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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Dec 15. 2016

상냥한 폭력의 시대

지은이 / 정이현

초판 1쇄 발행 2016년 10월 10일

초판 3쇄 발행 2016년 10월 17일


지은이 정이현

펴낸이 주일우

펴낸곳 (주)문학과 지성사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7길 18)



-문제가 분명해 보일 때 어떤 사람은 원인을 제거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방  안으로 조용히 숨어들어 문을 걸어 잠근다. [110p]


- 그래? 그렇겠지? 이제 엄마는 완전히 믿는 것 같았다. 믿게 하는 것. 통역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이제야 내게 진짜 통역사의 자격 비슷한 것이 생겼음을 알았다. [115p]


- 집주인에게 통보가 온 것은 전세 만기일을 정확히 세 달 남겨둔 시점이었다. 

 안녕하세요. 현재 시세에 맞추어 전세금을 인상하려고 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그때 진은 퇴근길 버스 안에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엉거주춤 선 채,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한 군데도 틀리지 않은 집주인의 문자메시지를 읽었다. 한 번 읽고는 두 번 더 되풀이해 읽었다.

 버스는 규정 속도대로 달렸다. 곧 내려야 할 정거장이었다. 창밖으로 친숙한 간판들이 지나갔다. 지하철역에서 꽤 떨어진 가파른 언덕 위에 지어진 아파트라는 단점, 신축 아파트의 같은 평형에 비해 실내가 좁게 설계되었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여 동안 진은 이 집에서의 생활에 큰 불만이 없었다. 만족했다는 뜻과는 달랐다. 불만족과 만족을 꼼꼼히 헤아리기에 너무 바쁜 나날이었다. [172p]


- 유원은 속력을 높였다. 차가 고속화도로를 120킬로미터로 달리는 내내 부부는 정적을 지켰다. 대화가 없어도, 음악이 없어도, 라디오 소리가 없어도, 사랑이 없어도, 세상 모든 소리와 빛이 사그라진 곳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였다. [182p]


-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원망하기 위해서, 욕망하기 위해서, 털어놓기 위해서 [215~216p]


- 동시대인의 보폭으로 걷겠다는 마음만은 변한 적이 없다. 

이제는 친절하고 상냥한 표정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시대인 것만 같다.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시대에 살아가는, 나와 빼닮은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쓸 수밖에 없다. 소설로 세계를 배웠으므로, 나의 도구는 오직 그뿐이다. [248~2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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