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조요한
예술철학/ 조요한 지음/ 예술문화사
1부 예술철학의 기초개념
서론
- 예술은 인간으로 하여금 '보는 것'을 가르쳐준다. '보는 것'이란 눈동자에 비친 사물을 보는 일에서 시작하여, 나아가 그 사물의 본질을 보는 일이다.[21p]
- 비록 우리의 상상이 사고를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사고는 상상을 전제로 한다.[21~22p]
제 1장 예술의 본성
- 예술은 '인간의 최초의 기본적인 정신활동'이다. 어린이와 미개인의 정신활동을 주시하면 예술이 원초적 활동임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어린이는 성인보다도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많은 어린이들이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고 풍부한 표현의 그림을 그린다. 예외 없이 모든 어린이는 상상으로 만들어놓은 영역에 거침없이 산다. 똑같은 것이 미개인과 원시인에게도 해당된다.[35p]
- 문자 그대로 사람인 한 그는 유희(놀이) 하고, 유희하는 한 그는 완전한 인간이다. (쉴러) [36p]
- 예술작품과 단순한 인공물 사이의 구별은 무엇인가? 예술적 걸작품으로서의 고려자기와 예술작품이라고 볼 수 없는 안성유기나 김장 항아리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고려자기도 인공물이다. 그것은 원래 박물관에 소장되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고, 물이나 기름이나 먹물을 담기 위해 제작 되었다. 그렇다면 이 양자의 차이는 지니고 있는 미라고 말할 것인데, 유기나 김장 항아리도 예술가들이 말하는 이른바 '좋은 형태(a good shape)'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이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물의 경우 그것들은 보기 흉한 것은 아니나 미적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비예술적(inartistic)이라기보다는 무예술적(nonartistic)이라는 것이다.[38p]
- 다시 말하면 미적판단은 개인적인 제약을 주는 한에서 관심을 끄는 것이다. 실로 예술은 무보상의 활동이요, 목적 없는 목적성이다. 그러나 공예품은 주문에 의하여 '조작적인 노고(the operative travail)'로써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자유성 또는 자족성이 없다. -중략- 예술은 실로 그런 현실적인 매개가 계기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자유정신에 의해 창조된다. [38~39p]
- 오늘날에는 예술을 쾌락적 경험이나 감각의 만족이라고 보는 견해보다는 의미부여의 진상이라고 규정하는 경향이 짙다. 그것은 현대 예술이 이른바 추나 불협화음을 사용하여 '불쾌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 위대한 예술은 감각에 직접호소하는 오락이 아니라는 견해와 일치하는 듯 하다.[39]
- 보는 일이란 주관화된 세계를 말한다. 그렇다면 눈이 대상을 제작한다는 것도 잘못이지만, 눈의 망막이 대상을 받아들이면서 아름다움이 형성된다는 것 역시 잘못이다. 졸라에 있어서도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기질을 통해 본 자연의 일부였다. 예술은 자연물 앞에 세워놓은 거울과는 다르다. 따라서 예술은 대상을 그대로 복사하는 재현(reperesentation)이 아니라 주관에 의해 다시 구성하는 표현(expression)이다.[40~41p]
- 회화는 단순한 사진보다 진실이다. 그 까닭은 정신화 내지 사유가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예술의 표현성이 있다.[41~42p]
- 보링거에 의하면 인간이 자기 정신이 인식에 의해 자연과 친해지고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낄 때 '현실에의 접근, 유기적 생명에의 접근'이 시도되는 합리적인 생각에서 사실주의가 탄생되었는 데 반해, 사물 자체에의 추구가 이제 합리주의적 미개인에게도 본능적으로 있는 인식과정을 통과한 후 다시 미개인과도 같이 인간지식의 무력을 느끼고 이 세상은 '그 자체 본질이 없는 가상이고 한갖 환상이요 꿈과 같은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추상주의다. 사실주의는 '예술은 자연 모방'이라는 입장이고, 추상주의는 '예술은 자연과의 대결'이라는 입장이다. 전자는 합리적 인식의 표현인 데 비해 후자는 인식을 넘어선 존재의 표현이다. 전자는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가들의 기쁜의 사상이고, 후자는 실존주의자들의 불안의 표현이다. -중략- 사실주의든 추상주의든 그것은 표현적 묘사안에서의 사실 또는 비사실적 측면이다.[44p]
- 로진크란츠는 -중략- 예술이 이념의 현상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긍정적인 미와 부정적인 추가 서로 얽혀 있다. 추는 미적 인상에 활기를 주고 전체의 생명감을 높여주는 자극제가 된다. 로젠크란츠는 추를 미적 대상의 형식, 내용, 이 양자가 관계된 표현 등의 세 가지로 구별했다.
(1) 무형태, 불균형, 부조화와 같은 무형식성(Formlosigkeit)
(2) 표현의 부정확성(Inkorrektheit)
(3) 정신적 자유의 부정에 의한 왜곡(Defiguration oder Verbildung)
[45p]
- 하나님이 그것을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자연 속에 하나의 침대, 더도 아닌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침대가 지녀야 할 것(ho estin kline) 그 자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공장인은 그 침대를 만다는 두 번째 사람이고, 화가는 침대를 그리는 세 번째 사람이다.(Politeria, X 597 b-c) [48p]
- 드디어 레이놀즈는 18세기 후반에 [예술론 Discourses on Art]에서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연의 모방이라기보다는 확대이다"라고 선언했다. -중략- 예술의 참된 검증은 그 제작물이 자연의 정확한 묘사인가 아닌가에 있지 않고, 사람의 마음에 만족스러운 인상을 가져오게 하는 예술의 목적을 충족시켰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50p]
- 그것은 모방이 아니라 실재의 발견"이라고 했다. 여기서 '실재의 발견'이란 과학자의 실재의 간략화와는 달리 실재의 강렬화를 의도한다.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이 과학자에게는 같은 것이지만 예술가에게는 날마다 새로운 것이다. 과학의 추상화 작용은 실재를 빈곤화 할 우려가 있지만 예술의 구체화 노력은 생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이다. [52p]
- 이 다섯개의 주제 중 어느 것을 택하여 볼 것인가는 보는 사람의 마음의 방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그 마음의 방향에 따라 그림의 공간가치가 정해진다. 그러나 이 그림은 그렇게(위의 다섯 개의 주제로) 보일 뿐, 사실은 백지 위에 그려진 것으로 위의 다섯 주제 중의 하나로 본 것은 지각적인 환영이다.[57p]
- 우리는 예술작품에서 사물 자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일지라도 예술가가 그의 미적 경험에서 어떻게 사물을 결합시키고 있는가를 볼 수 있다. 실제로 예술작품과 똑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여러 가능성 속에서 특수하게 사물을 보는 태도이다. '그같이 보는' 것이 미적 경험이라 하겠다.[58p]
- 예술(시)은 한편으로 유희처럼 보이기는 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예술(시)은 역사를 걸머진 근거이다. 유희는 인간을 집합시키기는 하나, 그것으로 모든 사람은 자기를 잃어버린다. 이에 반해 예술은 인간은 현존재의 근거 위에 집중시킨다.[59p]
-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묻고 답한다.
(1) 작품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인은 작문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을 창조한다. 말한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참여하는 작가는 창작이 곧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작품은 탄환을 장착한 권총이다. 쏠것을 택한 이상 정확히 겨누어 쏘아야 한다. 작가는 쏘는 재미로만 장난하는 어린애가 아니다. 어린애는 눈을 감고 되는 대로 쏘지만 작가는 그럴 수 없다.
