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란 무엇인가: 사물·장소·메시지

지은이 / 노먼 포터 | 옮긴이 / 최성민

by Joong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사물·장소·메시지
초판 3쇄: 2009년 6월 8일
지은이: 노먼 포터
옮긴이: 최성민
펴낸이: 윤영노
펴낸곳: 스펙터 프레스
주소: 우편번호 446-913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1246-1 (202호)


- 건축은 체계다. 당신은 제도판 위의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체계를 세우는 사람이다.
르 코르뷔지에 [9p]


- 현대 산업 사회에는 네 가지 주요 특징이 있는데, 복음서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은 사대 죄악이라고도 부를 만하다:
1 지나치게 복잡하다.
2 탐욕, 질투, 허욕과 같은 지옥에 떨어질 죄악을 꾸준히 누적시키고, 그에 의존한다.
3 대부분의 노동에서 내용과 존엄성을 파괴한다.
4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띤다.
나는 대부분의 산업이 사적 이윤을 추구하면서 저 모든 죄악이 한층 악화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오늘날 벌어지는 최악의 착취는 “문화적 착취” 즉, 못 배우고 힘없는 사람들의 강렬한 문화적 욕구를 놓고 일어나는 파렴치한 상업적 착취다. [12p]


- 해묵은 만큼 든든한 “포괄적 관점”을 취해 보면, 디자인 작업을 세 범주로 편리하게 나눌 수 있다: 공업 디자인 (사물), 환경 디자인 (장소), 의사소통 디자인 (메시지). 물론 이 범주들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고, 항상 그 같은 명칭으로 불리지도 않는다. 이 분류법은 보다 미세한 차이를 - 예컨대 산업용 장비 디자인과 가정용 소비재 디자인의 차이를 - 무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출발점으로는 쓸 만하다. [15p]


- 당연한 말이지만, 미적이고 감각적인 자유가 더 많이 허용되는 디자인 기회일수록 “순수 미술”에 가까워진다. 허용치가 작을수록 디자인은 과학에 가까워지고, 그 경우 미적 “선택의 폭”은 몹시 좁아진다. [15p]


- 하나의 전문 분야 안에서도 디자이너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을 많다. 기능을 중심으로, 지휘자, 문화 확산자, 문화 생성자, 보조자, 기생자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휘자는 일을 받아 오고,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하도록 조직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사람이다. 문화 확산자는 광범위한 관심사에 든든한 기반을 두고, 넓은 영역에서 효과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문화 생성자는, 골방에 틀어박혀, 일반인보다는 디자이너들에게 더 유용한 아이디어들을 만들어 내는 외골수다. 보조자는 보통 초보자들이지만, 행정이나 도면 작성 등을 담당하는 많은 사람도 이에 속한다. 기생자는 다른 사람의 작업에서 겉만을 베껴 잘 사는 사람들이다. 첫 네 집단은 상호 의존적이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한 가지 덧붙여야 할 점은, 어떤 디자이너든 살다 보면 역할의 변동을 겪는다는 사실, 그리고 규모가 큰 디자인 회사에서는 각자의 능력이나 기질에 따라 보다 항구적인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기도 하나, 그 밖의 경우에는 심지어 하나의 과제 진행 과정에서도 역할 변동이 일어나곤 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앞서 밝힌 역할들 사이에 우열관계란 없는 셈이다. 기생자는 예외로 쳐야겠지만, 사실 그들의 수는 너무나 많다. [16~17p]


- 2 디자이너는 예술가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디자이너의 업무를 꽤나 자세히 설명해야 하는데, 보다 먼저 질문을 둘러싼 맥락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모든 나라나 문화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는데, 이는 현재의 문화 안에서 디자인이 작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장애는 더 널리 퍼져 있다. “순수 미술”과 “디자인”을 같은 단과 대학에서 가르치고 (보통) “건축”은 거기서 제외하는 관행은, 흔한 만큼 불편한 현실이다. 이렇게 문제 많고 (이제는) 근거도 없는 영역 불할의 역사적 배경을 이 자리에서 검토하기는 적당치 않다. 여기서는, 음악, 무용, 문학, 영화처럼 심리적, 감각적, 정신적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분야와 함께 회화와 조각을 공부한다면 보다 현실적인 상황 판단이 가능하리라는 지적만 해도 충분하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건물 디자인처럼) 우선 복잡한 사회적 제약 속에서 사람의 신체적이고 부수적인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활동, 또는 그보다도 더 소박하게 사람을 돌보고 즐겁게 하는 사소한 활동들을 구별해 내기도 쉬워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인공물은-회화, 의자, 쓰레기통을 막론하고-어쩔 수 없이 문화의 총체를, 그리고 문화적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숨겨진 전제들을 상기시키고 또 그것들에 호소한다고 말해도 좋다.(기본적으로, 의식주의 조건이 해결된 상태에서, 나머지는 결국 선택의 문제로서, 그 우선순위는 늘 재검토해 보아야한다.) 뒤에 이어질 내용과 관련해 분명히 밝혀야 할 점은, 만약 “순수 미술”과 “디자인”이 단지 미술 대학에서 통용되는 이분법을 가리킨다면, 그런 토대에서는 만족스러운 경계선을 긋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20p]


- 디자이너는 타인을 통해, 타인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아니라 타인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밝혀 준다. 그런 측면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정확한 진단(문제 분석)과 적절한 처방(디자인 제안)을 책임지는 의사와 비슷한데, 그렇다고 이 비유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점은, 디자이너는 간접적으로 일하고 소통한다는 점, 그리고 그의 창조적 작업은 궁극적으로 도급업자, 제조업자, 그 밖의 집행인에게 전하는 지시의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이다. [21p]


- 이런 이유에서, 디자이너는 대단히 “문제” 의식적이다. 그가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은, 비록 과학만큼은 복잡하지 않더라도, 문제를 분석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정보를 분류하고, 정리하고, 연관시키는 능력에 더해, 그는 생생한 상상력은 물론 엄정한 판단력과 분별력도 갖춰야 한다. [23p]


- 드로잉은 (일러스트르레이션을 제외하면) 결코 디자인의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드로잉은 제작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고, 그 내용은 적절한 의사소통이라는 목적에 다라 엄밀히 제한된다. 이 점이 바로 순수 미술 드로잉과 디자인 드로잉의 명백한 차이인데, 학교에서 이런 사실이 흔히 간과되는 까닭은, 디자인 과제가 대부분 가상적 성격을 띠고, 따라서 드로잉이 유일한 결과물이 되고, 그러다 보니 드로잉에 최종 산물의 허구적 지위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드로잉이 건성이거나, 엉성하거나, 어떤 면에서건 불충분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속성이 철저히 합목적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디자이너도 자기만족을 위해서나 나름의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마 애착을 갖고 면밀하게, 충분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좋은 드로잉을 해야 할 것이다. 오직 이런 의미에서만 디자인 드로잉은 “자기표현적”이다. [23~24p]


- 디자인의 모든 단계에서 토론, 문답, 논쟁이 일어난다. 때로 디자이너는 의뢰인 앞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주장하고 옹호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의뢰인은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를 뿐만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디자이너보다 자신이 문제를 더 안다고 - 그 문제 해결을 디자이너에게 의뢰했음에도-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 제안은 의뢰인이 익히 아는 관건들의 세계와 뒤섞인다. 의사소통 매체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드로잉이나 모형에는 보고서 등 문서를 첨부하기도 한다. 디자이너는 작업과 직접 연관된 어휘를 일관성 있게 써야 한다. 아이디어를 형성하거나 논의할 때, 상황을 평가할 때, 드로잉을 설명할 때, 명세서나 편지를 쓸 때, 또는 보고서를 작성할 때 모두 그런 언어가 필요하다. 디자인 작업에서 이 측면은 대체로 과소평가된다. 명쾌하고, 날카롭고, 설득력 있는 언어구사 능력은 디자인 작업에서 늘 중요하다. [24p]


- 현실적으로는, 디자이너의 삶 또한 다른 사람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어수선하고, 지저분하고, 실수토성이다. 무대 뒤에서뿐만 아니라, 때로는 무대 위에서도 그렇다. 모든 전문직에는 거칠게 정의된 공적 임무들이 있고, 그 임무를 되도록 다하기 위해 공인된 규칙들이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디자인 작업의 10퍼센트가 영감에 의존한다면 나머지 90퍼센트는 대단히 고단한 노동이라는 사실을 - 별로 놀랍지도 않은 그 사실을 - 고려할 때, 언제나 지침을 분명히 이해하고,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최선으로 활용하려면, 어느 정도 정리된 절차가 필요하다. [25p]


- “순수 미술”은 불쾌할 정도로 고상한 용어지만, 전공 안내서나 미술 대학에서는 흔히 눈에 띄는 말로서, 일반적으로 회화, 조각, 판화, 사신을 지칭하며, 이 책이 다루는 다양한 디자인 분야를 일컫는 “응용 미술”과 구별된다. 과학에서도 순수 과학과 응용 과학이 구별된다는 주장은 의심스럽다. 마찬가지로, 회화, 조각, 공업 디자인, 건축이 모두 “미술”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주장 역시 믿기 어렵다. [26p]


- 어떤 디자인의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은 그 디자인 목적을 알아야만, 때로는 정황도 알아야만 어렵지 않게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판단을 꺼릴 이유는 없다. 누구에게나 “저 제품의 성능이 훨씬 좋은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나는 이 예쁜 물건이 더 좋아”라 말할, 유보할 수 없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40p]


- 모든 디자인 결과물에는 추상에 실질을 더해 주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빠지기 마련이다. 바로 실현과 사용이다. [41p]


- 디자이너라면 디자인을 하는 (그리고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에 조건처럼 끼어드는 소유관계를 의식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더 나은 사회”가 도래하면 갑자기 좋은 디자인을 하기가 마술처럼 쉬워질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세상만을 꿈꾸며 디자인하기를 멈추는 디자이너는 아마 결국 아무것도 디자인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사람은 행동에 좌우된다. 여기서, 이상주의적인 학생은 “소수는 예술을 하고 나머지는 먹고산다”는 말에 담긴 약간의 진실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 사실 그 말은 일종의 캐리커처로서 예술뿐 아니라 과학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 적용할 만하다. 다른 무엇보다 일을 앞세우는 태도는, 어떤 분야에서건 철저한 숙달에 필요한 조건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꽤 고달픈 삶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45p]


- 디자이너에게는 문화의 조건들에서 도망칠 특권은 없어도, 그에 대해 무엇이든 할 특권은 있다. [45p]


- 만약 사회가 값싼 만족을 지향한다면, 디자이너에게는 그에대해 솔직해질 의무가 있다.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정해야 한다. 가령, 진정한 필요는 무시하고, 대신 대체로(그저 대체로) 사적 또는 공적 이윤 추구를 위해 새로움, 자극, 지위에 대한 탐욕과 갈망만을 인위적으로 고무하는 사회라고 하자. 그렇다면 결국 그것이 바로 디자이너 자신의 본질, 그 자신의 사회다. 그도 거기 속하는 이상, 무엇이 최선의 행동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가 물려받은 세상의 디자인 언어를 뒷받침하는 얄팍하고 가식적인 현실에 놀라서는 안된다. [46p]


- 하지만 미래 속에서 사는 것은 여전히 해결책이 못 된다. 모든 기술은 현재에 대한 깊은 헌신으로 보살펴야 한다. 창조성은 이 외관상의 모순을 풀어 줄 방정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작품은 시대의 조건들 안에 뿌리를 두지만, 그런 조건에는 특정한 기술적 자원뿐 아니라 의식, 꿈, 소망도 포함된다. 그런 작품은 과거를 존중하고 실제로 미래를 창조한다. [46~47p]


