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여서 신선한 쿠바 재즈 같은 중식당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 후 실제 공연까지 감상하게 되었다. 영화는 일종의 다큐멘터리식 사실주의에 입각한 것으로 자신의 아들과 감독이 실제로 쿠바에 입국하여 옛날에 왕성한 공연을 했던 전설적인 뮤지션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인터뷰하는 내용과 마지막에 모두 모여 뉴욕에서 공연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내용이었다. 다들 그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예술을 하며 먹고살기 위해 각양각색의 부업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는데, 가장 리드보컬인 할아버지는 이발사로, 또 다른 뮤지션은 성당 반주자로서, 클럽의 들러리 연주자 등등 꽤 다양한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쿠바의 경기침체가 갑작스럽게 장기화되면서 사회적 잉여력이 떨어진 만큼 각박해진 뮤지션들의 모임 장소였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명맥이 끊기게 되었고, 이들의 음악은 그대로 빙하기 화석처럼 보존될 수 있었다. 즉 쿠바 재즈라는 건, 어떤 '원형의' 감각인 것이다. 이런 문화적인 것들은 항상 새 것만이 좋은 게 아니라서, 아무리 진부하고 유행이 뒤떨어지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세월을 기다려보면 '복고'라든가 '네오 클래시즘' 같은 단어들과 함께 영광을 맞이하게 된다.
음식도 마찬가지인 편인데, 요즈음에 들어 '옛날 설렁탕'이나 '옛날 떡볶이'같은 약간 심심하지만 편안한 맛이 그립다. 천화원이라는 거제도 해변가에 위치한 중국집은 1950년대에 문을 열어 가게를 꾸려온 역사도 대단하지만, 초대 주인장이 아직도 현역으로 요리를 하고 있는 집으로 어렴풋이 '아 옛날에 짜장면은 이랬겠구나'싶은 맛을 내온다. 소문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흰머리 할아버지가 창틈 사이로 주방에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날을 기약하라고 할 정도로 그 사람은 이 가게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이윤에 욕심을 내지 않는 한국의 가게들의 특징은, 주문받는 사람들의 얼굴에 피로감이 보인다는 것이다. 왜 이런 기형적인 서비스 구조가 굳어졌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여러 가지 종류를 주문하려고 하니 안된다고 단호히 아줌마가 단박에 잘라버린다. 볶음밥 같은 메뉴도 없으며, 기본 면류를 주로 취급하고 있다.
탕수육 소스마저 거의 달지 않아서 튀김 본연의 맛을 잘 느낄 수 있었으며(기름이 신선한 듯), 면은 직접 수타로 뽑으셨는지 탄력이 적당하고 별 노력 없이 잘 씹어 넘길 수 있다. 본인이 노인이 되셔서 그런지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한 중식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짬뽕은 꽤 묵직한 맛으로 그다지 맵지 않고 중후하다. 이렇게 자극적이지 않은 짬뽕은 처음 보았다. 엽기떡볶이니, 불닭이니 하는 없는 요리 실력을 자극적인 매운맛으로 때우려는 작금의 시대에 귀감이 된다.
고대했던 짜장은 시골 수타 짜장의 익숙한 그 맛이긴 한데, 상대적으로 투박하지 않고 매끄럽다. 메뉴엔 '유니 짜장'으로 적힌 것으로 보아 그게 차이인 듯- 식사를 하는데, 주방장 할아버지와 동년배의 노인분이 들어와 친숙하게 반말로 주문한다. 이 집은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일가가 났다.
언젠가는 인간의 수명에 의해 없어지게 될 맛과 문화겠지만, 있어줘서-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숙연한 마음이 든다. 그런가 하면 아비의 그늘에 묻혀 평생을 살아온 주방 안의 아드님을 보는 내내 생각이 복잡해졌다. 전통의 무게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