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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 저널

지은이 / 키스 해링 | 옮긴이 / 강주헌

by Joong

키스 해링 저널
초판 1쇄 인쇄_2010년 7월 1일 초판 1쇄 발행_2010년 7월 10일
지은이 키스 해링
옮긴이 강주헌
펴낸이 박진숙
펴낸곳 작가정신(121-210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70-15 남성빌딩 2층)


- 예술의 역사가 집단을 이룬 예술가들의 고유한 표현 양식, 즉 ‘유파’로 설명되지만, 예술은 옛날에도 언제나 개개인의 작품이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술가들의 ‘집단적 성향’이나 ‘문화적 집단화’가 실제로 존재했더라도 예술이란 행위 자체는 개별적이었다. 설령 공동 작업이었더라도 개인이 반영됐고, 개개인의 고유한 노력이 뒤섞여 공동의 역작이 탄생했다. 그러나 예술사에서 이렇게 많은 ‘유파’와 ‘집단적 표현 양식’과 ‘시대’를 쭉 살펴본 후에 나는 우리 시대에는 집단적 성향, 특정한 유파, 공유하는 이상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은 자기실현의 시대다.
판에 박은 듯한 삶이 지배적인 힘이 되고, 인구과잉으로 인해 우리가 ‘같은 유형의 인간’, ‘전형적인 인간’, ‘일반화’된 존재로서 살아간다고 믿도록 강요하는 반개인적인 사회의 정서와 미디어에 시험당할 때, 예술가는 개성이 여전히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개성은 지금과 같은 대중사회의 적이다. 개성은 개인을 대변하며, 그 개인을 의미 있는 인자로 만든다. 예술은 개성이다. 내 생각에는 이 말이 현대 예술에 담긴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교훈이며, 현대 예술이 탄생한 이후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외쳤던 절규다. 또한 시간이 시작된 이후로 모든 예술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메시지이기도 하다.
예술가가 자신만의 목표를 포기할 때, 혹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목표를 내던지고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을 때, 그들은 집단의 일원이 되어 유파를 추종하며 그 집단의 성명서를 작성해 집단의 사고를 만들어간다. 마티스는 끝까지 순수한 시각을 지키며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려냈다. 그 이후로는 누구도 마티스처럼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마티스와 같은 화가가 나타날지 의심스럽다. 마티스의 그림은 개성의 선언이었다. 어떤 화가도 유파의 부속품이 아니다. 추종자가 아니라면 그렇다. 추종자에 불과하다면 그런 화가는 불필요하며, 쓸데없는 예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예술가들이 각자 다른 생각으로, 또 자기만의 방식으로 독자적인 생각을 탐구한다면 그런 예술가들은 예술사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가 추종자를 자처하거나, 직접 탐구하지 않은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런 예술가는 개성의 표현이란 예술의 목적, 예술을 예술로서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67~69p]


- 예술은 개인적 탐구다.
예술은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의문의 해답이다.
예술의 의미는 관람자가 찾아내는 것이지 예술가가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의 생각은 관람자를 위한 예술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예술 작품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관람자도 예술가다.
관람자는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그 작품이 무엇을 뜻하는지 결정한다.
작품을 구상하는 동안에는 관람자를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또 무슨 생각을 했고, 그 작품을 어떻게 구상했으며 그 작품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관람자에게 말해주어서는 안 된다.
예술가가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를 위해 예술 활동을 할 때, 정의는 예술가가 사용하는 가장 위험하고 파괴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정의는 필요하지 않다.
정의는 정의 자체를 파괴하고, 목표를 정의함으로써 목표마저 파괴한다.
대중에게도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
대중은 대부분의 현대 예술가에게 무시당하고 있다.
대중에게도 예술이 필요하다. 대중에게도 예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수만을 위한 부르주아 예술을 추구하며 대중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자칭 예술가’의 책무다.
예술은 만인을 위한 것이다. 대중이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올바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 행위를 고집스레 추구함으로써 대중으로부터 소외된다면, 그 예술가는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 요컨대 실제로는 허튼 수작에 불과한 ‘자기 혼자만 주장하는 예술의 지식’을 과시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예술은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술은 ‘집단의 일체성’을 요구하는 사회를 뒤집는 데 도움을 주는 파괴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예술은 예술가에게는 물론이고 대중에게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중은 교양 없는 사람으로 보이거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워 자신들이 원하는 걸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술가의 양심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러나 예술가가 대중을 고려하지 않고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예술가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대중이 예술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이유, 대중에게도 예술이 필요한 이유, 대중이 관람자라는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 예술을 감상하는 방법과 예술을 감상해야 하는 이유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 결정이 교양을 갖춘 소수를 위한 예술인가, 아니면 그 시대의 모든 민중을 위한 예술인가?
대중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예술이 성공할 수 있을까?
대중이 예술을 두려워한다면, 우리가 어떤 짓을 했기에 대중이 예술을 두렵게 생각하는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대중이 옛날에도 항상 예술을 두려워했던가? 대중이 정말 중요한가? 개인을 위한, 개인에 의한 예술이 개인의 관람과 감상만을 위한 것인가?
예술이 자아를 위한 것인가? 예술은 예술가와 자아의 관계만을 충족 시키는가?
최종적인 의미가 결정되는 어떤 작품에 대해 무수히 많은 의견이 있듯이, 나는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탐구하는 예술을 만들어가고 싶다. 관람자가 작품의 실체와 의미를 만들어내고, 심지어 작품의 구상까지 가능하게 해준다. 나는 온갖 생각들을 묶어 결합시키는 중간적 존재에 불과하다.[70~71p]


- 캔버스와 유화 물감은 사용할수록 정이 떨어진다. 물감의 다채로운 색들은 사랑하지만, 그 색들을 표현하는 방법이 너무 원시적이고 너무 제한적이다. 유화 물감에서 기름은 색을 정착시키고 전달하는 수단이다. 비디오에서는 빛이 그 역할을 한다. 물론 색을 사용하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나는 그 방법이 뭔지 알아내고 싶다. 내가 유화물감으로 충분히 연습해서 색을 조절하고 실험하며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되면 유화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형체를 다루는 영역에 이제야 첫발을 들여놓고 형체를 그리고 또 그리면서 마음껏 다루려고 노력하는 수준에서 유화 물감으로 실험하기는 어렵다. 게다가형체가 저절로 자제되고 심지어 나 자신까지 억제하는 수준은 지금으로서는 언감생심이다.
소재로서 캔버스는 나무랄 데가 없다. 튼튼하고, 어느 정도 영구성도 지녔다. 또 그림을 그리면 팔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캔버스에 선뜻 다가서기 어렵다. 76X102센티미터 크기의 캔버스를 구입하려면 8달러가 필요하고, 게다가 유화용 물감까지 있어야 한다. 그림 하나 그리기 위해 12달러나 써버린 나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거의 편집증에 사로잡힌다.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서든 찾아낼 수 있고 싼값에 구할 수 있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물에 희석시킨 잉크를 사용하면, 122x275센티미터의 그림을 거의 공짜로 그릴 수 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게다가 그 과정까지 보여줄 수 있다.
나는 그림/드로잉/조각 등 어떤 행위든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75p]


- 실리콘 컴퓨터 칩이 새로운 생명체가 됐다. 이제 인간의 유일한 가치는 컴퓨터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에 있다. 우리는 거기에 있는가? 우리는 여러 방식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처리할 수 없는 정보를 컴퓨터가 관리해준다. 그럼, 우리가 컴퓨터를 지배하는 걸까, 아니면 컴퓨터가 우리를 지배하도록 도움을 주는 정도에 불과할까? 지금은 ‘1984’년이다. 컴퓨터는 십 년 전부터 빠르게 발전해왔다. 컴퓨터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인간의 두뇌 용량을 넘어서는 정보를 저장하며, 기계와 같은 물리적인 것까지 프로그램화 한다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하는 역할일까?
그럼 예술가의 역할을 무엇일까?[79~80p]


