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수전 손택 | 옮긴이 / 이재원
사진에 관하여
지은이 : 수전 손택
옮긴이 : 이재원
펴낸이 : 이명희
펴낸곳 : 도서출판 이후
편집 : 김은주, 신원제
표지 디자인 : Studio Bemine
첫 번째 찍은 날 : 2002년 9월 9일
다섯 번째 찍은 날 : 2009년 9월 1일
주소 : 121-754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65-8 엘지팰리스 827호
- 그러니까 여행이 고작 사진을 모으는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여행 도중 흔히 격해질지도 모를 혼란스러움을 진정시켜 주고 완화시켜 주는 활동이다. 여행객들은 카메라를 꼭 들고 가야 된다고 생각하며, 여행 중 마주치는 것에는 모두 주목하려고 한다. 그래서 앞뒤 재지 않고 사진을 찍어댄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27p]
- 대개 과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는 듯하다. 산업화된 사회에서 사다보면 으레 과거를 포기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특히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과거와의 단절이 훨씬 더 심각하다. [27p]
- 사진이란 사진을 찍는 사람과 사건이 만나서 생긴 결과일 뿐인 것이 아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도 사건인데, 그것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일으키는 사건인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간섭하거나 침해할 수 있으며, 혹은 무시할 수도 있는 그런 권리를 갖고 말이다. 오늘날에는 카메라의 개입이 있어야 상황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곳곳에 널려 있는 카메라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흥미로운 사건들, 그래서 사진에 담길 만한 가치가 있는 사건들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래서 일단 어떤 사건이 벌어졌다면 그 사건이 도덕적으로 옳건 그르건 간에 그 자체로 완결되어야 한다는 생각 - 그러니까 그 무엇, 즉[그 사건을 기록한]사진이 이 세상에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쉽게 생기게 됐다. 사진은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 남아 있으리라. 일종의 불멸성(그리고 중요성)을 그 사건에 부여해 주면서.[28~29p]
- 자동차처럼 카메라도 일종의 약탈 무기로 판매된다. 그래서 가급적 자동화되어 있어 언제든 곧장 쓸 수 있으면 좋다. 대중은 조작하기 쉽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술에 입맛을 다신다. 숙력된 기술이나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기계가 다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셔터를 살짝 누르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조금만 흘려줘도 알아서 작동하는 카메라. 카메라 회사들이 고객들에게 늘 장담하는 것은 바로 이런 카메라이다. 엔진을 시동하거나 방아쇠를 것처럼 간단히 조작할 수 있는 카메라를.[33~34p]
- 바야흐로 자연 탐험대 같은 것이 생겨나는 이 웃지 못할 코미디를 거치며 총이 카메라로 변신하게 된 까닭은, 자연이 (인간들이 자연에 맞서 보호받아야 했던) 예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오늘날에는(인간에 의해 길들여지고 위험에 빠졌으며 죽어가고 있는 탓에) 자연이 인간에 맞서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에 빠질 때 총을 발사한다. 그렇지만 향수에 젖을 때면 사진을 찍는다.
오늘날은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그리고 사진이 이 향수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사진은 애수가 깃들어 있는 예술, 황혼의 예술이다. 사진에 담긴 피사체는 사진에 찍혔다는 바로 그 이유로 비애감을 띠게 된다. 추하거나 기괴한 피사체조차도 사진작가의 눈길이 닿으면 그때부터 고귀해지기에 감동을 줄 수도 있다. 아름다운 피사체라면 이미 오랜 세월을 보냈다거나 쇠약해졌다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애처로운 감정을 자아내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이다. [35p]
- 움직이는 이미지보다는 사진이 기억하기 훨씬 쉽다. 사진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시간의 어느 한 순간을 깔끔하게 포착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흘려보내는 이미지는 신중히 선택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뒤의 이미지가 앞의 이미지를 곧장 지워버리곤 한다. 그러나 스틸 사진은 어떤 순간을 특권화해 놓은 것으로서, 그 순간을 계속 간직한 채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는 얇은 사물로 뒤바꿔 버린다. [39p]
- 엄밀히 말해서, 단 한 장의 사진으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사진은 우리의 정신에 새겨져 있는 현재와 과거의 상에 뚫린 공백을 메워주기도 한다. 가령 제이콥리스가 보여준 1880년대 뉴욕의 비열한 모습은, 19세기 말 미국 대도시에 만연한 빈곤이 디킨스가 묘사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시사적이다. 그러나 카메라에 찍힌 현실에는 드러난 것 이상으로 은폐된 것도 많기 마련이다. 브레히트의 지적처럼, 크루프사의 공장 사진은 이 공장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말해주는 바가 없다. 무엇인가와 애정 관계를 맺을 때에는 그것의 외양을 보게 되지만,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그것의 기능을 봐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기능이라는 것은 시간 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기에, 시간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뭔가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이 우리에게 이해될 수 있는 법이니.[47p]
- 사진을 통해서 얻게 된 이 세계에 관한 지식은 양심을 자극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윤리적이거나 정치적인 지식이 될 수는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스틸 사진을 통해서 얻게 된 지식은 냉소적이든 인간적이든 감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지식은 싸구려 지식, 즉 가짜 지식이자 가짜 지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가짜 전유이자 가짜 강간이듯이. 우리가 사진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한 사진 속 그 무엇인가의 침묵, 바로 그것이 사진을 매력적이고 도발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사진은 곳곳에 존재하기에 우리의 도덕적 감수성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이미 혼잡한 이 세상에 온갖 이미지의 복제물을 쏟아냄으로써, 사진은 우리가 이 세계를 실제보다 훨씬 더 십게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사진을 통해서 현실을 확인하고 사진을 통해서 경험을 고양하려는 욕구, 그것은 오늘날의 모든 이들이 중독되어 있는 심미적 소비주의의 일종이다. 산업화된 사회는 시민들을 이미지 중독자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야말로 불가항력적인 정신적 오염이다. 아름다움, 표면 아래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목적, 이 세계를 구원하고 찬양하려는 태도 등을 절절히 갈망한다는 것 - 우리는 사진을 찍는 기쁨 속에서 에로틱하기 그지없는 이런 감정을 늘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감정을 비교적 덜 드러내는 사진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이 사진에 강박감을 갖고 있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경험한다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으로 자꾸 축소하려 한다. 결국 오늘날에는 경험한다는 것이 그 경험을 사진으로 찍는다는 것과 똑같아져 버렸고, 공개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그 행사를 사진으로 본다는 것과 점점 더 비슷해져 버렸다. 19세기의 가장 논리적인 유미주의자였던 말라르메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책에 씌어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어버렸다.[47~48p]