(2) 왜 쓰는가? 예술이 어떤 사람에게는 현실도피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복의 수단이다. 그러나 은신처나 광증이나 죽음 속에 도피할 수도 있고, 정복은 무기로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작품을 쓰는가? 작가는 독자를 감동시켜서 단번에 공포와 욕망이나 분노의 감동을 전하려 해서는 안 되고 '순수한 제시'로서의 작품을 독자에게 내놓아야 한다. 독자는 순수한 자유, 순수한 창작력, 조건 없는 활동력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3) 누구를 위해 쓰는가? 물론 작가는 자신의 자유를 순화하기 위해서도 작품을 쓰지만 생산적 피해계급을 위해 펜을 들어야 한다. 원래 작가는 인간을 상대로 쓰는 자이지만, 지금까지는 비생산적인 부르주아를 상대로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은 셈이다. 그렇다고 '순수한 파괴'만을 의도하는 심술과 원한에 찬 사이비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지향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학의 목적은 '그것으로 사람들의 자유에 호소하고, 인간적 자유의 지배를 실현하며 유지하는 일'이다. 실로 그 자유의 기수가 예술가들이다.[64~65p]
- 일반적으로 작품전시는 공중의 감수성에 호소하도록 마련된 것이다. "공중은 냉혹한 동물이다"라는 견해는, "공중은 스스로를 위해 선택한다"는 주장과 맞서고 있다. 그렇다고 공중을 즐겁게 하는 것이 예술가나 미술관의 기능이 아니다. 만일 작품전시가 독서의 경우처럼 문화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이고 우리의 정신을 성장,양육시키는 일이라면, 공중을 이해로 이끌어 가야지 마음에 들도록 감정으로 이끌어가서는 안 된다.[69p]
- 인간의 행위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힘을 갖는다. 처음에는 자연 속에 안기는 아름다움이고, 차차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정복하는 것을 배우는 인위의 미이다. 이 자연미의 세 형태는 역사적 과정이기도 하고 그 과정은 인간의 의식적 예술로의 추이이기도 하다.[75p]
- 위에서 '질료'라고 이름했지만, 이것은 돌로 된 물질, 채색된 물질과 같은 '물질적 사물'과 쪼아낸 돌의 단위, 그림물감, 캔버스, 바이올린, 피아노 등의 '예술재료'와는 다른데, 예술가의 질료는 도구로 사용되는 후자의 예술재료이다. 물론 초현실주의자들은 해변을 거닐다가 발견한 조개껍질같은 물질적 사물도 '오브제'라 하여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예외이다. 예술재료는 예술의 직인들이 생산하는 것으로, 이 예술재료에 따라 음색 또는 색조가 달라지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훌륭한 직인이 만든 스트라디바리 같은 바이올린에서 하이페츠 같은 연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예술재료를 써도 훌륭한 음향과 색조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직인에게는 예술재료가 하나의 물리적 대상이며, 직인은 그 제품의 생산에 대한 실제적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경우는 그것이 물리적 대상이 아니어서 붓과 건반의 느낌만을 가지며, 단지 재료의 '사용'에만 주의를 돌릴 뿐이다.[78p]
- 그러나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는 칸트의 명제와 같이 미적 내용 없는 미의 형식은 공허하며, 미적 형식 없는 미의 내용은 맹목이라 하겠다. 칸트적 비판주의의 입장에서는 미적 대상에서 형식과 내용을 구분하는 것은 잘못이고, 이 양자를 구분하는 것은 미적 통일성을 파괴하고 예술을 해체시키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아, 통일적 결합관계로서의 형식을 생각한다. [79p]
- "잘 그려진 개구쟁이는 잘 그려진 마돈나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소재 자체보다 소재 형성의 중요성을 내세웠다. - 리버만 - [81p]
- 따라서 작품의 형태는 '던져진 형태'가 아니라 '형이 이루어진 형태'이다. 후자는 형식(From)으로, 전자의 형태 일반(Gestalt uberhaupt)와 구별된다. 즉 수묵화에서의 한 줄의 묵선은 일정한 속도와 필압을 가지고 묘사된 상징의 선이지만, 지도상의 흑선은 국경을 표시하는(기호로서의) 선에 불과하다. 수묵화의 묵선과 지도상의 흑선의 차이고 곧 '형이 이루어진' 형상(形象)과 '던져진' 형태의 차이이다. 작품의 형식은 작가가 제작을 끝냈을 때 비로소 그 전체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헤겔이 말한 대로 제작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안에서부터 발견되는 것으로, 결코 밖에서 주어질 수 없고 미리부터 의식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안에 간직된 것과 밖에 만들어진 것은 서로 상보관계가 있기 때문에, 밖의 형식을 산출해내면서 안의 규범을 자각해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형이 이루어진 형식(forma formata)'이 곧 '형을 이루는 형식(forma formans)'이라고 말해야 한다.[83p]
-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사람에게 기대하는 질문은 '당신을 무엇을(what) 말하려는가?'리고, 고전주의 예술가가 기대하는 질문은 '당신은 어떻게(how) 말하는가?' 이다.[85p]
- 그러면 창조란 무엇인가? 나무가 자라고 동물이 번식하는 것을 창조라고 하지는 않는다. 구름이 비가 되고, 물이 얼음이 되는 것도 창조작용이라고 하지 않는다.
창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에서 유가 생겼다(crato ex nihilo)는 것과 거기에 정신적인 형성활동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혜로써 우주를 창조했는데 사람은 미의식으로 예술작품을 제작한다.[95p]
- 한 폭의 그림이 전시장으로 운반될 때 그것은 탕관에서 도시로 운반되는 석탄과 같이, 산림에서 도시로 운반되는 목재와 똑같이 수송된다. 휠더린의 송가집이 진군하는 군인의 배낭 속에 총을 수리하는 도구와 함께 넣어지고, 감자가 지하실에 저장되듯 베토벤의 사중주 악보가 출판사 창고에 저장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돌속에 건축작품이 있고, 목재 속에 조각작품이 있고, 색채 속에 회화가 있고, 소리 속에 언어작품이, 음향 속에 음악작품이 있다. 예술작품은 단순한 사물 자체와는 별개의 것이고, 사물 속에 다른 것을 함께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비유(Allegorie)나 상징(Symbol)이라 일컬어진다.[97p]
- 예술가는 예술가이기전에 인간이다. 참된 예술가이기 위해 인간이어야 한다. 위대한 인격 없이 위대한 예술은 없다. [109p]
- 기독교 예술은 기독교를 작품 속에 집어넣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한 기독교인으로서 작품을 제작하는 일에서 이루어진다. 만일 한 예술가가 기독교인이라면 그때는 예술가와 기독교인이라는 두 개념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중략- 종교적 양식(style)으로 말미암아 종교예술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내용으로만이 종교예술이 이루어진다.[110p]
- 예술가는 될 수 있는 대로 삶을 리얼하게 묘사해야 한다. 그러나 나무가 태양쪽으로 가지를 뻗치는 것과 같이 예술가는 자기가 거주하는 그대로 나지막하게 본체적인 미의 방향으로 뻗어나가야 할 것이다.[111p]
- 높이 우뚝 솟아 지금 막 머리 위로 떨어질 것 같은 바위산, 참혹한 황폐의 흔적을 남기고 간 폭풍, 격렬한 물살로 떨어지는 대폭포, 이런 것들은 우리 자신이 안전하기만 하면 그 모습이 무서울수록 더욱 우리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우리의 정신을 보통 이상으로 높여주고, 우리 속에 전혀 다른 저항능력이있음을 발견하게 해서 자연의 가상적인 절대위력을 측정할 수 있는 용기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 역학적 숭고이다. 칸트는 자연의 크기와 위력이 사람의 정신을 압도하면 미적 체험이 이루어질 수 없고, '자연에서 독립된 것으로 판정되는 일종의 능력과 자연에 대한 일종의 우월성을 발견할 때' 숭고를 체험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양인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대립의식을 버리고, 오히려 자연 그 자체를 깊이 사랑하고 귀의하는 감정을 느끼며, 자연의 위력과 인간의식의 부조화를 해결한려는 점에서 동양적인 미의식과 칸트의 미의식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119~120p]
- 우아미는 여러 예술에서 표현되지만 넓게는 회화에서 다루어지고 가장 적절하게 적용되는 것은 음악이다. 숭고미는 조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우아미는 회화에서 그 역할이 크다. 회화는 모든 것을 감성적이고 가시적인 것으로 포괄할 수 있는데, 형태와 색채의 감성적인 표현에서 우아미가 잘 나타난다. 숭고미는 건축에 잘 표현되지만, 우아미는 장식에서 적절하게 표현되는데, 가벼운 애무로 명쾌한 느낌을 주는 18세기 말에 유행한 로코코 양식의 장식이 좋은 본보기이다. 숭고미와 비교하여 우아미는 음악에서의 역할이 크다. 음악은 어느 예술보다도 가장 미묘한 우미의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아미가 섬세한 것, 미묘한 것의 뉘앙스를 '자유로운 조건'에서 갖고 있는 '유희의 미'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다.[122p]
