은 스웨덴의 화가 바이킹 이글링Viking Eggeling, 독일인 한스 리히터Hans Richter와 엘 히러쉬펠트-막L. Hirschfeld-Mark(추상 영화, 반사적인 빛놀이), 모홀리-나기Moholy-Nagy, 페르낭 레제Fernamd-Leger(기계역학적인 영화)가 이 분야에서 작업했던 사람들이다. [155~156p]
구성주의자들의 프로그램
- 구성주의자들의 작업 매체는 Die Arbeitmittel der Konstruktivisten sind :
1. 실제 요소
기술적인 필연성에 의해 선택되고 가공되는 재료다.
2. 구축숙
창조되는 대상의 목적에 상응하는 재료들의 철저한 사용으로부터 발전된다.
3. 구성
극단까지 가는 조형 활동이다.
이것은 재료의 조합을 의미한다. 단지 그때그때의 학문적인 인식만이 구축술과 구성에 경계를 지을 수 있다.
물질적인 매체들은 Die Stofflichen Mittel sind :
1. 개괄하여 물질이다. 그것들은 원재로의 생산과 가공에서 겪게 되는 생성과 변화에 대한 지식이다. 그것의 고유한 특성, 경제적인 의미, 다른 물질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2. 공간과 빛에서 물질의 가시적인 형태이다. 그것은 부피(공간적인 확장), 표면, 색이다. 재료 자체와 그것의 가시적인 형태는 서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구성주의자들은 양자를 동일선상에 놓는다. [159~161p]
기본 요소적인 타이포그라피
- 1. 신타이포그라피는 목적을 강조한다.
2. 타이포그라피의 목적은 가장 짧고, 가장 간략하며, 가장 강렬한 형태로 이루어진 전달 수단이다.
3. 타이포그라피가 사회적인 목적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그에 사용되는 재료의 내면적인 조합(내용을 배열하는)과 외면적인 조합(타이포그라피적인 수단의 개별 요소를 연관시키는)이 요구된다.
4. 내면적인 조합은 타이포그라피의 기본 요소만으로 제한된다 : 이것은 글자, 숫자, 기호, 식자 케이스와 식자 기계의 괘선이다.
광학에 초점이 맞추어진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신타이포그라피의 기본 요소적인 매체에 정밀한 그림도 속한다. 그것은 사진이다.
기본 요소적으로 만들어진 서체는 모든 조합을 포함하는 그로테스크체이다(가는체mager-중간굵기체halbfett-굵은체fett-좁으면서 긴체schmal-그리고 넓은체breit.) 특정한 양식에 속하거나 지역적으로 제한된 특성을 띠는 글자들은 (고티쉬Gotisch, 프락투어Fraktur, 키르핸 슬라비쉬Kirchen-Slavisch) 기본 요소적으로 조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적인 소통 가능성을 부분적으로 제한한다. 메디에발안티크바체Medival-Antiqua는 오늘날 다수에게 통용되는 인쇄용 서체다. 이 서체는 계속적으로 사용되는 공방 활자에서 기본 요소적으로 조형되지 않았음에도 ‘가독성에서의 익숙함’이라는 장점 때문에 그로테스크체보다 선호되고 있다. 공방 활자에서 가독성이 높은 ‘기본 요소적인 서체’가 만들어 지지 않는 한 메디에발 안티크바의 비개성적이고 객관적이며 가능한 한 적게 튀는 형태(시대적이고 개성적인 특성이 최소한으로 표현되는)가 그로테스크체보다 선호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모든 대문자를 폐지하고 소문자만의 단독적인 사용이 이루어진다면 극단적인 절약이 될 것이다. 정서법은 미래의 글자로 만들어지는 모든 새로운 글자체에 의해 추천될 것이다. 포어스트만Dr. Porstman 박사의 저서『언어와 문자Sprache und Schrift』를 참조하라(Beuht 출판사, G.m.b.H.. Berlin SW19. Beuthstrasse 8, 가격 5,25 마르크). 글자는 소문자 쓰기를 통해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으며, 더 쉽게 읽혀지고 쉽게 배울 수 있으며, 이는 본질적으로 경제적이다. 예를 들어 왜 하나의 음 a에 두 개의 기호 A와 a가 쓰여져야 하는가? 하나의 음에는 하나의 기호만이 필요하다. 왜 하나의 단어를 위해 두 개의 알파뱃인가? 만약 절반으로 동일한 것을 이룰 수 있다면, 어째서 두 배로 많은 기호들이 존재해야 하는가?
인쇄에서 내용의 논리적인 짜임은 기존의 미학적인 관점을 고려하지 않고, 상이한 크기와 형태의 활자를 사용함으로써 시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도록 디자인 될 것이다. 또한 인쇄되지 않은 여백도 인쇄된 형태와 마찬가지로 조형 요소이다.
5. 외형적인 조합은 대립되는 형태, 크기, 강도 (그 값들이 내용으로부터 기인해야만 하는)의 사용에 의해 얻는 강력한 대립(동시성)의 조형(구성)과 포지티브(색이 있는)형태와 인쇄되지 않은 네거티브(흰바탕의) 형태의 관계로부터 얻는다.
6. 기본 요소적인 타이포그라피 디자인은 주어진 쪽자, 낱자, 문장의 논리적 이면서도 시각적인 관계들을 만든다.
7. 신타이포그라피의 강렬하고 센세이셔널한 효과를 위해서는 수직과 사선의 문장 배열을 사용할 수 있다.
8. 기본 요소적인 디자인에서는 모든 장식의 (예를 들어 두껍고 섬세한 괘선과 같은 장식적인 선도 마찬가지다)사용을 배제한다. 선과 그 자체로서 기본 요소적인 형태들(네모, 동그라미, 세모)의 사용은 반드시 전체 구성에 근거해야 한다. 기본 요소적인 형태의 장식적이고, 공예적이며, 사색적인 사용은 기본 요소적 조형과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9. 미래에는 그 자체 만으로도 모든 ‘타이포그라피 인쇄물’의 조형을 가능케하는 독일공업기준위원회의 규격화된 종이가 신타이포그라피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참고 문헌 : 프로트만 박사의 『규격화된 서식과 실생활의 도입Dinformate und ihre Einfuhrung』Selbst출판사 Dinorm, Berlin NW7, Sommer-strasse 4a, 가격 3마르크
특별히 A4(210x297cm)형식은 모든 사무용 서식과 여타 서식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원래 사무용 서식은 규격화되어 있다. DIN 676, Beuth출판사, Berlin SW19, Beuthstrasse 8, 가격 0.40Mark, 독일공업규격지 ‘Papierformate'는 476번이다. 독일공업규격 DINformate지는 얼마전부터 실제 생활에 적용되었다. 이 책자도 독일공업규격에 맞추어 제작되었다.
10. 타이포그라피에서 기본 요소적인 디자인이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본 요소적인 조형’에 대한 개념도 기본 요소들이 변화와(예를 들어 사진과 같이 타이포그라피디자인에서 새로운 요소의 발견을 통해)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163~167p]
- 얀 치홀트는 판짜기 규칙과 일련의 격자 체제grid를 통합하였고, 이 과정에서 비협조적이고 때로는 반항적이기까지 한 인쇄공들에게 강제적으로 그의 방식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의 꺾이지 않는 노력은 영국 서적의 질을 현저하게 개선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는 얀 치홀트의 테크닉이 여러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고, 그들이 곧바로 모방한 것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7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