- 사진이 등장한 초창기에는 사진이 이상화된 이미지가 될 것이라고 예견됐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은 아직까지도 이런 목적을 좇는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여인이나 석양처럼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찍은 사진이 곧 아름다운 사진이다. 1915년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어떤 건물의 화재 비상구에 놓은 우유병을 찍었는데, 이 사진은 전혀 다른 개념의 아름다운 사진을 보여준 초창기 사례이다. 그리고 일군의 야심만만한 전문가들은 1920년대부터 서정적인 피사체를 점점 멀리 하면서, 평이하며 속되고 따분한 제재에 천착하기 시작했다(오늘날 이들의 작품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최근 수십 년간 사진은 휘트먼이 제안한 대로 아름다움과 추함의 정의를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해 왔다.(휘트먼의 말대로)“정확하기만 한다면 어떤 대상, 조건, 조합, 과정이든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발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리라. 마찬가지로 “사람이 행하거나 생각한 모든 것들이 모두 중요하다”면, 삶의 어떤 순간은 중요하고 그밖에 다른 순간은 모두 사소하다고 여기는 것도 자의적이리라.[53~54p]
- 사진을 찍다는 것은 그 대상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아름다워질 수 없는 피사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피사체에 뭔가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려는 사진 고유의 경향을 막아낼 방법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치 자체의 의미는 변할 수도 있다.마치 사진 이미지가 활개치는 동시대의 문화에서 휘트먼의 복음이 패러디된 것처럼. 민주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문화에서는 사진에 찍힌 사람이 곧 유명인사였다. 그러나 휘트먼이 열정적으로 언급한 바 있고, 앤디 워홀도 그와 어깨를 나란히 견주듯이 언급한 바 있는 미국적 경험, 즉 개방된 사회에서는 누구나 유명인사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다른 순간보다 더 중요한 순간도 없으며, 다른 사람보다 더 특별한 사람도 없게 된 셈이다.[54p]
- 그렇지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부쩍 성숙해진 미국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인들이 실제로 겪은 경험을 아주 솔직하게 모조리 기록하라는 휘트먼 식의 요구가 매력을 잃어갔다. 난쟁이의 사진을 찍으면서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난쟁이는 그저 난쟁이일 뿐인 것이다.[55p]
- 언젠가 왜 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브뉘엘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의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고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아버스는 이보다 더 단순한 것을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었다. 즉, 다른 세계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63p]
- 아버스의 사진은 연민이란 감정을 무언가 부적절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그녀의 사진은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기보다는 사람들이 끔찍한 것을 차분히 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주로) 연민 없는 이 시선이야말로 현대의 윤리에서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특성이다. 냉혹한 것도 아니며 냉소적인 것도 아닌, 그저(혹은 부자연스럽게) 순진한 것일 뿐인 이 특성. 아버스는 고통스럽고 악몽과도 같은 현실을 일컫는 데 ‘대단한’ ‘흥미로운’ ‘놀라운’ ‘환상적인’ ‘굉장한’이라는 형용사 - 통속적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깜짝 놀랄 때 쓰는 표현을 붙이곤 했다. (사진작가의 작업에 대한 그녀의 느긋하고도 순진한 이미지에 따르면) 카메라는 모든 것을 포착하고, 피사체가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도록 만들며, 경험을 넓혀주는 장치이다. 아버스에 따르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잔인’하고 ‘비열’할 수밖에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고통스런 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74~75p]
- 아버스는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중국인들은 지루함도 겪어봐야 매혹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끔찍한 밑바닥 사회(그리고 황량하고 인공적인 상류 사회)를 찍으면서도 그곳 사람들이 겪는 공포 속으로 뛰어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처럼 그곳은 [그녀에게는] 이국적 세계로 남아 있었기에 ‘대단한’ 곳일 수 있었다. 즉, 그녀의 시선은 늘 외부의 시선이었던 것이다.[75p]
- 그렇지만 수 년 동안 광고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워홀과는 달리, 아버스는 진지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자신이 그동안 수련해 왔던 [패션 사진의] 자극적인 미학을 갈취하거나 그것을 갖고 장난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미학에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아버스의 작품은 일종의 반작용이다. 고상함에 대한 반작용, 기존에 [예술이라고] 승인되어 왔던 것에 대한 반작용.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보그』, 패션, 온갖 예쁜 것을 엿먹이는 방법이었다.[78p]
- 아버스에게는 워홀 같은 자기 도취나 천재적인 광고 능력이 없었다. 게다가 워홀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온갖 괴짜를 멀리 하는 데 써먹었던 냉담함도 없었으며, 워홀이 지녔던 것 같은 감상주의도 없었다.[78~79p]
- 자신의 카메라로 세계를 구하리라 다짐했던 스티글리츠도 현대의 물질만능 문명이 가져온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돈 키호테 같은 열정으로 1910년대의 뉴욕을 사진에 담았다 - 카메라는 그의 창이었으며, 마천루는 그 창으로 겨눌 풍차였던 셈이다. -중략- 이제 사진작가는 현실을 보호한다. 즉, “미국이라고 불리는 흐릿하고 놀랄 만큼 모호한 것”의 형태를 보여주는 데 카메라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82p]
- 사진은 실제와 가장 가깝고, 그렇기 때문에 매우 쉽다는 별로 좋을 것도 없는 명성을 얻고 있는 모방 예술이다. 사실, 사진은 유서 깊은 다른 예술이 경쟁에서 줄줄이 낙오되는 와중에서도 마치 초현실주의처럼 지난 1백여 년간 현대의 감수성을 장엄하게 장악해 왔던 유일무이한 예술이다.