- 숭고미와 우아미는 양(量)감정에 속하는 것이지만, 비극미와 희극미는 혼합감정을 일으키는 것으로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기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거뜬해지고,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에 웃음을 터뜨리고 나면 도리어 서글퍼지는 것을 우리는 경험한다. 그것은 마치 동경(憧憬)이 현재 없는 것을 바라서 그 결핍을 더욱 의식하는 감정이고, 애수(哀愁)는 소실된 것의 애달픔이 이제는 아물어 쓰라린 과거에 대한 회상이 오히려 달콤한 감정으로 남는 것과 같다. 비극적 감정과 희극적 감정은 "양자의 머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중의 하나를 잡으면 다른 하나가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진다.[123p]
- 야스퍼스에 의하면 비극성의 의미는 초극에 있다. "인간존재는 좌초속에서 나타난다. 좌초속에서 존재가 상실되기는커녕 뚜렷이 느껴진다. 초월이 없는 비극성은 없다"고 야스퍼스는 지적했다.[124~125p]
- 베르그송은 [웃음]에서 희극성을 풀이했다. 그에 의하면 웃음은 첫째, '"인간적인 것을 제쳐놓고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동물을 보고 웃을 때도 그 동물에서 인간적인 표정을 엿보기 때문이고, 모자의 형태에서 어떤 인간적인 장난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웃음에는 '무감동'이라는 것이 수반된다. 웃는 순간에는 애정도 잊어버린고 가련한 생각도 침묵을 지켜야 한다. "나는 무관하다가 그 본래의 환경이고, 웃음에는 정서보다 더 큰 적이 없다"고 한다. 셋째, 웃음은 집단성을 갖는다.만약 자기가 고립되어 있다고 한다면 웃음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즉 웃음은 반향을 구한다. 그리하여 베르그송은 다음과 같은 정의를 얻었다. "생각컨대 웃음이란 단체로 모여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감성을 침묵시키고, 다만 이지(理지智)만을 작용시켜서 그 모든 주의를 그들 속의 한 사람에게 향하게 할 때 생기는 것일 것이다". 희극적 인물은 대개 자기 자신은 알고 있지 못하는 정도에 반비례하여 희극성을 지니고 잇다. 희극적인 것의 목적은 '중심을 벗어나는 것'과 생의 기계화를 교정하는 데 있다고 베르그송은 보았다.[125p]
- 농담은 웃음의 기지(wit)에 호소하면 되지만, 희극성은 웃음을 환기하면서도 그것에 목적성을 부여하는 통제적 정신이다. 웃다가 보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지만 희극성은 매서운 것에 입맞춘다. 해학(humor)은 사방팔방에서 될 수 있는 한 용서 없이 이리저리 휘두르며 동감을 고백케 하는데, 그것은 우매로 추격해간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은 거기에 달려가서 오히려 우울에 잠긴다. 풍자(satire)는 바보 같은 짓에 매질하는 것이나, 반어는 심한 매를 주는 대신에 한편으로 어루만지면서 쏘아붙이는 방법이다. 이것은 어디에 상처 받는 것 같기도 하는 묘한 방법이다. [128p]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역사성은 부정할 수 없다. 개개의 예술작품이 제각지 특유한 개인적인 양식을 갖고 있지만 예술가는 역사 속에서 역사적 존재로서 살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유파와 국토와 민족과 시대의 양식이 커다란 몫을 한다. "모든 것이 모든 시대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로써 [미술사의 기초개념]을 제시한 뵐플린은 '인명 없는 미술사'를 역설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술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것이다.[133p]
- 양식은 이와 같이 세계관의 차이에서 이루어지는 형식의 변화이기 때문에 리글은 "양식이란 종류가 아니라 이념이고 이상형이다"라고 말했다. [137p]
- 체계로서의 미술사의 획기적인 출발은 원래 양식사의 수립에 있었다. 예술사는 예술작품의 발생근거를 물어나가야 한다. 외면에 있어서 형식은 언제나 변화하는데, 근본에 있어서는 무엇이 변하는가? 다른 것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변하는 것은 '예술의지'라는 담보자(擔保者)가 있다고 리글은 본다. 그는 개인적 의지를 초월한 객관정신과 같은 어떤 실제적인 힘이 있다고 보고, 바로 그 내적인 구조원리인 예술의지가 외적 양식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그는 예술의지는 외적 양식을 결정하는 '내적 필연성'이라고 말했다. [144p]
- 그러나 프로이트의 그 같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가령 레오나르도의 경우처럼, 작가가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고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도 무엇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152p]
- 인간은 유아기부터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등 많은 갈등과 욕구불만을 지니고 있다. 아동이 지니고 있는 욕망은 여러 면에서 용서될 수 없는 것이어서 스스로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억압하게 된다. 인간은 이 욕망들에 대한 도피방법으로 적극적인 행동, 즉 공격적인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외에 공상이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비사회적인 성격을 띤 공상으로 좌절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 분석가들의 일치된 견해는 예술가가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공상이라는 것이다. 아동의 유희는 인간의 시적 활동에 대한 최초의 표현인데, 아동은 자아중심적으로 외계의 모든 대상을 자기 기분대로 설정하고 거기에서 욕구불만을 해소시킨다. 공상을 통해 자신이 아버지도 어머니도 될 수 있으며 모든 갈등과 억압으로부터 구제받는다. 아동의 유희는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했던 것을 그의 내적 세계에서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됨에 따라 아동은 사회적인 제약을 받으며 해야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구체적으로 현실과 관련시켜 행동하도록 요구받게 된다. [153p]
- 예술가가 아닌 보통사람의 경우에는 공상의 나선에 의해 솟아오르게 되는 높이가 한정된다. 그러나 예술가는 자유자재이다. 무엇보다 예술가는 그의 백일몽을 어떻게 정밀하게 만들 것인가를 잘 이해하고 있다. 또 그것을 충분히 변형하여 그 금지된 근원이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다. 그는 전혀 다른 재료를 가지고 공상인 꿈을 표현할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완성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의식하지 못한 즐거움의 근원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마련해주어 많은 칭찬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예술가는 앞서 공상에 의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명예, 권력, 여자의 사랑을 이제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154p]
- 우리는 이드를 혼돈이고, 끓어오르는 흥분의 도가니와 같은 것이라고 비유로써 접근할 수 있다. ... 그것은 본능으로 그것에 도달하려는 정력에 차 있지만 어떤 조직도 없고, 집약적인 의지도 없다. 단지 쾌락원리에 따라 본능적 요구의 만족을 얻으려는 충동에 지나지 않는다. 사고의 논리적 법칙은 이드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여기에서는 특히 모순율이 참이 된다. - 프로이트 [신정신분석입문] -
이에 비해 자아란 무엇인가? 자아란 '이드의 일부분이 외부세계에 접근하여 그 외부세계의 영향을 받아 점차로 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여 유기체를 외부의 자극에서 보호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자아란 욕망과 형동의 사이에서 사고를 실천하는 일을 가로막아 뒤로 미루도록 하는 것이다. ... 자아는 아무 제약 없이 이드에 있어서 사건의 과정을 지배했던 쾌락원리를 제거하고, 그 대신 보다 큰 안정성과 성공을 약속하는 현실원리(the reality principle)를 산출한다. -프로이트 [신정신분석입문] -
초자아란 자기 관찰이나 양심, 이상의 기능을 갖는 것이다.
