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루시 R. 리파드 | 옮긴이 / 전경희
팝아트
1985년 7월 15일 초판인쇄
1985년 7월 20일 초판발행
저자 루시 R. 리파드
역자 전경희
발행인 김현표
발행처 미진사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 436-11)
- 팝은 어떤 나라에서도 대중운동이 아니었고 또한 여러 가지 양식의 국제적인 융합도 아니였다. 이 책에 게재된 논문들에서 분명해지겠지만 팝 아트는 개별적인 구체화의 과정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의 양식은 지방주의적이거나 부정적인 자세가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현대 세계에 접근하려는 결의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축제적인 분위기, 현란한 색채, 그리고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팝 아트는 그 이전 시기의 그림에 보이는 임파스토(Impasto : 그림 물감을 두텁게 칠하는 화법-역주) 대신 거칠고, 까다롭지 않고, 고상한체 하지 않는 기법을 고수했는 바, 이러한 기법이야말로 1960년대에 적합했던 것이다. [26~27p]
- “일반적으로 미술평론을 어떤 대상(물체)이 미적인 또는 의미있는 감정과 동일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 왔으며 특히 그 대상이 상표가 붙어 있는 상품일 때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추상미술은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과 동일시될 수 있는 대상이 되고자 노력하는 일면이 있다. 이에 비해서 앤디 워홀은 일반대중의 감정과 동일시될 수 있는 대상을 제시한다. 사람들은……예술에서의 비개성화를 지향하는 경향 앞에서 당황한다……그들은 기술공학적 사회에 내포된 의미를 두려워한다……그들은 기술공학적 사회에 내포된 의미를 두려워한다……우리의 생활주변에서 쾌적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란 대부분 공공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공적인 것들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진부한 사물들이고 또한 가장 일반적인 집단반응들이다. 이러한 작업이야말로 결코 절망적이지만도 않은 이 신세계에서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파악하기위해서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27p]
-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유럽의 두 대가들의 사상이 전형(典型)으로서 가장 강한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즉, 레제와 뒤샹이 바로 그들인데, 이들은 젊은 세대의 미술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팝을 가능케 한 미학적 상황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들의 작품은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놓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성의 결여 내지 약화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32~33p]
- 다시 말해서 다다는 특정한 정치·사회적 개혁이 아니라, 도달하기 불가능한 정신적 백지(白紙)상태를 헌신적으로 추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다다는 큐비즘이 닫아 놓았던 문을 활짝 열음으로써 현대미술,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팝의 도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 문은 재료와 주제에 있어서 모든 것이 통용되는 완전한 자유로 통하는 문이었다. [37p]
영국 팝의 전개(The Development of British Pop)
로렌스 앨로웨이
LAWRENCE ALLOWAY
- 팝 아트는 매스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왔다. 그런데 팝 아트와 매스컴의 관계는 엉뚱하게 오해되는 경우가 흔하다. 즉 팝 아트가 매스 미디어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치 팝 아트 자체가 매스 미디어에 나타난 소재와 동일한 것인 양 오해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이중(二重)의 잘못이 있다. 첫째, 팝 아트에서의 어떤 이미지는 적어도 새로운 맥락 속에 있게 되며 이것이야말로 매스 미디어와의 커다란 차이점이다. 둘째, 매스 미디어란 이러한 견해가 전제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활성적이다. -중략-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유력한 전제들(‘언제 그림이 완성되는가?’ ‘얼마나 적은 요소들로 하나의 그림이 완성될 수 있는가?’) 대신에 팝 아트는 다른 전제들을 제시하는 바, 그것은 ‘하나의 미술작품이 자신의 주체를 유지하면서 소재에 얼마나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가?’ ‘하나의 미술작품이 동시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다. [46p]