저마다 손으로 제작해야 하며, 그 자체가 유일한 원본인 예술, 즉 순수 예술이 되려고 했던 회화는 애초부터 약점을 안고 있었다. 특히 캔버스를 구상적으로밖에 상상할 수 없었던 화가들이 초현실주의의 대가들처럼 놀랄 만큼 숙다라된 기교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으리라. 흔히 이런 화가들의 회화는 각 요소가 깔끔히 계산되어 한치도 어긋나 있지 않으며, 누구나 만족할 만큼 균형 잡혀 있는 듯이 보인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삶과 예술, 사건과 대상, 비의도적인 것과 의도적인 것, 아마추어와 전문가, 천한 것과 고상한 것, 행운의 실수와 숙련 기술 사이의 경계선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리려 했던 초현실주의의 논쟁적인 착상과 오랫동안 신중히 거리를 뒀다. 결국 초현실주의 회화는 왠지 모르게 내용이 부적절한 꿈의 세계와 익살맞은 환상, 별난 꿈, 광장 공포증을 일으킬 만한 악몽의 세계(잭슨 폴록 같은 화가들이 초현실주의의 무정부주의적 장광설에 자극 받아 불손하기 짝이 없는 새로운 추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자, 초현실주의가 화가들에게 제시했던 주장도 비로소 그 창조적 의미를 폭넒게 얻게 된 듯하다). 시, 즉 초현실주의자들이 초창기에 열중했던 이 또 다른 예술도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을 분이다. 초현실주의가 관여한 예술로는 (회화보다 만족할 만했지만, 다룰 수 있는 주제가 훨씬 풍부하고 복잡했던) 산문, 연극, 아상블라주, 사진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성공한 것은 사진이었다. -중략-
초현실주의가 사진에 남겨준 유산은 초현실죽의가 주로 선보인 환상이나 각종 소도구가 1930년대의 첨단 유행에 급격히 흡수됐듯이 곧 시시한 것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초현실주의 사진은 초상화 같은 양식화된 스타일만을 남겨놓게 됐는데, 이것은 초현실주의가 회화, 연국, 광고 같은 다른 예술에 장식처럼 도입해 써먹곤 했던 갖가지 관행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사진 활동의 대세도 현실을 조작하거나 극화하는 초현실주의의 기법이 지나치게 장황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불필요해지는 쪽으로 흘러가게 됐다. 그렇다 해도 초현실주의는 여전히 사진 작업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 세계의 복제물, 그러니까 자연의 시각[눈의 시선]을 통해서 인식할 때보다는 훨씬 제한적이지만 그보다는 훨씬 극적인 현실, 즉2등급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바로 그 과정에서 말이다. 사진은 조작이 덜 되어 있고 솜씨를 부렸다는 것이 덜 분명해 보일수록, 더 솔직하게 보인다. 게다가 그 권위도 훨씬 더 높아지는 듯하다.[89~90p]
- 그러나 관광객들이 떼지어 휩쓸고 간 뒤 변해버린 인디언의 전통의식은 누군가가 사진으로 찍은 뒤 바로잡히게 된 대도시의 추문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추문을 캐러 다니는 사람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한, 그들이 사진으로 찍은 대상 자체도 변해버리기 마련이다. 사실, 어떤 대상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 대상을 변하게 만든다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사소한 변화일지라도 위험, 가령 사진의 피사체를 협소하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 같은 위험을 가져오는 법이다. 1880년대 말 리스가 사진에 담은 뉴욕의 빈민가 멀베리 벤드는 훗날 헐리게 됐고, 그곳 주민들은 당시 주지사였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지시로 새 집을 갖게 됐다. 그렇지만 멀베리 벤드 못지않게 끔찍했던 또 다른 빈민가들은 그대로 방치됐다.[105~106p]
- 미국에서는 도덕주의자, 파렴치한 약탈자, 어린아이, 이방인까지도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하려 한다. 그리고 사라져 가는 것을 사진으로 찍음으로써 그 사라짐을 재촉하기도 한다. 잔더처럼 이상적으로 완벽한 목록을 만들려고 모든 표본을 다 모으려면, 우선 이 사회는 총체적으로 파악가능하다고 가정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 사진작가들은 사회도 자연처럼 안정적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자연이 늘 의심받았고, 수세에 몰렸으며, 진보의 제물이 됐다. 미국에서는 모든 표본이 폐허가 된다. [106~107p]
- 그렇지만 그녀는 뭔가 훨씬더 환상적인 것을 기록해뒀다. 즉, 새것이 끊임없이 바뀌는 광경을. 1930년대의 뉴욕은 파리와 무척 달랐다. “점점 더 늘어만가는 탐욕에서 자라난 것은 아름다움이나 전통이 아니라 자연스런 환상이었다.” 그녀의 사진집 제목은 정말 적절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과거를 기념하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고질적인 병을 앓고 있는 미국이 지난 10년간 겪어온 모습을 기록해두려고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과거일지라도 낡게 되면 곧바로 쓸어버리고, 찢고, 내동댕이치고, 또 다시 새것으로 바꿔버리는 그 10년간의 모습을. 손때 묻은 낡은 가구, 할아버지가 쓰던 주전자와 냄비 - 릴케가 『두이노의 비가』에서 인간에게 없어선 안 될 것으로 찬양해마지 않았던 인간의 따뜻한 손길이 깃들은 옛 물건을 간직하고 있는 미국인들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그 대신에 우리는 종이로 된 허깨비[사진], 풍경을 전해주는 트랜지스터[텔레비전]를 갖고 있다. 깃털만큼 가벼운 휴대용 박물관을. [110p]
- 오늘날, 오래된 사진을 새로운 맥락에서 복권시키는 것은 중요한 출판 산업이 됐다. 사진은 일종의 파편에 불과한 것으로서, 세월이 지나면 사진 안에 고정되어 있던 내용도 떨어져 나간다. 사진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아늑하고도 추상적인 과거가 되어버리기에 다양하게 읽힐 수 있게 된다(아니면 다른 사진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사진은 일종의 인용구이기도 하기에, 사진을 모아놓은 책은 인용구를 모아 놓은 책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진을 책에 담아 발표하는 일이 빈번해 지면서 사진 자체가 인용구와 대등해진 것이다.[114p]
- 인용을 통해서 산문 픽션·회화·영화 등을 구성하는 방법(고다르, 보르헤스, 로널드 키타이 등을 떠올려 보라)이 초현실주의 특유의 취향이듯이, 최근 들어 거실이나 침실 벽에 복제된 그림 대신 사진을 걸어놓는 유행도 초현실주의의 취향이 널리 확산됐다는 지표이다. 사진은 초현실주의가 오브제의 조건으로 내세운 여러 기준(도처에 널려 있을 것, 값이 쌀 것, 별로 호감이 가지 않을 것)을 만족시킨다. 회화는 의뢰를 받아 제작되거나 구매된다. 그러나 사진은(앨범이나 서랍에서) 발견되고,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지며, 쉽사리 찍을 수도 있다. 게다가 오브제로서의 사진은 회화로서는 꿈도 못 꿀 방법으로 대량 생산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원래의 아름다움이 파괴되지도 않는다. 밀라노에 소장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오늘날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그렇지만 사진은 낡거나, 변색되거나, 얼룩지거나, 손상되거나, 빛이 바래도 괜찮아 보이고, 종종 더 좋아 보이기까지 한다(이렇게 보면, 사진은 건축과 유사한 예술이다. 건축물도 세월이 흐를수록 더 훌륭해 보이니 말이다. 파르테논 신전 같은 여러 건축물은 폐허일 때가 더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123p]
- 영화의 한 장면을 따오는 것과 책의 한 구절을 따오는 것은 전혀 같지 않다. 어떤 책을 읽는 시간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는 시간은 영화 제작자가 결정하고, 영상도 어떻게 편집됐느냐에 따라 빠르거나 느리게 인식될 뿐이다. 따라서 어떤 한 순간을 마음만 내키면 오랫동안 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는 스틸 사진은 영화와는 상반된 형태를 갖고 있다. 삶이나 사회의 특정한 순간을 정지시켜 놓은 사진이 일련의 과정, 예컨대 시간에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삶이나 사회와 상반된 형태를 갖고 있듯이 말이다. 사진에 찍힌 세계는 늘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스틸 사진이 영화와 부정확한 관계를 맺듯이, 현실 세계와 부정확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삶에서는 모든 순간이 중요하건, 빛을 발하거나, 영원히 고정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진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한다.[126p]