초자아란 모든 도덕적 억압의 대행자이고, 충동을 완전한 것으로 향하게 하는 수호자이다. 요약하면 그것은 인간생활의 보다 높은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한 것이다.[156p]
-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드 속에 억압된 어떤 힘이 변이된 상태에서 자아를 관통하고 도망쳐 나가도록 허용되어 있다. 그것이 곧 승화라고 알려진 과정이고, 우리가 도덕적, 종교적, 미적 이념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승화란 이기적이고, 본능적인 정력과 소망과 욕망들을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인정될 수 있는 사고와 이념과 활동으로 변이(transformation)시키는 것이다. -리드-
리드의 이 도해는 실제 유기체의 부단한 변화의 모습을 나타낼 수 없고, 또 그 물거품 속에 소용돌이치는 모든 요소를 만들어내는 힘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는 결점이 있다. 그러나 물거품이 냇물이 흐르는 방향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 즉 자아가 이드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밝혀주었다.[158p]
- 예술 분야에서 개인적 국면은 한계가 있다. 만일 예술형식이 원래 개인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신경증의 현상이라고 취급받게 된다. 예술가들은 예외 없이 자기도취증에 걸려 있다는 프로이트 학파의 주장에는 어떤 타당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느 면에서는 유아적이고, 자애적인 특질을 가진 미발달된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진술은 개인으로서의 예술학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지 한 예술가로서의 '인간'에는 타당하지 않다. 예술가의 능력으로 보면 그는 자애적도 타애적(hetero-erotic)도 아니고, 어떤 의미에서도 애욕적이 아니다. 예술가는 객관적이고 비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비인칭적이다. 예술가로서의 그는 한 인간이라기보다 자기의 작품과 동일시된다. -융- [159~160p]
- 그리하여 예술도 기계의 영항으로 점차 변질되어 가고 있다. 우리의 생활주변에는 카메라,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등의 매개수단으로 인해 영상과 음향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점차 사회밖으로 밀려나온 감이 있다. 화가가 상품광고나 무대장치를 의뢰받을 수밖에 없고, 고전음악은 인기가 없으니 음악가들은 경음악 연주로 전향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은 심금을 울리는 문학 원작을 읽으려 하지 않으니 압축판이 판을 치고 있고, 문필가는 독자의 구미에 맞도록 쓰라는 출판업자의 농간에 말려든다. 자동차가 거리의 예술품으로 등장했고, 카메라에 의한 사진예술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는 고도의 촬영기술을 이용하여 보지 못했던 세계를 열어주고 있고, 배우들이 최고의 예술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술가는 '고독한 군상'이 되어 버렸다. 예술은 한낱 대중의 웅성거리는 센세이션 속에 오락의 대상으로 오히려 스포츠에 가까워졌다.
거대한 제작비, 무의미한 모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에로티시즘, 이런 것들이 온통 홍수를 이루고 있다. 마음과 마음이 접촉하여 함께 고뇌하는 것이 아니라, 풍자에 의한 빈정거림만이 있다. 디자인과 만화가 오늘날 예술의 특징이다. 기술의 발달과 대중의 실용성으로 공예와 건축이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이렇듯 기술문명의 영향으로 예술이 변모함에 따라 예술이 가졌던 내면적인 고귀성이 제거되고 사람은 점차로 비인격의 세계로 빠져든다.[177~178p]
- 아트(Art)는 아르스(ars)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는데 접합하다(ar-)라는 어근을 가지고 있고, 독일어 쿤스트(Kunst)는 가능하다(konnen)에서 나온 말이다. 예술이 단지 정열의 연속적인 활동이 아니라면 그것은 기술적인 측면, 즉 계산, 규칙성, 반복, 고역 위에 쌓여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와 기술자는 이른바 '행복스러운 타협'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균형이 유지되지 않고 오늘날의 예술에서 보는 대로 기술성을 과도하게 주장하여 결국 인간성의 평가절하가 진행되다면 슬픈 일이라 하겠다.[174p]
- 20세기가 가져온 기계예술은 윤택한 인간의 정신생활을 좀먹어가는 무서운 예증이다. 기계산업이 수공업을 대치하더니 대량생산이 이루어졌고, 이와 더불어 인더스트리얼 아트가 예술의 장르를 위압하게 되었다. 또한 기술에 의한 표준적인 틀과 형식이 이루어지면서 원형과 똑같은 복제가 수업이 생겼다. 사진은 회화의 복제이고, 영화는 연극의 복제이고, 레코드는 음악의 복제이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그것들을 동시에 복제한 것이다. 복제의 물결들이다. 이 복제의 등장으로 사람의 마음씨에는 감격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일면적인 진실성이 아쉬운 옛 그림자가 되고 말았다. 영상과 음향의 범람에 의해 사람들은 읽는 일, 쓰는 일, 외우는 일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공백상태에 빠지는 감이 없지 않다. [175p]
- 실로 러시킨의 구분대로 건물과 건축은 다르다. 구조체가 독창적인 구성의 조각과 회화에 의해 가꾸어질 때 비로소 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178p]
- 우리가 잘 아는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그래도 꽤 정확하게 표준적 문체의 개념을 주고 있다. 추상적인 것은 안 되고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것만 된다. 먼저 도장 찍듯이 삽화가 회화적인 것, 될 수 있으면 유머러스한 장면, 다음으로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영웅적인 형용사, 즉 전형적인 태도를 가진 말씨, 이러한 대표적인 상태를 강조한다. 이것이 미국식의 르포르타주 정신이다…. 읽기에 재미있고 읽기 쉬운 것이다. 아무런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다. 주형은 완전할 뿐만 아니라 실로 효과적이기 때문에, 이것은 마치 전염병과 같이 모두 그러한 병에 걸린다. [181~182p]
- 인간이 냉혹한 자연과 대항하여 살기 위해 자연의 물질을 갖고 역이용하여 문명을 이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버둥거려도 인간은 역시 자연의 일부이다. 또한 인간은 단독자로서 태어나서 단독자로 죽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여기에 인간의 숙명적인 처지가 결정된다. 자연에서 떠나면서도 그것을 연결하는 첫 번째의 발명이 ‘도구’요, 단독자로서의 인간이 사회와 관계맺는 두 번째의 발명이 ‘언어’였다. 자연과 사회에서의 소외상태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도구와 언어를 함께 지니는 예술에 의한 극복이 중요한 몫을 담당할 것이다. 예술은 기술인 동시에 독백이 아닌 하나의 전달이다. [182~183p]
- ‘자연과 역사는 언제나 예술의 산모’라고 보는 야나기 무네요시는, 그의 『조선과 그 예술』에서 “반도라는 것이 드디어 이 나라의 운명의 방향을 결정했다”고 전제하고, 극동을 이루고 있는 세 나라가 어떻게 다른 역사와 예술을 나타냈는가를 기술했다. 즉 중국은 대륙이어서 대지에 평안을 누리고 의지가 강경한 데 비해, 섬나라인 일본은 대지에 즐거움을 느끼고 인정은 안락하다. 이에 비해 조선은 땅에서 평안을 얻지 못하고 그 마음이 고요하다. 조형미의 표현에서, “강경함은 형을 택하고 안락함은 색을 구하나 고요함은 선을 취했다”고 하면서, “중국의 예술이 의지의 예술이고, 일본의 예술이 정취의 예술이었으나, 그 사이에 홀로 비애의 운명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조선의 예술이다”라고 결론내렸다.[207p]