- 인간 존재에서 예술의 역할이 앞으로 시험받고 검증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쩌면 인류의 역사에서 지금이 예술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기일 수 있다. 이 시대의 예술가는 컴퓨터에게 추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식하면서 창조 활동에 매진한다. 우리는 위협받고 있다. 우리의 존재, 우리의 개성과 창의성, 우리 삶이 곧 모습을 드러낼 기계미학에게 위협받고 있다. 일상의 삶에서, 인간 존재에서 예술의 위치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다.
인간이 불필요한 소모품이라면 인간의 감정, 예컨대 환희와 탐닉, 창조적인 미의식과 개성도 불필요한 소모품이 된다.[80p]


- 우리는 새로운 생명체를 ‘우리의 형상대로’ 창조했는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창조했는가? [81p]


- 이제 와서 우리가 예술의 역사를 포기할 수 있을까?[81p]


- 이 공책에 쓰인 모든 것은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어떤 생각을 이삼 일 후에 다시 읽으면 원래의 생각을 한결 분명하고 간결하게 설명하는 방법이나, 원래의 생각을 새롭게 해석하는 방법이 때때로(대체로) 떠오른다. 물론, 처음 생각의 결과에서 발전된 완전히 새로운 생각도 떠오른다.
이 책에는 대부분 자연발생적인 생각들이 담겨 있다. 매일 나는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생각을 재평가하며, 내 생각을 다른 말로 표현해본다. 내가 지금까지 쓴 철학이나 이론을 내년 이맘때에도 그대로 믿는다면 나 자신도 놀랄 것 같다. [82~83p]


- 어떤 면에서 나는 다른 화가들이 이미 시작했지만 새로운 생각을 시도하느라고 끝내지 못한 탐구와 연구, 또 옛 화가들이 갑작스레 죽는 바람에 실천에 옮기지 못한 생각들을 이어받아 계속하는 기분이다. 화가들은 죽을 준비도 하지 않는 듯하다. 화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마티스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위질을 해대며 새로운 것을 발견해냈고, 죽음이 중단시킬 때까지 새로운 생각들을 이어갔다. 모든 진정한 화가는 해결되지 않은 문젯거리를 남기며 연구를 중단했다. 모든 가능성을 철저하게 연구한 의미 있는 발견들 속에서도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다.
나는 시작이 아니다.
나는 끝이 아니다.
나는 사슬의 한 고리에 불과하다.
나의 공헌, 또한 내 이전에 있었고 내 이후에 있을 화가들의 공헌에따라 사슬의 강도가 결정된다. [84p]


- 위의 세 작업에 담긴 가장 중요한 의미는, 내가 과거에 창작해낸 이미지를 찢고 변형하고 없앨 수도 있다는 자유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내 그림을 내 뜻대로 찢을 수 있을 때, 그 그림은 내게 쓸모가 있다. ‘환경’을 만들어가는 동안 유일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환경’뿐이다. 더 강렬한 효과를 지닌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그림을 찢고 어떤 그림 위에 덧칠을 해야 한다면, 또 내가 전에 몹시 좋아하던 그림이라도 찢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림은 결코 최종적인 선언이 아니다. 그림은 변할 수 있고 수정될 수 있으며, 다른 그림과 겹쳐질 수도 있고, 아예 파괴될 수도 있다. [90~91p]


- 옛 작품이나 옛 생각을 포기하면서 자신을 제약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옛것을 버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과거의 성취를 바탕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핵전쟁 등의 형태로 나타날 파괴의 위협 아래서 살아가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다. 핵전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환경이 조성된 까닭에 관람자인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감정과 인상이나 생각을 되살려낸다. 나는 사람들에게 억눌린 기분에서 벗어나 예술을 마음껏 즐기게 해주고 싶다. 예술은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조종하고 변형할 수도 있다. 예술은 아주 진지한 것이 아니고, 만질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신성한 것이 아니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캔버스를 사용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위험할 정도로 허술한 재료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예술은 완벽한 상태로 사람들을 겁주는 게 아니다. 예술은 특별히 정의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예술의 목적, 예술의 의미는 어떤 느낌을 전달하는 데 있다. 어떤 느낌이라도 상관없다. 그 느낌이 무엇이고, 그 느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관람자가 결정할 몫이다. 관람자는 예술 작품을 보고 반응하면 된다.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예술의 목적은 이해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어떤 예술을 ‘이해’하겠는가? 예술이 그처럼 쉽게 분류된다면, 예술은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예술을 모른다는 말이 된다. [92p]


- 구조는 모든 것에 내재돼 있다. 아무리 추상적인 작품이라도 구조화되지 않을 수는 없다. 모든 물질, 모든 행동, 모든 생각에 구조와 질서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 구조화되지 않은 것에도 구조는 있다. 시간이 구조를 부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조화된 의견이나 틀에서부터 일을 시작하고, 어떤 생각이나 행위에서도 그 안에 내재된 구조를 찾아낼 수 있다. 미리 결정된 생각이나 구조적인 형식 없이 행해진 행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도 무질서하지 않다. 어떤 것에나 내재된 구조를 반영하는 관계망이 있다. 구조는 현대인의 삶에서 더 명료해지거나 더 흐릿해진다. 겉모습을 근원적인 구성 요소들로 환원시켜가며, 질서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거나 거꾸로 더 막연한 지경에 빠뜨림으로써 질서의 존재를 강조한다. [95p]


-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개인적이고 (괜객이 없다면) 비공개적인 행위이며, 순전히 나만의 의도와 행동의 결과이지만, 다른 사람이 그 그림을 보는 순간부터 생각의 교환과 연상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그때부터 내 그림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며, 그 그림에 대한 내 관심도 급격히 사라진다.
개인적인 작품을 작업할 때는 별 상관없다고 믿지만, 다른 사람들이 감상할 작품을 제작할 때는 예술가에게 관람자를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고려해야 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여하튼 이 부분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예술의 역할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들에게 예술을 제공하는 창조자로서 나는 내 삶만이 아니라 그들의 삶까지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배려해야 하느냐는 당신이 개인적으로 예술의 역할을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라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예술과 대중의 관계에 무관심하다면 당신은 대중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나는 대중과 접촉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한다. 하지만 대중이 예술의 필요성을 이해하는지, 또 삶에서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인정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나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101p]


- 여하튼 나는 독서를 하고 많은 정보를 얻는다. 정보들은 항상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서로 보완하고 재확인해준다. 우연히 얻는 정보도 있지만 오랫동안 구한 끝에 얻는 정보도 있다. 또 어떤 정보는 옛날부터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정보처럼 느껴지고, 어떤 정보는 처음 들었는데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정보와 깨달음을 얻으려고 내가 무진장 노력한 것도 아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을 유심히 둘러보았는지 그러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황량한 길에서 황금 상자가 발에 걸린 기분이다. [114p]


- '좋은‘ 예술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의미는 기능의 전제다.
비트겐슈타인.
당신이 좋을 예술 작품을 창작하든 않든
누가 상관하랴? 누군가
지하철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말하는 것에 대해
혼잣말한다. 누구도
듣지 않는 세상에 대해
혼잣말한다. 당신이 예술 작품을
창작하든 않든 알 게 무언가?
'창작‘한다는 게 무엇인가?
보는 것이 창작하는 것이다
누군가 보기만 한다면.
지하철의 그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 그러나 모두가
듣고 보며
만들며 존재한다. [124p]


- 스틸의 그림들은 마흔 살이다. 따라서 이제는 그 그림들을 어디에서부터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도 명색이 이 시대에 ‘예술’을 하는 처지인 나는 그런 사람들까지 배려하고 싶다. 어차피 그들이 다수이니까.
‘예술의 세계’는 좁디좁다. 또 무척 사사로운 세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리적인 표현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을 지니고 있는 정도다.
공통된 관심사가 있기는 하지만 무척 적다. 클리포드 스틸의 전시회장에도 나를 빙그레 웃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삶에 대한 공통된 생각을 나누며, 그것을 예술이라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그들이 인정하고 싶어 하는 예술보다 훨씬 크다. 따라서 그들의 생각을 무시해버리는 편이 더 편하다.
짐작컨대 뉴욕은 현 시점에서 세계 예술의 중심이다. 그런데 뉴욕에도 관심사를 함께하는 작은 무리들이 있다. 모두가 다르고, 모두의 관심사가 다르다. 따라서 그들 모두를 만족시키려 한다면 파멸의 수렁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134p]