- 언뜻 뭔가 아름다운 것을 봤는데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놓을 수 없어서 아쉬워하는 경우는 흔히 일어난다. 카메라가 이 세계를 미화하는 본연의 역할을 매우 성공적으로 완수한 탓에, 이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사진이 아름다운 것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앞으로는 자신의 집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집주인이 손님들 앞에 집 사진을 늘어놓으면서 자기 집이 얼마나 멋진지 과시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자기 모습을 사진으로 보는 법, 누군가가 매력적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법, 더 정확히 말하면 사진이 잘 나왔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법을 배운다. 사진은 아름다움을 창조하지만(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서) 고갈시키기도 한다. 예컨대 저 아름다운 자연도 자칠 줄 모르는 아마추어 사진광들의 손길에 무릎을 굽히지 않았던가. 이렇듯 이미지가 범람하게 되면 저녁놀조차 진부해져 보이는 법이다. 슬프게도, 오늘날 저녁놀은 사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131~132p]
- 위조된(거짓된) 회화는 예술사를 왜곡한다. 그렇지만 위조된 사진(수정되거나 변조된 사진, 사진설명이 거짓인 사진)은 현실을 왜곡한다. 사진의 역사는 두 가지 상이한 원칙 - 순수 예술에서 유래된 미화의 원칙과 진실을 말하라는 원칙이 벌인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특히 뒤의 원칙은 과학의 유산인 가치 중립적 진실 개념뿐만 아니라, 19세기 문학이 전범으로 제시했고 (그 뒤로는)독립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직업이 표방했던 도덕적 이상(진실을 말하라는 이상)에 의거해 평가된다. 예컨대 사진작가도 후기낭만주의 소설가나 언론인처럼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고 무지와 싸운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19세기의 화가들이 “아름다움은 진실이다”라는 밀레의 신념을 공유했는지 모르겠지만, 회화는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느리고 성가신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사진은 뭔가 적나라한 진실 같은 것을 보여준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진을 제작한 사람이 굳이 진실을 캐내려고 하지 않았을 때에도 말이다. -중략-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를 선택해야만 했던(화가의) 편협함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재빠르게 기록할 수 있는 카메라까지 갖고 있었기에, 사진작가는 새로운 유형의 계획에 착수했다. 열심히 꾸준하게 노력하기만 하면,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요구와 이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를 화해시킬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처음에는 세밀함이 떨어져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했으나 현실을 정확히 재현할 수 있는 능력 덕택에 놀라운 물건으로 여겨지곤 했던 카메라는 결국 겉모습 - 카메라가 기록한 그대로의 겉모습 - 자체의 가치를 엄청나게 높여버렸다. 사진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진이 재현해 놓은 현실은 그 사진에 충실해지기 위해서 면밀히 검토되고 평가된 현실이다. 1901년, 15년 경력의 아마추어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자연주의 문학의 주창자 에밀 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대상을 사진으로 찍어보기 전에는 그 대상을 진정으로 봤다고 말할 수 없다.” 사진은 현실의 단순한 기록이기보다는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진은 현실, 더 나아가서 리얼리즘의 개념 자체까지 뒤바꿔버렸다.[133~134p]
- 평범한 시선이 심하게 왜곡되면(그리고 어떤 대상이 주변 환경에서 떨어져 나와 추상적이 되어버리면), 무엇인가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고나행도 변한다. 예컨대 육안으로 볼 수 없는(혹은 보지 못하는) 것이 곧 아름다운 것으로 통용되는 것이다. 오직 카메라만이 제공해 주는 파편적이고 혼란한 시각이.[139p]
- 화가는 구성하지만 사진작가는 드러낸다. 즉, 사진에서는 피사체를 확인하려면 우선 그 피사체를 지각해야 하지만 회화에서는 꼭 그럴 필요가 없다. 1931년 웨스턴이 찍은「양배추 잎사귀」의 피사체는 꼭 주름 잡힌 채 축 늘어진 옷처럼 보인다. 이 피사체의 정체를 확인하려면 우리는 사진의 제목을 봐야한다. 그러므로 이 이미지의 요점은 두 가지이다. 이 피사체의 형상이 매력적이라는 점, 그리고 (놀랍게도!) 이 형상은 다름 아니라 양배추 잎사귀라는 점. 만약 주름 잡힌 옷이었다면 이 피사체가 그토록 아름다울 수는 없었으리라. 우리는 이미 순수 예술을 통해서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을 접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에서는(회화에서 중시되는) 스타일의 형식적 특징이 부차적으로만 중요할 뿐, 무엇을 찍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141p]
-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자연과 아름다움을 근엄하게 동일시하는 태도를 깨뜨려 준다는 이유로 불완전한 테크닉이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자연은 관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향수와 분노의 대상이 되어버렸다.[154p]
- 즉, 이제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더 이상 없다. 그냥 편하게 찍은 스냅 사진도 가장 뛰어난 순수 예술 사진처럼 시각적으로 흥미롭고, 우아하며, 아름다울 수 있다. 이처럼 형식적 기준이 민주화된 것은 사진이 아름다움의 관념을 민주화한 논리적 귀결이다. 전통적으로 본보기가 되는 모델(그리스 고전 예술의 대표작은 완벽한 육체의 젊은이만을 모델로 삼았다)과 결부됐던 아름다움은 이제 모든 곳에 존재하는 사진을 통해서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사진을 잘 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매력 없고 사진을 잘 받지 않는 사람들도 각자의 아름다움을 할당받게 된 것이다.[156p]
- 사진은 진부한 아름다움에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케 해주는 도구로서, 미적으로 즐거운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을 크게 넓혀준다. 우리는 때로는 진실의 이름으로, 때로는 세련됨이나 듣기 좋은 거짓말이라는 이름으로 반응한다. 패션 사진이 초현실주의의 뚜렷한 영향을 보여주는 발작적 몸짓을 수십 년간 다양하게 발전시켜온 것도 이 때문이다(브로통은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움은 발작적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리라”).[157~158p]
- 사진은 일종의 파편일 뿐이기에, 그 도덕적·정서적 중요성은 사진이 어디에 삽입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즉, 사진은 어떤 맥락에서 보이는가에 따라 변한다. 그러므로 스미스가 찍은 미나마타 현의 사진도 인화지, 화랑, 정치 집회, 경찰 서류, 사진 잡지, 일간지, 책, 거실 벽 등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 보일 것이다. 사진은 이 각각의 상황에서 서로 다른 용도로 쓰이지만, 그 누구도 사진의 원래 의미를 보장해줄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이, 단어의 의미는 곧 용도에 달려 있다. - 사진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진은 이런 식으로 의미라는 개념 자체를 좀먹을 뿐만 아니라, 진실을 한데 뭉뚱그려 (현대의 자유주의자들이 당연시하는) 상대적 진실로 뒤바꿔버리면서 존재하고 퍼져 나가는 것이다.[158~159p]