- 한국미를 선에 의한 비애의 미라고 하는 규정은 특정한 몇몇 작품에 국한한다면 몰라도 모든 시대와 모든 분야의 한국 조형미에 적용시키기에서는 많은 난점이 있다. 한국의 귀족예술은 약한 선으로 표현되었지만, 장인들로 이루어진 서민계급의 예술들은 굳세고 묵직한 것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의 벽화나 신라 조각, 고려 석탑, 조선의 자기나 목공품에는 오히려 한국인의 굵은 의지가 있다. [210p]
- 고유섭은 한국 불상에는 ‘어른 같은 아이’가 많다고 평하면서, 한국인의 “질박(質朴),둔후(鈍厚), 순진(純眞)이 형태의 피조라는 것을 통하여 ‘적요한 유머’에 이르러 ‘어른 같은 아이’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소박성은 그에게 있어서 ‘구수한 맛’인데, 구수하다는 말은 "얄상궂고 천박하고 경거망동하는 교혜(巧慧)로움이 아닌 것“을 뜻한다. [217p]
- 보통 일컬어지는 대로 조선 회화는 그 전기(15~16세기)에는 북한 화풍을 보였고, 후기(17~18세기)에는 남화의 필법을 택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의한 정신적 고통이 계기가 되어 북화계도 남화류도 아닌 새로운 조선화풍이 대두되어 단도직입적인 필법과 구도로 화면을 처리했다. 후기에 와서 본격화된 그 혁신적인 유파가 곧 (1) 정선을 위시한 진경산수화, (2) 이름 모를 화원들의 초상화, (3) 김홍도, 신윤복의 풍속화, (4) 변상벽 중심의 사실화이다. 이들은 필법과 구도와 화제에서 모두 종래의 중국화풍을 벗어나 현실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자아표현의 화풍을 수립하고 한국 고유의 정취를 개발하려 했다.[229p]
- 물론 고구려의 억센 대륙기질이 신라의 부드러운 해양기질로 내려오면서 세련되고 순화되어 ‘힘의 예술’이 ‘꿈의 예술’이 되고, 다시 고려의 그늘진 ‘슬픔의 예술’로 되고, 조선의 ‘멋의 예술’이 되었다고 고찰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고구려에서 시작된 역동적인 미가 고려의 벽화를 통해 조선 후기의 화가들에게서 재생되었다고 생각한다.[237p]
- 맺는 말
(1) 한국은 반도라는 자연조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언제나 중국미술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어느 시대에도 이것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굳게 지키지 않고, 독자적인 것으로 발전시켜왔다. 사상면에서 유,불,선의 통일을 꾀하듯 조형예술에 있어서도 외래양식의 조화통일뿐만 아니라, ‘형과 선과 색의 통일적인 구성’을 기도했다. 이것이 반도의 풍토적인 소산이라면 소산일 것이다.
(2) 유불선의 인생관 때문에 소박한 생황을 이상으로 삼아왔던 한국인은 그의 조형미에 있어서도 무기교와 무계획을 기도하면서 굳이 말하라면 ‘고귀한 단순’을 꾀하여 덤덤한 조형미를 계획했다. 수다스럽거나 악착스럽지 않고, 교만하거나 야단스럽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조용한 의미 있는 웃음의 해학미를 지닌 것이 한국미의 특색이라 하겠다.
(3) 반도가 풍토적으로 여러 문화의 집산지이듯, 조선은 한국의 오랜문화의 흐름을 멈추게 한 연못이라 하겠다. 한국인은 역경에 강한 백성으로, 혹자는 눈 속에 피는 꽃 설중매화를 우리 문화의 상징으로 삼았다. 조선 예술은 한국의 전통을 한솥에 넣어 새로운 주형(鑄型)을 구워내어 다가올 새 시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세계는 좁아졌고, 역사는 지역사의 테두리를 벗어나 한 흐름으로 달음질친다. 한국의 조형예술은 형식면에서 ‘조화통일’이라는 전통적인 형식을 좀더 세련되게 발전시키고, 내용면에서는 기왕에 이룩된 ‘확대미’를 좀 더 심화시키고, 또 기왕의 ‘해학미’를 좀더 적극적인 차원에서 발전시켜 세계사적 공헌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238p]
- 친족 내의 불화가 때로는 다른 경우의 불화보다 심각할 수 있다. 종교 안에서 정통과 이단의 싸움이라든가, 한 정당 안에서의 주류와 비주류싸움의 심각성을 우리는 잘 안다. 예술가와 비평가와 미학자는 미적 경험에 있어서의 관심사가 같은, 이른바 친족인데도 때로는 심각한 반목으로 맞설때가 있다. 상호불화의 원인은 예술이라는 같은 대상에 관심을 모으면서도 때때로 영역상의 혼란을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작품창작을 통하여 미적 경험을 느끼기(to feel) 바라고, 비평가는 창작된 작품을 통하여 미적 경험을 재인식하기(to recognize) 바라고, 미학자는 미적 경험을 이해하기(to comprehend)를 바란다.[241p]
- 예술가에게 있어서 수동과 능동의 상호작용은 구상(composition)과 외적 구현(external embodiment)이라는 두 작용으로 나타난다.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상은 작품의 모체이다. 그러나 이 구상이 구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지나가는 꿈에 지나지 않는다. 건축에서 구상과 설계도, 그리고 시공과 더불어 명세도(明細圖)가 신축성을 띌 수 있는 것이 이 수동과 능동의 관계이다. 미학자에 있어서 능동과 수동의 융합은 예술가의 경우보다는 간단하지 않다. 보통 관조자를 수동적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작품을 인식하고 향수한다는 것은 단순한 수용성만이 아니다. 적어도 이때의 수용성이란 객관적 완성을 향해 쌓아올라가는 일련의 반응활동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지각(preception)이 아니라, 재인식(recognition)이다. 이 재인식이란 지각활동의 단초가 된다. 세부 배열에 대한 지각은 단순히 사물을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될 따름이다. 미학자가 예술작품을 앞에 놓았을 때 그때부터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된다. 이 탐구에 의해 재인식이 지각되고, 여기에서 재구성 활동이 이루어진다.[245p]
- 예술에 평가표준은 없지만 그 판단에 기준(criteria)을 삼는 것이 있다. 이 기준은 규칙도 처방도 아니다. 그것은 작품 자체의 내용과 의도를 한층 더 밝게 찾아내는 도구를 뜻하는데 그것이 미학의 원리이다.[248p]
- 인간의 창작충동에는 두 개의 뿌리가 있는데, 그 뿌리는 대상의 재현에 중점을 두는 모방의욕과 정신의 내면성을 추구하려는 예술의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것을 보링거는 감정이입충동과 추상충동이라 이름하고, 이 양자의 차이를 “감정이입충동은 인간과 외부세계와 현상 사이의 행복한 범신론적 친화관계를 조건으로 하는데 반하여, 추상충동은 바깥 현상에 의해 야기되는 인간의 내적 불안에서 생기는 결과”라고 말한다. 감정이입충동은 그리스나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속에 있는 유기적인 생명으로 돌아가려는 행복감의 가치를 말하는데, 이것을 근대인의 미라고 불러왔다. 그리고 추상충동은 고대 동방에서 나타나는 정신적 공간공포라고 부르는 불안의 감정으로 피라미드의 생명 없는 형태나 비잔틴의 모자이크에 나타나는 것 같은 생명억압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253p]
- 헤겔이 지칭했던 고전적 예술형식과 낭만적 예술형식은 우리들이 사실과 추상이라는 두 흐름의 명칭으로, 또는 자연주의적 대 기하하적, 또는 유기적 대 유형적, 또는 생명력적 대 형식주의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미술의 양식사를 확립한 뵐플린은 두 흐름을 고전예술과 바로크 예술로 대비시켜 이 양자를 발전의 주기성으로 특징지었다. 뵐픈린은 고전양식이 선적이고, 평면적이고, 폐쇄적이고, 다양성과 절대적 명료성을 지니고 있는 데 비해 바로크 양식은 회화적이고, 심층적이고, 개방적이고, 통일성과 상대적 명료성을 지니고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이 양자의 형식의 역사는 서로 교체되면서 진행되어왔다고 보았다. 이 양자의 주기성에 대해서는 이미 부르크하르트가 건축사에서 밝힌 것이지만, 건축뿐만 아니라 회화나 조각에서도 주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 현상을 우리는 12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프랑스 조형미에서 현저하게 볼 수 있는데, 이미 고전예술 이전의 중세 소묘에서 추상적·평면적인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주기적인 양식의 변화는 시대와 민족에 따라 빨리 진행되기도 하고, 혹은 늦게 변천되기도 하는 것이다. [260P]