- 관람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살펴보거나, 작품의 특징과 시간과 가치, 역사적 가치 때문에 존중해야 하는 부분을 찾아내려 한다. 때때로 그들은 자신들도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법한 것을 만나면 괜스레 화를 내기도 한다.
그들은 머릿속으로 생각해낼 수 있는 것과는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효과’를 인정하는 걸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선입관과 오해, 설명과 편견, 어설픈 지식, 잘못된 가정 등에 사로잡혀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예술가는 불가능한 꿈을 꾼다. 그것이 그를 결국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원인일 수 있다.
물질성과 경제, 정치·사회·역사·전통적인 언어의 경계를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늘려야 예술가와 대중이 만나는 폭을 넓힐 수 있을까? 그런 시도를 해야만 하는 걸까?
대중에게는 예술이 반드시 필요한 걸까, 있으면 더 좋은 걸가?
대중도 의식하든 않은 간에 ‘예술 개념들’을 거의 매일 만난다. 하지만 대중에게 예술을 좀 더 의식하게 할 수 있을가? 예술과 접촉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서 예술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을까?
예술의 존재가 꼭 인정받아야 하는 걸까? 인정해주는 사람도 없고 인정받는 사람도 없다면 예술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일상의 삶과는 다른 예술 경험-예술가가 경계를 확대한다면-(당연히 그래야겠지만)일상의 삶까지 포괄하는 식으로 세상을 본다면-예술가가 삶을 예술로 본다면-또 삶을 예술로서 경험한다면-예술이라 불리는 특징들이 일상적인 삶의 특별한 경험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면-이런 특별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그들은 예술 경험을 하는 걸까? 그들이 반드시 ‘예술적 환경’에서 예술을 생각해야만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예술을 상품화시키지는 않을까?
텔레비전 덕분에 우리 모두가 미학적인 눈을 갖추게 될까? 우리 모두가 특별한 것을 볼 수 있을까? 그럼 우리 모두가 예술가라 말할 수 있을까?
예술가의 의도와, 그 의도의 실체화에서 비롯된 실질적인 효과 사이에는 언제나 커다란 괴리가 있다.
광고, 즉 상업적인 예술이 그 간극을 메우려 애쓴다-‘효과적인’ 광고.
예술가들은 이런 생각에 얼마나 동의할까? 이런 생각과 멀리하는 주된 이유가 좌절감 때문일까?
예술의 역사-파토스의 규약-액자에 갇힌 죽은 화가들-는 대중과 너무 동떨어져 우리 예술가들은 대중의 존재를 보지 못하고 기억에서도 잊었다. 심지어 예술을 사랑하는 대중까지 잊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철저히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예술에 빠져들었다. 요컨대 다른 예술가, 즉 예술의 동조자art sympathizer에게만 흥미롭게 보이는 예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추상미술이 무의식적으로-혹은 의식적으로-대중을 학대해왔던건 아닐까? 대중이 나중에라도 관심을 보일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며, 대중을 잊은 채 예술행위를 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은 대중과의 관계가 어떤가?
내가 보기에는 지금의 관계도 다원적인 듯하다. 내 생각에는 아직도 대중과의 관계는 막연하며, 대중은 무시되기 일쑤다.
과거의 ‘성공’한 방식을 따라 예술 활동을 하는 덫에 빠지기는 쉽다.
그런데 그런 것도 덫일까?
변화의 정도는 가치관의 반영일까?
상품화된 예술.
그러나 ‘집중’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절충적인 방법론이 놓친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클리포드 스틸이 평생 하나의 매개체에 제한된 방법으로 끝없이 집중한 노력의 가치는 무엇인가?
양극단의 주장이 팽배하게 맞선다.
회고전은 항상 똑같은 의문-변화와 성장, 기법과 가치판단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일련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일관성이 전제가 된다. 한 사람의 창조자라는 공통된 요인도 여기에 포함된다.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지닌 개념을 보편적인 지식에 더하고 싶은 바람이 언제나 있다. 시간은 흐르고, 지식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생각이 누적되면서 당연히 지식도 증가한다. 새로운 정보가 나날이 더해지면서 과거의 지식을 바꿔놓는다.
누적되는 지식. 영향력 있는 생각을 소개하기 위해 뭔가를 한다-누군가 그것을 영향력 있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지식 세계, 즉 보편적인 생각의 일부가 된다.
생각은 누적된다.
생각은 누적된다는 개념이 ‘예술’이란 형태에도 적용된다면, 시간에 대한 관심을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결국에는 시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적되는 시간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시간을 변형시켜야 한다.
이런 개념은 시간을 고정시키는 회화, 조각, 사진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을 기록하는 비디오테이프, 필름, 오디오테이프 등이 누적된 지식을 탐구하기에 훨씬 적절한 수단인 듯하다. 정보의 누적!
존재하는 모든 것이 누적된다.
책들에 담긴 시간은 다른 시간이다. 한 사람이 정보를 다른 속도로 읽을 수 있고, 모든 정보가 동시에 존재하며 시간 속에서 여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는 수동적인 수신자를 넘어 적극적인 수신자가 돼야 한다.
회화-조각(예술품)-위와 같음.
예술행위-예술경험
비디오테이프-필름-행위가 특정한 시간 내에 존재한다-행위가 이루어진 동안만큼의 ‘시간’-실존-지속적인 시간.
점증적인 성장-시간-변화를 통해 존재한다.
움직임-시간 속의 변화. [134~138p]


- 글로 표현되는 언어에 비교할 때 회화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로 회화가 대상을 더 강력하게 떠올리게 해주며 대상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간다. 둘째로 회화는 화가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춤이 밖으로 뛰쳐나가도록 문을 활짝 열어준다.
-장 뒤뷔페, 「반문학적인 의견들」, 1951년 12월 20일 [156p]


- 그림은 기본에서 선사시대 이후로 변하지 않았다. [156p]


- 이런 ‘성공’이 있지 않았다면, 내가 떠난 후에 세상은 이런 것들이 있었다는 걸 모를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실재’하는 것이며, 나 자신보다 더 ‘실재’하는 것일 수 있다. 내가 떠난 후에도 그것들은 이 땅에 남아 있을 테니까. 지금의 내 상황에서, 나는 내가 세상에 내놓는 것들의 전달자다. 내가 그것들을 소유하고 만들어낸 후, 그것을 세상이 소유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세상 자체가 그것들을 소유할 때는 기다리는 것이다. 스물넷의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우습기도 하다. 내가 지금 만들어내는 것은 곧바로 세상에 들어간다. [160p]


- 카르멘 히메네스가 기획한 ‘뉴역의 경향’ 전시회 카탈로그에서.
벨라스케스 궁, 레티로 공원, 마드리드, 1983년 10월 11일~12월 1일
회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석기시대로부터 그림을 그려왔다. 모든 문화에서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보고 느낀 대로 그리려고 애섰다. 특정한 시대에 그 문화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온갖 소재에 많은 형상이 그어지거나 파였고, 뿌려지거나 새겨졌으며, 구워지거나 그려졌다. 인간이 빚어낸 이미지들은 이른바 ‘삶’이라 일컬어지는 당시의 의식儀式에서 중요하고 필수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이미지들은 주거지, 연장과 식기, 의복과 몸, 기념물과 신전, 심지어 땅까지 장식했다. 많은 문화가 그런 이미지들에 크고 작은 가치를 부여했고,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의미와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그런 이미지들은 지금도 이런저런 형태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예술은 인류가 자신의 존재를 재정의하고 기념하는 방법의 일부였다.
니난 백 년 동안 텔레커뮤니케이션, 라디오와 텔레비전, 자동차, 항공여행과 우주 여행, 컴퓨터, 유전자 과학, 인공위성과 레이저 등이 발명됐다. 요컨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형상의 역할이 백 년 전과 똑같을 수는 없다. 심지어 십 년 전과도 다르다.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까닭에 화가도 그에 맞춰 변해야만 한다. 현대 화가들은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존재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제례적 문화와 민중 문화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예술가는 오로지 인간에게만 허락된 재능을 보유한 때문에 인류의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듯하다. 인간의 상상력은 컴퓨터로 프로그램화 될 수 없다. 인간의 상상력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가장 큰 희망의 횃불이다. [166p]