- 도덕주의자들이 사진에 바라는 바는 그 어떤 사진도 해낸 적이 없는 일 - 즉, 말을 하라는 것이다. 사진설명은 [사진이] 잃어버린 목소리이기에, 이들은 사진설명이 진실을 말해주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확할지라도 사진설명은 사진에 대한 특정한 해석, 그것도 지극히 제한된 해석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진설명은 간혹 쉽게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사진설명은 한 장의 사진(혹은 일련의 사진)이 뒷받침하려 하는 특정 주장이나 도덕적 항변이 모든 사진에 내재된 의미의 복수성 탓에 무너지는 것도, 사진을 찍는 행위(그리고 사진을 수집하는 행위)에 내재된 취득 본능과 모든 사진이 피사체와 맺을 수밖에 없는 미학적 관계 탓에 완화되는 것도 막아낼 수 없다.[162~163p]
- 흔히 사진은 무엇인가를 이해하거나 안내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으로 쓰이곤 했다. 인본주의자의 용어를 쓰자면, 사진이 지닌 최고의 소명은 인간에게 인간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사진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확인해줄 뿐. - 중략 - 다이안 아버스가 이렇게 말했듯이 말이다. “사진은 비밀에 대한 비밀이다. 사진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당신이 아는 것은 더 줄어들게 된다.” 무엇인가를 이해하게끔 만들어준다는 환상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진을 통해서 바라보는 행위는 우리로 하여금 이 세계를 취득의 대상으로만 여기게 만들며, 결국 미적 의식은 고양시킬지언정 정서를 메마르게 만든다.[166p]
- 이렇듯 사진을 회화에 견준다는 것은 독창성, 즉 독특하고 인상적인 감수성과 동일시되는 독창성을 사진작가의 작품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해리 캘러헌은 “새로운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사진,” 그러니까 “그냥 다르게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색다른 개성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새로운 사진이 진정 흥미롭다고 말했다. 안샐 애덤스의 말을 빌리면, “넓은 의미에서 사진에 찍힐 대상에게 느낀 바를 진실하게 표현”한 사진이 “위대한 사진”이기 때문이다. [175p]
- 최근 들어 약 1백여 년간 회화를 이끌어온 단순한 유사성이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해 좀더 넓게 해석해 보면, 사진의 리얼리즘은 ‘실제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지각한 것을 보여주는 그 무엇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그리고 점점 더 그렇게 정의되고 있다). 모든 형태의 근대 예술은 자신이 현실과 특권적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하는데, 특히 이런 주장은 사진의 경우에 더 잘 들어맞는 듯하다. 그렇지만 사진도 회화처럼 근대의 가장 특징적인 태도, 즉 현실과의 직접적인 관계맺음을 미심쩍게 여기는(예컨대 이 세상을 관찰된 그대로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의혹을 결코 비켜가지 못했다. 애벗조차도 현실의 본질은 변화라고, 따라서(과거에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좀더 엄선되고 정교한 카메라의 눈으로 현실을 봐야 한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벗은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하게 현실과 대면하고 있다”라고 말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바로 이와 같은 사정 때문에 “사진작가에게 어마어마한 책임감”이 부여된다고.[178~179p]
- 그렇지만 카메라가 정밀해지고 자동화되며 정확해질수록, 사진작가는 스스로를 무장 해제시키거나 자신은 사실상 [온갖 카메라 장비로] 무장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려는 충동에 빠지게 되며, 근대 이전의 카메라 기술이 낳은 제약에 스스로 복종하고 싶어한다. 훨씬 투박하고 성능도 덜한 기계가 훨씬 흥미롭고 표현력도 풍부한 결과를 가져오고, 창조적인 우발성이 일어날 여지를 더 많이 남겨준다고 믿으며 말이다. 특수한 기계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많은 사진작가들(브란트, 웨스턴, 에반스, 카르티에-브레송, 프랭크 등)에게는 일종의 명예였다. 사진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할 때부터 써와 닳고닳은 간간한 디자인과 저속 렌즈의 카메라를 계속 쓴 사람들도 있고, 몇 개의 현상 접시와 한 통의 현상액·정착액만을 사용해 정성들여 밀착인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1918년 확고한 모더니스트 앨빈 랭던 코번이 기계와 속도를 찬양한 미래주의자들의 말을 되풀이해 주장했듯이, 분명 카메라는 ‘빠른 시각’의 도구이다. 최근 사진이 의심받고 있다는 점은 사진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다고 지적한 카르티에-브래송의 말로도 알 수 있다. 미래(훨씬 더 빨라진 시각)에 대한 숭배는 장인정신이 살아 있던 더 순수한 과거, 즉 이미지가 수공업적 성격과 아우라를 지녔던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소망과 번갈아 등장한다. 은판 사진, 입체사진 카드, 사진이 들어간 명함, 가족 사진, 이제는 잊혀진 19세기~20세기 초의 지방·상업 사진작가의 작품을 향한 작금의 열광에는 사진의 순수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런 향수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최신 고성능 장비를 쓰기 꺼리는 것이 사진의과거에 이끌리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사진작가의 유일하거나 가장 흥미로운 방식은 아니다. 사실상, 사진을 둘러싼 작금의 취향을 보여주는 이 원시주의적 동경은 카메라 기술의 꾸준한 혁신 탓에 조성된 것이다. 이 수많은 혁신은 카메라의 성능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이 매체가 지닌 초창기의 잊혀진 가능성을(더 정교하면서도 덜 성가신 형태로) 재현해내기까지 했다. -중략- 그러나 이제는 카메라가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가령 폴라로이드[즉석 현상]카메라는 다게레오타입 카메라의 원리를 갱신한 것이다. 이 카메라를 통해서 만들어진 인화물은 각각 유일무이한 오브제이다. (레이저 광선으로 3차원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홀로그램은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가 1820년대에 카메라 없이 만들어낸 최초의 사진, 즉 헬리오그램의 변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카메라를 이용해 슬라이드 - 지갑이나 사진첩에 영구히 꽂아두거나 보관할 수는 없고, 벽면이나(밑그림을 그릴 때 도움이 되도록) 종이 위에 영사할 수만 있는 이미지 -를 만들어내는 유행도 카메라의 전단계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카메라 옵스쿠라로 했던 일을 하기 위해서 결국 사진 카메라를 이용한 것이 슬라이드니 말이다. [184~185p]
- 실제로 사진이 예술의 한 형태로서 얻게 된 엄청난 위세는 상당 부분 예술이 된다는 것에 대해 사진이 내보였던 양면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오늘날의 사진작가가 자신이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그 이유는 자신이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부정은 사진이 예술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보다는 예술을 둘러싼 일체의 관념이 처해 있는 몹시 어정쩡한 상태에 대해서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렇듯 예술이라는 유령을 쫓아내려는 동시대 사진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예컨대 전문 사진 작가가 책이나 잡지 귀퉁이에 자신이 찍은 사진이인쇄되어 나오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또 다른 예술에서 전해져 내려온 본보기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회화를 액자 속에 넣듯이 사진도 액자 속에 넣어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벽처럼] 하얀 공간에 걸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상당수의 사진작가는 컬러 이미지보다 훨씬 미감이 좋고 장식으로(혹은 덜 관음적이고 감상적이며, 유치하게 실물과 닮지는 않았다고) 느껴지는 흑백 이미지를 선호해 왔다. 그렇지만 이처럼 흑백 이미지를 선호하는 진짜 이유도 [사진작가들이] 암암리에 회화를 염두에 둔 데 있다. -중략= 끈질기게 사진의 영역과 회화의 영역을 갈라놓은 신화를 카르티에-브레송 식으로 보면, 컬러[색채]는 회화의 영역에 속한다. 그는 사진작가들에게 유혹에 맞서 원칙을 지키자고 호소하는 셈이다.