- 인디펜던트 그룹은 약 1년간 활동을 쉬었다가 1954~55년 겨울에 멕헤일과 필자에 의해 다시 소집되었는데, 그당시 토론 주제는 대중문화였다. 파울로치, 스미드슨 형제, 헨더슨, 레이너 베넘, 해밀튼, 맥헤일, 그리고 필자 사이에 오고간 토론의 결과,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회화, 건축, 디자인 혹은 미술평론에 대한 관심이나 역할을 넘어서서 하나의 지방적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공유 영역은 대량생산된 도시문화, 즉 영화, 광고, 공상과학소설, 팝 뮤직 등이었다. 지식인들이 흔히 갖고 있는 상업문화에 대한 혐오감을 우리는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사실로서 받아들여 이를 상세하게 토론하고 열렬히 받아들였다. 마침내 우리는 팝 문화를 ‘도피주의’, ‘순진한 오락’, ‘기분전화’의 함정으로부터 구출하여 그것을 진지한 미술로 다루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관심 때문에 우리는 토착적인 민속미술의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영국 내의 반미국적(反美國的)인 견해와 대립관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49p]
- “상징은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로 이해될 수도 있고 혹은 귀중품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문은 판자로 혹은 하나의 미술 오브제로, 해골은 서방에서라면 죽음의 상징으로 동방에서라면 달의 상징으로, 카메라는 사치품으로 혹은 필수품으로도 생각될 수 있다.” 모든 오브제 및 이미지의 의미론적 확산은 그의 예술세계에서 무정형적이고 희미한 디테일로 나타나며, 그것의 거친 질감은 유동(流動)과 더불어 파괴를 의미한다. [55~56p]
- 우연인지 모르지만 파올로치와 해밀튼은 왕립미술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대학이 바로 팝 아트의 제 2단계를 끌고 나가게 된다. 이처럼 왕립미술대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교수진의 영향력 때문이라기보다도 학생들 사이의 자발적 활동의 결과였다. [63p]
- 영화 평론가들의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1954년 이후 대형 스크린 영화의 충격파는 1950년대의 영국을 휩쓸었다. 당시 대형 스크린은 관객의 참여와 몰입을 가능케 한 점에서 모네의 「수련」이나 폴록의 대형회화에 비견되었다. [66p]
- 제1기의 화가들은 대중적인 소재를 객관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의 관심인 대상인 인간의 이미지를 변화시켰다. 한편 제2기의 미술가들은 관심을 환경 자체로 돌렸다. 그들의 기본 전제는 인간이 매스 미디어의 기호, 색채 그리고 빛에 의해 감각을 공격당함으로써 과거와는 다르게 세상을 지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우리 삶의 장소와 이곳에 있는 오브제들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경험을 비언어적(非言語的)이지만 표제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활성화시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66~68p]
-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익숙해진 여러 형태들을 혼합시키면 대중이 공유하는 이미지의 세계가 형성되어 수많은 수준에서 접촉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수준들은 미학자나 사회과학자의 전문가적 눈으로 본 기준이 아니라 그와는 또 다른 기준에서 본 일면을 재는 눈금들이다.” 스미스의 그림들에 붙여진 다음과 같은 제목들은 무엇을 혼합시켰는지 말해 준다-‘맥콜스’(McCall's), ‘레블론’(Revlon), '티슈‘(Tissue), '플리프 탑’(Flip-top), '루비치‘(Lubitsch), '부드러운 꾸러미’(Soft Pack)(도 33) 등. 이것들을 다중적(多重的) 이미저리로 변형시키는 스미스의 작업은 인디펜던트 그룹의 아이디어들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복합적 연상작용을 하는 이미저리라는 파올로치의 개념은 도전받지 않았으며, 인디펜던트 그룹의 회화에서 필자가 피력했던 의사전달의 연속성-온갖 형식의 미술이 공존하며 관람자가 이것들 모두에 똑같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에 대한 개념도 흔들리지 않았다. [69p]
- 낯선 곳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발달된 산업 문명 때문에 미국의 대중문화는 매력적으로 보였다. [70p]
