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품평 / 라(아)멘멘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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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도쿄 시내의 라멘집이다. 요즘엔 라멘을 잘 먹질 못한다. 소화기관이 늙어서 기름베이스의 국물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탓이다. 그럼에도 인생 최고의 라멘집은 역시 변함없이 나리타 공항역 근처의 심야 라멘집으로 못박혀 있는데, 그것은 그 시절 비행기를 놓치고 남은 현금이 없어서 굶고 기다리다가 은인의 구제로 야심한 새벽에 우연히 연곳에 들어가 공기밥까지 시켜가며 맛있게 먹은 기억때문이다.(지금 생각해보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일본에 몇번의 여행을 하면서, 혹은 한국에 즐비차게 열리는 일본식 라멘집에가서 주문할 때마다 먼저 '쯔유'(간장)라멘을 시켜보는데, 그때 먹었던 라멘이 간장라멘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켜보지만 역시나 실망하기 일쑤였다. 이제까지 단, 한.번.도- 그런 담백한 쯔유맛을 내는 집을 보지 못했다.


담백한 인상의 아저씨 2명이 운영하는 이 가게는 그런 가게로 절제의 맛이 느껴진다. "네가 공항근처에서 먹었던 라멘맛이 어떤 의미의 맛인지 이 아저씨들이 잘 풀어서 다시 설명해 줄께-" 라는 느낌이다. 그것은 어떤 것을 상징한다. 20세기 냉전시대 말기에 태어나 21세기 신자본주의를 겪으며 비도덕적인 금융위기 사태 이후를 살아가야하는 세대에게 - 비행기를 처음 놓쳐서 닥친 상황앞에 불안해하며 1엔도 쓰지 않고 주머니에 꼭쥐고 있던 3,000엔으로 식당앞을 서성이며 온갖 고민을 하던 과거의 나에게 그 맛이란...


신뢰기반의 시대에 살고있다. 내가 실재의 물건으로 무언가를 바꾸지 않아도 손쉽게 종이돈으로, 카드로- 국가의 권위, 혹은 회사의 자산규모의 권위에 기반한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를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손쉽게 거품이 낀다. 내가 누군가에게 만약 신뢰를 바탕으로 1000원을 빌린다면, 시장엔 갑자기 2000원이 돌아다니는 상황이 된다. 이것으로 관련 거래가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그 누간가는 빌린 것을 다시 빌리고- 의 상황이 반복된다. 경제 호황이란 사실 이런 것이다. 특정시대의 인간이 이전 시대의 인간보다 덜 똑똑하거나 더 똑똑해서 실재의 가치들을 만들어내고 못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미래의 가치까지 끌어다 쓰다가 매번 이자까지 쳐가면서 갚아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오기 때문에 그렇다. 일본 라멘의 기원은 그러한 장기불황 시대의 산물이다. 자신의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꼭 쥐고 취해야 할 것만을 취한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가끔은 반드시 '기름진 맛'을 느끼고 싶어한다. 이 모순적인 맛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래서 기름베이스의 국물로 어떻게 '담백'한 맛을 만드는 문제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중용을 지키는 것- 과한 재료를 삼가고 면을 따로 삶아 걸쭉해 지는 것을 피한다. 일체의 인테리어 장식은 피하고 알릴 것만 알린다. 주방의 식기나 셋팅도 마찬가지. 노출된 가스 파이프 라인에서 더 물러설 수 없는 가게의 중심추를 엿보았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라멘의 가격은 단돈 320엔. 하지만 맛은 내가 맛보았던 가게들 중에서는 상위권에 속했다. 돈이 없어 꽉진 3,000엔도 이 가게 앞에서는 손이 풀렸을 것이다. 아직 돈이 아닌 그 무엇의 기반이 남아있는 2016년의 일본은 기회주의적 2015년 한국의 맛과는 다른 맛을 맑고 기름진 국물에 내어놓았다. 날은 차고- 안경에 김이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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