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1일 토요일.
그날은 기쁜 날이면서도 절망적인 날이었다.
40년 지기 친구가 딸을 결혼시키는 날이었다. 30년 전 친구가 12시간 넘게 진통을 하고 낳았던 날부터, 유치원을 보내고 학교를 보내고 성인이 되어 결혼할 때까지 쭉 함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내게도 딸 같은 아이였다. 그런 친구 딸이 결혼하는 날이라서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예쁘게 차려입고 결혼식에 갈 생각이었다.
토요일 아침. 기분좋게 일어나서 먼저 일어난 남편과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모닝 허그를 하며 아침 인사를 했다.
"잘 잤어? 오늘 결혼식 가려면 서둘러야겠네"
"그러게. 고속버스 타야 하니까 늦지 않게 얼른 준비해야겠어요."
"어? 잠깐만, 여기 왜 그러지?"
날 안아주던 남편이 겨드랑이 아래 가슴 쪽을 만지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야, 장난하지 말고.."
장난이려니 생각하면서 남편이 손을 떼지 못하고 있는 내 왼쪽 겨드랑이 아래쪽 부위를 나도 만져보았다.
"......이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듯했다. 너무나 뚜렷하게 멍울이 잡혔다. 만져보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동안 한 번도 만져지지 않았던 덩어리가 느껴졌다.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도 남편도 더 이상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어쩌면....어쩌면... 이게 유방암일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생리 기간이나 피곤할 때 만져지는 것과 다른 울퉁 불통하게 느껴지는 덩어리가 만져졌다. 당장 병원에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난 지방에 내려 가야만 했다. 암일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에서 친구 딸의 결혼식에 불참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병원에 하루 이틀 늦게 간다고 크게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테니 일단은 결혼식에 가자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으로 고속버스에 올랐다. 어쩌면 주말 동안 만져진 덩어리가 없어져 주길 바랬던 마음도 있었으리라.
40년 지기 친구다 보니 결혼식에 온 손님 중에서 아는 분들도 꽤 있었다.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은 편하지 않았다.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가슴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얼른 덩어리가 있었던 부위를 만져보았다. 이미 내가 여러 번 만져봤던 터라 허탈해하는 남편의 마음이 이해할 수 있었다.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주말 동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불안한 마음으로 유방암 검진하는 병원을 찾아보는 것뿐이었다. 집과 가깝고 인지도가 있는 병원을 찾아보았으나 대부분 예약이 밀려 있어서 월요일 아침에 곧바로 진료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차라리 산부인과를 먼저 가 볼까 하는 마음으로 산부인과 진료 시간을 찾다 보니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 건물에 유방 외과가 새로 오픈했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개원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예약없이 진료가 가능했다. ‘그래. 월요일 아침 일찍 여기로 가보자.’ 주말 이틀 동안은 마치 2년의 시간처럼 참으로 길고 두렵고 불안한 시간들이었다. 무거운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은 무거운 마음으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일찍 동네에 새로 생긴 유방 외과를 찾아갔다.
2023년 6월 13일 월요일.
아침 9시. 아침 일찍부터 병원 갈 준비를 하고 있던 남편과 함께 동네 유방 외과에 갔다. 마음이 불안하여 오픈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병원 로비엔 아무도 없었다. 막 시작했는지 간호사 두 명의 움직임만 있었다.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첫 손님으로 진찰실에 들어갔다. 젊은 의사가 친절하게 웃어주며 어떻게 왔냐고 물어봤다.
"여기에 뭐가 만져지는데, 좀 이상해서요."
"언제부터 만져졌어요?"
"엊그제 토요일부터요"
촉진을 하던 선생님은 유방 촬영과 초음파를 먼저 해보자고 했다.
초음파 검사를 하는 동안 꼼꼼하게 살펴보던 의사는 덩어리가 있는 부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 순간 내 가슴에 있는 덩어리가 암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것은 어지럽게 복잡한 흑백의 초음파 영상이 아니었다. 초음파를 할 때 내 쉬는 의사의 걱정스러운 호흡에서 이미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고, 내 가슴에 있는 덩어리가 어느 정도의 심각성인지 알 수 있었다. 의사는 남편과 나에게 초음파 결과를 설명하면서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남편은 많이 안 좋은 거냐고 물으면서 '암'이라는 단어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 상황에서 ‘내가 암에 걸렸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만져봐도 알 수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의 움직임과 분위가 모든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조직검사가 끝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간호사가 ''요즘은 유방암 치료가 잘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유방암이었는데, 잘 치료받고 일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간호사 건넨 위로의 말은 결과적으로 내가 유방암 환자라는 것에 쐐기를 박는 것이었다.
단지 조직검사만 했을 뿐 아직 결과가 나오기 전인데도, 내가 유방암 환자라는 걸 인지해버렸다. ‘그러나.. 혹시나...’라는 미련의 여지조차 생각할 수 없었을까? 어쩌면 암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그땐 왜 그랬을까? 유방외과 병원을 찾아보던 주말 동안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마음보다 조직검사를 끝내고 난 후가 오히려 더 담담해졌다.
내가 암일 수도 있다는데, 아니 상황으로 보면 암 환자인데 왜 그렇게 담담했을까? 결과 나오기 전까진 다른 생각하지 말자고 말하는 남편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당연하지. 당신도 다른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보자." 그러나 남편도 나처럼 이미 마음의 각오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쉬는 동안 잠깐 아파트 정원을 걷고 들어오겠다며 나갔다 들어오는 남편의 눈이 빨갛게 젖어있었다. 나중에서야 고백했던 남편은 무너지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었노라고 말했다.
이렇게 나는 유방암과 처음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