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이일훈
모형 속을 걷다 / 이일훈 지음/ 2005년 2월 15일 솔출판사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42-8소재
- 유치원 하면 우선 알록달록/울긋불긋한 색상이 떠오르고 기기묘묘한 지붕 모양이 그려진다. 양파모양에서 고깔 모자 형태까지 한마디로 유치하기 그지없다. 바깥 벽, 창문 할 것 없이 그림이 그려져 있고 장식이 붙어 있다. 장식만 있어도 어지러운데 색상까지 뒤범벅이니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런 그림과 장식들은 어린이 솜씨가 아니라 어른들이 일부러 그리고 만든 것이다. 아마 어른들의 생각에는 아이들이 그런 그림과 장식을 매우 좋아할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그렇게 정형화되고 유치한 형상들을 좋아할 리 만무하다. 왜 아동심리 운운하면서 막상 유치원 환경은 그 모양인지 이해가 안 된다. [50p]
- 어른들이 만들어준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잘 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놀 곳이 그곳밖에 없어서 노는 것을 보고 '잘 놀고 있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어린이만도 못한 '애른'이다.[51p]
- 노동의 대가는 대충 하면 싸고 꼼꼼히 하면 비싼 법이다. 돈 돈 돈 할 때는 대충 짓기 이외엔 방법이 없다.[60p]
- 흔히 도면을 '본다'고 한다. '본다'는 표현은 다분히 객관적인 느낌이 든다. 누가 그려놓은 도면을 내가 '본다' , 그 내용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 하며 '본다', 아니면 별 관심 없이 그냥 '본다'. 살피는 정도가 약한 표현이다. 무엇을 '본다'는 것은 주체가 참여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나는 잘 쓰지 않는다.
도면을 '읽는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이다. 책처럼 악보처럼 지금 나와 대화하고 있는 상대처럼, 아니 마음처럼 도면을 '읽는다', 그림도 읽고 영화도 읽고 연극도 읽고 세상도 읽고,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읽으면 훨씬 더 가깝게 갈 수 있으니까. 특히 조형예술은 '본다'는 행위를 통해 일차적 감상 행위가 이루어지는데 대부분 '본다'에서 머무는 수가 많다. 그래서 그 아쉬움을, 내면을 ‘읽는다'로 확장시키려 한다. 그 확장은 넓고도 깊은 침잠을 뜻한다. 단순히 보기보다 읽기가 가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보기를 넘어 찬찬히 읽으면 사유가 깊게 되새김된다는 말이다. 그렇다, 되새김이다. 반추하다.[63~64p]
- '보다'와 '읽다'의 큰 차이는 상상력의 진폭이다. 읽을 때의 상상의 영토는 단순히 볼 때보다 훨씬 더 넓다. 무언가를 볼 때는 형상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상상력이 대폭 줄어든다. 그려질 수 있는 상상의 영역이 눈으로 본 그림 때문에 숨죽이는 것이다. 반면 그림 없이 읽는 텍스트는 무한한 공간으로, 형상으로 여운을 남긴다. 이른바 상상의 영토이다. 해서 간략한 도면이나 모형은 상상력을 부추기는 것이다. 사실적 표현의 모형 - 색상 , 재료의 세세한 재현에 치중한 - 이 별 재미 없는 것은 따지고 보면 상상의 여백을 남겨놓지 않아서이다. [64p]
- 쓰기 좋은 것을 기준으로 하면 비싼 명품 쪽으로 눈이 가고 버리기 쉬운 것을 기준으로 하면 싸구려로 마음이 간다.[69p]
- 더 나쁜 것은 전통을 빙자한 단순 모방 행위인데 정신도 없고 중심도 없고 지향하는 목표도 없는 무의미한 행동이다. 전통은 바람직한, 또는 권유해도 될 만한 규범적 범주에서 자발적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74p]
- 건축가들은 대부분 속으로는 '작은' 프로젝트를 선망한다. 그 이유는 '작은' 건축물에서 자신의 확실한 '개념'을 풀기가 좋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고유한 언어와 개념을 중시하는 건축가일수록 더 그렇다. 또 건축에서 확실한 개념이 전개되어 있고 그것이 명료한 표현으로 보인다면 이미 '작은' 것은 크기를 초월하여 엄청나게 '큰'건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축가 입장에서는 작은 프로젝트를 만져봤자 경제적 실속이 없고 오히려 안 하는 게 좋다 싶을 정도로 일의 양은 많다. 좋은 대가를 받는다 해도 전체 예산이 얼마 되지 않으니까 건축가의 몫이 작을 수밖에 없다. 그저 기분만 좋을 뿐이다.[88p]
- 집은 무너져도 '건축'은 죽지 않는다. 숨쉬는 모든 존재가 죽어도 '죽음'이 죽지 않는 것처럼.[97p]
- 말은 그림보다 앞서고 행동보다도 앞선다. 공사를 하려면 도면이 있어야 하고 도면을 그리려면 내용이 있어야 한다. 내용과 가장 가까이 사는 것이 바로 말이다.[99p]
- 구들장 놓을때도 마찬가지로 골을 켜지 않고 잔돌로 괴어놓은 구들을 허튼구들이라 하는데 이 또한 눈가림식의 적당함이 아니라 대단한 합리주의로 보이는 것이다. 허튼춤이 헛된 춤이 아니고 허튼타령이 헛된 타령이 아니라 그 안에서 흐트러진 '사이'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아야 한다.[126~127p]
- 겉으론 웃으며 멀쩡한데 뒤로 이웃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다. 그러다 공사 끝나면 담맞대고 살아야 하는데 한 치 앞을 안 보고 시비만 거니 이웃끼리 할 짓이 아니다. 집 짓는게 무슨 죄라고 괴롭히는지.[132p]
- 건축에서 말하는 동선도 위치의 이동에서 생기는 단순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이동 좌표 속에 내재된 시간의 연속인 것이다.