- 하지만, 그런 의미의 탐색이 단지 고지식함을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았던 것은, 현대 운동의 두 번째 외연, 그리고 그와 관련된 보다 긍정적인 아홉 가지 행동 원칙 덕분이었다. 이들은 사회적 원칙으로서-디자인은 업무 예술이라 해도 좋다-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가 죽음을 향한 질주에서 벗어나려면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 인간관계의 일정한 변화를 예시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마 현대 운동은 예언적이었다고, 또 그 노력은 상업주의의 복잡한 기제에 포섭되어 배반당했다고 (잊혔다고) 할 만하다. 그 원칙들은 다음으로 요약된다.
첫째는 자기 결정의 원칙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 생성의 원칙을 찾아내려는 노력이다. “잘 정리된 문제는 절반 이상 풀린 셈”이라는 말이나, “디자이너는 제약을 기회로 바꾼다”는 말에 담긴 뜻이다. 제대로 진행되면, 이 원칙은 과제 자체가 점점 더 확실하고 유창하게, 충분한 디자이너가 실제로는 과제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대신 적당히 한다. 임의로 부과된 형태는 언제나 잡음이 많거나 어떤 식으로든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일반적인 디자이너-의뢰인 관계에 아주 잘 적용되는 이 원칙은, 탄력성 또한 높아서, 현대 운동을 조형적 측면에서 파악하는 반[反]디자인을 (이에 대해서는 7부를 보라) 포함해, 상당히 다양한 태도를 포용할 수 있다.
둘째는 합리적 동의의 원칙이다. 다시 말해, 끝난 일은 본질적으로 조리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drl에 언어의 문제가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이 원칙은 일하는 방식에 대해 “생성적” 성질을 띠는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꺼진 불이 남긴 재보다는 지속적 의도라는 연료가 더 중요하다.)
셋째는 한 과제의 모든 부분이 각자 제 몫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각인은 능력에따라...”) 이는 특권이나 지위가 아니라 기능적 분화에 따른 구별과 강조를 암시한다., 이 원칙에는 다른 원칙들이 결합되어) 비대칭성, 투명한 구조, 또한 앞서 언급한 부정 명령문이 일부 뒤따른다. (예컨대 의자에서, 불안정한 구조를 보강하기 위한 접착 부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또는, 반대로, 숨겨진 구조가 아니라 접착 부위에서 파생한 구조를 세워야 한다.)
넷째 원칙은, 이윤 창출이 아닌 사용에 최대한 좋은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윤이 없다면 디자인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 그에 따르는 타협은 원칙에 부합하기는커녕 오히려 어긋난다. 현대 운동은 최적의 디자인이 대량 생산에도 적합하다고 믿는 정치적 순진성 때문에 (정당히) 비난을 받곤 했다. 사실은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수요 촉진을 위한 마케팅 전략에 휩쓸려 사라지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상상력 있게 탐구한 예로서, E. C. 라지의 소설 ≪공중의 설탕≫은 읽어 볼 만하다.
다섯째 원칙은 익명성이다. 이는 질 좋은 물건을 저가로 양산하려는 노력으로 적절히 표현된다. 좀 더 부수적인, 어쩌면 보다 트렌디한 쪽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중고 의자나 청바지, 빨래집게 등을 - 군화는 굳이 말할 것도 없고 - 좋아하는 것에도 그런 측면이 있다. 어떤 경우든 중요한 요건은 개별체를 유효한 보편체의 특수한 예로 보는 태도다. 이 원칙은 또한 희소가치 덕분에 형성된 예술품에 대한 암묵적인 공격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존 버거의 저작들을 참조하라.) 보다 확장된 요건으로는 부적절한 부분의 배제가 있는데 (또한 이를 위해서는 셋째 원칙의 특수한 응용 즉, 일반 요소와 구성 요소의 구별이 필요하다), 그로써 특이해 보이려 떠는 법석을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그러면 인간은 사물에 대한 고착에서 벗어나, 아마도 보다 진정한, “진실된” 특이함을 누리게 된다.
그럼으로써 단순히 특이하기만 하던 것이 진짜 개성이 된다. 그래서, 저만의 (수여 받은 지위와 구별되는) 독특한 점을 발견함으로써, 자기 초월을 향한 길이 열린다. (부버의 ≪사람의 길≫은 이 주제를 시적으로 파헤친다.) 보다 평범한 수준에서, 이 원칙은 (칼, 포도주 잔 등등에서) 단품보다 “세트” 또는 시리즈에 대한 관심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주의 깊은 독자라면 이 원칙이 제일 취약하고, 타락하기 쉽고, 오해받기도 쉽다는 점을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찻주전자 보온 커버와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빼앗긴 할머니의 심정이나, “암약하는 간첩 색출” 같은 구호를 떠올려 보라.)
여섯째 원칙은 (모두가 느끼는 소외감에서 자라난) 새로운 토속성에 대한 갈망이다-민속적이고, 토착적이고, 지역적이고, 자기를 덜 의식하는 디자인 언어와 결합하려는 욕망이자, 공간에 장소성을, 유동성에 정지와 위치의 느낌을 더하려는 욕망이다. 보다 밝은 면에서, 이 원칙은 단순하고 기능적인 디자인, 흔히는 공학적 색채가 강한 디자인에 (예컨대 수로 건축과 구조, 창고, 풍차, 1850년 이전에 지어진 작은 주택에) 관심을 보인다. 대개-재료와 기법에서-지역 특성을 반영하는 한편, 제어가 쉬운 작고 편안한 크기를 선호한다. 현대 운동에서 이 원칙은 언제나 뚜렷한 흐름이었지만, 초기에는 외견상 반대되는 (즉, 모순되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 감상적인 공예 부흥 운동 등의 허구적이고 인위적인 토속성에 대한 완강한 저항으로 표현되곤 했다. “기계의 교훈을 습득”하지 않는 이상 극락을 향한 지름길은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루이스 멈퍼드가 ≪기술과 문명≫에서 제기한 관점이다.) 되돌아가려면, 손쉬운 해답에 (예컨대 촛불이나 가죽 공예품에 대한 열광에) 속지 말고, 황무지를 통과할 각오와 신념을 지녀야 한다. 물론 흥미로운 점은, 이런 반감의 일부가 현대 운동의 선조 격인 미술 공예 운동으로 거슬러 간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는 “대안 디자인”의 영역에서 (6부를 보라) 현대 운동이 그 근원과 타협하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덕택에, 이 원칙에 자신감이 더해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더 이상 오만한 현대주의의 성채 뒤에서 “잃어버린 부족의 지혜를 수호”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현대 운동이 크게 오해를 받았던 것은 분명하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낭만주의자는 가장 열렬한 고전주의자라고 누가 그랬더라? 현대 운동은 곧 고층 건물이라는 (또는 본질적으로 그랬다는) 무지한 주장을 놓고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엇ㅂ다.
일곱째 원칙은 아마 제일 중요하고 (하지만 “중요”하다는 표현은 좀 거창하게 들리니, 오히려 형성적이라는 편이 낫겠다) 우리 문화의 다른 분양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과 제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이 원칙은 자기 충족이나 자기 완비와 대조되는 관계의 탐색, 그리고 모든 수준의 디자인 결정과 관련해 그 말에 담긴 모든 의미를 가리킨다. 아마 제일 두드러지는 영역이 바로 조형적 관계라는 까다로운 영역일 텐데, 이 원칙을 일단 이해하기만 하면 완전히 새로운 작업 방식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느닷없이 드러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부모님께 “전형적인 현대 디자인”만의 특징을 설명해야 한다면, 이 원칙만큼은 반드시 기억해내야 한다. 따라서 이 원칙은 탐색의 원칙이자, 준거의 원칙이자, 설명의 원칙인 셈이다. 5부 등에도 이와 유사한 논의가 있다.
여덟째는 실존적 원칙이다. 다른 것은 없다는 원칙으로서, 있는 것은 일단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일 파악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사실은 제일 현실적인 원칙이기도 하다. 여기서 임시변통, 즉흥적 대응, 반[反]제도적 태도가 나온다. 한편으로는 절대성의 독재를 불신하는 건강한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트럼프의 조커 같은 녀석이다.
마지막으로, 아홉째는 질량을 에너지와 관계로 변환하자는 원칙이다.(무용의 원칙이기도 하다는 점이 썩 어울린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곱째 원칙을 춤으로 춘 것이다. 비록 공감할 바가 없지는 않지만, 프루동처럼 극단적으로 (“사유 재산은 도둑질”)나갈 필요는 없다. 또한 반도체 칩이 물질의 무게에서 인류를 해방시켜 주리라 믿을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다 하지만 이 원칙은 에너지의 원칙으로서, 새로운 삶의 탄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는 또한, 일리히의 지적을 따르면, 일종의 성스러운 찬양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세 가지 부수적인 원칙들이 -예컨대 표준과 표준화에 대한 원칙이- 있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49~53p]


- 우리 문명은 여러 지옥들을 가공해 냈지만, 자발적 예속의 영역에서는 대중 음악 라디오 또는 그에 덤으로 넉넉히 얹혀진 몇몇 TV 광고를 당할 것이 없다. 몸짓과 감탄사로 이루어진 언어는 언제나 어린애 같은 언동으로 기운다. 이는 그 온기의 척도이기도 하지만, 또한 불완전함의 척도이기도 하다. [56p]


- 하지만, 방법론과 문제 해결을 지나치리만큼 심각하게 취급하는 것이 위험하다면, 기술적·기능적으로 복잡하거나 까다로운 작업에서는 무작위적인 “직관적” 접근법도 믿을 수 없기로 악명 높다. 진단 기법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결과물은 객관성과 깊이 모두를 결여하기 쉽고,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보이지 않는 저지선을 뚫는 데 실패해, 빈약하게 합리화된 자아의 투영에 그쳐 버리기도 쉽다. 또한, 비록 방식은 비뚤어졌어도 마음은 올바른 자리에 있다고, 방법론을 변호할 수도 있다. 비록 코끼리 몸뚱이만 한 노력의 결과 쥐꼬리만한 쟁점을 내놓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기회를 “문제”로 오인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 노력만큼은 제대로 세상을 향하고 있다. 즉, 세상에 봉사하려는 노력이다. [59p]


- 물론, 자기만족을 위해 작업할 때는, 자유롭게 작업 조건을 정할 수 있다. (아마 이 디자이너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문에 맞춰 작업할 때보다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작업일 뿐이다. [60p]


-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는 여러 제약 조건을 작업의 지지대로 삼는 일에 익숙하다. 그들을 제거하면, 작업은 마치 기어가 풀린 엔진처럼 공회전하거나, 가속을 해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경우 과제의 기준을 잡고 그에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바로 작품의 삶을 (크기, 기능, 재료 등 모든 부문에서) 부조리에 투영한 후, 하려는 일의 테두리 안으로 다시 끌어당기는 것이다. [60p]


- 디자인은 훨씬 넓은 범위에서 책임 있는 결정을 요구한다. 의뢰인이 당신에게 의자를 주문했지만, 상황 분석 결과, 의자가 전혀 필요 없음이 밝혀졌다고-즉, 필요성이 잘못 상정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당신이 검토하는 것은 누군가가 자리에 앉는 상황이다. 디자이너는 언제나 상반되는 두 가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의자”라는 구체적 개념과, 그와 반대로 “앉기”라는 일반적 개념이다-익숙하고 구체적인 경우에서 이탈해야만, 디자이너는 맥락과 의미를 신선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경우, 도출되는 결과는 어쩌면 “의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일 수도, 그와 전혀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새로운 관계가 드러나 쟁점 자체가 바뀌는 경우다. [62p]


- 디자이너는 “물건” 자체를 디자인하지 않고, 오히려 가장 적절해 보이는, 그리고 해답보다는 오히려 꾸준히 문제를 제기할 조치들을 추천하고 주장한다. 또는 잠정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다. 잘 제어된 실험들을 통해 주어진 공간에 대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내고, 그럼으로써 차후에 마련할 보다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해결책을 위해 조금씩 증거를 쌓아 나간다. 이런 과정에서 상황의 상수들은 대체로 행동과 기대의 상수들로 점차 바뀐다.-나머지 변수들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64p]


- 가령 집 안의 모든 가구를 (또는 집 전체를) 조립식 부품으로 만들었다고 치자. 거주자는 아마 더 좋은 조합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늘 받을 것이다. 고정된 환경이 지니는 가치를 이해하려면, 이탈리아의 일부 언덕 마을을 검토해 볼 만하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허용하는 자유는-일부 신념 체계와 마찬가지로-엄격하게 한정된다. 그것은 또한 (가장 동물적인 욕구인 세력권의) 인정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전제되는 것은 약간의 필연성, 소속감, 역사 (따라서, 미래로의 연속성), 그리고 유기적인 총체의 경험으로 응집되는 완만한 누적 과정이다. 토속성이 뜻대로 동원할 수 있는 조형 양식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토속성은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것으로서, 쉽게 만들어 낼 수도 없다. 그러나 토속적 형태에 대한 연구는 단지 철학적인 위안이 아니라, 정신과 감각의 기쁨을 위한 토대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단순성을 추구하되 믿지는 마라”에 가깝다. 아무리 디자인이 훌륭해도, 새로 지은 사무실 블록에는 그런 자산이 없다. 그런 실패는 그 건물들이 섬기는 사무 노동이나 반복 업무와 일부 (하지만, 슬프게도 오직 일부만) 관계가 있다- 즉, 에너지를 무익하게 낭비하는 사회와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딱딱한 건축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사회 개선론적 전술이 없지는 않고, 로버트 소머의 ≪비좁은 공간≫은 그 전술들을 다룬다. [65p]


