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타워의 원본
그리 멀지 않았건 과거에 교토에 갔다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광화문 D타워가 오픈하였다. 어떤 잡지기사에서인가 내부에 건축적 '비움'을 과감히 둠으로써 Z방향으로 수직상승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으로 상승하는 동선을 만들어 냈다고 자랑하는 내용이였다.
옛날 공간디자인 수업의 약간은 떠벌이 였지만 실무적으로 잔뼈가 굵은 강사 교수님은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혹은 '이거 ㅇㅇ에서 봤던 ㅇㅇㅇ이네'라고 무섭게 맞추는게 디자이너의 기본 내공같은 거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사실 완전한 창조는 없고 대부분의 창조활동의 과정은 이전의 경험을 재조합하고 새로운 생각이나 기술을 결합해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D타워에서 같은 방식의 에스컬레이터 동선을 통해 느끼는 사용자 경험은 상대적으로 답답했다. 일렬로 에스컬레이터를 배치해서 장관을 연출하려면 경사각이 낮고 층수가 훨씬 높아야하며, 그 끝은 정원이든 뭐든 열린 공간이 있어주어야 어디론가 나아가는 기분을 받는다. 효율면, 경제적인 면에서는 당연히 D타워가 압승일테지만 그런 이유라면 기존의 Z모양으로 수직상승하게 하면 된다. 같은 방식의 오름, 별것 아닌 정도의 비효율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험을 자아낸다는 측면에선 이세탄이 압승이다. 게다가 백화점이라는 포맷은 매층마다 다양한 상품과 분위기를 한 번에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각적 재미가 더해진 반면 JOH의 경험은 체인 음식점으로 계속되는 비슷한 자기 복제의 기분이다.
끝없는 던전을 헤매는 한국 온라인 게임과 미려한 엔딩씬을 향해 나아가는 일본 콘솔 게임의 문화차가 여기서 벌어지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건 다름이 아니라 뭔가를 포기하였고, 아직은 그러지 못한 정도의 같다. 건축은, 그것도 시내 한복판의 대형 건축물은 그 지역 사람들의 자랑이고 특별한 경험이자 일상이다. 그런 곳의 경험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겸허히 이세탄에서 배워간다. 백화점이라는 오래된 판타지 형식의 끝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간 그들의 매트릭스적 완성도에도 혀를 내두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