사진을 예술이라고 명시하려는 사람들은 늘 특정한 방침을 고수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은불가능한 노력일 뿐이다.[187~189p]
- 전통적인 모더니즘 계열의 회화를 보려면 감상 능력이 고도로 발달되어 있어야 하고, 다른 예술에도 정통해야 하며, 예술사에 대한 특정 견해에도 훤해야 한다. 그렇지만 사진은 팝아트처럼 예술이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관람객들에게 재확인해 준다. 정확히 말하면, 예술이 아니라 예술의 주제[혹은 피사체]가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중적인 형태의 모더니즘 취향을 가장 성공적으로 전파해 주는 수단인 사진은 과거의 고급문화가 썼던 가면을 벗겨내려는 열망에 빠져 있다(파편·잡동사니·기이한 물건 등에 주목하거나,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사진은 천박한 것에 세심히 구애하며, 조잡한 것[키치]에 호의적이며, 전위적인 야심과 상업주의라는 보수를 능숙하게 결합시키며,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명백한 진리를 외면한 채 급진적인 척하기만 할 뿐 반동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고 속물적이고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예술과 뒷거래를 하며, 예술의 문화적 기록을 뒤바꿔 버린다. 이와 동시에, 사진은 전통적인 모더니즘 예술의 고민과 자의식을 모두 다 갖춰나가게 됐다. 오늘날 여러 전문 사진작가들은 이처럼 대중에 영합하는 듯한 전략이 너무 지나치게 정도를 넘어서지는 않았나, 그래서 사람들이 사진 촬영은 품위 있고 고상한 활동이라는 것(즉, 예술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순박한 예술을 장려하려는 모더니스트들은 시도에는 늘 속임수가 들어 있다. 즉,[사진은] 더 복잡해져야 한다고 은근히 계속 요구하는 것이다.[191~192p]
- 그러나 미술관이나 화랑 같은 새로운 환경에서 전시된다면, 사진은 더 이상[맨 처음 그 사진을 찍을 때와] 똑같은 의도나 원래 방식대로 피사체를 보여주지 못하게 된다. 이제 그 사진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194p]
- 그러나 사진작가와 화가는 다르다. 사진작가의 역할은 중요한 사진을 찍는 데에서는 대개 미미할 뿐이며, 평범한 사진을 찍는 데에서는 부적절하다. 우리는 사진에 찍힌 피사체를 잘 살펴봐야만, 사진작가가 [피사체 안에서] 매우 조심스레 존재감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진작가들이 각각 특정 피사체를 독점하지 않는 한) 뛰어난 사진작가의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데에 포토저널리즘이 성공한 이유가 있다. 사진은 개성있는 예술가의 의식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아니라 이 세상을 보여주는 이미지(혹은 복제)로서 힘을 갖는다. 더구나 연구용·산업용 사진이든 언론·군대·경찰·가족이 찍은 사진이든, 대부분의 사진에서는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누가 됐든지 간에 그 사람의 사적인 시각이 [사진에] 남겨놓은 흔적이 사진의 기본 임무 - 기록하고, 규명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임무를 방해하기 마련이다.