- 빼어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과 그 아이디어를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조차, 디자이너는 꽤 엄밀한 사유는 물론, 그 사유를 진전시키고, 촉발시키고, 정돈하고, 제어하기 위한 온갖 의사소통과 그 밖의 기법들에서 자유롭지 모하다. 잘 알려진 대로 (또는 마땅히 알려져야 하는 대로), 어떤 주장이 단순 명쾌한 덕분에 설득력을 띤다면, 이는 보통 누군가가 숙제를 제대로 한 덕분이다. 가장 경제적인 디자인 이면에는 가장 힘든 준비 과정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보다 절도 있는 전시 디자인에는 (예컨대 박물관 전시에는) 즉흥성의 여지가 별로 없고, 따라서 디자인과 관련된 모든 요소들을 극히 신중하고 균형 있게 가늠해야 한다. 주로 정보를 전달하는 전시의 경우에는 단지 지루함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이 쓰이기도 하고, 그 결과 소통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저울질은 일반적인 디자인 문제의 범위에서 중간 지대에 속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전시 디자인이 비교적 자유로운 영역인 것은 사실이다. 많은 경우, 자신감을 갖고 목적을 잘 실천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65~66p]


- 이런 사례는 디자이너들을 분야별로 격리해 교육시키는 논리가 얼마나 미심쩍은지 말해준다. “평면”과 같은 용어의 남용 역시 주의해야 한다. 과연 전시를 평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가? 말 나온 김에, 카탈로그나 상업 인쇄물은 과연 평면적인가? [66p]


- 정규 교육 체계의 일반적 속성을 고려할 때, 일부 대학에 만연해있고, 때로는 이해력보다 더 열성적으로 평가 위원이나 검정 기관 등의 지지를 받는, 일반적이고 비속한 신앙 하나를 지적해 둘 만하다. 바로 모든 디자인 결정은 본질적으로 “신선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드러내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작업은 반드시 “거칠어야” 한다는-넓은 영역에 걸친 고민의 흔적이 드러나야 한다는-믿음이다. 이런 관점은 부분적으로 중등 교육에서 당연시되는 경쟁 원리가 물려준 유산으로서, 거의 모든 부문에서 고등 교육을 괴롭히고 있다. 그런 사고는 교육과 “현실 세계”의 심각한 불일치 즉, 학위 취득의 투사적 이미지와 디자인 실천의 조건을 혼동하는 경향과도 관련이 깊다. [69p]


- 세상 만물을 끊임없이 다시 만들고 다시 지어야 한다는 생각은 참 어리석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일을 하면 학생들은 어딘지 모자란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 허세는 반드시 엄청난 인간적 에너지의 낭비와 상당한 실망을 낳는 한편, 우리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을 떨어트린다. 건물은 되도록 새로운 용도에 맞춰 개조하는 편이 낫다는 사실이 서서히 인정받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옷을 재활용한다. 개선, 갱신, 또는 단순한 소생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여전히 많다. [71~72p]


- 마케팅 정책, “제품 현황”, 예측 수요 등이 바로 소매 시장을 지배하는 요소들이다. 사용의 맥락은 존재하지 않고, 수요와 공급의 작용을 통한 간접적 측정 외에는 알아낼 방법도 없다. 사실상 가구는 판매 정책을 세우는 점포 구매자들을 위해 디자인된다. 따라서 디자인이 해마다 새로운 수요를 자극하기 위해 스타일에 의존하는 것도 불가피하다. 보다 전문적이거나 디자인을 지향하는 매장에서는 가능성의 폭이 좀 더 넓어지고, 일회적인 영역에서는 당연히 극적으로 넓어진다-디자인의 조형적 혁신이 일어나는 곳도 바로 여기다. [73p]


- 제약들을 피하거나 우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수용하고, 잠재성을 판별하고, 그 잠재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앞서 말한 대로, “제약을 기회로 바꾸는 활동”은 디자인의 정의로도 나무랄 데 없다. 하나의 객체로 알아볼 수 있는 찬장은 없어도 좋고, 그 기능 역시 새로운 관계 속으로 사라져도 좋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가능케 하는 데만도 얼마나 많은 경제적 양해를 전제해야 했는지는 기억해야 한다. [75p]


- 첫째, 디자인 기회의 폭은 너무나 넓고, 디자이너의 타고난 적성 역시 너무나 다양하므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업에 접근하는지를(또는 접근해야 하는지를)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은 무분별한 짓이다. 둘째, 분석적 사유가 학제적 통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실제 디자인 과정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 디자인 작업에서 친숙하고 즐거운 단계 즉, 과제의 요건과 가능한 해답이 갑자기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는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확실히 그런 도움이 필요하다. 셋째, 이런 사유는 문제 해결 절차들과 함께 디자인 작업의 자연스러운 일부지만, 디자인 범위의 중간 지대(1부를 보라)에서 보다 엄밀한 방법은 아마 -일부 영역에서는 결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디자인 절차건 그 실질적인 생산성은 디자이너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절차는 오직 그 절차를 밟는 사람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쓸 만한 절차일수록 일상적인 판단에 가까워진다. [77~78p]


- 최악의 오류는 실질적인 면에 전념하지 않고 “방법론”이나 “프로세스”같은 개념으로 도피하는 것이다.[79p]


- 예술가
예술가는 풍성하고, 다양하고, 불안한 사도.
진짜 예술가는 유능하고, 실천적이고, 능숙하고,
늘 마음과 대화하고, 정신으로 물건을 대한다.
진짜 예술가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끌어내고,
기쁘게 일하고, 차분하게, 기민하게 만들고,
진짜 톨텍 인처럼 일하고, 사물을 구성하고, 빈틈없이 일하고,
재료를 정돈하고, 꾸미고, 조절하고, 발명한다.
썩은 예술가는 닥치는 대로 일하고, 사람들을 비웃고,
불분명한 물건을 만들고, 사물 안면의 표면을 붓질하고,
부주의하게 일하고, 사람들을 속이는, 도둑놈.
톨텍 족의 시. 스페인어 원문을 데니스 레버토프가 영어로 옮김. [81p]


- 디자인 장인은 완전히 다른 종자로서, 보통은 제도판과 사무실 모두와 거리가 멀다. 또한, 마케팅과 유통은 물론 소규모 제작에도 직접 참여하곤 한다. 장인은 블루칼라 노동자로서, 작업복을 입고(또는 입어야 하고), 머리카락에 먼지를 묻히고 다니고, 손이 더러운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고위 경영자와 구별되는 노동자의 행동양식을 공유하지만, 수입은 적고, 작업 시간은 길고, 작업에 임할 때는 업계 사람이라면 제대로 밝히지 못하거나 심지어 공감하지도 못하는 목표와 기준을 내걸곤 한다. 따라서, 같은 노동자들 아시에서도 장인은 약간의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일정한 수준에서 그가 노동자 문화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업가와 화이트칼라 디자이너들(특히 건축가들)에 대해서도 불편하게 느끼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이유는 다르다. 대학교수와 디자인 이론가는 그가 제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인데-하지만 장인들도 흔히 대학에 출강한다-거기에는 아마 그들이 실기 능력 부족과 경제적 특권이 뒤섞인 거슬리는 언어를 구사한다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비슷한 이유에서 부유한 좌파도 인기가 없다. 장인은 “공장”에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 선반 경력이 없거나 기계에 무관심하면서 유세를 떠는 사람은 간단히 자격 미달로 치부되고, 무시당한다. [83p]


- 좀 더 만만한 수준에서, 장인의 삶이 불확실하고, 고단하고, 곤궁함에도, 몇몇 디자이너들이 그런 삶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제일 이해하기 쉬운 이유로 단순한 호감이 있다-연장과 재료를 좋아하고, 그런 작업 방식의 진실성을 좋아하는 마음이다. 뒤집어 말하면, 최종 산물에서 떨어져 일하기를 꺼리는 마음, 문서 업무를 싫어하는 마음, 사무실이나 그 밖에 회사 생활을 연상시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불신하는 마음이다. 낭만적으로 보이기 십상인 작업실의 매력에 균형을 맞추는 의미에서, 어떤 작업실이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리고 어떤 디자이너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규모상의 심한 제약과 긴 작업 시간, 그리고 비교적 수입이 적은 자영업에 따르는 온갖 걱정과 궁핍을 지적해야겠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제약은 자극이 되는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좌절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필요한 기술은-놀랍게도-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업계는, “저만의”영토를 타인이 쉽게 침범하거나 과소평가하지 못하도록, 언제나 주위에 신비한 기술의 가시넝쿨을 쳐 놓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학교 작업실에서, 처음 기계를 다루는 여학생이 자신도 놀랄 만큼 빨리 능숙해지는 일도 흔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량을 쌓고 유지하기가 쉽다거나, 한평생을 다 바치지 않아도 어떤 기법에 완전히 숙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지성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 정말로 집중하면, 작업실 기술의 기초는 업계의 전업 도제 교육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배울 수 있다. (물론 일정한 소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인데, 그 정도는 전제해도 괜찮을 듯하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상당히 오랜 활동 후에, 나름의 현실 지각에 따르는 정서적 반응으로서, 작업실의 실험에 이끌리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서구 사회에서 디자인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측은 어차피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들뿐이며, 따라서 “프로페셔널” 디자인은 세상에 빵이 필요한 마당에 케이크 장식만 해 주는 활동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또는, 이와 연관해, 노동자와 경영자 사이에 흔히 벌어지는 대립에서 경영자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아니며, 차라리 전문직이 보장해 주는 지위(와 급여 체제)에서 아예 물러서는 편이 더 온당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머뭇거림 없이 지적해야 할 점은, 장인이라고 해서 사회에서 탈퇴할 길은-완전한 자족성의 환상이라는 상호 부조 원칙의 마지막 패러디를 빌리지 않고서는-없다는 사실인데, 왜냐하면 좁고 드문 사회적 실험의 영역을 제외하면 대안적 유통만은 사실상 (또는 아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작업실 역시 자유 시장 경제에 의존한다.
하지만, 작업실에는 약간의 실존적 이점이 있다. 첫째, (뒤에서 다룰) 용역 작업실은 지역 공동체에 매우 직접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 이런 작업실은 사적인 접촉을 통해 성장하고 유지되는데, 그러면서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갱신할 수 있다. 그에 비례해, 실험적 디자인 작업의 가능성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역 사회에서 작업실의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면, 실험적 작업에 대한 양해도 커지면서 그 맥락도 유기적으로 자라날 것이다. 둘째, 모든 작업실에서는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제어 기제로 작용하면서, 활동에 직접성과 균형 감각을 더해 준다. 그리고 작업과정은 물론 아마 시장 거래에서도, 지속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 셋째, 새로운 토속성이라는 거름을 애타게 기다리는 황무지 같은 문화속에서, 물건에 대해 말만 하거나 지시만 전달하기보다는 차라리 물건을 직접 만드는 편이 (그리고 잘 만드는 편이) 더 만족스럽다는 이유도 있다.
장인의 활동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용역 작업실과 제조 작업실이다. 전자는 지역의 필요에 봉사하고, 들어오는 일은-자동차 정비소처럼-뭐든지 맡아 한다. 용역 작업실은 단품에 특화하기도 하고(목공소의 경우, 계단에서 상점 매대 또는 전시대에 이르는 온갖 작업이 이에 해당된다), 용역 자체를 (예컨대 수리나 수선 용역을) 제공하기도 한다. 작업실 유지를 위한 특정 용역을 꾸준히 병행할 수도 있다. 제조 작업실은 훨씬 더 흔한 형태로서, 예로부터 도자기 공예가들이 운영하던 작업실이 알기 쉬운 예다. 이 경우 (간단히 정의하자면) 디자이너는 특정 제품군을 제작히기 위해, 또는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실을 차린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제조 작업실은 독자적인 매장과 함께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송비도 절약하고 (고객이 직접 이동한다), 중간 상인에 (정당히) 지불하는 수수료도 없애고, 포장이나 보관 문제도 최소화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제품도 팔 수 있고, 다시 찾는 고객이 있다면 “단골”이라는 신비한 존재도 길러 낼 수 있다. (자유 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그냥 사라져 버린다.) 양장점이나 도자기 공방 매장이 단적인 예인데, 다른 영역에서는 그런 보기를 쉽게 찾기가 어렵다. (어쩌면 다른 조건이 정말 같은 경우가 드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경험에서 볼 때, 어떤 영역에건 장인들의 일거리는 늘 있다. 문제는 첫 두 해를 버티는 일이다. 디자인 이론가들이 저지르는 결정적인 실수가 바로 모든 진지한 디자인 기회에서 전형(플라톤적 신비가 깃든 미신)이나 대량 생산이라는 특수한 조건을 준거로 삼는 일인데,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요건들 역시 충분히 실제적일 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생산 수단 모두에서 보다 유연한 접근 역시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문”제작(단품 제작)은 실리적인 선택일 뿐만 아니라, 소량 생산품은 소규모 제작자의 손에 맡기는 편이 여러모로 낫기도 하다. 그런 작업에는 잡다한 인쇄물, 전시대나 매대, 여관, 학교, 실험실, 호텔 등에 쓰이는 특수 가구, 실내 개조, 패키지 가구 등 셀 수 없이 많은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제작 설비에는 작업실의 여건에 따라 상당한 기계류가 포함되지만, 대개는 사람의 손을 대체하기보다 확장시켜 주는 다목적 기계가 쓰인다. [85~87p]