- 어떤 자극에 대한 해석이 애매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자 작가들은 관객과 더불어 1대 1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 가질 수 있었던 확신을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됐다. 오늘날의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추상적이거나 구상적이거나간에 모든 이미저리들은 풍문에 의존하는 심리와 변덕스런 반응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작가 자신이 작품에 대한 해석을 통제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작가가 의도하는 의미를 관객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74p]
- 그는 단어와 이미지, 소재와 그것의 변형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끝없는 순환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예를 들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책에는 그림이 실려 있고 다시 그림에는 책이 들어 있다.” “하나의 작업이 끝난 후에도 그 작업과 주변의 소재들을 계속 결부시킴으로써 작가는 아직도 작업을 계속한다고 할 수 있으며 다시 이것은 하나의 그림을 열려 있는 상태로 ‘완성한다’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77p]
- 또한 필립스는 “기계나 광고, 대중전달매체에 대한 나의 인식은 아마도 이런 요소들이 없었던 전세대의 생각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이런 요소들과 늘 함께 생활해 왔기 때믄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필립스가 파올로치와 다른 점은 단지 그가 대중매체에 보다 더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아니라 소재를 보다 객관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78p]
뉴욕 팝
New York Pop
루시 리파드
LUCY LIPPARD
- 무엇이 팝 아트인가를 규정하는데 있어서 오해할 여지가 너무나 많기 EOans에 앞으로의 논의에서는 뉴욕의 주요 작가 다섯 명과 캘리포니아 및 영국의 작가 몇 사람만으로 그 대상을 국한하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얼마간 하드 에지(hard-edge :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분방한 기법과 대립되는 칼로 자른 듯한 간결한 형태와 단순하고 평면적인 색면 처리를 특징으로 하는 기법-역주)풍의 상업적 테크닉과 색채를 사용해서, 대중적이고 재현적(再現的)인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공통점을 지닌 그들의 작업은 스타일면에서는 반드시 비슷하지는 아니하나, 위와 같은 원칙에 충실한 정도에 따라서 뉴욕의 작가로는 앤디 와홀, 로이 리크텐스타인, 톰 웨셀만, 제임스 로젠퀴스트, 클레이즈 올덴버그 등을 차례로 꼽을 수 있다. [92p]
- 제스퍼 존스가 2차원의 단일한 대중적 모티브를 채택한 이후부터 본격적인 팝 아트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그 중간에 위치하는 것이 앗상블라쥬이다. 이것은 광범위한 영역의 다양한 경향들 사이의 구분을 없애는데 기여했지만 2차적인 현상이었다. 아직도 팝 아트와 혼동되는 앗상블라쥬는 3차원의 꼴라쥬 혹은 꼴라쥬 조각을 가리키는 럽은 의미의 명칭으로서 종이를 붙이는 대신 오브제를 사용하는 것을 이르는 것인데 그 명칭과 논리적 일고나성을 부여한 것은 1961년 가을에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월리엄 C. 세이츠의<앗상블라쥬 미술전>이었다. 그런데 ‘정크 컬쳐’(junk culture:폐물 문화)의 많은 요소들과 폭넓은 꼴라쥬 개념 및 후기 추상표현주의의 면모들을 포괄적이고 역사적으로 한곳에 집결시킨 앗상블라쥬는 한 사조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사실은 끝이었다. [95p]
- 이제 다음 단계는 예술적 잔재를 더욱 철저히 제거함으로써 이러한 깡통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대상들을 더욱 현실에 가까이 접근시키는 것이었다. 제스퍼 존스는 여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가 진정한 팝작가인 적이 없었던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가 선택한 소재들이 새로운 상품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것들은 표면이 회화적이었기 때문에 새로 제조된 대량생산물이라는 인상을 줄 수 없었고 따라서 팝의 전형이 아니었다. 존스의 고색(古色)을 띤 오브제가 감상적이거나 극적인 자극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일부 앗상블라쥬 작가들의 오브제와 다르지만 그것이 새것이 아니고 ‘사용된’ 것임을 암시한다는 점에서는 앗상블라쥬 작가들과 동일하다.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과거를 암시하고, 과거는 또 최근의 과거라 할지라도,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팝 아트의 오브제는 시간에 의해 획득된 유일성을 단호히 배격한다. 그것은 아직 덜 달았거나 쓰다가 남겨진 것이 아니다. 모든 캠벨 수프 깡통은 개성을 획들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똑같이 보인다. 일정한 순간에 한 채널에서 방영되는 TV광고는 어느 지역에서 보거나 똑같은 것이다.