- 돈은 마법의 정반대편에 있다. 예술은 마법이다. 그런데 이제 예술계와 돈이 끊임없이 뒤섞인다. 이런 난맥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예술의 마법이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돼야하고, 마법이 언제나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171p]


- 이미지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대다수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설명될 수 없고 사람에 따라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많은 사람이 점점 안달복달하는 듯하지만, 과거의 문명 세계에서 상징적 기호들은 훨씬 더 변덕스러웠다.
이미지는 다른 뭔가를 하려는 욕구에서 탄생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어떤 생각을 남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미지가 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특별한 것을 뜻하려는 의도는 없이 순전히 내 상상력에서 탄생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어떤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조절할 수 있는 의식의 수준을 유지하는 동시에 충동과 우연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선화는 행위이면서 의식儀式이다.
현대인은 나날이 빠른 속도로 정보를 소비한다. 따라서 요즘의 예술가는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미지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행운과 마법과 영혼을 희생하게 해서는 안 된다.[175~177p]


- 어린아이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즐거워하는 생명체다. [189p]


- 일반적으로, 가장 너그러운 사람이 나누어 가질 것이 가장 적은 사람이다. 나는 열두 살 때 신문 배달을 하면서 그런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190~192p]


- 선과 악은 완전히 상반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똑같아 보인다. [192p]


- 그러나 나는 컴퓨터에서는 사뭇 다른 드로잉의 입체감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 ‘마우스’를 사용하면 저속 움직임과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이미지와 움직임의 이런 변위는 ‘드로잉 화가’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그는 이미지를 취해서 색과 크기와 위치를 조작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따라서 이미지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프로그래머, 모니터 화면에서 제약을 받지만 어디에서나 활용할 수 있다. [192~193p]


- 이런 프로젝트, 예컨대 도시 어린이 연합을 비롯해 대의명분이 분명한 프로젝트와 후원에서 금전적인 면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켜 착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여하튼 내가 이런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정적 후원자(이번 경우에는 버거킹과 베네통)의 판촉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관여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프로젝트 자체와, 그 프로젝트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참여 여부는 착취라는 부작용을 고려해보고 나서 결정한다. 이번에는 그 프로젝트에 참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천 명의 학생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동시에, 그 학생들만이 아니라 그 그림을 보게 될 많은 사람에게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란 생각도 있었다. 상업적인 후원자에게 이용당하고 착취당할 위험은 감수할 생각이었다. 요컨대 내가 비난을 받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 프로젝트 자체는 무척 중요해서 그까짓 비난은 걱정할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지금은 불확실한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명확해지니까. [194~195p]


- 팝아트에 대한 로렌스 알로웨이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팝아트의 초기에 팝아트 작가들이 삶과 예술을 어떻게 분석하고 융합시켰는지 설명한 구절이었다. 그 후, 화가들은 팝아트 영역에서 점점 물러나, 기존 예술의 형태와 품으로 되돌아갔다. 이런 점에서 앤디는 다른 팝아트 작가들과 달랐고, 팝아트의 원래 개념을 충실히 지킨 화가였다. 앤디는 끝까지 팝아트 작가로 남았다. 앤디는화가로서의 삶이 곧 예술이란 개념을 재창조해냈다. 그는 예술의 ‘신성한’정의에 과감히 도전했다. 또한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어 실질적으로 구분되지 않게 만들어버렸다.[213~214p]


- 미술관과 경매 시장은 앤디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다. 앤디 작품의 ‘가치’는 그의 작품에 매겨지는 ‘시장 가치’와 같지 않았다. 개념적으로는 앤디가 재스퍼 존스나 리히텐슈타인보다 훨씬 중요했지만, 게임의 법칙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작품 값은 그들의 작품 값에 미치지 못했다. [214p]


- 작품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잇는 세상과 우리가 존재하는 시대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시대의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이 시대에 정직하다면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일 것이다.[217p]


- 앤디는 시간감각에서도 남달랐다. 내가 앤디와 함께 수많은 파티와 사교 행사에 참석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가 언제나 적절한 순간에 도착했다는 점이다. 파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그러나 절정의 순간에 이르기 전에 앤디는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그의 출현 자체가 파티의 정점이었고, 그가 파티장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파티가 시제로 ‘시작’되는 것 같았다. 또 그는 적절한 때 파티장을 떠났다. 그는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물론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그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파티장을 빠져나갔다. 나중에야 사람들은 앤디가 없는 것을 눈치채고는 “앤디가 갔군. 언제 떠났지?”하고 말하곤 했다. 앤디는 자신이 떠남으로써 파티까지 끝나는 걸 바라지 않았다. 따라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때쯤 앤디는 조용히 빠져나갔다……연기처럼, 그리고 품위있게. 앤디는 수많은 파티장을 떠날 때처럼 이 땅을 떠났다……. 그가 떠나는 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금세 모두가 그를 그리워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그는 갑자기 떠났다. 앞으로도 파티는 계속되겠지만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앤디는 떠났다. 나는 벌써 그가 그립다. [218p]


- 옛 화가들도 표면의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엄격히 말하면, 옛 화가들의 표면은 상당히 얇은 편이다. 멋진 환각은 색과 원근, 공간과 구도 등에서 빚어진다.
내 생각에, 요즘 화가들이 표면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림을 이미지 자체로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앤디 워홀은 최소한의 것으로 불멸의 기념비적 이미지를 창조해낸 완벽한 본보기다.
표면을 돋보이게 한다는 이유로 밀랍, 밀집, 수건, 깨진 접시, 의자, 식기, 나뭇조각 등과 같이 불필요한 소재를 사용하지만, 그런 행위는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변명에 불과하다!
대부부느이 ‘현대’ 회화는 형식의 탐구에 매몰돼 있다. 이미지와 개입, 예술의 진정한 탐구에 비해 형식의 연구가 ‘소재의 과학’을 추구하는데 더 낫기는 하다.
그러나 문화에 진정으로 개입하려면 소재와 ‘형식적인 요소’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소재는 화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림 자체의 전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깨진 접시, 밀집, 밀랍, 나뭇조각은 변명이 뿐이지, 아이디어의 발전적 진화가 아니다. 인위적인 수단을 동원해 ‘표면’의 담론에서 새로운 영역을 ‘발명’해내기는 쉽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예술의 진정한 의미에서 일탄된 편법일 뿐이다. [219p]


- 젖가슴과 엉덩이를 그린 드로잉이 너무 많았다. 마티스도 지겨웠던 것일까. [242p]


- '묻어둔 제안들‘의 모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일 중 하나다. [244p]


- 그림을 그려서 팔아야만 하는 현실이 슬프다. 내가 그린 그림은 모두 나만을 위해 보관해두고 싶다. [277p]


- 뭔가를 팔아야 한다는 게 때로는 지긋지긋하다. 창작만 하고, 그 결과물을 차곡차곡 모아 쌓아두고만 싶은 심정이다. 만들기만 하고 싶을 뿐, 팔고 싶지는 않다. 내 작품이 얼마여야 하고, 몇 퍼센트가 내 몫이며, 어떤 작품을 보관하고 또 얼마나 많이 보관해둬야 하는지 생각하느라 보내는 시간들, 그런 시간들은 정말 비생산적이기도 하지만 반反예술적이기도 하다. 내가 예술을 하는 이유, 내가 예술가가 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뭔가를 창작하는 과정은 내개 만족감을 주고, 그 결과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볼 때는 뭔가를 이루어냈다는 충만감을 느낀다. 그밖의 것들은 힘들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상업적 행위를 하더라도 ‘상품 홍보’ 식의 예술 시장이란 생각에 반발함으로써 예술 작품의 판매에 대한 다른 입장, 즉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마저 일부 사람들에게는 내 작품을 팔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만 여겨졌다. 이런 덫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 두렵다. 한 작품이라도 팔리기 시작하면 이런 추잡한 게임에 끼어들었다는 죄의식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한 작품도 팔지 않겠다고 고집부린다면 존재하지 않는 예술가가 되어버릴 것이다. 나는 문화와 교감하면서 문화, 결국에는 역사에 공헌하겠다는 욕심에서, 뉴욕에 올라가 ‘공공’ 미술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자위행위라도 하듯이 내 그림에 나 혼자 즐거워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화가가 되겠다고 결정한 후에는 나도 이런 게임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원래의 동기와 순수함을 유지한다면 그 게임에 휘말리지 않고 나만의 규칙대로 활동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내가 아주 순수한 초상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기존 예술의 규칙을 깨뜨리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구축함으로써 예술계의 시스템과 정치를 폭로하려 애썼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노력해왔다. [278~279p]