- 휴대용 전동 공구가 이론처럼 기능을 발휘해 주리라 (또는 단순히 휴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 믿으면 큰 실수다. 차라리 그 돈을 주고 중기계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 이는 정통한 숙련공이라면 누구나 공인해 줄 만한, 거의 모든 업계의 보편적 법칙이다. 중량감있는 주물은 진동을 흡수하고, 쓰기에도 훨씬 안전하고, 피로감도 덜 느끼게 한다. 절단기를 쓰는 경우, 덜컹거림이 없어야 절단면이 깨끗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소박한 기술 논쟁거리로 더 적당하지, 이 책의 범위에서는 벗어난다. [87p]


- 각종 서류와 공무원은 장인에게-사실, 모든 자영업자들에게-악몽 같은 존재들이고, 입출 명세 기록은 모자라거나, 불완전하거나, 벤치 밑에 버린 봉지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다반사다.[88p]


- 장소는 개인적인 고려에 따라, 또는 운에 따라 마련되거나 해결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 아무 제약이 없는 상황이라면, 장소는 만만치 않은 문제다. 작업실은 고객이 많고 시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하지만, 시내에서 공간을 마련하면, 우선 운송비가 많이 들고, 어쩔 수 없이 한정된 지역의 수요만을 대해야 할 수도 있다. 초보자들은 대체로 면적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 여기서 문제는, 다양한 활동과 보관을 위한 공간을 충분히 분리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예컨대 목공 작업처럼 먼지가 많이 나는 활동은 아예 밀폐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목공소의 경우, 조립 공정과 가공 공정은 분리시켜야 하고, 또 먼지를 피해야 하는 표면 마감이나 도색, 어쩌면 포장과 적재 활동에도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 모두 작업실과 생산물의 속성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사항들이지만, 공간을 확보하거나, 아니면 확장이 가능한 공간을 찾는 편이 현명하다. 도시에서는 한 공간을 여럿이 공유하는 일도 가능하다. 당연히 작업실도 그렇게 운영할 수 있다-사실, 가능한 선택의 폭은 무한하다. 일부 공예적인 작업실들은-김슨·반슬리 식 일부 공예 전통을 고수하는 이들은-값비싼 수공예품 생산이라는 논리적 극단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참으로 매력 없는 선택이지만, 아무튼 가능한 범위의 폭을 보여준다.) 그렇게 공예에 집중하는 것도 나름대로는 의심의 여지 없이 탁월한 생존 전략이다. 어떤 장인들은 대학 출강으로 생계를 보조하기도 한다. 이 두 세계 사이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런 선택은 흔히 불화를 일으킨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낳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또 다른 어려움은 좋지 않은 시기에 일감이 들어오는 경우다. 일을 거절하는 것은 인간관계상 좋지 않고, 납기일을 많이 미루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나쁘고, 품질을 희생하면서까지 작업을 서두르는 것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설비를 갖춘 작업실을 경제적으로 유지하는 일과, 그 작업실을 경제적·사적 부담이 큰 소규모 기업으로 확장시킬 필요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어떤 기업들은 바로 이처럼 작업실에서 출발해-테렌스 콘란이 한 예다-디자이너의 본래 의도를 어느 정도 희생하더라도 성실한 디자인 수준은 유지하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어떤 시점에서는 장인 자신이 원칙적으로 얼마만큼의 사업 확장을 원하는지를 결정하고 (물론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다), 또 그런 확장이 스스로 정한 개인적 목표를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88~89p]


- 하지만 확실히 역설한 만한 점은, 아무리 튼실한 소규모 작업실이라도 폭넓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는 지나치게 사적인 기여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생산량이 너무 적다 보니 디자이너들에게 진지한 대접을 받기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런 혐의에 대해, 장인이라면 아마 “규모는 신경 쓰지 말고, 품질을 느끼쇼”라 답하고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대체 규모가 무슨 소용인데? 그렇게나 방대한 자원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게 뭐요?” 보다 깊은 수준에서, 직접 제작의 이론적 가치는 생산물에 대한 강조에서 벗어나 그와 조금 다른 근거로 옹호할 수 있다. 레더비는 특유의 명쾌한 시각으로 이 과제를 쉽게 풀어준다. 육십 회 생일을 기념해 센트럴 미술 공예 대학에서 열린 발표회에서였다. 그가 “인생에 대해 발견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인생은 봉사로 보는 것이 제일 좋다.
2 봉사는 별것이 아니라 보통의 생산 노동이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3 노동을 이해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노동을 예술로 보는 것이다... 노동을 환영함으로써, 또 예술로 봄으로써, 노동의 노예적 성질은 기쁨으로 바뀐다.
4 예술은 바르고 성실한 보통의 노동으로 보는 것이 제일 좋다. 그렇게 보면, 예술은 가장 폭넓고, 좋고, 필요한 문화 형식이 된다.
5 문화는 비단 독서로 쌓은 교양만이 아니라, 조절된 인간 정신이라고 보아야 한다. 양치기, 선장, 또는 목수는 학자와 다른 문화를 향유하지만, 그들의 문화 역시 참된 문화다. [90~91p]


