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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Feb 18. 2023

우아한 가난의 시대

우아함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의 것이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


초판 1쇄 발행 2020년 7월 1일

1판 5쇄 발행 2022년 9월 14일


지은이 김지선

펴낸곳 언유주얼(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23-5, 106호


- 내가 생각하는 우아함은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의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기준으로는 지극히 사치스럽고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한없이 궁상맞아 보이는 종류의 일일지라도 말이다. [12p]


- 보들레르의 시대에 젊은이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권태였던 것 같다. 많은 예술가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고, 무엇도 하고 싶지 않게 하는 권태라는 놈의 무시무시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반면에 21세기의 젊은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수치심이 아닐까 싶다. 인정할 수 없는 상사와 함께 일하는 고통. 그의 나이가 되어서도 자신은 훨씬 더 적은 연봉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무력감.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특별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서늘함. 그리고 미래를 잊기 위해 현재를 마취하고 있다는 자각에서 오는 공포. 이 와중에 즐길 것들은 천지에 널려 있는 상황은 확실히 권태로움보다 수치심을 안겨 준다. [21p]


- 1968년의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넘쳐 나는 풍요 사회에서 권태로 죽어 가고 있음을 호소하며, 사회 자체를 전복하는 모험을 꿈꿨다. 맛있는 건 넘쳐 나지만 일자리는 없는 사회에서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68년의 파리에 몽상가들이 있었다면 2020년의 서울에는 미식가들이 있다. 우리는 물고 뜯고 맛본다. 먹고 마시는 틈틈이 사진을 찍으며 토론을 이어 나간다. 모험의 경계는 없다. 지출의 한계도 없다. 역사는 인스타그램에 적힌다. [24p]


- 전 국민이 미식가인 사회에서 음식에 열정이 없는 사람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누구를 만나도 오늘의 메뉴에 대한 의견이 있으며, 그룹 채팅방에서는 '뭘 먹을까'에 대한 논의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의 식문화가 품위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도장 깨기'를 하듯이 맛집을 탐험하고, 음식을 앞에 두고 대화보다는 사진을 찍느라 바쁘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음식을 넘나들며 맛보고, 어려운 음식 언어로 허세를 부리며, 다 먹지도 못 할 만큼의 메뉴를 주문한 후, 다음 달 카드값을 낼 때 후회하는...... [26p]


- 마음껏 낭비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품목이 몇 가지 있다. 부자들에게는 미술품이 그렇고, 부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책이 그렇다. 물질적인 무엇이 아닌 정신적인 무엇을 구입한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림이나 가구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한두 권씩 사 모으다 보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책 정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35p]


- 독서광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보들보들한 염소 장갑을 끼고 책을 만져야 한다 믿는 숭배자들과 책은 내용을 담는 그릇일 뿐이라고 여기는 파괴자들. 이 책은 파괴자가 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자주 읽지 않는 책으로 테이블 지지대를 만들라거나 공간 곳곳에 책을 쌓아 올려 수직적인 악센트를 만들라는 조언이 준비되어 있다. '쌓을 것인가, 꽂을 것인가.' 이보다 철학적인 고민은 없다. [37p]


- "가장 큰 인지 오류는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에게 스물네 시간은 똑같아요. 그 자체가 거짓말인 거죠.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시간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시간 단위로, 분 단위로 쪼개서 많은 일을 하려고 애쓰지만, 결국엔 그 쪼개 놓은 시간에 다시 얽매이게 돼요. 자기가 시간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거예요.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거예요. 제가 한번 반대로 물어볼게요. 무엇 때문에 시간을 쪼개야 하죠?" -중략- 가장 큰 아이러니는 잘하고 싶어서 시간을 쪼갤수록 점점 더 모든 일을 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207 ~2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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