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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iwoogi Feb 16. 2024

암 환자가 되었다.

정신차리자

조직검사를 받고 온 그 날.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난 이미 암 환자라고 생각했다. 혼자 침대에 누워서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봤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병원으로 다녀야 할까?’

‘항암 치료받으면서 계속 일을 할 수 있겠지?’

‘지금은 뭘 해야 할까?’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견뎌보겠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난 내게 주어진 현실에서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침대에 가만히 누워 이런저런 생각만 할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내가 방안에 누워있는 동안, 남편은 아파트 정원을 걷겠다며 나갔다. 잠시 후 친정 언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이게 무슨 일이니?" 나보다 더 놀란 듯 언니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어떻게 알았어?"

"오서방이 전화했어. 오서방이 우느라 말을 못 한다. 아직 결과 나온 건 아니니까 일단 기다려보자. 아직은 모르잖아" 언니는 아직은 모른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걸 보니, 일말의 희망이라도 갖고 싶은 듯했다.

"유방암인 것 같아. 몇 기냐의 문제인 듯해. 내가 만져봐도 그렇고, 아침에 간 병원의 간호사는 이미 확신을 하는 것 같아."

"그래. 생각을 좀 해보자. 기운 내고 있어. 알았지?"

"그럴게. 어떤 상황이든 앞으로가 중요하니까, 그래야지. 언니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걱정을 안 하냐. 일단 주변에 유방암 치료받은 언니가 있으니 알아볼게. 그 언니는 서울대 병원에서 했다고 하던데. 형부 친구 와이프가 삼성병원에서 했다고 했는데, 알아봐야겠다. 일단 끊자." 서둘러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당사자인 나는 멍하니 있는데, 언니는 행동으로 옮기겠구나.’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인데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언니와 나는 second opinion을 듣기 위해 서울대 병원, 삼성병원, 아산병원 등 종합병원의 예약 상황을 미리 알아보았다. 혹시나 하는 그 어떤 기대도 없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미련을 갖지 않으려는 나의 각오였을까? 아직 최종 검진 결과가 나오기 전인데도 병원부터 알아보고 있었다.      


검진 3일 후.

검사 결과를 들으러 동네 유방 외과에 다시 갔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서 그랬을까? 월요일 이른 아침에 병원을 찾았을 때보다 더 차분한 기분이었다. 의사가 "암이 맞네요."라고 말을 할 때도 특별히 놀라지 않았다. 정확한 사이즈는 정밀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2기에서 3기 사이로 보인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보면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라는 말에도 눈물 한 방울씩 떨어지는 장면이 많던데, “암이 맞네요”라는 말에도 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정밀 검사를 받기 위한 종합병원 예약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서울대 병원의 노**교수가 차병원으로 옮겼다고 하여 차병원에 예약을 했고, 언니의 지인이 삼성 병원 유방외과 남** 교수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수술 결과가 좋다는 말에 삼성 병원도 예약을 했다. 순차적으로 아산병원과 서울대 병원에도 예약을 넣었다. 이들 대부분의 병원은 첫 진료를 보기 위해 2주에서 4주까지 기다려야 했고, 첫 진료를 받은 후 수술까지는 빠르면 한 달이었고, 더 심한 곳은 8주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차병원, 서울대, 삼성, 아산의 순서로 예약 날짜가 잡혔다. 다른 무엇보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암 진행 속도가 빨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작년에 삼성 병원 암센터에서 다른 상황으로 진료를 받아봤기 때문에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가장 먼저 진료를 받고 싶었다. 병원 예약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나와 남편, 친정 언니가 하루에도 여러 번 콜센터로 전화를 했다. 혹시라도 누군가 예약을 취소하는 그 즉시 전화 통화가 되면 예약 날짜를 앞당길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이틀 동안 수시로 전화를 한 결과 운 좋게도 예약 일정을 앞당길 수 있었다.     


삼성병원 진료 받은 날.

6월 20일. 동네 유방 외과에서 조직검사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삼성병원 유방외과 남** 교수의 진료를 받았다. 2, 3분 정도의 짧은 진료 시간이었지만, 유방암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교수님을 믿고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날 난 중증 환자로 등록이 되었고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이틀 동안 각종 검사를 받았다. 이후 다른 병원의 진료 일정을 모두 취소한다고 할 때, 언니는 다른 병원 의사들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다. 언니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병원마다 진단 결과가 다르고 처방하는 약이나 치료과정이 다르다. 그러므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의 입장에서 병원 선정은 가장 큰 해결 과제일 수 밖에 없다. 치료받을 병원과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부분이므로 충분히 고민하고 알아보았다. 실제로 의사를 만난 후 내 치료를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이 있어서 다른 병원에 가지 않은 것에 대해 불안하지 않았다. 이후에 이루어질 치료 과정은 병원과 담당 의사를 믿고 처방에 맞춰 성실하게 따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병원 결정 후 전체 검사를 받다.

병원을 결정했고, 의사를 만난 후 이틀에 걸쳐서 유방 촬영, 초음파, CT, MRI, 전신 뼈 검사 등 각종 검사를 받았다. 가는 곳마다 환자들이 밀려있었고, 내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며 대기실 의자에 하염없이 앉아 있어야 했다.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나만 아픈 게 아니었구나.'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아플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은 건 아니었지만, 검사를 받는 동안에도 희한할 정도로 담담했다. 암을 알고 정밀 검사를 받는 동안 눈물이 나기도 한다는 데, 난 아무 느낌도 없었다. 평소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것처럼 그저 덤덤하게 진료실에 앉아 TV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울어봐도 암 환자라는 사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더 힘들 뿐이다. ‘지금부터는 정신 차리고 나 자신을 보살피는 것만 신경 쓰자’라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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