- 1 최악의 디자인 서적이 흔히 건축가의 작품집이라는 사정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커피 테이블용”책은 두꺼운 원색 부록에 불과하다. 그런-크고, 두껍고, 각지고, 유행에 민감하고, 색이 진하고, 표지가 매끄럽고, 호화로운 예술 사진으로 뒤덮인-책은,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차라리 위협이다. 그런 책에 실린 이미지는 유익한 지식을(예컨대 소개된 물건의 맥락, 제작비, 성능에 대한 정보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책이나 잡지만 읽는 학생이라면 어차피 이 글은 읽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또 그런 책은 아주 그럴싸하게 스스로를 웅변할 수 있으니, 이 부문은 (열외로 쳐서) 설명 없이 넘어가겠다. 그런 책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공허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첫눈에는 매우 많은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2 커피 테이블용 책에는 조금 더 고상한 친척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소설과 아이비 콤프턴 버넷의 소설이 다른 것처럼, 하나는 쉽고 다른 하나는 분명 복잡하지만, 둘 다 결국 잡담이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둘 모두 주제를 깊이 들이키기보다는 살짝 맛보려는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그리고 대개 그런 책의 내용물은 이 뒤섞인 비유처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좋은 예가 바로 ≪건축에 담긴 의미≫(젱크스·베어드)로서, 영미권 최고의 이론가들(베어드, 브로드벤트, 프램프턴, 젱크스, 실버 등)이 제각기 한마디씩 하는 한편, “기호론”을 주제로 삼는 책이다. ≪하이테크≫(크론·슬레선)는 이와 조금 다른 표본이다. 어조에 묻어 나오는 약간의 베타성을 무시하면, 이런 책들은 딱딱한 친척뻘 이론서를 읽는 데 활력소로 활용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멀리 떨어진 경우) 대화의 대용물로도 그런대로 쓸 만하다.
3 총론서. 유익하고 영감이 풍부한 이 책들은, 디자인된 인공물을 다른 분야의 (예술, 과학, 철학, 등의) 관련 작업들 곁에, 또 그 인공물의 기원을 둘러싼 전체 맥락 (예컨대 사상적, 기술적, 사회적 배경 등) 안에 놓고 봄으로써, 분산된 주제들을 하나로 묶어 준다. 역사적 결정론이 분석의 도구로서 얼마나 유효한지는 이제 의심스럽다. 초보자들에게, 이런 책은 거대하고 어렵게 느껴지고, 실제로도 늘 그렇다. 그러나 이 책들은 준거의 틀을 마련하는 데 필수 불가결하며, 학생은 바로 그 틀을 바탕으로 (또는 그 안에서) 자신이 물려받은 유산을 약간이나마 이해하고 나름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이 부문에서 제일 중요한 저자들은 (예컨대 루이스 멈퍼드나 지그프리트 기디온은), 어쩐지 폭도 제일 넓은 사람들이었다. 기디온의 《공간, 시간, 건축》과 후속작 《기계 문화의 발달사》는 (후의 《영원한 현재》 3부작을 포함해) 디자인 서고를 꾸미는 데 첫 책으로 삼아도 좋은 뛰어난 개론서다. 이 책들에는, 의도에 맞게, 훌륭한 도판들이 수록되어 있다. (멈퍼드는 글에 더 크게 의존한다.) 기디온의 작업은 수명도 긴데 (또는, 뱃사공 식으로 말하자면, 물길을 잘 타는데), 근래 들어 잔고기들의 시비에 시달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체로 그는 거대하고 장려한 제 작업의 범위 안에서 당당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학생은, 고든 로지의 짧은 책 《기계로 만든 가구》가 점점 구하기 어려워지는 지금 (1989년), 현대 가구에 대한 쓸만한 설명이 담긴 책은 《기계 문화의 발달사》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4 역사서. 앞서 언급한 총론서에 비해 짧고, 사실 중심이고, 전문적인 책들. 맞춤하게 잘 알려진 예가 바로 펩스너의 《근대 디자인 선구자들》이다. 허버트 스펜서의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선구자들》은 오히려 작품집에 가깝다. 어떤 전기물은 주제와 저자 덕분에 사료적 가치를 띠고, 따라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눈여겨볼 만하다. 커티스의 《현대 건축》은 제목이 비슷한 프램프턴의 책과 아울러 최근 발표된 내실 있는 작업으로 꼽힌다.
5 특정 (역사 또는 그 밖의) 주제에 대한 책. 초점이 또렷한 책. 좋은 사료가 바로 사본으로 재발행된 《서클》(가보·마틴·니컬슨 엮음)인데, 이 책은 (낙관론만 빼면) 마치 지난주에 쓰인 것 같지만, 실은 (현대 운동이라는) 탕아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1937년 처음 발행되었다. 명목상 “공통된 생각과 공통된 정신: 우리 시대 예술의 구성적 경향”을 강조하는 이 책은, (암묵적인) 약속들로 충만해 보인다. 실제로 그 약속들이 얼마나 지켜졌는가를 평가하려면, 후대에 나온 책, 예컨대 데니스 샤프가 엮은 《합리주의자들》(1978)을 보는 편이 낫다. 전혀 다른 종류로 콘라트 박스만의 《건축의 전환점》이 있는데, 이 책은 복잡한 하드웨어와 관련해 “연결”의 주제를 다루는 고전적인 예다. (전설적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완벽한 사각형의 단순한 나무 상자”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근사한 쇼를 벌인다.) 결합과 규격의 사나이 브루스 마틴이 내놓은 《건물의 결합 부위들》과 흥미로운 《표준과 건물》은 영국이 내놓은 공로에 해당된다.
6 디자이너에 대한 책-박스만은 (5번을 보라) 이 부문에도 대체로 해당된다-또는 작품집. 예를 들어, 엘 리시츠키의 미망인이 쓴 그의 《삶》(“만만치 않은” 작업), 캔터쿠지노의 《웰스 코츠》(참고 자료가 넉넉한 책), 여러 권으로 나온 르 코르뷔지에 《전작품집》(이 거장을 연구하기에는 실제 건물의 답사 다음으로 좋은 수단)등이 있다. 증거를 충분히 갖춘 경우에는 개인 디자이너의 심층 연구에서도 얻을 것이 많지만, 가능하다면 그들의 작업은 책으로 읽는 데서 그치지 말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만져 보아야 한다. “영향”이나 “오염”에 대한 우려는 소심한 현인들의 환상 세계에 남겨 두어도 무방하다. 관찰과 독서를 비평적 연구와 7번 계열 책들에 연계시켜도 유익하다.
7 디자이너가 쓴 책. 최선의 경우, 이런 글은 정신과 진정성을 담고, 그 점에서 뒤늦게 따라와 갖은 수로 “거장”들을 깎아내리려드는 저널리스트들의 작업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그로피우스(예컨대 《새로운 건축과 바우하우스》), 르 코르뷔지에(《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모호이-너지(《새로운 시각》)등이 이에 해당된다. 프로이트는 물론, 아마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만하다. 역사가들이 수집한 자료에서 우너고를 찾아 읽을 수도 있다. 좋은 예가 바로 팀 벤턴·샬럿 벤턴의 《형태와 기능》이다. 학생은 이 책에서 현대운동의 태도에 대한 마르셀 브로이어의 짧고 명쾌한 해설,<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만날 수 있다.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온 목소리라할 만한 글이다.
8 헌정서 또는 추모서. 명사의 은퇴를 기념해, 아니면 그 또는 그녀의 사후에 편찬되는 특수한 책. 일반적으로, 상통하는 주제에 대해 동료들이 쓴 글, 또는 사적인 추억이 담긴 글로 꾸며진다. 때로는 양쪽 모두가 동원되기도 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 잊히기 쉽지만 역사적 의미가 뚜렷한, 진솔한 이야기들이 종종 발굴되곤 한다. 탁월한 예가 바로 데니스 샤프가 엮어 (높이 존경 받는 교육자 겸 디자이너) 아서 콘에게 헌정한 논문집 《계획과 건축》(1976)이다. 편찬된 시점만큼이나 생생한 책이자, 몇몇 아주 좋은 사진을 수록한 책이다. 이 책의 지면들을 수놓는 기쁨을 응시하면서, 솟구치는 생동감과 머지않아 다가올 새봄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자는 정신이 너무 인색한 사람일 것이다. 보다 단순한 예로, 로빈 스켈턴이 발표한 비평가 겸 시인 허버트 리드의 추모집이 있는데, 이 책은 (부수적으로는) 그의 작업에 대한 좋은 개론서이기도 하다. (조지 우드콕의 《허버트 리드》는 그에 대한 대안으로 고려할 만하다.)
9. 작품. “물성”을 지니는 책들로 구성되는 이 부문은 우울할 정도로 빈약하다. 흔히, 엄격한 디자인 의식은 출판 과정에서 거세되고 만다. 사본으로 재발행된 역사적 희귀본이 몇 있기는 하다. (바우하우스 총서가 한 예다.) 여전히 원본이 유통 중인 예로 하인츠 라슈·보도라슈의 《의자》, 치홀트의 《타이포그라픽 디자인》(독일어 초판과 훗날 발행된 영문판 《비대칭 타이포그래피》를 비교해 보아도 유익할 듯하다), 그리고 묘한 카리스마가 있는 J. L. 마틴·새디 스파이트의 《납작한 책》등이 있다. 보다 최근의 예로는, 프로스하우그, 산드베르흐(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 관련 도서류), 오틀 아이허의 작품을 꼽을 만하다.
10 증거류. (5번을 참고하라.) 디자인 관련 사안에 대해 충분한 증거를 제시해, 독자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책. (증거에는 도면이나 사진도 포함된다.) 이 부문에서는 자료를 많이 기대할 수 없고, 전형도 드물다. 로스의 《새로운 건축》은 좋은 보기였다. 사진 증거로만 국한되기는 해도, 전후에 발행된 도무스 총서 역시 이 부문에 속한다.(책상, 벽난로, 주방에 대한 증거가 많다.)
11 논문이나 짧은 보고서. 보통 한정된 주제를 다루지만, 모두가 단명에 그치지는 않는다. 한 예가 바로 콜린 로의<이상적인 저택의 수학적 원리>(《아키텍추럴 리뷰》, 1947년 3월호)인데, 이 논문은 단행본으로도 발행되었다. 《건물과 사회》(앤서니 킹 엮음)는 “건축 환경의 사회적 발전 과정”에 대한 논문들을 담고 있다. 다른 예로 브루노 제비의 얇은 책 《건축의 현대 언어》가 있는데, 이 책은 젱크스(27번을 보라)에 대한 가벼운 해독제로 삼아도 좋다.
12 교재. 지난 몇 년간 영국 방송 통신 대학은 상당히 수준 높은 강의 교재와 자룔르 축적해 왔다. (정작 대학에 있는) 디자인 전공생들은 방송 통신 대학의 “단원 교재”와 관련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 영상 자료, 라디오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얼마나 구하기 쉽고 유익한지 잘 모르는 듯하다. 예를 들어, 팀 베턴과 샬럿 벤턴, 나이절 크로스의 작업은 최고 수준으로 신뢰해도 좋다. 방송 통신 대학 강좌의 성격은 공중의 요구와 학내 정책의 변화에 따라 바뀌곤 했다.<건축과 디자인의 역사, 1890-1939>는 귀중한 강의 자료와 교재를 배출한 선구적 강좌였다. 크로스·앨리엇·로이가 엮은 《인간이 만드는 미래》는, 이제 폐강되고 없는 디자인 방법론 강좌를 위해 개발된, 좋은 논문집이다.
13 관련서. 모호하기는 해도 잠재성 있는 부문. 좋은 예로 루스 베네딕트의 《문화의 패턴》과 제인 애버크롬비의 《판단력 해부》를 꼽을 만하다-디자인을 공부하는 방법에, 전자는 거리감을, 후자는 균형감을 더해준다. 디자인 업무 예술임을 감안하면, 행동 심리학 같은 느슨한 영역도 실질적인 흥미를 돋을 만한데, 사실 대부분의 디자이너에게는 결론을 내릴 만큼 자신 있게 그런 작업을 “배치”할 능력이 없다. 이 범위에서 좀 더 밝은 쪽을 보면 《사람들이 즐기는 게임》같은 재미있는 책이 있고, 조금 더 나아가 보면, 어빙 고프먼 같은 저자도 읽은 만하다. 디자이너들은 언제나-당연한 이유에서-형태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고, L. L. 화이트 같은 총체주의 이론가 역시 인기를 끌곤 했다. 관련서 목록에는 사실상 끝이 없다고? 아마 이 책들은 박물관과 연장함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전자는, 마치 뜨거운 목욕물처럼, 무겁고, 졸리고, 기운을 빼는 듯이 느껴진다. 후자는 좋은 작업의 가치를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 디자이너가 읽은 책은 (바꾸어 말해) 효과로 평가해야 한다.
14 간접적인 관련서. 유용한 연관성을 밝혀 주거나 비판적 태도를 제시하는 책들. 불특정적이고 사적인 부문이다. 《선[禪]사상과 모터사이클 유지 보수법》(로버트 피시그)을 꼽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또는 도판이 수록된 진짜 유지 보수 교본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겠다.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테리 이글턴의 《문학 이론 입문》이 기존 지식을 뒤흔들어 줄 것이다. 대조적으로,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시를 어떻게 읽은 것인가》는 정말로 작가들을 위한 책이다. (그리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 뛰어난 디자인 입문서라고도 주장할 만하다. 수집가라면 도널드 데이비의 《정연한 에너지》-실제 내용은 훨씬 다채롭다-에 입맛을 다실 것이다. 조지 스타이너의 《언어와 침묵》을 읽는 첨단 디자이너는 없다. 하지만 마땅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15 디자인 철학과 난감한 책들. 예를 들어,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 파파넥의 《인간의 위한 디자인》, 그리고 버크민스터 풀러가 쓴 거의 모든 책이 이에 해당된다. 날카로운 경구들을 원한다면, 프레더릭 샘슨의 격언서《중독과 해독》(영국 왕립 미술 대학 발행)을 보라.
16 디자인 이론과 실기. 《디자이너란 무엇인가》가 한 예다. 장수를 누린 존 크리스토퍼 존스의 《디자인 방법론》은 보다 전문적인 사례다. 후기의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영구적인 건물 짓기》에서 출발해 정열적이고 거의 종교적일 정도로 엄숙한 책들을 내놓았다. 바슐라르의 저작에서는 조형적 가치에 대한 문학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17 일반 기술서. 디자인 참고 서적의 대들보.나열하거나 설명하기에는 너무 다채롭다. 담당교수들이 적절한 책을 지정해 줄 것이다.
18 카탈로그. 어쩌면 17번의 하위 부문에 속할지도 모르나, 종류나 기능이 조금 다르고, 대체로 보다 일회적이다. 카탈로그는 디자이너의 읽을거리에서 확고부동한 우위를 점한다. 사실 카탈로그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읽지 않는 디자이너도 있다. 큰 산업 박람회나 도매상과연관된 카탈로그도 있지만, 특정 제품들에 대해 간략하고 유익한 정보를 담은 카탈로그도 있다. 윌키스-버거의 카탈로그 같은 몇몇은 눈부실 정도로 도발적이다. 누구든 공견에 처하면 그런 지면에서 위안을 구한다는 점은 잘 알려진 대로다. 하지만, 잘 정리면 철기류의 카탈로그의 독특한 매력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한편, 참으로 위대한 카탈로그도 있다. 불행히도 언제나 과거에 나온 것들로서, 가끔 시골 별장이나 은퇴한 십장의 서재에서 마주치곤 하는 그런 책들이다. 그런 카탈로글르 훑어보면 사라진 기계적 권위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동판화 삽화만 해도 특출한 예술성을 보인다. 길레 기계류 카탈로그를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구해 보기가 쉽지 않다. 카탈로그 분류법은 완전히 다른 사안으로, 20번에서 다룬다.
19 권위 있는 참고서.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같은 주요 작업이나 그 밖의 두꺼운 백과사전, 또는 《옥스포드 영어 사전》.
20 일반적인 참고서, 여기에는 CI/SfB 건설 정보 분류법을 이용한(상용 서비스 디자인 사무실에서 관리하는) 기술적인 자료집과 《명세서》같은 표준 참고서가 포함된다. 이처럼 당연한 사례 외에도, 《어느 것?》같은 소매 시장용 참고서나 (수첩을 포함해) 휴대용 참고서로 분류되는 작고 간편한 책도 있다. (예컨대) 마틸라 가이카의 유익한 저서 《기하학적 구성과 디자인 실용 교본》, 또는 찰스 헤이워드의 《목수의 포켓북》이 그렇다. 영어 공부를 위해서는, 챔버스, 파울러, 패트리지의 책도 쓸 만하다. (《챔버스의 20세기 사전》, 파울러의 《현대 영어 사전》,패트리지의 《용례와 남용례》를 꼽을 수 있다.)
21 교육에 대한 책. 여전히 교육의 속박을 받는 학생들은 교육에 대한 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질문은 모든 교육 과정의 올바른 기능이고, 의식 있는 질문은 그중 최상이다. 학창 시절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은 라이머의 《학교는 죽었다》, 굿맨의 《의무 비교육》, 말릴 수 없는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를 즐길 만하다. 중도적 시각의 책으로는 리처드 스탠리 피터스의 저작과 (그의 “교육 철학”은 《대안 교과목》의 페이트먼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공격한다), 화이트헤드의 예리한 저작 《교육의 목적》을 들 만하다. 좌파에는 전설적인 현장 연구자 닐의 《서머힐》이 있다. 우파에는 《블랙 페이퍼》의 콕스와 보이슨 (실제로는 항상 그처럼 “블랙”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쩌면 밴톡을 포함시킬 수 있겠다.
22 디자인 교육에 대한 책. 누락이 많은 부문이다. 예컨대 울름 디자인 대학에 대한 자료는 항상 찾기 어렵다. 1968년에 일어난 전 세계적 소요는 잘 기록되어 있는 편이다. 영국의 경우를 다룬 책으로는 펭귄이 발행한 《혼지에서 일어난 일》과 톰 네이언의 《종말의 시작》을 꼽을 만하다. (반대편에서 나온 증거는 영국 의회의 특별 위원회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 정치는 가차없이 진행되는데, 몇몇 전문가들은 그 과정을 기록하거나 그에 도전하려 했다. 고든 로렌스와 데이비드 페이지가《선택적 학위》(핀치·러스틴 엮음)에 수록된 논문에서 그런 시도를 했다. 이제 바우하우스는 잘 기록되어 있는 편이다. 좋은 도서관이 있다면, 빙글러의《바우하우스》를 찾아볼 만하다. 그 책이 없다면, 짧은 개론서로는 바이어·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가 제일 나을 듯하다. 최근에는 중고등 과정의 디자인교육에 대한 책이 여럿 나왔다. (본연의 가치 외에도, 학위 과정에 있는 여러 학생의 흥미를 끌 만한 주제다.) 한 예로《학교에서의 디자인 교육》이 있는데, 저자 버나드 웨일워드는, 새로운 교과 과정의 개발과 그에 맞춘 새 학교 건물의 건설을 통합적으로 진행한 “레스터 실험”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23 잡지. 영국의 디자인 (그리고 디자인/건축) 잡지는 끝없이 융성할 것처럼 보인다. 잡지는 대학 도서관과 전문 서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해외 사례도 많다. 그에 비해, 모든 업계에는 나름의 잡지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필요할 때는 (심지어는 광고 때문에라도) 그들역시 유용한 자료가 된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어떤 잡지는 특집호나 연속물 기사들을 엮어 단행본을 내기도 한다. (《아키텍추럴 리뷰》가 한 예다.) 최근 사례 중, 영국의《폼》은, 머문기간은 짧았지만 반가운 방문객이었다. 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잡지다.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잡지도 때로는 1-2년에 걸쳐 아주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따라서 그들의 열성 독자층 너머에서도 관심을 끄는)경우가 있다-콜린 워드가 겸손한 편집장으로 일하던 시절의 《에너키》가 한 예고, 보다 최근 (1979-80) 미국에서 발행된《우든보트》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서로 연결시키거나, 디자이너의 일반적인 관심과 결부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주의할 것.)
24 종합 선물 세트와 기서[奇書]. 모두를 위한 요소를 조금씩 갖춘 책으로서,《홀 어스 카탈로그》는 단연 으뜸가는 만화경이다. 이 책은, 의도한 그대로, 분류가 어렵다. “기서”의 예로는 (현재의 기준으로는 기이한) 발렌타인이 쓴《리처드의 자전거 책》이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유용하지만, 또한 삽화도 좋고(디자이너들이 기억해야 할 점), 대화도 솔직 담백하다는-하지만 유익하다는-점에서 (다른 기술서 필자들이 기억해야 할 점) 모범적인 책이다.
25 대안적 태도. 좋은 예로 (《이콜로지스트》편집진이 엮은) 진단서《생존을 위한 청사진》과, 마음을 덥혀 주는 슈마허의 책《작은 것이 아름답다》-그리고 후속작《어쩔 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와 《좋은 작업》-등이 있다. 이제는 점차 효용성이 감퇴하고 있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작업으로, 로작의 《대항 문화의 형성》과 그에 대한 기네스의 화답《죽음의 먼지》가 있다. 활동가 겸 현장 연구자 존 터너의 작업은 엄밀한 주제 (주택 문제) 너머에 대해서도 건설적인 설명을 제시하는데, 그런 노력을 집대성한 《사람에 의한 주택》은, 거칠게 말해, 자생적 건축과 사용자의 통제권 행사라는 사회적 원칙을 논한다. 비슷한 생각을 표출하는 작업으로,《환경 교육 소식지》편집장이자 영국 대학 협의회의<예술과 건축 환경>프로젝트 감독이었던 건축가 콜린 워드의 책들이 있다. (《공공 기물 훼손》과《도시의 아이》등이다.) 루카스 에어로스페이스 사의 노동조합 대표였던 마이크 쿨리는 《건축가 아니면 꿀벌?》에서 컴퓨터를 활용하는 디자인을 급진적으로 재평가한다. 여성 운동이 배출한 작업으로는, 유용한 문헌 목록이 수록된 매트릭스 그룹의 《공간 만들기》를 꼽을 만하다.
26 대안적 하드웨어. 모든 방면에서 “적당한 크기, 적은 에너지, 긴 수명”을 다루고(알렉스 고든의 공식, 《RIBA 저널》1974년 1월 호 참조), 어떻게 온갖 장치, 기계, 환경의 디자인과 개발에 그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지를 논하는 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제안의 범위도 소박한 것부터 심원한 수준, 손수 공작 요령부터 고도 엔지니어링에 이르도록 다양하다. 예를 들어, 풍력발전이나 태양열 발전에 관심 있는 학생은 꽤 다양한 문헌을 접할 수 있다. 월터 시걸의 신선할 정도로 실용적인 저비용 주택 디자인은《아키텍츠 저널》(특히 1988년 5월 4일자 추모 특집호)에 소개된 바 있다.
27 반[反]현대 운동, 1960년대의 플러그인 기술만큼이나 널리 유행하는 사조로서, 크게 두 입장으로 나뉜다. 첫째, 이제는 “포스트-모던”으로 분류할 만한 작업이 충분히 있으므로, 그로써 대체된 “현대 운동”은 힘을 다했다고 보아도 좋다는 입장이다. 둘째, 현대 운동은 그 거창한 주장을 전혀 보증해 주지 못한 채, 스스로 조형적·철학적 궁지에 몰렸으며, 이는 실상 그 기원의 전제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첫 번째 입장은 찰스 젱크스의 여러 저작들(예컨대《현대 포스트모던 건축의 언어》)에 표명되어 있고, 두 번째는 아마 왓킨의 《윤리와 건축》이 제일 잘 설명해 줄 것이다. 이를 위시해 유사한 저작들은<무너진 대건축물>이라는 비판적 심포지엄에서 논의된 바 있으니 (《아키텍추럴 리뷰》, 1978년 2월 호), 관심 있는 독자는 참고해 볼 만하다. 이 논쟁은 방금 요약한 것처럼 단순하지만은 않지만, 어조가 다소 학술적이고 관심사가 다소 양식적 성격을 띠는 것은 사실이다. 반디자인 운동가들은 훨씬 더 급진적이어서, 현존하는 형태의 디자인 적문직을 거부한 채, 대안적 태도들을 제시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25번을 보라.) 그들의 주장의 토대는, 공동체에 필요한 의사 결정을 탈전문화해야 하고, 현재보다 훨씬 더 폭넓은 사용자 참여가 필요하며, 디자이너는 (나름대로 중요한 작업을 하는 경우) 도움을 주기보다 오히려 해를 끼친다는 인식에 있다. 터너·워드도 대체로 이런 관점을 취하지만, 사실 그것은 그들의 중추적 입장이라기보다, 그에 뒤따르는 태도에 가깝다. 맬컴 매키언의 《건축의 위기》는, 현대 운동을 헐뜯는 저작들과 한통속으로 보기 쉬빚만, 실은 영국 왕립 건축 협회가 좋은 일만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꾸준히, 건설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책이다.
이렇게, 지각생이나 신참 또는 그 밖의 가능한 후보에 문을 닫지 않은 채, 디자이너에게 유익할 만한 읽을거리의 범위를 다 제안했다. 하지만, 주전자, 건물, 깔개, 심지어 잘 구워진 빵에 관해서라면, 아무리 많은 독서도 감촉, 시각, 맛, 소리, 냄새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같은 이유로, 믿을 수 있는 글의 형식은 시나 소설밖에 없다는 점도 덧붙인다-다른 형식은 모두 불충분하게 투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건을 더 잘 즐기기 위해,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어쩌면 더 잘 만들기 위해, 비평을 읽는다. 물건은, 결국, 잔재에 불과하다.[98~111p]
- “예술은 인간의 타고난 습성이지만, 지나친 설명이 그 습성을 거의 죽여 놓고 말았다.”
“문명의 임무는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더해 주는 데 있다.”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가 가장 많이 소유한 자다.”
“타인의 노동에 기생하는 자는 일종의 식인종이다.”
"정문인, 경영인, 문화인은 너무나 많다. 인간은 너무나 적다.“
[114p]