미국에서 팝 아트가 폭 넓고, 즉각적인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대중적 이미지와의 접촉이 모든 미국인(도시인이든 농촌인이든, 젊은 세대이든 늙은 세대이든 사회적 지위와 종교가 어떠하든지 간에)들에게 공통된 체험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102p]
- 예술가가 사용하는 소재에 대중이 부여하는 중요성은 터무니없는 것이다…내가 간판 그림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가를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재현하기 때문이지 간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때문은 아니다. 광고 이미지에 내가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그 이미지로 만들 수 있는 그 무엇 때문이다.‘[106p]
- 뉴욕의 팝 아트가 정말로 전성기를 맞이한 시기는 1962년이었다. [109p]
- 풍자로 간주되거나, 아니면 흔히는 자기만족적인 긍정으로 간단히 묵살당하고 있는 팝 아트가 실은 현실과 예술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널리 이해되지 않고 있다. [109p]
- 세잔느 이후 미술은 그 자체를 존재의 근거로 삼으면서 극도로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되었다. ‘미술이 유토피아에 감금당한 것이다’라고 리크텐스타인은 말했다. “미술은 점점 더 현실세계와의 관련을 잃고 내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현실세계는 외곽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팝 아트는 외부로 시선을 돌려 현실세계를 바라보려 한다. 팝은 우리의 환경을 받아들이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만 미술을 대하는 과거와는 다른 또 하나의 심적 상태인 것이다.”[110p]
- ‘비록 하나의 외투, 하나의 코카콜라 병이라 할지라도 상상력의 공격을 이겨낼 수는 없다. 은유와 상상력과의 관계는 침과 혀의 관계와 같이 불가분의 것이다.’[110p]
- 만화나 광고에 표현되어 있는 삶에서는 현실의 삶과 닮은 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상업주의의 셀로판 막에 의해 현실로부터 분리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팝 아트는 초연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감상자의 정서적 또는 감각적 반응을 지배할 수도 있는 것이다. [113~115p]
- 즉, 만화의 의도는 묘사하는 데 있지만 나의 의도는 통일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다.‘ 통일이야말로 그의 작품의 핵심인 것이다. 그는 그의 자료에서 포름을 파괴하는 산만한 디테일이나 선, 인물, 또는 말을 제거해버림으로써 지극히 명료하게 재정리된 포름을 제시해 준다. [118p]
- 한편 와홀은 현대생활 속의 가공할 만한 일들을 일체의 비평을 거부하고 초연한 입자에서 바라본다. 그의 초연함이란 도중에 끼어드는 상업광고에 약간 신경질을 내거나 눈물 겨웁고 혹은 비참한 장면에 약간 감정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담담하게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의 태도를 방불케 한다. 이러한 점에서 솔보다 와홀이 기계공학적 사회를 훨씬 더 충실하게 반영한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실로 많은 사람들이 강간이나 살인을 막으려고 하지 않고 바라볼 만큼 무감각하다. 1930년대의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에게라면 충격이나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만한 공적(公的), 혹은 개인적 재난들에 대해 우리 대부분은 무감동하다. 2차 세계대전 후로 세계의 눈물샘들은 지나치게 자극받은 나머지 말라 버렸다. 와홀이 대변하고 있는 세계는 바로 이런 세계인 것이다.[119~120p]
- 그는 변함없이 ‘상업적인’주제를 사용해왓으며 다인과 달리 그(클레이즈 올덴버그)의 오브제들은 언제나 ‘판매용’이다. [132p]
- 그가 이런 물체들을 만들어내는 목적은 ‘자신의 환상에 구체적인 진술을 부여하기’위해서이다. 환상을 그리는 대신, 환상을 만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시각을 촉각으로 변형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135p]