회화에는 서명이 들어가나 사진에는 서명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옳다(사진에 서명을 하는 것은 악취미인 듯하다). 사진은 그 본성상 창작자로서의 사진작가와는 미적지근한 관계를 맺는다. 재능 많은 한 사진작가의 작품이 크기도 크고 다채롭기까지 한다면, 그 작품은 개인의 창작품이 아니라 공동 작품일 가능성이 더 크다. 사진계의 위대한 인물이 발표한 상당수의 사진은 그와 동시대를 산 재능 많은 또 다른 전문 사진작가들도 찍을 수 있었을 법한 사진이다.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진을 찍으려면 (솔라리제이션 기법을 쓴 토드 워커의 사진이나 듀안 마이클의 내러티브를 갖춘 시퀀스 사진처럼) 기발한 형식을 선보이거나, (남성의 누드를 다룬 토머스 에이킨스나 옛 남부의 모습을 다룬 러플린처럼) 하나의 테마만을 강박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사진작가가 이처럼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다면 그 사진작가는 자신의 모든 작품에 일괄적인 통일성을 부여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또 다른 형태의 예술에서는 그 작품이 각양각색이라도 비교적 통일성을 갖춘다. 자신이 살아가던 당대 혹은 특정 스타일과 확실히 단절한 사람들에게서도(피카소나 스트라빈스키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이런 단절을 뛰어넘는 관심사의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한 시대와 또 다른 시대가 맺고 있는 내적인 연관성을 (소급해서) 깨달을 수 있다. 그 작곡가의 작품 전체를 알고 있다면, 우리는 『봄의 제전』을 쓴 작곡가가 어떻게 「덤바턴오크스 협주곡」이나 후기 쇤베르크 양식의 작품도 쓸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요컨대 이 모든 작품에서 스트라빈스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과 짐승의 움직임을 연구한 사진, 중앙아메리카 탐험 사진, 정부 후원으로 알래스카와 요세미티를 조사한 사진, 그리고 ‘구름’과 ‘나무’ 연작 같은 사진 등이 동일한 사진작가(그야말로 가장 흥미롭고 독창적인 사진작가 중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내적인 증거는 없다. 심지어 이 모든 것을 머이브리지가 찍었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도, 우리는 앗제가 파리의 상점 쇼윈도를 찍은 방식을 통해서 그가 어떤 방식으로 나무를 찍었는지 유추하고 전쟁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비쉬니악이 찍은 폴란드 유태인 사진을 그가 1945년부터 찍은 과학적인 정밀 사진과 연관시켜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이 각각의 연작 사진을 서로 연관시켜 보기란 어렵다(설사 각 연작 사진마다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일관된 스타일을 갖고 있더라도 말이다). 사진에서는 제재야말로 처음이자 끝이다. 상이한 피사체가 한 시대와 또 다른 시대의 작품들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벌려놓으며, [사진작가가 사진에 써넣은] 서명을 무색케 만들어 버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사진에 흐르는 일관된 스타일(아베든이 찍은 인물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흰색 배경과 평면적인 조명, 앗제가 찍은 파리의 거리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회색 빛 등)은 [사진에 찍힌]재료의 통일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제재는 관람객들의 호감을 꽤 좌지우지하는 듯하다. 한 사진이 카메라에 찍힐 당시의 실제 맥락에서 동떨어져 나와 예술 작품으로 비칠 때조차도, 관람객들이 다른 사진이 아니라 그 사진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그 사진이 탁월한 형식미를 갖췄다고 판단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관람객들은 [그 사진에 담긴] 피사체가 자아내는 분위기나 의미를 좋아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또는 그 피사체에 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형식주의적인 접근법으로 사진을 대하게 되면 사진으로 찍힌 그 무엇의 힘, 그리고 그 사진과의 시간적·문화적 거리감이 우리의 흥미를 돋우게 되는 방식등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사진을 둘러싼 동시대의 취향이 형식주의 쪽으로 흘러가는 것도 당연한 듯하다. 제재의 자연적이고 순수한 지위가 재현에 근거한 다른 예술에서보다는 사진에서 훨씬 더 안정적이라고 해도, 사진이 온갖 상황에서 [관람객들에게] 보여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재의 중요성을 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며, 결국에는 그 중요성을 약화시킨다. 객관성과 주관성, 예시와 추측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해 관계의 대립은 해결이 불가능하다. 사진의 권위가 늘 피사체와의 관계에 좌우된다면(예컨대 이것은 그 무엇인가를 찍은 사진이다), 예술로서의 사진에 관한 모든 주장은 바라보기의 주관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사진을 다루는 모든 미학적 평가에는 모호한 점이 있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사진에 대한 취향이 끊임없이 옹호 받아야하고, 지극히 변하기 쉬운 이유를 설명해 준다.[195~197p]
- 사진은 회화와는 전혀 다른(적어도 전통적으로 받아 들여진 것과는 전혀 다른) 상상력과 취향에 호소한다. 실제로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의 차이는 좋은 회화와 나쁜 회화의 차이와 완전히 다르다. 회화를 평가할 때의 미학적 기준은 진품(혹은 모조품)인가, 솜씨가 훌륭한가의 여부이다. 사진에서는 이런 기준이 더 관대하게 받아들여지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회화를 감정할 때에는 해당 작품이 [그 작품을 그린] 개인의 자체 내 완결성을 갖춘 작품 전체, 유파, 도상학적 전통 등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늘 따진다. 그렇지만 사진의 경우에는 어느 개인이 찍은 광범위한 사진 전체가 굳이 스타일상의 내적 일관성을 가질 필요도 없고, 개별 사진작가도 특정 사진학파와 피상적인 관계를 맺을 뿐이다.
회화와 사진이 공유하는 평가 기준 중의 하나는 혁신성이다. 회화와 사진은 시각 언어에 새로운 형식이나 변화를 제시했을 때 높이 평가받는다. 회화와 사진이 공유하는 또 다른 평가 기준은 일종의 영기이다. [202p]
- 회화와 사진이 서로 영햐을 주고받은 건 사실이지만, 우위를 점해 왔던 것은 늘 사진이다. 들라크루와에서 터너, 피카소, 베이컨에 이르기까지 모든 화가들이 사진을 시각적 보조수단으로 활용했던 데 반해 사진작가들은 전혀 회화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사진은 회화에 통합되거나 재구성될 수 있다(혹은 콜라주되거나 합성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진은 예술 자체를 품어버린다. 회화를 봤던 경험 덕택에 우리는 사진을 바라보는 좀더 훌륭한 안목을 가질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사진은 회화를 보는 안목을 퇴보시킨다(그런 의미에서 보들레르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회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석판화나 목판화(옛날에 큰 인기를 끌었던 기술적 복제물)가 회화 자체보다 더 만족스럽다거나 흥미롭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세부 요소까지 자동적으로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원래의 색상을 훨씬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사진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만좀감을 새롭게 제공해 준다. 원래 제한적이라고 생각됐던 역할, 즉(예술 작품을 포함해) 현실을 좀더 정확히 알려준다는 역할을 훌쩍 뛰어넘게 되는 것이야말로 사진의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사진은 현실이다. 요컨대 현실적인 사물은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망스럽게 보이는 법이다. 사진은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저마다 강렬함도 다르게 예술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일인 듯이 만들어 버린다(회화의 사진이 회화를 대신하게 됐다는 점을 한탄한다는 것과 관람객들이 아무런 매개체도 없이 보게 되는 ‘원본’의 신비로움을 지지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복합적인 행위이며, 아무리 뛰어난 회화라 할지라도 [관람객들에게 그 회화를 감상할] 아무런 준비나 지식이 없다면 회화 자체의 가치와 탁월함이 전달될 수 없다. 더군다나 사진으로 복제된 작품을 보고 난 뒤 예술 작품의 원본을 이해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사람은 대개 원본에서도 별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을 비롯해) 대부분의 예술 작품이 복제된 사진을 통해 알려지게 되는 오늘날에는, 결정적으로 사진(그리고 사진을 본보기 삼아 등장한 예술 활동이나 사진 취향에서 파생되어 나온 취향 등)이 전통적인 순수 예술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취향의 규범(가령 예술 작품의 개념)까지 변모시켜 버린다. 이제는 유일무이한 오브제, 즉 개성 있는 예술가가 만든 원본이어야만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더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회화는 복제가 될 수 있는 오브제가 되기를 스스로 갈망한다. 결국 사진이 주도적인 시각적 경험이 되어버린 탓에, 이제 우리는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만 제작되는 예술 작품까지도 갖게 됐다.[212p]