-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학생들, 혼돈을 감지하고 질서를 원하는 학생들, 자신감 없는 학생들, 갖춰야 할 것만 같은 기술과 지식의 양에 압도된 학생들은, 종종 이질적인 현상들에 대한 일원론적 시각에 성급히 유혹되곤 한다-그런 시각을 빌리면 왠지 희망도 있어 보이고, 세상이 좀 더 만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수평사고를 구애하는 사람들은 의미론적 이중 사유에 쉽게 빠져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을 동일시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일부 디자인 이론가들이 손쉽게 이룬 업적이다. 정신적 역동성을 결여하고, 동양의 서양의 좋은 점은 다 원하면서 어느 쪽의 불편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사회에서는, 예쁘장한 모순들이 많이 꽃피고, 실제로 절묘하게 배양되기도 한다. [117p]


- 네 유형의 개인 또는 집단이 이런 변화에 역학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소유권자 또는 의뢰인 또는 고용주 (여기서 의뢰인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디자인의 입장에서 뜻이 제일 분명한 말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또는 일반 대중 또는 소비자, 디자이너 자신과 관련된 기술 자문, 그리고 도급업자 또는 제조업자 등이다. 각 당사자는 서로 다른 사회적 자원을 활용하는데, 이들의 이익은 결코 균등하게 대변되지 않는다. 다수가(사용자 또는 일반 대중이) 사실상 아무 발언도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뢰인과 시장 또는 일반 대중 사이에는 지속적인 경제적 관계가 있어서, 일정한 견제와 균형 기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디자이너와 도급업자는 잠시나마 변화의 주체가 되는데, 특히 디자이너는 그 변화의 속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다시 말해, 디자이너는 복잡한 임무를 띠는 셈이다. [125p]


-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 :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들쑥날쑥한 사정
디자이너의 의사소통은 :
언제나 목적이 있어야 하고 (디자인의 맥락에서 행동으로 귀결되거나 행동을 제한해야 하고) 결코 임의적이거나, 공상적이거나, “예술적”이거나, 자폐적이거나, 자기 방어적이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창조성은 그렇게 촉발되고, 그렇게 정리되고, 그렇게 경험될지도 모르며
또한 자신과의 의사소통에서는 당연히 그럴 것이다.
따라서 보통은 파악 가능한 맥락, 발신자, 수신자를 전제하고
여기서 “맥락”은 상호 작용을 (쌍방의 존재 이상을) 암시한다.
반드시 경제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고 전달해야 하며
또한 흔히 쓰이는 형식을 (매개체를, 관례를) 취해야 한다
따라서 반드시 분명하고, 충분하고,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필수적이고, 쓸 만해야 한다(확인할 것)
다만 달리 목적을 더 잘 달성할 수 있다면 그래도 좋다
주의 : “쓸 만한” 문서는 수신자와 목적에 적합한 어조를 취한다(문장이나 단어 선택뿐 아니라 물리적 특성-레이아웃, 재료 등-에도 해당된다)
쓸 만한 드로잉을 하려면, 목적을 정확히 가늠해야 하고, 알기 쉬운 “관례”를 이용해 최적의 효과를 꾀해야 한다. 모형은 설명적일 수도 있고 분석적일 수도 있지만, 역시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
자신에게 묻자: 왜 이 문서 또는 드로잉 또는 모형이 필요한가?
누구를 위해, 누구에거, 누구에거서?
무슨 시간과 장소와 경우에?
즉 어떤 목적, 어떤 의도, (정확히) 어떤 목표로? 또는 연관된 듯한 목적들 중 무엇을 위해?
언제 만들고 언제 전달할 것인가 (이 둘은 분리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질문이라기보다는 답)
따라서 왜-누구-무엇-어떤-언제-어떻게
수용할 것 : 맥락, 적절성, 완결성, 순서, 어조, 일관성, 용례, 그 밖에 고려해야 할 모든 것
따라서 하는 일에 적절한 형태를 부여하되
방식, 매개체, 전달체, 작용체, 의도의 가능성에 기초한다
각각은 유익하게 구분할 수 있다 : 그들은 같지도 않지만 분리할 수도 없다(미디어:메시지)
주의 : 이런 종류의 글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이들은 의사소통의 여울목이다. 규칙만 따라도 무방할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142~143p]


- 그런 면에서, 건축가를 포함해 모든 디자이너는 작업 시간의 많은 부분을 그래픽 실기에 바친다. 흔히 간과되지만, 사실이다. 드로잉 다이어그램, 일정표, 명세서, 보고서, 서신-이 모두에는 그래픽과 관련된 의사 결정이 필요한데, 여기서 그래픽은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때로는 단지 있어도 되는 요소 정도로 머물기도 한다. 이 “디자인의 디자인”은 관련된 작업에 유익한 영향을 끼친다. 사실 두 활동은 (주요 디자인 작업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은) 극히 흥미롭게 상호 침투한다. [145p]


- 기호학이 내놓는 논리체계나 어휘들이 혼란 해소에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처럼 위압적이고 건조하고 과시적인 개념들을 놓고 씨름할 만큼 참을 성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145p]


