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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핵추남 May 30. 2022

해외 출장 갔다 코로나 격리 일기

5~6일차 : 죽음과 사람에 대하여


5일차는 별일이 없었다.


침대가 더 나아졌지만 잠자리가 어색해서인지 기침과 콧물 때문인지 얼마 자지 못했고 일어나 메일 보고 컨퍼런스 콜도 하고.


여러 사람들께서 이김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데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지만 (난 격리상태니 휴가나 병가가 아님)

아파서 격리되었는데 그게 쉬는 게 되나...

어디 리조트도 아니고...


타월이 모자라 좀 더 달라니 한 장에 1,500원이란다 허걱.

고민 좀 해본다고 하다 지불했다. 아침에.

오후에 보내준다더니 오후 5시가 되어서 언제 갖다주냐고 몇 차례 물어보아 그제서야 받았다.


의사, 간호사 및 호텔과 라인으로 비대면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메시지를 보내도 씹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빨리빨리 한국인은 이거 못 참는다고.



어제를 기점으로 몸이 나아지는 것 같아 퇴소 시점 전후로 자가 키트를 해보고 한 줄이 나오면 PCR 검사 받아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의사에게 자가 키트 좀 줄 수 있냐니까 열흘 지나도 검출될 거 같다고 소용없다고.


결국 태국 동료에게 부탁 챙겼는데 Grab Delivery (동남아시아의 Uber)를 통해 전달된 지 한참인데 라인과 전화를 통해 설명해 겨우 찾아왔네.


목 끝까지 'Why do not you see my message'라고 외칠 뻔.




6일차라고 별거 있겠나.

그저 갇혀 있는 거지.

다만 국밥이 나와서 오랜만에 따듯한 밥이라 고마웠다.

쌀국수에 밥 말아 먹는 느낌?


대신 컴퓨터 놓는 곳밖에 공간이 없어 거기서 앉아서 먹는데 갑자기 조금의 설움이 ㅋ


다행히 워너브로스 TV 가 나와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순 없지만 조금이나마 친숙한 언어를 BGM으로 켜 놓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무엇보다 역설적으로 제한된 식단 덕에 살이 빠진 것 같고( 애초에 다이어트 필요)


물을 하루에 수 리터씩 먹다 보니 피부도 좋아진 거 같고 (바이러스 배출에 도움)


동료가 사다 준 바디로션이 한국에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용량이 아니라 알로에 수딩 제품을 과감하게 몸에 처발랐더니 뽀송해진 느낌?



적자생존 :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은 오독.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 것.



한국과 확인하니 확진후 10일 후부터 입국이라고 하면 확진일을 0일차로 간주 10일차가 되었을 해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거란다.


계산해 보면 목요일 퇴소 토요일 밤 비행기, 즉 2박을 다른 호텔에서 (제대로 된) 머무는 것인데 PCR 을 굳이 받아야 하는지는 고민 중이다. 하루를 당길 수 있다 한들 비행기가 있어야 하거늘.


현지서 격리 기간을 겪고 일정 시간이 지나 한국에 들어가도 1일차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격리 여부는 보건소에서 판단한다고 한다. 아마 바이러스 검출량 등을 보겠지?


제발 격리 좀 그만....


감히 이런 말을 올려도 될지 모르지만,


왜 일본에 나라 잃고 타향살이하시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죽기 전에 고향땅 밟고 싶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아무리 좋아도 남의 나라요 어서 빨리 내 나라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평소엔 느껴보지도 못한 '고국'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갑자기 할아버지 보고 싶네. 늘 '산 넘어 남촌에는'을 부르곤 하셨는데)


타국에서 아프고 갇혀있으니 '객사'란 단어가 떠오로는데  집 바깥에서 아픈 것도 이렇게 서러운데 죽기까지 하면 그 한이 어땠으랴.


나의 할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집에서 거두셨다. 병원에 계시다가 임종을 준비해야 한다 하여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왔다. 그리고 3일장은 집에서 치렀다.


1993년. 그땐 그런 게 너무 흔한 모습이었다.


삶을 마감하는 것은 내가 살던 곳에서 하는 것.


30년이 지난 지금은 건강만이 지켜야 할 가치이며 아픔은 피해야 할 혐오의 대상이다. 죽음은 더욱이나 마찬가지라 마치 삶에서 죽음은 있지도 않은 것처럼 다뤄진다.


누구도 원해서 아픈 사람은 없다.

아무리 관리를 잘하고 조심한다 해도

병은 어느 날 갑자기 온다.

그건 개인의 탓이 아니다.


쓰고 보니 맥락과 어긋나는 사담이었다.

뭐... 블로그는 그런 곳이니까. 내 맘대로 쓰는 거지.

(여기는 브런치지매 이글은 블로그서 옮겨온거라)


이번 일을 계기로 드는 다른 생각들 중 하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다.


타국에서 확진되어 격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선 여러 반응들이 있는데 반응이 제각각이다.


몹시 놀란 호들갑형, 담담하게 위로하는 형, 관심 없는 형, 갠톡하긴 어색한데 갠톡주는 형, 몇 마디 하다 맥락 없이 끊기는 형, 사실 자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형, 별 웃긴 일 다 있다는 형 (실제로 ㅋㅋㅋ 만 겁나 쓴다 그럴 리 없겠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이게 웃긴가? 란 의심을 하게 됨) 등등.


어떤 경로를 통하던 어떤 반응을 보였던 응원의 메시지는 힘이 된다.


그리고 그것 내가 여기 isolation 되어 있음에도 바깥과 being connected 되어 있단 느낌. 사람이 살아갈 때 중요한 것들 중에 하나 '연결'의 느낌을 준다.


그게 아마 희망을 주나 보다.


인생은 苦 이자 또한 孤 라 생각한다고 늘 이야기하는데,


이는 결국 마지막에는 혼자서 결정해야 하고 그 과정에 늘 어려운 것이 있다는 뜻이지 결코 삶은 무조건 괴로운 것으로 가득하고 인생이란 고독함으로 충만하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의심하고

 (진짜로 진심이 없었더라도)


내 옆에 타인의 존재가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이 글을 닫고


심리삼당소를 찾아가라.



사람에게서 이런 '연결' 될 권리를 빼앗고 가두어 두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가혹한 형벌일 듯하다.


고립되다 보니 전 글들에 비해 재미가 없을 수 밖에 없는데

격리해제 될 때 까지 하나씩 이런 생각을 정리해 보고 퇴소해야겠다.


더 많은글 들은 블로그에서  https://blog.naver.com/lou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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