- 행동과 결과를 구분하는 건 불가능하다. 창조 행위 자체는 맑고 순수하지만, 이런 창조 행위는 곧바로 ‘사물’이 된다. 달리 말하면, 가치가 평가되는 사물이 된다. 지하철 그림은 그런 ‘사물’이 아니라 순전히 ‘행위’에 불과했지만, 이른바 수집가들에 의해 파괴에서 ‘구원’받아 이제는 가치가 치솟고 있다. 떼어낼 수 없는 시멘트벽에 그린 벽화, 마음 내키는 대로 수정할 수 있는 컴퓨터 드로잉만이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다. 내가 실제로 ‘사물’을 창작하는 걸 좋아하고, 다른 곳과 다른 시대의 ‘사물’을 소유하고 감상하는 걸 줄곧 좋아해왔다는 것이 문제지만 새삼스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관련된 새로운 변수들도 많다. 쟁점이 더 복잡해졌고, 역사가 가치를 다른 식으로 정의한다는 점이 대표적인 예다. 어떤 것이 변화를 얼마나 자극했고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따른 정의가 있는 반면에, 금전적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시기의 간격이 짧아진 시간관념도 변수의 하나다.
나는 이런 게임을 깨부수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팔지 않는 것도 그를 위한 방법일 수 있고, 지금처럼 계속하되 어떤 것은 팔고 어떤 것은 팔지 않아야 하는지 신중히 결정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또 ‘공공’ 예술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내 작품을 점점 덜 파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그러나 내가 모든 작품을 모아두기만 한다면, 내가 죽은 후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뿐일 것이다. 소유권과 분배를 결정하기 위해 다툴 것이 아닌가.)
내게는 작업할 때가 유일하게 행복한 때다. 나는 작업으로 ‘사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물’이 증권이나 채권처럼 다뤄지는 걸 보고 싶지 않다. 내가 이미 만든 것이 앞으로 만들 것에 지장을 주지 않길 바란다. 내가 지금까지 만든 것 때문에 내가 앞으로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지 영향을 받거나, 또 만든다면 얼마나 많이 만들어야 하는지 영향을 받지 않길 바란다. 나는 그저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기를 바란다. 나는 그저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을 뿐이다. [279~280p]
- 우리는 ‘보라’고 배운 대로 보고, 경험에 비추어진 대로 경험한다. 새로운 창조물은 다음에 등장할 것에 대한 해석과 정의의 일부가 되며, 앞에 존재했던 모든 것의 요약이 된다. 이런 도도한 흐름은 사건들에 의해서 시간 속에 기록되고, 그 사건들을 정의하고 조종하는 ‘사물’들에 의해 사건들 자체에 기록된다. 예술가가 그런 ‘사물’을 창조할 때, 그 ‘사물’에 대한 책임은 예술가에게 있다. 또한 사건, 결국 우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 ‘사물’이기 때문에, 예술가는 신중하고 미학적으로 심사숙고 끝에 ‘사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나는 화가와 조각가, 음악가, 작가와 극작가, 무용가들만이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수, 배관공, 장인, 요리사, 화초 연구가, 벽돌공 등 노동력을 행사하는 온갖 유형의 직업인들도 예술가다. 우리가 ‘사물’을 변화시키고 정리하며 창조하고 파괴하며 상상할 때 내리는 모든 결정이 결국에는 미학적인 결정이다.
이른바 ‘원초적인’ 문화는 이런 생각이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된다는 걸 알았고, 따라서 이런 생각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 덕분에 물질적인 ‘현실’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반면에 현대인은 과학과 성장을 맹신하고, 돈과 탐욕의 정치 및 권력의 남용에 속절없이 갈팡질팡하며,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거란 착각에 빠져 살아간다. 또한 인간이 주변 환경과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 게다가 목적과 의미에 대한 양식마저 상실했다. 대부분의 종교가 시대에 뒤진데다 지독히 위선적이다. 또 과거 시대의 문제를 다루는 데나 적합해서, 이제는 해방과 자유를 제공할 힘도 없고, 공허한 비유나 도덕적 계율을 넘어서는 의미를 부여할 여력도 없다. 이런 의미의 부재는 ‘사물’을 묘사하고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이나 생각보다 ‘사물’자체에서 더 자주 발견되다. 이 ‘사물’들은 다른 ‘사물’을 살명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에 냉소적인 순환의 부분이다. 달리 말하면, 이 ‘사물’들은 다른 ‘사물’을 조작하는 관념의 결과며, 이런저런 생각과 관념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다. 요컨대 ‘사물’은 주체인 동시에 객체다. 따라서 예술가가 의미와 비유, 주체와 객체라는 이런 끝없는 순환에 끼어들어 그 순환을 한 단계라도 끌어올리는 것은 무척 어려운 만큼 중요한 과제다.
새로운 ‘사물’이 창작될 때, 이 새로운 ‘사물’에 대한 해석과 반응이 새로운 생각과 관념을 낳고, 이를 바탕으로 더 새로운 ‘사물’이 창작된다. 시간은 이런 식으로 계속 흘러간다.
이런 이론이 완벽하진 않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맞는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중요하다. 중요한 예술가들(그들의 고결한 생각들)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들의 인식과, 그들이 빚어낸 창조물이 널리 논의되고 파급된 때문이다. 여기에 동반되는 책임이 나로서는 아찔하다.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내가 나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과도 완전한 조화를 이루도록 처신하기 위해 이제부터라도 노력하는 것이 내 의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또 그런 노력 끝에 깨달은 결론을, 내 능력이 미치는 한, 내 작품, 즉 내가 창작해낸 ‘사물’을 통해서 널리 알리는 것도 내 책임이다. [282~283p]


- 나는 뭔가를 하겠다고 결심하면 누가 뭐라 해도 그렇게 하지만, 그 일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기분이 들면 금세 인내심을 잃기 때문이다. [286p]


- 내 ‘만화’ 인물을 사용해서 만화영화를 만드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열 살, 열한 살에 대부분 창작해낸 인물들이 실재하는 것‘으로 변하는 것을 보자 재밌었다. [299p]


- 내 작품중에는 일시적인 것이 많기 때문에 사진은 내 작품 활동에서 중요한 부분이 됐다. 따지고 보면, 사진과 비디오가 키스 해링의 세계적인 현상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사진과 비디오가 아니면, 전 세계 사람들이 어떻게 내 작품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예술에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는 이제 영상을 통해 전달된다. 영상이 때로는 속임수로 쓰이지만, 내 경우에는 영상이 수단이자 목적이다. 물론, 크기의 효과는 사진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밖의 모든 정보는 사진을 통해 전달이 가능하다.[301p]


- 찰스 사치와 같은 사람이 작품을 수집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자기 작품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천박한 화가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힘을 이용해서, 예술 작품에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고, 문화 전체의 취향을 표준화시키려고 작품을 수집한다면 사치와 같은 사람이 가장 의심스런 용의자이기는 하다. 그런 짓은 은행과 투자회사에서 하는 짓과 다를 바가 없다. 사치는 은행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 시장은 세상에서 로마 교황청이나 미국 사법제도 다음으로 가장 위험하고 기생적이며 부패한 조직이다. 예술이 거대한 비즈니스의 혼돈과 현실에서 ‘순수함’을 지키는 섬이라고 한때나마 생각했으니 내가 얼마나 순진했는가. 예술에 순수한 때가 있다면, 금전적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대중을 위해 예술 행위를 할 때다. 내가 대중 앞에서 그림을 그릴 때도 내 서명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보다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에서 내게 서명을 해달라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302~303p]


