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에이전시와 편집샵의 막다른 골목
한창 전세계 미술시장이 이상하리만치 호경기이고, 팝아트를 필두로한 컨템포러리 작가들의 시장이 한껏 커질 무럽 요시토모 나라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그 시점의 상징적인 작가였는데, 그리 무겁지 않은 소재를 무거운 재료로 표현할 뿐인 가벼움으로 한 시대를 잘 풍미했다. 그런 캐릭터에게 갑작스런 양적 성장과 대규모 미술관 공간이라는 부담감은 협업의 필요성으로 이어졌고, 그 당시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던 전시설치 디자인 스튜디오로 나온 업체가 바로 graf였다.
무엇을 어떻게해도, 어느 정도는 괜찮았던 90년대가 끝나고- 장기불황이 일본에 닥치자 많은 젊은 디자인 에이전시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공대생처럼 무에서 유를 만들 연구를 해온 것도 아니고 자본을 쌓아두는 성격의 회사들도 아니었기에 우선은 이것 저것의 접합을 시도했다. 보통 '혁신' , '융합' 으로 도배되면서 이런 저런 대형 엑스포나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하는 잔치에 들어가보면 대부분은 '접합'으로 끝난 경우가 참 많다.
디자인도 사실은 시장논리로 보면 단순한 분야이다. 그들이 만든 '디자인'이 어떻든 유통되어야 하는 것이다. 좀 더 가시적인 제품디자인의 세계로 좁혀보면 그 제품이 '팔려야' 유의미한 디자인이라는 것이 검증되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이해의 깊이가 필요한 디자인적 해결방안이나 사용기간이 어느 이상 되었을 때 알 수 있는 특성 또한 지니고 있기에, 무조건 시장 논리로만 바라볼 수 없는 지점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도 결국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지지기반 없이 지속될 수 없는 문제이다.
수많은 에이전시들이 직면한 '영업'의 문제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진정으로 내고 싶으면 자체 '상품' 혹은 '서비스'가 존재해야 한다. 수익구조가 외부에 의존적인 경우엔 결국 이래저래 이용만 당하다가 망하는 길이 될 수 밖에 없다. 90년대에는 그것을 '감각'에서 찾는 오류를 범하곤 했는데, 주관성이 섞여들어 갈 수 밖에 없는 감각이란 명제는 불경기라는 시대와 불공정한 권위나 권력앞에서 맥을 못추고 사그라져 갔다.
그 대신 어느 순간 효율, 가성비와 같은 실질적인 명제들이 자리를 꽤차게 되었는데 이도 사실은 유통구조에 많은 빚을 지고 있어서 이래나 저래나 의존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graf와 같은 디자인 에이전시들은 그런 고민과 사회구조, 시대상에서 암담한 미래를 보여주는 막다른 길과 같이 느껴졌다.
까페겸 샵인 이곳은 수많은 프로젝트로 쌓아온 명성, 넓은 공간, 그럴듯한 제품들, 나쁘지 않은 까페로 이루어져있지만, 거의 대부분 제품을 구매하지 않았다. 타협으로 얻은 까페 공간은 점점 더 커질 것 같아보였다. 미를 소유하는 것보다 임대하는 시대가 된 지금을 스타벅스에서보다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방향성을 잃고 헤매이는 부가가치 서비스 업종들의 귀결점은 단순히 접합으로 끝나지 않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