- 좋은 그래픽 디자인에는 문자, 이미지, 매체, 과정 사이의 선택적 관계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는, 모든 전선에서 동시에 전진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듯하다.
1 디자이너가 의뢰를 받는 순간부터 완료된 작업 기록을 철해버리는 순간까지 모든 그래픽 기회를 다 점검한다.
2 활자 견본집, 종이 견본집 등 모든 유익한 자료를 수집하고,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한 때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주소록과 출처 목록을 덧붙여 정리해 두며, 핵심적인 그래픽 용어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3 가능한 인쇄 방법을 간략히 조사하고, 특정 목적을 위해선느 대지 등 인쇄 원고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아 본다.
4 종이 위에 부호를 만들 때는, 손으로 하건 기계를 쓰건 간에, 언제나 실험을 하는 것이 좋다. 그 실험은 왜, 어떻게, 언제, 어디서, 무엇을 같은 질문들을 다루어야 한다. 시지각 이론보다는 실험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표를 그리거나 복잡한 메시지를 구성할 때에는 간단한 논리나 집합 이론도 도움이 된다.
5 무엇을 다루어야 할지 고려한다. 우리가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지면이나 사각형은 “중립적인” 공간인가?-만약 그렇지 않다면, 순서나 배치는 어떤 결과를 낳는가?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문자들을 의미 단위로 구성할 수 있는가? 만약 문단이 하나의 의미 단위라면, 한 문단을 구성하는 십여 가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그리고 각각에는 어떻게 다른 효과가 따르는지 살펴보자. 문자를 모아 문장을 만들 때 근본이 되는 질서의 구성 요소로는 구별, 강조, 분류가 있고, 그들에 따라 분명한 그래픽 순서가 정해진다. 이런 점을 의식할 때, 보고서의 크기, 구조, 형태, 내용의 우선순위(와 인식 순서)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떻게 바뀔까? 여기서 고려할 사항은 매우 많지만, 대부분은 전문지식 없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6 휴대용 타자기는 생각을 정리하기에 아주 좋은 도구였다. 타자기에는 즐겁게 탐구해 볼 만한 본연의 제약이 몇 있었다. 특히 “좌측에 정렬하고 우측은 흘리는”롤러 운동이 한 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는 탁상출판 기술에서, 그런 제약들은 무한한 “자유”로 대체되었다. 그중 일부는 실질적이지만, 나머지는 주의를 분산시키는 요소일 뿐이다. 이는 새로운 탐구 여행을 시사한다. 컴퓨터와 프린터에서 쓸모없는 기능과 유익한 기능을 분별하는 것이다.
7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의 작업을 참고해도 좋다. 실물을 접하는 방법이 제일이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도판이라도 좋다-그래픽과 다른 디자인 영역을 결합시켰던 리시츠키나 막스 빌 같은 사람들은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 [145~147p]


- 예컨대 압축적인 설명문 작성, 접지를 포함한 지면 규격의 조정, 일관성 있는 분류·검색 체계의 고안 등을 통해 배우는 바도 많다. 아래는 그런 작업을 위한(모든 영역에서 규모가 큰 디자인 작업을 위한) 체크 리스트로 쓸 만하다:
1 범례 (이름, 제목, 고유 번호, 날짜 등)
2 내용물 목록
3 디자인 지침 (최초 지침과 수정된 지침)
4 필요한 경우, 수업 관련 내용이나 목표
5 과제 관련 사실 자료 및 기타 자료 일람
6 요구 사항 분석
7 과제에 내포된 가능성의 평가
8 기본 제안 (시안들)
9 최종 시안과 사유
10 재료, 설비, 제조에 대한 메모
11 원가 계산에 대한 메모
12 보고서 (여기에는 보통 5번에서 11번까지, 또는 심지어 1번에서 11번까지의 사항이 포함될 것이다)
13 취해진 조치와 수정 사항
14 프레젠테이션 드로잉, 메모, 모형 사진
15 제작 도면, 명세서, 일정표 사본
16 가공 등에 대한 지시서
17 작업 과정, 조립 부품, 기타 모형 등의 사진
18 최종 결과물 사진
19 시험 결과 또는 사용자 반응 일반
20 서신 등 각종 문서
21 반성 (자기 자신의 비평)
22 작업 경과 기록 (날짜, 시간)
[148~149p]


- 디자인은 잘하지만 그림은 전혀 못그리는 디자이너도 있다. 거꾸로, 그림을 근사하게 그리는 디자이너는 제 직업을 일러스트레이터나 화가로 착각하기 쉽다. 대부분의 디자인 드로잉에-간단한 스케치에-필요한 기술적 “재능”은 생각의 요지를 종이에 옮기는 능력 정도에 불과하다. 디자이너는 스케치, 다이어그램, 단면도, 실물 크기 세부도를 통해 생각하고 말한다. 다이어그램 기법을 능숙하게 사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은 분명 필요하다. 그런 작업은 고전적인 의미에서 분석적 드로잉보다는 오히려 분석적 표시로 보는 편이 낫다. 관찰 드로잉이 관찰력을 집중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과, 손과 눈의 연관 훈련에 담긴 풍부한 이점은 잘 알려진 대로지만, 이런 능력을 디자인 절차에 직접 옮기기는 어렵다.[150p]


- 재료나 도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당연시하지 말아야 한다. 질적인 차이는 탐구하고, 비교하고, 대비해 보아야 한다. 최소한 드로잉을 하는 (또는 모형을 만드는) 재미의 큰 부분이 도구 또는 연장과 재료의 관계에서 미묘한 올바름을 느끼는 데 있기 때문이다. 무딘 연장을 쓰거나, 그라포스 펜과 뻑뻑한 연필을 혼동하는 사람, 또는 종이를 중립적인 빗물질로 취급하는 사람이라면, 디자인 사유에 대한 피드백으로서 능숙한 기교의 장점을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손가락 끝에서 느끼는 섬세한 감각이지만, 그에 대한 의식은 아주 긍정적인 면에서 디자인 반응의 톤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 [151p]


- 다이어그램은 추상적, 부분적, 정력적이고, 생각이나 값을 직접적으로 수립 또는 전달하려 하며, 따라서 분석이나 해석의 목적을 띤다. 일반적으로 (그래프나 수학적 관례를 제외하면) 관례를 따르지 않고, 모호할 수도 있고, 거꾸로 정확한 수량을 다룰 수도 있으며, 보통은 진단 기능이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은 (간결한 스케치와 “투시도”를 포함해) 묘사적이고, 추론의 단서가 되는 겉모습을 제시하고, 흔히 분위기에 초점을 두며, 설득을 목적으로 하고, 관례를 따른다. 보통은 규정적 기능을 한다. 결론을 내리기 위한 수단보다는 결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더 적합하다.
실측도는 측정을 거쳐 확인된 검증 가능한 사실들을 수량으로 환원한 기록인데, 그렇지만 실측도에 해석이 첨부되기도 한다. 관례를 따른다. 진단적 기능.
제작도는 철저히 합목적이며, 지시용으로 쓰인다. 엄밀하지만 추진력있는 관례를 사용한다. (바꾸어 말해, 필요한 조치로 이어지도록 한다.) 목적, 경우, 대상에 따라 유형이 달라진다. 규정적 기능.
말은 흔히 드로잉과 모형을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학생은 말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드로잉과 대부분의 모형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의도를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언어는 질문하고, 주해하고, 주장하고, 기술하고, 기록하는 등으로 드로잉과 모형을 보완해 준다. 글로 쓰거나, 말로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테이프에 녹취한다.
기호, 숫자, 부호 등 - 밝히고, 통제하고, 보완하는 기능.[151~152p]


- 너무 적은 정보보다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드로잉은 메시지와 기록에 불과하기에, 의도한 바를 오해의 여지 없이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실용적이어야 할 드로잉의 순결한 외관을 놓고 고민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디자인 학교에서, 드리옹은 “전시품”이 된다. 드로잉 한편의 메모 칸을 활용해야 한다. [153p]


- 잘 알려진 대로, 객관적 절차에 따라 실태만 파악하면 될 듯한 지극히 단순한 측정과 기록에서조차, 우리 인간은 편파적인 시각과 신뢰하기 어려운 기억력을 동원해 갖은 창작을 하곤 한다. [155p]


- 다음 메모는, 간단한 건물 조사를 예로 삼아, 우선 일부 전체적인 고려 사항들을 점검한 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체크 리스트로 이어질 것이다.
1 지역 지도를 포함해 기초 정보를 수집하는 숙제를 먼저 한다.
2 체크 리스트에 기술한 대로, 필요한 도구를 반드시 갖춘다. 만약 빠진 도구가 있다면, 출발하기 전에 챙긴다.
3 모든 것을 기록할 각오를 한다.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한다. 초보자가 저지르는 흔한 실수가 바로 제 기억력을 믿는 일이다. 기록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4 반투명지를 이용해 서로 다른 정보를 분리하고 (얇은 글라신지나 트레이싱지면 된다), 드로잉을 보조하기 위한 두 가지 모눈종이(방안지와 아이소메트릭 또는 엑소노메트릭 모눈지를 준비한다. 체크 리스트를 참고할 것. 기록 용지를 더러운 바닥에 놓지 않고 제어하려면 받침판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5 낡은 건물에 들어갈 때는, 문제를 찾는 사냥꾼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악취, 침강, 균열, 부식, 나무좀, 습기, 늘어진 회반죽, 뻑뻑한 문, 얼룩, 손상된 비품의 흔적이 보이면 죄다 기록한다.
6 주관적인 인상은 곧바로 기록한다. (실제로 종이에 기록한다.)
7 속도가 더디더라도, 분명히 세고, 적고, 그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8 수량을 재고 적는 일에도 마찬가지로 철저해야 한다. 이 작업을 성급히 해치운 탓에 나중에 빠진 정보를 찾아 (아마도 한 번 이상) 돌아와야 하면, 결국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낭비된다.
9 언제나 피상적인 속성과 표면의 조건을 기록하되,
10 언제나 표면 아래로 들어가, 구조와 재질을 파악한다. 나름대로 추정할 필요가 있는 경우, 그 점을 밝힌다.
11 내력벽, (없애도 되는) 칸막이벽, (인접한 땅 사이에 있는) 공유벽을 구별해 기록하고, 각 실제 구조의 크기에 나타나는 간극을 잰다. (내장재는 별도로 기록해도 좋다.)
12 이음매 사이 간격들은 반드시 꼼꼼히 기록해 두어야, 나중에 내력 구조 관련 결정을 내릴 때 도움이 된다. 또한 서까래, 샛기둥, 그 밖에 설비와 비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숨겨둔 관련 정보도 기록한다.
13 하나의 기준점, 선 또는 면을 정해 측량하지 않으면, 오차가 누적될 것이다. 분필로 기준선들을 긋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일정간격으로 삼각 측량을 한다. 언제나 대각선을 넉넉히 활용한다.
14 주물, 장식틀 등의 실제 크기 드로잉을 만든다. 필요하다면 핀 주형틀을 이용한다.
15 중시할 만하다고 느끼는 높이를 (당연히 기록해야 하는 높이와 별도로) 기록한다.
16 대상 공간에서 인접한 환경으로 확장되는 정보를 수집하고 신중히 기록한다. 여기는 당연히 “이웃”이 포함되지만, 또한 배수 설비, 구조, 정면 또는 입면 관계, 빛, 전망, 방향과 같은 물리적 상황과, 쓰레기 배출, 배관 공사, 배전, 배달과 같은 서비스 분석도 포함된다. (체크 리스트를 참고하라.)
17 지방법이나 지역 관공서의 사안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기록한다.(이를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
18 모든 전기 콘센트와 배관 사항을 기록하되, 소모품임이 분명한 표피적인 설비를 꼼꼼히 보고 그리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158~160p]


- 점검사항
지도의 관찰에 근거한 지역상황
도로 상황, 너비, 포장 상태, 가로수, 배수 설비
교통 흐름, 교통 방향, 교통량
주차 상황(업무 시간 이후 주차 확인)
버스 운행 상황과 정류장 (필요한 경우 지하철 노선)
철도 운행 상황과 역 위치
소음
쓰레기
정면 방향 (나침반으로 측정)
관련된 고도와 가로등
수도 잠금장치와 기타 제어 장치
쓰레기 방출 정책
물품 배달 관련 정책
전화
유·무선 TV등 방송 수신 상황
수도, 가스, 전기
배수 설비
정원과 식수[植樹]
주변 시설 : 병원, 도서관, 세탁소, 술집, 상점
우유 배달
주유소
유모차 또는 휠체어 접근성
인접 건물
다른 잠재적 이해 당사자
지붕의 상태와 구조 (사다리로 올라가 보지 않은 상태에서 가늠)
외벽 상태
벽돌 이음매, 벽면 박공[搏拱], 지붕 박공널, 들보 아랫면, 모서리 장식, 기초, 디딤대, 출입로
출입문과 창문
장금장치
우편과 물품 배달 관련 설비
초인종, 문손잡이, 현관, 깔개
보안 장치
건물 진입 경로와 내부의 첫인상
현관 또는 로비
계단
엘리베이터
소음
채광
냄새
온도
습도
유지 보수 상태
포면, 칠 상태, 벽지, 회벽 마감 상태 등
구조
자재
동선