- 재치와 신선감이 넘치는 이 조각작품들은, 리크텐스타인 특유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모든 회화기법-망판 스크린, 강렬하고 뚜렷한 색채 음영, 굵은 윤곽선, 금속성의 하이라이트 등-을 사용하여 마치 2차원의 평면과 같이 처리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조각은 회화를 주제로 삼은 조각의 효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149p]
- 즉, 이들은 무미건조한 아이스크림용 색조나 캔디용 색채를 비롯하여 야광 안료, 또는 장식 미술가용의 색채인 터어키옥(玉)색, 피스타치오(담황록색), 모오브(엷은자색), 라벤더(엷은 자주색), 복숭아색 등 이전까지는 순수미술에는 적합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 온 색채들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시선을 끄는 과녁 및 줄무늬 모티브의 유행, 대담한 패턴, 지그재그식 형태와 딱딱한 윤곽선, 표현방식의 눈부시도록 화려한 조야(粗野)함, 컴퍼지션과 엄격한 심미적 감각에 대한 무관심 등은 장식적인 안정감을 거부하는 ‘난해한 미술’이 갖는 주된 특징인 동시에 팝 아트를 생성시킨 현상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팝과 비대상 미술과의 잡종교배에의해 태어난 이러한 경향의 미술은 앞으로 한층 더 다양해 질 것이다. [161p]
캘리포니아의 팝아트
Pop Art in California
낸시 마머
NANCY MARMER
- 복사기계를 이용하여 반복된 이미지를 실험하는 복제화 화가들이 극소수 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버어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효과는 미묘한 개성을 잃지 않는다. 그는 음울한 세피아색의 광범위한 변조 가능성을 복사된 이미지의 음영을 통해 실험한다.[169p]
- 미국적 주제를 채택한 새로운 구상주의, 즉 ‘자본주의 리얼리즘’으로서의 팝 아트와 활용될 수 있는 미술양식상의 새로운 관례, 다시 말해서 하나의 미학적 전략으로서의 팝 아트 사이의 구분이 아직도 선명하지 못한 것이 현재의 추세이다. 소재와 양식을 혼동하는 이러한 현상은 이 지역이나 팝 운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역사상 수많은 문학운동과 시각예술운동의 창시자들은 일종의 열렬한 순진성을 가지고, 종전 양식의 진부한 미학적 관례를 사장시킨 후에 ‘삶으로 복귀’함으로써 자신들의 새로운, 그리고 일견 무질서한 듯한 생명력이 생겨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열띤 논쟁이 가라앉고 나면 이러한 삶으로의 복귀가 또 하나의 새로운 관례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팝아트의 경우와 같이 이 새로운 관례 또한 부분적으로 과거 미학의 하부 구조에 속했던 양식으로부터 도출된 것임이 드러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노드롭 프라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새롭고 충격적인 문학상의 발전은 저변 문학의 신데렐라를 유리 구두와 호박 마차로 치장한 것이다.…그것(저변 문학세계)자체는 가장 엄격하게 양식화된 공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시주의도 퇴폐주의와 마찬가지로 비유기적으로 관례화되어 있으며, 그것이 예술가에게 제시하는 것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관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인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일상적 현실이나 가공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의 체험의 세계가 아니라 변두리적인 문학세계인 것이다.” [173~174p]
팝 아이콘
Pop Icons
니콜라스 캘라스
NICOLAS CALAS
- 오늘날 현대미술은 미술사의 관점에서, 그리고 반예술은 ‘현실’의 관점에서 이야기 될 수 있다.[192p]
- 팝 아트가 표현주의에 대한 반예술이듯이, 1920년대에는 초현실주의가 큐비즘에 대한 반예술이었다. [192p]