- 나는 옛날부터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내 일종의 권위와 목적의식을 갖고 그일을 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화가였다면 지금과 같은 위치에서 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있다는 걸 나 자신에게 입증해 보이는 기분이다. 그림을 그리는 내 ‘감각’이 모든 차원에 실제로 적용 가능하고, 내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때 그 기회가 온 것이다. 내가 이미 직관적으로 했던 것의 어떤 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 내면으로 돌아간 것과 다를바가 없다. [309p]
- 내가 누구이든 나는 많은 아이들의 좋은 친구였다고 자부한다. 인생의 시간을 겪어가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그들의 삶에 작은 영향을 주었고, 나눔과 배려라는 교훈도 가르쳐주었다. 때로는 내 아이도 갖고 있지만, 한 사람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내가 아직 살아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살아 있다는 말을 하면, 가끔 앤디가 사무치게 그립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앤디의 부재를 화제에 올린다. 사람들이 앤디를 그리워하는 것만큼 나를 그리워할까? 이기적인 생각이다. 예술가는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서만 예술을 하는 것일까? 불멸의 명성을 찾아서! 어쩌면 그게 문제일지도…….[309p]


- 환경의 변화가 어떤 그림에나 독같이 영향을 미쳐 작품을 바꿔놓지만, 작품 자체는 똑같다![313p]


- 내 작품들이 경매 시장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좋은 싫은 이런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상황을 무시하면 상황에 끌려갈 뿐이다. 나는 아직 경매 시장에서 뭔가를 직접 산 적이 없다. 그러나 어떤 것이 얼마에 팔렸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경매 시장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특히, 내 작품을 시장에 쏟아내는 전반적인 흐름이 있는 것처럼 꾸며서 내 작품의 값에 영향을 주려는 사람들이 저 밖에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식시장의 폭락’과 같은 현상이 있는 것처럼 꾸며서 모두를 속이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내 ‘시장’에 상처를 주려고 한다면, 어떤 작품의 가치를 과대평가함으로써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작품이 경매에서 예상가에 미치지 못하면, 그 작품의 가치가 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된다. 내가 이번 경매에서 염려했던 것도 이것이다. 지난 경매에서 비슷한 작품의 예상가보다 예상가가 훨씬 높게 책정된 몇몇 작품-두 점의 목각 부조와 네 점의 선화-이 있었다. 그래서 그 작품들이 예상가를 밑돌면, 그런 작품을 원하는 수집가가 더 이상 없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 이런 결과가 내게 새로운 작품에 대한 열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무섭다. 따라서 내가 지금 진행하는 작품과, 내가 앞으로 진행할 작품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옛 작품의 수요가 꾸준히 있다는 걸 확인해야 한다. 정말 이상한 순환이다!
또 하나, 불가사의한 것이 있다면, 내 옛날 작품이 지금의 작품과 경쟁을 벌인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스물아홉이고, 1982년경부터 ‘갤러리 순회’(즉 예술시장)를 통해 국제적인 차원에서 내 작품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내 작품은 1984년경부터 경매에 등장하기 시작해서, 그 이후로는 경매에 번질나게 등장했다. 1982년이나 1983년에 내 작품을 산 사람들 중 다수가 내 작품을 투자로만 샀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 작품이 그들의 마음에 드느냐 않드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작품으로 돈을 벌면 그만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런 사람들을 나쁜 놈들이라 생각하고, 순진하게도 그들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는 작품들을 팔았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그 작품들을 되팔면서, 내가 그들에게 받았던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시스템이지만, 이런 시스템을 무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젊은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처음으로 팔 기회에 유혹되지 않겠는가? 최초의 판매는 작품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열렬한 애호가들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화초를 배달하지 않고, 그림을 팔고 싶었다. 결국 악순환의 고리는 그렇게 시작된다. 미술 평론가나 대중이 비판적인 안목에서 당신을 어떤 ‘집단’에서 점찍는다. 그 결과로 예술품 거래인과 화랑, 또 대중이 당신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당신의 작품을 팔 수 있다는 뜻이므로 그들은 당신에게 전시회를 제안한다. 사람들이 당신 작품을 산다. 덕분에 당신은 더 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더 크거나 더 좋은 재료 및 작업 공간을 확보한다. 요컨대 미술과 관련 없는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이제 당신은 상당한 돈을 벌기 때문에, 당신을 추종하는 예술가들이 당신을 더 이상 ‘집단’의 일원으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당신의 전반적인 사회적 성격이 바뀐다. 사람들이 당신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당신은 본의 아니게 ‘예술 시장’에 휘말린다. 아직 당신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기 때문에, 또 작품 값이 지명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당신의 작품 값이 여전히 비싸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당신 작품을 산다. 당신이 작품을 많이 팔수록, 당신 작품을 ‘수집’한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당신 작품의 수요가 증가한다. 많은 사람이 당신 작품을 위험한 투자라 생각하기 시작하지만 그래도 투자는 계속된다. 작품 값은 여전히 비싸지 않아 그 정도의 작은 위험은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시간적 여유와 돈이 있고 새로운 애호가도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또 새롭게 부상하는 신진 예술가인 당신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전시회를 제안하는 화랑도 많기 때문에 당신은 더 많은 작품을 제작한다. 수요가 증가하면서 그림 값도 치솟기 시작한다. ⓫당신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전시회도 잦아지면서 평론가와 언론이 당신 작품에 대한 글을 쓰는 빈도가 높아진다. 예술계의 떠들썩한 선전도 아울러 급증한다. ⓬모두가 이런 선전에 현혹된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⓭마침내 당신 작품이 경매장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가격이 상당히 올라, ‘투자자’들 중 일부가 손해를 보기 전에 수익을 거두어 들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⓮그들은 애초부터 ‘투기적’인 수집가로 당신 작품의 가치를 믿지 않았다. 따라서 당신 작품을 재빨리 팔아치우고, 그들에게 상당한 돈을 안겨줄 수 있을 것 같은 새로운 예술가에게 다시 ‘모험적인 투자’를 한다. ⓯경매에 올라온 당신의 옛 작품들이 지금 당신이 제작하는 작품들과 경쟁을 벌인다. 균형이 유지돼야만 한다. ⓰당신이 이런 ‘균형’을 유지할 능력이 있다는 걸 시장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작품의 생산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은 ‘일반적인’ 시나리오다. 내 경우는 이런 시스템에 도전하며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린 ‘상황’이 더해지기 때문에 약간 다르다. ‘대중적인 성공’과 대중문화와 친밀한 관계, 또 내 성장과 내 삶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 된 특별한 프로젝트는 현재 예술 시장에서 내 위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이런 요인들 중 대부분이 내 시장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앤디가 자신과 예술시장 간의 관계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나는 어떤 인위적인 수단도 동원하지 않고 내 힘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매우 힘든 싸움이었다. 예술 시장에서 나와 같은 골칫덩이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앤디가 그랬듯이, 그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나도 이 조그만 세계를 끝까지 괴롭힐 작정이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내가 이제 경매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설명된다. 내가 경매를 무시하면서 경매가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18~321p]


- 내 생각에는 불교가 ‘평화’의 기본적인 전제로 세계와 자아, 또 개인만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존중을 가르친듯하다. 이곳 사람들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에는 내게 익숙하지 않는 일종의 열정이 있는 듯하다. 세세한 것에 쏟는 관심과 미학적 감성은 ‘이해되는’, 즉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이곳 사람들은 예술을 삶과 분리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서구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존중과 공존은 그들에게 습관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가 유토피아라는 것은 아니다. [326~327p]


- 하지만 내가 고안해낸 무늬를 모방한 모사품이 봇물처럼 쏟아지기 때문에 내 셔츠가 모사품보다 나아 보이기를, 아니 적어도 모사품에 못지않아 보이기를 바랄 뿐이다. [331~333p]