- 이들 모두 예술이 곧 종교라는 과거 시대의 생각들인데, 오늘날에는 예술위에 과학이 있고, 국가권력이 있고, 사회정책이 있고, 심지어 상업도 그 위에 있다. 옛날에는 작품제작을 종교적 기도로 생각했지만, 오늘날에는 고객의 취미에 맞추기 위한 것이거나 권력기관에의 헌신적 봉사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주의 리얼리스트들은 예술을 계급 없는 사회로 가는 포장공사의 일꾼으로 생각할 따름이다. 마음의 자유를 노래하는 찬송이어야 할 예술이 복종자로 전락되고 말았다. 정신적인 것과는 너무 멀리 떨어졌기에 영원히 ‘예술=종교’라는 옛 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러면 서양 중세와 같이 종교를 위한 예술로 전향하라는 말인가? 결코 아니다. 예술 본래의 자세를 획득하라는 말이다. 기술과 예술의 관계, 그리고 예술과 사회, 예술과 정치, 예술과 대중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 양자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주종관계가 아니라 대등관계여야 한다는 말이다.[266p]
- 베르네제와 들라크루아 사이의 300년 간격보다 들라크루아와 마티스 사이의 50년 간격이 더 큰것이었다. 인간 세계의 표현을 위해 군마와 나부의 일화가 묘사되어씾만, 이제는 다른 목적 없이 제작 자체가 목적이 되어 소위 ‘순수화’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공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혀 의미가 없는 자기목적, 즉 ‘예술로서의 예술’이 진행되었다.[277p]
- 노래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동등한 것(das Glesiche)은 아닐지라도 언어라는 기반 위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동등한 것이란 ‘모든 것이 그 속에서 무차별하게 합치는 것’을 말하는 데 반해, 동일한 것(das Selbe)이란 ‘서로 다른 것들이 그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도 함께 전체의 일부를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 시인과 철한자의 ‘동일한’기능이란 수학적인 동일성 같은 ‘동등한’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과 철학자는 땅과 하늘, 사멸자와 제신, 퓌시스(physis, 자연)와 로고스(logos, 사유)의 힘을 엄밀히 구별하려는 점은 같지만 그 방법과 방향이 다르다고 하이데거는 생각한다.[281p]
- 생각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대상적인 물음이 아니기 때문에 하이데거는 ‘무엇이 사유를 시키는가?(Was heiBt Denken?)’로 바꾸어 놓았다. 생각하는 것은 기억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회상이란 본질 존재에서 보존하는 일을 ‘배려하는 일(Bedenken)’인데, “우리가 자체 내에 배려해야 하는 것을 바랄 때, 우리는 사고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이 가장 배려되는 것이가?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일이다. 우리는 오늘날 행동은 많이 하면서도 생각은 적게 한다. 과학은 원래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이 과학과 철학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생각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것’은 일단 생각하는 일을 미루자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각된 것 속에서 자신을 아직 감추고 있는 생각되지 않는 것에 대해’ 감시하는 것이다. 기다림으로써 우리는 천천히 생각해야 하는 것으로 향하는 길을 떠난다. 하이데거는 생각하는 것은 ‘존재자의 존재’로부터 본질을 청취하는 것인데, 이 청취하는 것이란 하나의 ‘응답’이라고 말한다. [283p]
- 진리가 ‘감추여져 있지 않음(Un-verborgenheit)'을 말하기 때문에 진리는 ’감추어져 있음‘을 빼앗아가지만, 진리 속에는 이 ’밝힘‘과 맞서 다시 감추는 이중의 은폐가 있다. 그 의미에서 진리는 원래의 투쟁이다. “진리는 그 본질에 있어서 비진리(Un-wahrheit)이다. 그렇다고 진리가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다. 감추는 것은 ’밝혀진 것의 밝힘의 시작‘이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을, 또 부분적인 것이 전체를 막아버리고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 존재하는 것들이 가상(als Schein)으로서 우리를 기만한다. 참되게 밝히는 일은 차라리 감추는 것을 다시 감추는 이중작용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존재자의 비은폐성은 눈앞에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나의 사건‘이라고 하이데거는 강조한다.[292p]
- 하이데거는 진리의 근본적인 현현은 언어에서 일어나며, 언어의 기원이 시이기 때문에 ‘예술의 본질은 시’라고 본다. 언어는 보통 전달이라고 여겨지지만 하이데거는 그것이 단지 전달되는 것의 표현이 아니고 ‘있는 것을 하나의 것으로, 무엇보다도 개방적인 것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휠더린에 따라 그는 “시의 본질은 진리의 정립이다”라고 말한다. 정립이라는 말은 첫째 ‘주는 것’이고, 둘째 기초를 ‘세우는 것’이고, 셋째 ‘시작하는 것’이다. 진리 정립으로서의 예술은 존재 안에다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주고, 기초를 세우고 그리고 시작한다. 예술의 제작은 하나의 ‘선물’인데 ‘역사적 인간에게' 어떤 것을 더해주는 선물이다. 동시에 예술은 대지를 우리의 실존이 의거하는 기초로 만드는 일이다. 이 기초란 ’하나의 전방 비약‘이다. 그리고 예술은 진리의 싸움을 새롭게 함으로써 하나의 ’시작‘을 이룩하는 것이며 하나의 ’새롭고 본질적인 세계‘를 출현시킨다. 이리하여 시인은 ’역사를 걸머진 존재‘이고, 그 예술이 역사적이 될 때, 그의 예술품은 ’진리를 작품 속에 창조함으로써 보존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예술작품이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293~294p]
-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be techne mimeitei ten physin)"라는 자주 되풀이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절로 인해 사람들은 그가 예술을 자연물의 재현으로 생각한 것처럼 오해하기도 하고, 또 예술과 기술의 구분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자연에 의한’ 것과 ‘예술(또는 기술)에 의한’ 것의 구분을 명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는 ”불가능한 일도 시적 효과나 더 좋은 실재인 경우, 또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견해일 때는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예술이 자연의 묘사라는 견해와는 분명히 다른 입장을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기술과 예술은 많은 점에서 공통되지만 예술은 ‘해롭지 않은 기쁨’을 제공해주는 특징이 있다. 물론 기술도 ‘즐거움’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예술이 주는 즐거움은 휴식과 유희에서 오는 기쁨이다.