- 포름이 미술 작품을 판단하는 근본적인 평가기준이라면 각기 다른 두 개의 회화에서 찾아낸 하나의 기본 패턴을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그와 흡사한 패턴들과 비교하지 못할 것도 없다. 리크텐스타인의 망점을 무당벌레의 점과 비교하고, 푼즈의 점을 곤충학분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짜 무당벌레라고 불리는 벌레의 무늬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그러나 우리의 시각을 ‘점묘파의 시각’으로 만들지는 말자! 반예술을 예술 안으로 통합시킨다는 것은 구분의 벽을 세우는 데 있어 선결문제임에 틀림없다. 만일 벽이 없다면 미술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비평가의 역할이 반예술이 예술임을 입증하는 것이라면, 예언가는 반(反)비평가의 도래를 예언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놀이를 놀이 자체로서 즐기는 것처럼, 이미지를 이미지 그 자체로서 즐기도록 하자. 이미지에의 탐닉은 꿈에서 파생된 것이다. 꿈에서 본, 혹은 주변의 실제 세계에서 본 광경이 시각을 통해 전달되기 위해서는 선택된 매체를 통해서 형상을 부여받아야만 한다. 재현이 의도하는 바는 원형과의 혼동이 아니기 때문에 화가는 보이는 것들 가운데서 단지 그가 재현하고자 하거나, 재현할 수 있는 부분만을 그림속에 표현하는 것이다. 현실, 또는 꿈을 표현하는 형상으로서 문화의 결정적인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 도상(圖像, icon : image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역주)이다. 20세기에 있어서 최초의 위대한 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큐비즘의 도상이다. 피카소는 탈(脫)유클리드적 시각을 통해서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인물의 다면성을 종합한 시각내용을 단일한 평면 위에 표현했던 것이다.[192p]
- 난해성은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에 공통되는 특성이다. 큐비스트의 발언은 분명하지 않으며, 초현실주의자의 의도는 해석하기 어렵다. [195p]
- 팝 작가들은 가장 가까운 과거까지도 망각해버림으로써 현재에 대한 ‘실증주의’로 자신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196p]
- 다시 말해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는 이미지 중심의 초현실주의 회화로부터 오토마티즘을 분리해 냄으로써, 추상 미술을 기하학적 형태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자동적인 추상과 계획된 추상의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추상미술은 프로테스탄트와 유대교의 성상 파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프랑스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무신론적 정신 덕분에 프로테스탄트에 의한 성상 파괴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중세적인 구교 신앙으로부터 근대적 세계로 넘어온 유일한 유럽국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로부터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근대 미술의 중요한 운동들 모두가 이미지를 소재로 하는 실험이었다. [196p]
- 프로테스탄트 문화를 가진 두 나라, 영국과 미국에서 최근에 일고 있는 이미지의 재생을 위한 투쟁은 이전까지 멸시되어 왔던 소비 상품의 대중광고 이미지를 예술 속으로 들여오려는 것이다. [196p]
- 만은 추상화가들은 팝 아트가 추상미술을 거부하는데 대해 분노를 느꼈다기보다는 팝 화가들이 이미지를 통속화시켰다는데 대해 충격을 받았다. 이는 일종의 성상 파괴에 대한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6~197p]
- 그리스 신전의 폐허는 역사적 기념물인가, 아니면 TWA 항공사의 광고인가? 또는 그것이 리크텐스타인의 작품으로 나타났을 때는 무엇이 되는가? (도 134)
명작의 재현품은 역사적인 견지에서 평가되기 때문에 무한한 값어치를 지니는 대상을 지칭하는 반면에 그러한 역사적인 작품을 채용하는 광고는 상품, 예를 들어 담배 한갑 또는 비행기표 한 장을 지칭하게 된다. 과거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도로 하는 걸작품의 재현과는 달리 광고란 일시적 욕구를 만족시키도록, 담배를 피우거나 여행을 하도록 우리를 유혹함으로써 과거를 망각하라고 촉구한다. [197p]