폐허는 공간의 생성과 소멸을 말하지만 그 바탕에는 시간의 변화라는 도도한 자연 현상이 꿈틀거리고 있다.[143p]
- 그런데 서 있는 건축에서도 사용자의 속도가 매우 중시된다. 건물 이용자의 행위 분석에서도 속도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건물에 들어오지 않고 옆을 지나는 사람의 속도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빠르게 통과할 때와 머물 때의 차이를 관찰하는 것, 그것은 건축 외부 형태 디자인의 실마리를 찾는 또 다른 탐색이다.[156p]
- 사전에는 늘 살아 있는 말의 싱싱함보다 죽어 있는 진부함만 들어 있어 답답할 때가 많다. 쾌쾌한 먼지 냄새가 나는 사전은 그야말로 언어의 공동묘지쯤 될 것이다. 풍경을 이루는 건축물 또는 풍경 속의 건축물들 중에서 특히 도시의 풍경은 '자본'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본의 공간화/구조물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은 우울한 현실이지만 달리 방법도 없다. 자본이 곧 풍경이고 풍경이 곧 자본 논리의 반응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도시는 땅값이 너무 비싼 탓에 무조건 크고 넓고 높게 건물을 지으려 한다는 말이다.[164p]
- 의뢰받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전에 현장에 간다. 반드시 가야한다. 현장에 숨겨진 상황을 파악하려면 직접 가야 한다. 모든 현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도 현장마다 사정/상황/가능성이 다르다. 한마디로 현장의 이야기는 땅마다/집마다/장소마다 다 다르다. 그래서 현장이다. 現 : 나타내다, 나타나다; 실재/지금의 뜻이다. 場 : 마당 ; 때(시기); 구획의 뜻이다. 그래서 현장은 사물이 있는 현재의 장소를 이르거나 사건이 일어난 곳, 또 그 장면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공간으로서의 장소이며 시간으로서의 장면이다. 그래서 현장은 이야기가 숨어 있기도 하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하는 장소/시간이기도 하다. 풍경은 보이는 장소/시간이다. 따라서 현장에선 새로운 풍경이 생겨난다.[166p]
- 한옥韓屋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한옥은 한반도/우리나라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은연중에 그럴듯한 기와집에 오래된 채취가 밴 집을 연상하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초가집도 한옥이고 귀틀집도 한옥이다. 일반적으로 한옥을 전통 건축과 동일시하는 것도 올바른 시각이 아니다.
전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통해 계승되며 미래를 향해 길항하는 것인데 그 와중에 점진적 변화를 거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요즈음 짓는 현대 주거 건축도 넓은 의미로는 한옥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럴 때 바람직한 한옥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책임일 것은 자명한 일이다. [177p]
- 한옥의 조형적 특징이 '처마 곡선', '지붕 곡선'의 우아함이라고 말하는 것도 건축의 핵심을 삶의 방식에 두지 않고 외연적 관점에 둔 편협한 시각이다. '직선 처마'든 '수평 지붕'이든 형태미는 전체적 조화/균형/비례에서 나오는 것이지 '곡선'이 '직선'보다 무조건 미학적으로 우월하다는 논리는 참 우스운 주장이다. 더 우스운 억지는 한옥의 지붕 모습이 뒷산과 어울리니, 앞산을 닮았느니...... 하는 식의 삼류 해설이다.
건축의 형태는 만들 때 무엇을 '표현', '묘사', '재현'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사용된 건축 재료와 구조 방식들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일진데 '자연'을 닮았다니...... 참 우습다. 그러면 벌판/평야 마을의 한옥은 왜 평평하지 않고 봉긋한 지붕을 갖는가.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다.[178~179p]
- 쓸모! 쓸모! 쓸모만 찾는 세상이라서 문득 쓸모없는 다리가 그리워진다. 자동차가 다닐 수는 없지만, 사람이 다니기엔 좁아서 불편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다리가 한두 개쯤 있으면 참 좋겠다. 쓸모가 좀 없더라도 무엇인가를 공들여 만드는 세상, 그게 아마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일 게다. 지독하게 쓸모만 따지는 세상엔 꿈마저 쓸모가 없으면 꾸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아마 내 꿈은 개꿈인 모양이다.[193p]
- 디자인이 정리된 듯하여 선배에게 오십사 연락을 하니 다짜고짜 디자인 비용 보낼테니 시간 나면 더 발전시키고, 다른 일 때문에 바쁘면 중단해도 좋단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디자인을 보셔야 될 것 아닙니까? 하하 웃음 뒤에, 자네 요즘 일이 없는 것 같아서 내가 만든 일이니 그리 알고 디자인 비용 받아 살림에 보태라는 말씀이다. 그 선배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은데 명분 없이 주자니 내키지 않고 디자인 부탁하면서 슬쩍 나의 살림을 돕고 싶었던 것이다.[19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