- 전통적인 순수 예술은 엘리트주의적으로서, 어느 개인이 창작한 단일한 작품의 형태를 띤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어떤 피사체는 중요하고 심오하고 고상하지만, 또 다른 피사체는 중요하지 않고 하찮고 무가치하다는 식으로 여러 제재 사이에 위계를 설정한다. 이와는 달리, 미디어 예술은 민주적이다. (우연성이나 누구든지 터득할 수 있는 기계조작 기술에 기반하고, 협력이나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미디어 예술은 전문적인 생산자나 창작자의 역할을 약화시킨다. 미디어 예술은 세계 전체를 재료로 삼는다. 전통적인 순수 예술은 진품과 모조품, 원본과 복제물,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이라는 구분에 의존한다. 그렇지만 미디어 예술은 이런 구분을 완전히 없애버리지 않으면 적어도 흐리게 한다. 순수 예술은 특정한 경험이나 피사체에 의미가 있다고 가정한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미디어 예술에는 별 내용이 없다(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마 샬 맥루한의 유명한 선언 뒤에는 진리가 숨겨져 있다). 미디어 예술은 빈정대고, 무표정하며, 풍자적인 어조를 띤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예술은 점점 더 사진의 형태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모더니스트들은 모든 예술이 음악이 되기를 갈망한다고 말한 월터 페이터의 격언을 이렇게 다시 써야만 할 것이다. 이제 모든 예술은 사진이 되기를 갈망한다고.[214~215p]
- 현실은 늘 이미지에 기록된 대로 해석되어 왔다. 그리고 플라톤 이래의 모든 철학자들은 이미지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현실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하는 식으로 미지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마침내 그런 기준을 확보한 듯했던 19세기 중반, 인본주의적이고 과학적인 사유의 등장으로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환상이 후퇴했는데도 불구하고(예상했던 대로) 대중은 현실 세계로 되돌아오지 못했다. 오히려 이 새로운 회의의 시대는 이미지와의 동맹을 강화했다. 이미지의 형태로 이해됐던 현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자, 이제는 이미지와 환상 자체가 되어야만 이해되는 현실을 믿게 된 것이다. 포이에르바하는 『기독교의 본질』 제2판 서문에서 우리 시대는 뻔히 상황을 알면서도 “사물보다 형상을, 원본보다 복제를, 현실보다 표상을, 본질보다 가상을 선호” 한다고 봤다.[219p]
- 사진은 그 어떤 이미지-체계가 누렸던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예전의 이미지-체계와는 달리 사진은 이미지 제작자에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 제작과정을 준비하고 주도하는 데 사진작가가 제아무리 신중하게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 자체는 여전히 광학적·화학적(혹은 전자공학적) 과정의 일종으로서 자동적으로 진행되며, 현실의 모습을 좀더 정확하게 - 따라서 좀더 쓸모 있게 묘사하려면 불가피하게 기계의 힘을 빌려서 수정되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기계를 통한 이와 같은 이미지의 생산, 이미지가 부여해 주는 힘의 정확성은 이미지와 현실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준다. 그리고 만약 사진이 가장 원시적인 관계(이미지와 오브제의 부분적인 동일성)를 회복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면, 이미지의 효력은 오늘날 상당히 색다른 방식으로 경험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원시 시대에는 이미지가 실제 사물의 속성을 갖고 있기에 효력이 있다고 여겨졌으나, 오늘날에는 실제 사물이 이미지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보려는 경향이 있다.[225~226p]
- 회상을 불러일으키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 때에만 사진에 관심을 보인다면, 프루스트는 사진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사실, 사진은 회상을 불러일으킨다기보다는 회상을 창조하거나 대체한다.[235p]
- 사진은 거짓된 소유이다.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거짓으로 소유하게 만드는 것이 사진인 것이다.[238p]
- 결핍·실패·불행·고통·불치병 등을 결코 겪어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회, 죽음을 극히 자연스러우며 거역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끔찍하고 부당하며 재앙이라고만 받아들이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앞서 말한 재앙에 대해서 엄청난 호기심을 보인다. 그리고 이 엄청난 호기심은 사진 촬영을 통해서 어느 정도 충족될 수 있다. 재앙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안도감은 그 고통스러운 장면을 사진으로 보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그런 사진을 보면서 다시 안도감을 느끼고 그 안도감을 강화한다. 자신들이 ‘저곳’에 있지 않고 ‘이곳’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사건이 이미지로 변형될 때에서는 대개 불가항력적인 특성을 갖게 되기 때문일 수도 잇다. 현실 세계에서는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고, 그 어떤 사람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지-세계에서는 무슨 일인가가 이미 벌어졌고, 늘 이런 식으로 무슨 일인가가 언젠가는 벌어지게 될 것이다.
사진 이미지를 통해서 세계의 모든 것(예술, 재앙,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미 엄청나게 많이 알게 될 사람들은 막상 직접 현실을 대하게 되면 자주 실망하고, 놀라워하며, 감동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진 이미지는 우리가 처음 겪어본 그 무엇에서 감정을 제거해 버리곤 하는데, 정작 사진 이미지가 불러일으킨 감정은 우리가 실제 삶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어떤 일들은 직접 겪어볼 때보다도 사진의 형태로 겪을 때에 훨씬 더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239p]
- 자본주의 사회는 이미지에 기반한 문화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구매를 촉진하고 계급·인종·성의 갈등이 빚은 고통을 마비시키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오락거리를 제공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천연자원 개발, 생산성 증가, 질서 유지, 전쟁, 관료들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서 정보를 무한정 수집해야 한다. 현실을 주관화하는 동시에 객관화하는 카메라의 두 가지 기능은 자본주의 사회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는 데 필요한 이상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카메라는 선진 산업사회를 작동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방식으로 현실을 규정한다. (대중을 위해서) 스펙터클[구경거리]을 제공해주는 것이 그 첫 번째라면, (통치자를 위해서) 감시 대상을 포착해 주는 것 두 번째 방식이다. 이미지 생산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공급해 준다. 이제 이미지 상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이미지와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자유가 자유 자체와 동일시될 것이다. 경제 부분에서 소비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정치적 선택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지를 무한히 생산하고 소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254p]
-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아야만 하는 마지막 이유는 소비 논리 자체에 있다. 소비하는 행위는 태운다, 또는 소모한다는 것은 의미한다. 따라서 소모된 자리를 채워야 할 필요가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소비하면서도 여전히 더욱 더 많은 이미지들을 계속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지가 세계를 모두 파헤치면서 찾아내야 하는 보물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눈이 미치는 곳이면 어디서나 손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이미지다. 카메라를 소유한다는 것은 강한 욕망과 유사한 특정한 감정을 유발 시킨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강한 욕망이 그렇듯이 그런 욕망은 만족을 모른다.[25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