- 초현실주의는 초현실을 기반으로 하여 욕망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려 했다. 반면에 팝 아트는 하나의 현실을 다루는 것이다. 이 현실은 대부분 인쇄에 의해 재현된 이미지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복제된 이미지가 그물무늬의 인쇄 망점들로 해체됨을(확대경의 도움으로) 깨달을 때, 재현된 이미지를 그것의 원형과 동일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 그물망 조직은 재현된 이미지가 인쇄과정에서 반(反)이미지적 차원으로 넘어가는 문턱이다. 리크텐스타인은 바로 이 문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신의 확대된 이미지를 만화의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분리시킨다. 재스퍼 존스는 1950년대 중반에 성조기의 도안을 표면의 붓자국 패턴과 혼합시킴으로써 그와 비슷한 효과에 도달했다(도 14). 팝 아트는 반(反)팝이 될 수도 있다. 복제된 이미지와 원형과의 괴리로 말미암아 우리는 원형을 무시하고 마침내는 원형을 망각하게 된다. [199p]
- 거장들의 정신적인 아들 노릇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자와 팝 작가는 모두 반 미술적이다. 주된 차이는 그들의 태도에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태도가 서정적인데 반해서 팝 작가들의 태도는 냉정하다. 그러므로 팝 이미지에 대한 반응도 냉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미지가 예술 작품인가, 아닌가는 이차적인 관심사일 뿐이다. 수호성인의 성상에 예배하는 신자에게 있어서 그 성상의 표현이 걸작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관심사가 될 수 있겠는가? 성상이란 실용적인 용도를 지닌 것이어서 필요에 따라, 기도를 하기 위해서도 쓰이고 친구로서도 쓰이는 것이다. 동일한 이치가 팝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적용된다. [200p]
유럽과 캐나다
Europe and Canada
루시 리파드
LUCY LIPPARD
- 어떤 국가의 문화적 전통이 미국문화와 상이할수록 그 곳에서 나타난 팝 아트적 미술과 원래의 팝 아트 사이에는 유대가 엷어지게 된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팝 아트의 주제와 기법에 접근한 미술가들이 몇몇 있지만 유럽에는 하드 코어(Hard-core, 중핵적인) 팝 아트는 없다. 이것은 여러 가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그 중에 있어서 가장 단순한 이유 중의 하나는 서로 상이한 전통과 생활조건이 서로 다른 미술양식을 낳게 된다는 사실에 있다. -중략-
특히 팝 아트는 풍요로운 사회의 소산물, 더 나아가 앵글로 색슨 사회의 소산물처럼 보여진다. 그리고 팝 아트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성장한 전후 세대에 의해서 생겨나고 또 그들을 겨냥한 미술이기도 하다. -중략- 미국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 특히 라틴계 국가들에게는 미국화(美國化)가 이국적인 매력을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멸시할 수도 있고, 낭만시할 수도 있고, 매력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이상화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적은 드물었다. 유럽인들은 상업적인 주제의 산뜻하고, 불길하고, 풍자적인 면모를 강조함으로써 우럽인들 자신에게 충실하고자 했다. 팝이나 신사실주의 계열에는 쇼비니즘은 거의 없지만, 대중적 양식들은 그것들을 상당히 변모시키는 토착적인 전통들 위에서 싹터나오는 것이다. 순수한 팝아트를 창조하려면 유럽의 화가는 미국화라는 팝 모티브를 자기 자신의 전통과 단절시켜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과의 완전한 단절은 불가능할뿐더러 또한 바람직스럽지도 않은 것이다. [204p]
- 미국인들이 그들의 일상의 리얼리티를 그대로 표출하는 데 비하여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소재를 ‘일상의 신화’라고 부르고 싶어 한다. 양식이나 형식상으로 볼 때, 유럽의 미술가는 미국의 미술가처럼 진취적이 아니다. 그러나 유럽의 미술가는 집단의 동질성을 가소롭게 여기는 ‘차가운’ 영미(英美)적 관점과 대조되는 사납고, 감정적이고, ‘사회참여적인’ 선언과 시위에 열렬한 관심을 가진다. [206p]
-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신사실주의 오브제의 명백한 선조이며, 그 날카로운 에로티시즘도 초현실주의의 유산이다. 신사실파는 뒤샹의 오브제가 스스로 발언하는 것을 허용치 않고, 그것을 단편화하거나, 변형시키거나, 약간 변조하거나 함으로써 신비와 우아미를 덧붙인다. 그들에게 매력을 주는 것은 도시적 리얼리티의 직접성, 평범성, 그리고 익명성 등이 아니라 옛것이든 새것이든 모든 일상사물에 잠재하면서 지금까지 의식되지 아니한 이물감(異物感)이다. [207p]