플라톤에 있어서 모방기술은 ‘사물의 본성 속에 있는 하나’를 모방하여 그것이 제작물이 되고 그것을 다시 모방하여 예술품이 되는 그런 모방방식이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예술의 모방방식은 (1) 사물의 과거나 현재의 상태, 또는 (2) 사물이 그렇게 이야기되고 생각되는 상태, 그리고 (3) 사물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상태이다. 이렇게 명시함으로써 그의 모방설은 같은 것(homoioma)의 생산이 아니라 “사물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상태”임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창조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의 성질이 ‘인간 본성’에 기인하는 것이어서 “모든 사람은 모방된 것에 대하여 기쁨(to chairein)을 느낀다”고 표현함으로서 예술의 쾌락성을 주장했다.[301~303p]
-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밝힌 대로 모든 기술에는 목적이 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목적들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어 활동(energeia)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또 거기에서 활동이 생기게 되는 기능(ergon)이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가령 도끼가 나무를 찍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것은 ‘이름만’ 도끼인 것에 불과하다. 가능태(dynamis)로서의 도끼가 나무를 찍는 일로써 도기의 현실태(energeia)가 완수된다. 예술작품은 활동 자체보다는 어떤 기능에 그 목적이 있다. 이 기능을 완수하지 못하면 예술작품은 적어도 살아 있는 작품이 되지 못한다.[303~304p]
- 가련함(eleos)과 무서움(phobos)의 본성이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13장에서 “가련함은 주인공이 부당하게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생기고, 무서움은 우리와 비슷한 주인공이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생긴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카타르시스 조항에서 무서움이란 다른 사람을 휩쓴 불행과 악이 우리에게도 몰려온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피해당한 주인공이 우리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는 데서 일어나는 감정일 것이다. 레싱의 『함부르크 연극론』에서의 해석에 의하면 “그 무서움이란 우리들 자체에서 일어나는 가련함이다.” 레싱의 그 같은 해석이 옳은 것인지는 논의를 거듭하면서 밝혀질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제2권(B2, 1282 b 26-27)에서 ‘가련함’을 설명하여 “우리에게 무서움을 일으키는 것, 또는 위협과 어떤 다른 것이 가련함을 일으킨다고 말할 수 있다”고 기술했는데, 레싱은 이 구절에 따라 “무서움이 일어나게 되는 경우 외에는 우리의 가련한 느낌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무서움이 필연적으로 가련함을 포괄한다”고 해석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련함과 무서움(di' eleou kai phobou)이라는 말로써 의도한 것은 ‘인간의 원시적인 감동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무서움이 없는 인간애“를 생각했다고 레싱은 말했다.[308~309p]
-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을 구분하는 데서 미학을 전개시킨 콜링우드는 예술가와 예술 감상자의 관계는 병을 낫게 하기 위해 투약하는 이른바 ‘수단과 목적’의 관계 내지 ‘자극과 반응’의 관계가 아니라고 규정지었다. 그는 진정한 예술은 ‘정서를 표현하는 것(expressing the emotion)’이고, 사이비 예술은 ‘정서를 환가시키는 것(arousing the emotion)’이라고 규정했다.
진정한 예술의 기준이 되는 ‘정서의 표현’이란 ‘정서의 폭로’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무서움이나 분노로 인해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거나 또는 얼굴색이 창백해지는 억제할 수 없는 정서의 폭로와 달리 어떤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마음의 평정을 말한다. [323~324p]
- 진정한 예술은 건축설계가 시공되는 것과는 달리 상상에 의해 창조된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재구성되는 성질의 것이다. 음악가가 그의 악상을 오선지에 옮겨놓는 것은 상상의 구체화이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음 하나하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상상력에 의해 그것을 재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구분해야 할 것은 상상(imagination)과 허구(make-believe)문제이다. 예술에서 상상이란 무엇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족적인 것에 비해, 사이비 예술과 결부된 허구는 배가 고플 때 먹는 것을 상상하는 것 같은 무엇에 사로잡힌 상태이다. 콜링우드에 의하면, 진정한 예술과 결부된 상상이란 인형극을 볼 때와 같이 실제로는 거의 아무 변화도 없는 인형의 얼굴에서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읽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감상자의 미적 경험의 구성에 의한 것이다.[325p]
- 예술은 실제적인 인생경험에서 생긴다고 보는 듀이는 근대미학이 예술을 일상적 경험의 대상에서 유리시키는 과오를 저질렀다고 지적하고 영화, 재즈, 만화, 연애사건을 다룬 저널리즘이 예술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자주 찾아가는 박물관이란 낡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전리품을 진열하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듀이는 칸트 이후의 관념론적 미학이 너무 ‘고립적이고 자기 폐쇄적이고 비경험적이기’ 때문에 관념화된 예술개념에서 과감히 이탈할 것을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칸트 미학을 비판했다.[327p]
- 18세기의 개인적인 감수성에만 의존하는 미학이론이 20세기의 대중사회에 그대로 통용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정서의 표현만이 진정한 예술이고 정서의 환기는 사이비 예술이라고 제쳐놓아햐 하는가?[328p]
- 즉 졸라 같은 자연주의 문학가는 인간과 사회의 모든 악과 추에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면서 예술적 표현의 객관성을 제시했다. 그 같은 경향은 우티츠가 설명하는 대로 한편으로는 ‘미적인 것의 자유로운 확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미적인 것과의 결별’로 나아가게 되었다. 미는 사람에게 쾌감을 주는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하지만 사실주의적 예술에서는 불쾌감을 주는 추도 포함한다는 사실로 인해 ‘미적인 것의 확장’이 시도되었고, 미가 주관적 취미라야 한다면 마네의 조형미에서 보는 것 같은 객관적인 미적 통찰은 차라리 종래의 ‘미적인 것과의 결별’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미학’이 시도되었다. 종래의 미학이 ‘위로부터의 미학’이었다면 이것은 실험적 수단을 동원한 ‘아래로부터의 미학’이었다. 우티츠는 새로운 자연철학이 옛 방법대로가 아니라 물리학, 화학, 수학, 철학 등이 생동적으로 결부되었듯이, ‘일반예술학’을 내세우는 새로운 미학은 역사학, 심리학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일반예술학’이 주창된 이후 예술에 ‘미 이외의 것’, 즉 윤리적·종교적·사회적·지적 등의 가치가 각각 그 감정에 알맞게 형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통용되었다.[329p]
- “당신이 남을 울리려고 한다면 당신이 먼저 슬퍼하시오”라는 로마시인 호라티우스의 말대로 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일 없이 공감을 일으킬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이른바『예술의 비인간화』에서는 예술의 존재가치가 소멸된다. “사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한다”는 가치중립성의 문제는 과학적 기술이라는 점에서는 필요할지 몰라도 실제의 관찰에는 생동하는 주체의식이 필요하다. 하물며 인간 구제를 꾀하는 예술에서 지나친 정서적 거리로는 인간 부재의 예술이 되고 말 것이다.[330p]