- MOMA(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프랭크 스텔라 회고전(벌써 두 번째)을 보고 왔다.
몇 가지 의견:
큰 정사각형의 기하학적 그림들(약 1.1평방미터)은 여느 그림보다 ‘대중적’으로 보인다.
진부한 ‘현대적인’ 그림들로 보인다.
순수한 현대 추상화지만, 그보다는 이런 유형의 밋밋하고 색을 두드러지게 드러낸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그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이런 유형의 그림에 대해 농담을 해보자면……관람자는 그림의 크기에만 압도당한다.
기하학적으로, 수학적으로 선택된 색. 그림 그리는 과정에 대한 일종의 ‘조롱’.
그 그림에서 공간은 무척 단조롭지만, 안에서 움직일 여지가 있는 공간이다. 착시(과학)는 그림을 움직이게 만들고, 그림이 걸리는 벽과 표면에 공간이 스며든다.
재스퍼 존스에 비해서도 ‘자아’에 대한 해석이 구체적이고 개념적으로도 건전한 듯하다.
그림에 대한 그림.
현대식 농담.
문학적인 농담일까?
그리고 입체적 구성.
그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의심쩍기도 하다.
이것도 장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든 그림의 표면을 조롱한다. 그림이 벽에 놓이는 방법을 조롱한다.
1987년 현재 회화의 상황을 조롱한다.
색 배합은 의도적으로 ‘조악’하게 선택한 듯하다.
그는 새로워지기 위해서 ‘조악’한 길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천박한 색칠과 끔찍한 색 배합은 다시 추상표현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로 여겨진다.
그는 추상표현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다.
강조하는 부분이 무의미하게 보이고, 색의 선택이 무계획적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입증해 보인다.
그에게 지금의 과제는 촉감이 아니라 개념이란 걸 입증해 보인다. 그는 모든 ‘올바른’ 요소와 모든 ‘잘못된’ 요소를 한꺼번에 뒤섞어놓고도 성공한다. 성공의 요인은 그림의 크기와 시장의 힘, 그리고 그의 ‘추함’이다.
그의 ‘추함’에서 그의 ‘새로움’이 나온다. 그의 그림이 지금 추해 보인다고, 너무 새롭기 때문에 때가 되면 아름다워질 거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는 손해를 입을 우려가 더 이상 없다는 걸 안다. 따라서 그는 모험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봐도 졸작이다. 앨턴 토비, 폴록, 워홀, 월렘 드 쿠닝, 아니 모두와 비교해봐도…… ‘조악’하게 보인다. 엉뚱한 색들. 아무런 감흥이 없다. 차이는 곧바로 눈에 띈다. 그는 멍청하지 않다. 그럼, 어떤 의도가 분명히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 의도가 무엇일까? 반짝이는 물감, 우중충한 색, 미술을 갓 배운 학생 같은 유치한 색 배함……의도적이다.
기교적으로는 잘 그려진 그림이다. 비싸게 보이는 작품이다. 크기도 크고 재료도 비싼 걸 썼다.
유난히 서툰 졸작이다. 덕분에 뒤뷔페의 말년 작품이 우아하고 훌륭하게 보인다.
그런데 왜? 무얼 주장하려는 것일까? 장난을 반복한 것일까? 그를 숭배하는 예술계를 조롱한 것일까?
면밀하게 계획된 짓궂은 장난일까? 짖궂은 장난이라면 완벽하다.
모든 올바른 규칙을 따르면서도 모든 올바른 규칙을 위반한다는 점에서 짓궂다. 미리 짜인 계획에 따라 신중하게 선택됐다.
어쩌면 심오한 뭔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344~345p]


- 예술품이 ‘상품’이나 ‘제품’이 되면, 두 세계 모두에서 타협이 이루어지는 건 기본적으로 똑같다. 어떤 ‘예술가’는 ‘순수’해서 대중문화의 ‘상품화’를 초월하기 때문에, 또 광고를 하거나 매스마켓에 내놓을 생각에서 작품을 창조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도 화랑에서 작품을 팔아야 하고, 화랑과 그들의 작품을 똑같은 식으로 조종하는 ‘상인’을 상대한다. 따라서 이런 시스템을 인정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나는 이런이런 시스템을 초월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훨씬 위선적이라 생각한다. 매디슨가가 그렇듯이 예술 세계에도 ‘순수’라는 것은 없다. 오히려 훨씬 더 썩었다. 새빨간 거짓말! [349p]


- 최근에 번역된 장 뒤비페의 『질식시키는 문화』를 마저 읽었다. 장황하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듯하지만 메시지는 확고하고 무섭도록 정확하다. 문화라는 개념은 교황청, 지배계급, 당시 권력자와 관련된 금력과 권력의 음모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부자와 권력자가 기록하고 설명하며 지원하는 공식 문화는 그들의 지배력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미술관과 ‘역사책’은 사실로 소개되는 ‘객관적인 관찰’로 채워져 있지만, ‘문화’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문화는 지배계급의 뜻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지배계급이 ‘그들의 역사’에서 무시하고 배제하기로 결정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잊혔고, 문화에서도 지워졌다. 간헐적으로 경의가 표해지는 문화가 있지만, 그들의 관점과 문화적 평가에 따라 해석되고 설명된 문화일 뿐이다.
요컨대 예술은 부유하고 교육받은 소수의 백인들에 의해, 또 그들을 위해 아직도 조작된다. 물론, 예술가들에게는 자유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반항적이고 정치적인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지배관계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지만 실제로 지배관계는 더 강화됐다. -중략-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의 전망도 그다지 좋지 않다. 우리는 지배당하고 있다. 그 지배의 뿌리는 너무 깊어 완전히 감추어져 있고, 촉수를 뻗지 않은 곳이 없다. 언어와 문화, 지리와 종교, 경제와 기술과학, 역사와 교육, 모든 것, 모든 것에 지배관계가 존재한다.
물론 나도 알고, 많은 사람이 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예로 들어보자. 어떻게 아직도 아파르트헤이트가 존재할 수 있을까? 마틴 루서 킹 박사가 이십 년 전에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인종차별이 나쁘다는 건 세계가 안다. 언론인, 사회 운동가, 책과 노래, 영화-많은 사람, 많은 곳에서 지배와 차별을 반대하지만 1988년 현재에도 차별은 존재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강력하다. [358~359p]


- 다시 시작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상품을 만들 돈, 팝 숍을 유지할 돈. 매출은 점점 줄어들거나, 낮은 수준에서 유지된다. 가짜 상품들이 매출 부진과 관계가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361p]


- 미래를 보장받으려면 이곳의 팝 숍을 더 일본식으로 운영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말하자면, 모든 장사꾼이 그렇게 하듯이 나도 한 군데 이상에서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팝 숍에 오고 싶으면 습관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모조품이 사방에 널려 있는데. 게다가 모조품 때문에, 그래서 내 상품을 너무 자주 봐서, 결국 내 상품에 진력을 낼 수도 있다. 큰 회사와 손잡지 않으면, 모조품을 추적하는 일은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만 허비할 게 뻔하다. 내가 계속 개입할지 아니면 손을 뗄지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덜 개입할 방법을 찾든지. 하지만 지금은 팝 숍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또 대리인이나 관리자로서 적극적으로 일할 사람을 뉴욕에서 파견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럼 나는 대량생산되는 키스 해링에서 점점 멀어지겠지만. 여하튼 나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는 데보다는 뭔가를 만든느 데 더 관심이 있다. [362p]


- 어젯밤 새벽 3시까지 에이즈에 관한 책을 읽은 탓인지 이번 기침은 유달리 걱정된다.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고 팝 숍에 들렀다. 손님이 없어 썰렁했다. 우울하고 맥이 빠졌다. 많은 모조품을 보았고, 내 이미지를 온갖 것으로 변형한 상품도 보았다. 그런 현상이 일본 시각 문화의 일부가 되고 그 자체로 소화돼 나와는 아무런 관련성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먼 옛날부터 일본에 있었던 듯하고, 이제는 ‘일본 문자의 영어화’와 비슷한 실정이다. [363~364p]