- 그는 자기가 새롭게 전개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만, 그는 ‘모든 시대의 모든 미술의 프리즘을 통하여 리얼리티의 한 작은 단편을 가져올 뿐’이다. [210p]
- 만 레이의<이시도르 뒤카스의 수수께끼>(도 149)는 신비스럽게 포장된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부터 크리스토는 극적인 추리 놀이로서가 아니라 현대의 산업 기술로서의 포장(packaging)에 대한 강박관념을 전개해 나갔다. 지난 수년간 그는 사람에서부터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것들을 포장했다. 내용물을 알 수 있게, 또는 전혀 알 수 없게, 단단하게 때로는 사디즘적이리만큼 묶어 놓은 그의 소포 덩어리는 그 내용물에 대한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특이하게 애매모호한 느낌을 준다(도 150). 그의 작품의 팝적인 변모는 포장회사의 광고를 이용한 최근 전시회의 발표문에서 강조되었다. “포장은 때로 구매자에 대한 영향력에 있어서 생산물 다음으로 중요하다. 지난해 미국인은 평균 210파운드의 종이를 포장에 쌌다.”[211~213p]
- 아디미는 전형적인 후기 초현실주의적 견해를 가졌다. 형태의 변화가 그의 주된 목표였지만, 또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이해되고 우리가 어디를 가든 우리를 사로잡는 광고미술의 ‘절대적으로 명확한 언어’를 구사하는 데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의 미국쪽 동료들과는 달리 아다미는 형태상의 진전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각적 가능성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살고 있는 리얼리티를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는 일이다.……서술적인 것을 목표로 하는 화가들에게는 ’리얼리스트‘가 되기 위한 스스로의 방법을 찾기란 진정코 어려운 일이다.……시간과 공간은 새로운 심리적 행위 속으로 확산돼 나간다.’ [220p]
- 이들 가운데 가장 재미 있는 인물이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이다. 그의 거울처럼 매끄러운 금속표면 위에 그려진 음산한 인물상들은 표면에 반영되는 주변 사물들의 영상에 따라서 분위기와 크기와 구성이 변화한다. 그래서 피스톨레토의 그림들은 각기 무한히 다른 그림으로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려진 인물상은 주로 뒤쪽이나 측면의 자연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 그림을 보는 관객의 모습이 비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화랑이 아닌 다른 장소, 이를테면 복잡한 스튜디오나 내밀한 침실로 옮겨지면 그 배경은 또 바뀌게 된다. 그것은 초현실주의일 수도 있고 사실주의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초의 진정한 형상적인 경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거울에서 볼 때의 그것이라고 피스톨레토는 쓴 바 있다. 그의 작품은 ‘미와 실재는 동일시될 수 있지만, 그 각각은 자율적인 생명을 지닌다’라는 그의 말을 상기시킨다. [225p]
- 가울은 ‘교통 표지는 어디에나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것은 명령하기도 하고 금지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이리로 또는 저리로 가도록 지시한다.’[227p]
- 많은 젊은 작가들이 뉴욕이나 런던으로 모여드는 것은 유럽의 도시가 미술의 변두리라서가 아니라, 미술계가 언제나 하나의 본거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은 미술에 의해서 발전되며, ‘새로운 리얼리티’는 미술에 의해서만 발견된다.
- 스노우의 그림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팝에 속한다. 그러나 또 상당수는 엄격한 의미의 팝에 들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썼다. ‘반복-상표, 나의 교역, 나의 표지……대량 생산품을 비웃는가? 예술은 단하나 남은 ’가내 수공업‘이다.’[23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