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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May 25. 2018

2018년 5월 24일

가락동 

해적 레고. 펀샵에 근무하면서, 점심시간에 동료직원들과 나가 구매했던 제품이다. 약간 어색한 사이에 남자 셋이서 어떻게든 일탈을 즐겨보겠다고 호주머니 돈 3,000원 털어 각자 하나씩 구매. 나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해적이 나왔고, 거짓말처럼 다음 달에 퇴사하였다. 그때 만났던 자유로운 영혼의 직원들이 볼 때마다 생각난다. 


나라에서 구매한 손톱깎이. 지역 잡지에서 추천한 가게를 찾아가 보니, 나지막한 공원 언덕(산이라고 해야 하나-) 중간 즈음에 허름한 상가 안에 자리 잡은 가정용 철제 기구 장인 가게였다. 장인이라기에는 동네 아저씨 같은 분이 약간 황망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기억이, 늦은 오후 즈음에 종종 느꼈던 아파트 상가의 풍경과 닮았다. 부엌칼을 살까, 그저 기념으로 손톱깎이 하나를 살까 고민하다가, 손톱깎이를 샀다. 안을 열어보니, 매우 복고적인 디자인으로 어릴 때 자주 쓰던 딱 그 제품이었다. 사용감에 매끈하게 잘리는 느낌이라기보다 약간 '서걱'거리며 잘리는 것이 특징. 


검정/빨강 2색 인조 가죽 필통. 교토 마루젠 서점에서 500엔에 할인하기에 덮썩 집어버린 물건. 수납이 꽤 많이 되기도 하고, 일전에 쓰던 네팔산 필통의 용량이 가득 차서 서브용으로 구매하였다. 아직은 뭔가를 다 집어넣을 만큼 새로운 필기류는 없어 가구가 미처 다 못 들어온 새집의 분위기. 그래도 알약 같은 기분의 색감이 꽤 마음에 든다. 노란색만 있었다면 어딘지 유아용 학습 도서의 분위기였을 지도 모르겠다. 


브릿츠 2.1 채널 스피커. 한창 컴퓨터에 빠져있던 중학교 시절에는 메가패스 같은 초고속 통신망과 더불어 5.1 채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보급형 5.1 채널로 많이 보이던 회사의 제품인데, 이제는 컴퓨터나 스피커의 가격보다는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너무 고가가 되어서 그런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다들 돈이 없으면, 5.1 채널이나 되는 부피들을 감당할 공간이 없는 것일 테다. 점점 가벼워지는 음악 감상의 풍조가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이제는 2.1 채널이다. 조만간 모니터 내장 스피커로 통합될지도 모를 일.


 

신한은행 OTP 발생기. 6자리인가의 랜덤한 일련번호가 고무 버튼을 누르면 뜬다. 공인인증서에, 카드번호에, 카드 보안 번호에, 문자 확인, 뭐 이런 여러 가지 것들과 겸용으로 쓰이는데, 대부분의 은행업무는 이 녀석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도대체 은행 보안팀은 어디서 이런 쓸데없는 아이디어만 생각나는지 궁금하다. 조금 슬펐던 장면은, 은행에 가서 아무리 봐도 갓 입사한 듯한 신입사원이 이런 업무는 인터넷뱅킹과 OTP를 이용해서 해결하라는 안내를 했던 기억.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없애는 쪽으로 안내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보여서 마음이 스쳤다. 


애플 맥미니. 일본에 가서 맥 프로를 구매할까, 이 녀석을 구매할까 고민하다가 하나라도 잡스의 유산이 남아있을 때 선택하자는 결론으로 낙점.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모니터를 교체해가면서 사용할 수 있어 좋다. 다만, 하드웨어 업그레이드가 어려운 것이 단점. 그래도 한 손으로 들어 옮길 수 있는 데스크톱이라는 점은 무시 못할 장점이다. 나중에 작업실 환경이 제대로 세팅되면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은... 지금이다. 


무지 휴대용 파쇄기. 2회 개인전을 끝으로, 최대한 물리적인 그림들을 남기지 않기로 마음먹어, 그림 후 스캔 및 파쇄를 대체로 한꺼번에 진행한다. 그런 파쇄의 기분은 미묘하게 재미를 느낀다. 뭔가 국수를 뽑는 기분과 비슷한 감정, 혹은 어릴 때 색깔 찰흙 같은 걸 작은 구멍이 여러 개 있는 판에 꾹 눌러 빼던 그런 기분처럼 - 과정의 종료와 동시에 다음 작업을 hooking 하는 작업 생태계의 분해자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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