- 스위스항공에 근무하는 남자가 얼마 전에 거물급 화상 여러 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던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그가 사치 앤드 사치화랑 사람에게 “키스 해링과도 일하십니까?”라고 묻자 갑자기 모두가 입을 다물었고,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고 말했다. 하기야 그가 어떻게 그런 불문율을 알았겠는가?[364p]


- 일본인들은 내 작품을 서양인보다 더 분명하고 깊이 있게 이해했기 때문에 당연히 작품을 더 잘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들불처럼 번지는 모방이 내 확신을 빼앗아 갔다. 복제된 것들은 거의 다시 그려진 것이기 때문에 선의 ‘힘’을 찾아보기 힘들다. 내 작품의 본질은 독자적인 개성을 표현하는 ‘움직임’과 ‘선의 혼’에 있기 때문에 무분별한 복제는 안타까울 뿐이다. ‘귀엽다’는 개념, 유행을 쫓는 과도한 속임수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이곳 사람들이 올바른 이유에서 내 작품을 사랑했다고, 또 그들이 내 작품을 올바른 이유에서 느끼고 읽었기 때문에 유럽인과 미국인보다 훨씬 깊이 교감했던 것이라 믿고 싶다. 소수에 불과하겠지만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대다수는 옷과 잡지에서 본 이미지를 통해서만 내 작품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상을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올바르지도 그르지도 않은 새로운 현상이다. 그것이 내 실상이다.
이제 내게 주어진 과제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고, 내 생각과 예술을 꾸준히 규정하고 작업하면서 줄기차게 전진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테니까. [364~365p]


- 모든 일을 깔끔하게 정리해두고 싶다. 그래야 내가 죽어 없더라도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해 두고 싶다. 그래야 내가 죽어 없더라도 모든 것이 계속될 테니까. 내가 있든 없든 내가 시작한 일이 꾸준히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365p]


- 서양 사람은 알지 못하는 미묘하고 함축적인 가치가 그들의 일상생활에 베어 있다. 이곳에서는 삶 자체에 시詩가있고, 모든 행동에 상징성이 감춰져 있는 듯하다. [368p]


- 내가 이제 와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그런 미술가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초대받고 인정받고 대우받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의미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술계 사람들, 특히 평론가들과 화상들과 박물관 사람들은 나를 그저 호기심거리로 취급하며 쉽게 무시해버린다. 여하튼 그런 미술가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미술 잡지의 무시, 키스 해링이란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주장하는 평론등에 의해 끊임없이 소진돼가던 자신감을 되찾는다. 내가 존경하고, 내 작품과 역사적으로 맥을 함께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인정이 여느 평론가, 박물관 관리자, 화상보다 내게는 훨씬 중요하다. 여하튼 나중에라도 다시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써두고 싶었다. [369~370p]


- 우리는 사진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1500년대에 사람들이 그와 같은 그림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카메라가 실재에 대한 우리 생각을 순간적으로 고정시킨 구체적인 찰나로 대체하기 전에도, 우리가 지금 실재라 생각하는 것은 항상 있었고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이제 우리는 실재에 대한 이런 개념을 ‘사실fact'로 받아들인다. 기록되고-증명되고-평가되는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프라도 미술관의 그림들에서 ’실재‘는 상상하거나 미학적으로 표현된 실재다. 거의 극실재다. 그 이유는 정지된 시간(압축된 시간)에 담긴 시간의 양과 관계가 있다. 하나의 얼굴이 많은 얼굴로 빚어졌고, 몸의 해부학적이고 개념적인 왜곡과 빛을 사용함으로써 사진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방식으로 모든 것이 형상화됐다. 사진 기술을 이용해 기록한 이미지들(사진과 영화와 비디오)이 기록된 후나 기록하는 과정에서 그 그림들에 담긴 미학적인 속성까지 담아내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또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실재‘를 조작하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우리는 그런 그림들과 비슷한 이미지를 빚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재‘를 재조정하고, 실제로 육안으로 보이는 것에 미학적 감각을 더해주는 컴퓨터라면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일찍 그런 수준에 이를 수도 있다. 현재 우리는 극실재라는 감각을 완전히 상실하고, 우리가 ’실재한다‘고 확신하는 것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다. [387p]


- 누구나 자신의 세계에서 중심이고, 따라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창조자다. [394p]


- 고통이 즐거움을 정의한다. 고통은 계속되고 우리가 고통에 적응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아무튼 인간의 이런 적응력은 예부터 존재했다. [399p]


- 미리 계획된 설계도에 따르지 않고 직관에 따랐다는 이야기는 전대미문의 사례다. 또 지금도 그 성당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가우디가 정확한 건축 도면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내게 터무니없게 들린다. 가우디의 ‘건축법’이란 개념 자체가 완성을 위해서는 중요할 텐데. 어떤 화가가 죽은 후에 미완으로 남겨놓은 그림을 완성시키려는 시도와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400p]


- 열 살쯤 돼 보이는 다비드란 소년이 내 보호자 역할을 해주었다. 작업하는 내내 다비드는 내 옆을 지키면서 다른 아이들이 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었다. 작업을 끝내고 사진을 찍을 때도 가지 않았고, 내가 주변을 정리하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다음 날, 내가 벽화를 사진에 담으려고 다시 돌아갔을 때 다비드가 내게 필통을 선물로 남겨놓은 것을 알았다. 필통에는 동네 사람 중 하나가 내게 준 연필이 담겨 있었다. 다비드는 학교에 가고 없었지만, 자기가 없을 때 내가 그곳에 오면 필통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 선물을 받은 때가 이틀 중 최고의 순간이었다. [402p]


- 하기야 아름다운 종말은 없지 않은가. 어떤 경우에도 인간관계는 해피엔드일 수 없다. [410p]


- 여기에 온 이후로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책을 읽지도 않고 그림을 그리지도 않는다. 글을 쓰지도 않고 전화도 하지 않는다. 많은 생각을 하고, 먹고 자고 마리화나를 피울 뿐이다. 그래서 이런 것을 휴가라 하는 모양이다. [410~411p]


- 나는 행복하다. [415p]


- '현실‘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돼 그런 이상주의를 떨쳐낸 지 오래다. [421p]


- 이제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할지 머릿속에 훤히 그려진다. [422p]


- 백남준이 텔레비전 화면으로 빚어낸 이미지들과 그 이미지들이 변하는 속도는 정말 놀라웠다. 텔레비전이 예술의 한 형태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듯했다. 덕분에 내 눈과 뇌가 엄청난 속도로 밀도 있게 쏟아지는 정보를 흡수하며 크게 호강했다(무리하기도 했다).[423p]


- 요코가 항아리를 깨는 작품에서는 내가 도우미 역할을 했다(항아리 조각들이 멀리 날아가지 않도록 항아리를 셔츠로 감싸 쥐어야 했다). 요코는 사람들에게 깨진 조각들을 하나씩 가져가라고 하고, 십 년 후에 다시 만난 조각들을 맞춰보자고 말했다. [423p]


- 인터뷰가 줄을 이었다. 이런 광란에 둘러싸여 있을 때 나는 행복하기만 하다. 사실 나를 그런 분위기를 즐긴다. 때로는 귀찮지만, 그런 반응이 사라지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열기를 즐기려면 인내심도 필요하다. [426p]


- 나는 그래픽 그림 도구 상자를 사용할 때 ‘이미지’란 개념을 전반적으로 다시 생각한다. 컴퓨터로 인해, ‘그림 공간picture space'을 구성하고 정의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바뀌었다. 화가와 관람자 간의 관계도 바뀌었다. 그림을 그리는 물리적 행위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이미지 간의 관계도 바뀌었다. 그 관계가 이제는 완전히 추상화돼, 그림 그리기라는 본래의 ’행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지가 이제는 움직이고 뻗칠 수 있으며, 책장처럼 넘겨지고 편집될 수 있다. 디지털화 되어 순식간에 다듬어지거나 삭제될 수도 있다. 요컨대 이미지가 언제라도 변형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짤 수 있는) 전자정보로 환원됐다. [430p]


-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따라서 기록해주어야 한다. 언젠가 뒤로 돌아와 기록을 읽고 그때를 기억하며 다시 이야기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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