굽도리
바닥과 마룻널
이음매, 모서리
화로
벽난로
통풍구
창문
천장
서까래
쇠시리
붙박이 찬장
조명
방향(남향, 북향, 서향, 동향)
전망
전기, 가스, 수도 스위치, 수도관, 콘센트 등등
전화와 TV
미터기
난방 설비
단열재
세탁과 목욕 시설
주방과 급식 시설
청소 시설
화장실
다락
지붕의 구조와 상태
수조와 기타 시설
도랑과 수직 홈통
주의 : 조사와 관련 있는 시설의 노후 여부와 상태를 모두 평가한다.(그리고 기록한다.)[161~164p]
- 어떤 경우든, “문제”라는 용어를 쓰거나 디자인을 문제 해결로 이해하는 태도는 별 도움이 못 된다.[165p]
- 학생들이 보통 (당연히) 취약한 제약으로는 예산, 법규, 다양한 측면에서 디자인 작업에 걸리는 시간, 디자인 취향 또는 경험(아무리 “객관적”이려 애써도, 개인 디자이너의 접근법은 그에 따라 굴절된다) 등이 있다. 이런 요인들이 디자인 의사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알아 두는 것이 좋다. [171p]
- 보고서는 되도록 간략하고 읽기 쉬워야 하지만 (당연한 말이다), 초보자들은 문체 (글의 톤)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흔히 간과한다. 작문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면, 짧은 단어와 짧은 문장을 구사해, 분명하고 논리적인 순서를 따라 보고서를 구성해야 한다. 보다 원숙한 이들은 목적이나 독자의 성격에 따라 글의 톤을 조절하기도 한다. 허풍, 수사, 지나치게 전문적인 용어, 아는 체 하는 표현으로 독자를 무시하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 그런 보고서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음 메모는 보고서의 적극적 기능과 아울러, 염두에 두어야 하는 명백한 요소들을 요약한다. 상세한 제안을 (예컨대 프레젠테이션 드로잉을) 보완하는 데 그치는 보고서의 경우에는 요건이 조금 완화된다.
보고서는 :
1 목적과 경우와 독자를 철저히 의식하고 써야 한다. (보고서의 성격, 목적, 경우는 언제나 서두에, 간략하게라도 밝혀야 한다.)
2 읽을 사람(들)에 대한 상상력 있는 의식, 그리고 그에 따른 적절한 톤을 구사해야 한다.
3 직접적으로, 순서대로, 일관성 있게 소통해야 한다(1번과 2번에서 파생하는 요건).
4 “올바른”구성이란 없다. 단지 적절한 구성만이 있을 뿐이다.
5 정해진 구성은 없지만, 보통은 논리적으로 “주어진 상황-요건-제안”의 순서를 따른다.
6 디자인 은어나 사적인 언어는 되도록 피해야 한다.
7 문장 형식으로 주장을 펼치고, 질문이나 주지의 사실이나 수량은 목록으로 작성해 덧붙인다. (별지 형태로 보고서에 첨부하는 것이 더 좋다.)
8 보충 자료나 본문의 일부로서, 스케치, 다이어그램, 그래프, 사진등을 포함해도 좋다.
9 분량이 많은 경우, 본문으 짧은 문단들로 나누고 문단마다 번호를 붙여 참조하기 쉽게 하면 좋다.
10 분량이 많은 경우, 또한 결론의 용약으로 보고서를 시작해도 좋지만, 되도록 권고안 자체의 요약은 피해야 한다. (권고안은 논지 자체에서 필연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편이 낫다.)
11 여러 사람이 읽을지도 (그리고 다룰지도) 모른다. 그 경우 여러 부를 (번호를 달아) 제출하면 좋다.
12 완결되고 자명해야 한다. (필자가 독자 옆에 앉아 빠진 부분을 채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13 의뢰인의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 따라야 한다.
14 그럼으로써 의뢰인이게서 받은 지침에 내포된 함의를 온전히 밝혀주어야 한다.
15 그런 함의들을 문제의 “제약들”에 (예컨대 시간, 비용, 공간, 법규, 기타 등등에) 연관시켜야 한다.
16 그럼으로써 의뢰인의 요구와 지침 이면의 의도를 통찰하고, 지침에 잠재된 진정한 가능성을 가늠해야 한다.
17 그럼으로써 의뢰인과 디자이너 모두에게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를 명확히 밝혀 주어야 한다.
18 결정 사항이나 권고의 맥락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19 구체적인 결정 사항을 다루지 않는 경우, 그런 조치가 준수해야 하는 적절한 원칙들을 제시해야 한다.
20 상황의 요구와 잠재성 모두에서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21 디자이너의 잠정적 가정과, 디자인 접근법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예측 가능한 원칙에 대해 의뢰인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22 이후의 행동을 (어떻게, 언제, 무엇을 하지) 권하고 규정해야 한다.
23 의뢰인 또는 관련 독자의 긍정적인 반응을 예견해야 (요구해야, 끌어내야) 한다.
24 디자인 지침을 새롭게, 보다 명시적으로 정의하기 위한 바탕이 되어야 한다.
25 디자인 과정에서 창조적인 (부수적이기보다 실질적인) 업무가 되어야 한다.
26 그럼으로써 디자이너에게 직접 도움을 주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디자이너 자신이나 동료들을 위해 작성할 수도 있다.
27 디자인 기회로 간주해야 한다-구조, 레이아웃, 재료 등에 보고서의 내용보다 더 큰 정성을 들여서는 안 되지만, 보고서의 모양과 느낌 역시 1-4번 요건에 알맞아야 한다.
요약하면, 보고서 작성에는 특별한 장점이 셋 있다. 언어의 용법말고는 관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그에 맞게 쓸 수 있다.
(형식과 목적의 긴밀한 결합이 가능하다.) 보고서는 모든 관련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발시키기 때문에, 소통의 촉매나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보고서는 디자인 과정의 여러 단계에서 건전한 기능을 발휘한다. -중략- 보고서 작성은 과제 또는 그 주변의 고려 사항들을 보다 반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좀 더 영구적인 형태로 “실컷 이야기”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174~177p]


- 초보자를 위한 조언
1 디자인 지침이 충분히 분명하고, 완전하고, 명확해질 때까지 질문하고 다시 쓴다. 독자적인 가정을 해야 할 경우, 그 점을 밝힌다. 최종 지침에 대해 동의를 구한다. 그러고 나서 작업을 진행한다. 여기서 실패하면 결국 디자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실패할 것이다.
2 태도 : 꼭대기에 올라서서 과제를 지배하려 들면, 작업은 질식사하고 만다. 과제가 당신을 끌고 가도록 내버려 두고, 과제를 갖고 놀고, 과제의 고유한 생명을 찾아 준다.
3 새로운 재료나 기법만이 탐구할 가치가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금물이다. 엄밀히 말해, 지금 구할 수 있는 재료는 모두 현대적인 재료다.
4 아무리 불명확하고 어수선해 보이는 과제에서라도, 또렷하고, 단순하고, 명확하고, 잘 만들어지거나 잘 처리된 작은 부분을 최소한 하나씩 구출해 낸다.
5 많은 실기 과제에는 지도 교수와 학생 자신을 위해 작업한다는 학교의 현실과, 과제 자체의 작업에 따르는 가상의 (“가령-라 치자”)현실이 있다. 이 둘을 구분해야 할까?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6 만약 어떤 과제에 대한 자기 작업이 비참한 기분이 들 정도로 마음에 안 든다면, 상세한 자기비판으로 과제에 응하라. (그래픽 작업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학교의 현실인가?
7 처음에는 어떤 학생이건 독창성을 추구한다.5년 뒤에는 (부패한 예술가로 출세할 요량이 아니라면) 약간의 자제력과 통찰력을 발휘해 간단한 과제만 해결할 수 있어도 보람을 느낄 것이다. 최소한 이 사실을 알아 두는 것은 나쁘지 않다.
8 작품을 제시할 때는 언제나 포기한 시안들도 함께 보여 준다. 만약 작업이 막히면, 그 시안들을 최대한 발전시켜 본다.
9 만약 세상에 불필요한 쓰레기가 우글거린다면, 가장 저렴하고, 단순하고, 평범한 재료로 어떤 작업이 가능한지 고민해 보아도 가치있지 않을까?
10 첫해에 기억해 두어야 할 사실 : 앞으로 당신은 무엇이든 완성도하기 전에 거부하곤 할 것이다. 가치관이 그만큼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디자인 바업에 이 점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어떻게?
11 작업의 모든 가시적 결과를-노트를 포함해-하나의 총체로 볼 것. 당신 자신이나 과제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유 과정을 (다이어그램을 이용해)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한다.
12 스케치북에 자유롭게 색채를 구사한다. 작업을 시작할 때, 광활한 빈 종이를 멍하니 쳐다만 보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과제에서 주어진 모든 요인들의 정확하고 상세한 속성을 연구하고, 거기에서 바깥으로 작업해 나간다.
13 주변의 누군가가 같은 과제에 대해 더 좋은 디자인 콘셉트를 갖고 있다면, 기꺼이 그 콘셉트를 취해 스스로 발전시켜 보아도 좋다. 최종 결과물은 크게 다를 것이고, 그들을 비교해 보아도 유익할 것이다. 다음번에는 당신이 더 좋은 접근법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객관적인 기준을 놓고 작업한다.
14 표본이나 재료나 카탈로그를 모으듯,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 또는 왠지 모르게 당신의 관심을 끄는 것들을 모두 수집한다. 어쩐지 좋아해야 할 것만 같은 것들은 수집할 필요 없다. 정보는 그 정보의 활용 능력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15 정 다른 사람의 작업을 보고 싶다면, 단 한 장의 사진을 골라 짤막한 평을 쓰고, 다른 사람들의 메모와 비교하는 방법을 써 본다. 눈과 지성이 초점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아마 놀라울 것이다.
16 르 코르뷔지에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다행히도 최후의 기념비적 건축가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유럽이나 미국을 여행하며 직접 확인해 본다. 그러면서, 익숙한 여로에서 벗어나 초라한 인공물들을 죄다 연구해 본다.[193~195p]


- 담기와 싸기는 어떻게 다른가? 그 차이를 알 필요가 있을까? [198p]


- 상상하고 찾는 수고는 소비를 경험으로 대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책은 스스로 완결되지 않고, 오히려 분야에 기여할 뿐이다.
문제의 분야는 이미 이미지에 물들어 있다.
이런 현상은 겉모양으로 사안을 판단하는 방송 매체 때문에 더욱 심화된다. [200~201p]


- 1 오늘날 정규 교육은 우리 모두를 거리에서 내쫓기 위한 까다로운 게임 노릇을 너무 자주한다. 잘못된 굴종으로 둔감해지고 실속은 무른 교육.
2 최상의 디자인에는 명예로운 역사가 있다. 긍정적이고, 비판적이고, 사회적·개인적으로 책임감 있고, 조화를 추구하는 전통이다. 이런 노력의 큰 몫이 겉치레 경영술로 퇴보하고 말았다.
3 “소통”은 사회적 업무가 이윤만 추구하고 솔직한 말은 피하면서 야기한 언어의 타락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용어로 쓰인다. 학문적으로, 소통 이론은 이해가 가능할 때만 흥미롭다. 소통 이론 앞에 선 시인은 마치 천적을 만난 것처럼 멈칫거릴 것이다.
4 정규 교육, 디자인, 소통은 이제 모두 제 가치를 입증해야만 하는 처지다. 오늘날 연구되거나 실천되는 범위에서 이 활동들이 내세우는 주장은 결코 자명하지 않다.
5 우리 작업의 뿌리에서 신뢰성과 필요성의 원칙을 (나아가 현실을) 찾아내자. 사적으로는 창조적이되 문화적으로는 무의미해지기도 어렵지 않다.
6 교육에 쓸 만한 구조는 반드시 검증 가능한 가설로 보고, 경험해야 한다. 그렇게 주장하고 실천해야 하며, 거의 부서질 정도로-또는 최소한 끊임없는 쇄신이 가능할 정도로-엄격히 검증해야 한다.
7 예술과 디자인은 (응용 학문으로서) 목사와 의사 사이만큼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목사에게도 여전히 할 일이 있다고 치자.)
철학은-철학자는-말로 사는 사람이다.
우리가 자신이나 사회에 대해 위협을 느낄 때는, 마치 모두가 같은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건강을 위한-생존을 위한-조건은 마치 다른 곳에 있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
8 주변에서0먹을 것, 입을 것, 살 곳, 친구를 제외하고-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자. 뻔한 질문이지만, 출발점으로는 쓸 만하다. 또한 작업의 평가를 위한 바탕으로도 좋다.
9 레더비:“디자인, 정확히 말해 정말 신선하고 예리한 디자인은, 가장 단순한 조건하고만 공존하는 듯하다.” 같은 논리로,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아마 “좋은 작업에 담긴 가치의 복원과 단련”을 덧붙일 것이다. 공존을 위한 우리의 조건은 무엇인가?
11 그들의 작업을 연구하고, 또한 실험하고 싶다면, 중급 기술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12 움켜쥔 주먹보다는 펼친 손이 좋은 이미지다.
[205~2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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