- 영향을 받았다 안 받았다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했는가에 문제의 초점이 있다.[343p]
- 우리 나라에 서양화가 도입된 것은 고희동이 일본에 건너가 양화를 배우기 이전에 이미 서양화의 기법을 익힌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종교서적의 삽화와 초상화의 사실법 등에서 서양화 기법이 전해졌다. -중략-
문제는 미술이 젤롯주의를 택하느냐, 헤롯주의를 취하느냐에 있지 않다. 전통미라는 것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시대의 옷을 입기 마련인데, 과거만을 절실하게 그리워하는 젤롯주의도, 새 것에만 관심을 모으는 헤롯주의도 예술에서는 금물이다. 오랜 기간 다듬어온 미의식인 전통미를 어떻게 우리가 오늘에 살려서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새로운 창조적 자세가 없으면 세계가 넓어진 오늘날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창조란 주체적 미체험에 의한 자기고백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주문 외우기가 되면 공감을 줄 수 없다. 여기에 동종요법에 의한 한국미의 자기보존이 문제될 수 있다.[345~347p]
- 엘리어트의 「전통과 개인의 창조력」(1971)에 의하면, “전통이란 상당히 넓은 의미의 문제이다. 그것은 저절로 물려받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원할 때 당신은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우선 역사적 감각과 관련돼 있으며 또 우리는 그것을 아무에게나 나누어 줄 수도 업다. 역사적 감각이 하나의 지각이며 과거의 과거성일 뿐 아니라 과거의 현재성이다.” 실로 전통은 지난 날로의 무조건적인 복귀가 아니고 모든 변화에 적대감을 가지지 않으며, 역사적 감각을 가지고 생명력을 포착하는 자에게만 몸을 맡기는 성질의 것이다.[348p]
- 이 거신적(巨神的) 형식은 서양화의 전형적인 것이다. 이것에 비하면 오도자의 묘사는 로울랜드의 말대로 “실제적 해부의 형식에 충실하기보다는 본질적 특성과 형태에 의해 다른 세계에서 내려온 존재의 악마적 힘을 표현”하고 잇다. 즉 미켈란젤로의 소묘에서 우리는 실제 그가 석재에 끌을 대어 근육의 윤곽을 보강하여 시각적인 음영을 나타내는 거을 그대로 직감하게 된다. 그러나 오도자의 필법은 미켈란젤로와 같은 내적 갈등의 외적 선언이라 말할 수 있는 몸의 비틀림이 없이, 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는 고투 없이, 영혼이 위로부터 내려진 힘을 얻어 생기발랄하게 되는 것, 즉 육법의 이른바 기운생동을 표현했을 따름이다.[361p]
- 레오나르도는 수학적 비례가 중요하지만 그것에 얽매이면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역시 강조했다. “훌륭한 화가는 두 가지 것을 그린다. 즉 인간과 그 인간의 내적·정신적 자기이다. 전자는 단순하지만 후자는 힘들다.” 만일 그의 모습과 동작에서 ‘정신의 정열’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칭찬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보았다.[375p]
- 불상은 붓다 즉 석가모니의 상인테, 이는 깨달은 자[賢者]의 상징이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을 기본으로 하지만 인간 자체를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불교적 이상을 상징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인간이 수도하여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에 이르면, 그는 초인간적인 모습에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대중은 만 권의 경을 읽은 후에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상을 보고 붓다의 세계를 향해 합장하는 것이 신앙의 지름길이다. 붓다의 분신 내지 변신은 무수히 많다. 이들은 모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다른 불법(佛法)의 힘을 갖고 있다. 이 불법의 힘 즉 법력에 따라 붓다를 분류하면, 여래(如來), 보살(菩薩), 명왕(明王), 천부(天部)의 네 종류가 있다. 여래는 완성된 불(佛)을 말하고, 보살은 지혜의 힘을 가진 불, 명왕은 중생의 보호를 위해 악마와 대결하는 불, 천부는 불적(佛敵)과 싸우는 무장한 불을 말한다.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이러한 불을 조형화하려면 너무나 추상적이기 때문에 이것을 구체화시켜 ‘붓다의 32상 80종호’로 정형화했다. 이 32상은 인도의 기본적인 관상법에 따라 대별한 것이고, 80종호는 32상을 전제로 하여 세분한 것이다. 브라만의 성전인 베다(Veda)경 속에 관상법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32상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 인류를 구제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80종호는 대승론사(大乘論師)들이 부연시킨 것으로 짐작된다.[384~385p]
- 그리스의 신전조각, 동방 기독교의 전능자상과 성화상, 불교의 불상조각이 역사적으로 관련되어 발전했는데 무력한 인간의 구제를 희구하는 종교미술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389p]
- 예술은 그가 상상하는 것을 실재한다고 보지 않지만, 종교는 그가 상상하는 것을 실재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허깨비와 선녀를 보는 것은 예술이고 허깨비와 선녀를 믿는 것은 종교이다. 고대로갈수록 양자의 구별이 힘이 들지만, 예술의 지도원리가 미인 데 반해 종교의 지도원리는 성스러움이다. 그러나 이 양자가 다 진리로 향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392~393p]
- 『장자』의 제물론에 남곽자기(南郭子基)와 안성자유(顔成子遊)의 문답이 있는데 자기는 자유에게 “자네는 자연의 소리를 인뢰(人籟), 지뢰(地籟), 천뢰(天籟)로 나누어 놓고, 인간의 음악인 인뢰는 들었겠으나 대지가 울리는 지뢰는 아직 못 들었을 것이고, 설사 지뢰를 들었다 해도 하늘의 음악인 천뢰는 아직 듣지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뢰란 인뢰를 인뢰로서 듣고, 지뢰를 지뢰로서 듣는 것이다. 장자는 천뢰란 “대체로 그 불어대는 것이 만가지로 같지 않지만, 그것들을 제멋대로 불어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다 제 소리를 내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문인뢰(聞人籟)란 음악을 즐기는 것을 말하고, 문지뢰(聞地籟)란 우주현상의 청취를 말하고, 문천뢰(聞天籟)란 신성의 청취를 말한다. ‘불어대는 것이 만 가지로 같지 않지만, 그것들이 모두 제멋대로 불어대게 하는 것’이 곧 천뢰인데, 그것은 우주의 지배자의 생각을 청취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비로소 절대자와의 합일이 이루어져서 망아지경(忘我之境)에 도달한다. 플라톤이 말한 ‘신들에 대한 기원과 존경에 의해 그것으로써 해탈을 발견’하는 경지와 같다고 하겠다. 플라톤이 말한 ‘신적 부여와의 영감’이라는 예술가의 특징은 장자가 말한 ‘지금 나는 나를 잊었다’라는 경지와 같은 것이라 여겨진다.[394p]
- 언제 어느 때 북망산에 갈지 모를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범속한 일상성에 매달려 의미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카뮈는 이러한 일상적 삶의 맹랑함을 ‘부조리’라고 칭했다. “기상, 전차, 사무실이나 공장에서의 네 시간, 식사, 전차, 네 시간의 일, 식사, 잠,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이러한 길은 대개의 경우 쉽사리 이어져간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성의 반복이 무대장치가 무너지듯 무너지는 때가 있다. 그것은 ‘왜’라는 물음과 함께 시작되는데, 이것은 인간 의식의 운동이다.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에서 종교와 예술이 시작되는데, 그래서 이 양자는 삶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그 공통분모로 갖고 있다. 근원적인 진리를 표현하는 언어가 분리되면서 종교와 예술이 분리되지만, 어떤 하나의 것(철학적 물음)이 일관되는 것은 사실이다. 야스퍼스는 양자의 공통분모를 비극적인 것(das Tragische)과 구원(die Erlosung)이라고 보았다.[400p]
-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신 없이 인간으로서 어떻게 초극할 수 있는가를 카뮈는 궁극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바로 그 같은 입장이 불교적 해탈이다. [40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